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 6. 12:49

“ 엄연히 존재하는 남녀의 분명한 차이와 차별 ” (바른 분별)

(바른 분별) [20110106/박재권 캐나다 주재기자] ● 엄연히 존재하는 남녀의 분명한 차이와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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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연히 존재하는 남녀의 분명한 차이와 차별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라. (시편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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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녀 간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 남녀 간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차이(差異Difference)의 사전적 의미는 “구별되는 다른 점”을 말하고, 차별(差別Discrimination)이라는 사전적 의미는 “차등이 있게 구별함”이라는 뜻이다. 이 세상에는 모든 것에 대한 차이와 차별이 엄연히 존재한다. 남녀 간의 차이와 차별은 물론이고 초급, 중급, 고급 등의 차이 또한 극명하다. 그래서 교육에 있어서도 초등교육, 중등교육, 고등교육 등으로 나누고 경기장에서도 금, 은, 동메달로 나눈다. 이 세상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부분에 있어서 등급을 매기며 차별화를 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갈수록 정상적인 삶의 형태를 벗어나고 싶은 강한 욕구들이 분출되는 현대사회는 그렇게 자연스럽고 논리적으로 이루어진 차이와 차별화를 거부하고 반발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소위 약자를 보호한다는 사람들이 시민단체라는 것을 만들어 놓고 투쟁을 벌이는데, 알고 보면 터무니없는 일들을 벌이며 사람들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는 현실은 심히도 우려스러운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교육현장은 물론이고 사회 곳곳에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정의사회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캠페인과 데모는 참으로 무모하기까지 하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성차별을 운운하는데 어느 부분은 인정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만 어느 부분은 참으로 심한 억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분명히 할 것은 남녀의 차이를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만 한다. 우리나라 중등교 교과서에는 여학생이 밤에 범행대상이 되지 않으려면 주의할 것에 대해서 기술해 놓고 있다. 이런 것은 당연히 배워서 숙지하고 있으면 자신의 안전에 유익한 것들이다. 그런데 길거리에서 신체적으로 남성보다 여성이 연약하여 범행대상으로 지목되는 것도 성차별이라고 항변할 것인가? 이것은 남녀의 차이일 뿐이다. 그런가 하면
10대 임신의 문제를 다루는 부분에서는 임신한 10대 여성은 학업을 할 수 없다고 교과서에 서술해 놓고 있는데 이것까지도 성차별이라고 단정하고 나섰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인 것이다. 물론 극히 예외적 상황이 있겠지만, 아무리 성 평등을 주장한다고 하지만 아직 어린 여학생이 임신을 해서 남들하고 똑같이 등교하고 같이 생활하겠다는 것인가? 그로 인한 각종 부작용과 부자연스러움은 물론 주위 학생들의 불편함은 인정하지 않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 남자와 여자는 엄연히 다르다. 누가 더 우월하다거나 누가 더 열등하다는 얘기를 떠나서 남녀는 다르다는 것이며, 이러한 남녀의 차이는 반드시 성경을 통해서 이해되어야만 한다. 남녀에 차이가 있다는 전제로 살아가는 것은 남녀불평등이 아닌 것이다. 그것은 남녀의 신체 구조적, 생리적으로도 명백한 것인데도 막무가내로 주장하는 것을 보면 말문이 막힌다. 다시 한 번 더 강조하지만 남녀의 차이를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만 한다.
  다음은 차별의 문제인데, 성경은 분명히 남녀의 차별을 말씀하고 계신다.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창조된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창조된 것이기 때문이라』(고린도전서 11:9). 여자에게 차별을 두는 것은 또 다른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여자가 남자보다 연약한 그릇인 까닭이다.『이와 같이 너희 남편들아, 아내들을 더 연약한 그릇으로서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상속받을 자로서 귀히 여기되, 지식을 따라 그들과 동거하라. 이는 너희의 기도가 막히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베드로전서 3:7). 인류에게 죄를 가져온 불순종은 여자인 이브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인데, 그녀는 마귀에게 귀를 내어줌으로써 마귀의 속삭임에 속았던 것이다.『또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라, 여자가 속아 범죄하였음이라』(디모데전서 2:14).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여자는 남자를 권위로 두고 살아야 하는 것이 분명한 성경적 입장이다. 권위의 문제에 있어서 항변하고자 한다면 하나님께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아니면 하나님의 영감으로 성경을 기록한 사도 바울에게 항의하면 될 것이다.『여자는 온전히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게 하라』(디모데전서 2:11). 세상 사람들을 성경을 아예 믿지 않기 때문에 별개의 문제이지만,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여자 성도가 목사가 돼서 남자들에게 권위를 행사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성경을 부정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반역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나는 여자가 가르치는 것이나 남자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다만 조용할지니라』(디모데전서 2:12). 이것은 부인할 수 없이 차이로 인한 차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에서 여자가 남자의 권위를 따라가는 것을 남녀불평등으로 본다면, 약간 비약해서 볼 때 엄마가 어린아이에게 밥을 먹여주는 것은 어떤가? 남녀가 함께 쇼핑 중에 남자가 무거운 짐을 들고 여자는 그보다 가벼운 짐을 드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지 남녀차별이 아니다. 남자가 힘이 세기 때문이다. 남자가 밖에 나가서 이마에 땀을 흘려 돈을 벌어오고 여자는 가정을 돌보는 것은 성경적이고 남녀 차이일 뿐이지 남녀차별이 아니다. 아무래도 여자보다 강한 남자는 원래 밖에서 땀 흘려 돈 벌고, 남자에 비하여 연약한 여자는 집에서 살림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순리인 것이지 남녀차별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으로 남자는 여자가 돈 안 벌어오고 집에서 편하게 지낸다고 비난할 수도 없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참으로 이상하다. 사람이 하나를 얻으면 하나는 내주는 것이 이치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둘 중에 하나도 버리려 하지 않으려는 이기적인 태도를 취한다. 남녀평등을 주장하면서도 여자가 불리할 때는 남녀 차이를 주장하는 것이 모순이 아니겠는가? 교회에서도 남녀 간의 문제를 놓고 설전이 뜨겁다. 어떤 어리석은 여성 신학자는
“삼위일체적 신앙고백만을 내세우는 것, 즉 삼위일체론이 도리어 이웃종교들과 여성들과 관련해 차별과 단절, 소통의 위기를 가져왔다. 가부장적 교리와 강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차별과 억압의 거짓 교설들과 이데올로기들을 먼저 깨뜨려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참으로 우습지 않은가?
  좁혀 지려야 좁혀질 수 없는 무수히도 많은 것들이 남녀 차이임에 틀림이 없다. 이 세상에는 여러 방면에서 차이와 차별이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그것을 인위적으로 가리고 그런 것이 없는 것처럼 억지로 꾸미는 것은 참으로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다. 사회에서도 역시 질서 있는 사회는 최소한 상식이 통해야 하는 사회가 아니겠는가?
『이는 성도들의 모든 교회에서와 같이 하나님은 혼란의 창시자가 아니라 화평의 창시자이심이라』(고린도전서 14:33).  B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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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신문 ‘바이블 파워’ (2011-01-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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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연히 존재하는 남녀의 분명한 차이와 차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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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블 파워2011. 1. 6/박 재권(캐나다 주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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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Divide)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 』(디모데후서 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