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에서 방영한(2008.6.29∼7.13) 4부작「신의 길 인간의 길」의 최종 결론은, 모든 종교는 부분적으로 진리를 증언하고 있으니 독선과 독단을 버리고 서로 융화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자유주의 신학자의 주장을 결론 삼아 마지막에 방영했다. 「오늘 한국 기독교 지도자들과 신도들 중에 상당한 사람들의 근본 혼란이 어디서 나오냐 하면 성경을 절대 완전무결한 금과옥조의 교리서로 생각하는데 문제가 있어요. 그래서 그것을 절대적인 신앙이라고 생각하고 시간과 공간과 장소와 때를 가리지 않는 보편 타당한 율법적 경률로서 절대화하기 때문에 다른 것이 안 보이지요... 역사적으로 출현한 모든 역사적 종교들은 다 위대하지마는 진리 그 자체이신 유일신 하나님과 비교할 때는 유일신 하나님을 증언하는 역사적 형태들이고, 또 불가(佛家)식으로 표현하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들이라는 것을 알고서 깨달을 때 종교간의 독선과 독단을 극복할 수 있다...」(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 과연 종교들이 다 함께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들”인지 아닌지는, 종교들의 경전에 명시된 중추적인 가르침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그 가르침은 근본부터 심각하게 대립된다. 표면상으로는 한 종교 문화가 다른 종교 문화를 흉내내어 형식적으로 비슷한 면들이 있지만, 중추적인 가르침은 전혀 양립할 수 없다. 예를 들어 기독교 신앙과 그후에 생겨난 이슬람교를 비교해 보자. 이슬람교가 성경에서 수많은 소재를 끌어다가 내용을 변경시켜 경전으로 만들어냄으로써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표면적으로 여러 가지 내용과 소재를 공유하면서도 중추적인 가르침에 있어서 완전히 길을 달리한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동등하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과 부활하심, 그리고 값없이 믿음으로 얻는 구원이다(요한복음 20:27∼31┃고린도전서 15:1∼20). 그러나 이슬람교는 이 모든 것을 강력하게 부인하고 나선다(코란 4:157, 171/5:17, 72, 75/9:30, 31/10:68 등).[1] 손가락들은 함께 한 곳을 가리키지 않는다. 기독교 신앙이 참이라면 이슬람교는 증오와 시기로 가득 차고 윤리 의식이 결여된 후발주자의 저속한 비난과 거짓말에 불과하다. 만일 이슬람교가 참이라면 기독교 신앙은 동료 인간을 우상화하고 신격화하면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자신들이 어떤 사건들을 목격하였다고 목숨까지 버리며 위증할 수 있는 수많은 자들이 이루어낸 희대의 사기극이다. 다 함께 위대한 종교이며 함께 진리를 향한다는 말을 듣기 좋은 소리일 뿐, 명백한 거짓말이다. 종교들의 관계에 대해 이성적으로 바라볼 수 있고 또 거짓말에 대한 정직한 양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 밖에 없다. 모든 종교를 다 버리든지, 아니면 단 한 가지 신앙만을 선택하는 것이다. 모든 종교는 전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으므로 다 거짓말이든지 아니면 그중 오직 하나가 사실이든지 할 것이기 때문이다. 김경재 교수는 성경을 적대시하고 문자 그대로 믿는 것을 큰 문제점으로 삼았지만, 이성과 양심을 가지고서 “성경을 믿는 기독교 신앙”을 선택한 사람이 성경을 절대 기준으로 삼지 않아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성경은 코란 따위의 경전과는 달리[2] 문자 그대로의 내용이 거룩하고 숭고하며 도덕적으로 흠이 없고 악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기독교를 믿는다 하면서 성경을 문자 그대로 절대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말도 진리와 함께 용인할 수 있는, 양심이 더럽혀진 부정직한 사람인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의『일점 일획』까지도 폐기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셨다(마태복음 5:17, 18). 