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3. 27. 17:50

“ 정신나간 신학대학, 미쳐 가는 한국 교회 ” (BB 칼럼)

(BB 칼럼) [201211/No.248] ● 정신나간 신학대학, 미쳐 가는 한국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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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eaceful Hymns on Violinㆍ잔잔한 찬송가 바이올린 연주 모음┃(53:39)

● 정신나간 신학대학, 미쳐 가는 한국 교회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라. (시편 12:6)┃


6 내가 주께로 내 손을 펼치며 내 혼이 마른 땅처럼 주를 갈급해 하나이다. 셀라. 7 ○ 오 여, 속히 내게 들으소서. 내 영이 쇠잔하오니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 내가 구덩이로 내려가는 자들과 같이 될까 하나이다. 8 아침에 나로 주의 자애를 듣게 하소서. 이는 내가 주를 의지함이니이다. 나로 하여금 내가 가야 할 길을 알게 하소서. 이는 내가 나의 혼을 주께 들어올리기 때문이니이다. 9여, 내 원수들에게서 나를 구하소서. 내가 숨으려고 주께로 피하나이다. 10 주의 뜻을 행하도록 나를 가르치소서. 이는 주께서 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니이다. 주의 영이 선하시니 나를 정직한 땅으로 인도하소서. 11여,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를 소생시키소서. 주의 의를 위하여 내 혼을 고난에서 이끌어 내소서. 』(시 편 143:611)

  필자가 학창 시절, 그러니까 벌써 30년이 다 되어 간다. 당시 교회들에서는 중고등학생부에서「문학의 밤」,「찬양의 밤」같은 문화행사들을 많이 하곤 했었다. 아직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이나 록 콘서트가 교회들에서 흔히 행해지기 전이었다. 찬송이나 성시 낭송, 연극 같은 것들을 발표하면서 학생들은 나름대로의 기독교 문화를 즐기곤 했다. 그래도 불려지는 찬송이나 공연되는 연극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순수한 내용의 것들이 많았었다.
  당시는
1980년대, 그러니까 요즘 말로 하면 7080 시대”였다. 세상에서는 통기타와 밴드 음악과 디스코와 록 음악이 유행하던 시대, 교회들도 이런 유행에 둔감할 리 없었다. 당시 필자가 다니던 교회에서도「문학의 밤」을 했는데, 한 번은 학생회에서 어떤 고등학교의 밴드부(록 밴드)를 초청했었다. 원래는 복음성가 몇 곡을 부르기로 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무대에 올라간 그 밴드는 갑자기 당시에 유행하던 7080 록 음악을 불러 버렸다. 순간 학생 청중들은 미칠 듯이 환호했고, 당시 보수적이었던 그 교회는 발칵 뒤집히고 말았다.
  하지만 오늘날 저런 풍경은 더 이상 희한하지 않게 되었다. 교회를 발칵 뒤집을 일은 더더욱 아니다. 온 교회들이 록 음악에 미쳐 있고, 세상 문화에 흠뻑 취해 있기 때문이다. 말은
“찬양”이라 하지만, 가사만 적당히 기독교적 냄새가 나게 만들어 놓고 음악은 세상 음악을 실어 놓았기에, 사실상 전혀 “찬양”이 아닌 것이다.

