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1. 26. 12:55

“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 (설교 모음)

(설교 모음) [20050703] ● 제13장ː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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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

            ● Peaceful Hymns on Violinㆍ잔잔한 찬송가 바이올린 연주 모음┃(53:39)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라. (시편 12:6)┃

┃마태복음 26:40

『 제자들에게 돌아와 그들이 자고 있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 
And he cometh unto the disciples, and findeth them asleep, and saith unto Peter, What, could ye not watch with me one hour?

  저는 이 본문을 읽을 때마다 두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첫째로, 겟세마네에서 일어났던 일들과 그 일들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그리고 두 번째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강조하신 시간의 중요성입니다.
  사람들은 이 부분을 읽으면 겟세마네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오늘은 시간의 중요성에 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시간을 낭비하는 죄를 자주 짓습니다. 우리는 시간에 관련된 이 간단한 진리를 너무도 쉽게 간과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시간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함부로 낭비해서는 안됩니다. 시간은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즉, 한 시간에
60분이고, 하루는 24시간이며, 일주일은 7일입니다.
  시간은 매우 짧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고린도전서 729a).
  한 사람이
70평생을 살 경우 보통 시간을 어떻게 배분해서 사용하는지 계산을 해 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내놓은 결과는 이랬습니다. 한 사람이 70살까지 산다고 가정할 경우, 그는 교육받는 데 3년의 시간을 보내고, 오락을 즐기는 데 8년을 쓰며, 저녁 식탁에서 6년을 보내고, 5년은 길거리를 돌아다니는데 뿌리며, 4년은 대화를 나누는 데, 14년은 일하는데, 그리고 3년은 책을 읽는 데, 또 24년은 잠자는 데 쓰고, 나머지 3년은 병치레를 하는 데 보낸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듣고 이렇게 덧붙인 사람이 있습니다.즉, 매주 주일마다
90분씩 예배에 참석하고, 매일 아침 10분씩 기도를 하면 10달 정도가 거기에 소요된다고 합니다. 일 년도 아니고, 칠십 년 중에 겨우 10달 정도라는 것입니다.)
  아무도 세월을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너희가 내일 일어날 일을 알지 못하나니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니라』(야고보서 4:14).
  시간을 함부로 낭비해선 안 됩니다. 시간을 낭비한 대가는 결국 우리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시간은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필수 요소입니다.

시간은 불어가고 다시 오지 않는 바람
당신의 시간이 언제까지 불는지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시간이 늦을는지 이를는지, 아무도 모른다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은 오늘밖에 없다
살고 사랑하고 힘들여 일할 시간은 오늘이 전부다
누가 내일을 장담하는가
당신의 시간이 내일까지 지속되리라고
그 누가 장담할 수 있으랴

  젊은이들이여,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예루살렘의 현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너는 이제 너의 젊은 날, 곧 재앙의 날이 이르지 않고 “나에게는 즐거움이 없다.”고 말할 해가 가까워 오기 전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전도서 12:1).
  자, 다시 겟세마네로 돌아가 봅시다.

