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9. 4. 21:41

“ 인본주의란 무엇인가? ” (진리의 지식)

(진리의 지식) [20050703] (13) 인본주의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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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eaceful Hymns on Violinㆍ잔잔한 찬송가 바이올린 연주 모음┃(53:39)

● 인본주의란 무엇인가?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라. (시편 12:6)┃

  왜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를 둔 신앙이 바르게 성장하지 못하고, 말씀대로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지 못하고 있는가? 왜 믿음을 지니고 실행하는 사람들이 역동적이지 못하는가?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왜 카톨릭의 영향력이 계속되며, WCCNCC교회통합운동 같은 것이 등장하는가? UN은 무엇을 하는 곳이며 세계 평화에 무엇을 기여하고 있는가? 우리의 교육은 무엇을 가르치는가? 우리의 교육이 과연 하나님을 인정하고 성경을 인정하는 교육인가? 하나님도 성경도 배제한다면 무엇을 가르치고 있으며, 그런 교육을 받아 무엇을 기여하겠다는 것인가?
  사탄은 성경을 배제한 이념, 철학, 교육, 과학 등을 개발시켜 하나님을 대적하는 도구로 쓴다. 사탄은 이런 분야에 몰두한 사람들을 유명하게 만들어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그 유명한 사람들의 주장과 이론을 믿도록 만든다.
  사탄은 이념, 철학, 교육, 과학 등을 성경보다 훨씬 신뢰할 수 있는 것으로 선전하며, 그러한 생각을 세상 제도를 통해서 확산시키고 있다. 사탄은 창조주 하나님을 숭앙하는 신앙 이외의 종교들을 만들어 어릴 적부터 세뇌시킴으로써 사람들로 진리를 보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성경적 진리와 그들 종교들의 이론을 동일시하게 만들어 성경에 어떤 가치도 부여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런 결과로 불교, 힌두교, 도교, 이슬람교 속에 기독교라고 이름 붙여 나열함으로 그리스도의 신앙이 일반 종교의 하나로 인식되게 만들었다.
  사탄을 아무것도 아닌 양 경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원하면 언제든지 무찌를 수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일수록 사탄의 수하에서 종노릇을 하면서 그 사실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공산주의 이론은 사실 불필요한 이념이며 제도이다. 그러나 뒤돌아 보라. 이 이론으로 인하여 오랜 세월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고통받아 왔는가! 사탄은 인간을 그의 도구로 써서 거기에 관련된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 반대편에 선 사람들도 막대한 피해를 입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진화론과 더불어 공산주의는 그리스도의 적이요, 사탄의 무기로 핵무기보다 더한 위력을 발휘했음을 알 수 있다.
  성경을 배제한 교육, 즉 인본주의(人本主義)에 입각한 교육은 멸망으로 가는 교육인데도 사람들은 생업의 수단으로 교육의 과정을 밟으면서 이미 성경을 부인하도록 세뇌받고 있는 것이다. 성경을 배제한 인본주의 교육이 인간을 얼마만큼 괴물로 만들어 버리는지 보게 될 것이다.

    세상 속의 교회의 역할과 의의란?

  그리스도의 신앙이 생을 주도할 것인가, 아니면 그리스도인의 신앙이 생의 한 방편이 될 것인가? 그런 신념에 있어 자기 교단과 자기 교회에 얼마나 기울어 있는가?
  라오디케아 교회(요한계시록
31418, 20)
  헬라어
“라오스”(laoslah-os'), “디케”(dikedee'-kay)“시민의 권리”(people right = human right)라는 뜻이다.
  우리가 사는 세대의 기독교 사회(
Christendom)는 부하고 아무것도 궁핍한 것이 없는 것 같지만, 이 시대의 참다운 영적 상태는 가난하고 눈멀어 있다. 춤추고 노래하지만 비참한 상태에 있고, 집권자들이나 동료들에게는 찬사를 들어도 가련하며, 신체적인 눈은 좋으나 보지 못하며, 화려한 옷을 입었으나 벗은 것과 같다고 묘사되어 있다. 얼마나 무서운 자기 기만인가? “자신을 속이고 나면 그 다음에 모든 죄는 쉬워진다.”
  우리는 영적으로 가장 가난한 교회인
“라오디케아 교회”(the church of the Laodiceans요한계시록 314)에 대한 주님의 오래 참으심을 본다.
  (1) 이 교회 시대에는 칭찬할 것이 없다.
  
(2) 주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교회 밖에 계신다.
  
(3) 주님을 슬프게 하고 존중하지 않는다(자기 중심적인 세대).

  이 시대에는 하나의 세계 종교 제도(One world religious system)가 사회의 모든 계층에 침입하고 있다. 이러한 신세계 질서(New World Order)는 국가가 관장하는 체제이다.

