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리가 무엇이냐? 」 ◀ 진리가 무엇이냐? 약 1970년 전이다. 로마에서 총독으로 보낸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하기 시작했다.『“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네가 무엇을 하였느냐?”』『“그러면 네가 왕이냐?”』위대한 답변을 들으려면 위대한 질문을 해야 하며, 그 대답을 제시할 수 있는 권위자에게 물어야 할 것이다. 이 사람,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빌라도에게 해답을 줄 수 있는 유일한 분이셨다.『만왕의 왕, 또 만주의 주』(요한계시록 19:16)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목적과 성경의 위대한 주제에 대해서 압축된 답변을 주신다. 곧 그분이 유대인의『왕』이시라는 사실과, 지금은 그분의『왕국』이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려 주셨고, 마지막으로 주님의 지상 생애의 이유와 목적이『진리』를 증거하는 것임을 말씀하셨다(요한복음 18:36, 37).『진리』라는 말을 듣자 그는 귀가 솔깃한다. 권력과 명예와 안락에 대한 정욕으로 찌든 정치인이었지만 누가 과연 이 위대한 주제가 거론되는 것을 듣고 호기심을 갖지 않으랴! 그러나 그는 구속되어 자신 앞에 끌려나온 이 사람에게서 위대한 답변을 들으리라 생각지 않고 즉시 비웃으며 말한다.『“진리가 무엇이냐?”』 성경에서『진리』(truth)라는 단어는 전체 222개의 구절에서 235회 쓰여졌다. 구약에서 10개의 히브리어 단어와 신약에서 4개의 헬라어 단어에서 번역되었다.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하나의 단어로 받은『진리』(truth)는 “참된 것, 참된 이치”라는 핵심 의미를 중심으로 “실제, 진실함, 믿음, 신실함, 확실함, 확고함, 지지하는 것” 등을 의미한다. 그러면 무엇이 참되며, 확고하고, 지속적이며, 믿을 만하고, 참된 실제를 이루는『진리』인가? 우리는 여기서 여러 가지 원어사전들과 성경백과사전과 신학논문들을 접어두고 크게 세 가지로『진리』를 정의해 보자. 첫째, 주 하나님의 말씀들이『진리』다.『아버지의 진리로 그들을 거룩하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한복음 17:17). 하나님의말씀은 진리이며(시편 119:43), 하나님의 복음과(에베소서 1:13), 복음이 가르치는 확고한 의의 교리도 진리라 불린다(갈라디아서 2:5, 14). 성경은『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태복음 5:18)고 말씀하신다.『하늘과 땅은 없어져도 내 말들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태복음 24:35). 우리가 손에 들고 있는 이 성경은 진리의 하나님과 그분의 구상과 성품과 계획과 그분의 말씀들과 심판들과 법들과 예언들과 약속들, 그리고 하나님의 운행하심과 역사를 담은『진리의 말씀』, 곧『진리의 성경』이다(다니엘 10:21). 전화번호부처럼 단순한 사실들로 가득 찬 책이 아니다. 우리가 가진 성경의 말씀들에는 우리의 영적인 생명을 지탱하고 그 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강하고 살아 역동하는 하나님의 호흡이 그 각각의 단어에 담겨져 있다(마태복음 4:4┃요한복음 6:63).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고(야고보서 1:18), 신약은『진리의 말씀을... 공부하라.』고 명령하며(디모데후서 2:15), 구약은『진리를 사고, 그것을 팔지 말라.』고 말한다(잠언 23:23). 둘째,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진리』다.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은혜와 진리』가 충만하고(요한복음 1:14), 주님은 하나님의 도를 진리로 가르치는 선생이시며(마태복음 22:16), 진리를 전파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선지자셨으며(요한복음 18:37), 그분의 말씀들 자체가 진리이다. 주님 안에는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골로새서 2:3). 죄에서 자유케 하는『진리』를 우리에게 주셨고(요한복음 8:32), 이는 우리의 죄들을 위해 죽고 친히 죄가 되어 심판받으심으로 죄의 능력을 꺾어버리심으로 이루어졌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 중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창조사역 없이 지어진 것은 없으며(골로새서 1:15∼17), 그분은사탄의 반란 이후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들을 하나님의 원 계획 안으로 되돌려 놓고(요한복음 4:34┃히브리서 10:7┃에베소서 3:11),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것을 주관하시고 운영하시며(고린도전서 15:24┃요한계시록 11:15), 모든 것을 충만히 채우시는 궁극적인 본질로서 진리가 되신다(골로새서 3:11). 주님께서는 진리가 인격화된 분이시며, 주님은 완전한 진리의 표현이시다(요한복음 1:1┃요한일서 1:1, 2).『...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아무도 없느니라』(요한복음 14:6, 7). 셋째, 전능하신 주 하나님께서 가져오시고 완성하실 영원 세계가『진리』다. 