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3. 22. 21:43

“ ‘구약에서 신약으로’ 전환되는 책,「 마태복음 」” (바른 교리)

(바른 교리) [201410_No.271] ● 과도기의 경륜적 진리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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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께 영광을ㆍGLORY TO THE LORD 】

● “구약에서 신약으로” 전환되는 책
             「 마태복음 」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라. (시편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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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도기적인 책들 가운데 마태복음, 사도행전, 요한계시록은 내용들 대부분이(예외는 있음) 순차적인 흐름에 따라 교리들이 전개되어 나가기 때문에 경륜들이 “변하는 주요 지점”에 대한 올바른 지식만 있으면 경륜에 따른 서로 다른 교리들을 구분하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마태복음의 경우 구약에서 신약으로 전환되는 지점은 27장입니다. 이 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를 기점으로 구약이 끝나고 신약이 시작됩니다. 사도행전은 사도행전 7장입니다. 이 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민족적인 차원에서 왕국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주어진 장이었습니다. 이를 기점으로 하나님의 경륜의 중심은 이스라엘(유대인)에서 교회로 옮겨갑니다. 요한계시록은 13장(교회 시대), 419장(환란 시대), 2022장(천년왕국과 영원시대)으로 구분됩니다. 이러한 변화의 기점을 중심으로 경륜적인 진리들이 어떻게 변화하고 진전되는지 공부해야 진리의 지식들을 올바르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반면에 히브리서는 다른 과도기적인 책들과 다르게 순차적이지 않고 경륜에 따른 서로 다른 교리들이 여기 저기 섞여 있어서 좀 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과도기적인 책들에 나타난 경륜적인 특징들을 책별로 살펴볼 것인데, 신약에서 가정 먼저 만나는 과도기적인 책은
“마태복음”입니다.

    구약에서 신약으로 전환되는 책

  마태복음은 “신약”을 여는 첫 번째 책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구약의 내용과 완전히 단절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구약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구약과 신약을 연결해 주는 책입니다. 그런 관점으로 보면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도 같은 위치에 놓여집니다. 사복음서 모두 구약에서 신약으로 넘어가는 전환기 속에 놓여 있는 책이며 그 중 첫 번째 책이 마태복음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은 신약의 첫 번째 책으로서 가지는 위상과 다르게 신약적인 특징보다는 오히려 구약적인 특징들이 주를 이룹니다. 이로 인해 수많은 목사들과 신학자들 및 교사들은 상당한 혼란을 느낀 나머지 마태복음의 많은 구절들을 교회 시대를 향한 “교리”로 무분별하게 가져와 적용함으로써 많은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마태복음은 신약에 있으면서도 구약적인 구절들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경륜적으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이르기까지 당시의 사람들은 율법 아래에 있었고 구약의 연장선상에서 율법의 규례들을 지키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교회 시대의 성도들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교리들, 곧 거듭남과 십자가의 보혈, 믿음에 의해서만 주어지는 은혜의 구원, 그리스도의 몸과 같은 개념들이 그들에게는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 교리들이 그들에게 직접적으로 계시된 적도 없었습니다(암시만 되었을 뿐입니다). 이 때문에 마태복음에는 교회나 이방인들과는 전혀 무관한 구절들이 상당수 등장합니다. 보다 더 쉬운 이해를 위해 아래의 그림을 참조하십시오. 이것은 마태복음이 경륜적으로 차지하는 위치가 어떠한지를 잘 보여 줍니다.