 I. 탄 식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마태복음 2640b) 이것은 구주께서 생사에 관한 아주 혹독한 시련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것을 보시고 그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아들의 입에서 나온 말씀인 것입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너희가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 참으로 영은 원하지만 육신이 연약하도다.”라고 하시더라』(마태복음 26:41).
  그런 후 예수께서는 기도하시던 곳으로 다시 가셔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오 나의 아버지시여,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다면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마태복음 2642).
  그 후에 다시 그 세 명에게로 돌아왔는데, 그들은 이번에도 잠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분은 다시 가셔서 같은 말씀으로 세 번째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분은 다시 오셔서 그들이 잠든 것을 보시고, 이번에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45 그리고 나서 제자들에게 오셔서 말씀하시기를 “이제는 자고 쉬어라. 보라, 그 시간이 가까웠으니 인자가 죄인들의 손에 넘겨지리라. 46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배반하는 자가 가까이 왔노라.” 하시더라』(마태복음 26:45, 46).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동시에 사람의 아들이셨습니다. 그분은 십자가에 죽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고통을 받으시러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고통은 또 얼마만한 것이었습니까!
  주님께서 사람들을 보시고
『...“참으로 추수할 것은 많으나 일꾼들이 적구나,』(마태복음 937b)라고 말씀하셨을 때, 또 자신에게로 나아온 군중들을 보시며『○ 주께서 무리를 보시고 그들을 가엾게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지치고 흩어졌음이라.』(마태복음 9:36)고 말씀하셨을 때 그분의 마음은 몹시 괴로우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며 그 마음의 고통을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자자들을 죽이며 너에게 보낸 사람들을 돌로 치는 자야, 마치 암탉이 자기 병아리들을 날개 아래 함께 모으듯이 내가 얼마나 자주 네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마태복음 23:37)
  그분은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며 마음이 쓰라려 우셨습니다(누가복음 1941).
  그리고 십자가 상에서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치시던 그 때도 그 마음에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이 그득했음이 분명합니다.
  자 이제 다시 구주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비통한 말씀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마태복음 2640b)
  이 말씀 속에는 그분의 고통스러운 상태가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이 말씀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이 겪으셨던 고통의 한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 줍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분께서는『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마태복음 2640b)고 하시는 말씀을 세 번에 걸쳐 하셨습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그분의 고통스러운 심정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었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 속에는 그분이 지고 계셨던 무거운 마음의 짐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습니다. 세 번에 걸쳐 기도하시고 난 후 제자들에게 오셔서 결국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는 자고 쉬어라.』(마태복음 2645a).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연약함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이 제자들이 겪어야 했던 역경 또한 잘 이해하고 계시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이 한마디를 던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마태복음 2640b)

 II. 왜 잠들었는가?

  주님의 탄식하며 하신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 보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왜 그렇게 실망을 하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분은 제자들이 잠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분께서 탄식하신 이유였습니다. ─ 잠든 제자들.
  그들은 지친 상태였습니다.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주님과 함께 어려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여기저기에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었고, 그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그들을 몹시 기진하게 만들었을 것이며, 그런 까닭으로 주님께서 홀로 떨어져 기도하시고 계시는 동안 그들은 모두 잠이 들어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여러분들 중에는 그들을 변호하고 싶으신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나, 구주의 탄식 앞에서 어떻게 변명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마태복음 2640b)
  겟세마네에서의 그 저녁은 우리 구주에게 있어서 참으로 잔혹한, 그리고 혹독한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같이 간 세 사람은 그분과 가장 가까운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다른 위대한 사건들에서도 그분과 함께 했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의하면 그 위대한 사건이 벌어진 바로 그 곳에서 그들은 참으로 인간다운 반응을 보였습니다. 즉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주님께서 변형되시는 사건이 벌어진 산에 올라가서 잠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중대한 상황에서도 천연덕스럽게 잠을 자버리는 행동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겟세마네”라는 이름은 “특별한 수고”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이 제자들은 아무런 수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사람들에게 조금만 더 앞으로 나아가라고 부르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주님은 특별한 수고를 기울이라고 여러분을 부르십니다. 당신은 그분께 그런 수고를 드릴 의향이 있으십니까? 작금의 현상을 보십시오.
죄는 더더욱 깊어져 가고 있고, 마음은 식어질 대로 식어져 있으며, 애달픈 탄식이 흘러나오고, 삶의 기준들은 형편없이 낮아져 있으며, 거룩한 것들이 존경받지 못하고, 하찮은 것들만 지나치게 강조되는 바보 같은 시대가 바로 오늘날입니다.
  젊은이든 나이든 사람이든 모두 각성해야 합니다.
  
