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1. 19. 23:48

“ 킹제임스성경의 신비들 ” (바른 성경)

(바른 성경) [20060815] ● 킹제임스성경의 신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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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킹제임스성경의 신비들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라. (시편 12:6)┃

  오늘밤 여러분은 그림을 보듯이 그렇게 한 번에 다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약간의 성경 공부를 통해 우리의 성경이 어떤 것인가를 살펴볼 것입니다. 여러분 중 몇 분에게는 이것이 지겨울 수도 있겠으나 (만약 여러분이 ‘만나manna’에는 관심이 없고 부추나 양파, 생강같은 것만 추구한다면 이 공부는 지겨울 것이고 그다지 재미있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을 사랑한다면, 여러분에게 이 시간은 축복된 시간이 될 것입니다.
  저는 오늘밤 여러분에게 어느 학교에서도 배울 수 없고, 저 역시도 어느 학교에서도 배우지 않았던 성경에 관한 사실을 알려주려고 합니다. 성경을 바라보는 저의 시각이 다소 파격적이라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저를 그렇게 인도하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몰랐던, 그러나 여러분에게 축복이 될 수 있는
킹제임스성경에 관한 어떤 사실에 대해서 말하려 합니다.

 살아있는 말씀

  성경 어디에서 시작해도 상관없지만, 우선 (데살로니가전서 2:13)에서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이로 인하여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사실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으니, 이 말씀이 믿는 너희 가운데서도 효과적으로 역사하느니라.』
  이 말씀은, 만약 여러분이 구원받았다면 이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분 안에서 역사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이 말씀을 믿지 않는다면 이 말씀은 여러분에게 역사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은, 여러분이 진리를 들었을 때에 그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면, 그 말씀이 여러분 안에서 효과적으로 역사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4:12)을 보겠습니다.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양날이 있는 어떤 칼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 그리고 관절과 골수를 찔러 가르고 마음의 생각들과 의도들을 판별하느니라.』제가 하나님 말씀의 생각과 의도를 판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저의 생각과 의도를 판별합니다. 성경은 이 도시 안에 있는 어떤 신학대학 교수도 판단할 수 있는 그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성경은 여러분이 배우고, 읽고, 또 들었던 그 어떤 것도 비판하고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
히브리서 413’을 보겠습니다.『그 어떤 피조물도 그분 앞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나니...』(이 말씀은 여러분과 여러분의 어머니 그리고 여러분의 교수님까지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어떤 피조물도 그분 앞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분”12절의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말씀”을 마치 한 인격체처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분”을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13절의 “그분”은 문장 속에서 자연스럽게 12절의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양날이 있는 어떤 칼보다도 예리하여...』라고 말씀하실 때, 이 구절의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뜻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 19’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실 때에 그분은 자신의 입을 여시는데, 그의 입에서는 양날이 선 칼인 하나님의 말씀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413’은 말씀이 육신이 된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413’은 “기록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아무것도그분 앞에” 숨겨질 수 없는데, 여기서 그분”이란 인격을 가진 이 책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책은 마치 인격체와 같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혹자는 당신은 “‘종이로 된 절대자’를 가지고 있군요.”라고 말할 것입니다(실제로 어떤 친구가 저에게 그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아멘! 아멘! 그 말도 맞습니다. 적어도 저는 무오하고 흠잡을 수 없는 한 권의 책을 갖고 있으니 말입니다.

  한 번은 어떤 사람이 뉴욕의 한 거리에서, 모자 주위를 빙빙 돌고 있는 광신자를 보았다고 합니다. 그 광신자는 길거리 한 가운데서 모자를 가리키며 이렇게 소리질렀다고 합니다. “저것은 살아있다! 저것은 살아있다! 저것은 살아있다!” 사람들은 그가 바보라고 생각하면서 그 사람 주위로 모여 들었습니다. 그가 계속해서 모자 주위를 돌며 소리 지르기를 “저것은 살아있다! 저것은 살아있다! 저것은 살아있다!”라고 외치자 군중들은 그에게 “무엇이 살아있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모자를 들어 올려 모자 속에 있던 성경을 가리키며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으나, 만약 지금 여러분이 성경을 믿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그 사나이보다 더 미친 사람입니다.
  
(히브리서 4:13)은 분명히『그 어떤 피조물도 그분 앞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나니, 오직 만물이 우리가 회계해야 하는 그분의 눈 앞에 벌거벗은 채로 명백히 드러나게 되느니라.』라고 말하고 있으며, 그분”이 받는 선행사는 분명히 12절의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한 번은 한 카톨릭 신자가 마틴 루터(
Martin Luther14831546)에게 “당신의 종교를 어디서 찾았는가?”라고 묻자, 루터는 “당신의 종교가 지금껏 찾을 수도 없었고, 앞으로도 결코 찾을 수 없는 곳에서 찾았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카톨릭 신자가 “그곳이 어디냐?”고 다시 물으니, 루터는 “그곳은 성경이다. 그 외에 다른 곳은 없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인격화된 성경

  이제 ‘갈라디아서 378’을 보겠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소위 말하는 “성경 경배자”로 나타나며, 바로 이 점이 대학 교수들이 그렇게도 두려워하는 점입니다. 여러분의 헬라어 교수와 히브리어 교수들은, 학생들이 성경을 경배할까봐 몹시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학생들에게 자기들을 경배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성경을 최종권위로 놓는 대신에, 그들은 성경을 고치고 결국엔 학생들이 자기들을 최종 권위로 여기게끔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책에 대해서 위대한 그리스도인 바울은 무엇이라 말했는지 봅시다. 성경경배는 바울을 한 번도 괴롭힌 적이 없습니다.

 7 그러므로 너희는 믿음으로 난 사람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알라. 8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하실 것을 미리 보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파하기를 “네 안에서 모든 민족이 복을 받으리라.”고 하였느니라.』(갈라디아서 3:78). 여기서 바울은 “성경이 미리 보고 있다.”라고 말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책은 미리 볼 수가 없습니다. 미리 볼 수 있다는 것은 뭔가 살아있는 인격적 속성이 있다는 것입니다.8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하실 것을 미리 보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파하기를...』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실 때, 그때 성경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던 창세기를 읽어보십시오. 창세기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그 때에는 쓰여지지 않았습니다. 창세기는 B.C. 1500년 경에 모세에 의해 기록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로부터 훨씬 전인 B.C. 1900년경에 살았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아브라함에게는 성경이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네 안에서 모든 민족이 복을 받으리라.”(8절)고 말씀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여기서 “하나님” 대신에 성경”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입니다. 사실 이 점이 사람들을 늘 두렵게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음, 당신은 책을 경배하는군요.”라고 말하지만, 오해하지 마십시오, 저는 성경 경배자가 아닙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 책은 불태울 수 있지만 하나님을 불태우지는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요한복음 4:24)에서하나님은 한 이시니 그분께 경배드리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경배드려야만 하리라.”고 하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 책에 잉크를 가득 쏟아 이 책을 엉망으로 만들 수는 있지만 하나님을 그렇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압니다. 저는 이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이 책을 우상을 섬기듯 우상화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경배한다는 이 말은 어느 정도 타당한 말일 것입니다.