   하나의 세계 정부(One World Government)

   하나의 세계 교회(Atheistic one World Church)

    인본주의(人本主義)

 인본주의란 인간의 흥미나 가치에 중심을 둔 교리, 자세 혹은 생활방식을 말하며, 초자연주의를 거부하고, 이성을 통하여 자기실현을 위한 권위와 인간의 가치와 능력을 주장하는 철학이다(Webster).
  지난
2,000년 동안 인본주의가 서방세계의 관념체계에 들어와서 서구의 대학들을 휩쓸고, 미국으로 건너가서 공립교육기관에 침투하여 발전을 저해하였으며, 통신과 교육분야에 점진적으로 침투하여 이 분야를 장악해 버렸다. 뿐만 아니라 모든 잡지신문T.V.네트워크(Network)출판영화 등이 인본주의와 관계를 맺고 있다.
  하나님의 지혜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인본주의가 타당하고 논리 정연하게 보이기 때문에 대중들은 분별없이 그것을 받아들인다. 오늘날의 범죄, 거리의 폭력, 성(性)의 문란, 이혼, 산산조각 깨져버린 꿈, 상처받은 마음은 그 원인이 세상의 인본주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스스로 현명하다고 말하나 우둔하게 되었고』(로마서 1:22).

  () 국가의 지도자와 국민이 인본주의에 대한 가르침을 알지 못하면 궁극적으로 ‘무정부 상태’에 이어지게 되며 그 나라의 문화는 파괴되고 만다. 프란시스 쉐퍼는(Francis A. Schaeffer19121984) 경고하기를 “인본주의의 종국은 언제나 혼란이다”라고 말했다.
  
() 인본주의란 사람이 ‘하나님’ 없이 단독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모든 시도이다. 2차 세계대전 후 도덕 상태는 인본주의의 영향과 비례하여 점점 더 악화되어 성경에 근거를 둔 사회에서 ‘부도덕한 민주주의 사회’로 옮겨갔다. 그들은 자신들의 입지가 약함을 깨달았으나 그들의 실패를 시인하는 대신 전통적 종교나 무지, 자본주의, 미신 등에다 그 원인을 돌렸다. 그들은『이는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라』(요한복음 155)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한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국제연합기구(UNUnited Nations)이다.
  
() 40년 전에 인본주의자들의 발상으로 UN이 설립되어 운영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은 UN이 전쟁 문제를 해결하고 세계 평화를 이룩할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UN이 얼마만큼 그런 약속을 실행하고 있는가? 지난 40년 동안에 더 많은 전쟁과 죽음, 국제적 재난이 있었다. 지금도 보스니아, 세르비아(유고의 내전), 앙골라, 아프가니스탄, 소말리아, 이스라엘, 체첸, 르완다, 자이레 등에서는 총성이 들리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분단의 상태에 있다.
  
() 인본주의는 하나님을 배제하고, 공산주의를 용납하며, 독재자들을 지원한다.

  () 1850년부터 미국은 공립학교제도를 시작했고, 100년 이내에 범죄와 빈곤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 예견했다(1980년에 미국은 1,400억달러를 공립학교 교육에 투자했다).