첫째로 성경은 이기적인 사람들을 책망하셨습니다. 바울은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모두 자기 자신의 일만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은 구하지 아니하느니라』(빌립보서 2:21).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일생을 바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노라면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요한 웨슬리(John Wesley17031791)는 바로 그런 삶을 산 사람이었습니다.
  웨슬리는 엘더스게이트에서 회심한 이래로
43년 동안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는 영국을 횡단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웨슬리는 6개국어에 능통했고, 신학과 역사 그리고 문학에 해박했습니다. 겉모습으로만 본다면야 그는 그저 160cm 남짓한 키에 몸무게는 고작 60킬로 정도 나가는 볼품없는 사내에 불과했지만, 도무지 “바닥이 보이지 않는 정열”을 지니고 있던 사나이로 40,000편의 설교를 했고, 250,000 마일(약 402,336km)을 여행했으며(대부분 말을 타고 다녔습니다.), 400권의 책과 소책자를 저술했습니다. 그는 때로 2만 명이나 되는 청중 앞에서 설교를 하기도 했는데, 그때는 확성기도 없던 시대라 오직 설교자의 육성으로만 설교하던 시대였습니다.
  정열적이고 헌신적인 삶을 살다가 웨슬리는 향년
87세의 나이로 주님곁으로 떠나갔습니다. 웨슬리의 이야기는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이기적인 사람들의 마음에 큰 부끄러움을 안겨 주기에 충분합니다.
  저는 언젠가 이타적인 행동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큰 보상을 받은 어느 어린 병사의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페이지(
Page)라는 이 젊은 군인은 2차 대전 당시 이집트에서 복무했습니다. 그는 월급날이 되면 받은 돈의 110 을 집에 계신 어머니께 우편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한 번은 이런 사연을 동봉해 부쳤습니다.

“이 돈은 목사님께 드리세요. 그리고 이 돈을 새로운 주일학교 건물을 짓는 데 써 달라고 해 주세요. 그리고 나중에 제가 집으로 돌아가면 교회 회중석이 아닌 주일학교 건물의 교실에서 공부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말씀드려 주세요. 자신들만의 교실에서 공부하고 싶은 게 모든 아이들의 꿈이거든요.”

  2년 후 전쟁은 끝이 났고, 그는 집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는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몇 시 기차를 타고 고향에 도착할 것인지 미리 말해 두었습니다. 그런데 역에는 거의 천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그를 마중하기 위해 나와 있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많은 사람이 나와 있으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던 터라, 자기 쪽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을 보고선 자기 뒤에 누가 있나 싶어서 뒤를 힐끔 돌아보았습니다.
  이 어린 병사의 앞쪽으로 아버지와 목사님, 그리고 집사님들과 여러 성도들이 나란히 다가와 섰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환영의 말을 건넨 후 이렇게 말했습니다.

“집으로 가기 전에 우선 교회로 가자. 너한테 보여 줄 게 있다.”

  그들은 어린 병사를 차에 태우고 어느 근사한 건물 앞으로 데려 갔습니다. 그런데 그 문에는페이지 빌딩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는 한동안 놀란 가슴으로 아무 말도 못한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드디어는 눈물을 글썽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제 이름이 저기 있는 거죠?”

  그러나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 때 네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를 주일 아침에 회중들 앞에서 읽어 주었단다. 그리고 나서 네가 보내오는 돈들을 가지고 이 건물을 짓기 시작했단다. 네가 성실하게 꼬박꼬박 돈을 보내 준 덕분에 이렇게 훌륭한 건물이 완성되었다. 그래서 네 이름을 여기에 새겨 넣은 거다.”

  두 번째로, 아무 생각없이 사는 것도 성경에 의하면 죄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또 하나님께서 우리를 무어라고 부르셨는지를 늘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상태를 끊임없이 살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항상 구주께 우리의 최선을 바쳐드려야 합니다.
  
세 번째로, 성경은 무관심도 책망하십니다. 교회에 대한 무관심으로부터 시작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구령이나 선교에 대해선 남의 일처럼 여기거나, 기도를 게을리 하는 것 등은 성경이 책망하는 무관심입니다. 구주께서는 이런 자들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책망의 말씀을 던지셨습니다.『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마태복음 2640b)
  저는 항상 강인한 성격이나 굳은 마음의 결의를 드러내는 말들에 귀를 기울이곤 합니다.
  지난 저녁, 저는 여기서
160km 정도 떨어져 있는 교회에서 많은 분들과 악수를 나누었습니다. 그 중에 자그마한 체구의 부인 한 분이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저는 지금까지 제 남편을 위해서 40년 동안이나 밤낮으로 기도했답니다. 그렇지만 전 절대 이 기도를 멈추지 않을 거예요. 그 양반이 구원을 받든가 제가 본향으로 불려 가든가 둘 중의 한 가지 일이 일어나기 전에는 절대로 기도를 멈추지 않을 거예요.”