  얼마 전에 신문에 난 광고를 하나 보았다. 매 학기 때마다 잊지 않고 내는 서울신학대학교의「인문학 강좌」광고다. 벌써 제5기라 하니 아무래도 그들은 그 일을 꾸준히 하려나 보다. 이번에도 역시 거듭나지 않은 여러 학자들, 정치인, 경제인들을 불러서 성경과는 관련 없는 강좌들을 마련했다.이에 대해서는 본지 241호(20124월)에 게재된 필자의 칼럼「세상 닮기에 안간힘을 쓰는 서울신대」를 참조할 것. 많은 신학교들이 일반대학이 되기 원해 노력하고, 또 그 성과를 이뤄 일반대학화되기도 했다. 서울신대는 그런 전철을 밟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가운데 여러 차례에 걸쳐 인문학 강좌들을 개설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게재한 광고는 단지 인문학 강좌뿐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또 하나의 광고가 눈에 띄었는데, 다름 아니라 외국 유명 밴드의 초청 공연 광고였다.
“스티브 갯”이라는 유명 드러머(drummer)인데, 그는 복음성가 가수도 아니다. 단지 세상에서 팝과 재즈 드럼으로 유명한 사람일 뿐이다. 그들이 와서 연주하는 것도 세상 음악이다. 그 광고의 기가 막힌 카피를 보라“아바(ABBA)의 명곡과 드럼의 전설이 서울신학대학교에서 만난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아바는
197080년대에 유명했던 팝 그룹이다. 그런데 도대체 아바와 서울신대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세상 대학들은 축제 등을 하면서 세상 가수들을 데려다 놓고 춤추며 진탕 취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신학대학은 그러면 안 되지 않는가? 신학대학은 교회들을 이끌어 갈 일꾼들을 기르는 곳이다. 신학교가 망가지면 교회는 자연히 망가진다. 그래서 사탄은 일찍이 신학교들로 침투하여 배교를 이끌어 냈다. 서울신대 역시 그렇게 사탄에게 당해서 배교한 신학교인 것이다.
  이것은
CCM 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배교다. CCM은 그래도 기독교 음악의 테두리 안에서 행해졌다. CCM은 말만 기독교 음악이지 모든 곡조와 음률은 세상 음악과 동일하여, 록, 발라드, 재즈, 트로트, 댄스 등 세상 음악의 장르가 그대로 CCM에서 사용된다. 그 CCM이 교회들에서 연주되고 있다. 하지만 어쨌든 그것은 명목상으로나마 기독교 음악의 테두리에 있다. 하지만 서울신대에서 이번에 초청되는 연주자들은 완전히 세상 음악가들이다. 도대체 신학교와 교회들이 어디까지 가야 하겠는가? 이젠 교회 내에서 대중가요 콘서트를 보게 되는 것이 어색하지 않게 되었다. 필자가 어릴 때 다녔던 그 교회는 바로 30년 후의 한국 교회의 미래를 예견해 주었던 것이다.

  음악과 연관해서, 신학교들의 배교를 조금 더 살펴보자. 이번에 서울신대에서 이러한 초청공연을 준비한 것은 그 학교에 “실용음악과”가 신설된 것을 기념하기 위함이다. 일반적으로 신학교들에는 “교회음악과”(혹은 “종교음악과”)가 있다. 아무래도 음악이 많이 쓰이는 분야는 교회다 보니, 찬양을 위해 이러한 학과는 있을 법하다. 주로 클래식 음악의 코스로 밟는데, 말하자면 일반대학교 음대의 축소판이다. 그런데 현대 교회음악이 실제로 세속화되어 가면서, 클래식한 음악만 다루는 교회음악과와는 다른 형태의 음악과가 요구되었다. 그것이 바로 실용음악과이다. 세상 대학에서도 실용음악과가 많은데, 클래식한 음대와는 다른, 대중적이고 현대적인 음악을 배우고 가르친다. 말하자면 대중음악을 위한 과정인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이 세상학교들 못지않게 신학교들에서 인기가 많다. 왜냐하면 교회들이 CCM과 세상 음악을 부르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중음악의 주된 무대는 록 콘서트장만이 아니다. 바로 교회가 그 주된 무대인 것이다.
  이렇게 신학교들은 목사만이 아니라 가수들을 양성해 낸다. 그리고 그 목사들은 교회들을 그 가수들에게 내주어 공연장으로 삼는다. 그 가수들은 그 교회들에 회원들과 돈을 모아다 준다. 그렇게 그 둘은 하나가 된다. 그 둘은 한 뿌리, 즉 배교한 신학교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 목사들은 인문학으로 무장한, 아니 그보다는 인문학을 동경하는 사람들이 된다. 차마 자신을 철학자나 문학가로 부르진 못하지만, 그들을 동경하는, 그래서 항상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을 향해 있는 마음으로 목회를 하게 된다.
  상황이 이럴진대 왜 그들은 신학교라는 이름을 갖고 있을까? 과감하게 일반대학 승격을 위해 구체적인 준비를 하라. 신학교라는 이름은 그런 학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서울신대가 무엇을 하든 우리와는 상관이 없다. 그들이 인문학 강좌를 하든 개똥 철학을 하든,
CCM을 부르든 재즈를 연주하든 말춤을 추든 우리와는 상관이 없다. 하지만 적어도 신학교라 부르지는 말라. 그 학교 내에서 하나님이나 예수 그리스도, 성경, 복음, 구원, 속죄, 부활, 교회 같은 단어는 쓰지 말라. 그 학교 나오면 목사가 되는가? 가능하면 목사가 되지 말아 달라. 그냥 인문학 분야에서 일하거나, 가수가 되라. 그것은 어차피 우리와 상관없는 “세상”의 것들이니 신경쓰지 않겠다. 하지만 교회를 세우지는 말아 달라. 수많은 사람들이 그 교회들로 모일텐데, 그들을 지옥으로 보낼 작정인가? 어차피 그들을 구령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삼을 능력도 마음도 없지 않은가?

