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9. 10. 22:07

“ 일곱 체계ㆍSEVEN SEVENS ” (진리의 지식)

(진리의 지식) [20230905] ● 일곱체계ㆍSEVEN SEV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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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eaceful Hymns on Violinㆍ잔잔한 찬송가 바이올린 연주 모음┃(53:39)

● 일곱 체계ㆍSEVEN SEVENS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라. (시편 12:6)┃

  [1] 일곱 체계

  이 책의 주제는 어린 아이들이 마시는 순수한 말씀의 젖이라기보다는 장성한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단단한 음식이 될 것 같다(히브리서 514). 성경에 웬만큼 익숙하지 못한 사람은 어쩌면 좇아오다가 중도에 길을 잃어버릴지도 모르겠다. 오늘날 배교한 라오디케아 시대의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심오한 주제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설명해 줘도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지 못한다. 웬만한 성경 교사들은 이러한 주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될지 감도 잡지 못한다. 어쨌든 오늘 나는 성경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룰 것이다. 궁극적으로 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그 재림의 시기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한다.

  [2] 자연 세계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시기에 관해 말하려고 할 때 그 근거와 기준으로 삼는 것은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성경을 사사로이 해석하여 세워진 여러 가지 종말론 체계들에는 관심이 없다. 무오한 성경과 더불어 오류가 없이 100% 확실한 시간의 체계는 ‘자연의 법칙’이다. 성경을 기록하신 하나님은 하늘에서 눈을 내리시는 바로 그 하나님이심을 기억하라. 우선 피아노를 보도록 하자. 피아노는 일곱 개의 음을 가지고 있다. 건반은 이보다 훨씬 많지만 음은 일곱 개밖에 없다. 이 세상에 수없이 다양한 종류의 피아노가 있을지라도 음은 일곱 개뿐이다. 바흐도, 베토벤도, 브람스도, 슈만도, 헨델도, 차이코프스키도, 라흐마니노프도, 스트라빈스키도 일곱 음계 이외의 악보는 써 보지 못했다. 음은 일곱 개뿐이다. 여덟 번째 음은 한 옥타브가 새로 시작되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피아노의 검은 건반은 반음을 나타낸다. 비틀즈가 되었던 마이클 잭슨이 되었던 그 어떤 종류의 음악이든 음은 일곱 개뿐이다.
  자, 그럼 이번에는 색깔로 가 보자. 구벵스, 다빈치, 미켈란젤로, 고갱, 피카소 그 어떤 사람도 일곱 가지 색깔로 그림을 그렸다. 다시 말해 빨강
노랑파랑주황초록자주검은색을 갖고 있으면 모든 다른 색들은 이 일곱 가지 색에서 나왔다는 말이다. 흰색은 색이 아니다. 흰색은 색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우리는 백인종과 흑인종 대신에 백인종과 유색인종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지 않는가? 우리는 흰색이 무채색임을 인정하고 있지 않는가? 실로 그렇다). 일곱 색깔을 갖고 있으면 모든 색깔을 다 갖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몸이 매
7년마다 바뀌는 것을 알고 있는가? 당신의 몸에 있는 모든 세포는 매 7년마다 다시 만들어진다.
  또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은 일곱 개의 지체를 갖고 있다.
‘머리발’ 모두 일곱 개의 지체를 갖고 있고 이것은 그 누구도 바꿀 수 없는 과학적이고 불변하는 법칙이다. 이 모든 자연 법칙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일곱으로 일하신다. 사람의 몸은 줄기와 같고 이 줄기에서 나온 것은 모두 지체이다. 사람은 일곱 개의 지체를 갖고 있다.

  [3] 성경의 예

  성경의 마지막 책, 요한계시록에는 일곱 교회가 나오고 일곱 호리병과, 일곱 나팔과, 일곱 천사와, 일곱 인물이 등장한다. 이 마지막 책은 일곱개의 인을 갖고 있고 마지막 장(22장)에는 “책”이란 단어가 일곱 번 나온다. 하나님께서는 항상『일곱』(Sevenㆍ7七)을 기준으로 일하신다. 예를 들어, 구약성경에 보면 주님께서는 6일 저녁과 6일 낮 동안에 땅을 다시 만드셨으며 일곱째 날에는 쉬셨다. 하나님께서는 6일간 일하시고 일곱째 날에는 쉬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율법하의 유대인들에게 “너희들은 일곱째 날 안식하여야 한다.”고 하셨다.《에스겔》20에 보면 일곱째 날 즉 안식일은 주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표적이며 이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을 거룩케 하시고 그분이 주 하나님이심을 알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우리 이방인들이 아니다.) 일곱째 날에 안식하고 그 날을 거룩히 지키라고 말씀하셨다. 심지어 그 날에는 불을 지피거나 장작을 패지도 못하게 하셨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일곱째 날이 아닌 첫째 날에 연보를 거두었으며《사도행전》20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첫째 날에 모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일주일의 첫째 날 “빵을 쪼개” 함께 먹었다. 주 예수님께서는 일주일의 첫째 날에 해당되는 오순절에 강림하셨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일주일의 첫째 날을 지킨다. ‘안식교도’(제7안식일 예수재림교)들이 일곱째 날을 지키는 이유는 자신들을 그리스도인이 아닌 구약시대의 유대인들로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안식일을 표적으로 주셨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6주 동안 일하고 나면 일곱째 주일은 매우 중요한 명절을 치루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즉 이스라엘은 일곱째 주일이 끝나면 오순절이라는 명절을 지켜야 한다. 일곱 주일 즉 일주일에 7일간 일곱 주일, 즉 49일이 지나면 그 다음날(즉 첫째 날)은 성령님이 강림하신 오순절이다. 오순절은 수확의 날로 첫 열매들의 날이다(초실절).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7일을 기준으로 일하시며 동시에 7주를 기준으로 일하신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레위기》231526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다. “너희는 6개월간 일하여야 한다. 그리고 나면 일곱째 달은 특별한 달이 될 것이다. 일곱째 달은 너무도 중요한 달이기 때문에 너희는 세 번의 명절을 지켜야 한다. 너희는 장막절, 나팔절, 그리고 속죄일을 일곱째 달에 지켜야 한다.” 가장 중요한 명절이 일곱째 달에 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7일, 7주, 그리고 일곱 달을 기준으로 일하신다. 일곱이 항상 기준이다. 이것은 내 개인의 의견이 아니고 변경될 수 없는 무오한 사실이다. 이 일곱의 법칙은 당신이 숨쉬는 것과 마찬가지로 바꿀 수 없는 원칙이다. “하나님께서는 일곱으로 일하신다.”라는 과학적인 원칙은 그 어떤 과학자도 바꿀 수 없는 불변의 법칙이다.
  하나님께서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더 나아가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6년 동안 일하라. 그러나 7년째는 특별한 해가 될 것이다. 이는 일곱째 해는 주께 안식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출애굽기 2115레위기 25110). 그분은 일곱째 해에는 히브리 종을 값없이 내보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에게 “너희는 6년간 농사를 짓고 7년째에는 땅을 쉬게 하라. 일곱째 해는 안식년이 되리니 땅이 쉬리라.”고 말씀하셨다. 오늘날 전세계가 식량 문제로 골치를 썩고 있는 것은 모든 나라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이 안식년을 지키지 않아 땅이 엉망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원칙을 어기자 땅은 지력이 고갈되고 말았다. 땅은 매 7년마다 쉬도록 되어 있었다. 오늘날 왜 사람들이 비타민 영양제를 사 먹는가? 그것은 땅이 더 이상 충분한 비타민을 제공해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땅은 고갈되었다(나는 지금이라도 이 원칙을 지키라는 제안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때가 너무 늦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하시든지 일곱을 기준으로 일하신다. 구약에서 하나님께서는
“나 자신을 두고 맹세한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이 무슨 뜻인가? 맹세한다는 히브리어는 “일곱을 행한다.”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맹세한다는 말은 일곱의 원칙하에 내 자신을 놓겠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일곱으로 계산하신다. 예를 들면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는 7년씩 일곱 번을 계산하라. 그러면 49년이 될 것이다. 50년째가 되면 너는 나팔을 불고 환희의 해를 선포하라. 그리고 모든 땅에 두루 자유를 공포하라.”

