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신나간 신학대학, 미쳐 가는 한국 교회 ” (BB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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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나간 신학대학, 미쳐 가는 한국 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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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내가 주께로 내 손을 펼치며 내 혼이 마른 땅처럼 주를 갈급해 하나이다. 셀라. 7 ○ 오 주여, 속히 내게 들으소서. 내 영이 쇠잔하오니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 내가 구덩이로 내려가는 자들과 같이 될까 하나이다. 8 아침에 나로 주의 자애를 듣게 하소서. 이는 내가 주를 의지함이니이다. 나로 하여금 내가 가야 할 길을 알게 하소서. 이는 내가 나의 혼을 주께 들어올리기 때문이니이다. 9 오 주여, 내 원수들에게서 나를 구하소서. 내가 숨으려고 주께로 피하나이다. 10 주의 뜻을 행하도록 나를 가르치소서. 이는 주께서 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니이다. 주의 영이 선하시니 나를 정직한 땅으로 인도하소서. 11 오 주여,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를 소생시키소서. 주의 의를 위하여 내 혼을 고난에서 이끌어 내소서. 』(시 편 143:6∼11) 필자가 학창 시절, 그러니까 벌써
30년이 다 되어 간다. 당시 교회들에서는
중고등학생부에서「문학의
밤」,「찬양의 밤」같은
문화행사들을 많이 하곤 했었다. 아직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이나 록 콘서트가 교회들에서
흔히 행해지기 전이었다. 찬송이나 성시 낭송, 연극 같은 것들을 발표하면서
학생들은 나름대로의 기독교 문화를 즐기곤 했다. 그래도 불려지는 찬송이나
공연되는 연극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순수한 내용의 것들이 많았었다. 얼마 전에 신문에
난 광고를 하나 보았다. 매 학기 때마다 잊지 않고 내는 서울신학대학교의「인문학 강좌」광고다. 벌써 제5기라
하니 아무래도 그들은 그 일을 꾸준히 하려나 보다. 이번에도 역시 거듭나지
않은 여러 학자들, 정치인, 경제인들을 불러서 성경과는 관련 없는 강좌들을
마련했다.[이에 대해서는 본지 241호(2012년
4월)에 게재된 필자의 칼럼「세상 닮기에 안간힘을 쓰는
서울신대」를 참조할
것.] 많은 신학교들이 일반대학이
되기 원해 노력하고, 또 그 성과를 이뤄 일반대학화되기도 했다. 서울신대는
그런 전철을 밟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가운데 여러 차례에 걸쳐 인문학
강좌들을 개설하고 있다. 음악과 연관해서,
신학교들의 배교를 조금 더 살펴보자. 이번에 서울신대에서 이러한 초청공연을
준비한 것은 그 학교에 “실용음악과”가 신설된 것을 기념하기 위함이다.
일반적으로 신학교들에는 “교회음악과”(혹은 “종교음악과”)가 있다. 아무래도 음악이 많이 쓰이는 분야는 교회다
보니, 찬양을 위해 이러한 학과는 있을 법하다. 주로 클래식 음악의
코스로 밟는데, 말하자면 일반대학교 음대의 축소판이다. 그런데 현대
교회음악이 실제로 세속화되어 가면서, 클래식한 음악만 다루는 교회음악과와는
다른 형태의 음악과가 요구되었다. 그것이 바로 실용음악과이다. 세상
대학에서도 실용음악과가 많은데, 클래식한 음대와는 다른, 대중적이고
현대적인 음악을 배우고 가르친다. 말하자면 대중음악을 위한 과정인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이 세상학교들 못지않게 신학교들에서 인기가
많다. 왜냐하면 교회들이 CCM과 세상 음악을 부르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중음악의 주된 무대는 록 콘서트장만이 아니다. 바로 교회가
그 주된 무대인 것이다. 자, 이것은 비단 서울신대의 문제만이 아니다.