  배교한 근본주의자들은 “당신이 여기서 말하고 있는 성경은 ‘최초의 원본’을 지칭하는 것이군요.”라고 돌려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원본”이란 말이 없습니다. 누군가가 말하는 “원본에서 말하기를, 원본에서 말하기를...”이라는 말들을 여러분은 성경 어디에서도 결코 읽을 수 없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벌떡 일어서서
“이렇게 번역하면 더 나을텐데...”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들도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말들을 성경 어디에서도 결코 읽어 본 적이 없을 것입니다.
  일부 학자들은
“이런 식의 번역은 빈약한 번역이군요. 이것이 오히려 더 나은 번역본이 아닐까요?”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바울이 그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까, 야고보가 그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까, 요한이 그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마태가 그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까? 모세가 그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까, 다윗이 그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은 왜 “더 나은 번역”이라든지 “최초의 원본”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귀울이게 되는 것일까요? 왜냐하면 그러한 말을 하는 여러분의 마음 깊은 곳에는 여러분 자신이 성경을 판단하고 성경 위에 군림하려는 욕심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들이 여러분의 구미에 맞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기적인 비평들”이 생기면서부터 사람들은 성경을 고치고, 또 고치게 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나는 할 수 있어. 나는 공부할 수 있고, 나는 성경을 고칠 수 있는 머리가 있지. 그리고 나는 최종 권위가 될거야.”라고 중얼거리며 흐뭇해하는 것입니다.

  자, 이제 ‘로마서 917’을 보겠습니다.『성경이 파라오에게 말하기를 “이 목적을 위하여 내가 너를 세웠으니...』여기서는 “성경이 파라오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모세가 파라오에게 말했을 때, 다시 말해서 출애굽기 앞 부분의 상황이 전개될 당시에는 성경이 없었습니다. 모세는 이 사건 이후에 출애굽기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파라오에게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누가 파라오에게 말했습니까? “이 목적을 위하여 내가 너를 세웠으니, 이는 내가 너에게 나의 능력을 보이고...”라고 말씀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바울이 부주의했기에 “하나님” 대신에 성경”이라는 단어를 사용했겠습니까? 바울은 ‘성경 경배자’였음에 틀림없습니다.
  언젠가 우리 학생 중에 한 명이 시내에 나갔다가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은 우리 학생에게
“당신은 럭크만파다. 당신은 사람을 따르고 있습니다.”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우리 학생이 “나는 럭크만을 따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책을 따르고 있을 뿐입니다. 나는 이 책 안에 어떠한 오류도 있지 않다고 믿습니다.”라고 대답하자, 그는 “그것 또한 럭크만이 가르친 것입니다. 나는 그 책에 안에 오류가 있다고 믿습니다. 당신은 럭크만파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오히려 “당신은 사람을 따르고 있다.”라고 말한 그 사람이 하나님대신 사람을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 책 안에서 오류를 발견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저를 따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저는 이 책 안에 오류가 있다고 가르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 책 안에서 오류를 발견할 수 있다면 저는 여러분에게
“당신은 하나님을 따르고 있지 않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누군가는 전능하신 하나님, 또는 성령님이 ‘실수’하셔서, 이 책 안에 오류가 있다고 말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요한일서 57이는 하늘에서 증거하시는 이가 세 분이시니, 아버지말씀성령이시요, 이 세 분은 하나이심이라.』이 성경에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아하시야(Ahaziah)의 나이가 역대기와 열왕기에서 서로 모순된다고 생각할 때마다, 그들의 생각은 성경이 아닌 다른 책에 의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9:17)을 보십시오.『성경이 파라오에게 말하기를 “이 목적을 위하여 내가 너를 세웠으니 이는 내가 너에게 나의 능력을 보이고 또 내 이름이 온 땅에 선포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성경이... 말하기를”“내가 너를 세웠으니...”라는 두 표현에서 바울은 “성경”“나”라는 주어를 상호교환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참다운 과학 교과서

  많은 사람들은 이 책이 과학적이지 않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이 책이 유행에 뒤지고 케케묵은 구식이라고 말하며, 사람들은 이 책이 좀 현대적일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또 사람들은, 이 책은 과학적인 안목도 없고 귀납적 추리력도 없는 사람에 의해서 쓰여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이들이 얼마나 제한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누가복음 1731’을 보면『그 날 낮(day)에 지붕 위에 있는 사람은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고,...』라고 “낮”(day)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34을 보면『...그 밤(night)에는 두 사람이 한 침상에 있다가 한 사람은 데려가게 되고 한 사람은 남게 되리라.』고 말하여 밤”(night)을 말하고 있습니다 낮과 밤이 동시에 나타나는 것이다. 여러분은 물론 지구상에는 지역에 따라 하루에 낮과 밤이 동시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성경을 기록한 누가가 그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동시에 낮과 밤이 생길 수 있습니다. 1500년대까지 사람들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1500년대까지는 과학자들이 몰랐던 사실을 어떻게 누가가 기록했는지 설명할 수 있습니까? 누가는 어떻게 지구에 낮과 밤이 동시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까요? 1500년대까지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여러분은 아십니까? 그들은 바로 과학자들과 교육자들이었습니다.
  또 ‘
이사야 40’을 보겠습니다. 낮과 밤이 동시에 있을 수 있다고 알았던 사람은 단지 누가만이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예수님께서 오시기 800년 전에 살았던 이사야도 역시 이 진리를 알고 있었습니다.
 21 너희는 알지 못하였느냐? 너희는 듣지 못하였느냐? 태초부터 너희에게 전하지 아니하였느냐? 땅의 기초들이 설 때부터 깨닫지 못하였느냐? 22 원형의(원형! 원형!) 지구 위에 앉으신 분이 그분이시니 그곳의 거민들이 메뚜기 같으며, 하늘들을 휘장같이 펼치셨으며 그 안에 거할 장막처럼 펴셔서,』(이사야 40:21, 22)
  성경은 지구가 둥글다고 말합니다. 과학자들은
1416세기까지 지구가 평평하다고, 또는 네모지다고 말했으나, 오직 성경만은 지구가 둥글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이는
“요한계시록에는 지구에 네 개의 모퉁이가 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라고 질문할 것입니다.(요한계시록 71 the four corners of the earth/이사야 1112/에스겔 72) 물론, 지구는 네 개의 모퉁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지리적 상식을 가지고 있다면, 각기 다른 곳에 네 개의 귀퉁이가 있는 지구의 사진을 실은내셔널 지오그래픽(The National Geographic)이라는 잡지를 보았을 것입니다. 성경은 지구가 네 개의 모퉁이를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 즉, 북쪽, 남쪽, 동쪽, 그리고 서쪽. 그러나 여러분의 나침반에도 역시 네 개의 모퉁이가 있습니다. ─ 북쪽, 남쪽, 동쪽, 그리고 서쪽.
  어떤 사람은 성경에서 지구가 네 개의 모퉁이를 가지고 있다고 했기 때문에 성경이 과학적이지 않다고 말하나, 한 번은 우체국에서 해군 모집 안내를 보았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씌어 있었습니다.
“해군은 지구의 네 모퉁이에서 미국을 지킨다.” 성경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어휘로 설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러한 성경을 비과학적이라고 말하지만, 성경은 과학적입니다. 단지 사람들이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하는 것뿐입니다.
  또 한 번은 어떤 사람이
“성경은 해가 뜨고, 해가 진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해가 뜨고 지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도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신문을 가지고 있습니까?”라고 묻자, 그는 “예”하며 신문을 꺼냈습니다. “해가 언제 뜹니까?”라는 저의 질문에, 그는 생각하지도 않고 신문에 쓰여진 말 그대로 제게 인용했습니다. “해군 기상청에 의하면 해는 00시에 뜨고 00시에 진다는데요.”
  아시겠습니까? 성경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표현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결코 성경을 이길 수 없습니다.