요한계시록에는『진리』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은『진리』가 보이는 형태로 밝히 드러날 때를 향해 달려가는 책이기 때문이다. 천년왕국에서는 주를 알라고 외치는 선지자들이 없을 것이다. 주께서 땅에 밝히 보이는 형태로 나타나 계시고 천년왕국 백성들을 친히 다스리실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백보좌 심판이 지난 영원 세계에서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기 위해 발설된 모든 말씀들이 드러나게 이루어진 형태로 모두 성취되기 때문에『진리』가 현재와 같은 종이책에 기록된 형태로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때 우리는 전능하신 주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 속에 거하며,『진리』를 온전히 보고 경험하며 누리고,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며 영존할 것이다. 그때 모든 창조물은 예외없이 하나님의 은혜와 성품과 영광을 드러낼 것이다. ● 진리를 위해 사는 삶... 『우리가 진리를 거슬러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해서만 할 수 있느니라』(고린도후서 13:8). 그때 예수님을 심문했던 그 어리석은 정치인 빌라도는『진리가 무엇이냐?』라는 질문의 답을 스스로 회피해 버렸다. 그가 기다렸다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전처럼『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대답하셨을 것이며, 그는 어쩌면 그분을 신뢰하고 진리를 소유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빌라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 진리를 반드시 배워야 했으나, 그가 찾아낸 것은 예수님께서 무죄하시다는 사실뿐이었다(요한복음 18:38b). 진리 자체이신 주께로부터 알아낸 것 치고는 너무 하찮은 것이었다. 그는 무죄한 사람을 처형토록 명령한 것과 더불어 자신의 죄들에 대한 책임을 안고 지옥에 내던져졌다. 독자는 어떠한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는가? 진리의 말씀을 매일 공부하며 진리의 하나님을 깨달아 가고 있는가? 만약 아직도 바른 성경과 바른 교리에 대해서 혼란스럽다면 자신 안에 계신『진리의 영』이신 그분께 구하라 그러면『모든 진리』로 당신을 인도하실 것이다(요한복음 16:13). 그대는 하나님께서 이루실 영원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헛된 세상을 붙들고 있는가? 참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구주로 소유하고 있고 그분을 모든 면에서 누리고 있다면, 날마다 그분의 말씀으로 모든 진리로 인도함 받고 그 진리에 순종하여 살고 있다면, 또한 주 하나님께서 완전한 형태로 가져오실 그분의 영원한 왕국에 초점을 맞추어 산다면, 우리는 진리를 위해 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확고하며 안정적이고 가장 고귀하며 가장 실제적인 삶이다. 무지와 허무와 불확실의 혼돈에서 벗어나라. 성경은 완전하고 확고하며 영원한 진리로 우리를 초대한다. BP 「 현대인의 신학적 타락 」
◀ 바야흐로 신학은 여가 시간이 있는 종교인들이 지적인 재미를 얻는 수단이 되어 버렸다. 밥 존스 시니어(Robert Reynolds Jones/Dr. Bob Jones, Sr.ㆍ1883∼1968)는 “성경이 무엇이라 말씀하시든, 그것은 그런 것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바로 성경으로 모든 문제를 확정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이제는 성경이 그렇게 말하니까 그대로 믿고 그대로 실행하겠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보다 더 어렵게 되었다. 현대의 신학교는 갈 곳 없는 낙오자들이 가는 삼류 직업학교가 되었다. 기존 교회들은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 경배드리고 하나님의 자녀들을 양육하며 죄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이겨오는 하나님의 집이 아니라, 종교적인 죄인들에게서 돈을 받고 그들의 종교심을 달래주는 안식처가 되었을 뿐이다. 솔직히 말해서 더 이상 누구도 “진리”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신학의 정의는 더 이상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이 아니다. 이 세대는 하나님을 알려 하지도 않고 그분께 대한 두려워함도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광활한 우주에 진실하신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것을 믿지 않으며, 또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감찰하시고 판단하시며, 하늘 나라와 지옥, 의와 불의, 선과 악, 진리와 거짓을 나누시고, 장차 온 우주를 불로 심판하실 것이라는 것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심판을 유보하신다는 그분의 자애가 오히려 죄인들에게는 진리에 대한 거부와 불신과 안일을 위한 계기가 되어 버린 것이다.