2009. 5. 2. 23:42

“ 신정통주의자 이종성의 신학 비평 ⑵ ” (바른 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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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성의 신학서론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라. (시편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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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는 신정통주의자 이종성의 성경관을 살펴보았다. 이종성은 성경에 오류가 있으며 성경을 비평하는 비평학을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한국 교회의 대표적인 신학자라고 하며 다량의 조직신학 서적들을 저술한 그가 바른 성경이 무엇인지도 모르며 또한 성경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무오한 말씀임을 믿지 않는 배교자인 것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그의 신학을 바른 성경으로 비평할 것이다.
이번 호에서는 그가 저술한 조직 신학에 나타난 신학 관조를 다루고자 한다.

1. 이종성의 신학서론

1) 이종성의 신학의 정의

「즉 신학은 신에 관한 사람의 이해를 인간의 언어와 논리를 통하여 구성하고 표현하는 학문이다. 따라서 신학도 하나의 학문으로서의 가치와 위치를 가지게 된다.」
첫째로 신학을 영위하는 주체자는 사람이지 신이 아니라는 점이다... 둘째 이유는... 따라서 신학에는 고정된 체계나 형식이 없다. 이러한 이유에서 신학을 절대화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이유에서 우리는 우리가 받은 신학만을 절대화해서는 안 된다.(1)

이종성의 주장은 이것이다. 그는 비록 신학이 하나님에 관한 학문이나, 사람이 주체가 되는 것이므로 절대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즉 이종성에게 신학은 신에 관한 인간의 학문인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서 이종성은 신학을 하는가?

2) 이종성의 신학의 목적

「다시 말해서 그러한 신학은 신자를 위하거나 교회를 위하거나 복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학자 자신의 취미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하는 학문이 되고 만다. 우리는 그러한 신학을 할 것이 아니라 교회와 신자들의 신앙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이를테면 살아 있는 신학을 해야 한다.」「그렇지 않고 신학이 학자들의 흥미를 충족시켜 주고 상아탑 속에서 학자들의 애완물이 된다면 신학의 본질에서 이탈하는 것이다.」(2)

이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신학이 이종성의 정의대로 “신에 관한 사람의 이해”라면 그것은 결코 정확하고 하나님께 인정받는 “신앙생활”이나 “살아 있는 신학”을 보장할 수 없다.

3) 이종성의 신학의 보조학

「반면 철학은 신학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이와같이 철학은 신학을 위하여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보조 학문이다.」,「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신학이 어떠한 학문과 관계를 가지면서 자체를 정립했을까? 이 점에 대해 신학의 보조학이라는 제목으로 여덟 가지 분야를 고찰하려고 한다.」(3)

이종성은 “신학의 보조학”으로 실제로는 여섯 곧 철학, 과학, 종교학, 심리학, 문학, 사회과학을 제시한다. 특히 이종성의 저서에서 ‘이성-철학-철학자-신학자’의 연결 고리를 발견할 수 있다.(4) 비록 계시가 이성보다 앞선다고 말하고 있으나 이종성은 신학과 다른 학문들과의 대조점과 유사점들을 통하여 신학을 설명하려는 것이다. 그는 탈레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베이컨, 데카르트, 칸트, 스피노자, 헤겔, 꽁트, 매쿼리, 프로이드, 융 등을 언급한다. 이들은 자신의 지식 가운데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여 지옥에 던져져 불타고 있는 죄인들이 아닌가?(로마서 128, 32) 우리는 이종성에게 묻는다. 신학자가 이들과 같은 무리가 아닌 다음에야 배설물과 같은 죄인들의 사상에서 무슨 도움을 받으려 하겠는가?i HanSaRang 주. ─동서양의 수많은 철학가들이 나와 자기들만의 독특한 이론들을 발명해 놓고서 무언가 대단한 깨달음인 양 떠들다가 후 세대들에게 남겨놓고 떠났다. 그러나 영원히 하늘에 세워진하나님말씀The Word of God에 비추어 보면 정신나간 소리에 불과함을 깨닫게 된다. 그것들은 인생에게 해답을 제시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흑암과 혼란과 정신착란에 빠져들게 하는 마귀의 도구들임이 밝혀지는 것이다.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철학이론사상’들을 연구할수록 모든 존재(인간생명체지구우주...)의 근원적인 의미와 목적에 대한 답이 없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왜? 왜? 왜?타락한 인간의 마음에서는 냄새나는 썩은 열매들만 나오기때문이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진짜 진리’(The Truth)를 모를 때에 인생은 흑암속에서 방황하고 더듬거리며 살아가게 된다.성경에 기록된 말씀만이 인생에게 정확하고 확실한 빛을 비추어 주는 것이다.
『진리를 알게 되리니 그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복은 8:32)
『나는 알파오메가요, 시작과 끝이라. , 곧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앞으로 오실 전능하신 분이 말하노라.』(요한계시록 1:8)
『다 이루었노라. 나는 알파오메가요 시작과 끝이라. 내가 목마른 자에게 생명수의 샘을 값없이주리라.』(요한계시록 21:6)

