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4. 5. 22:09

“ 너와 네 온 집안은 방주로 들어오라 ” (설교모음)

(설교 모음) [20050619] ● 너와 네 온 집안은 방주로 들어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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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와 네 온 집안은 방주로 들어오라 ”

● Peaceful Hymns on Violinㆍ잔잔한 찬송가 바이올린 연주 모음┃(53:39)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라. (시편 12:6)┃

┃창세기 7:1

『 께서 노아에게 말씀하시기를 “너와 네 온 집안은 방주로 들어오라.
네가 이 세대에서 내 앞에 의로운 것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

  ‘창세기 71’을 주목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여러분과 저는 들을 수 있습니다. 지금 사람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께서 노아에게 말씀하시기를 “너와 네 온 집안은 방주로 들어오라. 네가 이 세대에서 내 앞에 의로운 것을 내가 보았음이니라』(창세기 7:1).
  회의론자가 이 글을 읽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몇몇 교인들도 그에 동의하여 “무디 씨 방주에 대해서 설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 이야기는 이미 모든 지성인들이 포기했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을 포기할 때는 성경 전체를 포기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계셨을 때 구약성경 중 어느 부분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은
“나는 홍수 이야기를 믿지 않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이 세상에 재림하실 것을 대홍수와 연관시키셨습니다.
37 그러나 노아의 날들과 같이 인자의 오는 것도 그러하리라. 38 홍수 전의 날들에 그들이 먹고 마시며, 장가가고 시집가고 하기를, 노아가 방주로 들어가던 날까지 하다가 39 홍수가 나서 그들을 모두 다 쓸어 버릴 때까지 그들이 알지 못하였던 것같이, 인자의 오는 것도 그러하리라』(마태복음 24:37∼39).
  저는 ‘요한복음
3장’을 믿는 것만큼 대홍수 이야기를 믿습니다. 저는 구약성경을 갈래갈래 찢어 하나님의 말씀과 사람의 말과 신화 등으로 분리해 대는 사람들을 불쌍하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우리가 성경의 어느 부분이라도 포기하는 바로 그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의 신성에 저항하는 것입니다.
  저는 어떤 사람이 성경의 내용 중에서 어떤 것들을 고르기 시작할 때 그가 성경 전체를 갈기갈기 찢어 놓는 데는 별로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목격하였습니다.
5분에 할 수 있는 것을 5년 걸려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엄숙한 메시지

  하나님께서 이 본문의 말씀을 하시기 120년 전에, 노아는 그때까지 들어본 가장 무서운 말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 시기 이전의 어떤 사람도 그런 말을 듣지 못하였으며, 그 이후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사악함 때문에 세상을 물로 멸망시키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대홍수 이전 세대의 사악함의 정도와 성경에 대해 아는 바가 없습니다. 성경은 그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한 가지 표현을 어느 정도의 간격을 가지고 다른 곳에서 반복하고 있습니다.

5하나님께서 사람의 사악함이 세상에 창대해짐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상상이 계속해서 악할 뿐임을 보시고 6 께서 땅 위에 사람을 지으셨음을 후회하셨으니, 그 일이 그의 마음을 비통케 하였더라. 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창조한 사람을 지면에서 멸망시키리니, 사람과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들 모두라. 이는 내가 그들을 지었음을 후회함이라.” 하시니라. ... 11 땅도 하나님 앞에 부패하였으니 땅이 폭력으로 가득하였더라. 12 하나님께서 땅을 보셨는데, 보라, 그것이 부패되었으니, 이는 모든 육체가 땅 위에서 그 행위를 부패시켰음이라. 』(창세기 6:5711, 12)

  그 때 당시 사람들은 500살 이상을 살았으므로, 죄가 상당히 무르익을 정도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메시지에 대한 반응

