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들은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They that sow
in tears shall reap in joy. 』
(시 편 126:5) |
지난 20세기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에서나 복음을
전하는 데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디모데전서 2:4)을 성취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단 한 사람이라도
지옥에 가서는 안된다는 절박함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지옥은 결코 사람이
가서는 안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마태복음 25:41).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
이 순간에 너무나도 많은 죄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절하고 농담거리로
여기며 조소하고 비방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거부당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지금도 어디에선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고 있는 것입니다.『파송되지 아니하였는데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와 같이 “화평의 복음을 전하며 좋은 일들의
기쁜 소식을 가져오는 자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하였느니라』(로마서 10:15).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향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복음 증거의 대상으로 바라본다면,
우리 그리스도인은 구령(soul
winning)에 대해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겠습니까? 첫째, 복음을 누가 전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두말할 것 없이
그리스도인이 전해야 합니다. 오늘날 거듭나지 않은 채 종교 행위에만
몰두하고 있는 종교인들은 구령(soul winning)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또한 관심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도”라는 미명하에 교회에 사람들을 끌어다 앉혀
놓으면, 그것이 곧 복음을 전해 구원으로 인도하는 것인 양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소위 “전도왕 간증 집회”에 참석해 보면 성경적인 복음을 전해서 죄인이 거듭나게
되는 것은 없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자신이 속해 있는 교회에
얼마나 많은 사람을 데려갔느냐 하는 것을 간증이라고 떠벌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 전파는 반드시 복음으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구원 간증이 곧, 좋은 복음의
메시지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입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입을 열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둘째, 언제 전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는 시기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대비하라』(디모데후서 4:2a).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전할 준비를 항상 하고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전장의 군인은 항상 싸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전쟁에 임하는 자는 아무도
이생의 일들에 얽매이지 아니하나니 이는 자기를 군사로 뽑은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디모데후서
2:4).
초대 교회로부터 지금까지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전하는
시기가 특별히 정해져 있지 않았습니다. 항상 준비되어 있었고, 궂은
환경 속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것입니다(로마서 1:16).
당신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입니까? 그렇다면 지금 복음을 전하는 데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셋째, 어디서 전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복음 전파자의 최고의 표본입니다. 바울 사도는 어디에서나
복음을 전파했던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것이 비록 감옥이었다 해도
바울 사도는 자신에게 맡겨진 경륜을 잊지 않았고 신실하게 전파했던
것입니다. 아프리카
오지에 복음을 들고 갔던 ‘리빙스턴’(David
Livingstoneㆍ1813∼1873)이나 중국을 향해 전진했던 ‘허드슨 테일러’(James
Hudson Taylorㆍ戴德生ㆍ1832∼1905)나 미얀마에 복음을 전파했던 ‘아도니람 저드슨’(Adoniram
Judson, Jr.ㆍ1788∼1850) 등이 바로 어디에서나 복음을 전하기 위해 나아갔던 그리스도인들의
표본인 것입니다. 또한 현대에는 ‘포보프’(Haralan
Popovㆍ1907∼1988)나, ‘범브란트’(Richard Wurmbrandㆍ1909∼2001)
등이 좋은 예 입니다. 당신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입니까? 그렇다면
당신이 있는 바로 그 자리가 복음을 전할 장소인 것입니다. 넷째, 무엇을 전해야 합니까? 두말할
것 없이 복음입니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성경은 “다른 복음”(고린도후서 11:4┃갈라디아서 1:6∼9)이
있음을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탄은 단 한 사람이라도
더 마귀의 자식으로 붙들려고 하기 때문입니다(고린도후서 4:4).
