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1. 29. 00:17

“ 의지를 점유하라! ” (글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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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을 향한 마귀의 전술

의지를 점유하라!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라. (시편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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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창조 전부터 영원 속에 홀로 거하셨고, 자신을나는 곧 나니라, I AM THAT I AM』(출애굽기 314)고 명명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룹들, 스랍들, 천사장, 천사들 외에도 ‘창세기 13’부터의 순서에 따라 우주를 재창조하셨고, 또한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단순한 기계나 로봇처럼 고유의 의지 없이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계적인 복종과 경배를 드리는 존재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보잘것없는 벌레와 같은 인간에게 스스로 판단하고 사고하는 능력과 결정을 내리고 이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자유 의지”(Free-will)를 주셨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을 진정 독립적인 인격체로 만드는 것이며, 이 의지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원을 하나님과 함께 거할 수도 있고, 또 마귀의 자식으로 영원히 지옥의 형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에덴의 동편 동산에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말씀하셨을 때(창세기 21617), 인간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 혹은 불순종을 결정할 수 있는 의지가 없었다면, 그에게 이 명령을 주신 것은 전혀 의미 없는 불필요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창세기 3장’부터의 모든 인간사는 우주의 절대자이신 하나님께서 아무런 바람이나 의지가 없는 인간, 즉 자신보다 더 큰 대상인 뱀으로 나타난 사탄에게 굴복하여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피조물인 인간을 가지고 유희를 즐기는 하나의 인형극과 같은 것이며, 결과적으로 창조주 하나님은 죄악된 인간의 극심한 타락과 저주를 조장한 장본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타락 전이나 타락 후나 인간에게는
“자유 의지”(Free-will)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기를 거부하여 땅에 대한 통치권을 잃어버리고, 사탄에게 패배하고 사로잡혀 종이되었으며, 죄에 따른 저주를 짊어지고 모든 후손들에게 죄성을 물려주게 되었습니다. 빛의 천사로 나타나는 사탄이 “이 세상의 신”(고린도후서 44)이 되어 타락한 인간의 생각과 명철을 어둡게 만들어 자연적인 상태에서는 도무지 하나님의 뜻과 일을 분별할 수 없게 만들었으나 여전히 이러한 상태에도 불구하고 “자유 의지”(Free-will)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의 거듭난 그리스도인 역시 과거에는
“어두워진 마음”(고린도후서 44)“어리석은 마음”(로마서 12125)과 사탄의 속임수 아래 노예상태로 팔려 있었고, 바른 판단을 내리거나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의 광채가 죄와 거짓, 속임수로 굳어져 버린 마음에 강렬히 내리비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인해 “믿음”을 선물로 받았고(로마서 1017┃에베소서 289), 복음을 자신의 의지를 사용하여 마음에 받아들일 때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개인의 의지를 사용하지 않는 자동적인 구원은 없습니다. “믿어질 때까지 기다려라!”고 하지 않고 “믿으라!”고 명령하셨으며, “자연히 이해될 때까지 기다려라!”고 말씀하는 대신 “영접하라!”고 권고하셨습니다(사도행전 1631┃요한복음 112). 누구든지 자신의 의지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는 지옥불의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성경은 구원의 여부가 개인의 의지에 달려 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요한복음 540┃요한계시록 2217) 성령의 책망을 받아들여 구원받을 수도 있고, 그 의지로 성령을 거역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사도행전 751).
문제는 구원받은 후에도 사탄은 그리스도인을 자신의 종으로 만들어, 하나님과 상관없는 무의미한 삶을 살게 하려고 늘 우리 주변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구원받고 진리를 아는 그리스도인을 패배시키는 것은 사탄의 편에서 봐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영이 살아나고 하나님의 본성에 동참하게 되어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 하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거듭난 이후 그리스도인이 변개된 성서들과 온갖 거짓 교리와 비성경적인 교회, 육신의 정욕과 애정의 끈덕진 회유, 세상의 유혹을 바르게 분별하고 하나님께 자신을 드렸다면, 여간 긴장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쓰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뿐만 아니라 사탄의 왕국에 큰 압력을 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한다?” 몇 초 지나지 않아 ‘이 세상의 신’인 사탄은 근심의 자리를 털고 일어나 그의 졸개들에게 명령합니다. “그 그리스도인을 어떤 것으로든 미혹하고, 그가 넘겨주는 틈을 거점으로 그의 일부분부터 차례로 그를 점유토록 하라!” “미혹,” “기만,” “사기,” “거짓 교리”... 이런 것들은 사탄의 오랜 전술입니다. 사탄은 미혹을 통해 인간을 죄에 빠뜨렸으며 자신의 종이 되게 만들었고, 인간의 사고와 지성에 종교와 사상의 모습으로 너무나 자연스럽게 역사하여 6000년 동안 자신의 존재와 사악함을 철저히 감추어 왔습니다. 또한 장차 사탄의 화신으로 나타날 ‘적그리스도’(Anti-christ)도 거짓 능력과 표적과 이적들로 죄인들을 속이고 전 세계를 정치, 경제, 종교적으로 장악해 버릴 것입니다(데살로니가후서 2910┃다니엘 92627).
