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2. 25. 23:30

“ 하나님의 거룩한 진리를 수호하며 ─ ① ” (바른 성경)

(바른 성경) [201602]【 하나님의 거룩한 진리를 수호하며 】-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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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거룩한 진리를 수호하며 ─ ①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라. (시편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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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인터넷에서말씀보존학회킹제임스성경에 대해 비판한 글을 제가(HanSaRang) 자료를 첨가하여 반박한 글입니다. 참과 거짓을 올바로 분별하는 데에 도움이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진리를 수호하며 】- ①

▶ 돋움체(검정)ː비판글
바탕체(파랑)ː반론글

말씀보존학회와 킹제임스성경


━ [서론]ː 말씀보존학회(대표: 이송오목사)와 킹제임스성경

말씀보존학회라는 단체가 있다. 그 교회는 성경침례교회라고도 하는데, 보수적이며 전통적인 성서침례교회와는 전혀 다른 곳이다.
피터럭크만의 펜사콜라신학교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으며, 킹제임스 사이버신학대학을 운영하며,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라는 신학지를 발간하고 있다.
그 단체와 교회의 이송오목사라는 사람이 한글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하여 출간하였는데, 그곳의 특징은 첫째, 킹제임스만이 참된 성경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매우 배타적이며 공격적인 단체이다.
본인은 말씀보존학회와 성경침례교회의 몇명과 인터넷 상에서 직접 토론을 하여 본 적이 있는데, 이들의 특징은 하나같이 공격적이고 배타적인 것이 그 특징이다.

그들의 주장을 결론적으로 정리하자면, 오직 자신들의 교회, 오직 자신들의 교리와 신학, 오직 자신들이 번역한 성경, 오직 자신들의 신학교만이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으로서, 이들과 토론을 하다보면 이들은 사랑과 은혜의 기독교인과는 거리가 먼, 무슨 극단적으로 치우친 사상적인 단체나 조직같은 생각이 든다는 것이 솔직한 필자의 심정이었다.
《참을 참이라하고 거짓을 거짓이라하는 것이 뭐가 잘못되었습니까! "교회", "교리", "신학", "성경", "신학교"... 성경적으로 맞다고 확신이 있기 때문에 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솔직히, 한국의 신학교에서는 무엇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무천년주의, 후천년주의? 이것도 아니면 교단교리? 한국의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것들을 통해서는 머리속에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성경적 비전을 제시해 주지 못한다 말입니다!(그러면서 목회를 한다고 폼이나 잡고들 있으니 한심합니다!) 저는 그들의 모습이 공격적으로 보일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참을 거짓이라고 하고 거짓을 참이라 하는 자들(주로 '목사'라고 불리는 자들...-_-' ※ 저는 이들을 '먹사'라고 칭합니다.)과 어찌 화평을 유지할 수 있단 말입니까!『악을 선하다 하고 선을 악하다 하는 자들과 빛 대신 어두움을, 어두움 대신 빛을 두며, 단 것 대신에 쓴 것을, 쓴 것 대신에 단 것을 두는 자들에게 화로다!』(이사야 5:20). 만일 이 글의 필자가(진리를 대적하는 것은 어리석을 뿐입니다.) 성경적 바른 진리를 받아들이려 한다면 어찌 공격적으로 대하겠습니까! '하나같이 공격적이고 배타적이라고요'....허허허,,,, ,,, 만일, '도둑'이 당신의 집에 침입하여서 당신의 '보석들'을 훔치고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든다면 당신은 화평으로 그 도둑을 대할 수 있겠습니까?(※ 도둑=진리를 훔치는 자들 / 보석들=하나님의 말씀, 바른 성경적 지식, 지혜들...)》

《성경은 '전천년 체계(계 20:1-7)'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떤 목사가 아무리 위대하고 경건하고 거룩할지라도 그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전천년 재림을 믿지 않는다면 성경을 올바로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많은 신학교에서 '바른 성경적 교리(전천년 체계)'를 가르치고 전하지 않는 이유는 정녕,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1900년 이후 미국의 모든 위대한 복음주의자들은 전천년주의자들이었습니다. 빌리선데이, 프랭크 노리스, 히만 애플만, 제시 헨들리, 밥 존스, 테오도르 엡, D.R. 무디, M.R. 디한, 리 로버슨, 존 R. 라이스, 빌리 그래함, 찰스 풀러, 보샹 빅, 달라스 빌링톤, 잭 윌첸 등등...이들은 사회, 종교, 교육, 과학, 문명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왕국을 세우시고 다스리기 위해 오실 때까지 급속도로 타락할 것을 믿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후천년주의는 뭐고, 무천년주의는 뭐란 말인가요? 왜, 한국의 주요 신학교에서는 전천년주의를 가르치지 않습니까? 제가 말씀드리지요. 그들은 다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 없이 이 땅을 다스리고 싶어하며, 교회의 거물들이 되고 싶은 것입니다! 지금 통치하기를 원하고, 지금 거물들이 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솔직히, 한국 교회의 목사들이 무슨 일들을 하고 있습니까? '평신도'(저는 이 단어를 굉장히 증오합니다.=니콜라파의 교리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카톨릭)들의 성경적 무지(無知)를 이용하여서 성도들의 호주머니만 노리는 '먹사' 노릇 밖에 하고 있지 않습니까! 얼마나 성도들의 혼의 구원을 위해서, 영적인 성장을 위해서 힘쓰고 노력합니까! 지극히 낮은 수준의 영적 양식들을 겉포장만 그럴 듯하게 해서 장사에만 정신 팔려 있는 모습이 솔직한 한국 교회의 모습이 아닙니까!(서점의 기독교 코너에 가서 여러 책들을 둘러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겉 껍데기만 휘황찬란할 뿐입니다.활자크기는 뭐가 그리큰가요! 한국교회에는 초등학생들만 있단 말입니까! ─ 라오디케아 교회들의 건물자랑만 하는 것처럼..."열매로 그 나무를 알 수 있다!")》

《신학교에서 마구 배출해내는(이것이 바로 인간복제이다!) 목사들이 영적으로 성숙하기도 전에 회사차리듯이 교회를 세우고, 교회를 운영하기 위해 믿음도 없는(오직, 돈만 있으면 OK!) 육적인 장로들과 집사들을 마구 임명하다보니, 교회가 육적인 것들로만 가득차게 되어 거룩하여야 할 하나님의 성전이 사탄과 마귀, 죄와 세상으로부터 난 것들로 더럽혀지는 것 아닙니까!(정말, 통곡하고 싶습니다.)
목사들의 머리에 신학지식이 들어가게 되자 오만하여진데다가 성도들이 신주받들듯이 잘 해주니 우월의식을 느껴 섬기라고 보내준 양떼들을 오히려 종처럼 부려먹는 현실이 되었단 말입니다. 게다가 교회와 교회가 서로 경쟁을 하다보니 남에게 져서는 안된다는 자존심 때문에 목회의 성공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고,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식의 이기심으로 가득차 독선과 아집으로 교회를 운영하게 되는 것입니다. 목사의 말은 곧 하나님 말씀이라는,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얼토당토 않는 논리로 성도들의 의지를 사로잡아서 목사의 말이라면 무조건 복종하게 만들어 성도들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게 괴로움을 주는 것 아닙니까! 목사들이 바른 성경적 진리와 말씀으로 성도들을 양육하지 못하니까 어떤 결과가 일어납니까? 성도들도 자기의 자존심과 이기심을 과시하기 위해 교회에 드나들면서 보란 듯이 자신을 내세우며, 이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게 되면 철새처럼 교회를 옮겨다니게 되는 것 아닙니까!(아는 사람들은 다 압니다. 장로가 되려면 몇천만원, 권사가 되려면 몇백만원, 집사가 되려면 몇십만원... 도대체 이게 무슨 짓거리란 말입니까!) 그래서 '한국식 기독교'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입니다.》

《말씀보존학회와 그 기관들은 바로 이들, 위대한 복음주의자들의 발자취를 따라 가고자 할 뿐인 것입니다. 타락한 한국교회가 가는 넓은 길이 아닌,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그 좁은 길을 가고자 하는 것이란 말입니다! 자신들의 길("옳게 보이는 길")에 동조하지 않는다고 비판하지 마십시오! 노아의 자리에 서야지 왜, 노아를 비방하는 자리에 서려고 합니까!》
『사람에게 옳게 보이는 길이 있으나, 그 끝은 죽음의 길들이니라』(잠 14:12).

《『...특히 독립국가로서의 미국의 초기 역사과정을 통해서, 교육과 종교교육은 강력하고도 고귀한 우선순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한 예로서, 연방정부의 자산항목 중에서 학교부지를 따로 떼어 놓았으며 나중에 1789년의 연방의회에서(이 의회는 바로 미국의 독립헌법을 작성한 의회이기도 하다) 다시 통과된, '1787년 노스웨스트 포고령(Northwest Ordinance)'에서는 이상과 같은 학교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훌륭한 정부와 인류의 행복을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종교와 도덕과 지식은 학교와 기타 학습기관 등을 통해서 영원무궁토록 학습할 것이 권장되어질 것이다." 여기서는 그 단어의 나열순서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는데, "종교"라는 단어가 도덕이라는 항목보다도 먼저 나왔으며, 또한 지식이라는 항목보다도 먼저 등장하였다. 그러므로 제1차 미의회의 결정에 따르면, 공립학교의 으뜸가는 기초적 목적은 바로 "종교인"으로 육성하는 것이었으며, 그 당시의 상황으로 볼 때에 이는 기독교 윤리의 가르침을 뜻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그 당시의 역사적 단계나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에, 이것은 종교라는 용어에 대한 일반적인, 비록 보편적인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개념 정의인 것이다. ─ /「미국을 훔치는 자들」/ 존 W. 화이트헤드』. 제가 John의 책에서 이 부분을 인용한 것은 다음의 성경구절에서 '단어의 나열순서의 중요성'을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일점일획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 절대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에서 단어의 나열순서에도 그 분의 뜻이 담겨있다고 믿습니다.
『진리와 온유와 공의로 인하여 당신의 위엄으로 승자와 같이 타고 나가소서. 왕의 오른손이 두려운 일들을 왕께 가르치리이다』(시 45:4). 참된 사랑과 은혜는 참된 진리가 세워졌을 때만이 가능합니다. 진리를 버리고 '참된 사랑과 은혜'를 추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다른 이교도들도 자기들끼리 사랑과 은혜를 추구할 줄 압니다.(이들이 추구하는 사랑과 은혜는 성경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진리를 내버리고 사랑과 은혜만을 추구하니까, 교회통합운동(Ecumenical movement)이나 하고, 자유주의 사상이 나오고,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헛된 소리를 주장하는 것입니다!(행 4:12) 과연 하나님께서 진리를 내버리고 사랑과 은혜만 행하는 것을 기뻐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심판만이 기다릴 뿐입니다. 사랑과 은혜는 올바른 진리의 바탕에서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이탈리아('로마'-성경에서는 창녀의 도시라고 부른다. 바빌론...계 14:8, 18:2) 포르노 배우 '치치올리나'라는 창녀가 '러브정당'을 만들어 국회에 진출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바른 진리의 기준이 세워지지 않은채 '사랑과 은혜'만을 추구하면 이런 마귀, 창기 짓거리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기억하십시오! (『또 께서 말씀하시기를 "소돔과 고모라의 부르짖음이 크고 그들의 죄가 매우 중하므로,-창 18:20 / 그 때에 께서 하늘에서 께로부터 소돔과 고모라 위에 유황과 불을 비처럼 내리셨고-창 19:24』)『마찬가지로 남자들도 여자들을 순리대로 쓰는 것에서 벗어나 서로 음욕이 불일듯하니 남자들이 남자들과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자기 자신들에게 받았느니라. 뿐만 아니라 그들은 자기들의 지식 가운데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니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림받은 마음에 내버려 두시어 온당치 아니한 일을 하게 하셨도다』(롬 1:27-28). 어떻습니까! 아주 정확하지 않습니까! 바른 '하나님의 진리'를 세우지 않고 사랑과 은혜만을 추구하면, 하나님의 심판만이 있을 뿐입니다! 바른 성경이 왜 필요한지 아십니까! 바른 진리를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과연 공의의 하나님께서 그분의 진리를 버리고 심판을 행하시겠습니까! "시편 12:6-7"의 말씀대로 그분은 그분의 진리를 지키시고 보존하고 계십니다!(개역성경은 이 구절이 심하게 변개되어 있습니다!) 진리를 세우지 않고 '사랑과 은혜'만을 추구하니까 AIDS가 창궐하고, 목사들이 간음, 음행이나 저지르고, 진화론('자기들의 지식 가운데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니'=무신론, 유물론, 불가지론, 공산주의, 세속주의...)을 추구하는 과학(과학에는 도덕적 관념이 존재하지 않는다!)을 신으로 숭배하는 것입니다! 뭐라고요! 인간복제라고요?... 정말 헛된 짓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적으로 죽은 사람이 타락한 성품을 가진 육신을 가지고 세상에서 영원히 사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친히 인간의 구원과 영생을 위해서 지상에 내려와 죄값을 치르신 것입니다(창 22:8).『전도자가 말하노라.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 황우석 교수여! 바벨탑을 쌓지 말지어다! 하나님의 심판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황우석 교수는 국선도와 사우나, 예불(禮佛)을 가장 좋아한다고 하였다. - 이 자는 이교도이다! 인간복제는 '타락한 인간 본성'에 대한 변화는 없이 육신만을 보존하고자 하는 마귀적 상상의 산물일 뿐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사악함이 세상에 창대해짐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상상이 계속해서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세기 6:5)
...나를 미워하는 모든 자들은 죽음을 사랑하는 자들이라.』(잠언 8:36b)


이들은 한국 교회가 사용하는 개역성경(NIV영어성경)이 변개된 사단의 성경이라고 주장하며,
《한국 교회는 '개역성경 & NIV'를 사용하기 때문에 타락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NIV가 왜 사탄의 성경인지 다음의 증거를 보십시오!》
(혹자는, 개역성경을 '사탄의 성경'이라고 하는 표현이 지나치다고 하는데, 그만큼 개역성경의 문제점이 많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저도 어렸을 때는 '한글개역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듣고 배우고 함께 했습니다. 그러나 바른성경에 대한 진리의 지식을 알게 된 이상 'KJV 1611 & 한글 킹제임스 성경'을 지지합니다. 제가 '성경전쟁'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바른 성경'에 관한 진리의 지식들을 알게 된 뒤로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몰랐을 때는, 솔직히,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무감각했고, 대단히 어려워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알고난 뒤로는, 제 생명보다도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친구처럼 아주 가까운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여기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HanSaRang.)


『 The New International perVersion 』/ by Terry Watkins

"…너희가 살아계신 하나님, 만군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변질(perverted)시켰음이라."(렘 23:36)
이 세대는 왜곡(또는 변개)에 굶주려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왜곡"이던 것이 이제는 "보통"이 되었고, 사실(私室)안에 "숨겨졌던" 것이 이제는 우리의 거리들에서 "돌아 다니고" 있다. 왜곡은 우리의 가정에서부터 백악관까지, 우리의 교회와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에서도 발견된다.  
우리의 친구인 웹스터는 "pervert"를
1. 선한 것, 또는 진실로부터 멀어지게 하거나 빗나가게 하는 원인이 되다.
2. 뜻이나 느낌을 비틀다 : 오해하다.
라고 정의한다.(Webster's New Collegiate Dictionary, 1977, p.856)

NIV에 대한 확실한 정의는 "선한 것 또는 진실로부터 멀어지게 하거나 빗나가게 하는 원인이 되다.", 그리고 "뜻이나 느낌을 비틀다"라고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그것이 의심스럽다면, 이 글을 읽기 전에 NIV를 구해서 이 글과 맞춰보도록 하라!

◆ NIV는 주 예수그리스도의 신성을 왜곡한다!
딤전 3:16은 성경 중에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심을 가장 명확하게 선포하는 구절이다.
KJVː
"경건의 신비는 논쟁의 여지없이 위대하도다. 하나님께서는 육신으로 나타나셨고(...God was manifest in the flesh...)"라고 분명히 말한다. 하지만 NIV에는 "He appeared in a body"로 되어있다. NIV는 "God"를 "He"로 바꿔버렸다.
"He appeared in a body"가 무엇인가? 모든 사람이 "He appeared in a body", 다시 말해 육신으로 나타난다. "He(그)"는 앞의 명사나 선행사를 가리키는 대명사이다. 하지만 문맥상 "He"를 받아줄 그 어떤 선행사도 없다! 이 구절은 뜻이 통하지 않는다. NIV는 교묘히(창 3:1을 보라) 딤전 3:16을 뜻이 통하지 않도록 왜곡시킨다.
빌 2:6에서 킹제임스 성경은 다시 한번 분명하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선포한다.
"그는 하나님의 형체로 계시므로 하나님과 동등하게(to be equal with God)되는 것을 탈취라 생각지 아니하셨으나,"
하지만 NIV에는 "Who, being in very nature God, Did not consider equal with God something to be grasped,"라고 되어있다. 다시 한번 교묘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왜곡한다.

◆ NIV는 동정녀(처녀)탄생을 왜곡한다!
눅 2:33에 킹제임스 성경에는 "And JOSEPH and his mother marvelled at those things which were spoken of him."이지만 NIV는 "The CHILD'S FATHER and mother marveled at what was said about him"로 되어있다. "CHILD'S FATHER"이란 무엇인가? 요셉이 예수님의 아버지인가? 만일 당신이 처녀탄생을 믿지 않는다면 요한복음 3:16에 나온 것처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Son of God을 son of God과 구별하기위해 '아들'로 표기함-번역자 주)이심을 믿지 않는 것이다. 역시 교묘하게 처녀탄생을 왜곡한다. 누가복음 2:43에서도 마찬가지이다.

◆ NIV는 주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을 삭제했다!
골 1:14에 킹제임스성경은
"그 안에서 우리가 그의 보혈을 통하여(THROUGH HIS BLOOD) 구속, 곧 죄들의 용서함을 받았느니라"이지만 NIV에는 "In whom we have redemption, the forgiveness of sins."라고 되어있다. NIV는 소중한 말씀인 "THROUGH HIS BLOOD"를 찢어놓았다.
친구여, 대속은 오직 그분의 피에 의해서만 받을 수 있습니다. 히 9:22에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시며, 옛 노래에서도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라고 말합니다.

◆ NIV는 요 3:16을 거짓으로 만들었다!
요 3:16에서 NIV는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로 되어있다.  예수님은 "the one and only son(한 분이고 유일한 아들)"이 아니다.
눅 3:38에서는 아담을 "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신다. "sons of God"은 욥 1:6에도 나타나고, 빌 2:15, 요일 3:2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ONLY BEGOTTEN SON("독생자" 유일하게 난-아버지에게서- 아들)"이시다. NIV는 핵심적인 단어 "BEGOTTEN" (bear나 born과 비교해 보시오-번역자 주)을 제거함으로 요 3:16을 거짓으로 왜곡하고 있다. 요 1:14,18과 3:18에서도 마찬가지이다.

◆ NIV는 진리를 거짓으로 왜곡한다!
NIV는 막 1:2,3을 거짓으로 왜곡한다! "It is written in Isaiah the prophet: I will send my messenger ahead of you, who will prepare your way-a voice of one calling in the desert, prepare the way for the Lord, make straight paths for him"로 되어있다. 하지만 이것은 이사야의 글이 아니다. "I Will send my messenger ahead of you, who will prepare your way"는 말라키 3:1의 말씀이다! 킹제임스 성경은 "As it is written in the PROPHETS, ..."라고 정확히 기록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NIV가 더 나은 역본! 보다 더 읽기가 쉽다!
이것은 거짓말이다! 시 119:160에
"주의 말씀은 처음부터 참되며..."라고 말씀하시며, 요 17:17에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라고 말씀하시며, 딛 1:2에 "..거짓말하실 수 없는 하나님께서..."라고 명확하게 말씀하신다. NIV에서 어떻게 마가복음 1:2,3의 하나님이 디도서 1:2의 하나님이실 수 있는가!? 그것은 불가능하다! 히 6:18에 "이는 하나님께서 거짓말하실 수 없는..."이라고 분명히 선언하셨으므로 NIV의 거짓말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없다! 그것들은 누구의 말인가? 한가지 힌트를 주겠다.-주 예수님께서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요 8:44)"라고 부르는 존재임.