이 나라 신학교들 전체의 문제이고 교회들 전체의 문제이다. 전에는
신학교들이 자기들 교단 교리에 집중하여 비성경적 교리를 추구하는
게 문제였다. 하지만 이제는 교리적 문제는 뒷전이고 아예 세상을 향해
가고 있다. 그래도 전에는 세상과 구별된 모습은 가지려 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아니다. 서울신대가 이러한 광고를 버젓이 일간 신문에 하는
것을 보라.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 마치 사람들이 거리에서 옷을 벗고
다니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것과 같다. 동성연애를 하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것과
같다. 집단으로 말춤을 추면서도 미친 짓인지 모르는 것과 같다. 사람들이
그러한 무지에 빠져 있는 것은, 온 세상 모두가 그렇게 변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제는 양심을 지키려는 사람들도 스스로를 이상하게 느끼게
될 정도이다. ┃월간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No.248/2012-11) ...┃
(요한복음
6:63) 『 14:24 만군의 주가 맹세하여 말하기를 "내가 생각했던 대로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며, 내가 계획했던 대로 그것이 확고히 되리라. 4:12 그러므로 오 이스라엘아, 내가 너에게 이같이 행하리라. 내가 너에게 이것을 행하리니 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하라. 』 (이사야 14:24┃아모스 4: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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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제잉 워십’ 논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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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제잉 워십’ 논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다양한 장르 마음껏 누릴 수 있다” vs “오히려 진정한 기쁨 막아” 일명 ‘디제잉 워십’ 논란이 SNS를 달구고 있다. 지난 7월 13∼17일 천안 고신대에서 ‘캠퍼스 망명자’(Campus Exiles)라는 주제로 열린「2015 한국기독학생회(IVF) 전국 리더 대회」오프닝 무대 도중 ‘클럽’을 연상시키는 무대와 강렬한 전자음을 동반한 찬양(EDMㆍElectronic dance music)이 등장했고, 이 영상이 SNS에 확산되면서 찬반 논쟁이 일고 있는 것. ▲「2015 IVF 전국 리더 대회」를 알리는 포스터. ⓒ홈페이지 캡처 ◈ “‘디제잉’도 십자가로 구속시킬, 문화변혁적 사명 있다” 먼저 美 리버티대학교 예배학 교수이자 예배사역연구소 대표인 CCM 중견 사역자(좋은씨앗) 이유정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균형 있는 논의’를 주문했다. “일단 디제잉 형식을 사용한 목적이 예배가 아니라 ‘개막식의 축제 분위기를 위한 기획 의도’인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며 “20대 피 끓는 일단의 젊은이들이 ‘캠퍼스 망명자(CAMPUS EXILES)’라는 주제로 영적으로 무너져 가는 대학교를 살리기 위한 포부를 갖고 모인 것”이라고 전제했다. 이 교수는 “이들이 이 대회의 오프닝 무대에 일시적으로 누린 젊음의 끼와 발산을 용납할 수 없는 기성세대라 한다면, 정말이지 한국교회 미래는 숨 막힌다”며 “우리 기성세대는 교회에서 사용되는 모든 음악을 무조건 ‘이것이 예배에 적합한가 아닌가’라는 기준 하나로 도마 위에 올려 놓고 마구 난도질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아주 좋지 않은 버릇이자 지난 수백 년간 교회가 저질러 온 흑백논리요, 수많은 예술인들의 가슴을 피멍 들게 한 역사적 오판”이라고 지적했다.