  120년 동안 하나님은 대홍수 이전의 사람들과 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경고 없이 때리시는 법이 없습니다. 그들은 분명 경고를 받았습니다. 노아가 방주에 못을 박을 때마다 그것이 그들에게 경고가 되었습니다. 망치 소리 하나 하나가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라는 말로 메아리쳤습니다. 만일 그들이 니느웨 사람들처럼 회개하고 눈물을 흘렸다면, 하나님이 울음 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을 살려 주셨을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비를 구하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멸망시키실 것이라는 생각을 조롱하였음에 틀림없습니다. 저는 그들 중에 하나님은 어디에도 없다고 말하는 무신론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습니다(시편
141531).
  얼마 전에 무신론자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저는
“당신은 세상이 이렇게 만들어진 것을 어떻게 설명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오! 힘과 물질이 함께 작용하여, 우연히 세상이 만들어졌지요”라고 대답하더군요.
  저는
“만일 힘과 물질에 의해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라면 당신 혀가 당신 머리 꼭대기에 붙어 있지 않은 것은 참 이상한 일이군요. 만일 제가 손목 시계를 꺼내들고, 힘과 물질이 함께 작용하여 우연히 이 시계가 나왔다고 말한다면 저를 일급 정신병자로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오래된 세상이 우연히 만들어졌다고 말하거든요! ‘세상이 우연히 스스로 만들어졌다!’라고 말입니다.”
  저는 스코틀랜드에서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그는 하나님이 없다는 입장을 취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창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바위들이 어떻게 생겨났을까요?”(스코틀랜드에는 바위가 매우 많음)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왜요? 학생들도 그것을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면 최초의 바위는 어떻게 만들어졌습니까?”
  “모래로요.”
  “최초의 모래는 어떻게 만들어졌습니까?”
  “바위로요.”
  여러분 보셨지요? 그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아주 멋지게 배열하였습니다. 모래가 바위로, 바위가 모래로,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저는 노아가 이런 부류의 사람들과 대결하였다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또‘불가지론자’(
不可知論agnosticism)라 불리우는 부류가 있었는데, 오늘날 그들의 수많은 손자 손녀들이 살아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까지는 믿는 또 한 부류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세상이 우연히 발생하였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믿는 하나님은 죄를 처벌하기에는 너무나 자비로운 분입니다. 그분은 동정심과 사랑으로 너무나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죄를 처벌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술주정뱅이, 매춘부, 도박꾼, 살인자, 도둑, 동성연애자 등이 결국 모두 성자(聖者)와 같은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어떤 주지사가 너무나 마음이 좋아서 사람을 고통받게 하는 일을 견디지 못하고, 감옥에 들어가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여, 감옥으로 달려가 모든 죄수들을 놓아 준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가 얼마나 오래 주지사직을 보유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이라면 해가 지기 전에 그를 관직에서 쫓아낼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비’ 운운하는 바로 그자들이 아마도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감옥에 넣지 않으려 하는 주지사를 제일 먼저 반대하고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부류는, 하나님은 좌우지간 세상을 완전히는 멸하지 못하실 것이라는 입장을 취했습니다. 그들은 초원과 저지대까지 올라오는 대홍수는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언덕과 산으로 올라가기만 하면 목숨을 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노아의 방주보다 백 배 낫다는 것입니다.
  아니면 비가 그렇게 많이 온다고 하더라도 방주보다는 훨씬 나은 뗏목을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못생긴 물건을 전혀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길이가 약
500피트(152m), 너비가 약 80피트(24m), 높이가 약 50피트(15m)에 달하였습니다. 그 속은 3층으로 이루어졌으며 창문은 오직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소수에 속하였기 때문에 노아가 틀림없이 잘못되었다는 입장을 취한 큰 부류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그것은 오늘날에도 큰 논쟁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노아는 정말 소수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계속 일을 해 나갔습니다.
  그 당시에 술집들이 있었을까요? 분명히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우리는
