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3. 30. 19:26

“ ‘영화 계시’ 세미나를 연 캠퍼스 선교단체 ” (바른 분별)

(바른 분별) [20140311] ● ‘영화 계시’ 세미나를 연 캠퍼스 선교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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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께 영광을ㆍGLORY TO THE LORD 】

● ‘영화 계시’ 세미나를 연 캠퍼스 선교단체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라. (시편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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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의 한 캠퍼스 선교단체가 미국 신학자를 앞세워 학생들에게 영화를 통한 하나님의 계시를 가르쳐 캠퍼스 선교의 심각한 영적 상태를 보여 줬다.

▲ 국내의 한 캠퍼스 선교단체가 미국 신학자를 앞세워 학생들에게 영화를 통한 하나님의 계시를 가르쳐 캠퍼스 선교의 심각한 영적 상태를 보여 줬다.

  美 풀러신학대학원에서 ‘신학과 문화’를 가르치고 있는 로버트 존스턴 박사(Robert Johnston)가 지난 3일 홍대 IVF 세미나실에서 열린 ‘영화와 영성’ 세미나에서 영화와 기독교 신앙에 대해 강연했다는 언론의 보도가 있었다. 언론에 따르면, 풀러신학교와 IVF(한국기독학생회)가 공동주관한 행사에서 존스턴 박사는 ‘영화 속에 나타난 신’이라는 제하의 강연을 하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미국의 사회학자 조지 바나의 통계에 따르면, 미국의 성인 중 20% 영적 체험의 통로로 예술과 문화생활을 한다고 말했다. 이 수치는 2025년이 되면 35%로 늘어날 전망이다. 영화가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물어볼 때, 영적 변화를 체험한 사람,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한 사람, 하나님을 만나지는 못했으나 교육적 의미를 발견한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 캐나다에 방문했을 때 목회자로서의 삶을 준비하던 한 부부를 만났는데, 그들은 펭귄과 관련된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고 ‘하나님께서 멍청한 펭귄도 돌보아 주시는데 우리도 분명히 돌보아 주실 것’이라며 안정된 사역지를 뒤로하고 교인이 별로 없는 지역에 가서 개척할 것을 결심했다. 또 어떤 사람은 인생이 망가진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보고, 심리학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방법을 연구하고 삶의 진로를 바꿨다. 2차 세계대전 중 유머를 통해 가족의 생명을 구하는 유대인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라이프 이즈 뷰티풀’은, 많은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려줬다. 그러나 저에게는 교육 이상의 영적 만짐이 있는 순간이었다.”면서 “어떤 사람에게는 영화가 영적이다. 하나님께서는 영화를 통해서도 계시할 수 있다. 그러나 교회는 이를 듣지 않고 지나침으로, 삶이 더 안 좋아지기도 한다. 우리는 영화 또한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질서에 속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존스턴 박사는 소위
‘신학과 문화’를 가르친다는 신학자로, 하나님에 관한 학문인 신학(神學)을 세상문화와 접목시키는 비성경적인 일을 전문으로 하고 있다. 그는 세상을 사랑하는 교회들에서 매우 환영받는 일을 하고 있는데, 그도, 그 행사를 공동주관한 ‘한국기독학생회’라는 곳도 모르는 것은 거듭난 성도의 구원받기 이전과 이후의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라.1 허물과 죄들 가운데서 죽었던 너희를 그가 살리셨으니, 2 전에는 너희가 그것들 가운데서 이 세상의 풍조를 따르고 공중 권세의 통치자, 곧 지금 불순종의 자녀들 안에서 역사하는 영을 따라 행하였으니 3 그들 가운데서 우리 모두가 이전에는 우리 육신의 정욕들 가운데서 행하였으며 육신과 마음의 욕망들을 이루어 다른 자들과 마찬가지로 본래 진노의 자녀였느니라』(에베소서 2:13). 존스턴의 주장은 이 악한 현 세상의 통치자와, 그에게 지배당하는 죄인들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나온 신학적 무지였다. 이 에베소서의 말씀에 따르면, 성도가 구원받기 전에 허물과 죄들 가운데 그의 영이 죽어 있어 하나님을 알 수 없을 때 그가 죄인으로서 즐겼던 이 세상의 영화는 타락한『세상의 풍조』,『공중 권세의 통치자』,『불순종의 자녀들 안에서 역사하는 영』,『육신의 정욕들』,『육신과 마음의 욕망들』,『본래 진노의 자녀』라는 말씀들과 그 본질을 함께하고 있다.『이 세상의 신』(고린도후서 44)인 마귀가 세상의 풍조를 따르는 불순종의 자녀들 안에 역사하여 본래 진노의 자녀인 그들의『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생의 자랑』(요한일서 216)을 스크린에 담아 놓은 것이 할리우드 영화인 것이다. 그들의 영화에는 음란, 폭력, 살인, 동성애 같은 악한 형태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보기에 좋은 선행, 사랑, 인간애, 권선징악(勸善懲惡) 같은 것들도 있다.『빛의 천사』(고린도후서 1114)의 모습으로 자신의 추악한 실체를 가리는 마귀는 이 모든 것을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하나님을 떠난 죄인들의 삶을 즐기도록 유도하고 있다. 말 그대로 “죄인들의 삶”“즐기게” 하는 것이다! 마귀는 “영화 평론”이란 것도 만들어 어떤 영화가 “죄”를 얼마나 “예술적으로” 묘사했는가로 죄인들의 관심을 모을 뿐만 아니라, 별(★) 다섯 개로 영화를 평가하여 “죄의 예술성”에 등급을 매기도록 하는 매우 악한 일을 조장하고 있다.