이유정 교수는 “기독교인이 누릴 수 있는 음악을 단지 예배음악만으로 제한시키는 태도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예술을 너무나 왜소하게 만들고 저 어두운 교회 지하실에 가둬 버리는 중세적 행태”라며 “예배음악 외에도 교회음악, 기독교 대중음악, 기독교적 가치와 세계관을 담은 노래를 넘어 건전 가요에 이르기까지 우리 그리스도인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마음껏 누릴 수 있고, 그것이 종교개혁자 칼빈이 말한 것처럼 ‘하나님이 인간에 주신 가장 큰 선물 가운데 하나가 음악(예배음악이라 하지 않음)’이라고 말한 본래 의미”라고 전했다. 그는 “나아가 교회는 사단에게 빼앗긴 음악을 구속하여 회복시키는 일에 더 적극성을 띄어야 하고, 특히 요즘 20대 대학생들에게 ‘디제잉’이라는 장르는 매우 익숙하고 일반화된 문화로서 큰 영향을 주고 있다”며 “이러한 장르를 그냥 방치해 둔다면 결국 그 영역은 영원히 사단의 통치 하에 종노릇하게 될 것이고, 이를 예수의 십자가로 구속시키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책임이자 문화변혁적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또 “물론 세속화된 장르를 구속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결코 아니겠지만, 누군가는 사명을 갖고 이 일에 도전해야 한다”며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이유가 인간을 포함한 만물(모든 음악 장르를 포함한)을 구속시키기 위한 것”임을 선언한 바울의 ‘골로새서 1장 20절’ 말씀을 성경적 근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물론 디제잉을 예배음악으로 사용할 것인가는 전혀 다른 이슈”라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음악이 갖고 있는 중립적 가치 때문에, 이 음악을 어느 용도로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해 교회는 선명한 신학적 기준을 갖고 있어야 함과 동시에, 아티스트들은 평생을 씨름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도록 더욱 책임성 있게 이를 다뤄야 한다”며 “이때 아티스트들에 대한 교회의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이슈가 터졌을 때, 교회와 아티스트들이 대립적 입장에서 비난하고 정죄하는 태도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는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몸 된 유기적 공동체”라며 “기성세대의 눈에 설익은 모습으로 비치는 아티스트를 시종 비난투로 공격하는 태도는, 어린아이가 실수로 손에 가시가 찔려 피 흘리고 있는데 약을 발라 주고 달래기는커녕 왜 그런 실수를 했느냐며 비난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다친 손가락을 아예 잘라 버리는 냉혈 행위”라고도 했다. 이 교수는 “오히려 교회는 타락한 가치들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 싸워야 하는 크리스천 아티스트들이, 영적인 분별력을 갖고 자신의 도구인 예술을 어떻게 지혜롭게 다뤄야 할지 고민하고 격려받을 수 있는 영적인 요람이 되어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가사가 주는 메시지와 어울리지 않는 음악은 어색” 본지 서평가이자 통합적 성경공부 시리즈「갈라디아서」저자인 이정규 강도사(시광교회)는 개혁신학적 입장에서 ‘찬양을 통해 누리는 최고의 기쁨을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디제잉 워십’에 반론을 제기했다. 이정규 강도사는 디제잉 당사자에게 부치는 편지 형식의 글에서 “모든 재능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믿기에 간사님의 음악적 재능과 열망이 부디 귀하게 쓰임받기를 바라지만, 그럼에도 그 동영상을 보면서 많이 안타까웠다”며 “그것이 하나님께 올리는 찬양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안타까웠다”고 전했다. 그는 “그러한 모습의 예배찬양이 옳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특히 장로교인인 제 입장에서는 ‘예배의 규정적 원리’를 어기는 일이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무엇보다) 그러한 방식을 사용하는 것은 찬양이 주는 기쁨을 감소시키기 때문에 더 안타까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저는 DJ 장비로 EDM을 사용하여 찬양을 인도하시는 것이 너무 쾌락적이어서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며 “우리가 누리는, 그리고 누릴 수 있는 궁극적 쾌락을 감소시키기 때문에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강도사는 “찬송은 단순한 경음악이 아니라 가사가 붙어 있는 노래로, 경음악과는 달리 가사가 주는 메시지가 음률에 실려 감정을 전달한다는 것”이라며 “따라서 음악은 가사가 주는 메시지를 극대화시키고 감정에 실리도록 설명하는 역할을 하고, 그렇기 때문에 가사가 주는 메시지와 음악이 어울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색함을 느끼게 된다”고 했다.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가사인 “주님 사랑해요 온 맘과 정성 다해 하나님의 신실한 친구 되기 원합니다”를 제시하면서 질문하기도 했다. 