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 19. 23:08

“ 왜 배교의 숲이 이렇게 무성해졌는가 ” (바른 분별)

왜 배교의 숲이 이렇게 무성해졌는가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라. (시편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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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불행한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성경에서 언급한 일곱 교회의 마지막인 라오디케아 교회시대이다. 이 교회의 특징은 배교이다.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믿지 않는, 즉 믿음이 없으면서 믿는다고 흉내내는 시대를 말한다. 이 배교한 교회시대가 저물면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다시 오실 때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셨다.『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원한을 속히 갚아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 그가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누가복음 18:8). 이 나라에 교회가 55천 개가 넘고, 교인이 860만 명이나 된다는데 왜 그처럼 믿음을 지닌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든 것인가? 현재 같은 풍토에서 믿음이 자라날 수 있다면 그것은 마귀가 지어낸 거짓말에 불과하다. 오늘날의 교회들이 배교한 교회로 변모된 것은 어제 오늘에 이루어진 일이 아니다. 오랜 시간과 깊은 원인이 있는 것이다. 거짓 교리를 견디지 못하는, 믿는 남은 자들이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소리 질러 보지만, 엄청난 배교의 숲에서 메아리도 일으키지 못하고 소멸되고 만다.
왜 배교의 숲이 이렇게 무성해졌는가?
첫째, 사회복음을 가지고 온 19세기 선교사들을 들 수 있다. 언더우드, 아펜젤러, 린튼 같은 선교사들은 이 땅에 와서 순수한 복음을 전하지 않고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세워 간접적인 방법으로 전도를 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의 죄를 위해 죽었고 묻혔고 부활하셨다는 성경적인 복음을 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했어야 했다. 그러나 이들이 길거리에서 복음을 전했다거나 개인적으로 구령했다는 기록은 거의 없다. 이들은 자신들이 믿었던 방식대로 교회를 짓고 사람들을 교회로 오게 하여 교인을 만드는 것이 곧 전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나라 사람들에게는 절에 가는 것이나, 절 대신 교회에 가는 것이나 별로 다를 바가 없게 된 것이다.
둘째, 바른 성경이 없었다는 데 그 이유가 있다. 위클리프 성경 번역사역을 한 사람들이 미개한 종족들에게 성경을 번역해 주는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의 언어와, 문자화되어 문화와 학문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언어를 비교해서는 안 된다. 성경을 그 나라 말로 온전히 번역할 수 없었을 때는 미비한 성경을 쓸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겠지만, 교회들이 들어서고 신학교가 서고 설교자들과 가르치는 사람들을 배출해 냈으면 제일 먼저 성경을 번역하여 바른 성경을 가져야 하는 것이 정도인데도 이들은 성경을 소홀히 했고 바른 성경 없이도 바른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신성, 구원, 영생, 성결, 자기 부인, 제자됨, 순종, 진노, 죽음, 심판, 지옥, 휴거, 재림, 천년왕국, 영원 세계들을 가르치려고 했다. 마치 안내서가 없이 기계를 작동시키려는 시도와 다를 바 없다. 바른 성경이 없으면 성령께서는 어떤 조명도 주시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바른 성경 없는 믿음의 생활은 형식적인 교회와 교인들을 만들었을 뿐이다. 교회들이 많아지고 학자들이 늘어났는데도, 서로 성경 문제를 성경에 대한 아무런 실력도 없는 무신론 대한성서공회에 맡겨 놓고 태연하게 보냈던 것이다. 과연 이들 모두가 성경의 필요성을 감지하고나 있었을까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셋째, 교단 교세 확장을 위한 교회의 수적 증가가 또 다른 이유였다. 교회의 증가는 곧 교인수의 증가를 말하며 교인의 증가는 곧 교세로 이어졌다. 교세는 곧 세상으로부터의 인정과 믿음 없는 사람들의 인정으로 이어졌다. 진리를 알든 모르든 간에 자기가 큰 교단에 속하게 되면 우선 그 교단의 우산 아래서 보호를 받기 때문에 교단 교회에 속하게 되었고, 성경보다도 교단의 지시에 우선을 두고 따르지 않으면 쫓겨나기 때문에 자기의 신앙 신념과는 관계없이 이중으로 처신해야 했다. 그런 가운데 교단이 나누어질 때마다 생기는 신학교와 거기서 배출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모두 다 목사를 하려는 데에 문제가있었던 것이다. 목사는 많은데 일꾼은 적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교인의 수를 늘려 유명한(?) 목사로 인정받게 되면 사람들이 모여들고, 사람들이 모여들면 헌금이 많아져서 결국 구령하고 선교하며 양육하여 하나님의 호감을 사는 교회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사람들의 비위나 맞추고 귀나 간지럽게 해주는 교회로 전락해 간 것이다.
넷째, 성경적이지 못한 교단 교리로 가르쳤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신학을 공부할 때 바른 성경도 없이 극단적 칼빈주의로 신학의 기틀을 세우고 무천년이나, 후천년주의 종말론을 신봉하며 세대주의 성경 해석 방법을 배격한 채 은사주의까지 곁들였다면, 그 사람의 성경실력은 어떠하며, 그 사람의 설교의 방향과 질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는 설교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가 정신이 온전한 사람이라면 설교할 수 없게 된다. 그런 사람이 설교하게 되면 우스갯소리에 불과하다. 혹시 한두 번은 할지 모른다. 그것도 아주 조심스럽게 할지는 모른다. 그래서 그들 교단 안에서만 인정되는 실력이고, 그래서 그들 교인들의 수준이 그렇게 낮은 것이다. 그들의 실력을 바른 성경으로 측정하게 되면 수준 이하임이 드러나게 된다.
다섯째, 그들의 실력으로는 이단 교리의 확산을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도 교회들이 믿음이 아닌 것을 믿음으로 흉내내고 있었을 때, 오순절 교리가 확산되어 신유, 방언, 적극적 사고방식 등이 교계에 들어왔는데, 그때 대형 교단들은 오순절 교회가 왜 이단인지 성경으로 막지를 못했다. 그들을 저지하고 비평할 만한 성경적 실력이 없었기에 현재는 그들에게 완전히 점령당하고 만 것이다.
대체로 이런 토양에서 배교의 숲은 무성하게 자라도록 되어 있다. 버릴 것은 취하고 취할 것은 오히려 버림으로써 기형적인 신학을 낳았고, 그들이 실행하고 가르친 후학들은 비성경적인 교리로 세뇌되어 잘못된 믿음이 고착화됨으로써
“한국식” 신학을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대부분의 교회에서 실행하고 있는 것은「성경적 기독교 신앙」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이 살아 있는 사람들은 괴로운 것이다. 그들이 그들의 비성경적인 신학을 고집하는 한 치유의 처방은 없다. 그들이 모르는 유일한 처방은 바른 성경으로 돌아와 그 성경대로 믿고 실행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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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신문 ‘바이블 파워’ (2009-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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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배교의 숲이 이렇게 무성해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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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 파워」/2009.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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