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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의
관우를 신으로 섬기는 사람들. |
중국의 유명한 소설 삼국지는
무협지를 좋아하는 사람치고 안 읽어 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무협지이다. 필자도 어렸을 적에 읽기는 했지만 주인공의 이름 몇 명만
기억날 뿐 지금은 그 줄거리조차도 아련하게 다 잊어버린지 오래다.
그런데 그 책에 등장하는 세 명의 유명한 주인공들이 있는데, “관우”라는
인물이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 전국 각지에서 지금도 그를 신으로 섬김
받고 있다. “일관도”라는 종교는 미륵불을 섬기는
신앙인데 제단 위에는 관우상이 함께 새겨져 있다. 신도들은 미륵불과
더불어 관우에게도 예불을 올리는 것이다. 이들은 관운장을 부처와 같은
신으로 섬기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 소설책의 주인공에 불과한
관우를 왜 신으로 섬기게 된 것일까? 사람들은 소설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 중 가장 좋아하는 한 사람을 꼽으라고 하면 관우를 뽑는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소설 속의 관우는 중국 삼국시대 촉나라 장수로 수많은
영웅호걸 중 한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관우는 우리나라에서 신으로
섬기게 될 만큼 우리 민족에게 어떤 영향을 미친 것인가?
관련 문헌에 따르면, 선조 30년, 조선과 명나라연합군은 울산성을
중심으로 왜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6 만
명의 조명연합군은 울산성을 포위해 총공격을 펼치지만 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후퇴한다. 당시 울산성 전투에 참여했던 진인도 총탄을 맞아
큰 부상을 입었다. 남대문 밖 명군의 진지로 후송된 진인은 그곳에서
요양을 하며 건강을 회복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관우 사당을 세운다.
관우신의 보살핌을 받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한국에서는
관우를 신격화해서 섬기고 있는데 한 마디로 “전쟁 신”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조상신을 섬기고 있는 대한민국 사람들의 수준이고
현실이다. 조상숭배의 나라 한국은 많은 부분에서 부정적인
열매들을 드러내고 있는데 누구하나 그에 대해서 토를 달 수 없을 만큼
생활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막강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요지부동이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제삿날과 각 명절마다 행해지는 동일 조상에게 정성을
다한다고 쏟아 붓는 돈이 천문학적이라고 한다. 그래서 명절만 되면
물가가 널뛰기하는 등 부작용을 낳고 있는데 제사를 지내지 않는 기독교인들도
어부지리로 그들의 틈바구니에서 피해를 겪고 있다. 옛날에는 덜 했으나
오늘날에는 제삿날이 가족 간의 화합이 아니라 오히려 불협화음을 낳고
있는데 그야말로 심각한 수준이다. 해마다 제삿날이 되면 그것을 맡아서
하는 측이나 참석하는 사람들 공히 의무적으로 하는 예가 많기 때문에
서로가 부담스러운 점이 많다. 그래서 형편에 따라서 덜 협조적인 형제간에게는
노골적으로 불평을 늘어놓음으로 가족 간의 화합을 깨뜨리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대한민국만큼 명절을 특히 조상 제사로 일관되게
지내는 나라는 이 세상에서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초기 조선을 찾은
선교사들은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조상숭배 열기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오히려 유교 문명의 종주국인 중국이나 주변국인
일본과 월남에서도 조상 제사를 지내는 것을 쉽게 목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유교문화권을 넘어서 세계에서 조상 제사를 지극정성으로
지내는 유일한 나라가 된 것이다. 그래서 심지어 교회에서도 형태만
다르게 인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추도 예배” 라는
형식을 빌어서 절만 하지 않는 형식을 취해서 제사를 지내고 있는 그
제사의 대상은 바로 죽은 조상들이다. 그래서 김기동 목사는 우상에게
하는 제사는 마귀(개역성경에는 ‘귀신’이라고 번역)에게 하는 것이라는
말씀에 착안하여 한국 사람들이 제사하는 대상이 당연히 조상들이기
때문에 그 우상은 죽은 사람이라고 단정한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일정기간 귀신이 된다고 주장하는 “베뢰아귀신론”을 만들어 냈을 정도다. 미국 선교사 헐버트는
“대한제국 멸망기”
에서 “코레아인들은 사회생활에서는 유교에, 사고방식은
불교에 속하며, 곤경에 빠지면 귀신을 믿는다.”고 썼다. 문헌에 따르면 조선 사람들이 무속과
민간신앙을 조상제례로 전격 대치한 계기가 바로 조선 건국이라고 한다.
“고려 말까지도
명절은 하늘과 자연을 경외하는 집단축제였다. 불교에서 유교로 전환한
조선은 민간신앙을 일소할 방법을 주자학에서 찾았다. 제천(祭天)과
제사(祭祀)가 그것이다. 경복궁 우측에 사직단을 지어 하늘신과 토지신에게
제례를 올리고, 좌측에 종묘를 지어 제사의 기원을 마련했다. 15세기 말 성종은 아예 경국대전을 편찬해 국법으로
반포했다. 예제(禮制)에 이런 조항이 있다. ‘ 6 품
이상 문관이나 무관은 3
대까지 제사 지내고
7품
이하는 2
대까지, 일반 서민은 부모에게만
제사 지낸다.’ 잡신을 섬기는 자는 처벌되었다. 빈곤한 서민은 위패를
모시고, 명절 땐 두어 가지 음식으로 족했다. 굶는 판에 더 차릴 것도
없었다. 그러던 것이 양반이 향촌을 장악해 가는 과정에서 봉제사는
충군효친의 규율 수단이 되었다. 오늘날과 같은 엄격한 격식과 요란한
상차림이 강제됐다. 조상숭배가 통치 이데올로기의 중심에 놓이자 봉제사는
곧 가문의 위세경쟁으로 변했다.” 고 한다. 이것이 명절이라는 축제의 기간을 제사로 몸살을
알아야 하는 “조상숭배의
나라” 가 된 역사적
배경이다. 이런 잘못된 전통 때문에 이웃나라의 유명한 인물을
섬기게 되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이제 중국은 사회주의 영향으로
제사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조상숭배 제사가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고 농촌, 남방, 그리고 중화권 지역인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에는 제사를 지내기도 하지만 우리처럼 그렇게 복잡한 형태를
띠지는 않는다고 한다. 참으로
인간들의 종교성은 그 어떤 피조물에서도 찾을 수 없는 독특한 것이다.
그러나 더 독특한 것은 이상하게도 하나님만은 찾아 나서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에 대해서 알려 줘도 오히려 공박하며 시치미를
떼는 것이다.『10
기록된 바와 같으니 “의인은
없나니 없도다, 한 사람도 없도다.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 을 찾는 자도 없도다. 12 모두가 탈선하여 함께 무익하게
되었으며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없도다, 한 사람도 없도다.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들이
자기 혀로는 속였으며 그들의 입술 아래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들의
입은 저주와 독설로 가득 차고 15 그들의 발은 피흘리는 데 빠른지라.
16 파멸과
비참함이 그들의 길에 있고 17 그들은 평강의 길(
the way of peace)을
알지 못했으며 18 그들의 눈 앞에는 하나님 을 두려워함이 없도다.”라고 하였느니라』
(로마서 3:10∼18). BP
──────────────────────────── 인터넷 신문 ‘바이블 파워’
(2010-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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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의 관우를 신으로
섬기는 사람들 』
by ■「바이블 파워」/2010. 11. 17/박 재권(캐나다
주재 기자)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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