그리고 그분의 삶은 거룩함과 온전함 그 자체였다. “기독교 지도자들과 신도들의 근본 혼란”은 성경을 절대시하는 데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은 사람들은 비록 그들이 인간인지라 부족한 면들이 있었어도 참으로 숭고한 삶을 살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해주고 열심히 권면함으로써 믿지 않는 사람들을 다소 귀찮게 했고, 비성경적 교리를 주장하거나 부도덕한 일을 하는 자들을 질타함으로써 그들의 기분을 다소 상하게 했지만, 그 이상 아무런 해도 주지 않았고 오히려 삶의 나머지 영역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고 유익을 끼쳤다. “근본 혼란”은 우선 성경을 절대적으로 믿지 않고서 자기 멋대로 육신적인 일들을 저지르는, 말뿐인 기독교인들에게서 생겨났다.「신의 길 인간의 길」제작진이 지적한 정치 목사들, 과거 제국주의 기독교 국가들은 다 이런 부류에 속한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은 성경에서 전혀 명령도 권면도 하지 않은 정치활동을 하며 낭비할 시간이 없으며, 성경에 어긋나기 때문에 타인을 압제하는 사악한 정책도 펴지 않는다. “근본 혼란”은 또한 상대를 위하는 마음으로 믿음을 권면하는 말씀이나 건네주는 전도지 종이조각 하나조차 견딜 수 없어하는 일부 불신자들의 “날카롭고 예민한 닫힌 마음”에서 생겨났다. “열린 마음”을 지닌 사람은 다른 종교적 입장을 이야기하는 사람 때문에 “히스테리”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상대하기 싫으면 안 하면 그만이고, 자리를 피하면 그만이다. 입장을 바꿔서 말해 보면, “열린 마음”을 지닌 그리스도인은 불교도, 천주교인, 여호와의 증인, “도를 아십니까?” 하는 사람들, 기타 그 누가 다가와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한다 해도 “히스테리” 반응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시간이 되면 그들과 함께 진지하게 이야기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할 것이다. 문제는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는 신앙과 선교가 아니라 일부 “신경질적인” 불신자의 “닫힌 마음”이다.
이제 끝으로「신의 길 인간의 길」제작진이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는 신앙을 공격하기 위해 얼마나 전문성이 결여된 학자들의 말을 여과 없이 인용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1】「오늘날 한국 기독교의 교인들은 몰라서 그러지, 하나님과 사탄의 위대한 두 전쟁이 전개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건 기독교 신앙이 아니예요. 그것은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은 이원론이에요.」(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 그러나 기독교 신앙의 “경전”인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바로 그런 전쟁을 말씀하고 있다(창세기 3:15┃이사야 27:1┃요한계시록 12:7∼9). 이스라엘에 대한 이집트의 만행과 10가지 재앙, 우상 숭배자들 및 거인족들과 싸운 카나안 땅 정복 전쟁, 칼멜산에서의 바알 선지자들과 엘리야의 대결, 교회에 대한 잔혹한 박해와 복음 전파 등도 모두 하나님과 사탄의 전쟁 중 일부분이다. 【2】「이스라엘 구약성경에서 죽은 사람들은 다 스올로 갔어요. 그리고 죽었다는 표현을 족장 시대 때 보면 전부 뭐라고 하는가 하면 ‘lie with fathers,’ ‘아버지와 잤다’라고 했지 천국이란 개념은 없었습니다. 그건 나중에 등장한 거죠... 천국이란 개념, 지옥이란 개념, 뭐 이런 개념들은 구약성경에 저는 없었다는 봅니다.」(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히브리어 “스올”(ㆍSheol)은 “음부,” “지옥,” “구렁”으로 번역된다. 구약 시대(십자가 이전)에는 사람이 죽어서 혼이 가게 되는 장소인 “낙원”과 “지옥”이 모두 땅 속에 있었고(누가복음 16:22, 23), 그곳을 통칭하여 “음부”라고 한다.