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2. 26. 00:23

“ 그것의 해석은 이러하니... ” (성경 주석)


    성경 주석 ● 그것의 해석은 이러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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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니엘 5ː25∼31 】

    25 ○ 기록된 글은 이것이니, 메네 메네 테켈 우파르신이라.
    26 그것의 해석은 이러하니, 메네하나님께서 왕의 왕국을 헤아려서 그것을 끝내셨다 함이요,
    27 테켈은 왕을 저울에 달았더니 부족함이 나타났다 함이요,
    28 페레스는 왕의 왕국이 나뉘어서 메데인들과 페르시아인들에게 주어진다 함이니이다.” 하더라.
    29 그러자 벨사살이 명하였으니, 그들이 다니엘에게 주홍색으로 옷입히고 목에 금 목걸이를 걸어 주며 그에 관하여 선포하기를 그가 왕국의 셋째 치리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였더라.
    30 그날 밤 칼데아인들의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고
    31 메디아인 다리오가 그 왕국을 취하니, 약 육십이 세였더라.

    ────── [THE BOOK OF DANIEL]───────────

    (25절).『기록된 글은 이것이니, 메네 메네 테켈 우파르신이라』

    @ 이것은 아람어 식으로 읽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글자들을 해석해 줄 때는『우파르신』『페레스』로 바꾸어 인용합니다(28절).『우파르신』이라는 단어는 “나뉘어지다.”“페르시아”의 두 가지 뜻을 함축하고 있었는데, 다니엘은 이 단어의 한 가운데 부분『파르스』(PHARS)를 “페르시아”로 인용했습니다. 원래 쓰여져 있는 전체 글자는 히브리어 식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을 때,『메네 메네 테켈 우파르신』이었고 그 뜻은 아람어로 “메나 메나 셰켈 반(半) 메나,” “헤아려지다, (저울에) 달리다, 반으로 나뉘어지다”였습니다. 실은 마지막의『우파르신』에서 “우”는 시리아어에서 동사를 분사(participle)화시켜 명사이면서 형용사로 대체해 쓸 수 있는 일종의 명사형 형용사(adjective noun)로 바꾸는 접두사로서, 무엇인가를 “하고 있는 것”(또는 사람)이라는 뜻을 갖게 만듭니다. 그래서 이 단어는 “둘로 나뉜다.”는 뜻과 “페르시아”라는 두 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습니다. 아람어란 문자는 히브리 문자를 사용하되, 언어 자체는 히브리어와 다릅니다.


    (26절).『그것의 해석은 이러하니, 메네는 하나님께서 왕의 왕국을 헤아려서 그것을 끝내셨다 함이요』

    @『메네』를 영어로는 “MENE”로 음역하고 있으나 히브리어 문자를 사용하는 아람어로는 “MNA”라고 표기돼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은하나님께서 왕의 왕국을 헤아려서 그것을 끝내셨다』는 뜻이라고 다니엘이 해석합니다.


    (27절).『테켈은 왕을 저울에 달았더니 부족함이 나타났다 함이요,』

    @『테켈』을 영어로는 “TEKEL”이라 음역하고 있으나 히브리어 철자로 쓰면 “TKL”이었을것입니다. 이것은『왕을 저울에 달았더니 부족함이 나타났다 함』이라고 다니엘이 해석합니다.