NIV는 다시한번 공공연하게 삼하 21:19에서 "... Elhanan son of Jaare-Oregim the Bethlehemite killed Goliath the Gittite, who had a spear with a shaft like a weaver's rod."라고 거짓말한다. 8살 먹은 아이라도 다윗이 골리앗을 죽인 것을 알지 못하겠는가? 롬 1:18-32에 "perversion(변개, 변질, 왜곡)의 행로"에 대해 묘사하며, 25절에 그들의 타락을 묘사한다.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말로 바꾸어 ..."라고! 놀랄 것도 없이, NIV는 25절도 "CHANGED the truth of God INTO a lie"를 "EXCHANGED the truth of God FOR a lie"로 왜곡시켰다!

◆ NIV와 성도착!
롬 1:26-32은 "씨뿌림"에 대한 "열매"를 보여준다.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말로 바꾸어 ...", 26-27절에서 말하기를 "이로 인하여(25절의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말로 바꾸어 ...'를 가리킴) 하나님께서 그들을 수치스러운 욕정에 내버려 두셨으니 심지어 그들의 여자들까지도 본래대로 쓰는 것에서 본성을 거역하는 것으로 바꾸었음이라. 마찬가지로 남자들도 여자들을 본래대로 쓰는 것에서 벗어나 서로 음욕이 불일듯하니 남자들이 남자들과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자기 자신들에게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최근에 동성연애자와 성도착은 급증하여 주류가 되었다. 동성간의 결혼을 합법화하는 법률이 현안이 되고 있다. Heather Has Two Mommies와 Daddy's Roommate같은 책들은 우리들의 학교에서 동성연애를 장려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지에 따르면 양성교나 동성연애는 우리의 일반학교들에서 존재한다. 그리고 심지어 요즘 교회들에서도 동성연애자들은 환영받으며 심지어 목사에 임명되기도 한다!  NIV번역의 문학적인 비평을 했던 사람은 동성연애자인 Virginia Mollenkott박사이다. 성공회의 Witness(June 1991, pp 20-23)紙에서 그녀는 "나의 여자동성애(lesbianism)는 항상 나의 일부분이었다..."라고 인정한다. 놀랄 것도 없이 NIV에서 "남색자(sodomite)"는 완전히 제거되었다(신 23:17, 왕상 14:24, 15:12, 22:46, 왕하 23:7), 그리고 고전 6:9에서도 물론이다. "... effeminate, nor abusers of themselves with mankind(여자처럼 행세하는 자들이나 남자 동성 연애자들이나 ...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하리라) ..." 는 "... nor male prostitutes nor homosexual offenders. . ."라고 덜 공격적으로 바뀌어 있다. NIV의 고전 6:9에서는 동성 연애자들이나 동성연애행위가 정죄되지 않고 단지 동성연애 범죄자들 (homosexual offenders)이 정죄됨을 주목하라.

◆ NIV와 Zondervan
약간 알려진 사실ː1988년에 Zondervan출판사와 NIV는 Harper & Raw 출판사(지금의 HarperCollins Pub.)에 팔렸다. HarperCollins 출판사는 "원색사진과 함께 설명된, 레즈비언끼리 성행위에 관한 완전한 가이드, ... 사랑행위(Love play)의 복잡함..."로 묘사된 레즈비언 섹스를 기술한 책이나 다른 많은 동성연애를 지지하는 책들을 출판한 곳이다!  HarperCollins는 범세계적인 미디어 제국인 Rupert Murdock 소유의 The News Corporation의 산하에 있다. The News Corporation 제국은 128개가 넘는 신문과 20세기 폭스사, 폭스방송을 포함하고 있다. 폭스방송은 몇몇 가장 성적으로 음란한 TV쇼를 만드는 곳이다. Murdock은 또한 The Sun이라는 악명 높은 누드 핀업 사진을 실은 영국신문을 발행하고 있다.
  
우리가 정말 Don Wildmon을 원할 때 그는 어디에 있었는가? Don은 재빨리 Kmart를 보이콧 했다. 왜냐하면 Waldenbooks라는 부속회사가 플레이보이와 펜트하우스를 팔았기 때문이다. Kmart는 The News Corporation에 의해 토해진 오물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왜 Don은 Zondervan 과 NIV를 보이콧하지 않았나? 친구여, 당신이 NIV를 구입할때마다 동성연애지지서적과 포르노그래피를 만드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과 같다!
『두 사람이 동의하지 않고 함께 걸을 수 있겠느냐』(아모스 3:3).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마 7:17-18에 분명히 말씀하신다.『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corrupt tree)는 나쁜 열매를 맺느니라.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으며, 나쁜 나무(corrupt tree)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마 7:17-18). 당신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짓말을 하신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진실로 하나님께서 그분의 거룩한 말씀을 '그 집단'에 소유되도록 허락하셨다고 믿는가?『...의가 불의와 어찌 관계를 맺으며 빛이 어두움과 어찌 사귀겠느냐?』(고후 6:14).『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라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영원히 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 1:23). 동일하게 킹제임스 성경(KJV 1611)이 사람들에게 소유되지 않은 유일한 성경이라는 것이 놀랍지 않은가?  맞다! 킹제임스 성경은 저작권者가 없다! 그것의 저작권은 CROWN COPYRIGHT이며, 그것은 어느 누구나, 언제든지 출판할 수 있음을 허락하는 것이다! 당연히 누구의 허락을 받을 필요도 없다!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느니라』(딤후 2:9b).

◆ NIV는 주 예수님께서 경배받으신 것을 도둑질한다!
마 8:2, 9:18, 15:25, 18:26, 20:20, 막 5:6, 15:19에 있던 "WORSHIPED HIM"은 NIV에서 모두 제거 되었다! 왜 NIV는 주 예수님께서 경배받으신 것을 원치않는가? 힌트ː눅 4:7, 마 4:9을 보라.

◆ NIV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루시퍼로 왜곡한다!
사 14:14는 사탄의 대야망을 드러낸다.
"내가...지극히 높으신 분같이 되리라" 그리고 작고 교묘한 왜곡이 NIV의 사 14:12에 사탄의 바램이 인정된다.
사 14:12 킹제임스 성경은 "How art thou fallen from heaven, O Lucifer, son of the morning! ..."로 되어있고 NIV변개판은 "How you have fallen from heaven, O Morning star, son of the dawn..." 로 되어있다. NIV는 "Lucifer(루시퍼)"를 "Morning star(새벽별)"로 바꿨다.
잠깐! 내가 생각하기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새벽별이신 것 같은데?
NIV는 확실히 그리고 뻔뻔스럽게도 예수 그리스도 주님을 루시퍼로 만들고 있다! 이 얼마나 신성모독인가! 얼마나 변개된 역본인가!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NIV를 더 나은 역본이라고 공언한다.(이들은 왜 속아 넘어 가는가? 진리를 믿고자 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사 14:15에서 킹제임스 성경은 "Yet thou shalt be brought down to HELL ..."라고 루시퍼에게 지옥을 선고한다. 하지만 NIV를 보면 "But you are brought down to the GRAVE. . ."라고 되어있어서 루시퍼에게 지옥을 선고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무덤(GRAVE)에 간다! 왜 NIV는 사탄이 지옥에 있기를 원치 않는가?

◆ NIV는 지옥을 제거하거나 왜곡한다!
"지옥(HELL)"이란 단어는 킹제임스 성경의 구약에서 31번 나타난다. NIV의 구약에서는 0번 나타난다! 다시 말해 한번도 안 나온다는 말이다!
그들은 "지옥"을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시 9:17을 예로들면, 킹제임스 성경은 "The wicked shall be turned into
HELL ..."(악인은 지옥으로 돌려질 것이요) ─ NIV는 "The wicked return to the GRAVE ..."라고 되어있다. 우리는 모두 "return to the GRAVE(무덤으로 돌아간다.)!" NIV가 "Hell"을 제거하고 변개했기 때문에 시 9:17이 넌센스가 되었다!
NIV는 신약에서 9번의 "Hell"을 삭제했다. 그리고 NIV는 "확실하고", "이해하기 쉬운" 어떤 단어로 개정했는지 아는가? 그들은 5번을-HADES로 바꾸었다(마 16:18, 계 1:18, 6:8, 20:13,14).
평범한 사람이 HADES가 무엇인지 알겠는가? 모든사람이 지옥(Hell)이 무엇인지 안다! 당신은 HADES가 무엇인지 아는가? HADES(하데스)는 항상 고통스럽거나 끔찍한 곳이 아니다. 앗시리아인들에게 하데스는 "행복한 땅"이라 불리는 하늘들이 있는 축복받은 곳이다. 사탄적인 뉴에이지 운동에서 하데스는 정화를 위한 중간 단계이다. Webster's New Collegiate Dictionary는 하데스를 그리스 신화에서 죽은 사람들이 거하는 지하라고 한다. NIV는 당신의 성경을 신화로 변개한다!

◆ 참고 자료 ◆ ━【『 ...여기서 락소바 박사가 미출산의 어린이를 가리키는데 사용하고 있는 "태아"(fetusː페터스, 또는 foetus - 임신 3개월이 지난 태아를 말함.)라는 단어는 전혀 아무런 인격이나 인간성도 지니고 있지 아니한 단어로서, 언어의미론(言語意味論)적으로 말하자면, 미출산의 어린이는 인간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언론보도매체"는 그와 같이 인간성을 박탈하고 있는 언어의미론(言語意味論)을 광범위한 대중들에게 널리 퍼뜨리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협력자로서 봉사해 오고 있다. 오늘날의 미국의 언론매체들 중의 상당한 부분은, 외견상으로는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보이긴 하나, 실제적으로는 나치통치하의 독일의 언론매체들만큼이나 반생명(Anti-Lifeː『...나를 미워하는 모든 자들은 죽음을 사랑하는 자들이라.-잠언 8:36b』) 선전의 도구로서 이용되고 있다. 오늘날의 정보지식을 관장하고 있는 수문장적인 정보 보도 매체들은 노골적인 유행의상들과 아울러서 어린 바다 표범들을 포획하는 학살자들과 달팽이들을 남획하는 무법적인 달팽이 학살자들의 위협적인 존재에 대한 묘사를 함에 있어서는 아무런 주저함이 없이 공공연한 비난의 말을 퍼부어 대고 있다. 그러나 그 문제가 미출산의 어린 아기들, 즉 태아에 대한 학살행위로 초점이 모아지는 경우에는 이중의 도덕적 판단기준이 설정되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낙태수술에 대하여 부정적인 견해를 펴고 있는 뉴스는 거의 신문에 실리지 않고 있으며 낙태수술로 유산을 당한 태아의 사진이 실린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 비록 오늘날의 시대가 "알 권리"의 시대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준엄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사실인즉 대부분의 보도전달 매체들은 실제로 그와 같은 태아들에 대한 살해 행위를 자행하고 있는 사람들의 왜곡된 견해들만을 공허하게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언어의미론(言語意味論)적인 조작행위에 밀접하게 관련된 것이 바로 완곡어법(euphemism)의 행사이다. 나치스들은 죽음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해서 그들 자신의 공적인 문서와 서류를 작성함에 있어서 정교하고 세련되게 다듬어진 완곡어법(euphemy)을 발달시켜 사용하였다. 나치당원들의 유태인 말살정책에 관한 용어해설집을 부분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말들이 있다. '소개'(evacuation), '재정착'(resettlement), '유태인들을 정결하게 함', '정화작업', '소독살균', '특별한 대접', '동방에서의 노동', '주사를 놓음', '깊은 잠에 빠지게 하다', '증명서문제를 이행하다', '유태인 문제를 깨끗하게 해결하다', '유태인 문제에 대한 마지막 해결책'... / 「미국을 훔치는 자들」 / 존 F. 화이트헤드 』─ 제가 이 부분을 인용한 것은 KJV 1611 이후에 출간되는 '현대역본들'(corrupted bibles)에서도 이러한 일들이 자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원문에 더욱 가깝게 번역한다'는 핑계로('나치스들은 죽음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해서!') NIV에서는 KJV 1611에서 54회 기록하고 있는 "지옥(Hell)"이란 단어를 무려 40회나 삭제했으며, 대신에 죽음(death), 깊음(depths), 하데스(hades), 무덤(grave) 등으로 대체시켰으며, 한글개역성경은 41회에 걸쳐 지옥이란 단어를 삭제하고 대신에 음부나 스올로 바꾸었습니다. 이러한 지옥의 삭제는 지옥을 믿지 못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설교 강단에서 지옥을 선포할 수 없도록 했습니다. - HanSaRang 註.】

◆ NIV는 주님의 기도를 악마의 기도로 변개한다!
킹제임스 성경 (눅 11:2-4)에는 "...Our Father which art in heaven, Hallowed be thy name. Thy kingdom come. Thy will be done, as in heaven, so in earth. Give us day by day our daily bread. And forgive us our sins; for we also forgive every one that is indebted to us. And lead us not into temptation; but deliver us from evil." 라고 되어있지만 NIV에는 하늘에 계신 거룩한 하나님을 언급하는 모든 것이 제거 되었다. -"WHICH ART IN HEAVEN ... Thy will be done, AS IN HEAVEN, so in earth. . . but DELIVER US FROM EVIL." 하나님을 마귀로부터 구별할 모든 것이 제거되었다. NIV에서 "우리 아버지"는 하늘에 있지 않고 우리를 악으로부터 구원하실 수 없으시다. 나는 누가 이런일을 했는지 궁금하다(힌트: 요 8:44을 보라).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에 첨가하거나 삭제하는 것을 경고하신다!
신 4:2에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그 말씀에 더하지도 말고, 거기에서 빼지도 말고..."라고 말씀하신다.
잠 30:6에
"너는 그분의 말씀들에 더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당신이 이 말씀들을 보지 못했을 경우를 대비하여, 하나님은 계 22:18,19에 마지막으로 경고하신다.
"이는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들을 듣는 각 사람에게 증거함이니 누구든지 이것들에 더하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또 누구든지 이 예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삭제하면 하나님께서 생명의 책과 거룩한 도성과 이 책에 기록된 것들에서 그의 부분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그리고 주 예수님은 눅 8:12에 사탄의 명확한 의도를 보여 주신다.
"...마귀가 와서 그들의 마음에서 말씀을 빼앗아 가 버리므로 믿지도 구원받지도 못하는 자들이요."

◆ NIV는 17개의 구절을 완전히 "제거"해 버렸다!
다음의 놀랍고 소중한 구절들이 제거 되었다.
(마 18:11)ː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려는 것이라."
(행 8:37)ː
"빌립이 말하기를 '만일 당신이 마음을 다하여 믿으면 합당하니라.'고 하니 그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나는 예수 그리스도하나님아들이신 것을 믿나이다.'라고 하더라."
NIV 변개판이 완전히 제거해 버린 구절은 마 17:21, 18:11, 23:14 / 막 7:16, 9:44, 9:46, 11:26, 15:28 / 눅 17:36, 23:17 / 요 5:4 / 행 8:37, 15:34, 24:7, 28:28 / 롬 16:24 / 요일 5:7이다!
그리고 막 16:8의 다음에 NIV를 보면, "대부분 믿을 만한 고대사본과 초기의 증거에는 막 16:9-20이 없다."라고 되어있고 12개의 구절을 생략했다. 어쨌거나 그것은 완전히 거짓이다!
Dean Burgon이 쓴『마가복음에서의 마지막 12구절, The Last Twelve Verses of the Gospel of Mark 』이란 책은 400페이지가 넘는 막 16:9-20의 증거에 관한 문서인데 지금까지 한번도 논박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요 7:52의 다음에도 NIV는 "고대의 사본과 믿을만한 대부분의 사본과 다른 고대 증거들은 요 7:53-8:11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나와 있고 12개의 구절을 생략했다!
마 12:47, 21:44, 눅 22:43 과 22:44은 각주로 제거되었다.
이상 완전한 45개의 구절이 NIV에서는 제거되거나 각주로 보내졌다.

◆ NIV는 64,576개의 단어를 삭제했다!
NIV에서 "mercyseat(자비석)"를 찾을 수 없다.- 사라졌다!
NIV에서 "Jehovah(여호와)"를 찾을 수 없다.- 사라졌다!  
NIV에서 "Godhead(신격)"를 찾을 수 없다.- 사라졌다!
NIV는 놀라운 성경 용어들, 예를 들어 remission, regeneration, impute, propitiation, new testament와 다른 단어들이 제거되었다!
하나님의 분명한 말씀훼손에 대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NIV는 전체 하나님 말씀의 8%나 되는 64,576개의 단어를 삭제했다. 이것은 룻기, 에스더, 잠언, 솔로몬의 노래, 예레미야 애가,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카, 나훔, 하박국, 스파냐, 학개, 말라키, 골로새서, 데살로니가 전 후, 디모데 전 후, 디도서, 빌레몬서, 야고보서, 베드로 전 후, 요한 1 2 3, 유다서를 합친 것보다 많다!!! 성경의 30개 책을 찢어낸 것과 맞먹는다! 당신이 "thee"나 "thou"를 무의미한 단어라 생각할 것을 대비해 NIV에서는 적어도 147개 구절의 주요부분을 제거했다. 여기에 NIV가 삭제한 몇 부분을 예로 든다.