  [4] 재 림

  자, 이제까지 언급된 사실들을 근거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이번 설교의 초점이 바로 이것이다. 이번에는다니엘로 가서 복잡한 계산은 하지 않겠다(예들 들면,,, 황폐케 하는 가증함으로부터 1233일이 있을 것이요, 마지막까지는 3030일이 될 것이며, 그 중간에 215일, 그 다음에 345일, 그리고 마지막 4분의 1216일이 될 것이다. 등등...). 일곱으로 재림을 계산하겠다. 성경에 일곱이 나오면 끝이 오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7년을 일곱 번 지내고 난 후 즉 49년이 지난 후 50년째에는 환희의 해를 선포하고 자유(해방)를 선포하라고 말씀하셨다. 필라델피아에 가면 “자유의 종”이 있다. 그 위에는 “모든 땅에 두루 자유를 공포할지니라.”고 씌어 있다. 아마 이 말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알고 있는 필라델피아 시(市)의 고등학교 선생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어쩌면 이 말이 어디에서 인용된 것인지를 알고 있는 목사도 드물 것이다. 도대체 설교자들은《레위기》25에서 무엇을 읽는 것인가? 자유의 종 위에 “모든 땅에 두루 자유를 공포할지니라.”라는 말을 새겨 놓고도 그 종이 있는 도시의 가장 유식하고 부유한 사람들마저도 그 말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모르고 있다. 이것이 오늘날의 미국이다. 아이큐가 150이 넘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다. 오늘날 우리 시대의 사람들은 성경을 너무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이 세상이 어떻게 될 것인지 전혀 모르고 있다.
  한번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예후가 한 친구를 마차에 태워 돌길을 내려가고 있었는데 데릴라가 큰 가위를 들고 그의 머리털을 잘라 버렸다. 그는 동굴로 갔고 메추라기가 아침에는 까마귀를 물어다 주고 저녁에는 만나를 가져다 주었다.” 그런데도 그 사람들은 내가 성경에 나와 있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요즘 사람들은 성경을 전혀 모른다. 그들은 진리를 말하고 있는지 거짓을 말하고 있는지 알아 차리지를 못한다. 나는 어느 집회에 가서 사람들에게 “내 눈이 주의 영광스런 오심을 보았네. 그분은 진노의 포도가 쌓여 있는 포도통을 밟고 계신다네.”라는 노래에 대해 물었다. 이 노래가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아는 설교자가 미국에 50명이나 될는지 의심스럽다. 이 노래는《요한계시록》14, 19장에서 나왔다. 이 노래를 부른 ‘쥴리아 워드 호위’는 주님이 오시는 것을 결코 본 적이 없다. 그녀는 청중을 사로잡고 싶어서 이 노래를 불렀고 노동운동을 하는 친구들은 이 노래를 부르면서 자기들이 진노의 포도통을 밟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기까지 포도는 밟히지 않다.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 없이 “왕국을 세우고 싶은” 자들이 착각하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 노래의 뒷부분에는 “백합화의 아름다움 속에 그리스도께서 바다 건너 태어나셨네.”라고 되어 있다. 그분이 말구유에서 태어나신 것도 모른단 말인가요? 말구유에서 피는 백합화를 본 적이 있는가? “당신과 나를 변화시키시는 그분의 품 안에 영광을 품으시네.” 이 가사 역시 당신이 그분을 신뢰하지 않으면 해당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그분이 인간을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 오셨으니” 이 가사도 틀렸다. 그분은 죄인들을 구원하려고 오셨다. “우리 모두 사람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세.” 당신은 그 누구도 해방시킬 수 없다. 왜냐하면 성경은『...죄를 짓는 자는 누구나 죄의 종이니라.』(요한복음 834b)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이렇게 선언하고 있다.『그러므로 만일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참으로 너희가 자유롭게 되리라』(요한복음 8:36). “사람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자.”는 말은 무슨 뜻인가? 인간은 그 누구도 해방시킬 수 없음을 모른단 말인가? 당신이 자신의 목숨을 수천 번 바친다 해도 아무도 자유롭게 할 수가 없다. 지금 이 순간 감옥에 갇혀 있는 어떤 사람들 중에는 당신들보다 더 자유로운 사람도 있다. 당신이 구원받지 못했다면 당신은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당신을 자유롭게 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자유롭게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신은 바울이 뭐라고 했는지 알고 있는가? 그는 “나는 자유롭다. 그러나 나는 주님의 노예다. 나는 주님을 위해 이렇게 묶여 있노라.”고 했다. 당신은 그 누구도 자유롭게 할 수 없다.
  북부에 사는 사람들은
“그분의 진리가 행진하고 있다네.”(His truth is marching on)라는 노래를 부르지만 그분의 진리는 행진은커녕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이사야 5914). 오늘날은 세계 역사상 진리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가장 적은 시대일 것이다. A.D 500년 이래 오늘날만큼 구원받는 사람이 적은 시대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분의 진리가 행진하고 있다네.”라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니... 선교사들에게 진리가 행진 중인지 물어 보라. 그분의 진리는 그 어느 곳에서도 행진하고 있지 않다. 온 세계의 절반 이상이 완전히 버림받았고 이 세상의 4분의 3이 아닌 10분의 9가 버림받은 채 지옥으로 달려가고 있다. 그런데도 그분의 진리가 행진 중이라고 우길 것인가? 사람들은 그분의 진리를 “변개”시키는가 하면 그분의 진리를 “개정”하기도 했고 그분의 진리 위에 침을 뱉기도 했다. 이사야 선지자는 “진리가 길에 쓰러졌다”고 말했다. 그래도 어떤 사람은 “그 노래는 멋진 음악이 아닌가?”라고 반발한다. 그렇지만 그 말은 대단한 신성모독임을 잊지 말라. “내 눈이 주의 영광스런 오심을 보았네.”라는 노래도 거짓말이다. 주님은 영광스럽게 오신 적이 없다. 그분은 굴욕 가운데 오셨다. 성경은 그분께서 다시 오실 그때 영광의 보좌 위에 앉으실 것을 말하고 있다. 그분은 영광 중에 오신 적이 없다. 남북전쟁 때 흑인들이 이런 노래를 불렀다. “오 선생님께서 ‘하하’ 말씀하시고, 우리 흑인들 ‘호호’ 화답한다네. 환희의 해에 왕국이 다가옴이 아닌가.” 이 노래도 미리 앞당겨 샴페인을 터뜨린 셈이다.
  오늘날 미국의 남침례 교회에 가 보라. 어떤 집사가 손에 헌금 쟁반을 들고 이렇게 말하는 것을 종종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주여, 이 안식일날 저희가 영과 진리로 당신을 예배하러 당신의 집에 올 때 저희를 축복하소서. 우리가 마땅히 기도해야 될 사람을 위해 기도하오니 병든 자와 고통 가운데 있는 이들을 기억하시고 해외에서 사역하고 있는 선교사들을 기억하시며 이 십일조와 헌금에 축복하셔서 당신의 왕국이 퍼져 나가거나 당신의 왕국이 임하게 하옵소서.” 그러나 왕국(나라)은 임하지 않고 있으며 교회 역시 임하는 것이 아니고 떠나간다(나는 유대인들처럼 “주여, 당신의 왕국이 임하옵소서.”라고 기도하는 대신 “주여 당신의 교회가 떠나가게 하소서.”라고 기도한다). 멍청한 사람들이 “왕국이 오고 있다”는 노래를 부르고 있지만 그 왕국은 오지 않았다. 주의 왕국이 임한다고 노래했던 그 흑인들은 그후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을 맛보았다. “환희의 해에 왕국이 임했다네.”는 어디가고 전쟁의 소문만 늘어가는가? 이 모든 일이 왜 생기는 것인가? 그것은 미국 사람들이 성경을 너무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저녁에 잠들 때까지 성경을 인용하면서도 자신들이 성경을 인용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다.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성경을 인용하고 있다.
“네가 말했다.”(You said it)라는 일상표현은 “그렇다.”는 뜻으로 성경에서 나온 것이다. “네가 무엇을 아느냐?”(What do you know?) 역시 욥기에서 나온 표현이다. 이외에도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성경을 인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They gave him the horse laugh. ” ─ (욥기)
He's half baked. ” ─ (호세아)
Have a glass of beer. ” ─ (민수기 21장)
She used him for breach of promise. ” ─ (출애굽기)
  이 밖에도 수백 가지 표현들...
 (※ 이에 관해서는Danny C. Dodge,Why we say, what we say!」〉를 읽어 보라.)

  오늘날 미국의 주일학교 선생들은 성경을 전혀 모른다. 그저 조그마한 낡은 팜플렛을 들고서 신약성경의 교리가 마르크스 교리서와 비슷한 것처럼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술집에 가서 맥주(beer)가 어디에서 나온 말인가를 물어 보라. 아무도 모른다. 그것은 1611년판《킹제임스성경》《민수기》21에 나오는 단어이다.