【 하나님의 경륜을 통해 본 마태복음의 위치ː구약 → 신약 】

  위 그림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듯이, 마태복음은 구약에서 신약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책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나누는 기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그래서 십자가 이전을 구약, 십자가 이후를 신약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구약이라 하면 말 그대로 “옛 언약”(the old testament/고린도후서 314)을 말하는데, 이는 “첫 언약”(the first testament/히브리서 915)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반면에 신약은 “새 언약”(the new testament/히브리서 915)이며 “더 좋은 언약”(a better testament/히브리서 722)으로도 불립니다. 무엇보다 더 좋은 언약인가 하면, 십자가 이전의 경륜에서 제시되었던 육신적 계명의 율법에 따른 “첫 번째 언약”보다 더 좋은 언약입니다. 말하자면 신약은 구약보다 더 좋은 언약입니다.
  여기에서 구약과 신약할 때,
“약”(약속約束)에 해당되는 testament”(헬라어디아데케● “ testament ” (헬라어:디아데케ㆍdiathekeㆍdee-ath-ay’-kay)diathekedee-ath-ay-kay)“유언”“약속”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신학적인 용어로는 “언약”이라 하고 성경에서는 문맥에 따라 둘 중 하나로 적절하게 번역됩니다.(1) 기본적으로 유언은 이제 곧 죽게 될 사람이 지상에 남겨두고 가는 사람들을 위하여 마지막으로 남기는 말입니다. 그래서 유언에는 필연적으로 죽음이 따라옵니다. 또한 죽음은 일반적으로 “피”와 연관되는데,(2) 이때 죽으면서 흘리게 될 피로 맺은 언약이 바로 testament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구약은 “옛 피”(old blood)로 맺은 언약을, 신약은 “새로운 피”(new blood)로 맺은 언약을 의미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누가 죽었고 누구의 피가 흘려졌다는 것일까요? 구약은 최초 “어린양”의 피가 흘려진 이래로(창세기 321“가죽 옷”) 율법의 규례를 따라 해마다 계속해서(히브리서 101) 죽어간 수많은 동물들의 희생제사로 점철되어 있는데, 말하자면 구약은 “옛 동물들의 피”로 맺은 언약입니다. 반면 신약에서는 모든 죄인들의 구속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으셨습니다. 그분은 세상 죄를 제거하시는 진정한 “어린양”이셨습니다(요한복음 129). 따라서 신약이라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the blood of Jesus Christ)로 맺어진 새로운 언약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91520’에 따르면 유언이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유언한 사람이 죽어야만 합니다.『유언은 사람이 죽은 후에야 효력이 있으며 유언한 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전혀 효력이 없느니라』(히브리서 9:17). 그러니까 새 언약의 중보자(히브리서 915)이신 예수님께서 죽으셔야만 신약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이 유언(마태복음 2628)이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 유언을 남기신 예수님께서 죽으셔야만 합니다. 그래서 구약은 말라키로 끝나고 신약이 마태복음부터 시작되지만 예수님께서 죽으실 때까지는 아직 신약이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유언한 자가 죽지 않았기 때문에 효력을 발생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이전까지는 여전히 구약의 상황이지 신약이 아닙니다. 때가 차서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율법 아래 태어나셨고(갈라디아서 44, 5), 또한 할례의 일꾼으로서 구약의 약속들을 확고히 하시는 가운데 율법 아래에서 사역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율법을 온전히 이루시고 율법의 끝이 되셨습니다(로마서 104┃요한복음 117).
  이렇게 율법의 마침이 되셨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마태복음
2750’(마가복음 1537┃누가복음 2346┃요한복음 1930)에 가서야 비로소 신약이 시작됩니다. 유언한 자가 죽었으니 드디어 신약이 효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태복음은 십자가를 기점으로 구약에서 신약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마태복음 전체 128장 가운데 27장에 이를 때까지는 여전히 “구약”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의 구절들 대부분이 ‘구약적인 내용들’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미리 아심 가운데 신약은 시작될 것이었으므로, 신약시대로의 새로운 경륜의 변화와 이에 따라 등장하는 교회에 관한 내용들은 마태복음 곳곳에서 간접적으로 암시되고 있습니다.