  자, 이것은 비단 서울신대의 문제만이 아니다. 이 나라 신학교들 전체의 문제이고 교회들 전체의 문제이다. 전에는 신학교들이 자기들 교단 교리에 집중하여 비성경적 교리를 추구하는 게 문제였다. 하지만 이제는 교리적 문제는 뒷전이고 아예 세상을 향해 가고 있다. 그래도 전에는 세상과 구별된 모습은 가지려 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아니다. 서울신대가 이러한 광고를 버젓이 일간 신문에 하는 것을 보라.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 마치 사람들이 거리에서 옷을 벗고 다니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것과 같다. 동성연애를 하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것과 같다. 집단으로 말춤을 추면서도 미친 짓인지 모르는 것과 같다. 사람들이 그러한 무지에 빠져 있는 것은, 온 세상 모두가 그렇게 변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제는 양심을 지키려는 사람들도 스스로를 이상하게 느끼게 될 정도이다.
  이것이 바로 라오디케아 교회 시대의 모습이다(요한계시록
31422). 이 라오디케아인들에게 하나님의 절대 진리는 더 이상 없다. 세대들에 맞춰 흐르는 인간의 권리만 중요할 뿐이다. 성경은 뒷전이고 인간들의 마음, 인간들의 생각만이 중요하다. 하지만 성경은 인간의 생각을 이렇게 말씀한다.『...마음의 상상이 어려서부터 악함이라』(창세기 821).『...사람의 사악함이 세상에 창대해짐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상상이 계속해서 악할 뿐...』(창세기 65).
 
 라오디케아 시대는 교회 시대의 마지막이다. 그래서 라오디케아 시대의 끝은 적그리스도를 맞이할 준비가 이루어진다. 적그리스도는 “때와 법을 변경시키”는 자이다(다니엘 725). 무엇보다 마음의 법을 변경시킨다. 과거에는 그래도 사람들의 양심이 어느 정도 있어서 도덕법이 사회를 지탱했지만, 이제는 그 양심의 법마저도 틀어져 버렸다. 바로 적그리스도의 영이 지배해 버렸기 때문이다. 적그리스도는 그렇게 세상 사람들의 양심을 파괴해가면서 그가 나타날 길을 준비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지금, 라오디케아 교회 시대의 마지막 부분인 것이다. 그리고 적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하는 바로 그 일들이 신학교들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BB

월간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No.248/2012-11) ...

  『 정신나간 신학대학, 미쳐 가는 한국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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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B colu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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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전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한 말들은 영이요, 생명이라.
It is the spirit that quickeneth; the flesh profiteth nothing:
the words that I speak unto you, they are spirit, and they are life.

『 세상도, 세상의 정욕도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요한일서 2:17)

『 14:24 만군의 가 맹세하여 말하기를 "내가 생각했던 대로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며, 내가 계획했던 대로 그것이 확고히 되리라. 4:12 그러므로 오 이스라엘아, 내가 너에게 이같이 행하리라. 내가 너에게 이것을 행하리니 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하라.