그는 “이러한 고백을 하는데 EDM을 사용하기를 원하는가? EDM과 이 가사(그리고 그 이면의 성경 본문 내용)는 안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않는가”라며 “안 어울리는 것을 넘어 이 가사가 본래 줄 수 있는 기쁨과 감흥을 비트와 분위기가 방해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너무나 연모했지만 함께할 수 없었던 여인을 만나 오랫동안 쌓인 감정과 사랑을 고백하는 데, 간사님께서는 EDM을 사용하시겠는가”라고 했다. 그는 “새로운, 그리고 더욱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되는 것에 대한 기대감, 사랑했던 대상과 드디어 마음이 합한다는 공감(共感), 너무나도 탁월하고 아름다운 존재가 자신을 사랑해 준다는 데서 얻는 황홀감, 어떤 이기적 요소도 개입하지 않는 순수한 사랑의 아름다움을 본다는 만족감과 거룩함…, 이러한 감정들을 쏟아내는 고백에는 진지하고 따뜻하며 조금은 느리고 잔잔한 선율이 이 감정들이 주는 기쁨을 극대화시킨다”며 “이 모든 감정들을 토로하는데 EDM이 등장한다면, 감정이 주는 기쁨을 높이기는커녕 방해하고 감소시킬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정규 강도사는 “이러한 의미에서, 찬송은 기쁨의 시작이기보다는 완성”이라며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먼저 하나님을 본다. 그것이 따뜻한 사랑의 표현이든, 압도적이고 영화로운 권위의 표현이든 간에 피조물인 우리 안에는 전능자를 만났다는 기쁨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강도사는 “따라서 찬양은 영원토록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영화롭게 해야 하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중요한 기독교적 기쁨의 통로”라며 “그래서 저는 하나님 말씀으로부터 출발해 음악으로 기쁨을 완성하라고 권하고 싶다. 특히 시편을 통해, 성령으로 오류 없이 영감받은 시인들의 다채로운 감정을 주의 깊게 관찰해 보시기”를 권면했다. 그는 “전해 듣기는 전국 리더 대회에서 간사님이 맡으신 순서는 ‘예배’가 아닌 ‘콘서트’였다고 하던데 여러 모로 다행이라 생각했고,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그리스도인들도 얼마든지 문화를 누릴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했다”며 “다만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에 한 마디씩 하는 이유는 간사님께서 그 시간을 ‘디제잉 워십(Worship)’이라 명명했기 때문인 것 같은데, 이 부분에서 저는 간사님을 지지할 수 없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하지만 하나님께서 간사님께 베푸신 귀한 음악적 재능과 감성을 부인하고 싶지 않고, 문화를 즐기며 또는 문화 콘텐츠를 제공하며 살아가는 것은 결코 죄가 아니며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이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 일 중 하나이기에, 훌륭한 DJ가 되시길 진심으로 바란다”면서도 “다만 예배에 이 음악을 사용하는 일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숙고해 주셨으면 한다”고 했다. 또 “기왕 IVF에 가셨었으니, 예배음악에 대해선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압도적인 하나님에 대해 아주 많이 말해 주는, IVP에서 출간한 ‘존 파이퍼’의〈하나님이 복음이다〉를 읽어 보시기를 간청한다”고 권면했다. ┃인터넷 신문 ‘크리스천투데이’ (2015-07-16) ...┃
【 비평하기.... Criticism... 】 『 이는 기록되기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시기 때문이니라. 』(베드로전서 1:16) 내 영혼이 은총입어∼ 나
위하여 십자가의∼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어느 나라, 어느 민족에서 연주하던지 듣는 사람의 내면에 깊은 감동과
평안과 감사의 눈물을 일으킨다. 어제나 오늘이나 똑같은 정서와
분위기를 일으킨다는 것은 그 모양을 똑같이 찍어내는 형틀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작곡과 작사라는 것은 형틀(장르라는 것도 하나의 형틀이다)을 만드는 작업인데 EDM이라는
형틀에서는 그 모양밖에는 나오지 않는 것이다. 이유정 교수는 이것을
무시한 것이며, 자기의 주장을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여 합리화시킨
어리석은 세상 냄새만 풍긴 것이다. 한국에는 라오디케아