    구약의 경륜과 신약의 경륜의 차이

  전환기적인 책은 두 가지 경륜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에, 각각의 경륜에 해당하는 두 가지 교리적인 특징들이 동시에 발견됩니다. 마태복음은 구약에서 신약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책이므로, “구약의 경륜”“신약의 경륜”이 함께 다루어집니다. 따라서 구약에 해당되는 교리와 신약에 해당하는 교리가 함께 등장하는 것입니다. 구약에는 여러 개의 경륜들이 등장하지만 “구약의 경륜”이라 한다면 주로 “율법시대의 경륜”을 말합니다. 신약에도 역시 여러 개의 경륜들이 등장하지만 신약을 대표하는 경륜은 바울서신을 중심으로 제시되는 “교회 시대의 경륜”입니다.
  구약의 경륜과 신약의 경륜은 동일하지 않습니다. 이는 전자에 해당하는 율법과 후자에 해당하는 바울 서신의 내용을 간단히 비교해 봐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안식일을 지켜라.”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는 등의 엄격하고 까다로운 규례들이 나오는 반면, 사도 바울은 교회 시대의 성도들에게 단 한 번도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한 적이 없고 또한 음식은 감사함으로 먹으면 죄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음식을 삼가라고 명령한 적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주장하는 자들을 미혹하는 영들과 마귀들의 교리들을 따르는 자들이라고 경고했습니다(디모데전서 415). 이것이 모순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상호 모순되어 보이는 이러한 명령들은 각각이 속한 경륜 안에서는 반드시 지켜져야 할 올바른 진리인 것입니다. 다만 교리적으로 어느 시대, 어느 사람에게 올바르게 적용해야 하는가의 문제인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은 구약의 유대인들에게, 신약의 복음은 신약 성도들에게 맞추어져 있습니다. 구약의 율법은 신약 성도들에게 얼마든지 영적으로는 적용이 가능하지만, 결코 교리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이처럼 모순은 아니지만 서로 상충되어 보이는 교리적인 내용들이 동시에 나타나는 책들이 바로 전환기적인 책들입니다. 전환기적인 책들 안에는 두 개 이상의 경륜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바울 서신은 교회 시대에 적용해야 할 교리들로 가득 차 있고 은혜의 복음으로 일관합니다. 그러나 전환기적인 책들은 신약에 속해 있으면서도 은혜의 복음이나 신약 성도들이 지켜야 할 교리들로만 일관하지 않습니다. 어떤 구절들은 구약적인 율법과 관계가 있고, 행위구원이라든지 끝까지 견뎌야 구원받는다는 등의 내용들, 왕국복음, 그에 따른 표적들이 등장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전환기적인 책을 다룰 때에는 특히 성경 구절들을
“올바로 나누어”(rightly dividing) 공부할 수 있는 자세가 매우 중요합니다(디모데후서 215). 고기를 올바르게 잘게 나누어 씹지 않으면 소화불량에 걸리기 마련입니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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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No.271/2014-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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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약에서 신약으로’ 전환되는 책,「마태복음」”
    by
 【 과도기의 경륜적 진리 (5) 】/박 승용(킹제임스성경신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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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inted in Korea.

각주 목록

(1)  testament”란 단어는 구약에는 등장하지 않고, 신약에서만 14회 등장한다. 이 중 “유언”의 의미로는 2회 사용되었고(히브리서 916, 17), 나머지는 모두 “언약”의 의미로 사용되었다(마태복음 2628┃마가복음 1424┃누가복음 2220┃고린도전서 1125┃고린도후서 36, 14┃히브리서 722915, 18, 20┃요한계시록 1119),『조직신학개론』(서울종로서적, 1991), pp.6,7.

(2)  성경에서 “죽음”에 관한 내용이 처음 등장하는 곳은 ‘창세기 217’에서이다. 금지된 열매였던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먹은 결과는 죽음이었다. 그런데 그 나무로부터[그 나무는 포도나무였다, ─ 피터 S. 럭크만,창세기 I(서울말씀보존학회, 1998), pp. 70, 71 참조)] 인간은 “피”를 얻게 된다(성경에서 포도는 피의 예표이다. ─ 마태복음 262628). 말하자면 “죽음”“피”와 더불어 인류에게로 들어온 것이다.

◐ 생각하기.... Thinking... ◑

【  생각하기.... Thinking...