4) 이종성의 신학론의 문제점

이종성은 신학을 학문 분야로 격하시킨다.ː 이종성은 신학이 인간이 “신”을 이해하여 인간의 언어와 논리로 표현한다고 하여 하나의 학문으로 취급하고 있다. 혹자가 일반 학문 중 하나로 신학을 취급하고 전공하려 한다면, 그는 자신의 혼뿐만 아니라 그의 신학에 영향을 받는 사람 또한 오염시키는 것이다.『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가운데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도 아니요, 무로 돌아갈 이 세상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니라』(고린도전서 2:6).

이종성은 인간의 전통과 철학과 과학에 치중한다.ː이종성은 하나님께서 폐기하신 인간의 지혜를 들추며 “신”“진리”를 운운하는 것이다. 이는 이종성만의 오류가 아니라 이 나라의 신학계에 만연한 오류다. 곧 인간적인 전통과 철학과 과학에 치중하는 것이다. 신학은 “하나님의 진리”(The Word of God)를 다루기 때문에, 인간의 지혜를 의지하면 오류를 범하게 되어 있다. 우리 나라 신학교들에서 철학 과목들을 신학을 이해하기 위한 예비 과목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은 인간의 사변으로 하나님의 진리와 교리를 파악하려는 헛된 시도이다. 결국 하나님의 진리들을 상대적으로 만들어 인간의 사상들의 수준으로 격하하는 결과를 낳았다.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세상이 그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기에...』(고린도전서 121a).

이종성은 올바른 신학 방법론 제시에 실패했다.ː신학자는 자신이 어떤 방법으로 성경을 해석했으며, 또한 어떤 방법으로 신학도가 진리를 탐구하고 오류들을 규명해야 할지 제시해야 한다. 이종성이 제시한 “연역적 방법,” “계시적 방법,” “상관적 방법,” “통전적 방법”은 피상적이며, 구체적인 지침을 주지 못한다.(5) 즉 성경을 어떻게 잃고 이해해야 하는지 이종성은 제시하지 못했다. 따라서 그의 후학은 이종성의 조직신학 서적들을 읽고 공부하면서 어떻게 그런 결론에 도달하였는지 성경을 가지고 비평적으로 읽지 못하고 그의 신학을 전적으로 답습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영적인 패망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마태복1514b).

2. 성경적 신학의 개념과 방법

1) 성경적 신학의 정의

신학(神學)은 어의 그대로라면 ‘신에 대한 학문’일 것이다. 만약 여기서 그친다면, 이종성의 정의가 맞을 것이다. 그러나 “신학”(theologyqeologia)은 헬라어로 “하나님”(theosqeoV)과 “말씀”(logoslogoV)의 합성어이다.(6) 즉 신학은 단순히 “신에 관한 사람의 이해를 인간의 언어와 논리를 통하여 구상하고 표현하는 학문”이 아니다. 이종성의 정의는 자유주의 신학 혹은 신정통주의 신학을 일컬을 때나 적합하다. 성경적인 의미에서 신학은 하나님의 말씀인 바른 성경으로 하나님과 그분의 절대 진리들을 규명하는 학문이다.

2) 성경적 신학의 방법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라.”ː그러면 성경은 어떻게 해석하는가? 하나님의 계시를 방해하는 세 가지 요소, 곧 ‘전통’과 ‘철학’과 ‘과학’을 배제하고, 오직 성경이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는가를 살펴야 한다. 즉 성경 본문이 말하는 말씀들에 첨가하지도 말고, 더하지도 말며, 수정하지도 말고 성경 본문을 그 문맥과 다른 성경 본문의 빛을 비춰 공부해야 한다. 신학은 이전의 철학자들과 신학자들과 신조들과 소속 교단의 입장이 어떠한가를 묻는 것이 아니다.『너희는 너희가 전수한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기하느니라』(마가복음 713a).『아무도 너희를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노략질하지 못하도록 주의하라』(골로새서 28a).『오 디모데야, 네게 맡겨진 것을 지키고, 비속하고 허황된 말장난과 거짓되어 일컬어지는 과학의 반론을 피하라』(디모데전서 6:20).
그러므로 성경적인 신학도와 신학자의 자세는 오직 단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느냐?(로마서 43a)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라.”ː풍유적이며 영적인 해석은 성경을 거부하는 철학자들과 이단자들의 사적 해석의 수단이었다.(7) 성경 또한 많은 문학적 수사법을 사용하지만,(8) 이러한 비유적인 표현들은 문자적인 의미의 기반 위에 세워지는 것이다. 성경의 비유적인 언어를 문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오류이며(요한복음 651, 52), 성경의 문자적인 언어에 대해 비유적인 해석을 구하는 것도 오류다(마가복음 71517). 무천년주의가 지배적인 한국 교회는 극심한 풍유적 영적 해석의 거짓 교리들이 난무하고 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의 문자적인 의미를 풍유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곧 사사로운 해석이다.『먼저 이것을 알지니, 성경의 어떤 예언도 사사로운 해석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베드로후서 1:20).