『땅도 하나님 앞에 부패하였으니 땅이 폭력으로 가득하였더라.』(창세기 611)는 말씀을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술을 마시는 곳에서는 항상 폭력이 있습니다. 또 우리는 노아가 포도나무를 심고 무절제의 죄에 빠져들었다는 내용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는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런 짓을 했다면,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더하였겠습니까?
  만일 술집이 있었다면, 분명히 그들은 노아와 그의 방주를 욕하는 상스러운 노래들을 만들어 불렀을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극장이 있었다면, 그들은 노아를 풍자하여 연기하였을 것이고 엄마들은 그 자녀들을 데리고 그것을 보러 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그 당시에 신문이 있었다면, 이따금씩
“노아와 그의 어리석음”에 대한 풍자가 실렸을 것입니다. 기자들이 그에게 와서 인터뷰를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연합신문이 있었다면, 며칠마다 특파원을 보내서 방주 건조 진척 상황을 수시로 보도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노아의 방주를 한번 둘러보는 것이 참 재미있을 것이라는 말이 돌면서, 방주가 소풍 장소로 유수한 후보에 올랐을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방주의 완성을 위해 일하고 있는 노아를 보게 되면, 사람들은 서로 툭툭 치면서
“저 사람이 노아야. 그의 눈이 좀 이상하게 보이지 않아?”하면서 수근거렸을 것입니다.
  어떤 스코틀랜드인처럼 그들은 노아를 얼간이로 생각하였습니다. 술주정뱅이가 재산을 탕진하고 패가 망신하고 있을 때 자신을 미쳤다고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죽음과 저주를 나누어 주는 사람들은 미친 자들이라고 불리우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방주 속에 들어가 영원히 구원받게 될 때는 미친 사람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리고 제가 생각하기에, 만일 그 시대에
“괴짜”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었다면, 그들은 노아를 “늙은 괴짜”라고 불렀을 것입니다.
  그리고 노아와 그의 방주에 대하여 여러 가지 농담이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노아가 계속 전도하며 땀을 흘리고 있는 동안에 장사꾼들은 계속 물건들을 사고 팔고 하였을 것입니다.
  그들 중에는 천문학자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별들을 응시하면서 서로
“걱정하지 말게. 하늘에는 임박한 폭풍의 징조가 전혀 없네. 우리는 매우 지혜로운 자들이 아닌가. 만일 폭풍이 온다면, 하늘에 나타난 징조를 읽을 수 있을 걸세”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지구 과학자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땅을 파면서 서로 “땅에도 대홍수의 징조는 없네”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방주 짓는 일을 돕는 목수들까지도 그를 조롱하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오늘날 교회 짓는 일을 돕고 후원금도 내지만 예배당에는 절대로 들어가지 않으려 하는 많은 사람들과 같았습니다.
  모든 일이 평상시처럼 계속되었습니다. 어린 양들이 봄마다 언덕에서 뛰놀았습니다. 사람들은 계속 부를 추구하였습니다. 만일 오늘날처럼 신용대출업 같은 것이 있었다면, 아마 그 상환 기간이 우리보다 훨씬 더 길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99년을 매우 오랜 기간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999년의 상환 기간도 인정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 계약서에 서명하려 올 때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이 늙은 노아는 세상이 120년 후에 끝난다고 하는거지? 그리고 그가 그 이야기를 시작한 지도 20년이 지났어. 하지만 계약서에는 서명해야겠네. 그 정도 위험부담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어”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노아가 귀머거리였음에 틀림없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사람들의 비난과 조소를 견딜 수가 없었을 것이라는 추측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가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하더라도, 방주를 만들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100년이 흘러 방주 건조 작업이 멈추었던 때의 상황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왜 저 사람이 작업을 중단했을까?”라고 말합니다. 노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임박한 대홍수에 대해, 즉 하나님이 방주 안에 들어가 있지 않은 모든 사람을 지면에서 쓸어 버리실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기 위한 설교 여행을 떠났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식구들 외에는 한 사람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늙은 사람들의 일부가 세상을 떠났지만, 그들은 “노아가 틀렸어”라고 말하면서 죽었습니다. 불쌍한 노아! 그는 그런 상황을 견디기 어려웠을 것임에 분명합니다.
  저 같으면
120년간의 사역” 중에 회심자가 한 사람도 없었다면 계속 그 일을 해나갈 마음이 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저 계속 땀 흘려 일하였습니다.
  자, 이제
120년의 기간이 다 찼습니다. 그 해 봄에 노아는 아무것도 심지 않았습니다. 대홍수가 곧 임할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전에는 매년 파종을 하더니, 올해는 세상이 멸망한다나 어쩐다나 하면서 아무 것도 심지 않았구먼” 하며 조롱을 하였습니다.

