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화 패러다임`의 새장에 갇힌 현대 신학 ” (바른 분별)
다윈의 진화론이 현대인들에게 주는 생각의 틀을 ‘진화 패러다임’이라고 한다. 즉 생물학적 진화론을 인간 사고의 테두리나 인식의 체계로 갖는다는 말이다. 생명의 기원에 관한 다윈의 잘못된 억측이 한 시대 인간들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낳았고, 경제학, 심리학, 의학, 철학, 예술학 등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등 사회 각 분야에 파격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를 가리켜 진화론이 ‘진화’하여 진화의 패러다임을 낳았다고 하는 것이다.
최근〈크리스천투데이〉에서 ‘진화의 기독교’를 다룬 기사가 있었다. 신문은 “기독교에 진화 패러다임을 적용함에 있어서, 이것이 진화론의 적용과는 구별돼야 한다. 진화 패러다임은 진화론이냐 창조론이냐 하는 문제와는 별개이기 때문이다.”면서 “어찌보면 기독교의 역사는 진화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스데반 집사의 순교와 예루살렘 교회에 가해진 핍박을 계기로 기독교인들은 유대와 사마리아 땅으로 흩어진다. 유대인들에게 있어 예수를 믿는 기독교인들은 그야말로 ‘변이’였던 것이다. 이후 기독교인들은 적은 무리였음에도 시대와 사회의 환경에 깊이 뿌리내려 그 신앙을 이었다.”는 것이며, “지금도 진화 패러다임은 유효하여 시시각각 변모하는 사회 환경은 기독교 선교에 있어 끊임없이 그 적응을 요구하고 있다.”고 했다. 신문은 진화론은 더 이상 생물학적 주제가 아니며, 진화와 창조 패러다임의 상호보완이 필요하다고까지 말한다. 그러나 과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해 그리스도인이 탄생하는 것이 ‘변이’이며, 복음이 널리 전파되는 과정에서 신앙이 사회에 깊이 뿌리내리는 것을 진화론적 ‘적응’이라 보는 것이 성경적인 사고일까? 창조론과 진화론의 상호보완을 역설하는 마지막 때의 친카톨릭적 신문의 입장에서는 진화론과의 그런 융합적인 사고를 성경적인 사고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이 생물학적 진화론을 인정하지 않는 이상, 창조주 하나님을 대적하는 진화론의 ‘철학적 변이’를 가져와 성경에 적용시키는 것은 반성경적인 돌연변이 사고라고 볼 수밖에 없다. ‘고린도후서 5:17’에서 거듭난 그리스도인을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씀했을 때 그것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무지를 보인 것이다. 그것은 진화론적인 변이가 아니라 영적인 새로운 ‘창조’를 가리키는 말씀이다.
신문은 진화 패러다임에 대한 신학자들의 견해를 소개했다. 오성현 교수(서울신학대학교 기독교윤리학)는 “이미 진화론이 사회적 가치관과 결합하고 있다”며 “진화론에 대한 논의는 단순히 창조론 대 진화론이 아닌, 윤리적, 종교적, 사회적 관점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그는 “성경은 인간의 타락과 더불어 자연의 질서 또한 흐트러졌음을 말한다”며 “구원을 통해 우리는 만물과 함께 새롭게 되는 ‘새창조’를 맞게 될 것이다. 이 새창조는 옛창조의 변화와 변형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진화 패러다임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했다. 또 “모든 이행과 변화는 생명이나 존재가 가진 힘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가능하다. 그 주권에 의해 우리는 다윈이 상상도 못했던 변화를 맛보게 될 것”이라고 진화 패러다임과 창조 패러다임의 상호보완을 강조했다.
오 교수는 진화론에 대한 신학적 논의의 기준을 ‘사회적 가치관’에 두었다. 그리고 사회적 가치관과 결합한 진화론을 토대로 성경을 이야기한다. 오 교수는 성경적 가치관 안에서 세상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요한복음 16:7∼11) 오히려 주객이 전도된 자세를 취한 것이다. 성경은 이러한 해석을 두고『비속하고 허황된 말장난』(디모데전서 6:20)이라 말씀한다.『그것들이 더욱 불경건함으로 나아갈 뿐』(디모데후서 2:16)이므로 그것을 버리라고 말씀한다. 오 교수는 세상의 영(고린도전서 2:12)이 관장하는 진화론적 철학으로 성경을 판단하고, 성경에 예언된 피조세계의 ‘변화’와 ‘변형’이 진화론적 ‘변이’를 시사하는 것으로 착각했다. 거듭나지 못한 자연인의 관점에서 진리를 가르치려다 오류에 빠진 것이다(고린도전서 2:14). 성경 속의 변화와 변형을 성경을 대적하는 진화론의패러다임에 가둬두고 해석하며 가르치는 것은 신성모독적인 일이다.
또한 최한빈 교수(백석대학교 기독교철학)는 “생명체가 진화됐다는 이유로 창조설을 부인하거나 진화의 목적을 말하는 등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기독교가) 분명히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진화 패러다임, 즉 어떤 생명체든 고정돼 있지 않고 변화한다는 것은 기독교세계관에 비춰 그리 문제될 것이 없다”고 했다. 최 교수는 생명체의 진화를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진화는 인정하되 창조설을 부인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 어디에서도 창조된 생명체의 진화를 말씀하고 있지 않다. 최 교수는 성경을 믿는 신학자인가, 진화론을 믿는 신학자인가? 성경을 믿는 척하면서 진화론을 꺼내드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그것은 성경을 믿지 않는 무신론일 뿐이다.