    요즘에도 골동품 가게에 가면 볼 수 있는 옛날 저울은 오늘날에도 귀금속이나 귀한 약재를 다는 데 흔히 사용하는 천평(天枰
    balance)과 같아서 한쪽에 일정한 무게의 추를 놓고 반대편에 측량하고자 하는 물건을 놓아 양쪽이 수평을 이루면 그 물건의 무게가 추의 무게와 같은 것으로 판정했습니다. 따라서『저울에 달았더니 부족함이 나타났다함은 물건의 무게가 추보다 가벼워 추를 올려놓은 쪽이 아래로 기울었다는 뜻인즉, 그 물건의 무게가 기대치에 미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물건의 무게가 1㎏이기를 기대한다면 반대편에 1㎏ 짜리 추를 올려놓고 물건과 추가 수평을 이루어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하고 추가 아래로 기울었을 때, 그 물건은 기대치 1㎏에 못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저울추는 하나의 절대적인 기준이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저울을 종교적인 독단에 이용하여 천평의 추에 해당하는 한쪽에 여러분의
    “선행”을 올려놓고 반대편에 “악행”을 올려놓은 다음 “악행” 쪽으로 저울이 기울면 이것은 “선행”보다는 “악행”을 많이 저질렀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여러분은 영락없이 “지옥행”이고, “선행” 쪽으로 기운다면 “천당행”이며 수평을 이룬다면 “연옥”에 가서 대기해야 한다고 판정하기도 합니다. 어떤 자들이 이런 따위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지는 제가 말하지 않아도 여러분이 더 잘 알 것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구원받지 못했기 때문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이해해 보려고 발버둥칠 때 연출하는 우스꽝스러운 짓거리란 바로 이런 웃지 못할 이야기나 만들어내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저울추는 “선행”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시고, 반대편에 올려놓고 달 것은 “악행”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우리의기준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께서 여러분 안에 들어가 계셔야만, 여러분은 저울추와 수평을 이루게 됩니다. 여러분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들어가 계시지 않으면, 여러분은 결코 저울추와 수평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저울추로 삼지 않은 저울은 하나님의 저울이 아닙니다. 성경을 저울추로 사용하지 않는 저울 역시 하나님의 저울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어떤 저울을 사용할 때,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것을 저울추로 사용할 경우,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아닌 다른 것을 저울추로 사용할 경우,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온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그 결과를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가령, 여러분이 “자신의 견해”를 저울에 올려놓고 무게를 달 때, 기준이 되는 저울추 역시 여러분 “자신의 견해”라면, 그 저울은 수평을 이루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자신의 견해”를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틀린 기준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다른사람의 견해를 저울추로 사용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대 조류”“시대 정신,” “사회 정의,” “대중 여론,” “상대 가치,” “과학,” “철학,”“다수 의견,” “소수 권익,” “가치 규범,” 그 무엇을 저울추로 사용하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저울추로 달아서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하나님과는 무관합니다. 이런 것들은 정치인들이 자기 자신의 무게를 과시하고자 할 때 즐겨 사용하는 저울추들입니다.
    현대인들은 자신들이 사용하고 있는 저울추가 절대로 옳다고 믿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말씀을 저울추로 사용하기를 거부합니다. 그들이 그런 환상에 빠져있는 한 하나님께서는 결코 올바른 저울추를 그들의 저울 위에 올려 놓아주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언제고 한번은 하나님의 저울로 반드시 달리게 될 터인즉, 그 저울에는 하나님의 저울추가 사용될 것이요,『저울에 달았더니 부족함이 나타났다』는판정을 받고 영원 무궁토록 지옥에 던져지게 될 것입니다.


    (28절).
    『페레스는 왕의 왕국이 나뉘어서 메데인들과 페르시아인들에게 주어진다 함이니이다.” 하더라』

    @『페레스』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우파르신』의 가운데 부분을 떼어서 읽은 것으로서 “스펠링”으로 쓰면 “PRS”입니다. 이것은『왕국이 나뉘어서 메데인들과 페르시아인들에게 주어진다 함』이라고 다니엘은 해석합니다.『우파르신』이 함축하고 있는 “나뉘어지다.”“페르시아”의 두 가지 뜻을 다 함께 해석했던 것이고, 바빌론에 장차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명료하게 보여 주었던 것입니다.
    어떤 단어를 간략하게 축약해서 쓸 때 모음을 삭제하고 주요 자음만 추려서 쓰는 것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령, “
    manufacturing”(“제조”의 뜻)을 “mnfg”이라고 간략하게 쓴다든지, “please”를 “pls”라고만 쓰는 것 등이 이런 예입니다.

    참고로 <탈무드>에 보면,
    『메네 메네 테켈 페레스』를 아람어 식 표기법대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벽에 쓸 때, 아래와 같이 되는 것으로 예시하고 있습니다.