    인본주의의 뿌리

  인본주의”(Humanism)란 하나님을 배제하고 인간 단독으로 인간과 세상의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하는 인간 중심적 철학이다. 오늘날 세상에서 인본주의라고 부르는 이 인간의 지혜는 사람이 쓴 초기의 기록으로 더듬어 올라갈 수 있다. 모든 문헌에 두 가지 사상이 침투되어 있는데, 인간의 발상에 근거를 두었거나 아니면 하나님의 사상에 근거를 두었거나 둘 중 하나이다. 즉 성경적 계시(하나님의 지혜)와 인간의 지혜에 따라 구분되는 것이다.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은 학생들에게 그의 철학과 사상을 글이나 말로써 전달하여 영향을 준다. 그렇기에 글을 쓰는 사람이 젊은이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게 되고 그의 사상에 관한 동조자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따라서 ‘무분별한’ 습득과 실행은 위험한 독소이다.
  인본주의 철학을 처음으로 체계화시켰던 것은 헬라의 사상가들이었는데(사도 바울은 이것을 인간의 지혜라고 불렀다), 헬라 철학은
B.C 5세기 프로타고라스(ProtagorasB.C 490420) 의 잘못된 이론에 근거를 둔 것이다. 그는 “인간이 만물의 척도이다,” “모순되는 주장도 균등하게 옳다”고 말했다. 이같은 인본주의 사상이 수 세기에 걸쳐 수많은 무신론자들에 의하여 확산되었고, 그들의 사상체계를 정비하여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성경 계시의 거의 모든 기본적인 관념에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 성취인가? 돈인가? 얼마만큼 성취하고 얼마만큼 모아야 직성이 풀리겠는가? 보장없는 생애일지라도 열심히 일하는 것이야 나쁠 것이 없다. 그러나 그 일에 열심인 목적이 무엇인가? 한 치의 앞도 보지 못하면서 인도자를 거부해 버리는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분의 손길에 붙들려 인도되고 있는가?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편에 서있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을 기독교 신앙이라고 생각하는가?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은 하나님과 무관하다. 선지자 이사야는 기록하기를 인간의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와 다르다고 말했다.
가 말하노라.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다르니』(이사야 55:8).
  그리스는 로마에 의해 멸망당했지만 근원적으로는 인본주의 철학이 그 나라를 멸망시킨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공평하게 사상의 체계를 정돈할 수 없음을 증명해 주고 있다.
  사상의 선각자가 나와서 인도자의 역할을 했고, 무지한 대중이 그를 따른데서 모든 종교가 비롯되었다. 그러나 기독교는 성경을 믿음으로 시작되었다. 이것이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면이다. 다른 종교는 선각자가 나와서 자기가 생각했던 대로 글을 썼고, 그 추종자들이 그 글을 믿고 확산시켜 나가면서 이룩되었다. 그러나 기독교는 기록된 책에 따라 진리를 전파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 누구라도 그 책의 밖에 있는 것을 말하게 되면, 그 수가
10억이 되든 100억이 되든 10명이 되든 그는 이단이 되는 것이다.
  역사를 살펴 보면 로마는 정복자였을 뿐 어떤 근본 사상을 가진 문화도 없었다. 한국 문화도 그 뿌리가 취약했다. 유교(우상숭배)도, 불교도, 도교도 그 뿌리가 아니었다. 숭배할 대상이 없었기에 심지어 돼지머리까지 등장했던 것이다. 일본인들은 인간이 만든 신사를 군국주의, 천황 숭배와 연계시켜 사무라이 정신을 배양시켰다.
  로마는 헬라 사상을 답습하여 그 위에 로마 정치를 폈다. 즉
“철학, 예술, 건축, 사회관습” 등의 분야에 헬라 문화를 확산시켜 나갔던 것이다. 이것을 헬레니즘(Hellenism)이라 한다.
  반면에 기독교 사상은
1,200년 동안 서방세계에 영향을 주었고, 그 영향으로 12세기까지 인본주의 사상은 거의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 기독교 사상이란 것은 다름 아닌 카톨릭 사상이었기에, 유럽의 모든 대학들이 카톨릭 사상으로 지배되었다. 따라서 카톨릭을 반대한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 카톨릭의 박해를 피해 다 지하로 들어갔다. 루터, 쯔빙글리, 에라스무스 등이 그렇다.
  인본주의의 기초를 놓는데 기여한 가장 중요한 사상가 중 한 사람은 헌신한 도미니크 수도사인 토마스 아퀴나스(
Thomas Aquinas12251274)였다. 그는 후에 성자(Saint)가 되었는데,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인간이 하나님께 항거하여 타락하게 되었는데 그 타락은 완전한 타락이 아니라 부분적 타락이었다. 즉 의지는 타락하여 부패했지만 지성은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기들의 인간적 지혜에 의존할 수 있다.」
  이는 곧 사람은 자유롭게 성경의 가르침과 비그리스도인인 철학자들의 가르침을 혼용해서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말이다. 아퀴나스의 이런 발상은 헬라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B.C 384322)의 철학에 의존한 것이었다. 아퀴나스가 아리스토텔레스를 받아들임으로써 고대 비기독교 철학이 다시 자리잡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서구인들의 철학적 낭만과 인간의 지혜가 중세에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교회에서 성자(
Saint)로 인정받은 사람이 “죽은 철학”을 부활시키는데 기여했다는 점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 철학이 오늘날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종교인 “인본주의”가 된 것이다.

  신앙은 개인 신앙이다. 성경을 모르고, 구원받지 않고, 헌신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모른 채 이랬다 저랬다 방황하고, 기도하지 않거나, 기도의 핵심이 없거나, 주님과 온전한 영적인 교제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무엇만 구하는 것은 기도가 아니다.
  성경대로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바른 교회에서 바른 교리로 자라지 않는 사람들은 주님의 몸된 교회에 어떤 기여도 할 수 없다. 어떤 보수주의, 근본주의 교단이나 친교회에 속했다는 안도와 자부심이 우리의 신앙 성장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가? 의심하면서 아무리 성경을 읽어 보라. 자만에 차 있으면서 아무리 설교를 들어 보라. 자기도 그 정도는 안다고 생각하면서
10년을 강의실에 앉아 있어 보라. 모두 헛된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믿음은 주님 안에서 주님과의 교감 속에서 말씀을 통해 이루어진다. 성경에 권위를 두지 않는 사람들은 성경이 없어도 무방한 사람들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성경에 관해서 언급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 자처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그들은 누구에게 쓰임을 받고 있는가? 그들은 과연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인가? 하나님이 쓰셨다면 어떻게 쓰셨는가? 방언과 병고침이나 주장하는가? 신학도 아닌 것을 근거없이 주장하지는 않는가? 하나님께서 성경을 깨닫도록 조명도 주지 않으시면서 그들에게 목회하고 가르치라고 하시겠는가? 믿고자 하는 사람들을 오도하는 것도 하나님의 사역인가?