  [5] 일곱 번째 천 년

  성경, (베드로후서 3:8)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사랑하는 자들아, 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시편 90:4)『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단지 지나간 어제 같고 밤의 한 경점 같나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법칙은 1, 2, 3, 4, 5, 6 그리고 ‘안식’이다. 따라서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고 한다면 이 옛 땅은 이곳에 6천 년 동안 있게 될 것이고 그 일곱 번째 천 년은 안식의 기간이 될 것이다. 성경의 원칙에 따르면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어떤 분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목사님, 제 생각에는 목사님께서 성경에 없는 것을 사사로이 해석하시는 것 같습니다.” 과연 그럴까? 하나님께서 자신이 세우신 일곱 체계를 한 번이라도 무너뜨리신 적이 있는가? 날(日day)들에 있어 그 원칙이 무너진 적이 있는가? 주(週week)들에 있어 그 원칙이 무너진 적이 있는가? 달(月month)들에 있어서는 어떠한가? 연(年year)들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곱의 원칙이 무너진 적이 있는가? 한 번도 없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실패하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주님은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천 년, 이천 년, 삼천 년, 사천 년, ..., 칠천 년째는 안식의 시기이다. 어떤 사람들은 “당신은 천 년도 그런 식으로 계산된다는 사실을 어떻게 아십니까?”라고 묻는다.《요한계시록》20에 보면2 ...그를 천 년 동안 묶어 두니 3 ...천 년이 찰 때까지는 민족들을 다시는 미혹하지 못하게 하더라... 4...또 예수에 대한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목베임을 당한 사람들의 혼들도 보았는데, 그들은 그 짐승에게나 그 형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의 표를 그들의 이마 위에나 손에도 받지 아니하였더라. 그러므로 그들은 살아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을 통치하더라. 5 그러나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 나머지는 천 년이 끝날 때까지 다시 살지 못하리라... 6 ...그들이 하나님그리스도의 제사장들이 되어 천 년 동안 그와 함께 통치하리라. 7 그 천 년이 끝나면 사탄이 그의 감옥에서 풀려나,』(요한계시록 202∼7)라고 되어 있다. 다시 말해 6번에 걸쳐 “천 년”이라는 단어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한다. 사탄은 미래의 어느 시기에 천 년 동안 묶일 것이다. 하지만 현재 사탄은 묶여 있지 않다. 그런데도 무천년후천년주의자들은 사탄이 현재 묶여 있는 것처럼 말한다. “우리는 현재 왕국을 세워가고 있습니다. 얼마 후면 우리 모두 뒷뜰에 수영장을 갖춘 집에 살게 될 것이고 모든 학비는 무료가 될 것입니이다. 모든 인종들이 혼혈이 되어 더이상 인종차별이 없을 것이고 결국 전쟁이 없는 완벽한 세계가 올 것입니다. 바로 이때 주님은 재림하실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돌아오시기 전에 마귀가 1000년 동안 묶여야만 한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한번 말해 보라. 언제 마귀가 묶였는가? 이렇게 질문하면 그들은 이렇게 둘러댄다. “오! 당신은 전천년주의자군요. 당신은 광신자입니다. 성경을 너무 문자적으로 받아들이신단 말입니다. 마귀는 지금(?) 묶여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우리는 이렇게 대꾸해 주고자 한다. “그래요... 마귀가 참 기다란 쇠사슬을 갖고 있군요!”

  [6] 43

  성경을 들고 성경에 나와 있는 시기들을 확인해 보자. 갈보리 십자가 사건은 A.D 33년경이다. 성경의 연대기에 다르면 아담과 이브는 B.C 4000년경 에덴의 동산을 떠났다. 어떤 사람들은 또 이렇게 반박하려고 할 것이다. “그거야 어셔 주교(Usher, Archbishop)가 만든 연대표 아닙니까?” 어셔 주교는 성경에 나와 있는 연대를 근거로만 계산했을 뿐이다. 그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이 옳지 않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라고 말씀하실 분도 계실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성경이 틀리다는 말이 된다. 왜냐하면 그는 단지 성경에 나와 있는 연대들을 계산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런 계산이 나왔는지 궁금한가?《킹제임스성경》을 열어 보라. 그리고 솔로몬의 성전 봉헌을 B.C 1000년으로 놓고 계산을 시작해 보라. 그 이전시대의 연대를 하나씩 더해 가 보라. 그러면 아담과 이브의 시대가 계산되어 나온다. 바로 이것이 성경에 나와 있는 그대로의 인류의 연대표이다.

  나는 위의 방법보다 더 나은 방법을 갖고 있다. 천 년, 이천 년, 삼천 년, 사천 년, 예수 그리스도, 천 년, 이천 년, 삼천 년 도합 칠천 년 이것이 옛 땅과 옛 하늘의 역사의 끝이다. 4 3을 주목하라. 당신은 성경에서 4 3을 공부해 본 적이 있는가? 실로 놀라운 진리가 담겨져 있다. 꼭 공부해 보라. 우리는 하나님께서 7을 기준으로 역사하신다는 것을 배웠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일곱을 다시 4 3으로 나누신다. 당신은 성경을 읽으면서 이 사실에 주목해 본 적이 있는가?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하면서 기도했을 때 그는 4가지 간구를 드렸다. 이 4가지 간구는 각각 3구절로 되어 있다. 그 다음 6구절의 삽입구가 들어가고 그 다음 3구절은 끝마무리로 되어 있다. 당신은《요한계시록》24교회가 등장하고 그 다음 장에 3교회가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한 적이 있는가? 당신은 하나님께서 왜 4 3으로 나누신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제자들의 기도(
“주기도문”이라고 잘못 알려져 있다. 주님의 기도는 ‘요한복음 17장’이며 ‘마태복음 6장’은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문이다. ─ 역주.)를 자세히 살펴본 적이 있는가?9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옵시고, 10 아버지의 왕국이 임하시오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태복음 6:9, 10) 하나님께 4가지 기도가 드려졌고, 그 다음 제자들 자신을 위해 3가지의 기도가 드려졌다. 어째서 이처럼 4 3을 나누시는 것인가? 당신은 창세기를 읽어 보았을 것이다. 첫째 날 그분은 빛이 있으라 하셨고 둘째 날은 창공을 만드셨고 셋째 날은 땅과 바다를 조성하시고 넷째 날은 해와 달과 별들을 만드시고 넷째 날이 지나고나자 하나님께서는 “생명”이 있는 생물들을 창조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생명”이라는 단어에 주목해야 한다. 어째서 하나님께서는 넷째 날과 다섯째 날 사이에 “생명”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등장시키고 계실까? 당신에게는 이것도 우연이라고 생각되는가? 인류 역사 4천 년이 지난 후 “내가 곧 생명이라”고 외치신 그분이 나타나신 것과 창조 제4일이 지난 후 “생명”이 창조되는 것은 우연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이 예리한 지성을 갖추었기 때문인가?
  당신은
《요한일서》5에서 이런 구절들을 읽어 본 적이 있는가?12아들이 있는 자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아들이 없는 자는 생명이 없느니라. 13 내가 하나님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런 것들을 씀은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며...』《요한복음》3을 보라.16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로마서》5을 보면21 ...예수 그리스도 우리 로 인해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려는 것이니라.』고 되어 있다. “생명”, “생명”, “생명”, 이 얼마나 놀라운 말인가? 그런데 이 생명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곳이 바로 45 사이란 사실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당신은 성경에서 날들(days)에 관해 공부해 본 적이 있는가?《요한복음》 1, 2장에 보면 침례인 요한은 예수님을 보고29 ...보라, 세상 죄를 제거하는 하나님어린 양이라.』고 말했다. 그 다음날 나다나엘은 주님을 보고49 랍비여, 주는 하나님아들이시요, 주는 이스라엘의 이시니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주님께서는51 ...너희가 이 후로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인자 위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리라.』고 대답하셨다. 그리고 나서 셋째 날에 갈릴리 카나에서 혼인식이 있었다. 당신은 혼인식이 성경에서 무엇을 묘사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가?《요한복음》11에서 나사로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39 여, 죽은 지 이미 나흘이 되었기에 지금은 악취가 나나이다.』라고 말했다. 주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바로 그것이다. 4일이 지난 후에 우리는 죽은 사람들을 불러낼 것이고 다시 이틀이 지난 후에도 그러할 것이다.” 그러니까 인류 역사 4000년이 지난 후 구약 성도들은 위로 올라갈 것이고(마태복음 2752) 신약 성도들도 다시 2000년이 지나면 휴거 될 것이다.《마태복음》27《고린도전서》15을 읽어보라.
  우리는 성경에서
“날들”(days)을 공부함으로써 놀라운 것들을 배울 수 있다. 당신은《요한복음》4에서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과 대화하는 장면을 읽어보았을 것이다(그녀는 이방인이었다). 성경은 주님께서 그녀가 이방인들과 함께 살고 있는 곳으로 올라갔으며 그 이방인들과 머물렀다고 말하고 있다. 주님은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과 이틀 동안 머물러 계셨고 이틀 후 주께서 돌아오셨을 때 유대인들이 그분을 영접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이틀 후’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 자, 그러면《출애굽기》19으로 가 보도록 하자. 그곳에서는 하나님께서 강림하시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주님은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10 ...백성에게로 가서 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결케 하고 그들로 자기들의 옷을 빨게 하여 11 셋째 날을 대비하라. 이는 셋째 날에 가 온 백성의 목전에서 시내 산 위에 내려갈 것임이라.』“셋째 날”에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을 만나러 오신다는 것이다. 당신은 (호세아 6:13)을 읽어 본 적이 있는가?1오라, 우리가 께로 돌아가자. 이는 그가 찢으셨으나 우리를 낫게 하실 것이요, 그가 치셨으나 우리를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2 이틀 후에 그가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그가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목전에서 살리라. 3 만일 우리가 계속 를 알고자 하면 그때 우리가 알게 되리라. 그의 나오심은 아침처럼 마련되어 있으며 그는 우리에게 비처럼 오시리니, 땅에 내리는 늦은 비와 이른 비처럼 오시리라.』성경에 나오는 날들은 모두 의미가 있기 때문에 기록된 것이다.
  