─ Matt. 6:13 > "For thine is the kingdom, and the power, and the glory, for ever. Amen."
그 왕국과 권세와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의 것이옵니다. 아멘.
─ Matt. 15:8 > "This people draweth nigh unto me with their mouth"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에게 다가오고
─ Matt. 19:9 > "and whoso marrieth her which is put away doth commit adultery."
또 버려진 여자와 혼인하는 자도 간음하는 것이라.
─ Matt. 20:7, "and whatsoever is right, that shall ye receive."
그러면 적절한 대가를 받으리라.
─ Matt. 20:16 > "for many be called, but few chosen."
이는 부름을 받은 사람들은 많으나, 택함을 받은 사람들은 적기 때문이라.
─ Matt. 20:22 > "and to be baptized with the baptism that I am baptized with?"
또 내가 받는 그 침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 Matt. 25:13 > "wherein the Son of Man cometh."
인자가 오실
─ Matt. 27:35 > "that it might be fulfilled which was spoken by the prophet They parted my garments among them and upon my vesture did they cast lots"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그들이 그들 중에서 나의 옷을 나누고 또 나의 속옷을 놓고 제비뽑았나이다."라고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려 함이더라.
─ Mark 6:11 > "Verily I say unto you, it shall be more tolerable for Sodom and Gomorrha in the day of judgment, than for that city."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가 그 성읍보다 더 견디기 쉬우리라.
─ Mark 10:21 > "take up the cross."
십자가를 지고
─ Luke 1:28 > "blessed art thou among women"
너는 여자 중에서 복받은 자로다
─ Luke 4:4 > "but by every word of God"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사느니라
─ Luke 4:8 > "get thee behind me Satan"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 Luke 4:18 > "he hath sent me to heal the broken hearted"
그가 나를 보내셨으니 이는 마음이 상한 자를 치유케 하시며,
(※ 하나님의 말씀에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시키는 능력이 있다. 시대가 갈수록 왜, 사람들의 마음은 점점 황폐해 가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치유의 말씀'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일본사회에서는 왜 그렇게 패륜적 범죄가 만연하는가? 왜냐하면 그들은 '여호와'라 이름하는 참된 신이 아닌, 태양신을 숭배하기 때문이다. 잘못을 인정할 줄 모르는 패역한 민족들이여! 나는 솔직히, 지구상에서 가장 불쌍한 민족이 일본인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가장 불쌍한 직업을 가진 자들은 연예인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앞다투어 사탄의 문화를 전파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황폐케' 하는 '마음을 도둑질하는 자'들이 연예인들이다! 진리를 탐구하는 지성의 전당인 대학가를 음란과 퇴폐가 넘쳐나는 'Mini-Sodom City' 로 만든 장본인들이다! 주님, 연예계에 속해 있는 주님의 백성들을 통해서 새로운 생명의 역사를 일으켜 주시옵소서! - HanSaRang 註.)
─ Luke 11:2-4 > "Our ... which art in ... Thy will be done, as in heaven, so in earth. ... but deliver us from evil"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 악에서 구하여 주옵소서.
─ John 1:27 > "is preferred before me"
그분은 나보다 앞선 분이며
─ John 3:13 > "which is in heaven"
하늘에 있는
─ John 3:15 > "should not perish"
멸망하지 않고
─ Jo hn 11:41 > "from the place where the dead was laid"
죽은 자가 놓여 있는 곳에서
─ John 16:16 > "because I go to the Father"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라
─ Acts 10:6 > "he shall tell thee what thou oughtest to do"
네가 해야 될 일들을 그가 네게 말해 줄 것이라
─ Acts 15:18 > "Known unto God are all his works"
그의 모든 역사가 하나님께 알려졌느니라
─ Acts 20:24 > "But none of these things move me"
이런 일을 전혀 개의치 아니할 뿐 아니라
─ Acts 23:9 > "let us not fight against God"
우리는 하나님을 거역하여 싸우지 말자
─ Rom. 8:1 > "who walk not after the flesh, but after the Spirit"
그들은 육신을 따라 행하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행하느니라
─ Rom. 13:9 > "Thou shalt not bear false witness"
너는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 I Cor. 6:20 > "and in your spirit which are God's"
하나님의 것인 ...과 너희 영으로 (※ 한글개역성경 & NIV 에는 and in your spirit 이 삭제되어 있다.)
─ I Cor. 11:24 > "Take, eat... broken"
... 쪼개진 ... 받아 먹으라
─ II Cor. 10:4 > "but mighty through God"
하나님을 통한 능력이라
─ Gal. 3:1 > "that ye should not obey the truth"
진리에 순종하지 못하도록
─ Eph. 5:30 > "of his flesh, and of his bones"
그의 살과 그의 뼈의
─ Phil. 3:16 > "let us mind the same thing"
같은 것을 생각해야 하리라.
─ I Tim. 6:5 > "from such wthdraw thyself"
그런 데서 네 자신은 빠져 나오라.
─ Heb. 7:21 > "after the order of Melchisedec"
멜키세덱의 계열에 따른
─ I Pet. 1:22 > "through the Spirit"
성령을 통하여
─ I Pet. 4:14 > "on their part he is evil spoken of, but on your part he is glorified"
그들의 편에서는 그분께서 비방을 당하시나, 너희의 편에서는 영광을 받으시느니라.
─ I John 4:3 > "Christ is come in the flesh"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신 것을
─ I John 5:13 > "and that ye may believe on the name of the Son of God"
또한 너희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도록 하려 함이라
─ Rev. 1:11 > "I am Alpha and Omega, the first and the last"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 Rev. 5:14 > "him that liveth for ever and ever"
영원 무궁토록 살아계시는 분에게
─ Rev. 14:5 > "before the throne of God"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 Rev. 21:24 > "of them which are saved"
구원받은 자들의


주 예수님께서는 눅 4:4에 말씀하신다.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사느니라.』고 하시더라." 그러나 NIV에서는 그렇지 않다. 눅 4:4의 후반절 마저도 삭제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신명기 8:3을 사탄에게 인용하신 것이다. NIV 변개판은 예수 그리스도 주님께서 신 8:3을 모르고 계셨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 NIV를 장려하기 위해 사용되는 거짓말들...
<거짓1> NIV는 고어를 이해하기 쉽게 바꾼 것일 뿐 바뀐 것은 없다.
<사실> NIV는 주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고 처녀탄생을 부인하며, 사탄을 미화하고, 공공연히 거짓을 말하고, 17개의 완전한 구절과 64,576개의 단어를 삭제했다.

<거짓2> NIV는 읽거나 이해하기에 쉽다.
<사실> Flesch-Kincaid('플레슈 킨카이드' 연구사)의 영어 난이도 등급에 관한 조사연구에서, 킹제임스 성경은 가장 쉬운 것으로 판명되었다! 26개의 다른 범주에서 킹제임스 성경은 23개이상 쉬운 것으로 채점되었다! 선택분석에서 킹제임스 성경은 평균 5.8이었지만 NIV는 8.4였다!(New Age Bible Version, Riplinger, pp. 195-209)

<거짓3> 킹제임스 성경 이후에 오래되고 더 믿을만한 사본들이 발견되었다.
<사실> 사무엘 깁 박사는
"사실은,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자들이 현대의 비평가들이 입수한 모든 읽을 거리들을 입수했었다"고 말한다.(The Answer Book, Gipp, p.110) 그리고 심지어 90-95%의 사본들이 킹제임스 성경을 지지한다는 문헌적 증거도 있다!

<거짓4> NIV는 더 정확하다.
<사실> 킹제임스 성경은 번역에 직역원칙을 사용했다. 번역자들이 문장구조상 단어를 첨가할 때는 이텔릭체로 표기 하였다. NIV는 유동적인 의역을 사용했다. 단어의 일대일 대응 번역보다는 '그들이 생각하는대로' 구절들을 만들기 위해 첨가하고, 바꾸고, 삭제했다. 심지어 NIV의 서문에서 "... 그들은 단어의 일대일 번역 이상을 하려고 노력했다..."라고 말한다. New International PER-Version!

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라. 흙 도가니에서 단련되어 일곱 번 정화된 은 같도다. 오 여, 주께서 이 말씀들을 간수하시리니 주께서 이 세대로부터 영원토록 그것들을 보존하시리이다.』(시 1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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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의 두 글을 비교해서 읽어보십시오. 무엇이 진리의 지식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 인용문 ─ (1) 】
신현우 著 /『 사본학 이야기 』...

  2. 많은 사본들의 일치 (P. 150)

  오늘날 대부분의 신약 성서 사본학자들은 사본들의 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신약 성서 사본들의 대부분이 열등하게 간주되는 비잔틴 사본 계열에 속하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수많은 비잔틴 사본들을 모두 합해도 시내산 사본(Aleph, 알렙)이나 바티칸 사본(B) 하나의 가치보다도 못하게 취급하는 형편이다.
물론 이러한 경향에 대해 반대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은 대개 전문적인 사본학자들이 아니어서 무시당하고 있다.(이것은 거짓말입니다! 원문비평학의 대가인 '존 윌리엄 버간'은 이 두개 사본의 부패성을 지적했습니다. 그가 1883년에 출간한 <개역본을 개정하다, The Revision Revised>라는 책에서,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비평이론의 허구성과 그들의 헬라어 원문과 개역본(RV, 1881)의 변개를 분명히 밝혔습니다. 그리고, 유명한 그리스어 학자이며「영국개역성경」편집위원을 지낸 바 있는 스크리브너 박사(Dr. Scrivener)는 자신의 저서 <시내산 사본에 대한 정밀 조사>에서 이 사본이 전혀 믿을 만하지 못함을 지적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 두개의 사본은 주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삼위일체 등등의 중요한 성경 교리를 말씀하는 부분에서 심하게 변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한가지 사실을 놓고 보더라도 '신현우'라는 사람은 독자들을 속이려는 목적에서 이러한 책을 출간했다고 생각됩니다. <※ 다음의 글을 참조하십시오.>

『오늘날의 많은 학자들은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소수 필사본들이 매우 미비하기 때문이다. 무디 성경신학원의 부학장 알프레드 마틴(Alfred Martin)은 시내산 사본(알렙)과 바티칸 사본(B)를 '타락한' 사본이라고까지 말한다. 다음은 존 윌리엄 버간의 글이다.「세밀하게 본문을 대조 연구함으로써 이 두 사본은 모든 사본들 가운데 가장 심하게 변개된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이 사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어떤 사본에서도 발견될 수 있는 진리를 고의적으로 가장 많이 위조하고 왜곡시킨 것이다. 이 사본들의 본문은 위조된 것이며... 지독히도 많이 삭제되었다.」'새로운' 역본 편집인들은 때로 시내산 사본과 바티칸 사본의 본문을 따르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그들 역시 이 사본들 안에 내재하는 오류들을 언급한다. 호르트는 이 두 사본이 "정확도에 있어 결코 높은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인정했으며, 최신판 헬라어 원문의 공동 편집인인 부르스 메쯔거 역시 "바티칸 사본을 비롯한 사본에서 나타나는 비잔틴 계열과 다른 본문은 서기관들에게 본문을 맞추고 또 단순화시키려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라고 말한다. 이 주제에 관해 훌륭한 교과서를 저술한 케년(E.W. Kenyon)은 이 사본들이 "망가졌다"고 말했다. 고든 피이(Gordon Fee)는 이 두 사본이 P75(파피루스 75)와 상당히 유사한 [수정된] 파피루스 사본에서 복사된 사실을 지적할 뿐 아니라, 우리에게 오늘날 원문비평학자들이 안고 있는 모순을 상기시켜 준다.「바티칸 사본이 개정된[수정된] 사본이라는 사실은 신약 원문비평학에서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 되었다. 최근 발간된 원문비평학 저서, 신약 개론서를 비롯해 원문비평학의 최근 동향과 원문 유형에 관한 글들은 다음과 같은 케년의 의견에 이구동성으로 동의한다. 즉 이집트 원문은 이제 알렉산드리아에서 편집되어 만들어진 본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모순은 우리의 비평판들[네슬판, UBS 판 등]이 일반적으로 편집된 것으로 인정되는 원문과 계속적으로 일치하기 때문에 이전처럼 믿을 수 없다는 데 있다.」어떤 이들은 NIV, NASV, NRSV 등이 취사선택적 방법을 사용해서 번역된 역본들이며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원문을 그대로 사용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지만, 피이는 다음의 말로 그 같은 주장이 옳지 않음을 지적한다.「현대 신약 원문비평학의 모순은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이론에 직접적으로 기인한다. 한편으로는 이 두 사람의 이론을 공개적으로 거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웨스트코트와 호르트 이후로 출간된 비평판들이 일반적으로 명백하게 호르트의 노선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사실 연합성서공회(UBS)가 최근 출간한 <헬라어 신약 원문>(UGT)은 소위 취사선택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그 뒤에 나온 비평판들보다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헬라어 성경에 훨씬 더 가까워진 것을 알 수 있다.」/"뉴에이지 성경역본들" / 게일 립링거 著...』- HanSaRang註.)

  그러나 다른 조건들이 동일하다면, 우리는 상식적으로 소수의 사본보다는 다수의 사본들에 나타나는 독법을 선호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다수 사본의 선호는 최소한 교부 어거스틴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어거스틴은 마태복음 27:9에서 어떤 사본은 그저 '선지자'로 되어 있고 다른 사본들에는 "선지자 예레미야"라고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선지자 예레미야"를 원독법인 것으로 선택하였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많은 사본들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가지고 있고 그 사본들이 더 오래 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어거스틴은 이어지는 인용 구절이 스가랴 선지자의 글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필사자들이 "예레미야"를 생략했을 가능성을 파악하였다. 이처럼 어거스틴은 사본의 다수성과 함께 고대성을 고려하면서 더 어려운 독법을 선택하는 지혜를 보여 주었다.

  다수의 사본에 담긴 독법을 선호하는 원칙을 명확하게 세운 학자는 영국의 왈튼이었다. 왈튼은 17세기 중반에 런던에서 출판한 그의 다국어 성서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더 많은 사본들에 일치하는 독법은.... 더 적은 수의 사본들에 의존하는 독법보다 더 선호되어야 한다."
  암스테르담에서 활동하며 여생을 보낸 스위스의 사본학자 벧쉬타인은 거의 100년이나 지난 후 동일한 원칙을 좀더 간결하고 조심스럽게 진술하였다.
"더 많은 사본들에 의해 지원받은 독법은, 다른 조건들이 동일한 경우에, 더 선호되어야 한다."
  벧쉬타인은 "다른 조건들이 동일한 경우에"라는 단서를 붙임으로써 무조건 다수의 사본을 선호하는 위험을 피하고, 사본들의 나이나 품질 등도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을 암시했다.

  이처럼 사본들의 수를 고려하는 것은 어쩌면 매우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성이나 직관을 따르는 일이라 할 수 있다. 필사자가 실수나 고의로 선본을 고치기보다는 고대로 필사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가정한다면, 확률적으로도 다수의 사본에 담긴 독법이 원문으로부터 유래된 것일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신약 성서 사본학에서는 다수 사본을 선호하는 것을 경계하는 분위기가 강하고, 오히려 다수 사본을 열등한 것으로 간주하기까지 한다.
(이러한 관점을 가진 자들은 부패한 바티칸 사본과 시내산 사본을 옹호하는 자들뿐입니다. - HanSaRang 註.)
  이러한 분위기는 캠브리지의 웨스트코트와 호르트가 헬라어 신약 성서와 그에 딸린 사본학 책을 1881년과 이듬해에 각각 출판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에라스무스가 출판한 헬라어 신약 성서는 다수 사본을 반영하는 것으로서 오래도록 확고한 자리를 굳히며 사용되어 왔고, 킹제임스 역본의 신약 성서 부분은 이것을 번역한 것이다. 그런데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헬라어 신약 성서의 등장과 함께 에라스무스 성경은 바야흐로 황혼을 맞이하게 되고 말았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웨스트코트와 호르트가 헬라어 신약성서를 펴낼 당시에 이들은 뉴에이지 이단사상에 빠져 있었습니다. 1881년 RV(Revised Version)이 출간된 이후로 전세계의 기독교계는 급속한 타락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 HanSaRang 註.)
  웨스트코트와 호르트는 다수의 사본들이 소수의 열등한 사본들로부터 필사되었을 가능성을 지적하였다. 이러한 가능성은 높은 학률에 토대한 것이 아니지만, 웨스트코트와 호르트가 압도적으로 대다수인 비잔틴 사본들이 가진 본문의 후기성을 입증한 이후로, 신약 성서 사본학에서 사본의 수는 무가치한 판단 기준으로 배척되고 말았다. 은퇴한 후에도 활발한 저술 활동을 해 온 미국 프린스턴 신학 대학원에 메쯔거 교수의 진술을 들어 보자.
('부르스 M. 메쯔거'도 바르게 보존된 사본계열을 지지하지 않고, 부패한 사본을 지지하는 학자입니다! - HanSaRang 註.)
"어떤 독법을 지원하는 사본들의 수만으로는 그 독법의 우월성을 필연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어떤 문장에서 독법 X가 20개의 사본들에 의해 지원을 받고 독법 Y가 단지 하나의 사본에 의해 지원받을 경우, 20개의 사본들이 모두 독법 X를 처음으로 만들어 낸 필사자가 필사한 단 하나의 사라진 사본으로부터 필사된 것으로 드러난다면, X를 선호하는 상대적인 수적 지원은 무의미하다. 이 경우에, 독법 Y를 가진 한 개의 사본과 독법 X를 가진 사본 20개의 선조 사본 한 개가 서로 비교되어야 마땅하다."
(가장 오래된 파피루스 사본들도 비잔틴 사본의 본문을 지지한다는 연구결과는 여러차례 나왔습니다. - HanSaRang 註.)
  이 모든 것이 단지 가능성에 입각한 논증일 뿐이지만, 신약 성서 사본학에서 이러한 논증이 강한 설득력을 얻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에게 남아 있는 고대 사본들의 수는 소수이고, 압도적인 다수가 후기 사본들이며, 후기 사본들은 거의 다 비잔틴 사본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사본의 수를 중요하게 간주하는 방법론을 도입하면 그것은 비잔틴 사본들을 따르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사본의 수를 계산하겠다는 것처럼 객관적인 방법론이 특정 사본 계열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주관적인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일인가? 그러므로 객관성을 빌미로 사본의 수를 세어야 한다는 유혹에 신약 성서학자들은 넘어가지 않는다. 이것은 오직 사본학이 싫은 사람들에게 달콤한 유혹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솔직히, 앞뒤가 뒤바뀐 논리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당연히 다수의 사본에 쓰여진 독법이 원문에 가까운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들은 킹제임스성경과 바른 보존 계열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은근히 자신들의 '잣대'를 독자들에게 주입시키고, 강요합니다. 위의 글을 살펴보면 '신현우'라는 사람은 다음과 같은 기준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장 오래된 사본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본이며, 그것은 바티칸 사본과 시내산 사본이다.' 그러나, '가장 오래된 사본'이 무엇인지 밝혀내고, 그 사본들이 KJV 1611를 지지하면 신현우의 주장은 거짓말이 되는 것입니다. <※ 아래 쪽에 자료가 있습니다.> 우선, 다음의 글을 인용합니다. 신연우라는 사람은 로마카톨릭의 이단적 사본학지식을 가지고 바르게 보존된 하나님의 진리를 대적하고 있습니다.[왜, 이들은 바른 진리의 지식을 대적하는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근본적으로는 자기들이 그렇게 배워왔기 때문이고, 자기가 속한 부류를 배신할 수 없어서이다. 만일, 진리의 지식을 받아들인다면,, 그 동안 자기가 배운 것들을 다 부인하고 수정해야 하는데, 그럴만한 믿음도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사랑도 없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하나님보다는 자기들의 배를 섬기는 자들이다!(롬 16:18)]

『...96개의 파피루스 필사본은(P3, 4, 7, 14를 제외하고는) 1890년 이후에 발견되었는데, 피커링은 이렇게 말한다.「호르트 당시에는... 초기의 파피루스 필사본들이 발견되지 않았었다. 그때 발견이 되었더라면 아마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이론은 등장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 모든 파피루스 사본들은(A.D. 300년 또는 그 이전에 기록됨) 비잔틴(KJV1611)본문을 지지한다... 초기의 파피루스 사본들은 특히 다양한 본문이 존재하는 660군데(또는 885군데)에서 비잔틴 사본을 지지한다.」피커링은 스투르쯔(H.A. Sturz)의 <비잔틴 본문 유형과 신약 원문비평학,
The Byzantine Text - Type and New Testament Textual Criticism>을 인용하면서, 파피루스 사본에서 발견된 사실에 기초한 KJV1611 본문 유형의 우월성에 대한 자신의 연구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H.A. 스투르쯔는... 입수할 수 있는 모든 파피루스를 조사했는데... 새로이 발견되는 필사본마다 비잔틴 본문을 지지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사실은 신약의 30%만이 초기의 파피루스 증거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더욱 큰 의미를 갖는다... 신약의 모든 부분을 담고 있는 초기 파피루스 사본 세 개만 있다면, 비평적(취사선택적) 본문에서 무시된 약 5,000개 이상의 비잔틴 계열 본문이 초기의 파피루스 사본들에 의해 그 진위성을 인정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그 누구도 합리적이고 또 책임 있는 말로, 비잔틴 계열의 본문 유형을 후대의 것으로 단정지을 수 없다... 현대 성경 편집인들은 그 계열의 본문을 계속해서 거부하지만, 그것들이 후대에 기록되었다는 주장은 더 이상 성립될 수 없게 되었다.」A.F.J. 클리진(Klijin)은 그의 <서방 계열의 사복음서 본문 연구, A Survey of the Research into the Western Text of the Gospels>에서 시내산 사본과 바티칸 사본(4세기) 본문을 파피루스 사본(2세기)과 비교했는데, 피커링은 그의 연구를 덧붙여서 표준 원문을 시내산 사본, 바티칸 사본과 비교했다. 그 결과 피커링은 KJV 본문(표준원문)이 새로운 역본들이 기초로 하고 있는 시내산 사본이나 바티칸 사본의 본문보다 초기의 파피루스 사본들과 훨씬 더 많이 일치한다고 결론지었다. /「뉴에이지 성경 역본들」/ 게일 립링커 著...』- HanSaRang 註.)