  자, 그럼 이제 ‘전도서 16’을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제가 여러분에게 설명해 주려는 것이 오직 이 한 권의 책(킹제임스성경King James Bible 1611)만을 사용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그 어떤 “새로운” 역본을 가지고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며, 오직 이 한 권의 책에만 밀착할 것입니다.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계속해서 돌며 불다가 그 순환을 따라 다시 돌아가는도다』(전도서 1:6). 그러나 사람들은 바람의 규칙적인 순환 또는 대류할 때의 순환궤도 등에 관해서 B.C. 400, 300, 200, 100년까지는, 아니, A.D. 100, 200, 300, 400년에 이르기까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비행장에서 일하는 기상요원에게 물어보십시오. 그가 ‘전도서 16’에 대해 설명해 줄 것입니다.
 『모든 강물은 바다로 흘러가나 바다는 여전히 채워지지 않으며, 강물들은 발원한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도다』(전도서 1:7). 솔로몬은 물이 바다로 흘러가는 것과 다시 강으로 흘러 들어와서, 또 다시 강으로 흘러 내려 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누군가가 증발과 응결에 대해 공부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아무도 이 진리를 믿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사실들을 공부했기에 “물은 위로 올라갔다가 육지로 내려옵니다. 구름은 빗방울을 몰고옵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B.C. 1000년에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았을까요? 왜 과학자들은 성경보다 항상 500년에서 1000년 이상을 뒤떨어져 있습니까? 여러분은 언젠가는 과학자들이 성경을 앞설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과학이 알지 못하는 많은 사실들을 우리는 성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성경을 알지 못한다면, 아직 과학이 발견하지 못한 사실들을 성경에 입각해서 설명해준다고 할 때, 여러분은 그것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 제가 여러분에게 여기에서부터(미국 남부의 플로리다
Florida 주(州)를 말함.) 북쪽에 위치한 알파 드라코니스(Alpha Draconis), 즉 북극성 너머에 태평양보다 1500만 배나 큰 거대한 대양이 있으며, 우리가 휴거될 때 그곳을 통과하여 올라가게 된다든지, 또 그 곳에 새 예루살렘이 있다든지 등의 이야기를 한다면 여러분은 그 말들을 농담으로 여길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너무 과학적이기 때문이겠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정말로 성경에 정통하다면, 여러분은 과학을 훨씬 뛰어 넘어서 과학보다 훨씬 앞서있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여러분을 결코 따라잡을 수 없을 것입니다.

  페스트가 유럽을 휩쓸어(A.D. 1300), 죽은 시체를 치울 사람마저 충분하지 못했을 정도로 수많은 목숨을 앗아갔던 유럽의 암흑기 때, 유대인들은 사상자가 거의 없이 그 시기를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그 흑사병을 퍼뜨린 장본인으로 비난을 받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무사히 이 위기를 넘길 수 있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그들의 식생활 규범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레위기에서 또 다른 이유를 찾아 볼 수 있는데, ‘레위기 1513’이 그것입니다.
 『유출병이 있는 자가 자기 유출병이 깨끗해지면, 자기의 깨끗함을 위하여 칠 일을 헤아려서 자기 옷을 빨고 흐르는 물에 자기 몸을 씻을 것이니 그리하면 깨끗하게 되리라』(레위기 15:13). 18세기 후반에 와서야 비로서, 내과의사들과 외과의사들은 세균을 씻어내기 위해 흐르는 물에다가 손을 씻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때까지 의사들은 대야에 받아 놓은 물에 손을 담그어 씻고, 그리고 다시 대야에 손을 담그어 씻곤 했으나, 환자들은 계속해서 감염됐고 집단으로 탈저병이 생기고, 결국 팔을 잃고 그리고 손, 발을 절단해야만 했습니다. 그 후에 누군가가 물이 흐르도록 내버려 두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들은 그제서야 상처 부위를 흐르는 물에 씻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읽은 이 ‘레위기 1513’은 주님이 태어나시기 1400년 전에 쓰여졌으므로, 이 일은 지금으로부터 3200년 전의 일입니다. 3200년이 짧은 시간이라고 생각합니까? 만약 여러분이 과학자라면 여러분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을 이해하는 데만도 어려움을 느낄 것입니다.