  성경의 기록들을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고 자기 멋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창조주께서 각 개인의 생사화복(生死禍福)과 모든 국가들의 흥망성쇠(興亡盛衰)를 주관하고 계심을 믿지 않으며 인식하지도 못한다. 그러므로 온갖 인간적인 계략과 음모들을 이용하여 손바닥 만한 지상 삶을 운영해가고자 한다. 그렇게 해서 바른 인생을 살아갔는가? 그렇게 해서 국가를 바르게 운영했는가? 기껏 살아봤자 7080년 살아가는 인생인데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그 누가 자기가 걸어가야 할 길과 그 길에서 만나게 되는 모든 상황들과 환경들을 예상할 수 있을까? 누가 알 수 있는가? 절대로 없다. 인간은 앞 일을 알 수 없도록 만들어진 존재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인생관을 가지고, 어떠한 삶의 자세를 가지고 손바닥 만한 짧은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 미래를 대비하는 삶)
  인간의 궁극적인 존재의 이유는 무엇인가? 그 누구도 자신이 원해서 이 세상에 태어나지도, 죽음에 이르지도 않는다. (자살을 하는 이유는 정말로 죽고 싶어서가 아니라, 올바르게 살고 싶은 갈망이 채워지지 못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인류의 역사는 어떻게 흘러왔는가?
문명이 발전하고 새로운 물건들을 발명하고, 땅을 차지하려고 전쟁하고 살육하고 학살하고 포로로 잡아가고,,, 빼앗고, 빼앗기고,,,, 뒤죽박죽인 인간의 역사,,,, 과연, 인간의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진짜 인생은 무엇인가? 단순히 의식주만 해결되면 그뿐인가? 그것만 추구하다가 질병과 사고로 갑자기 이 세상을 떠나 버리면 그 사람의 혼은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하는가? 어리석은 진화론자들의 주장처럼 그냥 우주 먼지로 떠돌아다니는 것인가? 결혼하여 후손들을 낳으면 그 후손들은 어떻게 교육하고 양육해야 하는가? 유전자의 영향으로 조상들의 모습을 닮겠지만 이전의 조상들과 똑같은 삶을 살도록 해야 하는가? 조상들과 똑같은 죄의 구렁에서 허우적거리며 살도록 해야 하는가? (올바른 배우자를 만나야 하고, 후손들 교육도 올바르게 시켜야 한다.)
  복(福
blessing)과 저주(詛呪curse)는 어디에서 내려 오는가? 참된 인생살이는 무엇인가? 인간의 발명품이라는 것이 육체적인 수고(노동)를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인데, 사람의 육체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만 있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 지구의 환경에서 건강하게 존속할 수 있겠는가?

『 네가 땅으로 돌아갈 때까지 네 얼굴에 땀을 흘려야 빵을 먹으리니, 이는 네가 땅에서 취해졌음이라. 너는 흙이니 너는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 In the sweat of thy face shalt thou eat bread, till thou return unto the ground; for out of it wast thou taken: for dust thou art, and unto dust shalt thou return.(창세기 3:19)

  성경의 말씀처럼 이 지구에 살아가는 인생은 반드시 땀을 흘려야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임을 잊지 말도록 하자!

  대한민국 사람들이여! 물질적인 풍족함만 추구하지 말자!!
  인색하게 경제적 관점으로만 모든 일을 따지지 말자!!!
  사랑으로 충만하고 풍성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하자!!!!
  자연과 생명세계의 아름다움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며 행복할 수 있으므로
  아무리 작은 것(마음)이라도 베풀고 나누며 살아가도록 하자!!!

2015. 3. 15. 주일....
HanSaRang...

(시 편 1:16
1 ○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간계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조롱하는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는도다. 2 그의 즐거움이 의 법(the law of the LORD)에 있으니, 그가 주의 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 그는 강가에 심겨진 나무 같아서 계절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의 잎사귀도 마르지 아니하리니, 그가 무엇을 하든지 번성하리로다. 4 ○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하니, 바람에 날리는 쭉정이와 같도다. 5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은 의인들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니, 6 이는 의인들의 길은 께서 아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할 것이기 때문이라.

(갈리디아서 5:1325
13 ○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에로 부름을 받았으니 그 자유를 육신을 위한 계기로 삼지 말고 사랑으로 서로 섬기라. 14 온 율법이 한마디 말, 즉 이 말로 이루어졌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라. 15 그러나 만일 너희가 서로 물어 뜯고 삼킨다면 서로 멸망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16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성령 안에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는 육신의 정욕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신은 성령을 거슬러 욕심을 부리며 성령은 육신을 거스르나니 이들은 서로 반목하여서 너희가 하고자 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느니라. 18 그러나 너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다면 너희는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느니라. 19 이제 육신의 일들은 분명히 나타나나니 곧 간음과 음행과 더러운 것과 음욕과 20 우상 숭배와 마술과 원수 맺음과 다툼과 질투와 분노와 투쟁과 분열과 이단들과 21 시기와 살인과 술 취함과 흥청거림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내가 전에 말한 바와 같이 미리 말하노니 그런 짓들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를 상속받지 못할 것이라. 22 그러나 성령의 열매(the fruit of the Spirit)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친절과 선함과 믿음과 23 온유와 절제니 그러한 것을 반대할 법이 없느니라. 24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은 그 육신을 욕정과 정욕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25 만일 우리가 성령 안에서 산다면 또한 성령 안에서 행하자. ─ If we live in the Spirit, let us also walk in the Spirit. 26 서로 격분시키고 서로 시기함으로써 헛된 영광을 구하지 말자.

Bible believ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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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Divide)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 』(디모데후서 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