  유혹은 추한 실상을 숨기고 아름다운 옷을 입고 나타난다. 이 달콤한 유혹은 통계학의 옷을 입고 나타나기도 한다. 세대주의 신학의 아성인 미국 달라스 신학 대학원의 하지스(Z.C. Hodges)는 1975년에 그의 강의안에서 통계학적 고찰에 토대하여 다음과 같은 주장을 제기하였다.
"정상적인 상황들 속에서 경쟁하는 본문들보다 더 오래 된 본문일수록, 이후 어떤 시기에든지 존재하는 다수 또는 대다수의 사본들 속에 보존될 확률이 더 높다. 그러나 가장 오래 된 본문은 원본이다. 그러므로... 대다수의 사본들은 극소수의 사본들보다 원문의 특성을 정확하게 반영할 확률이 훨씬 더 높다."

  이 과일을 먹으면 원문과 원문이 아닌 것을 알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유혹의 선악과를 받아 먹었다. 그러나 미국 학자 홈즈(M.W. Holmes)는 이 사본학 선악과의 정체를 폭로하였다. 하지스의 주장은 "정상적인 상황들 속에서"만 통하는데, 신약 성서 사본들의 필사와 전승은 정상적이지 않은 상황들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의 명탐정 홈즈가 지적하는 비정상적인 상황들을 살펴보자. 우선, 역사는 신약 성서 초기 사본들에게 잔인하였다. 특히 로마 황체 티오클레티안(Diocletian)은 명을 내려 성서를 불태우도록 명하여 많은 초기 사본들이 이때 사라지고 말았다. 고대 교회사가인 유세비우스는 이 사건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그들이 영감된 거룩한 책들을 장터의 중앙에서 불태우는 것을 우리는 눈으로 목격했다."

  로마의 관리들과 군인들이 교회마다 집집마다 수색하여 성서를 수거하여 불태우고, 이에 응하지 않고 성서를 숨기다가 적발되면 참형을 당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이것을 어찌 사본 전승의 정상적인 상황이라 하겠는가?
"디오클레티안 제19년에 교회들을 허물어뜨리고, 성경들을 불에 태우자는 황제의 칙령이 도처에 내려졌다."
  이렇게 많은 고대 사본들이 불타 없어지는 가운데서도 일부 고대 사본들은 남아 있다. 그러나 7세기에 이루어진 이슬람 세력의 확장은 북아프리카, 이집트, 팔레스타인,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 등지에서 기독교인들의 수를 급격히 감소시켰다. 이 지역에서의 기독교인들의 수의 감소는 곧 이 지역에서 성경 사본의 필사가 덜 이루어지게 하였다. 따라서 이집트 지역에서 필사된 알렉산드리아 사본들의 수가 적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대다수의 사본들이 보존된 비잔틴 지역은, 동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노플이 1453년도에 무너지기 전까지 이슬람 세력의 영향권 밖에 있었기 때문에 성경의 필사가 활발하게 계속될 수 있었다. 따라서 계속 필사된 사본들이 다수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6세기 경에 이르러 헬라어 사용권이 비잔틴 제국 내로 좁혀진 것을 지적할 수 있는데, 그리하여 헬라어 성경 필사는 주로 이 지역에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헬라어 사용권에서 많은 헬라어 사본이 필사된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비잔틴 사본의 다수성은 그것이 원본으로부터 기인하였기 때문일 필연성이 없다.
(신약성경을 기록한 언어는 일상적으로 쓰이는 '코이네 헬라어'였습니다. 초기의 그리스도인들의 지역교회는 당연히 성경을 가지고 있었고[코이네 헬라어 표준원문], 사도들의 뒤를 이어서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 성경은 필사되고 전파되었습니다.6세기 경에 헬라어 사용권이 좁혀졌다고 해도, 이전의 헬라어 원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보존되어 올 수 있는 것입니다.- HanSaRang 註. )
  이처럼 신약 성서 사본의 필사와 보존은 통계학적으로 추측할 수 있는 정상적인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급변하는 역사의 우연이 작용하는 비정상적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하지스의 주장은 신약 성서 사본들의 경우에는 유효하지 않다. 따라서 신약 사본학에서는 사본의 다수성을 원문성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
( ※ 위의 논리가 왜 잘못 되었는지 다음의 글을 읽어보십시오.
『진리에 대해 무지한 학자들은 다수의 필사본들을 경시하고 가장 오래된 필사본을 근거로 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들은 4세기의 필사본인 '시내산사본'(Codex Sinaiticus / 알렙)과 '바티칸 사본'(Codex Vaticanus / B)을 제시한다. 그 결과 그들은 전통원문(다수원문, 비잔틴원문, 시리아원문, 안티옥원문)을 대표하는 헬라어 "표준원문, Textus Receptus"을 열등한 것으로 취급하려고 한다. 그러나 오래된 필사본들이 오래되었다는 것만으로 우월하지 않으며, 후대에까지 남아있을 수 있었던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고린도후서 2:17에 따르면, 성경이 기록되는 시기에도 성경을 변개시키는 무리가 있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오래된 것이라 하여 최고의 것으로 판정될 수 없다. 둘째, 그 본문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 필사되지 않았기 때문에 훼손되지 않고 유지될 수 있었던 예가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1844년까지 사용되지 않고 수녀원의 쓰레기 통에 놓여 있었던 "시내산사본"과 1477년까지 로마 바티칸 도서관의 서고에 놓여 있었던 "바티칸사본"이다. 셋째, 오래된 것이 최고의 사본이라고 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증거가 있다. 이것은 오래된 필사본을 주장하며 변개된 "시내산사본"과 "바티칸사본"을 선호하는 오늘날 성경 변개의 대표주자인 커트 알란트(Kurt Aland)의 증언에서 확인할 수 있다. "파피루스 47(P47)은 필사본들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이며, 계시록의 전체 또는 거의 전체 본문을 담고 있지만 확실하게 최고가 아니다."
반면에 다수원문에 대해서 제인 하지스(Zane C. Hodges)는 이렇게 말한다. "이러한 거대한 양의 필사본들(약 80-90%)이 <킹제임스성경>의 근거가 된 원문을 가장 잘 드러내는 헬라어 원문을 담고 있다는 것은 원문 비평을 연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잘 알려진 사실이다."
만일 그 다수의 숫자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정도가 극히 적다면 그 필사본들의 숫자는 별다른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수원문은 전체 필사본의 약 80-90%를 대표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매우 큰 것이다. 그러므로 변개되었기 때문에 회람되는 것이 중지되었던 비교적 오래된 소수의 필사본들이 최초의 원본을 가장 잘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필사본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회람되고 필사된 결과 초기의 것은 마모되거나 없어지고 비교적 후기의 필사본들이 전수된 다수원문(전통원문, 비잔틴원문, 시리아원문, 안티옥원문), 즉 헬라어 표준원문이 최초의 원본을 정확히 제시한다는 사실이 더 강한 논리적 증거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실 그대로 진실임을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지키신 성경」/조승규 著...』 - HanSaRang 註.)

 

【 인용문 ─ (2) 】
게일 립링거 著 /『 뉴에이지 성경역본들 』...

  제33장 다수 필사본 (P. 431)

  ━ 학자들의 비밀
  일반 그리스도인들은 학자들의 영역을 넘어드는 일이 거의 없는 것이 사실이다. 현대 역본들의 판매 실적은 대개 사람들이 기독교 잡지에 난 광고를 보고 대충 검토한 뒤에 성급하게 그러한 성서들을 구입하기 때문에 생긴 결과이다. 오랜 시간 동안 "기도에 힘쓰고" <하바드 신학 평론> 같은 저널을 진지하게 연구해서 얻어진 결과가 아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학자들 중에서는 일반 그리스도인들이 새로운 역본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갖고 있다고 비평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윌버 피커링(Wilbur Pickering)이다. <신약 연구,
Identity of the New Testament Text>의 저자이며 달라스 신학대학에서 신학 석사를 받았고 토론토 대학에서 언어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난 백 년 동안 있었던 '진전'은 분명히 잘못된 방향으로 이루어졌다는 비참한 사실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현대 역본들과 비평판들은 원본에서 약 6,000군데나 수정되었으며, 그 중 다수는 심각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 차이점들은 AV나 TR[킹제임스 역본의 저본이 된 헬라어 <텍스투스 리셉투스>]과 비교했을 때 몇 배나 더 원본에서 이탈된 것이다. 어떻게 해서 이 같은 재난이 우리에게 닥친 것인가... 이제까지 이루어진 성과의 상당 부분은 잘못된 것이다..."

  가장 오래된 신약 증거 사본들(87,000개)을 면밀히 검토한 딘 존 버간(Dean John Burgon)은 '새로운' 역본들과 헬라어 원문에서 바뀐 부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평범한 성경 독자들은 당연히... 바뀐 부분들이 성경 개정자의 번역상의 기술에서 온 것, 즉 헬라어를 연구한 결과로 얻어진 진전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매우 의심스러운 학자적 태도를 가지고,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오류를 그것도 종종 범하였다... 그보다 더 비과학적인 일은 없을 것이다...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50년 동안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유감스럽게도 그들이 바꾼 부분들은 자신들이 만든 성서를 오히려 망가뜨리는 것이며, 그들 대부분이 헬라어에 대해 불완전한 지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만을 입증하는 것이다."

  <킹제임스성경 수호,
The King James Version Defended>의 저자이며 예일 대학과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을 졸업한 동시에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콜럼비아 대학에서 신학 석사 학위를 받은 바 있는 에드워드 힐스(Edward F. Hills)는 이렇게 말한다.
"현대어로 된 성서들은 제대로 된 연구에 근거하지 않았다."

  시카고 대학의 학장이었으며 북미 신약 헬라어 학자 연합회장을 역임했던 고(故) 콜웰(E.W. Colwell)은 <신약 원문비평학의 신화에 대한 연구,
Studies in Mythology in Textual Criticism of the New Testament>외의 많은 저술을 남겼다. 그는 새로운 역본들의 신뢰도에 대한 생각이 변했다는 것을 다음과 같은 말로 고백하고 있다.
"...현대 학자들은 대부분의 [본문상의] 오류들이 고의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믿는다... 신약의 본문이 여러 가지가 나오게 된 것은 신학적 또는 교리적인 이유들로 야기되었다. 이렇게 다양한 번역이 나온 것은 그들이 부주의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임을 폭로하는 많은 저술들이 (필자의 것을 포함해서) 인쇄되어 나와 있다...
그 역(逆)이 참이다."

  달라스 신학 대학의 신약 문학 및 주석학 교수이자 헬라어 신약성경 공동 편집위원인 제인 하지스(Zane Hodges)는 새로운 성서들에 대해 이같이 말한다.
"위험할 정도로 '반계몽적'이며, 끔찍할 정도로 비과학적이다. 평범하고 식견있는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은 누군가가 '더 나은 사본' 또는 '더 오래된 사본' 운운하며 <킹제임스성경> 본문을 고치는 것을 종종 들어 왔다... 이 분야에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은 평범한 성도들은 그러한 설명을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의 말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다."

  학자인 윌리엄 팔머(William Palmer)는 이렇게 말한다.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은 [새로운 헬라어 성경에 관해서] 거의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것은 많은 경우 인용에 의존하는데, 그 인용문은 진짜가 아니다... 그 부분들을 원문과 대조해 보면, 증거로서의 가치는 전혀 없는 것으로 드러난다."

  ━ "완전한" 하나의 헬라어 성경(?)
  '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최근 발간된 성서 역본들, 예를 들면 NIV, NASB, NKJV, <리빙바이블> 등을 사용하고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정말로 믿는 것은 '1990년대에, 미국에서, 자신이 직접 만나고 교제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한 역본들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약 2,000년 역사 동안 새로운 역본과 동일한 성서를 사용한 사람들은 수적으로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정말로,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서는 자리에 서고 싶다면 자기 주변만 살펴보고 성급히 결정 내려서는 안될 것이다. 지난 역사의 긴 발자취와 전세계를 살펴 보아야 한다. 그게 더 안전하다.
  하나의 완전한 헬라어 원본이 존재한다는 꿈은 단 두 개의 필사본도 서로 완전히 똑같지 않다는 현실 앞에 무너져 내린다. 따라서 서점에 진열된 헬라어 성경을 지칭할 때 정관사 'the'를 붙여서 말하는 사람들은 헬라어 성경 본문이 얼마나 변화무쌍한지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헬라어 신약성경의 필사본은 5,366개에 달한다. 그 필사본들이 함께 엮어져 제공하는 본문은 마치 변화하는 만화경 같다. 피커링은 그것들이 "수백만 군데의 차이를 보인다."고 말한다. 이 "변덕스런" 필사본들 중에서 학자들은 자신들 마음대로 소위 '비평적 헬라어 성경'에 포함시킬 구절들을 뽑아 나간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헬라어 성경은 이십여 개에 달하며, 각각 5,000 내지 8,000 군데의 차이를 보인다. 한 학자는 "동일하게 자격 있는 비평가들의 똑같은 구절을 두고 필사본마다 서로 다르게 기록되어 있을 때, 서로 상반되는 본문을 취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밝혔다.

  ━ 학자들의 근거
  신약 성경 본문의 증거가 되는 것들은 파피루스 파편과 필사본, 소문자 및 대문자 필사본, 성구집 등이다. 현존하는 5,366개의 필사본과 2,209개의 성구집에는 각각 약자 또는 숫자로 이름이 주어진다.

파피루스 > 1-88   (예를 들면 P66, P46, P75)
대문자필사본 > 01-0274   (예를 들면 알렙, B, C, D)
소문자필사본 > 1-2795   (예를 들면 1-2795)
성구사전 > 1-2209   (예를 들면 1-2209)

  뿐만 아니라 2세기부터 그 이후로 헬라어 성경은 수많은 언어로 번역되었다. 그 결과 구라틴어, 시리아어, 콥트어, 에디오피아어 등 많은 언어로 된 번역본들이 만들어졌다. 이들은 신약 성경의 정확한 본문이 무엇인지에 대한 증거를 제공한다. 또한 2, 3, 4세기의 인물들, 예를 들면 존 크리소스톰, 이레내우스, 터툴리안, 저스틴 마터 등은 성경 구절들을 인용한 글을 남기고 있어 그것들 역시 신약 성경의 정확한 본문에 대한 증거가 된다. 딘 존 버간은 그 중 87,000 이상을 보외(補外)했다. 오늘날 독일 뮨스터에 소재하고 있으며 커트 알란드가 창립한 '신약 필사본 연구회'가 필사본들을 대조 검토하고 있다. 또 캘리포니아 클레어 몬트에 소재한 '고대 성경 필사본 연구 협회'는 상당량의 필사본을 마이크로필름으로 소장하고 있다. 이들에 대해 직접 연구하기 원하는 독자들을 위해 이 필사본들의 복사본이 보관된 곳에 대한 자료를 각주에 제시해 놓았다.

  ━ 다수 필사본
  이들 필사본, 성구집들, 저술들 중 절대 다수는 신약 성경 구절에 관한 한 전반적으로 서로 일치한다. 2세기에 기록된 필사본(P66)에서 시작해서 중세(A.D. 1500)에 기록된 것들까지 모두 '다수 필사본'(이는 커트 알란드가 처음으로 사용한 표현이다.)의 본문을 뒷받침하고 있다. 딘 버간은 고대 작가들의 글 대부분이 '다수 필사본'의 본문을 담고 있음을 발견했으며, 그는 이 본문을 "전통원문"이라 불렀다. 이 원문은 다른 말로는 시리아 원문, 비잔틴 원문, K(캅파), 일반원문이라고도 불린다.
  이 원문 유형이 영어로 된 것이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킹제임스성경>이다. 1611년 이래 8,0900,0000부가 만들어졌으며 300여개의 언어로 번역된 이 성경은 다수 필사본 본문의 연속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새로운 역본들은 '다수 필사본 본문'에 근거하고 있지 않다. 그들은 서로간에도 일치하지 않으며 다수 필사본 본문과도 일치하지 않는 소수의 필사본에 근거하고 있다.)
 
  ━ 비극의 시작
  신약 성경 저자의 '자필원본'이 있었던 도시들은 소아시아(시리아), 그리스, 로마였다.

> 소아시아ː요한복음,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골로새서, 디모데전후서, 빌레몬서, 베드로전서, 요한일이삼서, 계시록, 누가복음(혹음 로마), 사도행전(혹은 로마), 베드로후서(혹은 로마), 마태복음(혹은 로마), 야고보서(혹은 팔레스타인), 유다서
> 그리스ː고린도전후서, 빌립보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도서
> 로마ː마가복음, 로마서, 히브리서

  성경 자체도 '다수' 필사본 본문이 형성되어 많이 퍼졌음을 증언하고 있다.
> 사도행전 6:7ː
하나님의 말씀이 널리 전파되니
> 사도행전 12:24ː
하나님의 말씀은 성장하고 번성하더라.
> 사도행전 13:49ː
의 말씀이 온 지역에 퍼지니라.
> 사도행전 19:20ː
하나님의 말씀이 힘있게 융성하며 세력을 얻으니라.

  피커링은 시간이 흐르면서 원본이 증가한 사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성경 원문 전수의 역사 초기에는 자필원본에서 나온, 가장 믿을 만한 복사본들이 자필원본이 있었던 지역을 중심으로 유포되었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으며, 이는 매우 타당한 추측이다. 사본의 수요는 계속해서 증가했고, 그에 따라 성경 사본의 수도 헬라-로마 세계에서 증가했다. 당시 자필원본을 보유하고 있는 지역을 통해 복사본들을 검증하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에 많은 수의 필사본이 유포되었음에도 그 본문을 원문과 일치하게끔 유지시키는 것이 가능했다... 신약이 기록된 지 비교적 오래 지나지 않은 기간 안에 '다수 필사본 본문'이라는 것이 신속하게 형성됐다. 그것의 형태는 근본적으로 자필원본과 동일한 것이다... 통계적 개연성의 과학에 의하면, 그러한 환경 속에 있는 모든 유형은 그것의 지배적 위치에서 이탈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사도 시대로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시대에 연구된 본문 유형은... 교회가 전반적으로 인정하고 사용하고 전수한 그 유형이다."
  
  학문적 영역에서는, 세계적 수준의 학자들은 이 본문 유형이 초대 교회 시대와 역사 전체를 통해 지배적으로 사용되어 왔다는 사실에 하나같이 동의하고 있다.
> 콜웰은 그것을 "통제받지 않은, 2세기의 대중적인 판"이라 부른다.
> 컴포트(Comfort)는 "그것은 헬라어 사용권에서 가장 지배적으로 사용된 본문 유형이 되었다... 그것이 거의 표준이 되었다. 그때 이후로 거의 모든 대문자필사본은 비잔틴[다수 필사본] 원문을 따르고 있으며, 에라스무스가 사용한 대문자필사본도 마찬가지다. 그가 편찬한 본문이 결국 <텍스투스 리셉투스>가 되었다.
> 기얼링스(Geerlings)는 다수 필사본 본문에 관해 "그 기원은... 자필원본으로까지 올라간다."고 확언했다.
> 하지스는 "전반적으로 다수 필사본의 본문은 근본적으로 일치하며 그 대표적 필사본들간에 비교적 적은 양의 차이를 보인다... 어떤 책의 필사본들이라 할지라도 그 전수 과정에서 최상의 본문을 담고 있는 것이 다수의 필사본으로 남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킹제임스성경>이 저본으로 삼은 본문인 다수필사본 본문이 실제적으로 최초의 원본의 본문을 그대로 재현했음을 가장 강력하게 주장할 수 있는 본문이다... 다수필사본 본문이 신약 원문 전수 역사에서 지배적이라는 사실이 그 근거이다."
> <하버드 신학 평론>은 "신약 필사본들의 절대 다수는 본문이 일치한다."고 컬솝 레이크(Kirsopp Lake)의 말을 인용했는데, 레이크는 필사본들을 깊이 있게 연구했다.
> 폰 소덴(Von Soden)은 그 누구보다도 원문을 광범위하게 연구했는데, 그는 다수 필사본 본문을 "일반(Common)원문"이라고 부름으로써 그것이 이제까지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어 온 헬라어 본문 유형임을 보여 주었다.
> 커트 알렌드(Kurt Aland)는 1,000군데에서 1,000개의 소문자 필사본들을 일일이 대조하여 그 중 90%가 "전통원문의 본문"을 담고 있음을 밝혔다. 독일 뮨스터에 소재한 '신약 필사본 연구회'의 연구결과도 이 90%의 필사본 본문이 올바르다는 것을 확증한 바 있다. 소문자 필사본에 파피루스와 대문자 필사본까지 합한다 해도 그 비율은 80%이상이다.
> 메쯔거(Metzger)도 "...표준원문이 기초로 하고 있는 소문자 필사본이 절대 다수"라고 말했다.
> 힐스(Hills)는 "현존하는 헬라어 신약 필사본의 절대 다수는 그 본문이 서로 거의 완전하게 일치하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그것들이 동일한 신약 본문을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현대의 원문비평학자들은 이 다수 필사본 본문을 비잔틴 원문이라고도 부른다. 이렇게 이름지은 것은 이 헬라어 성경이 비잔틴 시대(A.D. 312-1453)에 가장 널리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현대의 모든 학자들이 인정하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이 있기 전 수 세기 동안 이 비잔틴 원문은 그리스교회 전체가 사용한 원문이었으며, 종교개혁 이후 프로테스탄트 교회 전체가 300여 년 동안 사용한 원문이기도 하다... 그것은 헬라어 신약 필사본의 절대다수가 담고 있는 본문이다... 전통원문은... 참된 원문이다. 그 이유는 그 원문이야말로 그리스도의 교회가 끊이지 않고 사용해 온 것으로 인정된 헬라어 신약 성경 본문 유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까지 축적되어 온 증거는... 헬라어 신약 필사본의 절대 다수가 담고 있는 비잔틴 원문이 참된 원문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고도 남는다."고 말했다.