  ‘욥기 376’을 보겠습니다. 욥기는 B.C. 1800년에 쓰여졌습니다. 욥기는 또한 성경에서 가장 오래된 책이며, 아마도 모세가 태어나기 전에 쓰여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그분이 눈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땅에 있으라.‘ 하시며 작은 비와 그의 힘을 보여주는 큰 비에게도 이같이 하시느니라』(욥기 37:6).
  하나님께서는 강설량과 강우량도 살피십니다. 하늘에서 눈이 내릴 때 각각의 눈송이는 서로 다릅니다. 캐나다에서 볼 수 있는 23m나 내리는 눈이라 할지라도 모양이 같은 단 한 쌍의 눈송이(눈의 결정을 말함)도 찾을 수 없다고 들었습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진화론자라면, 이 사실 하나만 연구하려고 해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어떻게 그것을 해결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7에 보면『그분이 각 사람의 손을 봉인하시나니 이는 모든 사람으로 그의 역사를 알게 하려 하십이라.』라고 되어있습니다. 제가 어떻게 그것이 다윈이 한 일도 아니고 대자연의 섭리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하신 일인지를 알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제 손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제 손을 봉인하심으로 제가 그의 역사를 압니다. 제가 어떻게 그의 역사를 알겠습니까? 저는 저의 손을 보는데, 저의 지문은 여러분의 것과 같지 않습니다. 우리의 지문들은 눈송이처럼 각각 다릅니다. 각각의 눈송이가 서로 다른 것처럼, 제 손 또한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지음 받은 것입니다.『그분이 각 사람의 손을 봉인하시나니...』
  눈송이의 모양이 다르고 사람의 지문이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떻게 사람들은 진화론자가 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뿐 아니라 사람들은 한 쌍의 이빨과 발가락도 서로 같은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때 진화론자들의 변명은
“그러나 인종끼리는 같다.”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종은 물론이고, 개개인 조차도 전혀 다르게 생겼다는 것을 아십시오. 세상에는 똑같이 생긴 두 사람은 없습니다. 진화론자들은 설명하기를 “일종의 무분별한 혼합체에서 출발하여, 점차적으로 일종의 일시적인 먼지상태로 진화한 다음, 그 먼지 상태의 운동에 의해서 비로소 화학 작용이 시작된 후, 등등...”이라 합니다.
  왜 사람들은 이런 말도 안되는 것을 믿는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일까요? 저에게는 그만한 믿음은 없습니다. 저는 그런 믿음을 결코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이 엉터리 같은 말을 하는 것 보다는 차라리
“하나님께서 그것을 만드셨습니다.”라고 말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너희 뿔을 높이 들지 말고 곧은 목으로 말하지 말라』(시편 75:5). 이 세상에 이 말씀이 좋은 충고라는 것을 모르는 음악 선생은 없을 것입니다. 이 ‘시편 755’을 누가 말했는지 그는 곧은 목으로 말하면 여러분의 목청이 망쳐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말하고 노래할 때 그 소리는 횡경막을 통해서 나오는데, 그러려면 목이 느슨해야 합니다.『곧은 목으로 말하지 말라.』그러나 1800년에서 1900년 사이에는 이러한 사실을 몰랐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성경만 읽었다면, 자기들의 목소리를 보호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은(heart) 지방처럼 기름졌으나 나는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시편 119:70). 여러분은 심장(heart) 주위에 지방이 있다는 것을 들어보았습니까? ‘창세기 4228’에서는 야곱의 아들들의 마음(hearts)이 내려 앉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마음이 내려 앉았다는 것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시편에서 성경은, 이것을 위해서는 포도주를, 저것을 위해서는 기름을, 그러나 사람의 심장(마음)을 위해서는 “빵”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겨우 70년 전에야 밀가루 빵에 들어있는 비타민-E가 여러분의 심장 근육에 좋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사람들이 성경만 읽었다면 그들은 좀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의 용사들의 방패가 붉게 되었고 용사들은 주홍색이 되었으며, 병거들은 그의 예비의 날에 불타는 횃불과 함께 있을 것이며 전나무들은 몹시 흔들릴 것이라』(나훔 2:3). 말씀 그대로 주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에, 또는 그가 다시 오시려고 준비하시는 그 때에, 그의 예비의 날에, 병거들은 불타는 횃불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또 4에 보면『병거들은 거리에서 사납게 달리며 넓은 길에서 이리저리 헤치며 가리라. 그들은 횃불같이 보일 것이요, 그들은 번개같이 달리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어떤 사람은 “음... 글쎄, 병거라면...”이라고 둘러댈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포드 V-8이나, 머스탱(Mustang)이나, 또는 GM이라고 말씀하시면 그것을 누가 이해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기록하실 때는 아주 평범한 말로 그 어떤 바보도 다 이해할 수 있게끔 기록하십니다. 또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그렇지만 좀 현대적이며 과학적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하나님께서 “포드 승용차가 도요타 승용차를 꽝 부딪힐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셨다면 1800년대에 누가 그것을 이해할 수 있었겠습니까? 제가 (나훔 234)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자동차로 과장해석했다고 생각한다면 이사야서를 보십시오. 나훔과 이사야서를 누가 썼든지 간에 그는 1900년대에 아무도 몰랐던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사야서 9:5)에서 예수님의 재림 전에 일어날 전쟁에 대해 말할 때『이는 용사의 모든 싸움이 혼란스런 소리와 피묻은 의복과 함께 있으나 이것은(이 전쟁은) 타는 것과 불의 연료(fuel of fire-!)와 함께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이 사실을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닐까요?” 자, 우리는 잠시 후에 이러한 우연의 일치를 볼 것입니다.

