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2. 7. 21:54

“ 마귀의 종교들과 하나 된 타락한 기독언론들 ” (BB 논단)

마귀의 종교들과 하나 된 타락한 기독언론들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라. (시편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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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1212일, 한국종교언론인협회는 경주 코모도호텔에서 12일의 일정으로 제12회 종교언론인 심포지엄을 열고, 종교 간 화합을 위한 종교언론의 역할을 강조하는 선언문을 채택했다. 심포지엄 참가자 일동이 심포지엄 이튿날인 13“종교화합을 위한 종교언론인의 다짐”이라는 제하로 발표한 공동선언문은 “종교언론인들이 세상의 사건을 종교의 시각으로 분석하는 전문언론인으로서, 언행에 있어 종교 간 화합을 이끌어내는 책임감 있는 자세를 갖고, 보도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이웃 종교에 대한 배려와 선도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기독교 언론 중에서는 기독교신문, 기독교연합신문, 크리스챤연합신문, 크리스천투데이, 한국교회신문 등이 심포지엄에 참여했으며, ‘종교화합을 위한 종교언론의 역할’을 주제로 진행된 세미나에는 불교, 원불교, 카톨릭 언론사 발제자들과 더불어 크리스챤연합신문사 지미숙 편집국장도 발제에 참여했다.
2 께서 하늘에서 사람의 자손들을 내려다보시어 깨닫는 자와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지 보려 하셨으나, 3 그들은 모두 곁길로 갔으며 그들이 모두 함께 더럽게 되어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없도다, 한 사람도 없도다』(시편 14:2, 3). 주 하나님께서 사람의 자손들에 대해 가지는 관심 가운데 하나는 그들 가운데 하나님을 찾고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그런 사람을 찾기란 불가능하다. 모두 곁길로 가고 함께 더럽게 되어 선을 행하는 자가 없는 것이 진리에 관심이 없는 세상과 세상 종교들의 본질인 것이다.『내가 그들 가운데서 한 사람을 찾으려 했으니 그 사람은 장벽을 쌓아 그 땅을 위하여 내 앞에서 갈라진 틈에 서서 나로 그 성읍을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이라. 그러나 나는 아무도 찾지 못하였노라』(에스겔 22:30).
매스미디어가 발달한 현 시대는 사회 각 분야에서 언론의 역할과 비중이 지대하다. ‘
다니엘 124’에서 마지막 때에『많은 사람이 이리저리 달릴 것이요 지식이 증가하리라.』고 예언된 것처럼, 마지막 때에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언론매체는 우리가 사는 현 시대에 몹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불과 수개월 전, 한 공중파 방송의 잘못된 정보로 인해 수도 서울 한복판이 무법천지로 돌변하고 온 나라가 요동치고 뒤집혔던 사건은, 매스컴의 왜곡된 영향력이 개인과 국가를 파멸로 이끌 수 있음을 경고해 주고 있다. 성경을 왜곡하는 기독언론들이 교회를 파멸로 이끌게 될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오늘날
“종교화합을 위한 종교언론의 다짐”이라는 공동선언문을 발표한 “기독”언론사들은 현재 한국 교계에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주요 매체들로서 활동하고 있다. 그들이 취재하는 교회와 목사와 교계의 각종 행사들과 사건들은 그들 언론사들을 통해 대부분 한국 교회의 얼굴로 제시된다. 그러나 그간 그 언론사들이 진리에 관심이 있는지, 참된 복음과 진리를 전달하고자 노력하는지 살펴보았으나, 위에 인용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런 곳을 찾기란 불가능했다. 그들은 종교화합을 위해서 세상 종교들의 도가니에 함께 녹아 들어간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께로 이르는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요한복음 146), ‘타종교들의 구원방법은 틀렸다!’ ‘그것은 죄인들을 회개치 못하게 하여 지옥으로 끌어내리는 마귀의 덫이다!’ ‘생명을 내어줄지언정 그런 것들과는 조금도 타협해서는 안 된다!’고 결연하고 담대하게 외칠 수 없는 가짜 기독언론이었으며, 교회의 타락과 배교를 가증시키는 크리스챤 언론이었던 것이다.
금번 종교언론인 심포지엄에서 발제를 맡았던 지미숙 크리스챤연합신문 편집국장은
〈기독교연합신문〉에 기고한 “종교언론의 화합이 ‘진정한 시대 갈등 해소’”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그녀의 글 밑에는 원불교신문 편집국장의 글이 게재되었다. 기독교 신문에 원불교도가 목소리를 높이다니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는 과거와는 달리 개인의 기본적 권리가 인정되고 자유가 보장되므로 과거처럼 어떤 특정 종교의 진리만을 전적으로 내세울 수는 없는 상황이다. 지편집국장은 성경보다 세상 풍조에 더 권위를 두고 있다. 상황윤리의 덫에 걸린 그녀는 현대 사회의 우상 숭배자들 앞에서 창조주 하나님의 신성한 말씀이 꼬리를 내리고 굽실거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가 말하노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부수어 조각내는 큰 망치 같지 아니하냐?』(예레미야 2329)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떨며 두려워하라. 진리를 위해 담대할 수 없는 비겁한 자세로 어떻게 크리스챤 언론인이라 불릴 수 있는가?『악인 앞에 굴복하는 의로운 사람은 불결한 샘과 오염된 샘물 같으니라』(잠언 25:26).
여기서 종교언론의 선교적 기능은 언론에 전도 문구를 단순히 전하는 것이거나 단순한 복음을 전파하는 도구의 수준을 넘어서 정지, 경제, 사회 등 삶의 구체적 현실 상황에서 출발하여 그 목적을 개인 영혼 구원의 영역을 넘어서 전 사회적 구원의 문제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언론은 사회의 다른 기구들에 대해 일종의 파수꾼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렇게 사회에 대한 올바른 정론을 펼칠 때 일반인들도 종교언론의 논지에 귀를 기울이고 종교의 지도력을 요청하게 된다는 것이며 이것이 진정한 선교기능의 의미라 할 수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등 세상 각 분야의 문제들에 대한 정론으로 구원받지 못한 일반인들로 하여금 종교의 지도력을 요청하게 하는 것이 기독언론의 진정한 “선교”기능이라는 주장은 “크리스챤” 선교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크리스챤”연합신문 편집국장의 사견이 아닐 수 없다. 교회의 이름으로 타락한 세상 일에 기웃거리는 것이 선교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세상 정치, 경제,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서 흘려진 피인 것인가?27 또 잔을 가지고 감사를 드린 후에 그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이것을 모두 마시라. 27 이는 이것이 죄들을 사하심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을 위해 흘리는 나의 새 언약의 피이기 때문이라』(마태복음 26:27, 28). 예수 그리스도의 흘리신 피는 죄인들의 죄를 사하는 것이다. 매일 싸움질만 하는 정치판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무너지는 경제를 희생시킬 방안을 제시하기 위해서, 사회적 약자들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서 흘려진 피가 아니다. 지 편집국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무가치하게 만들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에 아무 곳에나 선교라는 말을 붙이며 정치, 경제, 사회의 세상 문제에 주님의 피를 바르려고 하는 것이다.
불교 지도자가 성탄절에 축하하고, 기독교 지도자들이 부처님 오신 날에 축하 메시지를 보내는 모습이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시대에 살고 있는 즈음, 다양한 종교 지도자들의 예지력과 여론을 주도하는 종교언론의 화합이야말로 진정한 이 시대의 갈등을 해소하는 노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지 편집국장의 믿음이 드러난다. 그녀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와 고타마 싯다르타가 동급이다. 그녀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나타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거룩한 믿음이 없으며(디모데전서 316), 저 옛날 유대 땅에서 발흥한 신흥 종교의 지도자인 역사적 예수에 대한 자유주의적 관념이 있을 뿐이다. 지 편집국장은 무신론자이다! 종교언론의 화합을 꿈꾸는 그녀는 고타마 싯다르타와 어깨동무하고 환하게 웃고 있는 역사적 예수에 대한 환상에 젖어 있는 것이다. 아, 그녀가 빌어쓰는 “크리스챤”이라는 이름이 얼마나 안타까운가? 그러나 어디 이것이 그녀만의 지론이겠는가! 종교언론인 심포지엄에 참석한 모든 기독언론사들의 공공지론인 것이다!