(마태복음 1715)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변형산에서 나타나신 것은 “엿새 후”라고 되어 있다.1 엿새 후에 예수께서... 높은 산(변형산)으로 올라가시어, 2 그들 앞에서 변형되시니 그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의 옷은 빛처럼 희어지더라. 3 ...모세와 엘리야가 그들에게 나타나서...』주님은 이때 자기가 이루셔야 할 자신의 죽음에 대해 말씀하셨다. 이 변형산의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묘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직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까 걱정된다. (베드로후서 1:1821)에서 베드로는 이 사건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18 이 음성은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 하늘에서 나온 것을 들은 것이라.』계속해서 베드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19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의 말씀이 있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어두운 곳에서 빛나는 빛에 주의하듯 이 예언의 말씀에 주의하는 것이 잘하는 것이니라. 20 먼저 이것을 알지니, 성경의 어떤 예언도 사사로운 해석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 21 예언은 예전에 사람의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 성령으로 감동을 받아 말한 것이니라.』베드로는 주님과 함께 변형산에 있을 때 하늘로부터 나는 음성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베드로는 지금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예언의 말씀이 더 확실하니 그것에 주의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즉 예언에 대해 설교를 듣고 주의하는 것이 “잘하는 것이니라.”고 베드로는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변형산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묘사하고 있다는 말이다. 마태는 이 사건이 “엿새 후”(마태복음 1715)에 있었다고 말한다. 이제 우리는 ‘누가복음 928로 가서 변형산 사건을 살펴보도록 하자.
  마태는 엿새 후에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누가복음 928에 보니 “팔일째”라고 말하고 있다. “엿새 후”“팔일째”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엿새 후”“팔일째”란 곧 ‘칠일’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주님은 하루,이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그리고 ‘일곱째 날’ 돌아오신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모든 일을 일곱으로 이루신다.

  [7] 인류의 역사

  세계 역사를 한 번 예로 들어보자. (창세기 11)을 보면『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느니라.』고 되어 있다. 이 창조(6일간의 재창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에 얼마나 시간이 걸렸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2천만 년, 수십억 년,,,, 글쎄 잘 모르겠다.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몇 초 안에 만드셨는지도 모른다.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분이시다. 성경은 다만『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느니라.』고만 기록하고 있다. 어떤 신학교에서는 2천만 년이라고 가르친다.
  나는 얼마나 시간이 걸렸는지 모른다. 어쨌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창세기 1:2)에서 문제가 생겼다.『땅은 형체가 없고 공허하며 어두움이 깊음의 표면에 있으며 하나님은 물들의 표면에서 거니시더라.』뭔가 일이 생긴 것이다. 무슨 일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쩌면 원자 폭발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뭔지는 모르지만 뭔가 있었던 것만은 분명한다. 완벽하게 창조된 하늘과 땅에 대격변이 생겼고 그래서 땅은 형체가 없고 공허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6일 밤과 낮에 걸쳐 하늘들과 땅을 새로 지으신 것이다. 그 다음 이야기는 당신도 이미 다 알고 있다. 아담과 이브가 새로 창조된 땅에서 살게 되었던 것이다. 당신들 중에는 “당신은 창세기 1, 2, 3장에 기록된 그대로를 믿습니까? 그것을 실제 역사적 사건들로 믿습니까? 당신 혹시 미친 것이 아니요? 그들이 정말 선악과를 먹었다고요?”라고 대꾸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지만 나는 기록된 그대로를 믿는다. 나는창세기 1, 2, 3장》을 실제 역사로 믿는다. 내가 보기에는 안믿는 당신이 미친 것 같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 정확히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은 ‘창세기 1, 2, 3’ 뿐이다.
  당신에게 한 가지 물어보겠다. “당신은 갓난 아이들이 벌거벗고 다니면서도 전혀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물론 프로이트는 그럴싸한 설명들을 늘어 놓는다. 그러나 그는 이에 대해 한 번도 정확한 답변을 해 본 적이 없다. 아이들이 하지 못하게 하는 일을 하다가 들키면 어째서 도망을 치고 숨어 버리는가? 붙잡아서 왜 그런 짓을 했느냐고 물으면 자기 형이나 동생 때문이라고 둘러대는 사실은 또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한 올바른 대답은창세기 1, 2, 3에만 나와 있다. 당신은 모든 인류의 문명들이 강과 동산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었는가? 도시는 농촌 때문에 먹고 산다. 도시는 대개 강가에 세워진다. 프로이트는 몇 개 정도의 해답을 갖고 있었는지는 몰라도 상당수의 질문에는 침묵하고 만다. 프로이트는 하도 담배를 많이 피워서 아래 턱이 암에 걸리고 말았다. 그는 자기 자신의 욕망도 통제하지 못했던 인간이었다. 정신과 의사랍시고 사람들의 문제를 상담해 주고 치료해 준다고 했지만 실상은 자기 자신도 망쳐버린 사람이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시고 아담과 이브를 그곳에 두셨으나 그들은 범죄하여 타락하고 말았다. 얼마 후 모든 인류는 타락하였고 하나님께서는 모든 생명체를 홍수로 쓸어버리셨다. 그분은 전세계를 물로 뒤덮어 버리신 것이다. 에베레스트 산보다 더 높이 물로 덮였다. 한 번은 박사학위를 갖고 있다는 회의론자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 홍수는 지구를 덮을 수는 없었다.” 나는 물었다. “어째서 그렇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 이유는 만약 물이 지구 전체를 덮었더라면 그 물은 에베레스트 꼭대기 위까지 넘쳤을 것이고 그렇다면 물이 얼어붙어 배는 산꼭대기에서 얼어붙어 버렸을 것이기 때문이다.”(대단히 똑똑한 사람인 것 같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이보시오, 나는 물리학자도 아니고, 과학자도 아니요. 그렇지만 한 가지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지구의 전수면이 동일하게 높아진다면 대기권도 그에 따라 동일하게 상향 조정될 것이라는 정도는 알고 있소.” 그러니까 에베레스트 산의 기후는 열대의 벵갈만과 동일하였을 것이다. 나는 과학은 모르지만 상식으로도 그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즉 물이 차 올라 해수면이 동일하게 올라가면 대기도 동일하게 올라간다는 것이다. 그러자 그 친구가 이번에는 이렇게 말했다. “노아의 방주는 모든 동물을 수용할 만큼 크지는 못했소.” 그래서 내가 이렇게 물었다. “도대체 동물 전체의 수가 얼마였습니까?” 그는 “모르겠소.”라고 대답했다. “방주의 크기는 얼마 정도였는지 아십니까?” 이 물음에도 그는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아이큐가 160이나 되는 사람이 어쩌면 그렇게 되어 버렸는지 심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오늘 밤에 당신 중의 한 사람에게 말하기를
“당신은 폭스바겐을 원하지 않는군요.”라고 했다고 하자. 그러면 당신은 “왜 그런 생각을 하십니까?”라고 물을 것이다. 그때 내가 “그것은 당신 가족이 다 탈 만큼 크지 못하기 때문이오.”라고 대답했다고 하자. 그러면 당신은 “얼마나 큽니까?”라고 물을 것이다. 그때 내가 “모릅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한다. 당신은 “내 가족이 몇 명인지 아시오?”라고 묻는다. 나는 “그것도 모릅니다.”라고 대답한다. 자, 그렇다면 당신은 나를 훌륭한 지식인이라고 생각하겠는가?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런 멍청한 친구들에게 자식을 교육시키겠다고 수만 달러씩 등록금을 대 주고 있다. 수많은 박사들이 대학 강단에서 “이러쿵 저러쿵...” 떠들면서 한 달에 수천 달러씩을 받고 있지만 그들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나는 이런 류의 박사 중 또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말했다.
“설마 당신도 그 방주 안에 치와와 두 마리, 세파트 두 마리, 발발이 두 마리... 이런 식으로 들어갔다고 믿으시는 것은 아니겠죠?” 나는 이렇게 대답해 주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모든 종(Species)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종(Kind, Family)에 속한 동물 두 마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인류에게 몽골(황인종), 니그로(흑인종), 코카서스(백인종) 인종 남녀 6명이 필요한 것처럼 동물도 과(Family)에 속한 동물 세 쌍, 즉 6마리면 됩니다. 이 세 인종 6명에 의해 모든 인종이 퍼진 것처럼 모든 개도 개과(Canine Family) 중에서 6마리의 개로부터 번식되어 나온 것입니다. 고양이와 기타 동물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때 그 사람이 또 이렇게 대꾸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노아의 방주 안에는 다 들어갈 수 없소.” 그래서 내가 물었다.“노아의 방주가 얼마나 큽니까?” 그는 그것을 모른다고 했다. 나는 “길이가 100큐빗(약 45m)이나 된다.”고 가르쳐 주었다. 그러자 그는 “그래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당신은 1큐빗이 얼마나 되는지 아시오?”라고 물었다. 그는 그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면서 어떻게 박사 학위를 받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노아가 지은 방주는 축구장 3배의 길이었다(약 330300m). 이 말을 듣고 나서 그 친구는 그렇다면 그것은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만큼이나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아의 방주는 배가 아니었다. 방주는 커다란 상자모양으로 배보다 훨씬 더 많은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성경은 방주를 배라고 한 적이 없다. 방주에는 수많은 동물들이 탈 수 있었다.
  어쨌든 홍수가 나서 모든 것을 쓸어갔다. 이 말을 듣는 과학자들은 또 이렇게 대꾸하고 나설 것이다.
“빙하시대가 있었음에 틀림없다”(지질학자, 인류학자, 그리고 고고학자들은 바위를 발굴하고 조사하다가 커다란 바위들이 네브라스카, 미네소타, 캔사스 주에 흩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서는 “음, 빙하가 북극에서 밀려내려 오면서 이 바위들을 떠내려 보냈구만 그래...”라고 생각했다). 실로 대단한 천재들인 것 같다. 왜냐하면 빙하가 흘러내리면 그 위에 바위를 들어올려 굴려 내리는 것이 아니고 바위 위를 덮쳐 부숴 버리기 때문이다. 나는 물리학자는 아니지만 그 정도는 알고 있다. 어떻게 빙하가 북극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는가? 북극 빙하는 바다 수면에 있다. 빙하가 맥켄리 산 위로 올라갔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혹은 그 반대편 산록으로 흘러 내렸단 말인가? 빌딩보다 더 큰 바위를 움직여 천 마일 이상 움직일 수 있는 힘은 이 하늘 아래 물밖에 없다. 그것은 얼음이 아니라 물이다. 노아의 홍수로 모든 것은 파괴되고 말았다. 사람들은 높은 산에서 모든 동물들의 화석을 발견했다. 사람들이 산에 있는 바위들의 갈라진 틈을 열고 보자, 그곳에는 사자, 호랑이, 재규어, 원숭이, 사람, 쥐, 하이에나 등이 동일한 바위틈에 몰려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그런데 이들 동물들은 평소에는 결코 같이 지내는 것들이 아니다. 비가 내리자 모든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위쪽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결국 그들은 높은 산에서 만난 것이다.
  지질학자들은 이런 곳에서 화석을 파내고서는
“이것은 신생대의 것, 이것은 중생대, 그리고 지층들은 신생대 중기, 신생대 제3기...”라고 폼을 잡는다. 비타민기나 라놀린기는 왜 없는지 모르겠다. 어떤 사람은 약간 오래된 화석 하나를 찾아 들고서는 “이 화석은 4백만년 전의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면 곁에 있던 사람이 “어떻게 그것을 아시지요?”라고 물으면 “화석이 발견된 지층을 한 번 보시오. 그러면 알 수 있지요.”라고 대답한다. 얼마있다가 한 지질학자가 “이 지층은 4백만 년 전에 형성된 것이요.”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는가?”라고 물으면 그는 “여기 이 화석을 보면 알 수 있지요.”라고 대답한다. 한 마디로 서로 짝짝꿍해서 다 해 먹겠다는 말이다.
  한 번은 미시시피 강에서 어떤 교수가 탐사작업중에
30m, 60m... 파 내려가면서 그곳에서 신생대, 중생대, 고생대, 원생대...를 발견했다고 했다. 그는 한 진흙층을 보고 1400만 년 전의 것이라고 했고 그곳에서 발견된 어떤 물건을 보고 1400만 년 전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 일 피트(1 ft = 30.48 cm)만 더 파 내려가면 1500만 년 전의 점토층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래서 30cm를 더 파 내려간 결과 그는 뭔가 손에 닿는 것을 느꼈다. 그가 그것을 끄집어 내서 보니 존슨회사에서 만든 20마력짜리 엔진이었다.
 