  (욥기 25:5)을 보십시오.『달을 쳐다보라. 그것이 빛나지 않으며(it shineth not) 정녕, 별들도 그분이 보시기에는 깨끗하지 못하거늘』그렇습니다. 달은 빛나지 않고 반사할 뿐입니다. 사람들은 달이 빛나지 않고 단지 반사할 뿐이라는 사실을 A.D. 800년에도 몰랐습니다. 왜 사람들은 욥기를 읽지 않았을까요? 욥기는 B.C. 1800년에 쓰여진 책입니다. 여러분은 아마도 그 당시 사람들이 성경이 아닌 다른 것에 집착하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디모데전서 620)에서『거짓되이 일컬어지는 과학(science falsely so called)』이라고 성경이 경고하는 이유입니다. 이 세상의 신은 “섹스와 돈과 교육”입니다. 언제든지 여러분이 섹스와 돈과 교육을 선택한다면 여러분은 성경을 내려놓게 되는 것이며, 그 후엔 잘못된 길에 들어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독교 교육은 어떻습니까?”라고 묻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기독교교육 또한 비성경적입니다. 지금까지 어느 면으로 보나 기독교 고등교육은 비성경적 교육이었습니다. 배교한 근본주의자들은 “나는 근본주의를 믿는다.”라고 말하겠지만, A.D. 325년의 니케아 공회에서도 기독교 고등교육을 받은 “근본주의자”들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알렉산더 히슬롭(Alexander Hislop18071865)이 쓴두 개의 바빌론The Two Babylons을 읽어본다면 기독교 믿음의 소위 “근본주의적 모든 요소들”이 예수님 탄생 이전에 이교도에서도 가르쳐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종교가 다른 종교와 구분되는 유일한 점은, 여러분이 이 성경책 밖에 있는 어떤 사실을 믿고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영혼을 맡길 수 있는 권위있는 책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사실은 너무도 분명합니다. 이교도들의 종교에 따르면 탐무스(
Tammuz)는 죽었고, 묻혔으며, 다시 살아났습니다. 아폴로(Apollos)도 죽었고, 지하세계에 갔다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시기 이전에 이미 동정녀 탄생의 설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알렉산더와 그 외에 다른 사람들). 그러나 우리가 이교도와 구분되는 점은 어떠한 실수나 오류가 없는 진리의 책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빛이 거하는 길은 어디냐?(Where is the way where light dwelleth?) 흑암이 있는 자리는 어느 곳이기에』(욥기 38:19). 왜 그는 사악한 NASV(새미국표준역본)처럼 “빛이 거하는 곳은 어느 장소냐”고 묻지 않았을까요? 왜냐하면 아무도 빛이 있는 장소를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빛은 항상 움직입니다. 그래서 욥은『...길은 어디냐?』고 묻는 것입니다. 어떻게 욥은 빛이 항상 움직인다는 것을 알았을까요? 아인슈타인은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네가 눈의 보고 속으로 들어갔느냐? 아니면 네가 우박의 보고를 보았느냐?』(욥기 38:22). 욥은 또 눈과 우박의 “보고”(treasures)를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이 말씀은 비유적인 것이 아닐까요?”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슈트 박사(Dr. Schutt)는 2피트의 눈은 에이커 당 8달러 14센트 어치의 질산칼슘과 암모늄, 그리고 단백질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동풍을 땅 위에 흩어지게 하는 그 빛이 어느 길로 갈라지겠느냐?』(욥기 38:24). 빛이 갈라진다는 것은 분광기로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이전에 누가 이 사실을 알았겠습니까?
 『네가 번개들을 보내어 그들로 가서 네게 말하기를 ‘우리가 여기 있나이다.‘ 하게 할 수 있느냐?』(욥기 38:35). 이 일은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17061790)이 해냈습니다. 그는 빛을 가지고 씨름하기 시작했으며, 그리고 또 누군가가 전기를 가지고 씨름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전화기를 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여기 있나이다.” 이 사실을 여러분은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욥이 빛이 말할 수 있다고 말한 사실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종교개혁 이전까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말씀들(Words)을 삭제하지 말라

  이제 (요한계시록 22:19)을 보겠습니다.『또 누구든지 이 예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삭제하면 하나님께서 생명의 책과 거룩한 도성과 이 책에 기록된 것들에서 그의 부분을 제하여 버리시리라.』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또 누구든지 이 예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삭제하면...』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은 메세지에서도 아니고, 근본 요소에서도 아니고, 진리들에서도 아니며, 오직 “말씀들”에서 삭제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완전한 성경적 교리입니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당신은 원본의 말씀을 가질 수 없어요. 왜냐하면 원본은 헬라어로 쓰여졌고 그리고 번역과정에서 많은 말씀들을 잃어버렸죠. 그 뿐 아니라 번역과정에서 많은 말씀 또한 첨가되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원본의 정확한 뉘앙스를 잃어버릴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어떤 이들은 “그렇다”라고 말합니다. 아마도 주님은 원본의 정확한 뉘앙스를 여러분이 가지고 있지 않기를 원하시나 봅니다. 아마도 주님은 여러분이 영어의 정확한 뉘앙스를 갖기를 원하시나 봅니다.
  한 번은 어떤 친구에게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만약 오늘밤 이 설교 시간에 내가 최초의 원본을 가지고 있다 해도, 나는 당신에게 그것을 설교하지 않을 것이다.” 이 말은 진심입니다. 만약 주의 천사가 나타나, “자, 여기 원본이 있네.”라고 말할지라도 저는 여러분에게 원본을 설교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설교하려고 하는 것은 바로 이것,킹제임스성경입니다. 저의 이런 말에 어떤 무리들은 야유를 할 것입니다. “우우우...” 왜 그들이 야유하는지 여러분은 아십니까? 왜냐하면 그들은 우상숭배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말씀이 적혀진 바로 그 ‘종이’를 숭배합니다. 원본, 원본, 원본... 원본만을 찾는 이 미신적인 숭배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그 말씀을 거절하기 위한 은폐수단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점을 주시해야 합니다.

 46 너희가 모세를 믿었다면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나에 관하여 기록하였기 때문이라. 47 그러나 만일 너희가 그의 글들을 믿지 않는다면 어떻게 나의 말들을 믿겠느냐?”고 하시니라.』(요한복음 5:46, 47).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은 하나님의 말씀들을 말씀하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라』(요한복음 3:34).
  만일 여러분 중 몇 분이 이 설교를 지루해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의 정확한 의미를 알지 못할 뿐더러 성경의 정확한 의도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타임지나 주간 잡지, 혹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같은 소설이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장악하고 있으며, 그런 것들로만 물들어 있기에, 여러분의 인생이 어디에 와 있는지 조차도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훌륭한 책을 지금 여러분의 무릎 위에 올려 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것을 과소평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오랫동안 덮어두었던 성경을 꺼내 먼지를 털고 읽기 시작한다면, 그 먼지는 플로리다에 있는 모든 농작물을 뒤덮어버릴 것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들을 지키리니 그러면 나의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며, 또 우리도 그에게 와서 우리의 거처를 그와 함께 정하리라.』(요한복음 14:23). 만일 여러분이 “나는 그것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생각한다면, 지금 여러분이 어디에 와 있는지 보겠습니다. 자, 여러분의 생각을 간파할 수 있는지 알아봅시다. 이 책이 사람들을 얼마나 난처하게 만드는지 여러분은 살펴본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이 책을 가지고 나가면 사람들의 태도는 바뀌기 시작하고, 어색해하고 불안해집니다. 여러분이 만약 성경을 가지고 공항에 가면 사람들은 여러분을 머리가 셋 달린 괴물처럼 바라볼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묻기도 합니다. “당신은 어떻게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알 수 있소?” 여러분은『성경』이 사람들을 얼마나 난처하게 만드는지 알고 있습니까? 여러분 중 몇 분은 여덟 살, 아홉 살, 아니 열 살 때까지는 그래도킹제임스성경을 학교에 가지고 다니신 분도 있었을 것이나, 중고생이 되고 나서는 성경을 가지고 다니는 일을 그만 두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이유를 아십니까? 그 이유는 말씀에서 오는 너무 많은 압박 때문입니다. 왜 압박이 오는 것일까요? 그것은 여러분이 올바른 책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하지만, 만약 여러분이 ‘뉴스위크’‘타임즈’‘굳뉴스 바이블’을 가지고 다닌다면, 여러분을 괴롭힐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만약킹제임스성경을 가지고 다닌다면... 아시겠습니까?
 『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나와서 너희 아비의 정욕을 행하고자 하는도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였으며 진리 가운데 거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자기 안에 진리가 없음이라. 그가 거짓말을 할 때는 자신에게서 우러나와 한 것이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또 거짓말의 아비이기 때문이라.45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46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에 대해서 힐책하겠느냐? 그러나 내가 진리를 말하는데 어찌하여 너희는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47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들을 듣느니라. 너희는 하나님의 말씀들을 듣지 아니하나니, 이는 너희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지 않음이라.』(요한복음 8:4447).