  인간의 지혜를 성경적 계시와 동등한 비중이 있는 수준으로 끌어 올려 놓음으로써 아퀴나스는 제멋대로 생각하는 학자들(비그리스도인 인본주의자들)에게 문호를 개방하였고 그들이 들어와서 점점 인간의 지혜에 뿌리 내리면서 하나님의 지혜를 버렸던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지혜가 불필요하다. 오히려 거추장스럽고, 어리석게 보일 뿐이다. 따라서 영적 성장이나 성경의 이해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들도 학위만 따면 되는 것으로 여긴다. 이들이 신학이란 학문을 가르치면서부터 완전히 인간화 되어버린 신학교들을 일컬어, 제멋대로 가르치고 제멋대로 배우는
“자유주의”(Liberalism)라 한다. “성경과 하나님을 빼버린 신학교는 고기 없는 햄버거와 같다.”
  이들은 향연을 내걸고 곳곳에 운집하여 형식적인 신학과 학위만 이야기하고 있다. 성경이 없는 신학교, 극단적 칼빈주의, 혹은 알미니안주의, 무천년 또는 후천년주의자, 교회가 환란을 통과해야 한다는 사람들, 세대주의 배격자, 교회를 단순한 제도적 조직체로 아는 사람들이 모두 여기에 포함된다.

  결국 인간의 지혜가 세상 사람들에게 진리가 되고, 하나님의 지혜는 오류가 되었다. 이 때문에 오늘날 인본주의자들은 당당하게 다음과 같은 것들을 공포한다.
  
반대 의견도 용납한다.
  
다른 사람들의 견해도 존중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신앙을 증오하고 그 절대성을 노골적으로 반대한다.
  
인본주의자들에게 기독교 신앙은 철천지 원수가 되었다.

  인본주의를 섬기려고 기독교 신앙을 배격함에 있어서, 그들은 강제적으로 공공 교육에서 성경을 축출하고, 성경적 도덕 원칙을 모두 반대하고 있다. 그 이유는 성경적 계시와 그리스도교 신앙은 도덕적 절대성으로 말미암아 공중의 적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문예부흥(Renaissance르네상스)은 아퀴나스(Aquinas)가 만들어 놓은 터전 위에 근대 인본주의를 태동시켰다.
  교육의 핵심이
‘하나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으로부터 만물의 척도인 ‘인간’에게로 점점 바뀌어 갔다. 결국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게 되었고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판단하기에 이르렀다.
  이탈리아의 피렌체가 문예부흥의 중심지가 되었는데, 인간의 형태가 곧 예술에 반영되었고, 사람의 영광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미켈란젤로는 다윗의 벌거벗은 상을 거대하게 만들어 그 시에 세웠다. 하나님은 인간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인간의 벌거벗음을 가리우려고 동물의 가죽으로 그것을 덮었는데, 인간은 하나님께 거역하여 다시 나체를 드러내었다.
  예술의 형태로서
“나체”(nude)는 르네상스의 강박강념이 되었고, 이것은 자유라는 이름으로 현대의 ‘포르노’(porno) 문학을 요구하는 근대적 인본주의를 낳았으며, 이는 도덕기준을 파괴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때부터 벗느냐 입느냐가 시비가 되었고, 사람들은 벗는 자유를 요구하게 되었다.
  이것이 소위 문예부흥이 남긴 것으로서, 인간 단독으로 시작한 르네상스 인본주의이다(프란시스
A. 쉐퍼).

  인본주의자들은 무엇을 믿는가? 그들이 믿는 인본주의(Humanism)는 어떤 것인가?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거부하고 성경의 영감성을 부인한다.
  
사후의 생과 혼의 존재를 부인할 뿐 아니라 구원, 하늘(천국), 지옥의 존재를 부정한다.
  
성경적 창조론을 부인한다.
  
절대적 가치관을 부인한다. 옳은 것도 없고 틀린 것도 없다. 도덕적 가치관도 자신이 결정할 나름이며, 그것도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지 않는 한 마음대로 한다.
  
남성과 여성의 구별을 없애버렸다.
  
성적 자유를 허용하며(서로의 합의하에), 혼전성교, 동성연애, 근친상간도 반대하지 않는다.
  
낙태의 자유, 안락사, 자살 방조 등을 허용한다.
  
부의 균등 분배(빈곤층을 줄여 동등하게 한다)를 주장한다.
  