마지막 때에 지식이 증가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공유할지라도, 성경적인 지식만큼은 바른 성경인킹제임스 성경을 믿고 실행하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에게 한정되어 지속적으로 계시되어 있다. 그들 기독언론사들이 믿음 없는 기사들과 지식 없는 글들로 이치를 어둡게 하며(욥기 382) 종교화합을 꾀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그들이 그리스도의 피로 적셔진 그리스도인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을 믿을 수 있는 기본적인 믿음이 없는 그들에게 성경을 깨달을 수 있는 계시의 문이 닫혀져 있기 때문이다. 교회 언론을 자처하면서도 성경의 진리를 위해 목소리를 높일 수 없고 오히려 종교 간의 화합의 상생을 위해 비진리를 두둔하고 있다면, 그런 언론은 세상을 위한 언론이지 교회의 언론이 될 수 없다. 그들의 지면과 스크린을 성경에 등장하는 명칭들로 도배한다 할지라도 단지 회칠한 무덤과 같을 뿐이며,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도용하면서도 마귀의 종교들과 교제하는 위선자들로서 드러날 뿐이다(고린도전서 1020).
참된 교회 언론은『우리가 진리를 거슬러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해서만 할 수 있느니라.』(고린도후서 138)는 말씀에 따라 타협 없는 성경의 진리만을 다루어야 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거역하여 스스로 추켜세운 모든 거짓 종교의 모든 거짓말들을 사로잡아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시켜야 하며(고린도후서 105), 이것을 진정한 “크리스챤”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세간에 “언론통제”라는 말이 있다. 정부 권력기간이 국가의 언론기관들을 통제하여 내부 비리를 감출 때 쓰는 말이다. 마귀도 기독언론을 자처하는 곳들을 영적으로 통제하여 거짓 정보를 유포하게 함으로써 이미 자기 수중에 든 배교한 교회들로 바른 진리를 보지 못하게 하고 타락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마귀에게 통제되고 쓰임받는 기독언론들은 죄인들로부터 구원의 길을 가리고, 그들을 두 배나 더 악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며, 타락한 교회들 위에 임박한 심판의 숯불을 더 높이 쌓을 뿐이다. 만일 그들이 순수한 교회 언론으로서 소임을 다하고자 한다면, 언론관계자들이 먼저 구원의 유일한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거듭나야 하며, 그 뒤 바른 성경에서 나오는 바른 성경 지식으로 올바른 지식과 정보를 제공할 수 있어야만 한다. 교회들의 타락을 지적하고, 거짓 종교들의 거짓을 들춰내어 죄인들로 그것에 속지 않게 하고 그들에게 올바른 구원의 길을 제시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렇지 못할 시에는, 불결한 마귀와의 화합과 상생을 위해 거룩한 하나님을 대적해 버린 “크리스챤” 언론으로서의 오명을 영원히 씻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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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No.203/200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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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귀의 종교들과 하나 된 타락한 기독언론들
by
BB 논단/한 승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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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nted in Korea.

Bible believ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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