  ━ 1881년 성경개정위원회ː1% 밖에 안되는 소수필사본을 택하다
 
『속이는 저울은 께 가증한 것이나』(잠 11:1).
  다수 필사본 본문이 보이는 차이들은 미소하다. 그러나 다수 필사본에 포함되지 않는 나머지 소수의 필사본들의 본문은 큰 차이를 보인다. 이 소수의 필사본들이 담고 있는 신약 성경 본문은 다수와 일치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기들끼리도 일치하지 않는다. 바티칸 사본(B), 시내산 사본(알렙), 베자 사본(D), 파피루스 75(P 75) 등은 바로 이 소수 필사본에 포함된다. 버간은 알렙, B, C, D에 대해 이같이 쓰고 있다.
"이 네 개의 사본의 본문을 자세히 연구해 보면 근본적인 차이를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들의 본문은 현존하는 필사본 100개 중 99개와 일치하지 않을 뿐더러 서로간에도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나 1881년에 이 소수 필사본 본문 유형이 약 이천 년 간을 버텨 온 다수 필사본 본문을 전복시켰다. 바티칸 사본(B)을 사용한 '새로운("옛 지계표를 옮기지 말며-잠 23:10)' 헬라어 신약 성경이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에 의해 소개되었으며, 그 이후에 나온 모든 역본들의 저본으로 사용된 것이다.
  대영 박물관 관장을 역임했고 원문비평학 분야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교재들을 저술한 고(故) 프레드릭 케년(Frederic Kenyon)은 다수 필사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본문은 필사본들의 절대 다수에서 발견되며, 에라스무스와 스테파누스가 이를 인쇄한 것이 '텍스투스 리셉투스' 즉 '전통원문'이라 불렸다... 1881년까지... 그것은 실제적으로 기독교의 전 영역에서 사용되는 원문으로 자리를 지켜 왔으며, 전통원문의 위치가 결정적으로 도전받게 되자 버간 같은 옹호자들이 강력히 그 원문을 수호했다.[이 '새로운' 소수 필사본 헬라어 성경은] 알렙과 B 유형의 본문을 지배적으로 사용했다... [그 변화들로 인해] 성경 본문은 광범위하게 수정되었으며, 현대의 모든 비평판들에 지배적인 영향을 끼쳤다. 분명한 것은... 전체적인 안목에서 보았을 때 고의적인 대체가 도처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텍스투스 리셉투스는 그에 비해 언제나 더 길고 더 완전한 본문을 담고 있다.

  피커링은 새로운 역본 편집인들이 1%에 해당되는 본문을 계속해서 사용했음을 밝힌다.
"[새로운 역본들은] 현존하는 5,000개가 넘는 헬라어 필사본들을 무시한다... 앞에서 제시한 증거에 따르면 비정상적인 신약 원문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입증된다. 물론 그러한 본문 유형들 중 몇은 과거에 국소적으로 또 일시적으로 사용되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자필원본과 대조함으로써 그러한 본문 유형이 유포되는 것을 막았을 가능성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수 필사본 본문(알란드) 또는 전통원문(버간)은 성경이 전수되어 온 줄기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것과 상이한 본문을 담고 있는 사본들은 극소수이다... 현존하는 필사본 중 90%가 다수 필사본 본문 유형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나머지 10-20%의 사본들은 그에 경쟁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본문도 제시하지 못한다. 소수의 사본들은 다수와 차이를 보이는 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많이) 자기들끼리도 일치하지 않는다. 우리는 필사본들의 80%를 대표하는 쪽과 나머지 20%를 대표하는 쪽을 놓고, 이 두 가지의 본문 유형을 비교해서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파피루스 75와 바티칸 사본 본문을 비교하는 것을 두고 말할 때) 우리는 80-90%의 사본들과 1%를 놓고 판단하는 것이다. 특정 구절을 놓고 말하자면, 디모데전서 3:16절에서 하나님[KJV]으로 되어 있는 사본들은 300개가 넘는 대 반해 '그'(who)[NIV, NASB 등]로 되어 있는 필사본은 7개에 불과하다. 따라서
우리는 97%와 2%를 놓고 판단하는 것이다. 다수 필사본 본문을 거부하는 학자들은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그것들은 고대의 기형적 형태의 본문을 전수한 사본이다. 오늘날의 비평판들의 특징은 바로 그러한 기형적 형태의 본문에 의존한 것이다... 나는 필사본들의 절대 다수가 지지하는 본문 유형을 참된 본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참된 본문이 무엇인가에 대한 우리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다수의 사본들이 제시하는 증거를 거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스는 새로운 역본들의 본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오늘날의 원문비평학은 전체적인 시각에서 보았을 때 다수 필사본 본문을 반복적으로 그리고 조직적으로 거부하고 있다... 이것은 끔찍이도 비과학적인 것이다... 만일 현대 원문비평학의 사조가 진정으로 보다 과학적인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이 문제는 다시 한 번 집중적인 고려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들은 표준원문을 너무 성급하게 저버렸다..."

  ━ 알렉산드리아 이야기
  이러한 필사본들은 소수의 필사본 증거를 이룰 뿐 아니라,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라는 하나의 지역만을 대표한다. 반면 다수 필사본은 그리스, 콘스탄티노플, 소아시아, 시리아, 알렉산드리아, 아프리카, 고울, 남부 이탈리아, 시실리, 영국, 아일랜드 등에서 나온 필사본들로 구성되어 있다. 다음은 학자들의 말이다.
> 피커링은 "하나의 제한된 지역에서 발견된 본문은 원문이 될 수가 없다... 어떤 본문이 4세기에 사라졌다면, 역사는 그 본문에 대해 불리하게 증언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 핫지는 비잔틴 계열의 본문 유형이 아닌 대부분의 초기 필사본들은 모두 이집트에서 나왔기 때문에 그 지역에서만 발견되는 원문 전통을 나타낸다고 말한다.
> 준쯔는 오늘날 우리가 갖고 있는 현대판들이 서로 일치한다는 사실은 그것들이 원문을 그대로 전수했다는 증거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것은 그 판들을 만든 편집인들이... 필사본 증거에서 단 하나의 계열, 즉 서방계열이 아닌 고대의 대문자필사본들을 따른 사실에 기인한다."
> K.W. 클라크는 "이들의 본문은 모두 이집트 개정본(Egyptian recension)에서 나온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NASV 신약 헬라어-영어 행간번역은 그것의 헬라어 원문이 "개정된" 것이라고 말한다. 개정된 것보다는 "원문"이 낫지 않겠는가?

  ━ 알렉산드리아 옹호론자들
  타조처럼, 새로운 역본 편집인들과 KJV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머리를 이집트 땅 모래밭에 파묻은 채 수천 개의 다른 증거들은 제쳐두고 오직 바티칸 사본과 파피루스 75만을 보고 있다. 이처럼 자신들이 만든 역본의 원문비평학적 입지가 취약하다는 사실에 직면하는 학자들은 다양하게 반응하는데, 어떤 이들은 자신들이 취했던 문제 많은 입장을 포기하기도 한다.
"이 계열[다수필사본]이 수적으로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사실에 대해 불안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즉 다수필사본 계열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 소량의 필사본 증거를 능가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자신들의 입장이 소수 필사본에 국한됨을 인정한다. 컴포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학자들은... 헬라어 성경의 원문을 재현하기 위해 소수의 필사본에 의존한다... 일반적으로 서방 계열(D) 본문과 비잔틴 계열[다수 필사본] 본문보다는 알렉산드리아 계열 본문을 더 중요시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자신들의 글 안에서 어떤 부분에서는 진실을 말하다가도 다른 부분에서는 거짓된 인상을 주는 모순을 보이기도 한다.
"칼슨은 다음과 같이 말하다가도... 'T.R.[KJV의 헬라어 원문]은 기준 없이 조합된 본문으로 비교적 후대에 만들어진 소수의 필사본에 원문적 기초를 두고 있다." [몇 장 뒤에 가서는 어조를 바꾸어 말한다.]"95%의 필사본들은 비잔틴 전통에 따른다... 이 원문의 거의 대부분은 KJV를 지지한다... 이 계열에서 현존하는 필사본들은 다른 세 계열[카이사랴, 서방, 알렉산드리아 계열]을 합한 양보다 훨씬 더 많다." [그리고 나서 또다시 그는 논리를 무시하고 다음과 같이 결론 짓는다.]"하나님께서 비잔틴 원문 전통을 섭리적으로 보존하셨다는 주장은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적어도 천 년 동안 비잔틴 원문 유형을 보존하셨으며, 그 기간동안 다른 계열은 알려지지 않았다...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 아래서 일어나는 모든 것이 과연 도덕적으로 선하고 반드시 옳은 것인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악의 원인을 하나님께 돌리려 하지 않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은 모든 것을 포함하며 모든 것을 주관한다... 아돌프 히틀러까지..."

  그러다가 걱정되기라도 하는 듯 이렇게 덧붙인다.
"물론 다수의 성도들이 진실된 것으로 믿었던 것과 교리적으로 차이나는 부분에서는 겸허한 마음을 가지고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필사본들의 절대 다수는 <킹제임스성경>의 본문과 일치한다는 사실은 양쪽 학자들 모두가 인정하는 것이 분명하다. NIV, NASV, NEB, TEV, NKJV, 리빙 바이블, 신세기역본, CEV, RSV, NRSV, JB, NJB, NAB 등 새로운 역본들은, 피커링의 말을 빌면 현존하는 필사본 중 "1%라고 하는 극소수"에 기초한 것이다. KJV는 수적으로 더욱 굳건한 기반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역적으로도 우월하다. KJV의 원문은 수많은 지역에서 발견된 것으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만 발견되는 소수 필사본과 대조된다. 결론적으로 KJV의 본문은 이제껏 발견된 가장 오래된 필사본 P66(파피루스 66, A.D. 175)과 일치하며, 새로운 역본들은 원문으로부터 변개된 후대의 본문, 즉 P75(파피루스 75, A.D. 200)와 시내산사본(알렙), 바티칸 사본(B, A.D. 350)를 기초로 한 것이다.

 

【 인용문 ─ (3) 】
게일 립링거 著 /『 뉴에이지 성경역본들 』...

  제34장 가장 오래된 필사본들 (P. 443)

  ━ 파피루스 사본들
  콜웰, 스투르쯔, 준쯔, 피커링 등의 학자들이 파피루스 사본들을 발견하고 세밀하게 연구하기 전인 19세기의 일부 학자들은 '다수 필사본 본문'이 4세기의 개정본이며 가장 오래된 필사본들의 본문을 그대로 담고 있지 않다고 믿었다. 1881년에 호르트는 "시리아 계열의 특징을 담고 있는 본문은 모두 무시되어야 하며, 3세기 중반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다수 필사본이 '후대에' 만들어졌다는 주장은 1937년에 케년이 만든 교재에서도 반복된다. "필사 연대는 비교적 후대로 잡는데... 오늘날 확고한 사실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러면서 또 그는 "호르트가 '시리아' 계열이라 부른 본문이 4세기 이전에 존재했다는 것이 증명된다면 그의 이론은 기초부터 무너져 버리는 셈이 된다."고 말한다.
  한편 하바드大 학자인 힐스는 "오늘날의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96개의 파피루스 필사본은(P3, 4, 7, 14를 제외하고는) 1890년 이후에 발견되었는데, 피커링은 이렇게 말한다.
"호르트 당시에는... 초기의 파피루스 필사본들이 발견되지 않았었다. 그때 발견이 되었더라면 아마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이론은 등장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 모든 파피루스 사본들은(A.D. 300년 또는 그 이전에 기록됨) 비잔틴(KJV1611)본문을 지지한다... 초기의 파피루스 사본들은 특히 다양한 본문이 존재하는 660군데(또는 885군데)에서 비잔틴 사본을 지지한다."

  피커링은 스투르쯔(H.A. Sturz)의 <비잔틴 본문 유형과 신약 원문비평학,
The Byzantine Text - Type and New Testament Textual Criticism>을 인용하면서, 파피루스 사본에서 발견된 사실에 기초한 KJV1611 본문 유형의 우월성에 대한 자신의 연구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H.A. 스투르쯔는... 입수할 수 있는 모든 파피루스를 조사했는데... 새로이 발견되는 필사본마다 비잔틴 본문을 지지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사실은 신약의 30%만이 초기의 파피루스 증거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더욱 큰 의미를 갖는다... 신약의 모든 부분을 담고 있는 초기 파피루스 사본 세 개만 있다면, 비평적(취사선택적) 본문에서 무시된 약 5,000개 이상의 비잔틴 계열 본문이 초기의 파피루스 사본들에 의해 그 진위성을 인정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그 누구도 합리적이고 또 책임 있는 말로, 비잔틴 계열의 본문 유형을 후대의 것으로 단정지을 수 없다... 현대 성경 편집인들은 그 계열의 본문을 계속해서 거부하지만, 그것들이 후대에 기록되었다는 주장은 더 이상 성립될 수 없게 되었다."

  A.F.J. 클리진(Klijin)은 그의 <서방 계열의 사복음서 본문 연구,
A Survey of the Research into the Western Text of the Gospels>에서 시내산 사본과 바티칸 사본(4세기) 본문을 파피루스 사본(2세기)과 비교했는데, 피커링은 그의 연구를 덧붙여서 표준 원문을 시내산 사본, 바티칸 사본과 비교했다. 그 결과 피커링은 KJV 본문(표준원문)이 새로운 역본들이 기초로 하고 있는 시내산 사본이나 바티칸 사본의 본문보다 초기의 파피루스 사본들과 훨씬 더 많이 일치한다고 결론지었다.

  피커링은 "TR(표준원문)이 B(바티칸사본)보다 더 많은 초기의 증거를 갖고 있으며, 알렙(시내산사본)보다는 두배나 더 많다. 따라서 TR이 B나 알렙보다 더 오래된 본문을 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말한다.
  또 다른 학자가 발견한 사실은 KJV 본문을 확증해 주는데, 1870년대까지만해도 KJV 본문은 '후대의' 것으로 여겨졌었다.
> 준쯔는(G. Zuntz) <서신서 본문,
The Texts of the Epistles>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전에는 후대의 것으로 여겨져 외면당한 [KJV 유형의] 본문들 중에는 P46이 있다... 모든 비잔틴 계열 본문이 고대의 것인가?... 파스콸리(G. Pasquali)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파피루스 46과 45는 다수 필사본 본문을 지지한다.
> 메쯔거는 "파피루스 75는 수십 군데에서 다수 필사본 본문을 지지한다. [다수 필사본] 본문과 연관해서 P46(A.D. 200)은 어떤 본문들은... 가장 초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보여 준다... P66은 [다수 필사본] 본문 유형과 일치하는 본문을 담고 있다."고 말한다.
> 힐스는 "비잔틴 본문은 대부분의 비평가들이 후대의 것으로 평가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파피루스 보드커Ⅱ로 인해 가장 초기의 본문이라는 사실이 입증되었다."고 말한다.
> <신학 연구 저널>(런던, 옥스포드 대학 출판부, N.S., 제2권, 1960, P. 381)에는 "파피루스 66은 다수 필사본 본문을 지지한다."고 나와 있다.
> 컴포트는 "신약 파피루스 중 일부는 후대의 다수 필사본 본문과 대단히 유사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실제적으로 현존하는 몇 개의 초기 파피루스 사본들은 상당수의 후대의 다수 필사본(4세기 혹은 그 이후)과 연관되어 있거나, 적어도 공통된 조상을 갖는다."고 적고 있다.
> KJV를 모략하는 칼슨은 KJV 본문 전체 중 10%가 후대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제는 "새롭게 발견된 사실들로 인해 이 비율은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다."고 인정한다.
> 콜웰은 A.D. 200년경 서기관들이 필사본들을 변개시켜서 다수 필사본 본문을 소수 필사본 본문으로 바꾼 사실을 밝혔는데,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보드머 요한(P66)은 [KJV에서 발견되는] 본문 중 많은 부분이 가장 초기에 존재했다는 증거가 된다. 그런데 당대에 그 파피루스 본문에서 바꾸는 것은 [KJV]본문을 [새로운 역본 본문 유형으로] 바꾸는 것인 경우가 많다. 이것은 당시에도 [새로운 역본의 본문 유형이 KJV 본문 유형을]... 대체하는 일이 있었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가장 오래된 필사본인 P66에도 변개가 있었는데, 이것은 KJV 본문을 새로운 역본 형태의 본문으로 고치는 것이었다는 칼슨의 말은, KJV 본문이 소수 필사본 본문보다 더 오래된 것임을 입증해 준다.
  