환경이나 에너지를 관리하여 제한,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사회주의적인 하나의 세계 정부를 창립하려 한다.
     <The Humanist Manifesto I&II, Prometheus Books, Buffalo, N.Y.>
     <The Aspen Institute for Humanistic Studies, Freemen Digest Porvo, Utah.>

  인본주의자들은 휴일들의 의미를 변경시켜 그러한 어떤 휴일 기념에서 완전히 하나님을 제거해 버리고 자기들의 이상을 진작시키고 있다.
  크리스마스(
Christmas)는 이미 세속화된 휴일이 되어버려서 그리스도인으로서는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없으며, 민속의 날처럼 한갓 믿지 않는 사람들의 명절로 서로 의미없는 선물을 나눈다. 더 나아가 인류의 형제애(불쌍한 사람을 도와주는 날)를 나누는 날로 변모되었다. 게다가 요즈음 많은 인본주의자들에 의해 11일이 크리스마스보다 강조되고 있다.
  부활절(
Easter Day)도 인간의 노력으로 자연의 힘을 재생시키고 사람의 기운을 새롭게 하는 날로 기념하고 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는 거리가 멀다.

    인본주의자들은 다음 사항을 거부한다

   이적, 몸의 부활, 사후의 생
  
역사와 자연에서 하나님의 몫을 배제하여 그분을 쓸모 없는 존재로, 죽은 하나님으로 간주한다. 이것이 오늘날 인본주의자들의 “종교”이다.

  인본주의자들은 발전의 필연성을 믿으며, 그것을 “사회적 진보”라 부른다. 자연스럽게 필연적으로 더 높은 생활 형태로 진전되어 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40년동안 이 낙관적인 발전의 견해는 역사에 의해서 거짓임이 드러났다.

    인본주의 정부 형태

  인본주의 철학을 실천하는 정부는 암보다도 위험하다. 예를 들어 미국 공립학교의 교육 목표는 어떤 교과과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단지 학생을 새로운 사회질서에 맞게 바꾸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지혜를 배제한 교육과 그 실효성이 드러난 것이다.
  미국 학교에서는 인본주의 교육의 결과로 매일
13명의 젊은이들이 자살하고 있는데, 매년 증가 추세이다. 학생들의 술과 마약, 범죄 등은 37% 증가했고, 학생이 선생에게 공격하는 것은 77% 증가했다.
  
월 스트리트 저널(Wall Street Journal1972)에 따르면 1,700명의 선생이 학생들에게 심한 공격을 당했고, 그중 9명이 사망했다.
  
19767,000명의 학교 선생이 학생들에게 심한 공격을 당했다. 법으로 규제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선생이 공격하는 학생에게 체형을 가하지 못하게 규정을 만들어 놓았기에 이런 일이 생긴다. 시카고에서는 선생이 경찰관보다 더 위험에 처해 있다.
  
인본주의자들이 공연하는 목표 중 하나가 “가정을 파괴시키는 것”이다.
  
다듬어지지 않는 힘이 정부 기관과 법정의 손에 놓여 있어, 이러한 환경 아래서는 사회질서와 하나님께서 주신 인간의 권리가 결코 보호받을 수 없다.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어떤 것이 나쁜 것인지의 기준이 없이 모든 힘을 가진 국가가 계속 그들의 기준을 세워 실행하고 있다.

    인본주의는 학교의 종교가 되었다

   그들 스스로 인본주의를 “믿음”이요, “종교”라고 한다.(1961, 미국 연방 고등법원도 인본주의를 종교라고 선포했다.)
  
이제 인본주의는 하나의 종교가 되었다. 이것은 전통적인 교단과는 달리 교회 건물도 없고 주일 예배도 없지만, 그들 자신의 주일 학교와 교장이 있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법으로 종교와 국가를 분리하고 있다. 그러나 공립학교는 인본주의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이 공립학교 운영을 위한 세금을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 내고 있는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서 이런 인본주의적 신념이 어린이들의 마음속에 심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치 규명”이라고 알려진 이 교육기술은 레닌 수하에 있던 파블로프와 스탈린에 의해 개발되었다.
  
이런 교육은 그들의 부모의 가르침과 종교적 신념을 무시하라고 가르친다. 즉 부모의 영향력과 옳고 그른 하나님의 기준(성경)을 버리도록 가르친다. 그리고 절대성, 즉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없으니 자기의 가치관을 선정하라고 가르친다. 이것이 ‘공산주의의 교육 방법’이며 마지막 때 있을 일과 완전히 조화를 이룬다.

1 또 이것을 알라. 마지막 날들에 아주 어려운 때가 오리라.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고 교만하며, 하나님을 모독하고, 부모에게 불순종하며, 감사하지 아니하고,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고, 화해하지 아니하며, 모함하고 절제하지 못하며, 사납고,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 배반하고 분별이 없으며, 자만하고, 쾌락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리니, 이런 자들에게서 돌아서라. 』(디모데후서 3:15)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신 절대성이 없이 인간은 자기 나름대로 절대성을 설정해 놓고 그것으로 질서 있는 사회를 이룩해 보려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마귀는 교회에도 자기 사람들을 심어 놓았다. 즉 알곡 속에 독보리를 끼워 심어 놓았는데, 이 거짓 곡식이 좋은 곡식인 체하고 숨어 있는 것이다.