  죄를
“예술”로서 “평가”한다는 것은 세상 영화를 만들고 즐기는 죄인들이 죄에 대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그들에 대해 성경은그들은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들이 마땅히 죽음에 처해져야 한다는 하나님의 심판을 알면서도 이 같은 일을 행할 뿐만 아니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좋게 여기느니라.(로마서 1:32)고 말씀한다. 죄인들은 죄인 줄 알면서 그 죄를 행할 뿐 아니라 그것을 행하는 자들을 좋게 여기는 극한의 모순에 빠져 있다. 악하다는 것을 감지하면서도 그것을 행해 버리고, 또 행한 자들에게 동료의식을 느낀다. 이것이 양심에 화인 맞은 죄인들의 실상이다(디모데전서 42). 그들이 죄를 “예술”로 승화시켜 즐기는 것은 양심이 마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신 안에 꿈틀거리는 죄들이 스크린 안에 펼쳐지면 거기서 강한 카타르시스와 대리만족을 경험한다. 악한 형태의 죄뿐만 아니라(데살로니가전서 522) 하나님과 무관하게 전개되는 모든 “인본주의적” 스토리에도 동일한 반응을 보인다.
  엄밀히 말해서, 자신의 지식 가운데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죄인들이 만든 모든 영화는 하나님께 버림받은 마음으로 해대는
『악인의 쟁기질』(잠언 214)이며, 하나님과 무관한 모든 인간적인 것 안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육신적 심미성(審美性)의 산물이다. 이 일은 우상 숭배자들이『사람의 아름다움』(이사야 4413)에 따라 우상을 만들어 놓고 숭배하는 것과 같다. 악한 형태이든 선한 형태이든 “사람”에게서 “아름다움”을 찾는 영화는 사람의 죄를 예술화하고 사람을 아름답게 묘사하고 드높이며 신격화하는 우상 숭배이다. 그것은 성경처럼 죄를 가감 없이 묘사하더라도 그 죄의 치명적인 결과에 대해서는 경고할 수 없다. 대신 인간의 모든 추악함을 다루는 성경은 “너무 적나라하다”면서 금서(禁書) 목록에 올려놓고, 자신들의 음란한 영화에 대해서는 “문제작” 운운하며 관심을 끌어놓고 결국 “예술 작품”이라며 추켜세워 돈을 받고 팔아치운다. 성경이 인간의 죄를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것은 그것이 바로 “인간의 실체”임을 알려 주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다루심에 있어서 매우 자신 있으신 것이다. 주님은 성경에서 같은 죄를 묘사하시더라도 죽음과 지옥이라는 죄의 치명적인 결과를 경고하시는 반면(로마서 623┃시편 927┃마가복음 944), 인간의 영화는 간음, 동성애, 근친상간, 살인, 폭력 등 온갖 죄들을 감상하도록 유도할 뿐이며,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하나님 없이 “한 인간영웅”을 통해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출 뿐이다. 그들은 영화를 통해 인류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 줄 미지의 “적그리스도”를 소망하고 있는 것이다.
  존스턴은 하나님께서 영화를 통해서도 계시하신다고 했지만,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은 영화가 아닌 그분의 말씀으로 계시하신다.
께서 실로에 다시 나타나셨으니, 이는 께서 실로에서 사무엘에게 의 말씀으로 자신을 나타내셨음이더라(사무엘상 3:21). 주님은 자신을 말씀으로 계시하셨고, 또 계시하고 계신다. 구약에서 말씀으로 자신을 나타내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육신으로 나타나셨을 때(디모데전서 316) 성경은 바로 그 하나님을『말씀』(요한복음 11)이라고 불렀다.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으로 나타나신하나님말씀(요한계시록 1913)이시다. 주님은 자신을 가리켜알파오메가(요한계시록 18, 11)라 하셨고, 이로써 “문자”로 기록된 말씀을 자신과 동일시하셨다. 문자로 기록된 성경을 상고하여 주님을 알라고 하심으로써(요한복음 539), 문자화된 말씀으로 자신을 계시하심을 알려주셨다. 말씀 외에 다른 것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는 넓게 보면 범신론적인 뉴에이지 신학이 기독교계로 스며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을 계시한다는 성경의 원칙에 따르면 그렇게 볼 수밖에 없다. 뉴에이지는 ‘모든 것은 하나’(Oneness)라는 일원론(一元論)에서 범신론을 이끌어내어 ‘신은 만물 안에 존재하고 만물은 신이다.’라는 개념을 확립한 이방 종교이다. 힌두교와 불교와 심리학이 교묘하게 결합되어 신비주의적 성격을 띠는 그것은 “인간이 만물을 통해 신을 알 수 있고, ” 궁극적으로 “만물의 중심인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주님은『너는 내 앞에 다른 어떤 신들도 있게 하지 말지니라.』(출애굽기 203)고 말씀하신다. 주님은 인간을 “만능해결사”“따라야 할 기준”으로 신격화하는 영화로는 자신을 계시하시지 않는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참 하나님(요한일서 520)으로, 인간이 따라야 할(마태복음 1624) 유일한 기준으로 제시하시는 성경을 통해 계시하신다.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러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을 증거하는 성경을 통해서 계시하신다.