  저는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마음에 우리에게 맡기신 그 위대한 일들을 향한 열정을 다시금 불붙여 주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주여, 그리스도를 섬기는 데 우리가 정말로 최선을 다하게 하여 주소서!

 III. 궁극적인 치유책

  우리는 지금까지 주님께서 탄식조로 쏟아 놓으신 말과, 제자들이 주님의 입에서 탄식을 불러왔던 이유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는 그 해결책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의 삶을 올바르게 경영하려면, 우선 몇 가지를 확실하게 짚어야 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향한 우리의 사랑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중 가장 아름다운 부분에 속하는 ‘요한복음 211517’을 한번 보십시오.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에게 이렇게 물으십니다.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요한복음 2115a).
  여러분도 그분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한번 점검해 보십시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더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저는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마음의 정 중앙에 모시고서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이 구주께 눈을 고정시키고 있으면 놀랍고도 가슴 벅찬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들 중 가장 위대한 찬송가에 속하는 어느 한 곡은 단
5분 안에 쓰여졌습니다. 그리고 이 곡은 80년이 넘게 불려지고 있습니다.
  조지 매헤슨(
George Matheson)은 20년이 넘는 세월을 암흑 속에서 살고 있던 상태였습니다. 그가 시력을 상실할 즈음 약혼녀는 그를 떠나갔고, 장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으며, 그의 눈빛은 암흑 속에서 조금씩 사위어 갔습니다.
  그의 여동생이 결혼하던 날 그는 결혼식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때 그는 암흑 속에서 살아온 지난
20년의 세월을 회상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부드러운 미소, 그리고 황금빛을 작열시키며 솟아오르는 태양과 하늘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석양을 마지막으로 본 것도 벌써 어언
20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그가 사그라드는 폭풍의 목을 옥죄듯 하늘에 둥그렇게 원을 그리며 무지개를 보았던 때는 그가 아직 젊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날 조지 매헤슨은 주님께 무엇인가를 드리고픈 마음이 간절했고, 주님은 그에게 감동을 주셨습니다. 그는 펜을 들고 채
5분도 안되는 동안 시를 한 수 썼습니다. 마음속에 보이는 것들만을 소재 삼아 그는 이 위대한 작품을 써냈습니다.

주님의 크신 사랑 가운데
내 곤한 영혼 쉬며
내 생명 주께 맡길 때
그 깊은 은혜 넘치네
날로 더 넘치네

주님 내 가는 길에 빛을 비추어 주소서
내 명멸하는 등불을 바칩니다
내 마음속에 주님이 주신 빛이 그득하게 하여
주님의 태양이 내 하루를 밝히게 하여 주소서
더욱더 밝게
더욱더 아름답게 밝혀 주소서

  그는 사랑과 빛에 관하여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고통 받으시는 주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의 눈앞에는 그분의 발과 손에 못이 박혀 들어가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짧은 외침을 듣습니다.『...“다 이루었다.”...』(요한복음 1930). 그 음성을 들은 그는 펜을 들고 다시 시를 써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주님의 위로 가운데
내 영혼 기쁨 누리며
비오는 중에 무지개를 보니
주님의 약속 더욱 분명하네
날로 더 분명하네

  그리고 마지막 절을 쓸 즈음, 그의 마음은 십자가에 온전히 고정되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는 마지막 절을 이렇게 썼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공로로
내 죽을 영혼 살았네
내 육신 장막 벗을 때
내 생명 영원으로 이어지겠네

  20년 동안 암흑 속에서 살았던 사람의 마음이 주님께 고정되던 순간, 그는 단 5분도 안되는 시간 안에 저 위대한 명작을 완성했습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자아를 죽여야 합니다. 이기심이나 함부로 사는 삶, 그리고 무관심 따위는 우리 자신의 욕망을 죽일 때 치유할 수 있는 병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정녕 죄에게는 죽은 자요, 예수 그리스도 우리 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는 산 자로 여기라』(로마서 6:11).
 『이는 너희가 죽었고 또 너희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기 때문이라』(골로새서 3:3).
  자아는 우리의 가장 큰 적입니다. 사탄은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중입니다. 지옥의 사자들은 우리의 삶을 뒤집어 엎으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자아를 죽은 것으로 여겨야 합니다.
  