   방주 안으로

  그렇지만, 구름 한 점 없는 아름다운 어느 날 아침의 광경을 저는 상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날 노아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는 120년 전에 들었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어쩌면 지난 120년 동안에는 하나님이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그의 혼을 통하여 다시 울려퍼졌습니다. “노아야, 너와 네 온 집안은 방주로 들어오라.”
  “오라”(Come)라는 단어는 성경에 약 1900번 정도 나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가 그 처음입니다. 그것은 구원을 의미하였습니다. 여러분은 노아와 그의 모든 식구들이 방주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상상하실 수 있겠지요. 그들은 가구도 옮기고 있습니다.
  이웃들은
“노아씨, 왜 그리 서두르시오? 그 오래된 방주 안에 들어갈 시간은 많지 않소? 왜 그리 서두르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할 뿐이었습니다.
  친척들 몇 명은
“그러면 당신의 토지와 가옥은 어떻게 할 겁니까?”라고 물었을지도 모릅니다.
  노아는
“나는 그것을 원치 않아요. 대홍수가 올 거예요”라고 말합니다. 그는 그들에게 “은혜의 날”이 마감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세상의 부는 가치가 없는 것이며, “방주”만이 유일한 안전 장소라고 말해 줍니다.
  우리는 우리가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는 이 철도들이 곧 무너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것들은 일정한 시간 동안만 움직이는 것이지 영원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이 불타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재산, 명예, 사회적 지위가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첫번째 경고는 어느 날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주어졌습니다. 보십시오! 하늘이 새들로 빽빽합니다. 새들이 방주 속으로 두 마리씩 날아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 새들은 사막과 산과 세상의 모든 지역으로부터 날아오고 있습니다. 그들은 방주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것은 참으로 기이한 광경이었을 것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이게 어찌된 일이지?”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아래를 내려다 봅니다. 엄청난 놀람과 충격속에서 그들은 작은 곤충들이 둘씩 둘씩 기어가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그 곤충들은 세상의 모든 곳에서부터 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십시오! 가축들과 야수들도 두 마리씩 오고 있습니다.
  이웃 사람들이 소리를 지릅니다.
“이것이 무슨 징조일까?” 그들은 임박한 폭풍의 징조가 없다고 말한 정치가(政治家)들과 현자(賢者)들에게 달려가서 묻습니다. “왜 저 새들과 동물들과 기는 것들이 방주 속으로 들어가고 있습니까?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인도되는 것같이 ...”
  정치가들과 현자들이 말합니다.
“글쎄요. 우리는 그것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세상을 멸망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경기가 요즘처럼 좋은 때도 없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세상을 멸하려 한다면 이렇게 계속 번창하게 놔두겠습니까? 임박한 홍수의 징조는 없습니다.”
  