24 주께서 그들 앞에 또 다른 비유를 들어 말씀하시기를 “천국은 좋은 씨를 자기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25 사람들이 잠자는 동안 그의 원수가 와서 곡식 사이에 독보리를 뿌리고 가 버리니 26 싹이 나고 이삭이 패일 때에 독보리도 나오니라. 27 그 집주인의 종들이 와서 그에게 말하기를 ‘주인님, 당신의 밭에다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독보리는 어떻게 생겼나이까?’ 라고 하니, 28 그 주인이 그들에게 말하기를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하자 그 종들이 그에게 말하기를 ‘그러면 우리가 가서 그것들을 한데 모으기를 원하시나이까?’ 라고 하니, 29 주인이 말하기를 ‘아니라, 독보리를 한데 모으다가 곡식까지 함께 뽑으면 아니되느니라. 30 추수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두었다가,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여, 먼저 독보리를 모아서 불사르기 위하여 단으로 묶고, 곡식은 내 곡식 창고로 모아들이게 하리라.’ 고 하니라.” 하시더라. 』(마태복음 13:2430)

   “성경적 기독교”는 사탄에게서보다 그의 추종자들인 믿지 않는 교수들, 거짓 교사들, 위선자들로부터 더 많이 고통을 받고 있다. 많은 거짓 교사들이 복음의 사역자들로 가장하고 있다. 여기에는 교회를 파괴시키려 하는 계획된 음모들이 있는 것이다. 그 일부가 세계교회협의회(WCC) 속에도 있다.
  오늘날 인본주의는, 
세계교회협의회가(WCC) 하는 일에서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하나님의 일은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인들을 양육하는 것인데도 이들은 세상 일에 관여하여 교회를 위한다는 명목하에서 오히려 교회를 대적하고 있다.  교계에서는 이것이 교회일치운동으로 알려져 있다.(Ecumenical Movement WCC 교회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기독교 통합운동에 속아서 이런 운동이 기독교 신앙을 말살하는, 비기독교적인 라오디케아 철학의 내용임을 알지 못한다.  뉴에이지(New-age) 운동이란 이름으로 확산되고 있다.

1968년 웁살라 집회(Uppsala Assembly)의 보고서 내용 】
“우리는 모든 계층과의 협력의 중요성을 인정한다. 로마 카톨릭 교회와 다른 비회원 교회들, 비기독교 기관들과 다른 종교들의 추종자들과 종교가 없는 사람들, 그 밖에 어디에 있든지 선의의 사람들과 협력하기를 원한다. WCC의 교회통합운동은 그리스도인들을 규합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인류를 통합하려는 것이다.”

<1> 사탄은 이런 것들을 통해 공개적으로 성도들을 속이려고 한다. 이들의 기만은 그리스도의 신앙을 인본주의로 바꾸려는 것이다.
<2> 인본주의는 ‘현재’에 관심을 갖게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신앙은 ‘영원’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3> 인본주의의 “복음”은 인간이 인간과 화해하는 것이지만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이 하나님과 화해하는 것이다.
<4> 인본주의에서 죄는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잘못한 것이다. 성경적 기독교에서 죄는 하나님의 계시된 뜻에 불복종한 것이다.
<5> 인본주의는 그들의 목적 실현을 위해 세상의 힘이나 수단을 사용한다.그러나 성경적 기독교는 성령님의 임재와 능력에 의존함으로 그 효과적인 성취를 가져온다. 인본주의로는 세상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 수 없다. 인본주의는 하나님을 배제한 종교이기 때문에 현재에도 희망이 없고 내세에도 희망을 주지 못하는 위험한 적이다.