세 번째로, 우리는 신실함의 기준을 한 단계 높여야 합니다. 그 기준은 여러분 스스로 정립하셔야 합니다. 제가 여기서 세워 드릴 수도 있겠지만, 여러분이 손수 세우지 않는다면 그건 곧 흔들거리다가 무너져 내리고 말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칼렙은 하나님을 신뢰한 신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돌아온 정탐군들 중에 약속의 땅을 쳐서 정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던 사람은 그 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 신실함으로 인하여 동료들로부터 증오를 받았습니다.
  느헤미야도 신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삶과 사역을 무너뜨리려고 애썼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우리의 고질적인 병을 치유하는 적극적인 치료책은 세 가지 입니다. 우선, 우리는 자신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정말 사랑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두 번째로, 자아를 죽여야 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신실함의 기준을 높여야 합니다.
그분의 말씀을 읽는 데 좀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좀 더 많은 시간을 들여 기도하며, 좀 더 자주 잃어버린 혼들에게 복음을 전하십시오.
  한 젊은이가 보스톤에 일자리를 얻어 그곳으로 떠나가기 위해 짐을 꾸리고 있었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아들을 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백화점에 너한테 보여 주고 싶은 그림이 한 점 있단다.”
  젊은이는 기꺼이 그러고 싶었지만, 거기에 갈 만한 시간이 없었기에 머뭇거렸습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그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넌 곧 떠날 거잖니? 그러면 더 이상 너한테 부탁도 못할 것 아니냐. 그러니 이번만은 내 말을 따라주렴.”
  그 말을 들은 아들은 대답했습니다.
  
“좋아요.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하는 수 없죠.”
  그들은 상점으로 가서 어떤 방의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방 안은 어두컴컴했는데, 한줄기 빛이 선명하게 내려와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좀 더 가까이 가서 보니 그것은 그림이었습니다. 그림은 너무도 정교하고 아름다워 그는 마음에 적잖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는 그 날 밤 참석한 파티에서 별 흥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아까 보았던 그림이 자꾸 마음에 떠올라서였습니다.
  다음날 그는 어머니께 말했습니다.
  
“어머니, 그 그림을 다시 한 번 보고 싶어요.”
  그는 다시 그 가게로 가서 그림이 있던 방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한참 동안 그림을 응시하고 있다가 어머니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어머니, 이분의 표정이 왜 이렇게 슬프시죠? 보세요, 손에도 이렇게 굵은 땀방울이 맺혔잖아요.”
  그러자 어머니는 아들에게 대답했습니다.
  
“애야, 이건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모습을 그린거란다. 그분은 자신을 죽일 사람들과 그분의 죽음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계셨을 거야. 그분은 지금 자신의 이야기를 온 세상에 전파할 사람들을 일으켜 달라고 기도하고 계신 거란다.”
  젊은이는 고개를 숙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주님! 제가 주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 일을 제가 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이 겟세마네에서의 장면을 다시 보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 보십시오.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마태복음 2640b)

  그분은 오늘도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고 다른 곳으로 돌이킨 자들을 향해 똑같은 질문을 던지고 계십니다. 구령하는 일을 등한시하는 이들과,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시간을 죽이는 자들을 향해서도 똑같은 탄식을 쏟아 놓고 계십니다.
  지금 주님 앞에 이렇게 말씀드리십시오.
  
“주님, 내 모든 것들을 주님께 바치겠습니다. 제 삶과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말입니다!”

리 로버슨/『수요기도회를 위한 설교모음집』ː(제13장) ...