“이 기는 곤충들과 숲속의 야생 동물들이 방주 속으로 왜 들어가고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매우 이상한 현상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일이 곧 일어날 것이라는 징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별들은 반짝입니다. 그리고 태양은 여느 때처럼 저렇게 환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전처럼 그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린이들이 거리에서 놀고 있는 소리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신랑 신부가 즐거움에 못 이겨 지르는 소리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 여느 때처럼 아주 즐거워하고 있습니다.”(베드로후서 34)
  그 경고는 지나가 버리고 그들은 평상시의 생활로 되돌아갔습니다. 노아가 나와서 말합니다.
“문이 이제 닫힐 것입니다. 들어오십시오. 하나님이 세상을 멸하실 것입니다. 동물들을 보십시오. 그들이 어떻게 이리로 들어왔겠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명령을 듣고 온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계속 조롱만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120년이 다 찬 후에 하나님이 이 세상에 7일간의 유예 기간을 주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이 사실을 발견한 적이 있습니까? 만일 이 7일 동안 한 명이라도 부르짖었다면 노아는 그를 안으로 들여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마침내 최후의 날이 왔습니다. 최후의 시간, 최후의 몇 분, 아! 그리고 마침내 최후의 순간이 왔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려오셔서 방주의 문을 닫으셨습니다. 천사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고, 하나님이 친히 그 문을 닫으셨습니다. 일단 만물의 주인이 일어나 문을 닫으시면 세상의 운명은 완전히 결정된 것입니다(요한계시록
37).
  그 옛 세계의 비참한 운명도 마침내 확정되었습니다. 그 옛 세계의 영화 위로 마지막 일몰이 있었습니다. 저 멀리에서 폭풍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천둥이 몰아치는 소리가 들립니다. 번개가 번쩍이기 시작하자 옛 세계가 흔들립니다. 폭풍이 그들 위로 몰아칩니다. 그리고 노아의 오래된 방주는 그들에게 모든 세상보다도 더 가치 있는 것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코웃음 치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은 성경을 비웃을 수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 어머니의 하나님에 대해 코웃음 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목사들과 그리스도인들을 비웃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가 가까워 오고 있습니다. 오래된 성경 책 속의 한 가지 약속이 이런 세상 천 개보다 더 가치 있게 느껴질 바로 그 때가 말입니다.
  하늘의 창문들이 열리고 땅의 깊은 샘들이 터져 나옵니다. 물이 솟구쳐 올라오며 바다가 그 경계를 넘어 절벽을 타고 뛰어오릅니다. 강들이 불어나기 시작합니다. 저지대에 살던 사람들이 산과 고지대로 피난합니다. 그들은 언덕 위로 도망합니다. 거기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점점 더 커집니다.
“노아! 노아! 노아! 우리를 들여보내 주시오.”
  그들은 자기 집을 떠나 이제 방주에 와 있습니다. 그들은 방주를 마구 두드립니다. 그들이 외치는 소리를 들어 보십시오.
“노아! 우리를 들여보내 줘요. 노아! 제발 우리를 구해 줘요.”
  “저, 조카예요.”
  “저 조카딸이에요.”
  “나, 네 작은 아버지다.”
  아, 그 안에서도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나도 여러분을 들어오게 했으면 좋겠지만, 하나님이 문을 닫으셨기 때문에 나로서는 열 수가 없어요.”
  하나님이 문을 닫으셨습니다! 문이 닫히면 희망은 없습니다. 자비를 베풀어 달라는 그들의 부르짖음은 너무 늦었습니다. 그들이 이용할 수 있었던 은혜의 유예 기간은 끝나 버렸습니다.
  최후의 순간이 닥쳤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호소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들어오라고 초청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초대를 조롱하였습니다. 그들은 대홍수가 닥친다는 생각을 비웃고 멸시하였습니다. 그러니 이제 너무 늦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 중 한 사람이라도 살려서 그들이 어떻게 죽어갔는지를 우리에게 증언하도록 하시지 않았습니다. 욥이 식구들을 잃었을 때에는 한 사자(使者
messenger)가 그에게 왔었습니다. 심지어 노아 자신도 그 세상이 멸망하는 것을 목격하지 못했습니다. 만일 그가 목격할 수 있었다면, 남자들과 여자들과 어린이들이 방주에 달려드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파도가 점점 더 높게 이는 가운데 방주 밖에 있던 사람들은 불신 속에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무에 올라가면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폭풍이 곧 잠잠해질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비는 계속
40일 밤과 40일 낮 동안 내렸습니다. 그들은 파도가 몰아칠 때 멀리 쓸려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정치가들과 천문학자들과 위인들이 자비를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너무 늦었습니다. 그들은 자비의 하나님께 불순종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부르셨지만, 그들은 거부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호소하였지만, 그들은 비웃고 조롱하였습니다. 이제는 자비의 때가 지나고 심판의 때가 닥쳐온 것입니다(예레미야
6161815).