(이사야 14:24아모스 4:12

Bible believers

 『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Divide)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 』(디모데후서 2:15)

            ● Peaceful Hymns on Violinㆍ잔잔한 찬송가 바이올린 연주 모음┃(53:39)

● ‘디제잉 워십’ 논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라. (시편 12:6)┃

● 크리스천투데이

‘디제잉 워십’ 논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다양한 장르 마음껏 누릴 수 있다” vs “오히려 진정한 기쁨 막아”

  일명 ‘디제잉 워십’ 논란이 SNS를 달구고 있다. 지난 71317일 천안 고신대에서 ‘캠퍼스 망명자’(Campus Exiles)라는 주제로 열린2015 한국기독학생회(IVF) 전국 리더 대회오프닝 무대 도중 ‘클럽’을 연상시키는 무대와 강렬한 전자음을 동반한 찬양(EDMElectronic dance music)이 등장했고, 이 영상이 SNS에 확산되면서 찬반 논쟁이 일고 있는 것.

『 어리석은 자는 자기 마음에 말하기를 “하나님은 없다.” 하였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가증한 악을 행하였으니 선을 행하는 자가 아무도 없도다. ─ The fool hath said in his heart, There is no God. Corrupt are they, and have done abominable iniquity: there is none that doeth good. 』(시 편 53:1)

2015 IVF 전국 리더 대회」를 알리는 포스터. ⓒ홈페이지 캡처

  ◈ “‘디제잉’도 십자가로 구속시킬, 문화변혁적 사명 있다”

  먼저 美 리버티대학교 예배학 교수이자 예배사역연구소 대표인 CCM 중견 사역자(좋은씨앗) 이유정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균형 있는 논의’를 주문했다. “일단 디제잉 형식을 사용한 목적이 예배가 아니라 ‘개막식의 축제 분위기를 위한 기획 의도’인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20대 피 끓는 일단의 젊은이들이 ‘캠퍼스 망명자(CAMPUS EXILES)’라는 주제로 영적으로 무너져 가는 대학교를 살리기 위한 포부를 갖고 모인 것”이라고 전제했다.

  이 교수는 “이들이 이 대회의 오프닝 무대에 일시적으로 누린 젊음의 끼와 발산을 용납할 수 없는 기성세대라 한다면, 정말이지 한국교회 미래는 숨 막힌다”“우리 기성세대는 교회에서 사용되는 모든 음악을 무조건 ‘이것이 예배에 적합한가 아닌가’라는 기준 하나로 도마 위에 올려 놓고 마구 난도질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아주 좋지 않은 버릇이자 지난 수백 년간 교회가 저질러 온 흑백논리요, 수많은 예술인들의 가슴을 피멍 들게 한 역사적 오판”이라고 지적했다.

● 이유정 교수

▲ 이유정 교수

  이유정 교수는 “기독교인이 누릴 수 있는 음악을 단지 예배음악만으로 제한시키는 태도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예술을 너무나 왜소하게 만들고 저 어두운 교회 지하실에 가둬 버리는 중세적 행태”라며 “예배음악 외에도 교회음악, 기독교 대중음악, 기독교적 가치와 세계관을 담은 노래를 넘어 건전 가요에 이르기까지 우리 그리스도인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마음껏 누릴 수 있고, 그것이 종교개혁자 칼빈이 말한 것처럼 ‘하나님이 인간에 주신 가장 큰 선물 가운데 하나가 음악(예배음악이라 하지 않음)’이라고 말한 본래 의미”라고 전했다. 그는 “나아가 교회는 사단에게 빼앗긴 음악을 구속하여 회복시키는 일에 더 적극성을 띄어야 하고, 특히 요즘 20대 대학생들에게 ‘디제잉’이라는 장르는 매우 익숙하고 일반화된 문화로서 큰 영향을 주고 있다”“이러한 장르를 그냥 방치해 둔다면 결국 그 영역은 영원히 사단의 통치 하에 종노릇하게 될 것이고, 이를 예수의 십자가로 구속시키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책임이자 문화변혁적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또 “물론 세속화된 장르를 구속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결코 아니겠지만, 누군가는 사명을 갖고 이 일에 도전해야 한다”“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이유가 인간을 포함한 만물(모든 음악 장르를 포함한)을 구속시키기 위한 것”임을 선언한 바울의 ‘골로새서 120’ 말씀을 성경적 근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물론 디제잉을 예배음악으로 사용할 것인가는 전혀 다른 이슈”라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음악이 갖고 있는 중립적 가치 때문에, 이 음악을 어느 용도로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해 교회는 선명한 신학적 기준을 갖고 있어야 함과 동시에, 아티스트들은 평생을 씨름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도록 더욱 책임성 있게 이를 다뤄야 한다”“이때 아티스트들에 대한 교회의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이슈가 터졌을 때, 교회와 아티스트들이 대립적 입장에서 비난하고 정죄하는 태도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는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몸 된 유기적 공동체”라며 “기성세대의 눈에 설익은 모습으로 비치는 아티스트를 시종 비난투로 공격하는 태도는, 어린아이가 실수로 손에 가시가 찔려 피 흘리고 있는데 약을 발라 주고 달래기는커녕 왜 그런 실수를 했느냐며 비난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다친 손가락을 아예 잘라 버리는 냉혈 행위”라고도 했다.