 주님께서는 지구를 물로 쓸어 버리셨다. 전세계가 뒤덮인 것이다. 시간이 지나 물이 마르고 노아와 함, 셈, 야펫은 방주에서 나왔고 셈은 아시아, 야펫은 유럽, 함은 아프리카로 가서 온 땅에 퍼져 나갔다. 전세계 사람들은 바로 이 세 인종의 후손인 것이다.

  [8] 새로운 세대

  언젠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실 것이다! 주 예수께서 돌아오시면 자연은 새롭게 될 것(regenerated)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새 세대(regeneration)...에』(마태복음 1928b). 사도 바울도 이 지구가 새로운 세대가 될 것임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21 피조물 자체도 그 썩어짐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스러운 자유에 이를 것이기 때문이라. 22 모든 창조물이 이제까지 함께 신음하며 고통받는 것을 우리가 아노니』(로마서 8:21, 22). 우리는 예수님께서 오실 때 이루어질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고 있고 자연(창조물)도 역시 구속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되면 늑대가 어린 양과 함께 눕고 어린 아이가 독사와 함께 놀고, 곰과 송아지가 함께 눕고 함께 풀을 뜯으며 사자도 소처럼 짚을 먹게 될 것이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시면 이루어질 피조물의 자유이다. 예수님은 자연을 창조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분이 돌아오시면 자연은 회복된다.
  주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때 그분은
‘동물들’과 함께 말구유에서 태어나셨다. 그분이 죽으실 때는 ‘가시관’을 머리에 쓰셨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말씀하시기를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가 나올 것이라고 하셨다. 주님께서 그 저주의 상징인 가시관을 머리에 쓰신 것은 저주받은 땅을 대신해서 저주를 받으신 것이고 따라서 그분이 돌아오시면 땅은 저주를 벗게 될 것이다. 당신은 사자를 애완동물처럼 다룰 수 있고 호랑이도 그 야수성을 버리고 온순해진다. 이제 곧 그 날이 올 것이다. 이것은 내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다(‘이사야 11’을 읽어보라).
  우리에게 아직 왕국이 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사자들이 현재는 소처럼 짚을 먹지 않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사자 우리에 가서 짚을 좀 줘 보라! 팔이 잘리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세인트 루이스(
Saint Louis)에 사는 한 소녀가 사자 우리에 손을 넣었다가 사자에게 물려 옷만 남고 잡혀 먹히고 말았다. 아직은 그 누구도 왕국을 가져오지 않았다. 창조주께서 이곳으로 돌아오실 때까지는 동물들이 회복될 수가 없다. 천년 왕국이 세워진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어린 아이들이 사자와 곰을 데리고 산책하는 모습을 보면 그때가 천년왕국인 줄 알 수 있다. 그 시대가 어느 시대인지 깜박 잊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광경을 보고 기절할 것이다.
  당신은 내 몸을 보고 있다. 내 몸은 현재 동물의 몸과 같다. 동물처럼 내 몸도 진흙으로 만들어진 것이다(창세기
2, 3장). 그러나 주님께서 돌아오시면 그분께서는 나에게 ‘새로운 몸’을 주실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이도 안 빠지고, 머리고 안 빠지고, 위궤양도, 신경통도, 협심증도 전혀 생기지 않는 그러한 새로운 몸을 갖게 될 그 날이 곧 온다. 주님이 오시면 새 몸을 받는다는 말은 어떤 의미로는 현재 이 시대에는 죄인이 구원을 받을 때 반만 구원을 받게 된다는 뜻이다. 즉 당신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구주로 영접할 때 당신의 혼은 구원을 받지만 당신의 몸은 아직 구원받지 않았다. 당신의 몸은 주님이 오실 때 구원받게 될 것이다. 즉 그때 당신에게 새로운 몸이 주어진다.
  농사를 지어 본 사람이라면 땅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농부는 땅이 저주 아래 있다는 사실을 매일같이 체험하면서 산다. 도시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농촌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은 이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당신은 농사를 지어 본 적이 있는가? 땅을 갈고 씨를 뿌려 보라. 어떤 때는 비가 와서 그 씨앗을 쓸어가 버리고 어떤 때는 비가 오지 않아 땅이 말라 씨앗이 타 버린다. 물론 적당히 비가 와서 싹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여지없이 잡초도 같이 등장한다. 당신은 좋은 수확을 얻기 위해 김을 맨다. 그러나 잠시 후에 벌레들이 달려들고 당신은 곧바로 농약을 친다. 추수를 해서 그 곡식을 먹고서 얼마 있으면 당신은 암에 걸리게 되고, 의사는 암의 원인이 찬물이나, 일산화탄소 아니면 다른 여러 원인이 있다고 설명해 준다. 이제 무슨 소리인지 알겠는가? 이 땅과 자연은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40세가 넘은 사람이라면 거의 대부분 자연이 뭔가 잘못되어 있다는 사실을 체험했을 것이다. 당신의 몸이 점점 낡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은 잘못되어 있다. 당신의 몸은 어느샌가 관절이 쑤시고, 허리가 아프고...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어떤 집에 가서
“얘야, 의사 선생님 계시냐?”라고 물었다. 그러자 의사의 딸이 “아니요.”라고 대답했다(겨우 4살 정도의 아이였다). 그 사람은 “어디 가셨니?”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 꼬마 소녀는 “아빠는 마취하러 가셨어요.”라고 대답했다. “야, 너 대단히 어려운 말을 할 줄 아는구나! 너 마취가 무슨 뜻인지 아니?” “그럼요, 10달러란 뜻이지요.”
  전문용어를 사용하면 돈을 벌 수 있는 것이 요즘 사회이다. 어디가 좀 아파서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진찰을 받는다. “뭐가 잘못됐습니까?”라고 물으면 의사는 “활액낭염”이라는 것이다(당신이 주당 150달러를 버는 사람이라면 그런 대답을 들을 것이다). 당신이 주급 100달러짜리라면 그는 “류마티스군요.”라고 대답해 줄 것이고 주급 60달러짜리 노동자에게는 “통풍(痛風)이다.”라고 대답해 줄 것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당신의 몸은 처음부터 잘못되어 있다는 것이다. 주 예수님께서 돌아오시면 이런 문제가 없어진다. 당신은 새로운 몸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오셔서 이 땅에서
1000년 동안 통치하실 것이다. 1000년이 지나면 하늘들과 땅은 불타 없어질 것이다.10 ...그 날에는 하늘들이 굉장한 소리를 내며 사라지고 우주의 구성 요소들이 맹렬한 불로 녹아 내리며 땅과 그 안에 있는 일들이 타버릴 것이라.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거하는 새 하늘들과 새 땅을 기다리도다』(베드로후서 310b, 13). 요한도 이렇게 말한다.11 또 내가 큰 백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분을 보니, 그의 면전에서 땅과 하늘이 사라졌고 그들의 설 자리도 보이지 않더라. 12 또 내가 죽은 자들을 보니, 작은 자나 큰 자나 하나님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져 있으며 또 다른 책도 펴져 있는데 그것은 생명의 책이라. 죽은 자들은 자기들의 행위에 따라 그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더라』(요한계시록 20:11, 12). 그러나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게 된다. 자, 천 년, 이천 년, 삼천 년, 사천 년, 오천 년, 육천 년, 그리고 칠천 년(천년왕국)이 지나면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된다.8”이란 한 옥타브가 새로 시작됨을 뜻한다. 이것은 중력의 법칙처럼 확고한 하나님의 법칙이다.