그러면 사탄은 그리스도인을 어떻게 속이며, 더러운 영들을 통해 어떻게 정복하여 자신의 종으로 삼는 것일까요? 우선 알아야 할 사실은 헌신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사탄이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헌신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하나님의 일을 수행할 수 없기 때문에, 사탄의 입장에서는 잃을 것이 없는 싸움에 공연히 힘을 낭비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사탄의 주된 관심 대상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분의 일에 자신을 드려 수행하기 원하는 헌신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이들은 이미 하나님과 교제가 있고 진리의 빛으로 늘 나아가려 하기 때문에, 단번에 이들을 어두움 속에 던져 넣으려는 노골적인 시도는 먹혀들지 않습니다. 사탄은 마귀들에게 “어떻게 해서든 속여야 한다. 미혹의 그물을 치고 사로잡으라. 거짓을 진리로, 어두움을 빛으로 가장하고 속여라.”고 주문합니다. 사탄의 세력은 처음부터 큰 것을 노리지 않고 아주 작은 것 하나를 붙들어 이를 거점으로 성도를 조금씩 점유하여 그리스도의 군사를 무장 해제시키려 합니다. 성경적인 용어로 하나의 “틈”을 노리고 침입해, 일단 의지를 관장하게 되면 사탄의 역사는 이제 여유를 부리며 희생자가 모르는 새에 더 깊게 점유당하게 만들고 결국에는 굶주린 사자처럼 희생자를 삼켜 버립니다. 이런 마귀의 습성은 독사의 독을 가진 울부짖는 사자의 모습을 상상하면 쉬울 것입니다. 독으로 마취시키고 그런 다음 먹이를 통째로 삼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영적, 혼적(지성, 감정, 의지), 육신적인 영역 가운데 어디에서든지 틈을 주어 죄를 짓거나 과오를 범하게 하되, 사탄은 이 부분을 지속적으로 공략하여 성도가 스스로 체념하고 포기하게 만듭니다.
다음과 같은 생각들이 작은 부분에서부터 의지를 관장당한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찾아오는 사탄의 친근한 음성(?)입니다.
“어쩔 수 없어,” “나는 이 죄를 이길 수 없어,” “이 부분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냐. 하나님께서 해주셔야 되는 거야,” “이 정도는 괜찮아,” “여기까지만 보고(혹은 읽고, 또는 하고) 그만두자,” “몸이 피곤하다고 졸린다고 하잖아, 그건 다음에 하고 그만둬...,” “이건 자연적인 몸의 욕구야 어떻게 언제나 거룩하고 경건할 수 있냐?” “내가 계획하고 한다는 것은 죄짓는 거야. 나는 십자가에 죽었잖아,” “내 성격이 원래 그런데 뭐, 성령으로 충만하면 자동적으로 고쳐지겠지,” “저는 할 수 없으니, 제 믿음을 늘려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등등. 의지가 일단 공략당하면 이러한 생각들이 그의 삶에서 하나의 태도와 습관을 형성하고, 처음 마귀에게 내어주었던 틈은 이제 견고한 요새가 되기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들은 흔히 자신의 생각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혼의 감각으로는 분별할 수 없는 사탄의 속임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세기 47)고 명령하셨고,『죄가 너희를 주관하지 못하리니』(로마서 614)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의지는 “나”라는 존재를 두른 성벽입니다. 하나님이든 사탄이든 내 의지의 동의 없이 나를 통해 역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의지”에 대한 성경적인 가르침에 무지한 그리스도인이 실수하는 부분은 그들은 ‘자아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야 한다.’는 것을 오해하여 자신의 의지, 지성, 판단력 등을 사용하는 모든 것을 죄악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소위 “성령의 충만과 인도”를 받기 위해 “의지를 포함한” 자아를 계속해서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마귀에게 속는 것입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의지를 사용하는 것조차 죄악시 해버릴 때, 초월명상을 하는 자나 악한 영을 지닌 자, 무당, 뉴에이저들이 추구하는 “자아 공백” 현상에들어가게 되며, 이것은 마귀가 역사하는 데 있어 가장 최적의 조건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의지의 기능이 약화된 그리스도인은 마귀가 기생할 수 있는 최상의 숙주가 되는 것입니다.