    The Man in Cell  No.1

    by
 
   Lee Rober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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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ː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

(전도서 8:413)

4 왕의 말이 있는 곳에는 권위가 있나니, 누가 그에게 말하기를 “당신은 무엇을 하나이까?”라고 할 수 있느냐? 5 계명을 지키는 자는 누구나 악한 것을 생각지 않으리니 현명한 사람의 마음은 때와 판단을 분별하느니라. 6 ○ 모든 목적에 때와 판단이 있으니, 그러므로 사람의 불행이 그에게 크도다. 7 그는 이루어질 일을 모르나니, 그 일이 일어날 때를 누가 그에게 말해 줄 수 있으랴? 8 영을 다스리는 능력이 있어 영으로 머무르게 하는 사람이 없고 죽음의 날에 능력을 가진 사람도 없으며 그 전쟁에는 면제되는 사람도 없고, 악에게 넘겨진 자들을 악이 구해 내지도 못하리라. 9 ○내가 이 모든 일을 보고서 해 아래서 행해진 모든 일들에 내 마음을 썼더니,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지배하므로 자기 자신에게 해가 되는 때가 있으며 10 또 내가 악인들이 장사되는 것을 보았는데, 그들이 왔다가 거룩한 곳으로부터 갔으나 그들은 자기들이 그처럼 행했던 그 성읍에서 잊혀졌으니, 이것도 헛되도다. 11 악한 일에 대한 징벌이 속히 집행되지 않으므로 사람들의 아들들의 마음이 그들 안에서 악을 행하기로 완전히 정해졌도다. 12 죄인이 일백 번 악을 행하고 그의 날들이 길지라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 곧 그분 앞에서 두려워하는 자들이 잘될 것임을 내가 분명히 아노라. 13 그러나 악인은 잘되지 못할 것이며 그의 날들도 길지 못하여 그림자와 같으리니, 이는 그가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음이라.

(데살로니가후서 1:112)

1 ○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들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2 하나님 우리 아버지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3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이 마땅하고 합당하니, 이는 너희 믿음이 크게 자라고 또 너희 모두가 각기 서로 사랑하는 것이 풍성함이라. 4 그리하여 너희가 견디는 모든 박해와 환난 가운데서 너희의 인내와 믿음에 대하여 하나님의 교회들 안에서 우리 스스로 너희를 자랑하느니라. 5 ○ 그것은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게 여겨지게 함이니, 이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고 있느니라. 6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의로운 일은 이것이니, 너희에게 고통을 주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7 고통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아 주시는 것이라. 주 예수께서 그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나타나실 때에 8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을 불길 가운데서 벌하시리니 9 이런 자들은 의 임재와 그의 능력의 영광으로부터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게 될 것이라. 10 그 날에 주께서 오시면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받으시고 또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기이히 여김을 받으시리라. (이는 우리의 증거가 너희 가운데서 믿어졌기 때문이라.) 11 ○ 이러므로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기도하는 것도 우리 하나님께서 너희를 그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여기시고, 그의 온갖 기뻐하시는 선하신 뜻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시사, 12 우리 하나님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따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계시록 22:1014)

10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책의 예언의 말씀들을 봉인하지 말라. 이는 그 때가 가까움이라. 11 불의한 자는 그대로 불의함에 있게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러움에 있게 하라. 반면에 의로운 자도 그대로 의로움에 있게 하고 거룩한 자도 그대로 거룩함에 있게 하라. 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행위에 따라 주리라. 13 나는 알파오메가요 시작과 끝이며, 처음과 마지막이라. 14 그의 계명들을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는 그들이 생명 나무에 대한 권리를 가지며 또 그 문들을 통하여 도성 안으로 들어가게 하려 함이니라.

『 나를 믿는 자는 성경이 말씀한 것과 같이, 그의 배에서 생수의 강들이 흐르리라.”고 하시니ㆍ He that believeth on me, as the scripture hath said, out of his belly shall flow rivers of living water. 』(요한복음 7:38)

『 하나님으로 말하면 그의 길은 완전하고
의 말씀은 단련되었으며
그는 자기를 의뢰하는 모든 자들에게 방패가 되시는도다. 』
『 
As for God, his way is perfect:
the word of the LORD is tried
:
he is a buckler to all those that trust in him.

(시 편 18:30Psalms 18:30)

Bible believers

 『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rightly dividing the word of truth)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 』(디모데후서 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