  [9] 의의 태양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일곱으로 행하신다. 자,그러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살펴보도록 하자. 우리가 살고 있는 ‘은혜시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써 시작된다. 이 기간이 2000년 동안 지속되다가 그분이 다시 오실 것이다. 그분은 죽으셨고, 지옥에 가셨다가, 다시 부활하셔서 승천하셨다가 이제 곧 오실 것이다. 성경에서 주님의 재림이 이야기되는 곳에서는 늘상(특히 그분의 재림의 시기에 관한 언급) 태양이 아침에 떠오르는 것으로 비유된다. (말라키 42)을 보면『의의 태양이 그의 날개에 치유를 가지고 솟아오르리니』라고 말하고 있고 (시편 19:5)역시『태양은 신랑방에서 나오는 신랑 같고, 경주하는 강한 남자처럼 기뻐하는도다.』라고 말한다. (마태복음 1343a)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그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의 왕국에서 해처럼 빛나리라.』고 말한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늘상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으로 비유되고 있다. 성경에서 성경을 배우는 데 있어 가장 위대한 두 단어는 “...같이”(like), “...처럼”(as)이다. 전혀 교육받은 적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같이”“...처럼”이라는 것을 잘 주목하면 성경을 잘 배울 수 있다. (호세아 12:10)에 보면『내가 또한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하였고 내가 환상들을 많이 늘렸으며, 선지자들의 사역을 통해서 비유를 사용했노라.』고 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뭔가를 보여 주시기를 원할 때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것을 깨달았느냐?” 그때 사람이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하면 주님은 “그러면 이것은 알아듣겠느냐?”고 말씀하신다. 그때 그 사람이 “예, 이것은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하게 된다. 그때 주님은 “그것이 바로 이것과 같으니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면 그 사람은 “아, 그렇습니까? 이제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이처럼 인간이 알아듣지 못하는 영적이고 어려운 것들도 하나님께서 비유(유사Similitude)를 들어 설명하시면 쉽게 이해가 되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무엇을 가르치실 때는 비유를 사용하신다. 예를 들면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개와 “같고”(as)(베드로후서 222잠언 2611), 구원받지 못한 여자는 돼지와 “같다”(베드로후서 222)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주님은 교회가 값진 진주와 “같다”(like)고 말씀하시며(마태복음 1345, 46), 기도하면서 주를 앙망하는 사람은 “독수리와 같다”고 말씀하신다(이사야 4031). 하나님께서는 슬프고 외로운 사람은 “집 꼭대기에 홀로 앉아 있는 참새와 같다.”(시편 1027)고 말씀하시며 사역자는 ”소와 같다.”고 하신다(고린도전서 9:9, 10). 지옥이 어떤 곳인가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도시의 쓰레기 소각장 같은 곳이라고 가르쳐 주신다. “하늘나라는 어떤 곳입니까?”라고 물으면 주님은 “그곳은 대도시와 같다. 다만 그곳은 뉴욕처럼 더러운 곳이 아니고 깨끗한 곳이다.”라고 가르쳐 주신다. 하나님께서 “...와 같다”(like, as)라고 하실 때는 무엇인가를 가르치시고자 하실 때이다.
  주님께서 한번은 집주인이 언제 올는지 모르니까 깨어 있으라고 하시면서 자신은 밤중의 도둑같이(
as) 올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가복음 133335). 사도 바울도 (데살로니가전서 5:14)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1 그러나 형제들아, 그 때와 시기에 관해서는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으니 2 이는 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as) 오리라는 것을 너희 자신이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니라. 3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고 말할 때에, 아이밴 여인에게 진통이 오듯 갑작스런 멸망이 그들에게 임하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4 그러나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니 그 날이 너희를 도둑같이 덮치지 못하리라.』
  주님은
A.D 33년부터 A.D 2000년까지는 밤이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은 우리에게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고 또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또한 밤이 오면 일할 수 없게 되리라고 말씀하시면서, “너희들을 이 세상에 두고 가노니 너희는 이 세상을 비추어야 할 것이라.”고 하셨다. (이사야 2111b, 12)에 보면11 ...“파수꾼아,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 파수꾼아,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 하시니 12 파수꾼이 말하기를 “아침이 오나니 밤도 오리이다.” 하였도다. 너희가 물으려거든 물을지니 돌아오라, 오라.』고 되어 있다. 주님은 “주여, 빛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라고 묻는 파수꾼에게 이렇게 대답해 주신다.“네가 알기를 원하느냐? 내가 알려 주리라.”
  자,
(마가복음 13:35)로 가 보자. 이곳에서는 타국으로 가면서 그의 종들에게 일을 맡기고 떠난 집주인이『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그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저녁일는지, 밤중일는지, 닭이 울 때일는지, 아니면 아침일는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예수님은 이처럼 밤을 저녁, 밤중, 닭이 울 때로 나누고 그 다음은 아침이라고 말씀하신다. (요한복음 119a)에서『...낮은 열 두 시간이 아니냐?...』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밤도 12시간이 된다. 따라서 저녁은 69시까지이고 밤중은 912시까지이며 닭 울 때는 123시까지이고 아침은 36시까지이다. 어떤 노동자는 야간 근무를 할 때 그것을 “무덤 교대”라고 말한다. 당신은 역사에서 이 기간을 무엇이라고 부르는지 알고 있는가? “암흑시대”(Dark-age)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밤에서 가장 캄캄한 부분이 저녁 9시부터 새벽 3시까지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저녁 6시부터 서서히 어두워지기 시작하여 캄캄해지다가 새벽 4시가 이르면 날이 새기 시작한다. 은혜시대 2,000년을 살펴보면, A.D 500년까지저녁에 해당되고 밤중A.D 5001000이며 셋째로 닭이 울 때A.D 1500년까지이고 마지막 아침A.D 15002000년이 된다. 그리고 나면 날이 새고 태양이 떠오른다. 당신은 지금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지 아는가? 동이 곧 터오려고 하는 바로 그 시점이 당신이 살고 있는 시대이다. 빨리 떠날 준비를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 애기를 내 평생 동안 들어 왔어도 그런데도 그분은 오시지 않았소.”라고 말한다. 그 사람 말이 맞다. 그렇지만 그분은 오신다. 나는 주님의 재림에 대해 900번이나 설교했지만 이 설교가 잘못되었다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그분은 오실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설교를 하는 도중 그분이 오실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나는 다만 “아멘, 주여”라고 대답할 뿐이다. 저기 있는 나의 차, 골프채, 낚시도구, 사냥총, 그 밖에도 내 것을 가지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가져가시라. 내가 사는 그곳에는 그런 것들이 필요 없다. 하나님께서 나의 증인이시거니와 내가 응답받을 수 있는 기도가 하나 있다면 그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 22 마지막에 드린 그 기도이다.『...아멘, 그러하옵니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2220b). 당신은 이 기도의 응답을 받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그런 생각조차 해 보지 못했을 것이다. 다음 번에 구령할 때 한 번 물어 보라. 어떤 대답이 나오는지? 구원받은 사람과 구원받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어쩌면 여기에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은 주님께 “오시옵소서!”라고 기도드린 적이 있는가?『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너희가 찾을 것이요...』(마태복음 77a). 만약 주님께서 나에게 “한 가지 기도제목을 내라. 내가 응답하겠다.”라고 하신다면 나는 당장 무릎을 끓고 “너무 서두르시는 것이 아니라면 5초 이내에 이곳으로 오시옵소서.”라고 기도드릴 것이다.
  그분은 오고 계신다. 내가 그분이 오고 계신다고 말하는 것은
60세 이하인 사람은 죽지 않는 한 장례식을 치루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분은 오늘 저녁에라도 임하실 수 있다. 어떤 사람은 그 날과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나는 재림의 시기를 말하고 있다. 성경에는 ‘휴거의 시기’는 나와 있지 않지만 그러나 ‘재림의 시기’는 나와 있다. 재림과 더불어 일곱 번째 천년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갖고 있는 달력에 오류가 없다면 우리는 단지 5년이 남은 셈이다. “우리의 달력이 틀리지 않는다면”이라는 단서를 잊지 말라. 이곳저곳에 다니면서 내가 그러는데 집 팔고 땅 팔아서 다 이곳으로 가지고 오라고 하더라고 떠들어 대지 말라. 주님은 내가 올 때까지 일하고 있으라고 하셨지 땅 팔고 집 팔아서 산 꼭대기에 모여 기다리라고 하신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을 잊지 말라!