“성경을 올바로 나누어 공부하라.”ː성경을 연구하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성경은 나누어서(Divide) 이해해야 한다. 즉 신약과 구약을 나누어야 한다. ‘이스라엘’과 ‘교회’와 ‘이방인’이라는 세 대상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타락전과 타락 후, 홍수 전과 홍수 후, 아브라함의 부르심 전과 후, 모세의 율법 전과 후, 십자가 전과 후, 교회의 휴거 전과 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전과 후, 백보좌 심판 전과 후를 구분해야 한다. 하나님의 경륜들과 성경 본문의 대상들을 구분하여 이해해야 한다.(9) 교회사 전체에 걸쳐서 모든 이단 교리들은 성경에서 교회 시대의 경륜에 적용되지 않는 말씀을 교회 시대에 교리적으로 적용할 때 발생했다.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rightly dividing)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Study)(디모데후서 2:15).

“성경을 성령님의 조명에 따라 연구하라.”ː성경을 문자적으로, 성경을 성경으로, 성경을 올바로 나누어 공부하는 것은 반드시 성령님의 빛과 인도하심을 따라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진리의 말씀을 성경대로 믿는 교회의 목사와 성경 교사와 같은 사람을 매개체로 전달하신다. 그러나 성경의 진리와 교리를 깨닫게 하시는 궁극적인 교사는 “성령 하나님”이시다. 바른 조명을 위해 기도하며 하나님의 진리를 인간의 전통과 타협하지 않을 것이며, 그 말씀을 전파하고 실행하겠다고 고백하며 성령님의 인도를 구해야 한다(사무엘상 310┃요한복음 717).『또한 우리가 그것들을 말하되 인간의 지혜가 가르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성령께서 가르치시는 말로 하나니 영적인 일들을 영적으로 비교하여 말하느니라』(고린도전서 2:13).

3) 성경적 신학의 대상과 목적

『○ 성경을 상고하라』(요한복음 539a).『진리의 말씀을... 공부하라』(디모데후서 215).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하고(search) 공부하는 것(study)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명령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읽고 찾고 배우고 공부한다는 의미에서 신학의 대상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다. 이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호세아 66), 또한 진리의 지식(디모데전서 24)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요구하는 하나님의 기본적인 뜻이기 때문이다(베드로후서 318).
더 나아가 신학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거룩한 소명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진리들로 하나님의 교회를 먹이고 돌보는 사역을 맡겨 주셨기 때문이다(에베소서
411). 목사와 성경 교사가 이러한 일을 제대로 할 때, 그들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온전한 뜻을 분별케 하며, 하나님의 사역으로 섬기게 하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여, 장차 그리스도의 날에 그들로 유업을 얻게 하며, 그 자신 또한 주께로부터 칭찬을 받는 것이다(사도행전 2028, 32). 즉 하나님께서 부르신 목사와 교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먹이며 양육시키기 위한 것이 바로 신학의 목적이다.

4) 성경적인 신학자의 자세

『누가 이런 일들을 원만히 감당하겠느냐?』(고린도후서 216b) 신학은 성경의 절대 진리들을 다루며 영구적인 결과를 발생시킨다. 따라서 세상의 학문들과 유사하게 취급해서도 안되며, 직업과 생계 수단이 되어서도 안 되며, 과학자나 의사보다 더 정밀한 연구와 연마가 평생 필요함을 알아야 한다. 다른 학문 분야에는 오류가 허용될 수도 있으나 신학에서는 거짓 교리가 허용되지 않는다. 그들은 허망한 지성과 썩어질 육신과 불타 버릴 세상을 다루나, 하나님의 사람인 신학자는 죄인들의 혼들과 그리스도인들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책임이 있으며, 하나님의 교회의 사역과 강성함에 대한 책임과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신학자는 복음의 진리, 하나님을 아는 지식,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에 관한 진리로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는 사람이다(사도행전
202427).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께서 조명해 주신 성경의 진리들을 전파하고 가르치다가 이를 위해 생명의 위협도 무릅쓰는 사람이다. 곧 진리의 전달자로서 사도 바울이 우리가 따라야 할 ‘성경적 신학자상’인 것이다.『그러나 나의 달려갈 길을 기쁨으로 끝마치고 내가 주 예수로부터 받은 사역,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라면 이런 일을 전혀 개의치 아니할 뿐 아니라 나의 생명을 조금도 아끼지 아니하노라』(사도행전 20:24). 이런 자세가 아니라면 신학은 입문하지도 가르치지도 말아야 한다.