  이 교수는 “오히려 교회는 타락한 가치들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 싸워야 하는 크리스천 아티스트들이, 영적인 분별력을 갖고 자신의 도구인 예술을 어떻게 지혜롭게 다뤄야 할지 고민하고 격려받을 수 있는 영적인 요람이 되어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가사가 주는 메시지와 어울리지 않는 음악은 어색”

  본지 서평가이자 통합적 성경공부 시리즈갈라디아서저자인 이정규 강도사(시광교회)는 개혁신학적 입장에서 ‘찬양을 통해 누리는 최고의 기쁨을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디제잉 워십’에 반론을 제기했다.

  이정규 강도사는 디제잉 당사자에게 부치는 편지 형식의 글에서 “모든 재능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믿기에 간사님의 음악적 재능과 열망이 부디 귀하게 쓰임받기를 바라지만, 그럼에도 그 동영상을 보면서 많이 안타까웠다”“그것이 하나님께 올리는 찬양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안타까웠다”고 전했다.

  그는 “그러한 모습의 예배찬양이 옳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특히 장로교인인 제 입장에서는 ‘예배의 규정적 원리’를 어기는 일이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무엇보다) 그러한 방식을 사용하는 것은 찬양이 주는 기쁨을 감소시키기 때문에 더 안타까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저는 DJ 장비로 EDM을 사용하여 찬양을 인도하시는 것이 너무 쾌락적이어서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우리가 누리는, 그리고 누릴 수 있는 궁극적 쾌락을 감소시키기 때문에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강도사는 “찬송은 단순한 경음악이 아니라 가사가 붙어 있는 노래로, 경음악과는 달리 가사가 주는 메시지가 음률에 실려 감정을 전달한다는 것”이라며 “따라서 음악은 가사가 주는 메시지를 극대화시키고 감정에 실리도록 설명하는 역할을 하고, 그렇기 때문에 가사가 주는 메시지와 음악이 어울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색함을 느끼게 된다”고 했다.

● 이정규 강도사

▲ 이정규 강도사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가사인 “주님 사랑해요 온 맘과 정성 다해 하나님의 신실한 친구 되기 원합니다”를 제시하면서 질문하기도 했다. 그는 “이러한 고백을 하는데 EDM을 사용하기를 원하는가? EDM과 이 가사(그리고 그 이면의 성경 본문 내용)는 안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않는가”라며 “안 어울리는 것을 넘어 이 가사가 본래 줄 수 있는 기쁨과 감흥을 비트와 분위기가 방해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너무나 연모했지만 함께할 수 없었던 여인을 만나 오랫동안 쌓인 감정과 사랑을 고백하는 데, 간사님께서는 EDM을 사용하시겠는가”라고 했다.