  한번은 한 여인이 스코틀랜드의 설교자였던 ‘제임스 맥긴레이’에게 와서 “제게 커다란 의문이 한 가지 생겼습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무엇인데요?”라고 묻자 그녀는 “내가 성경을 보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가 먼저 일어난다.’라고 되어 있는데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는 분이 아니시라면 어째서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를 먼저 일으키시는 거지요?”(대단한 문제였습니다) 맥긴레이는 그 순간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서 순간 재빨리 기도를 하였다. “죽은 자들은 땅 속 2m 깊이에 묻혀 있지 않습니까? 따라서 우리와 동일하게 되려면 먼저 일어나야 동시에 같은 높이에서 휴거되지 않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외모를 존중하지 않으십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우리는 성경에서 달(月
moon)이 그리스도의 몸의 예표(유형)라는 것을 알고 있다. (솔로몬의 노래 6:10)『○ 아침처럼 비추고, 달처럼 고우며, 해처럼 맑고 깃발들을 든 군대처럼 위엄이 있는 여자는 누구인가?』라고 되어 있다. 달은 항상 여성으로 등장하고 태양은 항상 남성으로 나온다. 자, 그러면 달을 한 번 살펴보도록 하자. 당신은 달을 한 번 쳐다 본 적이 있는가? 달은 태양빛을 반사한다. 달은 죽어 있는 행성이다. 달은 때로는 밝게 빛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렇지 못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나는 세상의 빛이라...』『...나는 세상의 빛이라...』(요한복음 81295),『...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에 비치게 하여...』(마태복음 516),『...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어두운 곳에서 빛나는 빛에 주의하듯 ...』(베드로후서 119)라고 말씀하셨다. 세 가지 예표가 나와 있다. 태양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이고, 달은 교회의 예표이며, 샛별은 태양이 떠오르기 직전에 나타나는 별이다.
  당신은 아프리카, 아시아, 그리고 유럽의 모든 이교도들이 하루
24시간 복음을 듣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시편 19’을 보라.3 말도 없고 언어도 없으며 그들의 음성도 들리지 않으나 4 그들의 선율은 온 땅을 질러 뻗어 나가고 그들의 말들은 세상의 끝까지 다다랐으니,..』『2 낮은 낮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보여 주니』아프리카 오지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 아침에 핏빛으로 떠오르는 해와 저녁에 핏빛으로 지는 해를 보지 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저녁에 서쪽으로 지는 붉은 색 태양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신 것을 보여 주며 아침에 붉은 빛으로 떠오르는 태양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보여준다.1 보스라에서 물들인 옷을 입고 에돔에서 오는 이가 누구인가?... 2 어찌하여 네 의복이 붉으며 네 옷이 포도즙틀을 밟는자 같은가?』(이사야 631, 2). 붉은 빛으로 저녁에 지고 붉은 빛으로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을 보여준다. 왜 달은 밤에 떠오르는가? 그것은 교회시대가 밤이요, 달은 교회를 예표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때로는 훌륭한 간증을 지니고 있으며 밝게 빛난다. 그러나 교회가 빛을 별로 발하지 못할 때도 있다.
  지구가 달과 태양 사이에 놓이면 달빛은 사라진다. 사람들은 이것을 월식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인과 태양이신 그리스도 사이에 세상이 놓이면 태양빛이 가로 막혀 달은 그 빛을 비출 수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여기 태양과 지구와 달이 있다. 태양으로부터 빛이 내려오는데, 그것을 지구가 중간에서 가로막으면 햇빛이 보이지 않게 된다. 따라서 교회(달)와 예수 그리스도 사이(태양)에 세상(지구)이 가로막고 있으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없는 것이다. 한편
“일식”은 달이 지구와 태양 사이 일직선상에 있을 때 일어난다. 태양은 달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일식이 일어나도 대부분의 경우에는 둥근 고리 모양으로 태양이 보이게 된다. 정상적인 일식의 경우에는 그렇다. 그러나 비정상적인 일식의 경우에는 달이 더 크게 나타나 태양을 완전히 가려 버린다. 어떤 경우에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이 현상을 과학자들이 “cultism”(cult이단) 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그 말을 쓰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가 태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커진다면, 그 교회는 “cult”(이단)이다. 내가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라 과학자들이 그렇게 말한 것이다.
  달은 죽은 혹성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이는 너희가 죽었고 또 너희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기 때문이라』(골로새서 3:3). 달은 그리스도인들을 묘사하고 있고 해는 예수 그리스도를 묘사하고 있다. 교황 그레고리(A.D 500) 시대로부터 마틴 루터(A.D 1500) 시대를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부르는지 아는가? 사람들은 이 1000년을 “암흑시대”(Dark-age)라고 부른다.《킹제임스성경》을 공부하기 전에는 어째서 그렇게 부르는지 아무도 알 수가 없다.《킹제임스성경》에 보면 역사를 시기별로 잘 구분해 놓았다. A.D 5001500년은 암흑시대이다. 루터는 바로 A.D 1500년 경부터 종교개혁을 시작한 것이다. 칠흑같은 밤이 물러가기 시작한 시점이 바로 이때이다. A.D 1500년 경부터 서서히 동이 트기 시작한다. 1500, 1600, 1700, 1800, 1900, 1995,,, ─ 당신은 어느 시점에 와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가? 당신은 네 번째 경점의 마지막 부분에 와 있다. 우리는 곧 떠날 것이다. 장기계획을 세우지 말라. 사람들은 ‘순례자’로 혹은 ‘나그네’로 살 생각은 하지 않고 이 땅에 뿌리를 박고 살려고 한다. 이곳 저곳으로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고 전도지를 나누어 주고 집집마다 찾아가고... 이것이 나그네의 삶이다! 뿌리를 내리지 말라. 당신은 떠나야 할 사람이다.