  다음의 표는 가장 오래된 사본들인 1,2,3세기의 파피루스 사본들이 새로운 역본의 기초가 된 소수 필사본 알렙과 B(4세기)의 본문보다는 비잔틴 계열의 다수 필사본 본문인 KJV 유형의 본문과 일치하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 [구절 ━ KJV ━ 새로운 역본들]
▷ 막 5:42 ━ 다수 필사본 및 P45 ━ 알렙, B
▷ 막 7:35 ━ 다수 필사본 및 P45 ━ 알렙, B
▷ 눅 13:2 ━ 다수 필사본 및 P75 ━ 알렙, B
▷ 눅 24:47 ━ 다수 필사본 및 P75 ━ 알렙, B
▷ 요 4:29 ━ 다수 필사본 및 P66, 75 ━ 알렙, B
▷ 요 5:37 ━ 다수 필사본 및 P66 ━ P75, 알렙, B
▷ 요 7:39 ━ 다수 필사본 및 P66 ━ P75, 66, 알렙
▷ 요 10:19 ━ 다수 필사본 및 P66 ━ P45, 75, 알렙, B
▷ 요 10:31 ━ 다수 필사본 및 P66 ━ P75, 알렙, B
▷ 요 11:22 ━ 다수 필사본 및 P45, 66 ━ P75, 알렙, B
▷ 요 12:9 ━ 다수 필사본 및 P66, 75, B2 ━ 알렙
▷ 요 14:14 ━ 다수 필사본 및 P66, 알렙 ━ P75, B
▷ 요 7:41 ━ 다수 필사본 및 P66, 알렙 ━ P66, 75, B
▷ 요 9:6 ━ 다수 필사본 및 P66, 74, 알렙 ━ B (호르트는 B를 따른다)
▷ 요 13:36 ━ 다수 필사본 및 P66, 알렙 ━ B
▷ 고전 9:21 ━ 다수 필사본 및 알렙, C, P46 동사 ━ 알렙, B
▷ 고후 7:14 ━ 다수 필사본 및 P46, 알렙, C ━ 알렙, B
▷ 요 8:51 ━ 다수 필사본 및 P66 ━ P75, 알렙, B
▷ 요 9:28 ━ 다수 필사본 및 P66 ━ P75, 알렙, B
▷ 요 11:21 ━ 다수 필사본 및 P45, 66(단어 순서) ━ P75, 알렙, B
▷ 요 11:32 ━ 다수 필사본 및 P45 ━ P66, 75, 알렙, B
▷ 요 14:5 ━ 다수 필사본 및 P66 ━ B
▷ 벧전 5:8 ━ 다수 필사본 및 P72 ━ B
[이를 통해 가장 오래된 파피루스 사본들이 KJV 본문을 그대로 담고 있는 반면 새로운 역본들은 후대의 필사본들의 본문과 일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KJV가 가장 오래된 사본들을 사용했다는 전형적인 예는 누가복음 24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장에서 NASV는 단 하나의 5세기 사본 D와, 지금은 외면당하는 웨스트코트의 '삽입 이론'에 근거해서 거의 100개 단어를 삭제하거나 괄호로 처리했다. 그러나 이 구절은 2세기의 P75, 4세기의 알렙, B, W, A, C, L, 33 등 모든 필사본에 포함되어 있다. 다수 필사본 및 2세기부터 4세기에 이르는 초기의 필사본들이 제공하는 증거는, 5세기에 필사되었으며 그것도 극도로 변개된 필사본의 그것을 능가함이 분명하다. 이같은 차이를 설명하는 NASV의 각주에는 "어떤 필사본에는 삽입되어 있음"이라고만 되어 있다. 그러나 사실을 더욱 정확하게 말하려면 "하나를 제외한 모든 필사본에는 삽입되어 있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성 및 부활 후에 나타나심을 증거하는 마태복음 28:17을 "제자들이 주를 뵙고 경배하더라. 그러나 몇 사람은 의심하더라."고 기록하고 있다. 누가복음 24장에서 NASV를 만든 '의심하는 자들'은 1)제자들이 경배한 사실, 2)주의 승천, 3)주의 부활을 목격한 두 증인과, 제자들을 향한 주님의 사랑을 제거해 버렸다. 이 '의심하는 자들'은 12절에서 40절까지의 사건이 참으로 일어난 것인지 의심하는 것이다.
  누가복음 24장 한 장 안에서도 NASV는 뉴에이지의 모든 기본 교리와 일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사가들은 이단자 말시온이 D사본을 삭제한 사실을 인정하는데, 말시온은 마담 블라바츠키의 훌륭한 조언자로서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의 종교를 위해 부활한 인물이다. NASV의 누가복음 24장이 아래에 제시된 뉴에이지의 다섯 교리를 가르치고 있는 것을 살려보자.
  
1. 힌두교에서 하나님은 비인격적인 "One"(그분)이다. 그는 인간이 "슬퍼하는지"에 관심을 갖지 않으며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는 말로 인간의 두려움을 달래 주지도 않는다.
  
2. "그리스도"가 "그 그리스도"로 바뀜으로 한 개인의 직분이 아니게 되었다.
  
3. 예수는 승천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인간이었을 뿐이다. 그는 제자들을 떠나 인디아로 (아니면 몰몬교도들이 주장하는 대로 미국으로) 갔다.
  
4. 그는 인간에 불과했기 때문에 제자들은 그를 경배하지 않았다.
  
5. 손의 못자국을 통해 죄들을 위해 고난 받으신 증거를 분명히 보이셨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은 의심했다. 그들은 보혈이 없는 뉴에이지의 교리를 믿는 것이다.

  NASV나 네슬처럼 누가복음에서 D사본을 따르기 원하는 사람은 펜을 들고 누가복음 마지막 장에서 121단어를 삭제하고, 마지막 세 장에서는 229단어를 삭제하며, 누가복음 전체에서는 19,941단어를 삭제하면 된다. 그리고 사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4,000개를 더 삭제하면 끝난다. D에 일치하려면 신약에서 13,781군데를 고쳐야 된다. D사본의 10개 개정본 중 어떤 것을 따르느냐에 따라서 그보다 더 될지도 모른다. D사본을 따를 때 영지주의적이고 에비온학파적으로 변개된 누가복음 3:22을 따르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1세기의 뉴에이저들은 '그 그리스도'의 극(極, Polo)이 예수께서 침례받으실 때 임했다가 십자가에서 떠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이 구절을 변개시킨 것이다. D사본이 누가복음 24장을 변개시킨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뉴에이지의 대모이자 루시퍼 숭배자인 블라바츠키 여사가 D사본을 따라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말시온이 그 사본을 삭제시켰기 때문이다.

  ━ 그 밖의 초기 증거들
  KJV의 본문 유형이 초대 교회 시대에 지배적이었음을 보여 주는 2,3세기의 파피루스 사본들 외에 코덱스 W(4세기)와 코덱스 A(5세기)도 KJV를 지지한다. 뿐만 아니라 시내 산 시리아 역본(3세기), 고딕 역본(4세기), 페쉬타 시리아(오늘날은 기록 연대를 5세기 훨씬 이전으로 잡는다.) 등도 KJV와 일치한다. 한 학자는 새로운 역본 편집인들에게 다음의 사실을 상기시킨다.
"'오래된 사본'일수록 더 정확하다고 말하지만, 그 말 뒤에는 사실 다른 의도가 숨어 있다는 것은 그들 자신이 더 잘 알 것이다. 그들은 4,5세기에 기록된 두 개 또는 세 개의 기록물에만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본들은 오래된 사본 중 몇 개에 지나지 않을 뿐 그것들이 오래된 사본 전체를 대표하지는 않는다... 알렙과 B는 사용하면서 A, C, D, 구 라틴 역본, 콥트어 역본, 페쉬타, 사히딕 역본은 어째서 사용하지 않는 것인가? 오리겐과 유세비우는 인용하면서 디디무스, 아타나시우스, 에피파니우스, 바실, 크리소스톰, 디오도레, 그레고리, 시릴은 어째서 인용하지 않는 것인가?... 고대 교회 교부들의 기록은 비평 원문보다 전통 원문을 더욱 지지한다. [A.D. 350년 이전에는 2:1 의 비율로, 중요한 부분에서는 3:1의 비율로]

  다음은 시내산 사본과 바티칸 사본 기록 연대 이전에 살았던 초대 교회 작가들로 KJV 본문을 지지하고 있다.
> A.D. 100-150ː디다체, 디오그넬루스, 저스틴 마터
> A.D. 150-200ː베드로 복음서, 아테나고우이스, 헤게시푸스, 이레내우스
> A.D. 200-250ː클레멘트, 터툴리안, 오리겐, 클레멘티누스, 히폴리투스
> A.D. 250-300ː타우마투르구스의 그레고리, 노바티안, 시프리안, 디오니시우스, 아켈라우스
> A.D. 300-400ː아타나시우스, 마키리우스, 마그누스, 유세비우스, 힐러리, 디디무스, 바실, 보스트라의 디도, 예수살렘의 시릴, 니사의 그레고리, 사도들의 정경 및 법규, 에피파니우스, 암브로스

  ━ 높은 자들
 『진실로 낮은 자들도 헛것이요, 높은 자들도 거짓이니 그들을 저울에 달면 모두 합쳐도 헛것보다 가볍도다』(시 62:9).

  새로운 역본 편집인들은 하나같이 최근 발견된 파피루스 사본(
즉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파피루스 사본이며 KJV 본문을 지배적으로 담고 있는 P66)의 증거를 전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은 또한 다수 필사본의 수적 우세에 대해서는 아직도 어두움 가운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1937년판 대학 교재에 나와 있는 시대에 뒤떨어진 정보만을 무지한 이들에게 그대로 읽어 주기만 할 뿐이다. NIV 편집위원장 팔머는 사실에 대해 다음과 같은 미숙한 설명을 제공한다.
"KJV 번역자들은 소량의 신약 헬라어 사본들만을 갖고 작업해야 했다. 이 사본들은 매우 후대의 것들로, 신약이 기록된 지 1000년(!) 후에 기록되었으며... 더 많은 헬라어 필사본들이 보존되었으며 또 발견되었다. 5,000개 이상이... 심지어 A.D. 200년경에 기록된 것도 있다."

  팔머는 1)이 5000개나 되는 필사본 중에서 1%를 제외한 전체가 KJV와 일치하고 NIV와 대치된다는 사실과, 2)A.D. 200년에 기록된 필사본 또한 KJV와는 일치하고 NIV와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는지... 증거 - NIV에 사용된 헬라어 원문(네슬 25판 / UBS 1판, 1963년)은 1979년 네슬 26판과 UBS 3판에서 거의 500군데를 KJV와 일치하도록 수정됐다. NIV 위원회는 이들 중 일부는 예견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무시했다.

  다른 새로운 역본 편집인들 역시 사실에 대해 왜곡된 견해를 갖고 있다.
> NIV 위원회 멤버인 칼빈 린튼은 팔머의 왜곡된 견해를 그대로 따른다. "가장 오래된 신약 헬라어 필사본은 1628년에야 비로소 영국에서 사용될 수 있었다."
> NIV 위원회의 또 다른 멤버인 랄프 얼은 KJV가 "주로 중세 후기의 필사본을 근거로 한 원문이다. 다행히도 5000개가 조금 넘는 헬라어 사본이 현존하는데... 사용 가능한 수천 개의 헬라어 신약 사본을 통해, 최상의 본문이 어떤 것인지를 상당 수준의 확실성을 가지고 찾아낼 가능성이 있게 되었다."고 말함으로써 자신이 학자적이지 못하는 사실만 드러내고 말았다.
> NIV 및 NKJV 위원회 멤버인 루이스 포스터의 말도 내용은 같다. "우리는 최초의 원문이 무어라고 말하는지를 대단히 확실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가진 필사본의 수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KJV가 번역되었을 때보다 더 많은 필사본들이 발견되었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정보가 있기 때문에 오늘날의 판단이 더 정확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방대한 필사본의 "수"와 최신 "정보"는 일부러 무시해 버리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보아 왔듯이, 세계적 수준의 학자들이 새로운 역본들과 그 편집인들을 "비과학적"이고 "비학자적"이며 "무자격자"이고, 필사본 역사의 현실에서 너무나도 멀리 표류하고 있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새로운' 헬라어 원문의 최고 설계가였던 호르트마저도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의 사실을 인정한다.
"자네가 여기 왔을 때 내가 사실을 과장하고 그릇되게 말한 게 분명한 것 같네. 나는 교회사에 대해서도 거의 무지하거든."

  사실상 새로운 역본 위원회 멤버들은 최고 편집위원들이 판매 시장을 넓히기 위해 많은 교단을 대표한다는 것을 보이려는 목적으로 선정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선정한 사람들은 헬라어 문법학자들일지는 몰라도, 그들 중 대부분은 고문서 학자, 파피루스 학자, 사본학자, 역사학자(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바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그리스도인들)가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NASV 번역 위원회 명단은 30년이 넘도록 비밀에 부쳐졌었다. 보수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위원회 멤버들이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사실을 알게 될까봐 그랬던 것이다.(한편 프랭크 록스든 박사는 NASV 제작에 참여한 사실을 포기했고 무수한 강연회를 통해 자신이 했던 역할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NASV의 이단성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저는 하나님께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실토했다.) 새로운 역본의 편집인들은 버간이나 콜웰, 호스키어, 그 밖의 수십 명의 학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고대 필사본들에 무수한 시간을 들여가며 연구한 경험이 있는 유자격자들이 아니었다. 사실은 번역 위원회 멤버인 루이스 포스터가 인정하는 대로 그들은 사실상 필사본들이나 사본을 실제적으로 연구해 본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었다.
"신약 번역위원들은 자신이 사용하는 헬라어 원문[네슬판/UBS판]에 기초한 결정과 의견을 달리할 수도 있으나, 번역 위원이 필사본 자체를 다루지는 않는다. 현대 헬라어 원문을 통해 간접적으로 작업할 뿐이다.

  다수 필사본 또는 소수 필사본 유형에 대한 언급은 피하는 대신, 포스터가 '현대 헬라어 원문'이라 부른 헬라어 신약 비평판들을 사용한 것이다. 이 판들은 헬라어 본문에 나타난 수십만 군데 차이나는 부분들을 6000개 정도로 축소시키게 된다.

 

【 인용문 ─ (4) 】
존 F.화이트헤드 著 /『 미국을 훔치는 자들ː제4장 』

  『 기독교의 실패 』

  '세속주의'는 종국적으로 생명이 없는 이상이다. 세속주의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나 또는 가치와 존엄성을 지닌 인간에 대한 믿음의 근거를 전혀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체스터톤(G.K. Chesterton)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인간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갖지 못할 때에, 인간은 아무것도 믿지 않고 있다는 것이 아니다. 그는 모든 것을 믿는 것이다."(
우매한 자는 온갖 말을 믿으나, 총명한 사람은 자기의 걸음을 살피느니라.-잠 14:15)

  바로 이와같이 되도록 현대 기독교는 우리 사회를 내버려 두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현대 기독교는 현대 교회들로 하여금 현대 정부 앞에서 무기력하게 굴복하도록 내버려 둔 것이다.

  이제 다시 우리는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어 내는 중요한 일을 하여야 한다. 콘웨이(J.S. Conway) 교수는 나치 정부에 대하여 연구를 하면서 교회가 히틀러의 통치에 대하여 충분한 저항을 하지 못하게 된 것에는 다음의 네 가지의 요소들에 가장 중요한 책임이 있다고 했다.

  그 첫번째는 깊이 뿌리박힌 경건주의의 전통이다 - 즉 뿌리깊은 종교적 신앙과 외부세계와의 단절이 첫번째 원인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은 또 부분적으로
나치 통치 직전의 독일 사회에 만연하고 있었던 자유주의적 신학과 고도의 성경 비평(원문 비평, 고등비평)에도 책임이 있다. 이러한 신학과 비판은 성경의 권위에 도전하고 그를 훼손시키는 성향을 지녔으며, 그에 따라서 성경과 외부 세계와의 연결, 외부 세계에 대한 성경의 적용 등을 더욱더 어렵게 만들었다.
  자신들의 종교적 충성을 개인의 구원이라는 소극적 목표에만 제한하여 집중시키는 많은 기독교인들의 경향은 물론 신실하고 헌신적인 생활을 낳게 하였다.
  그렇지만, 그들이 자신들의 기독교 원칙들을 정치적 사회적 생활에 적용시키지 못함으로써, 그들은 그들의 "신앙"에 의하여 생활에 구속을 전혀 받지 않는, 세속주의와 휴머니즘의 옹호자들로 하여금 정부를 통치하고 지배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시대의 정치적, 도덕적 문제들에 대하여 기독교인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추세로 되었다.

  두번째로, 독일인들은 그 당시에 존재하던 정치적 질서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며 정부에 대하여 맹목적으로 충성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콘웨이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교회 성직자들은 나치 통치자들에 대하여 일종의 환상을 갖고 있었으며 그러한 환상은 가공스러운 결말을 가져온 뒤에까지도 계속 되었다... 그리고 이웃 국가들에 대한 침공도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고귀한 권력"이라는 전통적 개념으로써 설명되어질 수 있었다 - 또는 교묘히 변명되어졌다. 독일 교회는 독일의 정치적 지배자들의 행동에 대하여 그 어떠한 비판적 공격을 가할 수 있는 신학적 무장이 되어 있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이유로 인해서, 심지어는 나치통치 시대의 종말에 이르러서도 다만... "마지못해 흉내나 내는 정도의 소극적 저항"만을 하였을 뿐이다.」
  기독교 행동주의의 격증과 저항에 관한 서적의 출판이 급증함과 동시에 "저항" 신학에 관한 관심이 새롭게 부흥되고 있다. 우리들은 이제 이와 같은 발달현상이, 만일 필요한 경우에는, 정부에 의하여 자행되는 그 어떠한 독재적 행위에 대해서도 저항할 수 있는 신학적 기초를 형성해 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세번째로, 일부 독일 교회의 성직자들은 나치 정부가 민족의 재생과 민족의 정신적 생명의 부활을 요구하였을 때에 자진하여서 나치와 운명을 같이 하기로 결정하였다. 개신교 교회들과는 달리, 카톨릭 교회는 나치당에 공식적으로 반대를 하는 정책을 택하고 그에 따랐다.
(그러나 뒤에서는 로마 카톨릭 교도인 히틀러와 손을 잡았다. - 잭. 칙의 저서 "연막" 참고. - HanSaRang 註.) 그렇지만 카톨릭 학생연맹은 나치당의 노력에 찬동을 한 좋은 예로서 남게 되었다. 카톨릭 학생연맹은 다음과 같은 선언문을 1933년 7월 15일에 발행하였다.
「우리 카톨릭 학생연맹은 민족적 사회주의 혁명을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획기적인 정신적 진전으로 간주하며 환영하며 맞아들이는 바이다. 제3공화국의 이상을 스스로 체현하여 실현하고 널리 보급시키는 일이야말로 바로 우리 카톨릭 학생연맹의 운명이며 의지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 카톨릭 학생연맹은 자발적으로 민족적 사회주의 정신의 지도를 받을 것이다... 오직, 혁명을 완수함으로써 등장한, 강력한 민족적 사회주의 정부만이 우리 문화를 다시 기독교화시켜 줄 수 있는 유일한 정부이다.
카톨릭 학생 연맹 만세! 위대한 독일 공화국 만세! 우리의 총통 아돌프 히틀러 만세!」
  이와 같은 종류의 웅변적 문장은 바로 정부에게 교회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하여 달라고 요구하는 간청의 소리가 된다. ─ 즉 교회가 하지 못한 정신적 부활을 정부에 요청한 것이다.
  정신적, 영적 부흥과 부활에 대한 희망을 교회로부터 정부에 넘겨주게 됨으로써 기독교인들은 정부와 독일 민족주의와 그 자신을 밀접하게 동일시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바로 이로 말미암아서 히틀러는 이제 독일 교회를 좀 더 쉽게 다룰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네번째로, 콘웨이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근본적으로 보수적인 독일 교회의 시각으로 말미암아서... 그들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아니하고 나치 사상이야말로 공산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라고 받아들였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나치 사상이 보수적인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독일 교회는 나치 사상으로 기울어졌던 것이다.
그렇지만 보수적인 것으로 통칭되어지는 철학이라고 하여서 반드시 다 기독교적인 것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바로 그와 같은 근본적 이유들로 인해서 독일 교회는 일반적으로 나치 사상의 도도한 흐름을 저지하지 못한 것이다. 독일 교회는 거의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으면서 마치 죽은 자의 무덤과도 같이 침묵만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정부에 대한 반항도 참견도 간섭도 아무것도 아니었다.
  진리를 억압하는 사람들은 교회가 결코 그들의 행위에 대하여 간섭하지 아니하기를 바란다. 독일의 나치당원인 죠세프 괴벨스(Joseph Goebbels)는 이렇게 말하였다. "정치에 손을 대고 있는 교회 성직자들은 이제 그들의 유일한 사명은 곧 세계의 장래를 예비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너무나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비록 그의 충고를 알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괴벨스의 충고를 받아들여 왔다. 윌리엄 바클레이(William Barclay)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침묵을 지키고 있는 교회를 세상이 좋아할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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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킹제임스성경만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참성경이라고 주장하여, 이미 예장합동, 예장통합을 비롯한 많은 교단에서 이단으로 공표되었으며, 많은 곳에서 경계의 대상으로 보는 곳이다.
《이단을 판별하는 잣대는 교단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보다 '교단'의 권위가 높습니까! '교단'이 하늘과 땅은 창조했습니까! 솔직히, 자기들의 이권에 침해를 받으니까 경계의 대상으로 보는 것 아닙니까! 삯꾼들일 뿐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들의 전통을 지키니, 단지와 잔을 물로 씻는 것과 이와 같은 여러가지 다른 일을 자행하는도다."라고 하시니라. 또 주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 자신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쉬 버리는도다.(막 7:8-9) / 너희는 너희가 전수한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기하느니라. 또 이와 같은 많은 일을 자행하고 있도다."라고 하시더라. (막 7:13)과연 '하나님의 말씀'과 '교단'(이것이 인간의 전통이다!) 중에 어느 권위가 더 높습니까! 어리석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폐기'하는 자리에 서지 마십시오! 왜 하나님의 심판을 스스로 자처합니까! 》