   심 판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실 날이 다시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 날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 날이 언제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 날은 반드시 오고야 말 것입니다. 이 세상이 두루마리처럼 둘둘 말리고 불에 타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미 선포되었습니다(베드로후서 37).
  그러면 여러분의 혼은 어떻게 될까요?
“너와 네 온 집안은 방주로 들어오라.”는 말씀은 참 기쁜 초청입니다. 대홍수를 알리는 빗방울이 처음으로 떨어지기 24시간 전에 만일 노아의 방주가 경매에 붙여졌다면, 불피울 장작 정도의 값 이상을 받아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24시간이 지난 후에는 노아의 방주에 이 세상 전부보다 더 높은 가격이 매겨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만일 그 때까지 살아남은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그는 방주에서 한 자리를 얻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돌아서서 웃으며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아!”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또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차라리 더 나아”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에게 이 세상 만 개보다 더 가치 있게 될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바로 그분이 지금 당신에게 소개되고 있다는 점을 명심하십시오.
  오늘날은 은혜받을 때입니다. 자비의 때입니다. 성경책(
The Word of God)을 주의 깊게 읽으시면 하나님이 심판 전에 항상 은혜를 베푸신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은혜는 심판의 선행자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의 때에 사람들을 사랑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들이 만일 그 120년 안에 회개했더라면 구원받았을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에게 호소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오셨을 때, 그 때가 그들에게 은혜의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조롱하고 비웃었습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며 너에게 보낸 사람들을 돌로 치는 자야, 마치 암탉이 자기 병아리들을 날개 아래 함께 모으듯이 내가 얼마나 자주 네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마태복음 233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
40년 만에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만은 살려 달라고 애걸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도시에서 백 십만 명이 죽어 갔습니다.
  
1857년 미국 동부에서 영적 부흥이 일어났고, 그것이 서부의 도시들로, 마침내 태평양 연안에까지 퍼져 갔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부르고 계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50만 명이 교회에 등록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전쟁이 발발하였습니다. 우리는 1857년에 성령으로 침례를 받았고, 1861년에 피로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것은 심판에 앞선 자비의 부르심이었습니다.

   당신의 자녀들은 안전합니까?