    프랑스 회의주의(Skepticismㆍ무신론)와 현대의 인본주의

  인본주의적 이상과 도덕과 철학으로 오늘날 대학생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들은 프랑스의 회의론자 볼테르(Voltaire16941778)와 루소(Jean-Jacques Rousseau17121778)이다. 이 두 사람은 예수회 대학에서 교육받았다. 두 사람 다 초자연적인 것을 거부하고 윤리적이고 부도덕적인 것만을 채택했다.
  볼테르는
“계몽의 아버지”라 불린다(합리주의). 가정 교사의 영향으로 일찍이 그리스도의 신앙을 거부하고 자기 부모의 신앙을 적대시하였다. 믿음에 대한 회의는 색안경과 같다. 만물을 그대로 볼 수 없고, 색안경의 색깔대로 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계시와 초자연적인 것에 관해 믿음을 배제한 인간의 관조만을 주장했다.
  볼테르는 페르니에 있는 그의 집에다 머리에는 초생달, 발 밑에는 둥근 달이 그려진 다이아나 여신의 벽화를 걸어 놓았다(다이아나가 인간을 도우려고 허리를 구부리고 있다).
  문예부흥의 인본주의적 요소는 종교개혁과는 정반대 입장이었고 계몽운동도 종교개혁과 철저히 반대 입장이었다.
  흔히들 말하기를 많이 못 배운 사람이 신앙을 갖는다고 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현명하고 잘 교육받는 사람들 중에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존 위클리프(
John Wycliffe13201384), 마틴 루터(Martin Luther14831546), 존 칼빈(John Calvin15091564), 아이작 뉴턴(Sir Isaac Newton16421727),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17031758)와 같은 사람들을 보라.
  회의론자들은 믿음의 사람들이 쓴 책들을 거부했고, 읽는다 해도 자연주의자의 관점에서 종교를 이해했을 뿐이다.
  
1789826일 인권선언(Declaration of the Right of Man) 프랑스 혁명, 피의 혁명, 그러나 혁명을 일으킨 자들은 살해되었다.
  
17929 1,300명의 죄수들을 죽였다. 정부가 40,000명의 백성(대부분 농부)을 살해했다.
  
프랑스 혁명은 러시아 혁명으로 이어졌다. 무정부냐 억압이냐?
  
기독교 신앙이 없으면 혼란과 무정부상태와 살인과 불의가 정의를 억압하게 된다. 왜냐하면 절대성이 없어지고, 믿음의 주체가 없으면 인간은 마귀의 손 안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계몽운동의 유토피아인 이성자연행복발전, 자유는 철저하게 실패했다. 하나님과 진리를 배제한 인간운동, 공산주의라는 이념전쟁, 그것들이 인간에게 남겨 준 것이 무엇인가? 파괴고문살인공포위협밖에 없지 않은가?
  
“절대성”을 제거하면 늘 혼란만을 낳게 되고, 혼란이 있으면 억압이 있게 된다는 점을 인식하기 전에, 계몽운동의 인도주의자들은 자기들의 성급함만을 깨달아 다른 두 가지 방법, 즉 책과 교육으로 인간의 마음을 공략하기로 했다.

  15세기에 가장 뜻있는 발명은 인쇄기의 발명이다(1451년).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인쇄기로 맨 처음 출판하게 된 것은 “성경”이었다. 역사상 처음으로 영국과 북유럽에서 보통 시민이 성경을 자기 나라 언어로 읽게 된 것이다. 또한 루터와 칼빈 같은 개혁주의자들이 책을 펴내어 하나님의 지혜와 계시를 사람들에게 설명하게 되었다.
  반면 계몽운동을 하는 인본주의자들은 책과 교육을 통해서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는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음을 알고 그들의 철학을 예술소설연극시와 교육을 통해서 확산시켜 나갔다. 볼테르 혼자서 83권의 책, 소책자, 희극 등을 써서 프랑스와 남부 유럽 전역을 휩쓸었다.

 이 송오 /『 영적 전쟁을 대비하라ː(제13장) 』...

   영적 전쟁을 대비하라
      by
      Song O   Lee

      1997Korean by Word Of God Preservation Society.
      Seoul, Korea. 

13장ː인본주의란 무엇인가? 】

(히브리서 12:1, 2)

1 ○ 그러므로 이처럼 많은 구름 같은 증인들이 또한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 우리 또한 모든 무거운 것과 쉽게 에워싸는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 우리 앞에 놓인 경주를 하자. 2 그리고 우리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자기 앞에 놓인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견디시고 수치를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의 보좌 오른편에 앉으셨느니라.

