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3. 21. 23:46

나의 글모음 - 21 ː『 많은 교회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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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기.... Thinking... 】

(420) 높은 보좌에 환한 빛 비취리라 (s)

○ 많은 교회들이...

(사도행전 20:24
그러나 나의 달려갈 길을 기쁨으로 끝마치고 내가
주 예수로부터 받은 사역,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라면 이런 일을 전혀 개의치 아니할 뿐 아니라 나의 생명을 조금도 아끼지 아니하노라.

(요한복음 1:29, 36
29 ○ 그 다음 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기를 “보라, 세상 죄를 제거하는 하나님어린양이라. 36 예수께서 거니시는 것을 보고 말하기를 “보라, 하나님어린양이라.”고 하니,

(요한계시록 5:12, 13)
12 큰 음성으로 말하기를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권세와 부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도다.”라고 하더라. 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과 땅과 땅 아래와 바다에 있는 각 피조물과 그 안에 있는 만물이 말하기를 “보좌에 앉으신 분과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세가 영원무궁토록 있을지어다.”라고 하더라.

많은 교회들이 전 인류의 제물이 되신하나님어린양의 복음을 전하고 강조했으면 합니다.바로 이 지점이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믿음과 소망이 시작되는 곳이라고 봅니다. 왜? 오늘날의 많은 교회들에게는 생명력이 없습니까? 미래를 보는 환상과 죽은 시체를 살리는 이적과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을 얻지 못해서 입니까? 아닙니다!하나님어린양(사도행전 2014)을 선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복음이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인데 이 분은 한 쪽으로 제껴두고 사회복음이니, 이웃사랑이니 가난한 자들을 돕자느니, 다른 종교들과 사이좋게 지내자느니 하는 헛된 구호들만 난무하므로 더욱 나약해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왜? 교회(예배당)에 가는 것입니까? 바로 그곳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공동체이며,『하나님의 영』(베드로전서 414)이 임재하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이 시대의 교회들은 아무런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복음을 저버렸기 때문입니다.『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에 모든 권세와 부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이 있습니다. 이 이름(복음)을 부끄러워 하면, 이 이름을 저버리면, 이 이름보다 ‘인권’이라는 것에 권위를 두게 되면, 진짜 생명이 없으므로 빈 껍데기들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왜 유럽의 교회들이 먼지만 쌓이는 박물관으로 전락했습니까? 복음을 저버렸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지구 위에 새겨놓은 피뿌림의 복음을 증거하십시오! 담대히 선포하십시오! 모든 혼들에 대한 구속의 진리를 선포하십시오! 이 시대의 모든 교회들이 회복되는 지점입니다. 부활과 구원과 생명의 역사가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설교에 항상 주 예수님의 피뿌림의 복음(the blood of the Lamb)을 증거하십시오. 듣는 회중 가운데에 부활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성경으로 돌아가십시오!!! 성경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며, 가장 우주적인 것입니다.

2010. 3. 21. 주일....
HanSaRang...

[ P.S. ]
성경 검색기에서 ‘어린양’을 검색해 보시고 관련 구절들을

모두 읽어보십시오.

《요한계시록》에서‘어린양’과 관련된 구절이 33구절 나오더군요.

신비롭지 않습니까? 주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33년간 사시다가 죽으시고 부활 후에 하늘로 올라가셨지요.

(마가복음 7:3137
31 ○ 주께서 다시 투로와 시돈 지경을 떠나 데카폴리 지경의 중간을 통과하여 갈릴리 바다로 가시니 32 사람들이 귀먹고 말도 더듬는 한 사람을 주께 데리고 와서 그에게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더라. 33 주께서 그 사람을 무리에게서 따로 떼어 데리고 가시어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 사람의 혀에 대신 후 34 하늘을 바라보고 신음하시며 그 사람에게 말씀하시기를 “엡파다.”하시니, 그것은 “열리라.”는 말이라. 35 그러자 즉시 그의 귀가 열리며, 혀를 묶은 것이 풀리니, 그가 분명하게 말하더라. 36 그후 주께서 그들에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셨으나 주께서 그들에게 당부하면 할수록 소문을 더 많이 퍼뜨리더라. 37 사람들이 무척 놀라며 말하기를 “그가 모든 일을 잘 행하셨도다. 귀머거리도 듣게 하고 벙어리도 말하게 하신다.”라고 하더라.

(사도행전 3:610
6 베드로가 말하기를 “은과 금은 나에게 없으나 내가 가진 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하고 7 오른손으로 그를 잡아 일으키니 그가 즉시 발과 발목에 힘을 얻어서 8 뛰어 일어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더라. 9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그가 걸으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보고 10 그가 성전의 아름다운 문에 앉아 구걸하던 그 사람인 것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경이와 놀라움으로 가득 차더라.

(요한계시록 7:10
큰 음성으로 소리질러 말하기를 “구원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어린양에게 있도다.”라고 하더라.

(111) 주 하나님 독생자 예수 (s)

122나는 무엇을 바라봅니까?

『 땅 끝들에 있는 모든 자들아, 나를 쳐다보고 구원을 받으라.
이는 내가
하나님이요,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 』

(이사야 45:22

@주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시며 구원을 베푸시기를 기대합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게로 돌이켜 구원을 받으라.” 영적으로 가장 어려운 것은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를 어렵게 하는 것은 축복입니다. 고난은 거의 언제나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보게 합니다. 반면 축복은 우리로 하여금 다른 것을 보게 하기 쉽습니다. 산상수훈의 가르침은 사실 모든 관점을 줄이고 우리의 마음과 뜻과 몸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오직 주만 쳐다보라.”
우리 대부분은 그리스도인이 어떠해야 한다는 지적인 개념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비성경적인 개념도 많습니다. 최근에 소위 ‘성자들’(금욕주의자나 경건주의자)의 삶은 오히려 사람들이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이런 식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다. 구원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를 쳐다보고 구원을 받으라.”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우리가 오직 주만 쳐다볼 때 얻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잘못된 편견 및 지적 개념을 가진 자들은 주님께서 “나를 쳐다보고 구원을 받으라.”고 하신 말씀을 듣고 못마땅해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볼 때만이 우리 마음을 짓누르는 어려움과 고난들, 그리고 내일에 대한 염려들이 다 사라집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주님께 소망을 두십시오. 우리를 압박하는 일들이 많더라도 그 모든 염려를 곁으로 밀어두고 주님만 바라보겠다고 결심하십시오.
“나를 쳐다보고...” 주님만 바라보는 순간 당신이 어떤 상황 가운데 있더라도 구원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18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보이는 것들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들이라. 이는 보이는 것들은 잠깐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은 영원하기 때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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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왈드 챔버스/『 주님은 나의 최고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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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편 119:89
여, 주의 말씀은 영원히 하늘에 세워졌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