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1. 18. 23:00

“ 자살, 왕 같은 제사장에게는 어울리지 않아 ” (바른 분별)

자살, 왕 같은 제사장에게는 어울리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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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는 요즘 들어 부쩍 유명 연예인들의 자살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그들이 유명 연예인이라서 더욱더 주목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목숨을 끊어 버림으로서 남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특히나 이번에 목숨을 끊은 젊은이들의 신분은 연예인이기 이전에 기독교인이라고 자처하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일반사람들도 두려워하는 극단적인 방법인 자살을 택한 그들이 그리스도인으로 알려져 있다는 데 아쉬움이 더한다. 과연 그들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는 하나님만이 아실 터이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 그리스도인의 향기나 아름다운 간증을 남기지 못하고 떠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물론 주변 환경이 그들에게 얼마만큼 힘들게 했는지 이해가는 바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에 앞서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을 부끄럽게 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그들 스스로 그리스도인으로서 본을 보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은 그들 본인들의 몫이지만, 그렇지 않아도 기독교를 욕하고 비하하는 분위기가 팽배한 이때에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 대적들에게 빌미를 준다는 데 대해서 마음이 무겁다. 극단적으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정확히 알고서도 그런 극단적인 방법을 취했을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그러나 너희는 선택받은 세대요 왕 같은 제사장이며, 거룩한 민족이요, 독특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움에서 불러내어 그의 놀라운 빛으로 들어가게 하신 분의 덕을 너희로 선포하게 하려는 것이니라』(베드로전서 2:9).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신분이 얼마나 놀라운 신분이며, 또 얼마나 큰 책임이 뒤따르는 신분인지를 보여주는 위대한 구절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대통령에 당선된 후 취임식을 기다리는 신분과 같은 귀한 신분이다. 언젠가는 대관식을 치르고 다스리게 되어 있는 왕 같은 제사장의 신분인 것이다. 자신이 그 귀한 신분의 소유자임을 몰랐거나 믿지 않았다면 그들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이것은 교회에서 분명하게 가르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심어 주어야만 되며, 또 이것을 배웠다면 그 사실을 믿고 기쁨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하여 신분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다. 거기에 인내와 절제가 병행되어야 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래서 성경은2 위에 있는 것들에 너희 마음을 두고 땅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또 너희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기 때문이라』(골로새서 32, 3)고 말씀하신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것으로 여겨야할 그리스도인이 미리서 목숨을 끊는 것은 성도가 할 일이 아니다. 이런 말씀을 알고 마음에 새겼다면 극단적인 상황으로 자신을 몰아가지는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신약교회사에서 최초로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으로 불렸던 안티옥 교회는 성도들을 진리의 지식으로 가르치는 데 최선을 다했고, 최초로 선교사를 파송한 교회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모범적인 그리스도인들이었다. 그래서 교회가 무엇을 우선시해야 할 것인가를 잘 알았고 실행에 옮겼다.
25 그후에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타소에 가서 26 그를 만나 안티옥으로 데리고 오니라. 그리하여 그들이 일 년 내내 교회와 함께 있으면서 많은 무리를 가르치니 안티옥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더라』(사도행전 11:25, 26). 그들은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지 잘 알았고, 성령의 음성에 경청하여 그대로 순종했던 훌륭한 그리스도인들이었다. 그들은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디모데전서 24)는 말씀을 잘 이해하고 그대로 행했던 사람들이었으며, 특히 가르치는 데 열성이 있었던 훌륭한 교사들이 있었다.『당시 안티옥에 있는 교회에는 몇 명의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었는데 즉 바나바와 니겔이라고 하는 시므온과 쿠레네 사람 루키오와 영주 헤롯과 함께 자란 마나엔과 사울이라』(사도행전 13:1). 그 교회는 훌륭한 교사들을 통해서 잘 교육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자신들의 정체성을 정확하게 알고 그에 걸맞는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었으며,『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옛 것들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고린도후서 517)라는 말씀을 잘 이해하는 성도들이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영접한 사람은 새로운 피조물로 인정되며 그에 걸맞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생활 태도이나, 오늘날의 배교한 교회들에서는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가 매우 힘들어졌다.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슬픔과 고뇌가 우리를 감싸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시는 슬픔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슬픔”이며, 또 하나는 “세상의 슬픔”이다. 성경은『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슬픔은 구원을 위한 회개에 이르게 하므로 후회할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세상의 슬픔은 사망에 이르느니라』(고린도후서 710)고 말씀한다. 우리를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 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세상의 슬픔에 젖어 있는가! 인생의 비극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슬픔이 부재하기에 일어나는 것이다. 인생의 가치 기준을 하나님의 말씀에 두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슬픔을 가졌더라면 많은 이들이 인생의 대반전을 맛보았을 것이다. 필시 많은 사람들이 비극에서 건져냄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여 심한 안타까움을 안겨주면서 사랑하는 이들의 곁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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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신문 ‘바이블 파워’ (2008-1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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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살, 왕 같은 제사장에게는 어울리지 않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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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 파워」/2008. 10. 09./박 재권(캐나다 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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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듣기 】

날짜ː 2001. 7. 22.오전
▶ 제목ː『 서로 사랑하라 이 송오 목사
성경구절ː〔 고린도전서 1347
시간ː40354,906 Kb
주소ːhttp://psalms1217.ohpy.com/367763/25

【 고린도전서 1347 4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하며 사랑은 시기하지 아니하고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고 5 무례하게 행하지 아니하며 자신의 유익을추구하지 아니하고 급히 성내지 아니하며 악을 생각하지아니하고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를 기뻐하고 7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뎌내느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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