결 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바른 성경과 성경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죄인들의 오물로 가득찬 지성과 그것의 결과물을 신뢰하는 자에게 진리를 조명하시지 않는다. 이종성의 신학관과 신학서론을 보면 한국 교회의 교리적 실제적 타락과 배교가 설명된다. 이종성은 그의 왜곡된 신학 관념으로 “신학”을 또 하나의 학문 분야로 여기며 “신학”“목회”로 먹고 살고자 하는 자들이 신학교들과 교회들의 강단을 꿰차게 만들었다.
이 글이 길을 잘못 들어선 신학자들과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에게 경고와 지침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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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No. 206/200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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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목록

(1) 이종성,『조직신학개론』(서울종로서적, 1991), pp.6,7.
(2) 이종성, 위의 책, pp.8,9.
(3) 이종성,『신학서론』(서울대한기독교출판사, 1993),

pp.147, 148.

(4) 이종성,『조직신학개론』, pp.1217.
(5) 이종성,『신학서론』, pp.4269.
(6) 성경의하나님의 말씀들』(ta logiatouqeou, 로마서 3

2),『하나님의 말씀』(logiaqeou, 베드로전서 411),하나님의 말씀』(tonlogontouqeou, 누가복음 821) 등의 문구에서 신학의 정의가 마땅히 어떠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신학(theologyqeologia)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7) Paul Lee Tan,The Interpretation of the Prophecy

(MDAssurance Publishers, Rockville, 1974), pp. 4551.

(8) 벌링거의 정밀한 연구에 따르면 성경에는 217개의 수사법이

사용되었다. E. W. Bullinger, D.D.Figures of Speech

(NYMessrs. e. k J. B. YOUNG k Co., 1898).

(9) 클라렌스 라킨의 저서를 참조하십시오.

세대적 진리Dispensational Truth(서울씀보존학회,

1997).

m 레스(Thales of MiletusB.C. 624?546?)

플라톤(PlatoB.C. 428?347?)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B.C. 384322)
베이컨(Francis BaconA.D. 15611626)
데카르트(Rene DescartesA.D. 15961650)
칸트(Immanuel KantA.D. 17241804)
스피노자(Baruch SpinozaA.D. 16321677)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A.D. 17701831)
꽁트(Auguste ComteA.D. 17981857)
매쿼리(John MacquarrieA.D. 19192007)
프로이드(Sigmund FreudA.D. 18561939)
(Carl JungA.D. 18751961)

7

『 이종성의 신학서론 』
by
q 신정통주의자 이종성의 신학 비평ㆍ⑵
김 진석 (킹제임스성경신학대학 강사)

Copyright ⓒ 2009 Korean by Word of God Preservation Society.
Seoul, Korea.

Bible believ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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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강해 】

& 날짜ː 2004. 1. 11.오전
제목ː『 욥 기 23 이 송오 목사
경구절ː〔 욥 2210237
시간ː3038
주소ː 20040111_job

mms://211.200.28.142/biblemaster_ebible/
20040111_job.mp3

& 날짜ː 2004. 1. 4.오전
제목ː『 욥 기 22 이 송오 목사
경구절ː〔 욥기 2120229
시간ː3507
주소ː 20040104_job

mms://211.200.28.142/biblemaster_ebible/
20040104_job.mp3

& 날짜ː 2003. 12. 28.오전
제목ː『 욥 기 21 이 송오 목사
경구절ː〔 욥기 20162119
시간ː3353
주소ː 20031228_job

mms://211.200.28.142/biblemaster_ebible/
20031228_job.mp3

『누구든지 지혜로운 자들과 이 일들을 살펴볼 자들,
그들은
의 자애하심을 깨달으리로다. 』
(시편 107:43

『우리 가운데 각 사람은 선을 위하여 자기 이웃을 기쁘게 세워주자.』
(로마서 15:2

『누구든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그는 우리
께서 오실 때 저주를 받을지어다. 』
(고린도전서 16:22

┃BBC 찬양대┃(163) 주 다시 오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