  영화를 통해 하나님의 계시를 알 수 있다고 한 존스턴의 주장은 문명의 옷을 입은
“범신론”에 지나지 않는다. 주님은 “카나안 땅의 그림들”의 숭배를 전파하는 이 “카나안 우상 숭배자”의 주장과 달리, 영화의 파괴를 말씀하신다.『그 땅 거민을 너희 앞에서 다 몰아내고 그들의 모든 그림들을 파괴하고 모든 부어 만든 형상들을 다 파괴하며 산당들을 다 뽑아 낼 것이며』(민수기 33:52). 우리는 주님께서 지으신 피조세계를 통해 주님께 속한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볼 수 있고, 심지어 그분의 영원한 능력과 신격까지도 만들어진 것들에 의해 알 수 있다(로마서 120). 이처럼 남극의 펭귄은 굳이 영화를 보지 않아도 그들을 돌보시는 하나님에 관해 얼마든지 묵상할 수 있으며(시편 5010, 111136), 가족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 또한 굳이 영화를 보지 않아도 얼마든지 묵상할 수 있다(누가복음 152024). 영화를 통해 어떤 느낌을 가졌다 해도 그것은 모종의 “교훈”이지 “영적 체험”이 아니다. 말씀이 아닌 다른 매개체로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은 마귀들과의 접촉을 가르치는 뉴에이지적 실행이다. 존스턴은 “미국의 사회학자 조지 바나의 통계에 따르면, 미국의 성인 중 20%가 영적 체험의 통로로 예술과 문화생활을 한다.”고 했지만, 그것이 어떤 영(靈)을 통한 영적(靈的) 체험인가는 성경적으로 규명하지 못했다. 성경에 따르면 그것은 성령이 아닌 악령을 통한 영적 체험이다(요한일서 41). 그들이 경험했다는 “하나님의 임재”는 마귀의 임재였으며(사도행전 810, 11), “죄”“예술”이라고 “거짓말”한 것을 즐겼으니『거짓말의 아비』(요한복음 844)인 마귀를 통한 영적 체험이었다.
  결론적으로, 이런 영적 체험을 운운하며 캠퍼스 대학생들에게 세상 영화를 보도록 유도하는 것은, 그들로 하여금 세상을 사랑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게 함이 아니고 무엇인가?
『너희 간음하는 남자들과 간음하는 여자들아, 세상과 친구 되는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누구든지 세상의 친구가 되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의 원수가 되느니라』(야고보서 4:4).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의 영께서는 우리가 세상을 사랑하지 않도록 시기할 만큼 갈망하신다(야고보서 45).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잠시라도 세상에 한눈팔지 않고 하나님의 온전하신 말씀에 집중하여 그분의 사람들로서 거룩하게 성장해 가기를 갈망하신다.께서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인에게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고린도후서 317), 그 자유를 육신을 위한 계기로 삼거나 악한 세상을 즐기는 데 사용해서는 안 된다(갈라디아서 513┃ 베드로전서 216).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으로 주어진 그 거룩하고 고귀한 자유를 얼마나 진지하게 하나님의 종으로서 사용했는가?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두 마음을 품지 않고(야고보서 48),『오직』삶의 모든 영역에서 주님의 “은혜”를 누리며 성장하고, 또『오직』성경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알아가며 온전히 성장하는 것이 주님께서 자신의 피값을 주시고 사신 성도가 해야 할 일인 것이다(베드로후서 318). 이것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으로 영생을 얻은 하나님의 사람”(the man of God)이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의와 경건을 추구하며 지녀야 할 성경적인 자세이다. 학생들에게 이 점을 가르치지 못하는 선교단체라면 그런 단체가 캠퍼스에 존재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B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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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신문 ‘바이블 파워’ (2014-03-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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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계시’ 세미나를 연 캠퍼스 선교단체 』
     by
     바이블 파워」/2014.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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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께 영광을ㆍGLORY TO THE LORD 】