  그는 “새로운, 그리고 더욱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되는 것에 대한 기대감, 사랑했던 대상과 드디어 마음이 합한다는 공감(共感), 너무나도 탁월하고 아름다운 존재가 자신을 사랑해 준다는 데서 얻는 황홀감, 어떤 이기적 요소도 개입하지 않는 순수한 사랑의 아름다움을 본다는 만족감과 거룩함…, 이러한 감정들을 쏟아내는 고백에는 진지하고 따뜻하며 조금은 느리고 잔잔한 선율이 이 감정들이 주는 기쁨을 극대화시킨다”“이 모든 감정들을 토로하는데 EDM이 등장한다면, 감정이 주는 기쁨을 높이기는커녕 방해하고 감소시킬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정규 강도사는 “이러한 의미에서, 찬송은 기쁨의 시작이기보다는 완성”이라며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먼저 하나님을 본다. 그것이 따뜻한 사랑의 표현이든, 압도적이고 영화로운 권위의 표현이든 간에 피조물인 우리 안에는 전능자를 만났다는 기쁨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강도사는 “따라서 찬양은 영원토록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영화롭게 해야 하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중요한 기독교적 기쁨의 통로”라며 “그래서 저는 하나님 말씀으로부터 출발해 음악으로 기쁨을 완성하라고 권하고 싶다. 특히 시편을 통해, 성령으로 오류 없이 영감받은 시인들의 다채로운 감정을 주의 깊게 관찰해 보시기”를 권면했다.

  그는 “전해 듣기는 전국 리더 대회에서 간사님이 맡으신 순서는 ‘예배’가 아닌 ‘콘서트’였다고 하던데 여러 모로 다행이라 생각했고,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그리스도인들도 얼마든지 문화를 누릴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했다”“다만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에 한 마디씩 하는 이유는 간사님께서 그 시간을 ‘디제잉 워십(Worship)’이라 명명했기 때문인 것 같은데, 이 부분에서 저는 간사님을 지지할 수 없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하지만 하나님께서 간사님께 베푸신 귀한 음악적 재능과 감성을 부인하고 싶지 않고, 문화를 즐기며 또는 문화 콘텐츠를 제공하며 살아가는 것은 결코 죄가 아니며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이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 일 중 하나이기에, 훌륭한 DJ가 되시길 진심으로 바란다”면서도 “다만 예배에 이 음악을 사용하는 일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숙고해 주셨으면 한다”고 했다.

  또 “기왕 IVF에 가셨었으니, 예배음악에 대해선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압도적인 하나님에 대해 아주 많이 말해 주는, IVP에서 출간한 ‘존 파이퍼’의〈하나님이 복음이다〉를 읽어 보시기를 간청한다”고 권면했다.

인터넷 신문 ‘크리스천투데이’ (2015-07-16) ...

 『 ‘디제잉 워십’ 논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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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천투데이」/2015. 7. 16/이 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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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하기.... Thinking... ◑

【  비평하기.... Criticism...

  『 이는 기록되기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시기 때문이니라. 』(베드로전서 1:16)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과연 저런 음악을 받으실까 하는 의문이 일어난다.『악은 어떤 형태이든지 피하라.』(데살로니가전서 5:22)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육신의 감각만을 극도로 자극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저런 장르의 음악을 받아 주실까?? (다양한 장르를 마음껏 누린다고??? 교회가 다양한 음악을 듣고 즐기기 위한 곳인가? 교회의 정의를 모르니까 저런 어리석은 소리들만...)
  그렇게 의문이 일어나고, 논쟁이 일어나면 근본적인 질문을 하나 해 보았으면 한다.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서,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앞으로 오실 전능하신 주 하나님이여!”...』(요한계시록 48)라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네 짐승이 저런 모양의 찬양을 올려 드릴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해 보기 바란다.
  결론은 쉽게 나오리라 생각된다. 오래 전에 헤비메탈 장르를 교회에 도입하려다가 많은 갈등이 있었는데 지금은 어떤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클래식 음악과 헤비메탈 음악을 들려줬을 때에 식물의 성장에 큰 차이가 있었다는 실험결과는 많이 알려져 있다. 메마른 광야에서 헐벗고 굶주리고 허기질 때 저런 음악을 듣고 싶어했는가, 찬송가의 깊은 영감의 멜로디와 가사를 듣고 싶어 했는가? 결론은 뻔하지 않는가 말이다.