[3] 구약에서 성도와 악인이 모두 “스올”로 간다고 해서(창세기 37:35┃시편 9:17) “스올”이 단지 “죽음의 상태”이고 “낙원”이나 “지옥”의 개념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구약 시대에는 선인이든 악인이든 죽을 때 그 혼이 땅 속으로 내려갔기 때문에 “스올”이라는 단어가 그곳을 통칭하는 문맥에서는 “음부”라는 의미로, 그중 악인의 처소를 나타내는 문맥에서는 “지옥”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스올”은 단지 “죽음의 상태”가 아니라 지하에 있는 분명한 장소이기 때문에(요나 2:2, 6) “산 채로” 그곳으로 가는 특이한 경우도 있다(시편 55:15). “스올”은 그저 이 세상 수고가 끝나는 “죽음의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그곳 어딘가에는 “고통들”이 있다(시편 116:3). 배철현 교수가 “아버지와 잤다”라고 번역한 말, 곧 “조상들과 함께 잠들었다”라는 말은(열왕기상 2:10 등) 인간의 혼이 아니라 죽은 몸에 대한 것이다. 성경에서 죽음을 “잠들었다”라고 하는 것은 몸에 대한 것이다. 흙 속에 있던 그 몸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다니엘 12:2). 몸에 대한 표현을 가지고 사후 세계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고 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다. 구약성경은 도처에 사후 세계에 대해 계시하고 있다. 죽을 때 인간의 혼은 몸을 떠나(창세기 35:18) 어디론가 멀리 이동해 가는데(시편 90:10), 죽음 이후에는 심판이 있고 자신의 영원한 집으로 간다(전도서 12:5, 7, 14). 악인에게는 죽음 이후에 파멸이 있으나, 성도는 하나님께서 영광으로 영접하신다(시편 73:3, 4, 17, 18, 24). “뭐 이런 개념들은 구약성경에 저는 없었다고 봅니다.”라는 배교수의 말은 성경에 대한 무지와 전문성의 결여를 드러낸 표현이었다. 【3】문익환 목사의 아들인 문성근 내레이터는 유대인들을 바빌론으로부터 귀환시킨 페르시아의 코레스왕의 대해 “주가 그의 기름부음받은 자”라고 말한 ‘이사야 45:1’을 인용한 다음, 유대인들이 “메시아”라고 하던 코레스는 사실 조로아스터교의 숭배자라고 하며, 성경이 상황을 모르는 인간이 쓴 책인 것처럼 이야기를 몰고 갔다. 비록 “기름부음받은 자”가 히브리어로 “메시아”이기는 하지만(마쉬아흐ㆍㆍmashiach), 이것이 모두 다 영원한 왕국을 세우실 완전한 왕 “메시야 통치자”(다니엘 9:25)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기름을 붓는” 것은 하나님께서 선지자, 제사장, 왕을 세우실 때 하셨던 일이며(열왕기상 19:16┃출애굽기 30:30), 온 세상을 주관하시며 권세자들을 세우시는(로마서 13:1┃다니엘 4:25)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이나 그분의 성도가 아닐지라도 어떤 목적에 따라 누군가를 그렇게 세우실 때 “기름을 부으셨다”(열왕기상 19:15). “기름부음받은 자”라는 단어 자체가 무슨 “거룩한 자”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 백성을 벌하시려는 계획을 이루는 이교도 느부캇넷살왕을 “내 종”이라고 부르신 하나님께서는(예레미야 25:9) 자기 백성을 귀환시킴으로써 “메시야 통치자”의 모습을 예시로 살짝 보여 줄 이교도 코레스를 “주의 기름부음받은 자”라고 불러 주셨을 뿐이다. SBS 제작진 역시 약간 아는 체하다가 성경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것이다. 【4】내레이터는 다시, 다른 종교에 대한 배타적 태도가『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아무도 없느니라.』고 하신 ‘요한복음 14:6’에 기인하지만, 그 구절은 “예수가 살던 시대적인 상황, 즉 로마 압제 속에서 십자가의 길, 곧 자기 희생의 길을 선택할 때 하느님의 길을 찾을 수 있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하는 신학자들이 많다며 다음과 같은 주장을 제시했다. 「그 말을 듣던 당시의 유대인들은 세계 여러 곳에 불교가 있는지도 모르고, 공자 맹자가 있는지도 모르는 지중해의 유대의 조그만 사회 속에서 혹세무민하는 엉터리 사이비 메시아들이 창궐할 때 참 진리의 길을 따르라 하는 뜻으로 그 말씀을 했지, 오늘날 모든 종교는 그러므로 엉터리다. 나만을 믿으라는 이런 기독교 교리변증의 구절로 그런 성경구절을 남용하고 오용하는 그 지도자들이 문제지요.」