『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라... 』(시 편 12:6a)

King James Bible 1611

『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의뢰하고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이는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요, 내 노래시며, 그가 또한 나의 구원이 되심이라. 』(이사야 12:2)

(디모데전서 6:316)

3 만일 누군가가 다르게 가르치며 건전한 말씀,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따른 교리에 일치하지 아니하면 4 그는 교만해서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고 다만 질문과 언쟁만을 좋아하는 자니, 거기서 시기와 다툼과 악담과 사악한 의심이 생겨나며 5 마음이 부패하고, 진리를 상실하며, 이익이 경건이라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 무익한 논쟁이 일어나느니라. 그런 데서 네 자신은 빠져 나오라. 6 ○ 그러나 만족할 줄 아는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7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며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니 8 우리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이것들로 만족할 것이니라. 9 그러나 부유하게 되고자 하는 자들은 유혹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빠지리니, 이는 사람들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니, 이것을 욕심내는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방황하다가 많은 슬픔으로 자신들을 찔렀도다. 11 그러나, 오, 하나님의 사람인 너는 이것들을 피하라. 그리고 의(righteousness)와 경건(godliness)과 믿음(faith)과 사랑(love)과 인내(patience)와 온유(meekness)를 추구하라. 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원한 생명을 붙잡으라. 이를 위하여 네가 또한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들 앞에서 선한 고백으로 고백하였느니라. 13 ○ 만물을 살리시는 하나님 앞에서와 폰티오 빌라도 앞에서 선한 고백으로 증거하셨던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에게 명하노니, 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 없고 책망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15 자기 때가 되면 주께서 나타나시리니 그분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통치자시요, 만왕의 이시며 만주의 시라. 16 오직 그분만이 불멸하시며, 어떤 사람도 접근할 수 없는 빛 가운데 거하시며,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도 없는 분이시니, 그분께 영원한 존귀와 능력이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15 Which in his times he shall shew, who is the blessed and only Potentate, the King of kings, and Lord of lords; 16 Who only hath immortality, dwelling in the light which no man can approach unto; whom no man hath seen, nor can see: to whom be honour and power everlasting. Amen.

(디모데후서 3:1217)

12 실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모든 사람은 박해를 받을 것이라. 13 악한 사람들과 사기꾼들은 더욱 악해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리라. 14 그러나 너는 네가 배운 것과 확신한 것에 꾸준히 거하라. 네가 누구에게서 배웠는가를 알며 15 또 어릴 때부터 네가 성경을 알았으니, 그 성경은 너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인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지혜롭게 할 수 있느니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훈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이 온전하게 되며,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구비되게 하려 함이니라.

12 Yea, and all that will live godly in Christ Jesus shall suffer persecution. 13 But evil men and seducers shall wax worse and worse, deceiving, and being deceived. 14 But continue thou in the things which thou hast learned and hast been assured of, knowing of whom thou hast learned them; 15 And that from a child thou hast known the holy scriptures, which are able to make thee wise unto salvation through faith which is in Christ Jesus. 16 All scripture is given by inspiration of God, and is profitable for doctrine, for reproof, for correction, for instruction in righteousness: 17 That the man of God may be perfect, throughly furnished unto all good works.

『 세상도, 세상의 정욕도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요한일서 2:17)

『 14:24 만군의 가 맹세하여 말하기를 “내가 생각했던 대로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며, 내가 계획했던 대로 그것이 확고히 되리라. 4:12 그러므로 오 이스라엘아, 내가 너에게 이같이 행하리라. 내가 너에게 이것을 행하리니 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하라.
14:24 The LORD of hosts hath sworn, saying, Surely as I have thought, so shall it come to pass; and as I have purposed, so shall it stand: 4:12 Therefore thus will I do unto thee, O Israel: and because I will do this unto thee, prepare to meet thy God, O Israel.

(이사야 14:24아모스 4:12

Amazing Grace∼♪∼♬
[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