내 영혼이 은총입어∼  나 위하여 십자가의∼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십자가를 질 수 있나∼  
Amazing Grace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어느 나라, 어느 민족에서 연주하던지 듣는 사람의 내면에 깊은 감동과 평안과 감사의 눈물을 일으킨다. 어제나 오늘이나 똑같은 정서와 분위기를 일으킨다는 것은 그 모양을 똑같이 찍어내는 형틀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작곡과 작사라는 것은 형틀(장르라는 것도 하나의 형틀이다)을 만드는 작업인데 EDM이라는 형틀에서는 그 모양밖에는 나오지 않는 것이다. 이유정 교수는 이것을 무시한 것이며, 자기의 주장을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여 합리화시킨 어리석은 세상 냄새만 풍긴 것이다.
  미국의 리버티대학교는 ‘자유주의 신학’을 추구하는 곳으로 알고 있는데, 그곳 소속의 교수라면 팔은 안으로 굽는 주장을 하는 것 당연하겠지. 신앙적 상식으로 쉽게 판단할 수 있는 일도 분별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은 무엇인가? 말로만 그리스도인인가? ‘신앙스런 모양의 감각적 쾌락’만 즐기고 싶어하는 육신적인 그리스도인들 뿐인가? 세상적인 음악들은 대놓고 즐기지 못하므로 기독교적 가사와 리듬으로 포장한 신앙스런 모양의 육신쾌락 음악들.... 소위 말하는 ‘
CCM 사역자, 찬양 사역자들’은 정신을 차려야 한다!!!

  한국에는 라오디케아 교회들만 수두룩함을 깨달으라!!!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교회’라고 불리우는 곳도 잘 분별해야만 한다. 이단은 말할 것도 없고 일반적으로 알려진 교단 교회들(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오순절파, 구세군,,,)도 그 중심들이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서 있는가를 잘 살펴봐야 한다. 크거나 작거나 타락하면 결과는 마찬가지이므로 교회의 크기는 분별의 기준이 안 된다.

  10 vs. 2 .... ... 열 둘의 두 명만(여호수아, 칼렙) 약속의 땅에 들어갔음을 잊지 말라. 순교자의 자리에 서는 것이 하루 아침에 가능한 일인가? 어제까지는 온갖 게으르고 방탕하게 살다가 오늘 갑자기 순교자의 반열에 서게 되는 것인가? 하루하루 순교자의 자세로 살다보니까 순교자의 자리에 서게 되는 것 뿐이다.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신실함이 요구된다. 성실하면 성실한대로, 불성실하면 불성실한 그대로... 자국이 새겨지는 것이다. (나무의 나이테를 생각해 보면 된다.)

2015. 8....
HanSaRang...

(데살로니가전서 5:22

악은 어떤 형태이든지 피하라.

(마태복음 15:720

7 너희 위선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말하기를 8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에게 다가오고, 또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여도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9 사람들의 계명들을 교리들로 가르치니, 그들이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라고 하였느니라.”고 하시더라. 10 ○ 주께서 무리를 부르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듣고 깨달으라. 11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느니라.”고 하시니라. 12 그때에 제자들이 와서 주께 말씀드리기를 “바리새인들이 이 말을 듣고 실족한 것을 아시나이까?”라고 하니, 13 주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께서 심지 않으신 모든 초목은 뽑힐 것이라. 14 내버려 두라. 그들은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들이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고 하시더라. 15 베드로가 대답하여 주께 말씀드리기를 “이 비유를 설명하여 주소서.”라고 하니, 16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도 아직 깨닫지 못하느냐? 17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를 통해 뒤로 나가는 줄 아직 알지 못하느냐? 18 그러나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으로부터 나오나니, 이것들이 사람을 더럽히느니라. 19 마음에서는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행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모독이 나오느니라. 20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며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히지 아니하느니라.”고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3:144:11