  제가 선택한 이 본문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과 부모들에게 특별히 적용될 수 있습니다. 이 성경 본문의 명령이 노아에게 주어졌을 때, 그것은 노아 자신만의 안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가족 전체를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제가 모든 부모들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은 “당신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방주 안에 있습니까?”입니다.
  여러분이 웃어넘기실지 모르지만 이것은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당신의 모든 자녀가 방주 안에 있습니까? 당신의 모든 손자 손녀가 방주 안에 있습니까? 당신의 자녀들이 다 방주 속으로 들어가기까지는 밤이고 낮이고 쉬지 말기 바랍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제가 한 가지 유혹을 받았던 곳에서 제 자녀들은
50가지의 유혹을 받습니다. 대도시에는 거리의 모퉁이마다 우리의 자녀들을 낚으려는 함정이 놓여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식과 채권을 축적하며 시간을 보내는 일이 우리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내 자식들을 방주 안으로 들여놓기 위하여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는가?” 바로 이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이제, 또 한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이 노아를 방주 안으로 부르셨을 때, 만일 그의 자녀들이 함께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면 노아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만일 그가 너무나 거짓된 삶을 살았기 때문에 자녀들이 그의 말을 신임하지 않았다면, 그는 어떤 느낌을 가졌겠습니까?
  그는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저기 산 위에 내 가련한 아들이 있어. 내가 그를 대신해서 죽었으면 좋으련만! 그를 죽게 하느니 차라리 내가 죽는 것이 나을텐데!” 다윗은 자신의 아들에 대하여 이렇게 울부짖었습니다.『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하나님께서 너 대신 나를 죽게 하셨더면, 오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사무엘하 18:33). 노아는 자녀들을 사랑하였으며, 자녀들은 노아를 신뢰하였습니다.
  몇 년 전에 어떤 사람이 제게 우편물을 보내왔는데, 그 속에 특별히 표시된 기사 하나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 제목은
“당신의 자녀들은 들어와 있는가?”였습니다.
  한 늙은 부인이 임종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거의
100살이 다 되었으며, 평생을 동고동락한 남편이 옆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녀는 약하게 숨을 쉬다가, 갑자기 깨어나 눈을 뜨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 어두워요.”
  “그래요 자넷. 어둡소.”
  “지금 밤인가요?”
  “오, 그렇소. 지금은 한밤중이오.”
  “애들은 다 들어와 있나요?”
  그 늙은 어머니는 인생을 다시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녀의 막내 아들은 죽어서 무덤에 묻힌 지 20년이 되었는데, 그녀는 그 옛날로 되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애들은 다 들어와 있나요?”라고 물으면서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잠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들이 다 들어와 있습니까? 지금 이 질문은 당신 자신에게 던지십시오. 존이 들어와 있나요? 제임스가 들어와 있나요? 아니면 그 아이가 지금 사업과 쾌락에 빠져 있나요? 그는 지금 이중적이고 부정직한 삶을 살고 있나요? 대답하십시오. 지금 당신의 아들이 어디에 있습니까? 당신의 아들과 딸이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당신의 자녀가 지금 안전합니까? 당신은 그렇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저는 시카고에서 여러 해 동안 약 천 명이 넘는 주일학교의 교장으로 있었습니다. 불신 가정의 아이들, 저를 반대하는 부모들 둔 아이들, 주일에 소풍을 떠나는 가정의 아이들, 제가 애써 하려는 일을 적극적으로 막으려 하는 집안의 아이들이 그 주일학교의 대부분을 차지하였습니다. 그 후 저는 만일 다시 청중 앞에서 서게 된다면 오직 부모들을 향해서만 말하리라고 생각하곤 하였습니다. 그것이 나의 주된 업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옛 속담에,
“어린 양을 잡으라. 그러면 그 어미도 잡게 될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이 속담이 주는 교훈을 여러 해 전에 포기하였습니다. 저에게 부모를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누군가를 시켜 그 어린 양을 돌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어린 양을 데려다가 회심시켜 보십시오. 만일 그가 불신자 부모를 갖고 있다면, 회심시키기가 그 만큼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경건한 가정입니다. 가정이 교회보다 훨씬 먼저 제정되었습니다.
  저는 자녀들이 성인이 되고 난 후에 회심해야 한다는 생각에 반대합니다. 어느 날 저는 한 부인이 세 딸을 옆에 데리고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다가가서
“당신은 그리스도인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예, 그런데요.” 그 다음에 저는 큰 딸에게 “너는 그리스도인이니?”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몸을 떨기 시작하더니 눈물을 주루룩 흘렸습니다. 그러고는 “저도 그러고 싶었어요”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저에게 매우 화가 난 표정을 하고 말했습니다.
“그 문제에 대해서 제 아이들에게 묻는 것을 저는 원하지 않아요. 그들은 이해를 못해요.” 그러고는 매우 화가 나서 아이들을 데리고 가 버렸습니다. 한 아이는 열 네 살, 하나는 열 두 살, 또 하나는 열 살이었지만, 그들 모두는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나이가 들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세상에서 표류하도록, 세상의 즐거움에 뛰어들도록 내버려 둡시다. 그러고 나서 그들에게 전도하기가 얼마나 어렵게 되는지를 보도록 합시다.
  오늘날 아들이 어머니 말을 안 듣고 어머니와 함께 기도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슬퍼하는 어머니들이 많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지만, 아들은 기도는 커녕 말도 하려 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어리고 부드러웠던 어린 시절에 그를 주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해야 했었습니다.
  그들을 데리고 오십시오.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들의 것이니라』(마가복음 10:14). 이 글을 읽으시는 분 중에 기도하지 않는 아버지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화살을 당신의 혼에 쏘시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도와주시면 자녀들을 데리고 들어오겠다는 결심을 하십시오. 하나님의 명령은 아버지에게 먼저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아버지가 의무에 불충실하다면, 어머니가 그 자녀들을 파멸에서 구원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이 여러분의 품안에 있을 때, 바로 지금이 그 일을 해야 할 때입니다. 부모로서의 영향력을 그들에게 행사하십시오.
  저는 부모님들에게 말할 때마다 항상 두 명의 아버지가 생각납니다. 한 사람은 미시시피 강 유역에, 다른 한 사람은 뉴욕에 살았습니다. 전자는 자신의 온 시간을 다 바쳐 부를 축적하였습니다. 그에게는 매우 사랑하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아이가 사고를 당해 집으로 실려왔습니다. 아버지는 그 아이가 조금밖에 더 살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사실을 아들에게 가능한 한 조심스럽게 말해 주었습니다.
  