(시 편 139:124)  ─ 다윗의 시,악장에게. ─

1 ○ 오 여, 주께서는 나를 살펴보셨으며 또 나를 아셨나이다. 2 주께서는 나의 앉고 서는 것을 아시며 나의 생각을 멀리서도 이해하시나이다. 3 주께서는 나의 길과 나의 눕는 것을 샅샅이 아시며 나의 모든 길들을 익히 아시나이다. 4 보소서, 오 여, 주께서 모두 아시나니 알지 못하시는 내 입의 말은 한마디도 없나이다. 5 주께서는 나를 앞뒤에서 감싸셨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6 그와 같은 지식이 내게 너무 경이롭고 높아서 내가 이를 수 없나이다. 7 ○ 내가 주의 영으로부터 벗어나 어디로 가며 주의 면전에서 벗어나 어디로 피하리이까? 8 내가 하늘로 올라갈지라도 주께서는 거기 계시며 내가 지옥에 잠자리를 마련한다 하여도, 보소서, 주께서는 거기 계시나이다. 9 내가 아침의 날개를 달고 저 바다의 끝 부분들에 거할지라도 10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11 만일 내가 말하기를 “실로 어두움이 나를 덮고 밤이 나를 두른 빛이 되리라.” 할지라도 12 정녕, 어두움이 주로부터 숨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빛나리니 어두움과 빛이 주께는 똑같나이다. 13 주께서 나의 내장을 소유하셨고 주께서 내 어머니의 태에서 나를 덮으셨나이다. 14 내가 주를 찬양하리니 이는 내가 놀랍고도 경이롭게 지어졌음이니이다. 주의 지으심이 기이함을 내 혼이 잘 아나이다. 15 내가 은밀한 가운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가장 낮은 부분들에서 기묘하게 지음을 받았을 때 나의 형체가 주로부터 숨겨지지 아니하였나이다. 16 내 형체가 완성되기도 전에 주의 눈이 그것을 보셨으며 나의 지체들이 전혀 없고 형성되어 가는 중에도 주의 책에는 그것들이 다 기록되어 있었나이다. 17 ○ 오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들이 내게 또한 얼마나 귀중한지요! 그 수가 얼마나 많은지요! 18 내가 그것들을 헤아리려 하면 그 수는 모래보다도 더 많나이다. 내가 깨어날 때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이다. 19 하나님이여, 주께서 반드시 악인들을 죽이시리이다. 그러므로 너희 피흘리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라. 20 그들이 주께 대적하여 악하게 말하며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을 헛되이 취하나이다. 21여, 내가 주를 미워하는 자들을 미워하지 아니하며 주를 대적하여 일어나는 자들을 혐오하지 아니하나이까? 22 내가 그들을 철저하게 미워하며 그들을 나의 원수들로 여기나이다. 23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생각들을 아소서. 24 내게 무슨 악한 길이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디도서 2:1∼15)

1 ○ 그러나 너는 건전한 교리에 부합되는 것들을 말하며, 2 나이 많은 남자들은 신중하고 근엄하며, 절제하고 믿음과 사랑과 인내함에 건전하게 하고, 3 나이 많은 여자들도 이와 같이 되게 하여 행실이 거룩하고 모함하지 아니하며, 술에 인박이지 아니하며, 선한 것들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어, 4 그들이 젊은 여자들을 가르쳐서 절제하고 남편을 사랑하며 자녀들을 사랑하고, 5 신중하며 정숙하고 집안 일에 힘쓰며 선하고 그들 자신의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모독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6 이와 같이 젊은 남자들에게도 신중하게 행동하도록 권하되 7 매사에 네 스스로가 선한 일에 본을 보이고 교리에 있어서는 부패치 않음과 신중함과 진실함을 보이며 8 건전한 말을 하여 정죄받지 않도록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부끄러움을 당하여 너희를 악하다고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9 종들에게는 권하되 자기 주인에게 복종하고 매사에 그들을 기쁘게 하며, 거슬러 말하지 말고 10 착복하지 말며, 온전히 선한 충성을 보이게 하라. 이는 그들이 매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리를 돋보이게 하려 함이니라. 11 ○ 이는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서, 12 우리를 가르치시되, 불경건과 세상 정욕들을 거부하고, 우리로 신중하며, 의롭고 경건하게 이 현 세상을 살아가게 하시며, 13 그 복된 소망, 곧 위대한 하나님이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음이니, 14 그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은 우리를 모든 죄악에서 구속하시고 자신을 위해 정결케 하사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독특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5 ○ 이런 것들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를 가지고 책망하여 아무도 너를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라.

(마태복음 7:1321)

13 ○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이는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넓고 그 길이 광대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으나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그 길이 협소하여 그것을 찾는 자가 적음이니라. 15 ○ 거짓 선지자들을 조심하라. 그들은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은 약탈하는 이리들이라. 16 너희는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게 되리니, 사람이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거둘 수 있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느니라.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으며,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 속에 던져지리라. 20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게 되리라. 21 ○ 나에게 ‘여, 여.’ 하고 부르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라야 되느니라.

(시 편 119:1호세아 14:9)

119:1의 법 안에서 행하여 그 길에서 더럽혀지지 않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Blessed are the undefiled in the way, who walk in the law of the LORD. 14:9 누가 현명하여 이런 일들을 깨닫겠느냐? 누가 총명하여 그것들을 알겠느냐? 의 길들은 올바르니 의인이 그 안에서 행하리라. 그러나 범죄자들은 그 길에서 넘어지리로다. Who is wise, and he shall understand these things? prudent, and he shall know them? for the ways of the LORD are right, and the just shall walk in them: but the transgressors shall fall therein.

(누가복음 12:40)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너희가 생각지 않은 시간에 인자가 오리라.”고 하시더라. ─ Be ye therefore ready also: for the Son of man cometh at an hour when ye think not.

Bible believers

 『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rightly dividing the word of truth)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 』(디모데후서 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