  자, 이제 여러분은 이해하시겠습니까? 이 구절들에서 본 것처럼, 만약 여러분이 주님을 사랑한다면 여러분은 그분의 말씀들을 지킬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분의 말씀들이 가치가 없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이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조차 증명할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영감으로 책을 기록하시고 또한 그 책을 우리에게 주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너무 약하셔서, 혹은 너무 피곤하시고 무기력하셔서 그 책을 보존할 능력이 없다고 진정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 길거리 어딘가에 하나님의 말씀을 잃어버리고 포기하셨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약 그분이 영감으로 말씀을 기록하실 능력이 있다면, 마땅히 말씀을 보존하실 능력 또한 있으신 것입니다. 제가 즐겨 다니던 술집과 댄스파티에서 저를 끌어내시어 하늘의 도성으로 저를 불러주신 전능하신 그 하나님께서 저에게 “가서 말씀을 전파하라.”고 하시면서, 그 분께서 설교할말씀』은 주지 않으셨다면 말이 되겠습니까? 형제여,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그 말씀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여기 제 손 안에 있는 이 책입니다.
  누군가가 그것은 단지 원본의
‘번역본’일 뿐이라고 하지만, 그들은 그런 말을 할 권위를 어디서 허락받았습니까? 저는 언젠가 최초의 원본이 어떻게 영감받았는가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책에서 그 저자가 인용한 성경구절은 모두킹제임스성경에서였습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이런 일을 이해하겠습니까? 최초의 원본이 영감받았다는 증거가 바로 이킹제임스성경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는 이 책을 인용할 수 있겠습니까? 이 책은 원본이 아닙니다. 원본을 말하는 사람들은 정말 우습지 않습니까?

 섭리적 손길

  여러분은 이 책을 더 공부할수록, 이 책이 점점 더 이상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이킹제임스성경의 서문을 보면 “믿음의 옹호자이신, 지극히 높으시고 위대한 통치자 제임스 국왕 폐하께”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이런 헌정사가 없는 성경을 가지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헌정사는 있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지극히 높으시고 위대한 통치자 제임스 국왕 폐하께...”. ‘제임스’(James)라는 말이 어디서 왔는지 아십니까? 여러분 중 제임스라는 단어가 헬라어와 히브리어로 무엇인지 아는 이가 있습니까? 제임스는 영어가 아닙니다. 제임스는 야고보(야곱)라는 히브리 이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고보(야곱)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영국 왕이 될 때까지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사용하셨습니다. “지극히 높으시고 위대한 통치자 야곱 왕. 왜냐하면 야곱은 이스라엘의 왕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이스라엘의 책입니다. 이 성경의 모든 저자는 유대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자베스 여왕이나, 조오지가 왕권을 행사할 때, 그들에게 하나님의 온전한 말씀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제임스 왕에게만 하나님의 온전한 말씀을 “허락”하셨고, 또 왕의 말이 아니라면 성경 어디에도 권위가 없다는 것을 나타내신 것입니다[왕의 말이 있는 곳에는 권위가 있나니, 누가 그에게 말하기를 “당신은 무엇을 하나이까?”라고 할 수 있느냐? ─ Where the word of a king is, there is power: and who may say unto him, What doest thou? (전도서 8:4)]. 여러분은 이러한 것에 대해서 잠깐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킹 제임스”(King James)는 아홉 글자입니다. “홀리 바이블”(Holy Bible)도 아홉 글자입니다. 성경에서 아홉이라는 숫자가 무슨 의미를 갖는지 여러분은 아십니까? 아브라함이 99세때, 그는 과실을 맺고 열매를 얻었으며, ‘창세기 9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열매를 가지고 가서『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다시 채우라』고 말씀하셨고(창세기 91), 갈라디아서(정말 우연인지도 모를 신약의 9번째 책)에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단순히 우연의 일치이겠습니까? 그럴리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열매 맺는 삶을 원한다면, 바로 이 책이 여러분이 읽어야 할 성경입니다. 그 옛날 사람들이 이 성경을 가지고 설교할 때, 그들은 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했습니다(그들은 정말 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하고 설교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성경은너희는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게 되리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마태복음 716).
  어떤 이는
“나는 ASV(American Standard Version)를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그 열매가 무엇입니까? 또 어떤 이는 “나는 확대역본(Amplified Version)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합니다. 그 열매가 무엇입니까?너희는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게 되리니』.
  세계 교회사에서 보여주는 전도와 복음 전파가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1600년부터 1900년 사이였습니다. 이 때가 바로킹제임스성경이 읽혀지던, 바로 그 때였습니다.너희는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게 되리니』.