“아버지, 제가 얼마 못 살거라구요? 오, 아버지, 그러면 제 혼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라고 소년이 말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이를 위하여 한번도 기도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기도를 못하겠다고 말하였습니다. 그 후 바로 그 아들은 죽었습니다. 그는 그 이후로, “아들을 위해 잠시 동안만이라도 기도해 줄 수 있도록 다시 불러올 수만 있다면 가진 재산을 모두 내어 놓을텐데”라고 말하였습니다.
  또 한 아버지에게는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있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귀가해 보니 아내가 울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 아이가 곧 죽으리라는 생각을 물리칠 수가 없어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신이 아이에게 그 사실을 말해 주는 것이 좋겠소”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들에게 도저히 그 사실을 말해 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병실로 갔습니다. 그는 아들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얘야, 네가 오래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니?”라고 물었습니다. 그 어린 소년은 위를 바라보며 “아니요. 지금 느껴지는 이 죽음이 저를 덮을 것이라는 말인가요? 저는 오늘 죽게 되나요?”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렇단다. 내 아들아, 너는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할거야.”
  그러자 그 소년이 미소 지으면서 말했습니다.
“그러면, 아버지, 저는 오늘 밤에 예수님과 함께 있게 되겠네요?”
  
“그렇다마다. 너는 오늘 밤을 주님과 함께 보내게 될거다.”
  그러고 나서 아버지는 마음이 무너져 내려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소년은 아버지의 눈물을 보고 말했습니다.
  
“저를 위해서 울지 마세요. 제가 예수님께로 가면 아버지가 저를 위해서 어렸을 때부터 기도해 왔다고 말씀 드릴게요.”
  저는 세 자녀를 두고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그들을 내게서 데려 가신다면, 저는 온 세상의 부를 갖는 것보다 그들이 그런 메시지를 주님께 가져가는 것을 택하겠습니다.
오! 부모되신 여러분들을 감동시켜 여러분의 자녀들을 방주 안으로 들어오게 할 수 있는 어떤 말을 제가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D.L. 무디 /『 승리하는 삶 - (4) 』... ┃

      THE OVERCOMING LIFE
      By
      D.L. Moody

      This book was first published in the U.S.A.
      by Moody Press with the title of THE OVERCOMING LIFE.
      Copyright ⓒ 1896 and 1994 by the Moody Bible
      1995Korean by Word of Life Press,
      Seoul, Korea. All rights reserved.

      Translated and published by permission.
      Printed in Korea.

(4) 너와 네 온 집안은 방주로 들어오라 】

『 나를 믿는 자는 성경이 말씀한 것과 같이, 그의 배에서 생수의 강들이 흐르리라.”고 하시니ㆍ He that believeth on me, as the scripture hath said, out of his belly shall flow rivers of living water. 』(요한복음 7:38)

『 하나님으로 말하면 그의 길은 완전하고
의 말씀은 단련되었으며
그는 자기를 의뢰하는 모든 자들에게 방패가 되시는도다. 』
『 
As for God, his way is perfect:
the word of the LORD is tried
:
he is a buckler to all those that trust in him.

(시 편 18:30Psalms 18:30

Bible believers

 『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Divide)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 』(디모데후서 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