그래서 성경에서 제시하는 복음(고린도전서 15:1∼4)을 가리고, 복음 비슷한 것을
제시하고 있으며 더 그럴듯한 것들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들 중에서 “복음”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는 교회가
있습니까? 그런데 왜 교인들에게 “구원받았습니까?”라고 물으면 엉뚱한 대답들을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다른 복음”이 전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입니까? 그렇다면 당신을 구원으로 인도한
복음을 전파하십시오. 다섯째, 어떻게 전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제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복음을 전파하는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습니다. 말씀에 기록된 대로 눈물로 씨를 뿌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 말씀에 가장 부합하는
생을 살았습니다. 바울 사도는 구원받은 후, 복음 전파에만 전 생애를
바쳤던 사람입니다. 그가 복음 전파를 하며 겪었던 많은 눈물의 흔적은
성경 여기저기에 배어 있습니다(고린도후서 4:8∼10┃디모데후서 3:11). 피흘림의 발자취인 신약
교회사를 알고 계십니까?〈폭스의
순교사〉, 피터 럭크만 박사의〈신약 교회사〉, E.H. 브로우드밴트의〈순례하는
교회ㆍ(english)〉등과
같은 책들을 읽어 본 적이 있으십니까? 순교자들은 자신들의 주이시며,
왕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The
Lord Jesus Christ)의 복음을 전하다가 아침의 이슬처럼
사라져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들의 열매들로써 믿음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은 지속적으로 전해져야 하고
인내로 전해져야 합니다. 한번 전했더니 거절한다고 해서 뒤돌아 선다면
어리석은 것입니다(물론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과 알고 지내는 사람을
구령하는 방법은 달라야 합니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을 대하셨던
예를 상기합시다). ‘죠지 뮬러’(George Müllerㆍ1805∼1898)는 자신의 친한 친구들의 구원을
위해 수십 년을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친구들은 죠지 뮬러가 죽는 순간까지도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죠지 뮬러의 기도는 결국 그의 장례식장에서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의 친구들은 죠지 뮬러의 장례식장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구원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당신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입니까?
그렇다면 눈물로 씨를 뿌려야 합니다. 복음 전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전해야 합니까? 그것은 바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디모데전서 2:4).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아버지의 뜻 가운데서
죄인들을 향해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영원한 형벌의 장소인 지옥에 가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은
제 개인의 주장이나 이론이 아닙니다. 성경이 분명히 말씀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복음은 전해져야 하며 단 한 사람이라도
더 영원한 지옥의 형벌로부터 구원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입니까?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향해 복음을 전하고 소리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사람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어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에 이르게 하려 하심이라』(베드로후서 3:9). 주님께서 승천하신 후 다시 오시겠다고 말씀하신지도
어언 2000년이 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왜 주님께서 오시지 않느냐고 반문하기도 하고 비웃기도
하고 조롱하기도 합니다. 더욱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조차
재림에 대해 반신반의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너무나도 분명하게 주님의 재림을 기록하고 있고, 그 시기는
하나님만이 아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오시면 더 전하고
싶어도 할 수 없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이야기할 시간도 없습니다.
더 이상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2001년 주님의
재림이 더 가까운 이 시점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향해 복음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그것이 비록 눈물과 함께 뿌려야 할 어렵고 힘든 일이라
해도 말입니다. 그 누군가가 나를 위해 눈물로 뿌린 씨의 복음이 현재
나에게 그 열매로 있듯이, 나 자신의 눈물의 씨로 인해 누군가가 열매로
드러난다면, 그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일 것입니다. 〈20세기 순회설교자의
회고록〉(피터 럭크만, 말씀보존학회 刊)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 이 시점에 이르러서 하나 분명해진 것이 있다면
20세기 순회 전도자로서의 나의
사역은 중국에서 생산되는 모든 차(tea)와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나에게 이 사역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이 세상 열 개를 준다 해도 바꾸지 않을 것이다.
나의 사역 기간 중 한국 전쟁, 페르시아만의 전쟁, 이란
인질 사태, 베를린 장벽 붕괴 등이 일어났지만 수십 억의 사람들은 이런
사건과 아무런 관계도 없이 살아가고 있었다. 인간이 달에 착륙한 사건마저도
죄인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풍성한 삶”(요한복음
10:10)이란 그리스도안에서 살아 있는
삶이다. 그리스도인들로서의 완전한 보람과 만족은(마태복음 16:25)
그리스도를 위해 생명을 버릴 때만이 얻어진다(마태복음 10:39).
나는 해 아래 그 어떤 것도 추수의 주님이신(마태복음 9:37)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일하기 위해(마태복음 9:38) 밭으로 나가는 것(요한복음 5:35, 36)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없다고 확신한다.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절대로 없다. 내가 살아온 70년 동안 닉슨, 맥아더, 고르바쵸프, 시나트라,
간디, 케네디, 피카소, 교황들, 처칠, 스탈린, 레닌, 포크너, 아인슈타인,
헤밍웨이 등이 살다 갔지만 그들의 삶은 지루한 삶이었고 열매 없는
삶이었다. 참된
인생은 성경과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이 삶은 환경, 정부,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을 변화시킨다. 이러한 인생의 핵심은
다름아닌 개인 구령인 것이다. 그 어떤 교황도, 주교도, 추기경도, 총리도,
대통령도, 언론인도, 국왕도, 대사들도, 휴머니스트들도, 승려도, 그
누구도 이 진실을 모르고 사는 것이다. 복음으로 생명을 낳는 것을 모르고
살아가는 가련한 인생들이 너무도 많다. 」
비록 복음 전파에 따른 박해와 시련과
고난이 있다 해도, 그것은 오히려 면류관으로 그리스도인들에게 돌아올
것입니다.『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오실 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 있을 너희가 아니겠느냐?』(데살로니가전서 2:19) 세상은 악하고 사탄의 통치하에 있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을 거역하여 멸망할 것입니다. 그 세상을 향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더욱이 연민과 사랑을 가지고 전해야 합니다. BB
┃ 월간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No. 112/2001-07)
... ┃
(갈라디아서 5:19∼25) 19 이제 육신의 일들은 분명히 나타나나니 곧 간음과 음행과
더러운 것과 음욕과 20 우상 숭배와 마술과 원수 맺음과
다툼과 질투와 분노와 투쟁과 분열과 이단들과 21 시기와 살인과 술 취함과 흥청거림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내가 전에 말한 바와 같이 미리 말하노니 그런 짓들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이라. 22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친절과 선함과 믿음과 23 온유와 절제니 그러한 것을 반대할
법이 없느니라. 24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은 그 육신을 욕정과 정욕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25 만일 우리가 성령 안에서 산다면 또한 성령 안에서 행하자.