교회들만 수두룩함을 깨달으라!!! 10 vs. 2 .... ... 열 둘의 두 명만(여호수아, 칼렙) 약속의 땅에 들어갔음을 잊지 말라. 순교자의 자리에 서는 것이 하루 아침에 가능한 일인가? 어제까지는 온갖 게으르고 방탕하게 살다가 오늘 갑자기 순교자의 반열에 서게 되는 것인가? 하루하루 순교자의 자세로 살다보니까 순교자의 자리에 서게 되는 것 뿐이다.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신실함이 요구된다. 성실하면 성실한대로, 불성실하면 불성실한 그대로... 자국이 새겨지는 것이다. (나무의 나이테를 생각해 보면 된다.) 2015. 8.... (데살로니가전서 5:22) 악은 어떤 형태이든지 피하라. (마태복음 15:7∼ 20) 7 너희 위선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말하기를 8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에게 다가오고, 또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여도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9 사람들의 계명들을 교리들로 가르치니, 그들이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라고 하였느니라.”고 하시더라. 10 ○ 주께서 무리를 부르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듣고 깨달으라. 11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느니라.”고 하시니라. 12 그때에 제자들이 와서 주께 말씀드리기를 “바리새인들이 이 말을 듣고 실족한 것을 아시나이까?”라고 하니, 13 주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께서 심지 않으신 모든 초목은 뽑힐 것이라. 14 내버려 두라. 그들은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들이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고 하시더라. 15 베드로가 대답하여 주께 말씀드리기를 “이 비유를 설명하여 주소서.”라고 하니, 16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도 아직 깨닫지 못하느냐? 17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를 통해 뒤로 나가는 줄 아직 알지 못하느냐? 18 그러나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으로부터 나오나니, 이것들이 사람을 더럽히느니라. 19 마음에서는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행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모독이 나오느니라. 20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며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히지 아니하느니라.”고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3:14∼4:11) 3:14 라오디케아인들의 교회의 천사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신실하고 진실한 증인이시며,
하나님의 창조를 시작하신 분이 이 일들을
말씀하시느니라.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덥지도 아니하도다. 나는 네가 차든지 덥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네가 그처럼 미지근하여 차지도
아니하고 덥지도 아니하기 때문에 내가 너를 내 입에서 토해 내겠노라.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며,
부요하고,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지만 너는 비참하고, 가련하며,
가난하고, 눈멀고, 헐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18 내가 너에게 권고하노니 내게서 불로 단련된
금을 사서 부요하게 되고, 흰 옷을 사서 입음으로 너의 벌거벗은 수치를
드러내지 않게 하며, 또 안약을 네 눈에 발라 보게 하라. 19 내가 사랑하는 자마다 책망하고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열심을 내고 회개하라. 20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두드리노라.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그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으며 그도 나와 함께 먹으리라. 21 이기는 자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나와
함께 앉을 자격을 주리니, 이는 내가 이겨서 내 아버지와 함께 그의 보좌에 앉은 것과 같으리라. 22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 (요한일서 2:15, 16/4:1ㆍ1John 2:15, 16/4:1) 2:15 세상도, 세상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를
사랑함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생의 자랑이요, 아버지께 속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라. 4:1 사랑하는 자들아, 모든 영을
다 믿지 말고 그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는지 시험하라. 이는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다니엘 12:3) 현명한 자들은 창공의
광명처럼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의(羊+我=義ㆍrighteousness)로
돌이키는 자들은 별들처럼 영원무궁토록 빛나리라. The grace of our Lord Jesus Christ be with you. Amen. |
'(Ⅲ) 진리의 지식 > 【 칼럼 모음 】'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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