  또 하나 살펴보겠습니다. 이사야서는 66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성경도 66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사야서는 누구나 명백히 알 수 있듯이, 39장에서 나뉘어집니다. 그것 때문에 어떤 학자들은 이사야서를 쓴 저자가 서로 다른 두 사람이라고까지 생각하고, 그래서 그들은 “제2 이사야설”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것은 거짓 이론이지만, 어쨌든 이사야서는 39장에서 나뉘어지고, 성경도 39권째 책에서 구약과 신약으로 나뉘어집니다. 어떻게 이사야는 정경이 다 완성되기도 전에 정경과 똑같이 그의 책 이사야서를 어디서 나누어야 하는지 알았겠습니까? 어떤 이는 이렇게도 말합니다. “글쎄 그건, 그들이 나중에 고치지 않았을까요?” 과연 그들이 그랬을까요? 한 가지 물어보겠습니다.
  성경의 맨 첫 번째 책은 이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창세기 1:1). 그리고 ‘이사야서 1’에서는오 하늘들이여, 들으라. 오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로 예언이 시작됩니다(이사야 12a)
  성경의 맨 마지막 책에서는 말하기를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하였고(요한계시록 211), ‘이사야 66’에서는 말하기를가 말하노라. 내가 만들 새 하늘들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는 것같이, 너희 씨와 너희 이름도 항상 있으리라.하였습니다(이사야 66:22).
  꽤 근사한 추측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한 가지 더 물어보겠습니다. 만약 그들이 정말 말씀을 나중에 고쳤다면, 성경의
40번째 책이며, 또한 신약의 첫 번째 책에서 말하기를『...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음성이 있어 ‘너희는 의 길을 예비하고 그의 길들을 곧게 하라.’...』(마태복음 33b) 한 것과, ‘이사야 40’에서『○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음성이 있어 “너희는 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곧게 하라.(이사야 40:3)고 말한 것도 꽤 근사한 추측이라고 보겠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이사야서 첫 장과 성경의 첫 번째 책이 일치하도록, 그리고 이사야서 마지막 장과 성경의 마지막 책이, 또 서로 중간 부분이 일치하도록 짜맞추어 넣었다고 생각하면, 성경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었다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여러분의 주장은 그럴 듯 합니다.
  또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같은 현상은 다른 번역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자들은 좀 부끄러워 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다른 책들은 이런 현상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히브리 구약성경은 이렇게 일치되는 현상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정통 히브리 구약성경은 신약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유대인 구약성경은 66권이 아닙니다. 그리고 히브리 구약성경은킹제임스성경과 순서가 다릅니다. 다른 많은 번역본들이킹제임스성경과 순서가 같은 것은 그 번역본들이 이 성경을 모방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서 어떤 이는 “킹제임스 성경은 70인역(LXX) 이후에 그 책의 목차가 정해진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70인역은 구약성경에 외경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킹제임스성경70인역으로 인해서도, 히브리 구약성경으로 인해서도 그 책의 목차가 정해진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정해진 것입니까? 좋은 질문입니다! 무엇을 따라서 성경책의 순서가 정해졌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성경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성경책의 순서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역대기하를 보십시오. 역대기하 마지막 장 끝부분에서, 유대인들은 포로로 사로잡힙니다. 유대인의 포로생활은 바로 거기서 시작됩니다. 그들은 포로생활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읍을 재건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역대기하 다음 책인에스라에서 그들은 고국으로 돌아옵니다. 그 다음 책인『느헤미야에서 유대인들은 성읍을 재건합니다. 그 다음은에스더』,『욥기』,『시편으로 계속되는데, 자 그러면 이러한 성경의 순서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역대기하에서 유대인들은 A.D. 70년에 그랬던 것처럼 포로생활을 합니다. 그 다음책에스라에서 유대인들은 1914년에 그랬던 것처럼 포로생활에서 다시 돌아옵니다. 그 다음 책『느헤미야에서 유대인들은 1948년에 그랬던 것처럼 다시 나라를 세웁니다. 다음 책에스더를 보십시오. 에스더 1에서는 결혼식과 파티가 왕의 정원에서 칠일 낮, 칠일 밤 동안 열립니다. 그 다음 책인욥기를 보십시오. 욥기에서 욥은 땅 위에서 마귀에게 칠일 낮, 칠일 밤을 박해받습니다. 여러분은 이 욥기가 몇 장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아십니까? 욥기는 42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대환란의 후반부 42개월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욥기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여러분은 아십니까? 마귀는 욥을 박해했으나, 욥기 마지막에서 하나님께서는 욥을 사탄의 포로에서 놓아주셨습니다. 앞으로 의 날”(the day of the Lord ─ 이것은 현재, 그리스도인이 경배드리는 날인 ‘일요일’을 말하는 것이 아님.)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적그리스도의 포로로부터 돌이키실 것입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이 늙은 욥은 이 책의 마지막에서 그의 아이들까지 되돌려 받습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도 그 날에 민족적인 부활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 다음 책인시편을 보십시오. 시편에서는 다윗이 부각되는데, 다윗은 이 땅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어떻게 이러한 사실들을 설명하겠습니까? 히브리 원본도 이 순서로 되어있지 않습니다. 맛소라 원본도 이 순서로 되어있지 않습니다. 70인역도 이 순서로 되어있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킹제임스성경에만 허락하신 성경의 순서입니다. 그래서 이 책이 최초의 원본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형제여! 이 책의 순서는 최초의 원본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성경의 목차는킹제임스성경에만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원본만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을...”하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에게 오직 원본만 있었더라면 아직도 여러분은 박쥐처럼 장님이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계시의 말씀은 학자들만을 위해서 쓰여진 것이 아닙니다.