─ If we live
in the Spirit, let us also walk in the Spirit.
(로마서 2:1∼29) 1 ○ 그러므로 이 사람아, 판단하는 네가 누구일지라도
변명하지 못할 것은 네가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 스스로를
정죄함이니, 이는 판단하는 네가 똑같은 일들을 하기 때문이라. 2 이런 일을 행하는 자들에게 진리대로
하나님의 심판이 있는 것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3 이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판단하면서도
같은 일을 행하는 이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4 아니면 네가 그분의 선하심이 너를 회개하도록 인도하심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선하심과 관용과 오래 참으심의
풍성함을 무시하는 것이냐? 5
다만 너의 완고함과 회개하지 아니하는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과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계시될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을 뿐이로다. 6
그분께서는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 주시리니 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으로 하시고 8 다투고 진리에 복종하지 아니하며 불의에 복종하는
자들에게는 분개와 진노로 하시리라. 9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혼에게 환란과 곤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이방인에게며 10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이방인에게라. 11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으시기
때문이라. 12 율법 없이 죄를 지은 사람들은
모두 율법 없이 멸망할 것이요, 율법 안에서 죄를 지은 사람들은 모두
율법에 의하여 심판받게 되리니 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들이 의인이 아니요, 율법을 행하는 자들만이
의롭게 될 것임이라. 14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이 본성으로 율법에 있는 일들을 행할 때에는 율법이
없어도 이것들이 스스로에게 율법이 되나니 15 그들의 양심도 증거하고 그들의 이성이 송사하거나
서로 변명하여 그들의 마음에 기록된 율법의 행위를 보여 주느니라.)
16 이런 일은 하나님께서
나의 복음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람들의 은밀한 것들을 심판하실 그 날에 있으리라. 17 ○ 보라, 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자랑하며 18 그의 뜻을 알고 또 율법으로
가르침을 받아 더 훌륭한 것들을 인정하여 19 네 스스로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형식을 갖춘 사람으로서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안내자요, 어두움 속에
있는 자들의 빛이요, 20 어리석은 자들의 교사요, 어린 아기들의 선생이라고
자신하니 21 그렇다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고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22 간음하지 말라고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들을 미워하는 네가 신당 물건을 훔치느냐? 23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위반함으로써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24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들 가운데서
모독을 당하는도다. 25 네가 율법을 지킨다면 할례가 정녕 유익하지만 네가
율법을 위반하는 자가 되면 네 할례가 무할례로 되느니라. 26 그러므로 만일 무할례자가
율법의 의를 지킨다면 그의 무할례를 할례로 여길 것이 아니냐? 27 또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법문과 할례로써 율법을 범하는 너를 판단하지 않겠느냐? 28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체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29 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요, 할례는 마음의 할례이니
영에 있고 법문에 있지 않은 것이라. 그들의 찬사는 사람들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니라.
『 눈물로 씨를 뿌리라 』
by BB column
Copyright ⓒ 2001 Korean by Word
of God Preservation Society. Printed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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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전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한 말들은 영이요, 생명이라. It is the spirit that quickeneth; the flesh profiteth nothing: the words that I speak unto you, they are spirit,
and they are life.
『 14:24 만군의 주가 맹세하여 말하기를 "내가
생각했던 대로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며, 내가 계획했던 대로 그것이
확고히 되리라. 4:12 그러므로 오 이스라엘아, 내가
너에게 이같이 행하리라. 내가 너에게 이것을 행하리니 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하라. 』
(이사야 14:24┃아모스
4:12)
Bible
believ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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