어리석은 자는 자기 마음에 말하기를 "하나님은 없다."하였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가증한 일들을 행하였으니, 선을 행하는 자가 아무도 없도다』(시14:1). '어리석은 자'라는 부분에 '삯꾼 목사들'을 한번 넣어서 읽어보십시오.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정확하게 지적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오강남('예수는 없다'라는 책을 씀) 같은 사탄의 종들이 마지막 때에 사람들을 크게 미혹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마 24:4-5, 11, 24 / 막 13:5-6, 22 / 눅 21:8 / 롬 16:18 / 고전 15:33 / 갈 3:1 / 살후 2:3, 11 / 딤전 4:1 / 딛 3:3 / 히 3:10 / 벧후 3:17 / 요일 2:26, 4:6 / 요이 1:7 / 계 12:9, 13:14, 18:23, 20:3, 8, 10)》

《한국 교회의 목사들은 니콜라파의 교리를(계 2:15) 좋아합니다.(하나님께서는 목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기보다 돈을 좋아하게 될까봐 가장 염려하십니다.- 주님, 왜 저에게 이러한 가시를 붙이셨습니까? 그것은 네가 스스로 높아져서 돈을 좋아하게 될까봐 염려되기 때문이다. ─ 사도 바울은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몸에 '가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국 교회 목사들은 자신을 우상화시키는 것을 좋아합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할 때 단지 두개의 주장을 하였습니다. 첫번째로, 루터는 "최종적인 권위는 성경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것보다 더 권위있는 것이나 그와 같은 권위를 지닌 것은 없다고 루터는 생각하였습니다. 이것은 곧 인간과 정부와 교회 등을 포함한 모든 인간의 제도는 하나님과 성경의 지배하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들은 도덕적 절대성의 규칙에 절대로 복종하여야만 합니다. 이 원리로 말미암아 세상은 '의무'라는 새로운 개념을 갖게 되었습니다. 즉 인간과 인간이 만든 모든 기구들은 그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그들의 행위 하나하나에 대하여 책임을 질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이 교리는 "정부에 대하여 제한을 가하였습니다." 즉 정부는 그 권한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야 하며 하나님께 절대 복종하여야만 합니다. 시민들도 역시 하나님께로부터 권리를 부여받으며 결코 정부의 노예로 전락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모든 성도들이 다 성직자의 권한을 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주장이 나올 때까지도 사람들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방법으로 성직자들과 중재자들을 통해서만 할 수 있었습니다. 루터는 바로 이러한 사상
(로마카톨릭→니콜라파의 교리←한국 교회 / ※ 한국 교회는 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뒷걸음질만 하고 있는가? '절대진리'가 없기 때문이다! 즉, 바른성경(KJV 1611, 한글 킹제임스 성경)이 없기 때문입니다!)에 반격을 가한 것입니다. 루터는 모든 사람은 (신성한 권리를 주장하는) 성직자의 도움이 없이도, 또한 다른 어떠한 대리자들을 통하지 않고서도 직접적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루터의 주장은 '책임을 동반하는 개인주의'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즉, 개개인의 의무와 책임은 종교개혁에 뒤따라 발생하는 자유주의 국가를 건설하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그 '개개인의 의무와 책임'은 성직자 권한을 없애고 모든 믿는 사람들이 직접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권리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평등권도 제공하여 주었습니다. 이것은 곧 거리를 헤매이는 걸인일지라도 성경 말씀에 따라 하나님과 직접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일 개개인의 책임이 부정되어진다면, 성직자 권한이 그 공백을 채우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루터의 주장을 독일 사회 속에 보급시키고 지배적인 개념이 되도록 하지 못했기 때문에 독일 교회의 가장 큰 비극인 나치 시대를 맞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미국도, 미국의 영향을 받는 한국도 루터의 원칙을 유지하는데 실패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은사주의화, 목사들의 우상화, 교회건물의 자랑, 육적·혼적인 것에 호소하는 교회안의 CCM 문화들의 만연('드럼'은 지옥심장의 고동소리이다! 함족(흑인)의 문화에서 나온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땅에 떨어졌는가? -_-')

《전세계가 국제 집산주의(集産主義)화(공산주의화,사회주의화)가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적그리스도의 세계짐승정부가 추구하는 것입니다! 어쩐다고요? 새로운 혁명의 '유비쿼터스 시대'가 온다고요? 정말, 어리석은 세상사람들입니다! 그것은 COMPUTER(666) 라는 기계의 노예가 되는 세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Anti-christ, 육화한 사탄, 666)의 통제를 받는, 곧 '인간=상품(chip)'이 되는 세상이 유비쿼터스 시대입니다! 정말, 어리석은 세상사람들입니다! (요한계시록 13장)》


특히 말씀보존학회( http://www.kjv1611.co.kr/ )라는 곳에서 한글킹제임스 성경에 대해서 머리말을 쓰고 있는데 그들의 성격을 알아보기 위하여 그 일부를 인용하여 본다.

- 초대 교회 이후로 사탄은 수많은 거짓 신학자들을 일으켜서 성경을 변개시켜 놓고, 그 성경이 올바른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속여 왔다. 사탄의 추종자들이 한결같이 변개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변증하며 그들의 교회와 신학교에서 가르쳐 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신약 교회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이들은 변개된 성경과 변개되지 않은 성경을 놓고, 어떤 성경이 참다운 하나님의 말씀이냐고 할 때, 늘 변개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다. (말씀보존학회 한글 킹제임스 성경 서문)

마치 자신들이 하나님의 성경원본을 갖고 있는 것처럼, 킹제임스 외의 모든 성경번역본을 변개된 것이라고 단정하고 있으며, 다른 교단의 모든 신학도 변개된 것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즉 자신들의 킹제임스성경을 “보존된 성경”이라고 부르고, 개역성경을 포함한 모든 성경은 “변개된 성경”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답답합니다! 킹제임스성경은 말씀보존학회에서 출간된 성경이 아닙니다! 킹제임스 성경(KJV 1611)은 저작권者가 없는, 사람들에게 소유되지 않은 유일한 성경입니다! 그것의 저작권은 CROWN COPYRIGHT이며, 그것은 어느 누구나, 언제든지 출판할 수 있음을 허락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누구의 허락을 받을 필요도 없습니다!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느니라.』(딤후 2:9)》


즉 한국교회 대부분이 보는 개역성경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단이 변개시킨 것이라는 것이다.
또 미국의 펜사콜라 신학교(원장: 피터 럭크만)만이 올바른 신학교이며, 킹제임스 사이버신학대학만이 유일한 신학대학이며, 영어킹제임스성경과 이송오목사 자신이 번역한 한글킹제임스(흠정역)만이 참성경이라고 주장한다.
《위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미국의 '펜사콜라 성경신학원'과 한국의 '킹제임스 사이버 신학대학'은 성경에서 말하는 '전천년체계'를 가르치고 전하는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일한'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입니다. 대부분의 외국, 국내 신학교에서는 '전천년체계(세대주의)'를 부인하는 지식들만을 학생들의 머리 속에 주입시켜 오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 보십시오! 지금 이 시대에 '전천년체계'를 말하면 이단으로 비판합니다!(한심한 것들을 봤나!, 오, 라오디케아여!)》

《바르게 보존된 계열,,, 바른 원문에서 번역된 '킹제임스성경(KJV 1611)'을 기조로 한글로 번역했기 때문에 참성경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킹제임스성경(KJV 1611)과 다른 영어성경들(other bibles)의 수많은 차이점들(변개, 삭제, 첨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려는 마귀 같은 소리 하지 마십시오! 스스로 마귀의 종이라 시인하는 것입니까! 한국교회의 대부분이 '개역성경 & NIV'을 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루터를 통해서 말씀하신 참된 진리의 길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신학지식들과 보석같은 진리의 지식들은 전천년 체계를 믿고 배우고 가르친 신실한 복음전도자들의 손에서 나온 것입니다! C.H. 스펄전 목사님, D.L. 무디 목사님, 요한 웨슬레 목사님... 이분들은 모두 King James Bible 1611 을 최종권위로 삼고 사역한 분들입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존하신 성경이었기 때문에 온갖 영적인 금,은,보화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변개되고, 삭제되고, 첨가된 부패한(Corrupted bible) 한글개역성경을 통해서는 어떠한 것들이 나왔습니까? 그나마 우리가 이렇게 진리의 지식을 알 수 있는 것은 King James Bible 1611에서 나온 지식들을 가지고 한글개역성경을 보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 한글 킹제임스 성경을 통해서 한국에 대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게 해 주시옵소서!)》

 

【 인용문 ─ (5) 】
신현우 著 /『 사본학 이야기 』...

《『확신에 차서 어떠한 주장을 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자신이 옳다는 주장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데까지 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학문의 세계에는 100% 옳은 이론도 없고 100% 틀린 이론도 없다. 조금 더 옳고 조금 더 틀릴 뿐이다. 사본들 중에도 100% 원문을 보존하고 있는 사본은 없다. 그러나 100% 틀린 사본도 있을 수 없다. 좀더 나은 사본, 좀더 못한 사본이 있을 뿐이다. 공인 본문을 택하건 네슬판을 택하건 어느 쪽도 원문을 택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느 쪽을 택해도 원문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공인 본문과 네슬 판은 사실상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미세한 차이를 과장하여 한쪽은 마귀의 성경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결국 성경에 대한 모독이다. 물론 마귀는 약간의 변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파괴한다고 하지만, 미세한 차이를 과장하여 순수한 성도들을 속이는 것은 부정직한 것이다.

우리에게 성경의 원문은 없다. 그리고 사본학을 통해 100% 원문을 복원할 수도 없다. 우리는 끝없이 원문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뿐이다. 우리에게 100% 원문이 있어도 성경을 다 해석하여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주석학을 통해 성경을 100% 다 알 수는 없다. 한 걸음씩 평생 성경을 좀더 알아 갈 수 있을 뿐이다. 성경을 다 안다고 해도 우리는 하나님을 다 안다고 할 수 없다. 하나님은 크고 위대하시다. 저 광대한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우주보다 더 크고 위대하신 분이다. 우리의 믿음의 대상은 이 창조주 하나님이다.』》

위에서도 인용한 신현우라는 신학대 교수의 글입니다.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에는 '절대, 오류가 없다'고 믿고, 배우고, 가르치는 자칭 신학자라고 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오류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신현우 교수의 말대로라면 '하나님의 말씀은 100% 믿을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는 말 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자유주의와 신정통주의입니다! 누가 순수한 성도들을 속이는 자입니까!

■ 자유주의(Liberalism)ː자유주의는 성경이 하나님에 관해서 사람들이 쓴 책이라고 주장한다. 자유주의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성경에 기록된 창조와 기적들은 믿을 수 없는 것이며, 동정녀 탄생과 피의 속죄, 부활 등의 근본적인 믿은 자체도 수용할 수 없는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 아닌 인류의 4대 성인 가운데 한 사람 정도로 생각하기 때문에 성경에 대해서도 잘못된 견해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람들은 성경을 단지 세상의 고대 문서와 같이, 또는 조금은 훌륭하다는 가치를 부여하는 정도로 판단한다. 심지어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사상을 담은 성경들을 번역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견해는 불신자들의 생각과 같다.

■ 신정통주의(Neo-Orthodoxy)ː신정통주의에 속한 사람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을 포함하고 있다"(The Bible contains the Word of God)고 생각하며, 또 사람들에 따라 부분적으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The Bible becomes the Word of God)고 생각한다. 이 말은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도 있지만 인간이 쓴 인간의 말도 있다는 주장이며, 어떤 성경 구절이 믿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지만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뜻이다. 또한 신앙의 문제를 제외한 역사적, 과학적인 기록은 오류를 지니고 있으며, 성경의 구체적인 사건들을 진술한 기록들에도 인간의 한계가 있기에 오류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 결과 성경은 모든 문제를 판단하는 절대기준이 되지 못하며, 권위를 지니지 못한다. 성경의 권위를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그것은 입술로만 하는 신앙고백일 뿐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바른 믿음은 아닌 것이다.

■ 실용주의(pragmatism)ː절대적인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상이다. 그러므로 실용주의는, 어떠한 사상이나 행동은 반드시 각개의 특별한 상황 속에서 발휘되는 그 사상이나 행동의 유용성에 의하여 참된 것인가 아니면 그릇된 것인가가 판결되어져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상대주의(relativism)를 유발하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신현우 교수의 말대로 공인본문(KJV 1611)과 네슬판(NIV, 개역성경)이 거의 비슷하며, 어느 쪽을 택해도 큰 상관이 없다면, KJV 1611과 NIV의 수많은 구절들의 차이점은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동정녀 탄생, 삼위일체, 보혈에 근거한 죄의 문제 해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보존... 이러한 것들을 증거하는 구절들에서 심하게 변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미세한 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특이하게도 '성경적 교리'를 말하는 부분에서 심하게 변개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는 끝없이 원문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또 무슨 마귀, 사탄적 표현입니까! (솔직히 말해서, 이것은 신학에 침투한 '진화론'이란 말입니다. 음, 실용주의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습니다. 어느 쪽을 택해도 상관이 없다고 하니 말입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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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신앙에서 인터뷰를 한 내용을 보면 한글 킹제임스 성경은 이송오목사 혼자서 번역하였다고 한다.(교회와 신앙 95년 2월호)
그 인터뷰에서 “한글킹제임스에도 오류가 있다고 하더라”는 기자의 질문에 이송오목사는 “하나님말씀을 파괴하려는 자들의 주장”이라고 대답을 한다.
다시 말하자면 자신이 혼자 번역한 킹제임스 한글 성경만이 유일하게 보존된 성경이라는 주장이니, 아마 자기 자신의 번역을 온전한 하나님의 능력으로 간주하는 것 같다.
이송오목사의 생각에는 다른 사람이 번역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고 사단이 변개한 것이고, 오직 자기가 번역한 성경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고 있는 듯 하다.
게다가 교리도 독선적이고 배타적이어서, 자신의 교회의 교리와 신학(극단적 세대주의)만이 참신학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 교회야말로 독선적이고, 배타적이 아닙니까! 바른 성경적 신학을 '교단교리'라는 뱀처럼 구부러진 잣대로 판단, 비판하지 마십시오!(어리석은 자여! 뱀의 교리를 주장하려는가? 성도들을 뱀의 구부러진 길로 인도하는 우상목자여! 화가 있을지어다! -슼 11:17) 세대주의는 초대교회 시대에도, 미국의 대부흥의 시대에도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이 가르치고 전하던, 바른 성경적 교리입니다! 그리고 '극단적 세대주의'가 아니라 '전천년 세대주의'입니다. '극단적 세대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함부로 갖다 붙이지 마십시오! 자신이 속한 교단신학(뱀의 신학)만이 참신학이라고 하는 것은 스스로 이단에 속한 자라고 하는 말과 다름없는 것입니다! '극단적 세대주의'가 이단교리라는 것도 모르는 것입니까!》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성경을 읽는 독자라면 그가 어떤 교리적 입장이나 교단적 배경을 갖고 있든지 간에 말라키와 마태복음 사이에 결정적인 구분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구분은 너무도 분명해서 그 독자가 성경을 둘로 나누는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한 분명한 지식이 없어도 그 구분을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마태복음 이전까지의 39권의 책들은 "구약"(The Old Testament)이라고 불리며, 마태복음부터 시작되는 27권의 책들은 "신약"(The New Testament)이라고 불립니다. 성경을 세심히 읽는 독자라면 창세기부터 말라키까지의 사람들은 그들의 속죄와 구속을 위해 염소와 황소의 피밖에는(히 10:4) 갖고 있지 못했음을 인정할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사람들은 그들의 죄가 용서받았고(출 34:7), 의롭다고 여겨지긴 했어도 (롬4:1-6), 그들의 죄가 정결케 되지는 못했습니다.(히 10:4, 출 34:7) - (한글개역성경의 출애굽기 34:7은 심히 변개되어 있습니다. 정확한 교리를 위해서는 <한글 킹제임스 성경>의 출애굽기 34:7을 읽어 보아야 합니다.)
구약의 어떤 성도도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안으로 침례받지 못했으며 영적인 할례를 받지 못했습니다(골 2:11). 구약의 성도들은 그 누구도 거듭나지 못했으며 죽을 때 셋째 하늘에 가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구약 성도의 구원과 신약에 계시된 (롬 4,5,10장, 엡 2장) 신약 성도의 구원이 동일하다는 주장은 성경적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구약의 구원과 신약의 구원이 같을 수 없는 것은 두 가지 다른 언약에 근거해서 구원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7:22의 더 나은 언약은 옛 언약(구약)이 아닙니다. 구약의 그 누구도 마태복음 27장까지는 죄값이 지불된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마태복음 26:28에서 신약(새언약)이 세워지고 이 신약은 유언의 형태로 주어졌으므로 유언한 사람이 죽은 후인(히 9:16) 마태복음 27:50에 가서야 효력이 발생되는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마태복음 27:50까지는 비록 신약성경이 마태복음 1:1부터 시작되기는 하지만 교리적으로는 구약적 배경임을 알게 됩니다(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생을 얻는 방법으로 계명을 지키라고 하신 것을 참조할 것, 마19:16,17). 이처럼
구약과 신약이 구분될 뿐만 아니라 율법과 선지서들은 요한까지라고 하신 말씀에 따라(눅16:16) 침례인 요한부터 새 언약이 세워지는 마태복음 27장까지가 구분되며, 또한 로마서 5:14에 따라 같은 구약성경에서도 아담과 모세까지와 모세로부터 침례인 요한까지가 구분됨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에는 분명한 구분들(divisions)이 있고 이 구분들은 분명히 존중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올바로 성경을 해석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누어 놓으신 구분에 따라 그분이 계시해 놓으신 진리들을 찾아내서 공부하는 그것이 성경의 기록자이신 성령님께서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명령하고 계신 것입니다.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이 놀라운 말씀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진리의 말씀인 성경에 대해 무엇을 해야 하며(공부하라), 어떻게 해야 하고(올바로 나누어), 왜 그리해야 하는가(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를 명백히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에게 마땅히 해야 할 바를 자상하게 그리고 엄격하게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성경을 공부하는 방법을 신학자들은 "세대주의"라고 부르며 비판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학자들의 견해보다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것이 '세대주의(Dispensationalism)'입니다. 세대주의는 성경을 올바로 해석하는 방법인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인간의 지혜와 지식을 통한 계산에 의하여 하나님의 경륜을 추론하므로써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목적과 상반된 것들을 교리로 갖고 나오는 것입니다. 즉, 인간의 전통을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우게 되는 것입니다.(무천년설, 후천년설, 사회복음, 민중신학, 언약신학, 여성신학, 자유주의, 신정통주의, 온갖 이단 교리들....수많은 교단 교리들...수많은 이단적 단체들...)
한국 교회들의 문제는 구원받지 않은 사람에게 구원받았다고 착각하게 하고 이들에게 헌신을 강요하는데 있습니다. 왜냐하면, 목사들이 돈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성도들의 호주머니 털 생각 밖에 안한단 말입니다!) 회중들을 자신들의 추종자들로 만들지 말고 하나님의 명령에 떨고 복종하는 이 시대에 필요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훌륭한 일꾼들로 만드십시오!》

 

【 인용문 ─ (6) 】

《『 <질문> 그렇다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비윤리적이라고 지탄받고 있는 원인은 무엇인가.
<답> 한국교회가 개혁신학의 영향을 받았음에도 세대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그렇다. 세대주의는 임박한 종말을 강조하며 현실도피적인 성격을 띤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도피가 아니다. 바로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오는 것이다.』
(2004-03-04 19:23 / 크리스챤 투데이 / 김영빈 기자 ybkim@chtoday.co.kr)
[김영한 교수(숭실대학교 기독교학대학원) 인터뷰 내용에서 발췌...]》
위의 글은 숭실대 김영한 교수의 인터뷰 내용입니다.(왜, 개혁신학자들이 세대주의를 비판하는지 이해는 갑니다만,) 솔직히, 김영한 교수의 진단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전천년체계(세대주의)'는 미래에 대한 바른 비전을 세워줍니다(성경적 비전). 이 세상 생활은 많은 실망과 골치거리가 있지만 만약, 성도들이 새 세상이 오고 있다는 것을 알면 이 세상 생활의 무거운 짐을 즐겁게 견딜 수 있는 인내와 용기와 소망을 불어넣어 주기 때문입니다.(고후 4:16-18, 초대교회때에,,, 로마의 대박해를 성도들은 어떠한 소망을 갖고 견뎌나갔는가..) 그러나 '후천년주의와 무천년주의'는 머리속에 아무런 비전도 제시해 주지 못합니다. 현실에 안주하게 되는 자세를 갖게 된다 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청교도들(벧전 1:17 - "나그네와 같은 성도의 삶")의 길이 아닌, "세속주의"에 빠지게 되는 경향이 크다는 말입니다. 제가 판단하기에, 김영한 교수의 한국교회에 대한 진단은 잘못되었습니다. 교회에서 '전천년체계'를 바르게 성도들에게 가르치고 제시해 주지 못했기 때문에(구더기가 무섭기 때문에 고추장 못담근다..는 논리에 빠진 한국의 겁장이 목사들 & 신학자들), 한국교회가 은사주의에 빠지고, 세속주의에 빠지고, 기복신앙에 빠지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 자신은 '전천년체계'를 바른 성경적 관점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아래에 인용한 김영재 교수의 논문에서 증거하듯이 '전천년체계'는 초대교회 때부터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가진 바른 신학입니다. '세대주의(전천년체계)=시한부종말론' 이렇게 보는 것은 억지입니다!)