오늘날 우리는 배교한 기독교계에서 진화 패러다임과 창조 패러다임의 상호보완이 역설되는 것을 목도한다. 진화론의 철학적 사고를 이용한 참으로 절묘한 타협이며, 다윈 탄생 200주년에 기막힌 생일선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찰스 다윈은 창조론과 진화론을 평행선에 비유했다. 그는 창조론을 확신하지 못한 만큼이나 진화론을 확신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소위 성경을 가르친다는 신학자들은 다윈보다 한술 더 떠서 진화론을 ‘진화’시켜 성경을 ‘진화 패러다임’에 끼워 맞추는 모순을 보이고 있다. 이는 반성경적인 유치한 말장난의 치명적인 결과이며, 도무지 성경과는 조금도 닮은 데가 없는 ‘기독교’이다. 신학자라고 해서 성경을 아는 것이 아니다. 누구라도 성경을 공부하지 않으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갓난 아기들로서 순수한 말씀의 젖을 사모하라. 이는 너희가 그것으로 인하여 자라게 하려 함이니라』(베드로전서 2:2). 하나님의 뜻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지식”에 이르는 것이다(디모데전서 2:4).───────────────────────────
인터넷 신문 ‘바이블 파워’ (2009-02-25) ...
───────────────────────────【 생각하기.... Thinking... 】
참으로 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는 기사이다. -_-'
기독교 윤리학, 기독교 철학이 무엇일까?
성경의 말씀을 기준으로 인간의 모든 철학과 사상을 바라보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고린도전서 15:28〕만물이 그분께 복종할 때에 그때 아들 자신도 만물을 자신에게 복종케 하신 그분께 복종하시리니 이는 하나님께서 만물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시려 하심이라.
〔고린도후서 10:5〕여러 가지 구상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거역하여 스스로 추켜세운 모든 높은 것들을 무너뜨리며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서 그리스도께 복종케 하니
〔골로새서 2:8〕아무도 너희를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노략질하지 못하도록 주의하라. 그것들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유치한 원리를 따른 것이며 그리스도를 따른 것이 아니니라.
〔디모데전서 6:20〕오 디모데야, 네게 맡겨진 것을 지키고, 비속하고 허황된 말장난과 거짓되이 일컬어지는 과학의 반론을 피하라.아마도, 이러한 성경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그러한 ‘학과’를 만들었으리라. 그런데, 왜? 저렇게 엉뚱한 주장들을 하는 것일까?
이스라엘 민족이 40년간의 광야생활에서 얼마나 많이 하나님을 시험하였던가. 배가 부르면 자기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하고, 그 권위의 자리에 앉고 싶은 가증한 교만함만 주장하고, 하나님께서 징계의 회초리를 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가면을 바꿔버리고... 이것이 인생인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도 얼마나 많이 하나님을 시험하는가... (나도 부끄러울 뿐이다. -_-')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렇게 고백한다.〔예레미야 17:9〕마음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악하니 누가 그것을 알 수 있으리요?
이것이 인간의 본 모습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계속 다루심을 받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어떠한 것들로도 인간의 마음을 정켤케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정신분열증적인 행동을 일삼는 저들은 무엇하는 자들인가?
‘선’은 선이고 ‘악’은 악이고, ‘빛’은 빛이고, ‘어둠’은 어둠이고, ‘참’은 참이고, ‘거짓’은 거짓이고, ‘단 것’은 단 것이고, ‘쓴 것’은 쓴 것이지 왜, 괴상한 주장들을 주절거리는가! 저런 정신이상자들이 주는 물을 먹고 마시는 학생들은 과연 무엇이 되어 나오겠는가? 썩은 시체가 되어 나오지 않겠는가!
저들의 물을 먹고 나온 학생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생명의 빛을 비추었는가? 저들이 바로 삯꾼이고, 가짜들인 것이다!“주 하나님 아버지, 많은 강단들에서 부패한 물들만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그 물을 먹고 마시는 학생들(성도들...)의 영적건강이 어떻게 되겠습니까.주님, 한국 교육계(설교강단...)에 대개혁의 태풍이 일어나도록 역사해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남겨주신 참된 진리의 말씀만을, 생명수 같은 말씀만을 정확하게 가르쳐주고 전해주고 나눠주는 샘터와 같은 자리가 되도록 정결케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거룩한 진리의 말씀만을 높이는 강단들이 되도록 역사해 주시옵소서. 그럼으로써 많은 학생들이 전 세계에 나가 구원의 빛을 비추고 부활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케 하여 주시옵소서. 수년 내에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모든 역사 주 하나님 뜻대로 되기를 바라나이다. 주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모든 인류의 구원자가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09. 2. 25. 수....
HanSaRang...
『 “진화 패러다임”의 새장에 갇힌 현대 신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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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 파워」/2009. 2. 25.Copyright ⓒ 2005~2009 biblepower.co.kr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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