3:14 라오디케아인들의 교회의 천사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신실하고 진실한 증인이시며, 하나님의 창조를 시작하신 분이 이 일들을 말씀하시느니라.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덥지도 아니하도다. 나는 네가 차든지 덥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네가 그처럼 미지근하여 차지도 아니하고 덥지도 아니하기 때문에 내가 너를 내 입에서 토해 내겠노라.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며, 부요하고,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지만 너는 비참하고, 가련하며, 가난하고, 눈멀고, 헐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18 내가 너에게 권고하노니 내게서 불로 단련된 금을 사서 부요하게 되고, 흰 옷을 사서 입음으로 너의 벌거벗은 수치를 드러내지 않게 하며, 또 안약을 네 눈에 발라 보게 하라. 19 내가 사랑하는 자마다 책망하고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열심을 내고 회개하라. 20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두드리노라.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그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으며 그도 나와 함께 먹으리라. 21 이기는 자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나와 함께 앉을 자격을 주리니, 이는 내가 이겨서 내 아버지와 함께 그의 보좌에 앉은 것과 같으리라. 22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
4:1 이 일 후에 내가 쳐다보니, 보라, 하늘에 한 문이 열려 있는데 내가 들은 첫 음성은 나팔 소리 같았으며,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이리 올라오라. 내가 이후에 마땅히 일어나야 할 일들을 네게 보여 주리라.” 하더라. 2 또 내가 즉시 영 안에 있게 되었는데, 보라, 하늘에 한 보좌가 놓여 있고 한 분이 그 보좌에 앉으셨는데 3 앉으신 분의 용모가 벽옥과 홍보석 같으며, 그 보좌를 두른 무지개는 에메랄드같이 보이더라. 4 또 그 보좌 주위에는 스물네 좌석이 있는데, 내가 본 그 좌석들에는 흰 옷을 입은 스물네 장로가 앉아 있고, 그들은 금으로 만든 면류관을 머리에 썼더라. 5 그 보좌에서는 번개들과 천둥들과 음성들이 나오고, 보좌 앞에는 일곱 등불이 불타고 있었으니, 그것들은 하나님의 일곱 이라. 6 보좌 앞에는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그 보좌 가운데와 그 보좌 주위에는 앞뒤로 눈이 가득한 네 짐승이 있더라. 7 첫째 짐승은 사자 같고, 둘째 짐승은 송아지 같으며, 셋째 짐승은 사람과 같은 얼굴을 가졌고, 넷째 짐승은 날아다니는 독수리 같더라. 8 네 짐승들은 각각 자기 주위에 여섯 개의 날개를 가졌고 안쪽에는 눈들로 가득하더라. 또 그들은 밤낮 쉬지 않고 말하기를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앞으로 오실 전능하신 주 하나님이여!” 하더라. 9 그 짐승들이 보좌에 앉으시어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시는 분께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드릴 때, 10 스물네 장로가 보좌에 앉으신 분 앞에 엎드려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시는 분께 경배하며 그들의 면류관을 그 보좌 앞에 던지며 말씀드리기를 11 “오 여, 주께서는 영광과 존귀와 권세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니, 이는 주께서 만물을 창조하셨고,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으며, 또 창조되었기 때문이니이다.”라고 하더라.

(요한일서 2:15, 164:11John 215, 1641

2:15 세상도, 세상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를 사랑함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생의 자랑이요, 아버지께 속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라. 4:1 사랑하는 자들아, 모든 영을 다 믿지 말고 그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는지 시험하라. 이는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2:15 Love not the world, neither the things that are in the world. If any man love the world, the love of the Father is not in him. 16 For all that is in the world, the lust of the flesh, and the lust of the eyes, and the pride of life, is not of the Father, but is of the world. 4:1 Beloved, believe not every spirit, but try the spirits whether they are of God: because many false prophets are gone out into the world.

(다니엘 12:3

  현명한 자들은 창공의 광명처럼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의(羊+我=義righteousness)로 돌이키는 자들은 별들처럼 영원무궁토록 빛나리라.
And they that be wise shall shine as the brightness of the firmament; and they that turn many to righteousness as the stars for ever and ever.

The grace of our Lord Jesus Christ be with you. Amen.

Bible believers

 『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Divide)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 』(디모데후서 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