  자, 그러면 성경을 펴고 진도를 조금 더 나가 보겠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그러므로 여러분이여, 기운을 내라. 나는 하나님을 믿나니 나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사도행전 27:25).(민수기 23:19)은 이렇게 되어있습니다.『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하지 않으시며, 또 사람의 아들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그분이 말씀하신 것을 행하지 않으시랴? 또한 이르신 것을 이루지 않으시랴?
  어떤 이는 “당신은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이오.”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옳습니다. “당신은 성경 광신자요.” 그렇습니다, 옳습니다. 저에게는 그 말이 전혀 기분 나쁘게 들리지 않습니다. 여러분에게는 그 말이 기분 나쁘게 들릴지 모르지만, 여러분 또한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 성경 광신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은 너무 성경을 높이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아직도 성경이 마땅히 높임 받아야 할 그 만큼은 높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 9:5)을 잘 들어보십시오.그때 레위인들, 예수아와, 캇미엘, 바니, 하삽냐와, 세레뱌, 호디야, 세바냐, 프다히야가 말하기를 “너희는 일어서서 너희 하나님을 영원 무궁토록 송축할지어다. 모든 송축과 찬양 위에 높임을 받으시는 주의 영광스러운 이름을 송축하나이다.모든 송축과 찬양 위에 높임을 받으실 그의 이름은 모든 무릎이 꿇고, 모든 머리가 절하며, 모든 혀가 마땅히 고백해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빌립보서 210, 11). 그런데 (시편 138:2)을 보십시오.내가 주의 거룩한 전을 향하여 경배하고 주의 자애하심과 주의 진리를 인하여 주의 이름을 찬양하리니, 이는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 위에 크게 하셨음이니이다.
  배교한 근본주의자들은 이 말씀 앞에서 할 말이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예수님을 경배한다고 이야기하는데, 성경은
“하나님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 위에 크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은 이 책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있습니까? 제가 만약 여러분에게 지금 당장 일어서서 결혼과 이혼에 관한 성경구절을 네 구절만 찾으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할 수 있겠습니까?(물론 찾을 수 있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음식에 관한 구절을 다섯 구절만 제게 찾아 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성경 안에 있습니다. 스포츠에 관한 구절을 세 구절만 찾아 달라고 하면 여러분은 할 수 있겠습니까?(물론 이 구절들도 찾을 수 있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만약 지금까지 사탄이 스포츠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면 이제 성경을 통해서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구원받았고, 또한 이 책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여러분에게 이 책을 그의 아들의 이름 위에 높이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이 말씀을 가지고 여러분은 무엇을 하겠습니까? 이 말씀에 대해서 여러분은 아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1611년판 권위역본(Authorized Version),킹제임스성경31,175구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중 정 가운데 구절인 (시편 118:8)사람에게 신뢰를 두기보다 를 신뢰하는 것이 나으며(It is better to trust in the LORD than to put confidence in man)라고 되어있습니다. 또 이 열네 개의 단어를 둘씩 일곱으로 세어볼 때 정 가운데 있는 두 단어는”(the LORD)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책의 정 가운데 두 단어가 라고 쓰여진 책은 이 세상에 한 권밖에 없습니다. 오직킹제임스성경한 권 외에는 이러한 현상이 없습니다. 그 책을 지금 제가 제 손 안에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헬라어 원본도 아니며, 히브리 원본도 아닙니다. “새미국표준역본(NASV)도 마찬가지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나,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새미국표준역본은 적어도 네 구절 이상이 삭제되었기 때문에 새미국표준역본의 정 가운데 있는 구절은 ‘시편 1188’이 될 수 없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들고 있는 이 책과 똑같은 책이 있다면 제게 보여주십시오. 이 책과 바꾸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31,175구절이 있고 책의 정 가운데 위치한 단어가 라고 쓰여진 책이 있다면 제게 가져오십시오. 이것이 우연이라고 말하겠습니까? 만약 그렇게 말한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식으로라면 여러분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성경의 페이지 수를 세고, 단어를 세고 하는 이러한 작업들을 제가 억지로 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또한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제게 만약 원본이 있다면 이런 이야기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가르칩니다. 저는 키텔의 구약성경 비평장치와 네슬의 신약성경 비평장치도 있고, 또 저는 티쉔돌프와 트레겔레스, 라흐만, 그리고 그리스바흐 등등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책들이 지금 이 책상에 있다고 해도 저는 이 성경을 여러분에게 줄 것입니다. 이 책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생명의 양식입니다.

 이 책을 읽으라.

  이제 ‘사무엘상 3’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을 사용하시는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무엘상 3’을 읽는 동안 말씀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표시해 보도록 하십시오.

【 사무엘상 3:1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를 섬기더라. 당시에는 말씀이 귀하여, 환상은 나타나지 않았더라.─ 여기에서는 주의 말씀을 얻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또아모스에서는, 언젠가는 말씀의 기갈이 올 것이라고 예언합니다(아모스 811).
【 사무엘상 3:7 사무엘이 아직 를 알지 못하였고, 말씀이 아직 그에게 계시되지도 아니하였더라.
【 사무엘상 3:19 『○ 사무엘이 성장하니 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분의 말씀들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더라.
【 사무엘상 3:21 께서 실로에 다시 나타나셨으니, 이는 께서 실로에서 사무엘에게 말씀으로 자신을 나타내셨음이더라.』

  여러분이 구원도 받았고 하늘나라로 갈 사람들인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마땅히 알아야 할 만큼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있었던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그것은 여러분이 마땅히 알아야 할 이 책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위의 ‘사무엘상 3’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그 자신을 계시하실 때는 이 책을 통해서 계시하십니다. ‘사무엘상 321’에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는 어느 교리문답서에서 “이 책을 무시하면 그리스도를 무시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를 동일시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 둘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제 말은 그리스도가 인격과 신격의 두 개의 격(格)을 가지고 계시듯이, 이 책 또한 그렇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구원하실 수 있듯이 이 책 또한 여러분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너희 혼들을 구원할 수 있는, 심겨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야고보서 121b). 주님과 성경은 둘 다 살아있고, 같이 사랑받고, 같이 미움받으며, 또 둘 다 썩지 않습니다. 이들은 이렇듯 가깝지 않습니까!

  자, 이제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아버지, 주님의 말씀을 축복하소서. 우리는 주님의 말씀이 하늘에 영원히 서 있는 것을 알며, 하늘과 땅은 없어질지라도, 주님의 말씀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주님과 이 책을 신뢰합니다. 우리는 이 책이 어떤 책이라는 것을 알며, 또 그 역사도 보아왔습니다. 아버지, 우리는 이 책이 얼마나 많은 저주와 멸시와 미움을 받아왔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근본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 그리고 이교도들과 불신자들, 무신론자들이 비웃어왔던 책입니다. 우리는 한 권의 책으로서 이처럼 미움받아 온 책이 없었음을 압니다. 이 책을 사랑하게 도와주시고,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우리의 마음 속에 간직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며, 이 책을 설교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가르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그리고 아버지여, 만약 우리가 해야만 한다면, 이 책으로 인하여 죽을 수도 있게 하소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피터 S. 럭크만/『 킹제임스 성경의 신비ː(제2장) 』...

■  이 글은 故 ‘피터 S. 럭크만’(Peter Sturges Ruckmanㆍ1921. 11. 192016. 4. 21) 목사님이 1971년에 플로리다 잭슨빌에 위치한 트리니티 침례교회에서 설교한 내용을 편집한 글입니다. 이 설교를 통해서 King James Bible 1611에 숨겨져 있는 신비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정말로,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관여하시고, 역사하시고, 하나님께서 기록하시고, 보존하신 유일무이한 책이 King James Bible 1611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 글을 통해서 여러분의 믿음에 믿음이 더해지는 큰 축복과 확신의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참고로, 이 모든 글은《킹제임스 성경의 신비》(말씀보존학회 刊1994.)라는 책에서 발췌하였습니다.

─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HanSaRang2006. 7...

『 오 여, 주의 말씀은 영원히 하늘에 세워졌나이다.
For ever, O LORD, thy word is settled in heaven.
(시 편 119:89)

       A SURVEY OF
       THE AUTORIZED VERSION
       by
       Dr. Peter S. Ruckman

       Copyright (C) 1978 by Peter S. Ruckman,
       Bible Baptist Bookstore
       Pensacola, Florida
       1994Korean by Word Of God Preservation Society
       Seoul, Korea.

Bible believers

 『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Divide)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 』(디모데후서 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