(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 그러나 예수님은 같은 책인 ‘요한복음’에서 자신에 대해서 장차 무덤들 속에 있는 죽은 자들을 살려서 심판하실 분으로, 아버지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으실 분으로 제시하셨다(요한복음 5:21∼29). “로마의 압제” 속에서 “자기 희생의 길”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 전혀 “지중해의 유대의 조그만 사회”에서 혹세무민하는 사이비 교주들과 자신을 대비하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과 3년 동안 동고동락하며 그분의 말씀의 진의가 무엇인지를 가장 가까이서 들었던 사도 베드로도, 아시아와 유럽의 드넓은 땅을 활보하며 예수님을 전파하던 사도 바울도 예수님의 말씀을 전혀 오해하지 않았다(사도행전 4:12┃빌립보서 2:9∼11). SBS의「신의 길 인간의 길」제작진은 성경적 기독교 신앙을 제거하기 위해 전문성이 떨어지고 성경 지식이 결여된 학자들의 온갖 거짓된 주장들을 끌어모아다가 영상물을 만들어 방영했다. 말하자면 그것은 부정직하고 무지한 학자들이 활보하는 무대였던 것이다. ──────────────────────────────── 월간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No. 197/2008-8) ... ──────────────────────────────── 각 주 [1]코란에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십자가에 죽으심을 어떻게 공박하고 나서는지 코란의 다음 구절들을 살펴보기 바란다. ─「그뿐인가. ‘우리들은 구세주... 마리아의 아들 예수를 죽였다.’라고 말하고 있다. 어째서 잡혀 죽었겠는가. 어찌하여 십자가에 매달렸겠는가. 단지 그와 같이 보였을 뿐이다... 억측에 불과하다. 아니 그들은 절대로 예수를 죽이지 않은 것이 확실하다」(4:157),「구세주라고 하는 마리아의 아들 예수는 단지 알라식 사도에 불과하다... 하나님은 유일한 신이다... 하나님에게 자식이 있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4:171),「‘하나님은 즉 마리아의 아들 메시아이다.’라고 말하는 자는 이미 신앙을 버린 자이다」(5:17),「‘하나님은 즉 마리아의 아들, 구세주이시다.’라고 하는 자는 이미 믿지 않는 자이다... 하나님과 나란히 다른 어떤 것을 숭배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낙원으로 들어가는 것을 금하셨다. 그가 살 곳은 지옥의 불이다」(5:72),「마리아의 아들 메시아는 단지 사도에 지나지 않는다」(5:75),「그리스도교는, ‘하나님의 아들인 그리스도’라고 말한다. 이것은 그들의 입바른 말이고, 지난날의 배신자들의 말에 따르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토벌해 주셨으면 좋겠는데, 참말이지 얼마나 위선의 길을 걷고 있는 자들인가」(9:30),「그들은 하나님을 따돌리고...마리아의 아들 그리스도를 주로 숭배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유일한 신을 숭배하라고 그렇게 명령하였는데도 말이다」(9:31),「그들은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두셨다.’ 얼마나 불경한 말인가」(10:68) 등. [2]다음 코란의 구절들은 문자 그대로 믿는 사람이 과연 어떤 인간형이 되어 있을지 생각해 보기 바란다 ─「반항적으로 되기 쉬운 걱정이 있는 여자는...구타해도 무방하다」(4:34),「만일 그들이 배반하면 너희들이 그들을 발견하는 대로 그 장소에서 잡아 죽여라」(4:89),「그들이 끝까지 물러서지 않고 화평을 제의해 오지 않는다면 어디서든지 발견되는 대로 죽여 버려라」(4:91),「소동이 없어질 때까지 그리고 종교가 모두 하나님께로 귀의할 때까지 그들과 싸움을 계속하라」(8:39),「그런데 신성월이 지났으면, 다신교도를 발견하는 즉시 죽여라. 잡아라. 억류하라」(9:5),「참된 종교를 믿지 않는 자에 대해서는, 스스로 자기를 낮추며 자발적으로 인두세를 바칠 때까지 싸우라」(9:29) 등. [3]신약 시대에는 예수님의 승천과 함께 지하 “낙원”에 있는 자들이 하늘 나라의 “낙원”으로 옮겨짐으로써 지하 “낙원”이 사실상 하늘 나라로 대체된다(에베소서 4:8∼10┃고린도후서 12:2, 4). 그러므로 구약 시대에는 지하에 있는 장소들은 신약 시대의 “하늘 나라”와 “지옥”의 개념과 같은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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