자, 작전이 개시되었습니다. 한 마귀가 그리스도인에게 접근합니다. 그리고 특정한 부분에 대해 파리처럼 앵앵거리며 끈질기게 유혹합니다. 헌신된 그리스도인이 더러운 영이 내던진 미끼를 물었습니다. 한동안 비참하게 죄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다가 회개하고 돌이킵니다. 또다시 속임수와 더불어 회유가 시작됩니다.
“이건 네 성격이라고, 화를 낼 때 화를 내야지, 따끔한 맛을 보여줘,” “인간의 본성이 그런 거야,” “환경이 너를 이렇게 할 수밖에 없게 만들잖아. 그러지 말고, 자, 자,” “저걸 봐. 멋지지. 그래 이 생각을 가지고 계속 즐겨,” “이걸 봐,” “저걸 해봐,” “하나님은 언제나 용서하시고, 자비가 풍성하시잖아,” “한번 죄짓고 툴툴 털고 일어나면 되지 뭐.” 다시 그리스도인은 죄를 짓고, 비참하게 패배합니다. 계속해서 특정한 부분에서 죄를 짓거나 문제를 일으키는 그리스도인에게 완전한 승리라는 것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같이 느껴집니다. 반복되는 패배가 이를 증명하고 성경에 보장된 승리를 붙들기에는 이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손은 힘을 잃어버린지 오래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그 형제 혹은 자매에게는 자신“가시”요, 지고 갈 “십자가”라고 생각되며, 자신이 욥과 같은 무고한 “고난”을 당하는 것 같아 하나님을 못내 원망스럽게 여깁니다(일종의 심한 “자기기만”이 나타납니다).
이쯤 되면 그리스도인은 절망하고 포기합니다. 사탄은 외칩니다.
“드디어 뚫렸다.” 의지의 성문이 열려진 이상, 유혹으로 인한 압박이 가해질 때마다 그리스도인의 체념과 함께 다시 의지의 문이 열리고, 사탄은 더 많은 영역을 장악해 나갑니다. 그리스도인은 마귀 들릴 수 없다고 누가 말했던가요! 의지의 사용이 한 영역에서 불가능해진 후, 마귀는 계속해서 양심을 마비시키고 지성을 혼미케 하고 몸과 혼과 사회생활을 포함한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을 잠식해 나갑니다. 스스로도 뭔가 해결책이 필요하고 생활이 바르지 않다는 것을 알기도 하지만 뭐가 어디서 어떻게 꼬여서 이렇게 되었는지 가늠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너무나 자연스런 마귀의 속임수와 책략에 미혹당해 이 모든 것이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병이나 연약함에서 발생한 일이라 생각하기에 이릅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그의 영은 황폐해지고 외부의 작은 자극에도 자멸감에 빠지며, 그의 삶에서 승리는 어부지리로 얻은 예외이지 정해진 규칙이 아닙니다. 승리를 보장하는 여러 성경 구절들이 마음에 다가올 리 만무하며 거짓말을 써 놓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최소한 다른 사람에게는 진리여도 자신에게만큼은 능력이 없는 죽은 명제들에 불과한 것입니다. 말은 안 해도 성경이 말하는 승리하는 생활과 자신의 현실 사이에 벌어진 괴리 때문에 괴로워하고, 할 수만 있다면 그리스도인이라는 표식을 떼내어 던져버리고 싶어하며, 어떨 때는 죽음에 대한 비정상적인 충동이 엄습합니다.
“주님, 차라리 이럴 바에는 저를 데려가 주십시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의지를 마귀에게 내어주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사탄의 종이 된 것입니다.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활에 그분의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것을 무엇이 방해하고 있나요? 반복해서 죄를 지어서 내어주고 포기해 버린 부분이 있나요? 자신의 삶에서 죄를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리
“악하지 않고 해를 끼치지 않는 죄”를 일정 시간 허락하는 영역이 있나요? 이런 부분에서 당신의 의지가 수동적으로 변했고 심지어 사용불능이라면 당신은 이미 속았고, 전체는 아니더라도 그 특정한 부분에 있어서 만큼은 마귀에게 점유당한 것입니다. 흔히들 마귀의 역사를 초자연적인 영역에 한정하는 편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거짓 교리, 편견, 오해, 악한 생각, 반복되는 죄, 낭비되는 시간, 식어버린 열정, 형식적으로 변한 하나님과의 교제와 경배, 또한 그분을 위한 섬김의 퇴색, 이런 것들 뒤에는 마귀가 기생하는 부분이 있음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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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신문 ‘바이블 파워’ (2006-01-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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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을 향한 마귀의 전술 ─ 의지를 점유하라! 』
by
■「바이블 파워」/2006. 1. 6/김 진석(킹제임스성경신학대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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