《『그러나 역사적 종말론보다는 개인적인 종말론에 관심을 가지고 안주하며 교회 생활에 정체를 안겨 주는 중세 스콜라적 종말론이나 계몽신학이나 자유주의적 및 현대주의적 종말론에 대비(對比)가 될 수 있는 종말 신앙은 천년왕국 신앙이었다. 17세기 이후 침체되고 잠든 교회를 깨우친 경건주의와 부흥운동의 종말론 신앙은 천년왕국 신앙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세기말과 기독교 종말론」... / 김영재(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참고※ 이 논문의 내용은 여러 종말론에 대한 견해를 분석한 것임.)
(종교개혁에서 나온 신학을 개혁신학이라고 한다. 그래서 개혁주의자들은 칼빈주의자들이라고도 불린다. 장로교, 영국 성공회, 화란 교회 등이 이 부류에 속한다. 이들은 '세대주의(전천년체계)'를 배격하고 비판한다. 시한부 종말론에 빠질 염려가 있다는 핑계로 말이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세속주의'에 빠지게 하며, 현실에 안주하게 만든다는 것(기복신앙)이 개혁주의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본다. 이들은 '개혁신학'에 취한 나머지, 오로지 교회 개혁밖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분명, 성경에서는 주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까지 이 세상에는 결코 평화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데(교회시대는 배교로 끝난다), '교회 개혁'을 하면 이 세상이 새롭게 변한다는 논리를 펴 나간다.(오, 새로운 진화론의 등장인가...-_-') 솔직히, 뭐랄까,,, '환상을 쫓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공산주의, 사회주의, 로마카톨릭처럼 자기들이 세상에 왕국을 가져오게 할 수 있다는 자들처럼 말이다.) 성경의 주제는 주 예수님의 오심과 그분의 왕국이다. 그런데 이들은 이 세상을 개혁하자는 것이다. 대단한 자아도취에 빠져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은 '조나단 에드워드', '청교도들의 삶'을 숭배한다... 과연, 머리 속에 아무런 비전도 제시해 주지 못하는 신학으로 한국교회가 개혁되겠는가? 허허허...그리고, 이들은 칼빈주의를 비판하면 이단으로 취급한다. 로마카톨릭이 칼빈주의를 비판하기 때문에 로마카톨릭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정말, 구부러진 잣대를 사용한다. 로마카톨릭은 성경에서 말하는 음녀라네! 어리석은 개혁신학도들이여! 어리석은 칼빈추종자들이여! 이들은 '개혁신학'이 신학의 표준이라고 생각한다. 종교개혁에서 나온 신학이라고 해서 그것이 절대적 표준은 아닌 것이다. ─ HanSaRang 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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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그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개역성경을 보는 모든 교회는 사탄의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논리라면 한국 기독교의 복음은 그동안 주님의 복음이 아니라 사탄의 복음이었단 말이 되므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시간을 내어 그들의 홈페이지를 살펴 보았다.
솔직히 그들의 황당무계한 주장들과 그들의 이상한 교리상 문제점은 너무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기가 힘이 들 정도이었다.
《황당무계한 주장이라고요? 허허허,,, 한국 교회의 표상이라고 높이는 故 한경직 목사는 다른 종교도 '하나님께 갈 수 있는 다른 길'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더구나 이 목사는 신사참배한 목사였습니다. 한국교회를 거짓된 교리에 빠져들게 하고 에큐메니컬 교회 통합 운동(비진리와 타협하자는 사탄적인 운동이다! 이것은 가증한 창녀인 로마카톨릭이 추구하는 것이다!)에 취하게 만든 장본인입니다! 과연 누가 황당무계한 주장을 펴는 자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된 그대로 믿는 자입니까, 기록된 말씀과 반대되는 주장을 펴는 자입니까?『그러므로 다른 이에게는 구원이 없나니 이는 하늘 아래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다른 이름을 인간에게 주신 적이 없음이라』(사도행전 4:12). 정말, 어리석습니다! 성경대로 믿고자 하는 것이 황당무계한 주장입니까! 그러면 故 한경직 목사같이 비성경적인 주장을 하는 것이 정상입니까! 대답해 보십시오!》

《자신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면 적어도 그 사람이 읽고 믿고 실행하는 성경은 변개되지 않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그렇게 믿고 있다 하더라도 자신이 믿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삭제되고 변개된 성경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변개된 성경을 믿고 실행했던 어리석음을 하나님께 뉘우치고 바른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믿음의 노정을 재설정하는 것이 아버지 하나님께 대한 그리스도인의 바른자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구원받았다고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성경이 틀려도 그만 안 틀려도 그만한 것'으로 무덤덤하게 살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런 사람들이 성경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인들”입니까? 하나님을 아버지와 삶의 주인으로 모시는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의 방법대로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골 2:6).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변개된 성경을 주시면서 그것도 자신의 말씀이라고 하시겠습니까? 변개된 성경으로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지 마십시오! 바른성경(한글 킹제임스 성경)이 있는데 왜 한사코 변개된 마귀의 성경만을 가지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까!
구원받는 것이 소중하다면(물론 소중하다!) 구원은 틀리면 안되고 성경은 틀려도 되는 것입니까? 한 번 대답해 보십시오! 구원에 대한 말씀만 보존되어 있으면 어떤 성경도 문제가 안된다는 것입니까?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근거요 잣대입니다(롬 10:17). 성경이 틀리면 믿음도 틀리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구원에 대해서 기록된 것만은 아닙니다. 성경은 먼저 교리에 대해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딤후 3:16).
바른 성경이 나오기 전까지의 상황들은 하나님께서 눈감아 주셨으나 이제는 "한글킹제임스성경"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상, 이 성경을 사용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이 민족에게 요구하시는 부흥을 절대로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한국 교회가 이렇게 타락의 길로 가는 것은 다름 아닌 바른 성경(바른 원문 계열, KJV 1611)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오직 진리로 인도하십니다. 진리가 틀리면 되겠습니까? 한국 교회가 다시 부흥하는 유일한 대안은 요한복음 16장 13절 말씀에 있습니다. 즉,
『그러나 진리의 영이신 그분이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로 인도하시리라....』


지면상 그들의 주장에서 대표적인 것을 선택하여, 특이한 몇가지 문제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비판하여 보기로 한다.
(1) 개역성경에서 “없음”이라고 되어있는 부분이 고의적 누락 혹은 삭제인가?
(2) 루시퍼와 계명성: 킹제임스의 루시퍼라는 번역이 올바른 번역인가?
(3) 요한일서 5장7절의 삼위일체 본문의 삽입에 대해서
(4) 성경의 역사와 본문비평
(5) 킹제임스 성경과 NIV 성경
(6) TR 본문과 킹제임스 성경
(7) 성경침례교회의 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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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작성중입니다. 완료되는대로 나머지 글도 올리겠습니다.

HanSa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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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12
그러나 누구든지 그를 영접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즉 그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니라. ─ But as many as received him, to them gave he power to become the sons of God, even to them that believe on his name:

(요한복음 1:114
1 ○ 태초에 말씀(the Word)이 계셨고, 그 말씀(the Word)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그 말씀(the Word)하나님이셨느니라. 2 그 말씀이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느니라. 3 만물은 그에 의하여 지은 바 되었으며, 이미 지음받은 것 가운데 그가 없이 지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더라. 4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 그 빛이 어두움 속에 비치어도 어두움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더라. 6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7 그가 증인으로 왔으니, 에 관하여 증거하려 함이며, 모든 사람이 그를 통하여 믿게 하려 함이더라. 8 그 사람은 그 이 아니었고 그 에 관하여 증거하라고 보내심을 받았더라. 9 세상으로 들어오는 모든 사람에게 비치는 참 빛(the true Light)이 있었으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에 의하여 지은 바 되었으나 세상은 그를 알지 못하더라. 11 그가 자기 백성에게 오셨으나 자기 백성이 그를 영접하지 아니하더라. 12 그러나 누구든지 그를 영접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즉 그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니라. 13 그들은 혈로나 육신의 뜻으로나 또한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였고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라. 14말씀(the Word)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므로,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으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 And the Word was made flesh, and dwelt among us, (and we beheld his glory, the glory as of the only begotten of the Father,) full of grace and truth.

(잠 언 1:79:10
1:7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식의 시작이거늘, 어리석은 자들은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9:10 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요, 거룩한 이에 대한 지식은 명철이니라.
1:7 ¶ The fear of the LORD is the beginning of knowledge: but fools despise wisdom and instruction. 9:10  The fear of the LORD is the beginning of wisdom: and the knowledge of the holy is understanding.

(시 편 148:114
1 ○ 너희는 를 찬양하라. 너희는 하늘들에서부터 를 찬양하며 높은 곳들에서 그를 찬양하라. 2 그의 모든 천사들아, 너희는 그를 찬양하라. 그의 모든 군대들아, 너희는 그를 찬양하라. 3 해와 달아, 너희는 그를 찬양하라. 너희 모든 빛나는 별들아, 그를 찬양하라. 4 너희 하늘들의 하늘들과 하늘들 위에 있는 너희 물들아, 그를 찬양하라. 5 그들로 의 이름을 찬양케 할지니 이는 그가 명령하셨고 그들은 창조되었음이라. 6 그가 또한 그들을 영원무궁토록 세우셨으며 폐기치 못할 법령을 제정하셨도다. 7 ○ 너희 용들과 모든 깊음들아, 땅에서부터 를 찬양하라. 8 불과 우박과 또 눈과 안개들아, 그의 말씀을 이행하는 폭풍아, 9 산들과 모든 작은 산들과 또 열매 맺는 나무들과 모든 백향목들아, 10 짐승들과 모든 가축과 또 기어다니는 것들과 나는 새야, 11 세상의 왕들과 모든 백성과 또 통치자들과 세상의 모든 재판관들아, 12 젊은 남자들과 여자들과 또 노인들과 아이들아, 13 그들로 의 이름을 찬양케 할지니 이는 그의 이름만이 홀로 뛰어나시며 그의 영광이 땅과 하늘 위에 있음이라. 14 그가 또한 자기 백성의 뿔과 그의 모든 성도들, 곧 자기에게 친근한 백성 이스라엘 자손들의 찬양을 높이시는도다. 너희는 를 찬양할지어다.

(고린도후서 10:1711:3
10:17 그러나 자랑하는 자는 를 자랑하라. 18 이는 스스로 칭찬하는 사람이 인정을 받는 것이 아니요, 께서 칭찬하시는 사람이 인정을 받기 때문이라. 11:1 나는 너희가 좀 어리석은 나를 용납해 주기 바라노라. 부디 나를 용납하라. 2 이는 내가 경건한 질투로 너희에게 질투를 느낌이라. 내가 너희를 한 남편에게 정혼시켰나니 이는 한 순결한 처녀로 너희를 그리스도께 바치려는 것이라. 3 나는 뱀이 그의 간계로 이브를 속인 것같이 너희의 마음도 어떤 방법으로든 그리스도 안에 있는 단순함(the simplicity that is in Christ)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고린도전서 16:22갈라디아서 1:8, 9
16:17 누구든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그는 우리 께서 오실 때 저주를 받을지어다. ─ If any man love not the Lord Jesus Christ, let him be Anathema Maranatha. 1:8 그러나 우리뿐만 아니라 하늘에서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것 외에 어떤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그는 저주를 받으리라. 9 우리가 전에도 말한 것같이 지금도 내가 다시 말하노니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어떤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그는 저주를 받으리라.

(고린도후서 3:174:11
3:17 이제 는 그 이시니 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 Now the Lord is that Spirit: and where the Spirit of the Lord is, there is liberty. 18 그러나 유리를 통해 보는 것같이 수건을 벗은 얼굴로 의 영광을 보는 우리 모두는 으로 말미암은 것같이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는 똑같은 형상으로 변모되느니라. 4:1 ○ 그러므로 우리가 자비를 받은 것과 같이 이 직분을 받았으니 우리는 낙심치 아니하노라. 2 오히려 감추어진 수치스러운 일들을 버리고 교활함 가운데서 행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짓되이 다루지 아니하며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우리 스스로를 각 사람의 양심에 추천하노라. 3 그러나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려졌다면 그것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에게 가려진 것이라. 4 그들 가운데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의 광채가 그들에게 비치지 못하게 하느니라. 5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이신 것과 우리 자신이 예수를 위하여 너희의 종인 것을 전파하노라. 6 이는 어두움 속에서 빛이 비치라고 명령하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주시기 위하여 우리 마음에 비추셨기 때문이라. 7 그러나 우리가 이 보물을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그 능력의 탁월하심이 하나님께 있는 것이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님이라. 8 ○ 우리가 사면에서 고난을 당하여도 괴로워하지 아니하며 당혹스런 일을 당하여도 절망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아니하며 내던져져도 멸망하지 아니하며 10 항상 주 예수의 죽으심을 몸에 지니고 다님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살아 있는 우리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지는 것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의 죽을 육신에 나타나게 하려는 것이라.

Bible believ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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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Divide)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 』(디모데후서 2:15)

『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라... 』(시 편 12:6a)

King James Bible 1611

인애하신 구세주여∼♪∼♬
Pass Me Not, O gentle Savior

『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훈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이 온전하게 되며,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구비되게 하려 함이니라. 』(디모데후서 3:16, 17)

“ 인애하신 구세주여∼♪∼♬ ”

1.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 말 들으사∼♩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2. 자비하신 보좌 앞에 꿇어 엎드려
      무릎 꿇고 회개하니 받아 주소서∼♬

3. 주의 공로 의지하여 주께 가오니∼♪
      상한 맘을 고치시고 구원 하소서

4. 만복근원 예수시여 위로 하소서∼♩
      우리 주와 같으신 이 어디 있을까

     【 후 렴 】
      주여 주-여 내 말 들으사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Pass Me Not, O Gentle Savior∼♪∼♬ ”

1. Pass me not, O gentle Savior, Hear my humble cry;
      While on others Thou art calling, Do not pass me by.
      Savior, Savior, Hear my humble cry;
      While on others Thou art calling, Do not pass me by.

2. Let me at Thy throne of mercy Find a sweet relief,
      Kneeling there in deep contrition; Help my unbelief.
      Savior, Savior, Hear my humble cry;
      While on others Thou art calling, Do not pass me by.

3. Trusting only in Thy merit, Would I seek Thy face;
      Heal my wounded, broken spirit, Save me by Thy grace.
      Savior, Savior, Hear my humble cry;
      While on others Thou art calling, Do not pass me by.

4. Thou the Spring of all my comfort, More than life to me,
      Whom have I on earth beside Thee? Whom in Heav'n but Thee?
      Savior, Savior, Hear my humble cry;
      While on others Thou art calling, Do not pass me by.

WordsFanny J. Crosby1868

MusicWilliam Howard Doane1870

인애하신 구세주여...

Pass Me Not, O Gentle Savior...

  유명한 ‘화니 크로스비’(Fanny J. Crosby) 여사는 많은 곳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였다. 어느 날 뉴욕의 한 교도소를 방문하여 복음을 증거하고 있을 때였다. 그녀가 소경 바디매오와 예수님의 만남을 설교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그녀의 설교를 듣고 있던 한 죄수가 어디에선가 크게 소리쳤다.

Good Lord, don't pass me by!
(선하신 주여, 나를 지나치지 마소서). 

  그녀의 친구이자 작곡자였던 ‘윌리엄 화워드 돈’(William Howard Doane)은 그 죄수의 외침을 제목으로 찬송시를 작사해 볼 것을 권유했다. 크로스비 여사는 이 외침 속에서 소경 바디매오의 울부짖음을 들을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소경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았다가 나사렛 예수라는 말을 듣고 “다윗의 아들 예수여 , 나에게 자비를 베푸소서.”(1047)라고 소리쳐 외쳤다. 많은 사람들이 꾸짖고 잠잠하라 했지만 그는 더욱 크게 “다윗의 아들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1048)라고 소리쳤다. 예수님은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셨고, 제자들은 소경 바디매오를 부르며 “안심하고 일어나라. 주께서 너를 부르신다.”(1049)라고 말했다(마가복음 104749).

  영어 킹제임스성경(KJVKing James Version)에서는 소경 바디매오가 “소리지르며 말했다”라는 말씀을 he began to cry out, and say,(Mark 1047)라고 표현하고 있다. cry out“크게 소리치다”라는 의미로 해석되지만, cry라는 단어는 소경 바디매오의 외침이 “울부짖음”과 다름없는 절박한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즉, 소경 바디매오는 예수님이 지나가실 때 그냥 소리친 정도가 아니었다. 예수님이 자신을 지나치시지 않도록 울부짖었던 것이다.
  크로스비 여사는 그들의 외침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인애하신 구세주여Pass Me Not, O Gentle Savior. (인애하신 구세주여, 나를 지나치지 마소서.)라는 찬송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이 가사에 ‘화워드 돈’이 곡을 붙였고 무디(Dwight Lyman Moody18371899)가 부흥회 때마다 불러서 더욱 유명해졌다.

『 나를 믿는 자는 성경이 말씀한 것과 같이,
그의 배에서 생수의 강들이 흐르리라.”고 하시니
He that believeth on me, as the scripture hath said,
out of his belly shall flow rivers of living water.

(요한복음 7:38)

『 세상도, 세상의 정욕도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요한일서 2:17)

『 14:24 만군의 가 맹세하여 말하기를 “내가 생각했던 대로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며, 내가 계획했던 대로 그것이 확고히 되리라. 4:12 그러므로 오 이스라엘아, 내가 너에게 이같이 행하리라. 내가 너에게 이것을 행하리니 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하라.
14:24 The LORD of hosts hath sworn, saying, Surely as I have thought, so shall it come to pass; and as I have purposed, so shall it stand: 4:12 Therefore thus will I do unto thee, O Israel: and because I will do this unto thee, prepare to meet thy God, O Israel.

(이사야 14:24아모스 4:12

Amazing Grace∼♪∼♬
[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