『악한 일에 대한 징벌이 속히 집행되지 않으므로 사람들의 아들들의 마음이 그들 안에서 악을 행하기로 완전히 정해졌도다』(전도서 8:11). 바야흐로 신학은 여가 시간이 있는 종교인들이 지적인 재미를 얻는 수단이 되어 버렸다. 기껏해야 목회에서 성공하기 위해 거쳐가야 하는 하나의 관문이나 여러 가지 취미 생활 중 하나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어떤 이들은 바둑이나 장기를 좋아하고, 낚시나 등산을 좋아하는 이들도 있으며, 축구나 농구나 여러 가지 운동경기나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믿음이나 교리나 신학의 영역은 사람들이 밥을 다 먹고 일을 다 끝내 놓고 집안을 정리하고 다른 모든 삶의 우선 순위들을 다 이루고 난 뒤 생각해 봄직한 꺼리다. 그리고 사람들의 첫 번째 우선 순위들, 그러니까 돈을 모으고 가족들을 부양하고 재산 관리를 하고 나서, 이 세상 사람들의 칭송을 얻는 것을 다 성취하고 나서도 시간이 남으면 뒤돌아보는 것이 신학이다(요한복음 12:42, 43). 이런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니 믿음이니 교리니 신학이라고 하는 것들이 삶의 본질적인 문제들에서는 전혀 힘을 발휘할 수 없다. 『율법과 증거에게라. 만일 그들이 이 말씀에 따라 말하지 아니하면 이는 그들 안에 빛이 없기 때문이라』(이사야 8:20). 현대인들에게 성경 구절을 인용하여 얼마나 그들을 설득시킬 수 있을까?『율법』과『증거』나『말씀』이나『빛』이란 용어의 정의 또한 자신의 생각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고 그들은 믿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것이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이 싫어하는 어떤 현실이나 사실도 그것을 무시하고 외면하면 그 본질까지도 없애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수백 개의 성경 구절들을 인용한다고 해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교부들이나 개혁자들 심지어 자신이 선호하는 작가의 글을 인용한다고 해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현대인은 스스로 ‘자신만의 우주’를 구상하고, 또한 그것을 자신의 편리에 맞게 바꿀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욕구에 맞는 신들을 고안해 내고, 그 신들은 각 개인의 기호와 사상을 철저히 반영하여 빚어졌다. 그러나 이 위대한 신들을 한데 모아 놓으면, 절대적인 진리를 제시하여 서로를 제지하거나 압도할 수도 없는 헛것들이다(이사야 44:9∼20). 이것이 왜 현대인들이 “한 분 하나님,” “한 분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의 구원의 방법,” “하나의 진리,” “하나의 성경”에 대해서 토론하거나 수용하기를 싫어하는 이유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주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창조주이실 뿐만 아니라 또한 완전한 인격체이시다. 그분의 성품에는 흠이 없고 비뚤어진 부분이나 균형을 잃은 부분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를 인식하시며,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아신다. 그분은 우리에 대한 모든 것을 아시며, 우리 각자가 계획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 분명한 뜻을 가지고 계신다. 인간이 타락했을 때 하나님께서는『“네가 어디 있느냐?”』(창세기 3:9)고 부르시며 그를 찾으셨고, 그에게 짐승을 죽여 가죽옷을 입히셨으며, 이스라엘이 타락했을 때 주께서는『이제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이사야 1:18) 말씀하시며 그들의 죄를『눈』과 같이, 또한『양털』같이 되리라고 약속하셨다. 즉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간에게 그분 자신을 알리시고 그분의 계획 안에 인간을 데려오시려고 다양한 방법으로 역사해 오셨다. 오늘날에는 과거의 선지자들과 사도들과 하나님의 사람들에 의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죄인인 우리에게 생명의 길을 보이시고, 날마다 하나님과의 교제와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고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살게 하신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열 때, 성령님께서는 우리 지성의 방에 불을 켜시고, 우리의 식탁에 빵과 우유와 맛난 음식을 차려주시며, 우리의 전쟁터에서 우리를 승리로 이끄시고, 우리 여행길에서 곤고하여 쓰러지지 않게 힘과 위로를 주시며, 또한 이 성경을 열 때 우리는 사랑하는 구주와 주이시며 우리의 신랑이신 그분을 말씀의 동산에서 만나 그분과 교제한다. 이와 같이 성경은 우리의 영적인 삶의 기반이 되고 있는가? BP ──────────────────────────────── 인터넷 신문 ‘바이블 파워’ (2010-10-13/10-15) ... ──────────────────────────────── Bible believer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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