    P
    R
    S

    T
    K
    L

    M
    N
    A

    M
    N
    A

    (↓)

    위와 같은 글자들을 아람어 식으로 읽거나, 히브리어 내지 칼데아어로 읽어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게 되는데, 아마도 이합체(離合體) 시(詩) 형식으로 쓰여져 각 행의 처음과 끝 글자를 맞추면 어구가 되는 형식으로 된 것이 아닌가 싶다고 여기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이해할 도리가 없고, 그래서 바빌론의 “현자들”로서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되, 각 문자들을 위에서 아래로
    “MNA”(메네), “MNA”(메네), “TKL”(테켈), “PRS”(페레스)로 읽어나갔고, “헤아려지다, (저울에) 달리다, 나뉘어지다.”로 명석하게 해석할 수가 있었으며, 이것으로 바빌론의 몰락을 정확하게 예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29절).
    『그러자 벨사살이 명하였으니, 그들이 다니엘에게 주홍색으로 옷입히고 목에 금 목걸이를 걸어 주며 그에 관하여 선포하기를 그가 왕국의 셋째 치리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였더라

    @ 다니엘이 경각에 달한 바빌론의 운명을 예언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벨사살이 그에게 약속한 대로 주홍색 옷을 입히고 금목걸이를 목에 걸어주며 왕국의 세 번째 치리자로 세울 것을 선포하는 등 자못 여유 만만한 태도를 보인 것은 그가 예언의 정확성과 임박성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얼마 안 있어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순간 벨사살이 다니엘에게 내린 이 같은 상과 영예는 짝없이 헛된 것이 되고 맙니다.


    (30, 31절).
    30 그날 밤 칼데아인들의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고 31 메디아인 다리오가 그 왕국을 취하니, 약 육십이 세였더라』

    @ 벨사살은 당장 그날 밤도 넘기지 못한 채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난공불락이라고 여겨졌던 바빌론의 성벽이 마침내 무너지고 페르시아의 코레스왕이 침공해 들어왔던 것입니다.
    31절에서
    『메디아인 다리오가 그 왕국을 취하니』라고 서술하고 있는 것은 다리오가 바빌론을 함락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원래 바빌론과 메데-페르시아 간의 전쟁은 느부캇넷살왕이 죽은지 2년 후에 벌어져 서로 밀고 밀리면서 20년이 넘도록 계속되었는데, 메데의 다리오왕이 자신을 돕도록 페르시아 전선에 투입했던 조카 코레스가 때마침 바빌론 성읍을 포위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빌론 성읍을 둘러싸고 있는 성벽은 워낙 높고 견고하였으며, 성문들은 원체 튼튼하여 문자 그대로 난공불락이었는 데다가, 성내에는 비옥한 경작지가 광활하게 펼쳐져 있어 수년 동안 얼마든지 식량을 자급자족하며 견딜 수 있었는지라, 코레스의 바빌론 포위는 별 무효과였습니다. 역사 기록에 의하면, 바빌론 성벽은 12∼15 m 높이에 그 너비는 전차 두 대가 서로 반대편으로 한꺼번에 왕복할 수 있을 만큼 넓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두껍고 육중한 성문들은 모두 튼튼한 놋쇠로 만들어져 있어 빗장만 걸어 잠그면 개미 한 마리 성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한 성벽을 직접 돌파하기란 20세기 첨단 탱크로 밀어붙여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했기 때문에 벨사살왕은 마음놓고 대규모 궁전 잔치를 열고 거드름을 피는 가운데 성밖에 포진하고 있던 메데-페르시아 군대를 조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주 잘못된 판단이었습니다. 설사 바빌론 성읍이 적군에 대해서는 철옹성이었을는지는 몰라도 하나님의 계획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라는 사실을 벨사살은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실인즉, 코레스왕에 의한 바빌론 함락은 벌써 175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돼 있었던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이사야 44:28).
    그리하여 바빌론 성읍을 포위하고 있던 코레스는 아무리 성벽을 넘으려해도 넘을 수 없었고 아무리 성문을 돌파하려 해도 성공할 수 없었으나, 하나님의 예언이 성취되는 시점에 이르자
    『성문들』은 저절로 열려져『닫히지 못하게』되었고,『험한 곳들』『평탄하게』되었으며, 누군가가『놋문을 산산이 부수며 철빗장을 둘로 가르』는 것이었습니다(이사야 45:1∼4).
    역사가들의 말에 의하면 포위하는 것만으로는 바빌론이 결코 항복해 오지 않으리라고 판단한 코레스는 한 가지 전략을 짰는데, 그것은 바빌론 성읍을 가로질러 흐르는 유프라테스 강물을 상류에서부터 물길을 막음으로써 바닥이 드러난 하류의 강줄기를 타고 성안으로 군대를 입성시키는 계획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코레스는 유프라테스 강 상류 곁에 거대한 인공 호수를 댐처럼 만들고, 강물이 그리로 흘러 들어가가도록 함으로써 하류의 강물이 마르도록 했다고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강 상류에서부터 다른 곳으로 강물이 흘러가도록 거대한 운하를 건설함으로 아예 물줄기의 방향을 통째로 바꾸어 놓았다고도 전합니다. 이런 전략에 따라 모든 준비를 갖춰놓고 기회를 엿보던 코레스왕은 벨사살이 이것도 모르고 대규모 궁중 연회를 열 계획이라는 것을 사전에 알아챘고, 잔치 분위기에 들떠서 경비를 맡고 있는 바빌론 군대 또한 해이해질 것을 내다보는 가운데, 군대를 세 부분으로 나누어 한 부대는 유프라테스 강 상류에서 물길을 다른 데로 돌리는 데에 투입하고, 한 부대는 바빌론 성읍 북쪽 강 어구에서부터 공격토록 배치시켜 놓았으며, 나머지 한 부대는 반대편 강줄기가 성읍을 빠져나가는 곳에 포진토록 해놓았습니다. 그리고 강물이 낮아지면 남북 양쪽으로부터 강바닥을 타고 두 부대가 성읍 안으로 침공해 들어가도록 작전을 짜놓았던 것입니다. 이 작전은 완벽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었더라면 이 작전이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었습니다. 대 부대가 강줄기만을 타고 입성해 들어갔더라면 오히려 바빌론 군대의 반격에 꼼짝없이 독 안에 든 쥐 꼴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전쟁은 하나님께서 관장하십니다. 바빌론 성문들을 지키던 경비병 하나가 그날 따라 성문 빗장을 걸어 잠그는 것을 깜빡 잊는 바람에 성문이 맥없이 열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코레스의 군대는 성안으로 순식간에 쇄도해 들어가 궁전을 유린하고, 궁전 잔치가 채 끝나기도 전에 벨사살왕을 살해해 버릴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벨사살왕은 자신의 목숨과 바빌론의 운명을 술잔치와 맞바꾸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미 175년 전에 예언돼 있었던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코레스가 이 예언을 미리 알았을 리는 만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네가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내가 네게 성을 붙였느니라.』(이사야 45:4)고 미리 말씀해 놓으셨습니다. 코레스는 하나님의『모든 기쁨을 이행』하도록 예정돼 있던 인물이었고, 아닌게아니라 바빌론을 함락시키고 하나님께서 예정해 놓으셨던 이스라엘의 ‘바빌론 포로 70년’이라는 기간이 끝남과 동시에 이스라엘의 본토 귀환 칙령을 내리기에 이릅니다(B.C. 536).

    이로써 바빌론은 함락되고 메데-페르시아 시대가 열리게 되었거니와, 이때 바빌론이 파괴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코레스의 바빌론 함락은 어찌나 신속하고도 조용히 이루어졌던지 성읍내의 바빌론 주민들은 벨사살이 살해된 지 3일 뒤에서야 비로소 왕이 죽고 바빌론이 메데-페르시아의 손에 떨어졌음을 알게 되었을 정도라고 역사는 전합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바빌론 성읍은 그 뒤 그리스에 의해서 시작되어 여러 차례에 걸쳐 외적에게 파괴되었고, 오늘날 바빌론이 있었던 자리는 아무도 살지 않는 황량한 폐허가 되고 말았습니다. 바빌론이 역사적으로 위치했던 자리는 페르시아만에서 북쪽으로 약 72 km 떨어진 곳으로,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이 합류하는 지점 바로 위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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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터 S. 럭크만 /『 다니엘 주석서』ː 제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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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BIBLE BELIEVER'S COMMENTARY
    THE BOOK OF DANIEL
    by
    Peter S. Ruckman, Ph.D.

    2001 / Korean by Word Of God Preservation Society
    Seoul, Korea.

    Bible Believ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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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교 듣기 』

    날짜ː【 2001. 3. 25. (오전) 】
    ▶ 제목ː『 내일이면 늦으리』(이 송오 목사)
    성경구절ː(마태복음 1624∼27)
    시간ː(3833)(4,551 Kb)
    주소ːBBC-Preacher/2001325am-blog.rm

    날짜ː【 2001. 3. 25. (오후) 】
    ▶ 제목ː『 주는 나를 곤경에서 구해주실 분』(이 송오 목사)
    성경구절ː(시편 4편)
    시간ː(4022)(4,766 Kb)
    주소ːBBC-Preacher/2001325pm-blog.rm

    Bible Believ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