  [10] 결 론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한 말씀 드리고자 한다. 시몬 베드로의 말을 들어보자.『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의 말씀이 있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어두운 곳에서 빛나는 빛에 주의하듯 이 예언의 말씀에 주의하는 것이 잘하는 것이니라』(베드로후서 1:19). 베드로는 우리의 “마음”에 샛별이 있는데 태양이 떠오르기 직전 샛별이 먼저 떠오를 것을 말하고 있다. 당신은 새벽 45시경에 일어나 동쪽 하늘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작은 별을 본 적이 있는가?(나는 그 별의 이름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 별은 그곳에 떠 있고 실로 밝게 빛나는 그 별을 당신도 볼 수 있다.) 그 별은 빛나고 빛이 나며 동이 틀 무렵에도 여전히 빛을 비추고 있다. 태양의 둥근 테가 언덕 위로 떠오를 때에야 그 별은 사라진다(태양이 떠오르기 전까지 빛나고 있다가 태양이 떠오르면 사라지는 이 별은 주위에 다른 별들이 희미해진 후에도 12시간 이상 밝게 빛나고 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돌아오기 전에(주님은 주의 날에 임하셔서 그 열기로 악한 자들을 태우실 것이며 그들은 재로 변할 것이다.말라키 313) 그 샛별은 위로 올라가 버린다. 당신이 구원받았다면 그 샛별은 바로 당신 각 개인들인 것이다. 당신이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당신은 위로 올라간다. 당신이 버림받은 사람이라면 당신은 이 땅에 남게 될 것이다.
  나는 오늘 저녁 당신이 진실로 구원받았는지 아닌지를 확인해 드리고 싶다. 나는 이를 위해 많은 질문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단지 한 가지만 묻겠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당장 돌아 오시기를 바라고 있는가? 바로 이 순간에 주님을 보기 원하는가?” 주님이 지금 내려오시면 모든 사람이 “주를 찬양하라!”고 외칠 것 같은가? 교황이 손을 들고서 주님을 맞이할 것 같은가? (나는 그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은 그가 그러리라고 생각하는가 하는 그것을 묻고 있다.) 당신은 마이클 잭슨이나 마돈나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환영하리라고 생각하는가? 당신의 어머니는 어떠한가? 당신의 아버지와 당신의 아이들은 어떠하리라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주님이 오시면 어떻게 할 것인가?
  주님께서 지금 당장 오시면 기쁨으로 맞이할 사람이 당신 중 몇이나 되겠는가? 바로 그것이
‘테스트’(Test)이다. 이 문제에는 침례, 물뿌림, 교회 회원제도, 황금률 그 어떤 것도 관련이 없다! 첫 번째 계명은 우리의 마음과 혼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당신이 그분께서 돌아오시는 것을 바란다면 그것은 당신의 마음 속에 주님이 첫 번째인 것을 뜻하고 그렇지 않다면 뭔가 다른 것이 당신 마음에 첫 번째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11] 요 약

◆ 일곱 체계 ◆

[1] 6일은 일하고 7일째는 쉰다(창세기 2).
[2] 6주가 지나고 일곱째 주 끝에 오순절을 지킨다.
[3] 일곱째 달에는 3번에 걸쳐 중요한 명절을 지킨다. 그 중 한 명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재림 시기와 연관이 있다.
[4] 6년이 지나고 나면 7년째에는 땅의 안식을 위한 안식년이다(레위기 254).
[5] 일곱 번씩 일곱 해를 지나고 나서 50번째 되는 해에 세기 중간에 지키는 “오순절”을 지키고 “환희의 해”를 선포하며 땅을 되돌려 준다(레위기 25).
[6] 6천 년이 지나고 7천 년째는 안식을 위한 천년 왕국이다(요한계시록 20). 인간이 6천 년 동안 다스려온 땅을 하나님께서 직접 1000년 동안 다스리신다(이사야 147).
[7] (창세기11)첫 번째 지구, 12두 번째 지구, 3, 4, 5이 세 번째, 6, 7네 번째, 8, 9, 10, 11다섯 번째, (이사야 11)과 (로마서 81420)여섯 번째 그리고 (베드로후서 3)과 (요한계시록 2011)에서 일곱 번째 지구를 보게 된다. 일곱은 마지막이므로 여덟 번째 땅은 “새로운” 땅이 되어야만 한다(베드로후서 3요한계시록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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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그림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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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참고 자료 월간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No.114) ...

◆ 하나님의 일곱 경륜 

  성경을 연구함에 있어서 가장 중대한 것 중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의 경륜적 구분들을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성경의 주된 계시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계시하는 것이지만,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부가적인 주제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어떻게 다루시느냐 하는 것으로, 첫째 주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일곱 번 시험하시는 것을 통해서 인간의 철저한 실패를 묘사하고 있다. 일곱 경륜들 각각이 서로 다른 종류의 시험을 보여 주고 있고, 하나님께서는 이때마다 새로운 종류의 다루심으로 대하시나, 인간은 실패라는 똑같은 결과를 가져올 뿐이었다. 그림 자료ː성경에 기록된 세대적 경륜

 1무죄의 경륜ː경륜들 중에서 가장 먼저 주어진 것이 바로 이것이며, 이 시대를 무죄의 시대라 일컫는다. 에덴 동산에서 인류 최초의 부부는 완벽한 환경 속에 살게 되었고, 단 하나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행동에 있어서의 절대적인 자유가 주어졌다. 죄와 무관한 상태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이들은 죄의 본성에서 자유로웠고, 모든 면에서 죄없는 삶을 살 수 있는 최상의 기회들을 향유하고 있었다. 단 하나의 간단한 순종에 대한 시험이 이루어졌고, 제한을 두신 유일한 것을 위반할 때의 형벌에 대한 온당한 경고가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이상적인 환경 속에서도 우리의 두 조상은 유혹에 반응하여 그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명령을 거역했다. 인류 역사의 처음 부분은 지상의 축복과 행복에서부터 추방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2양심의 경륜ː타락 후 인간은 양심의 형태를 통해서 삶에서의 새로운 요소를 인식하게 되었다. 영감받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면 불순종으로 인한 타락이 있은 직후 양심은 인간에게 실질적인 영향을 주게 되었다. 왜냐하면 아담과 이브는 본능적으로 그들의 죄상에 대해 인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의 두 번째 기간 속에서 하나님은 인간을 양심으로 다루셨다. 명시된 법이 없었기에 양심이 인간의 의지에 영향을 주었으며, 그리하여 인간은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는 것에 있어서 양심의 소리에 순종해야 할 책임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양심의 지배 또한 철저한 실패를 가져왔을 뿐이다. 죄와 더러움이 이시기보다 더 창궐한 적이 없었고, 홍수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이 인류가 살아남는 유일한 해결책임을 증명하기에 이르렀다.

 3인간 정부의 경륜ː홍수로 인한 심판 이후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는 세 번째 경륜에는 인간 정부가 세워진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 시대에서 인간은 동료 인간들을 하나님의 권위에 근거하여 다스릴 책임을 부여받고, 하나님을 대신해서 그분의 대리자로서 심판을 집행하게 된다. 권좌를 차지하고 동료 인간의 생명과 죽음을 책임지게 된 인간은 자신이 통치하거나 하나님의 손 아래서 위임된 권위에 순종해야 했다. 그러나 똑같은 실패의 기록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족장이었던 노아는 권위가 부여된 최초의 인물이었고, 통치에 대한 인간의 연약함과 무능력을 증거하는 최초의 사람이 되었다. 그 스스로도 자신을 통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창세기 92123).

 4약속의 경륜ː약속의 경륜은 아브라함의 언약과 함께 시작되고, 율법이 주어짐으로 끝난다. 아브라함과의 언약에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종을 통해 은혜로 위대한 민족을 만들 것임을 약속하셨고, 그의 씨에게 카나안 땅을 유업으로 주셨다.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이 약속되었으며, 다른 민족들이 그의 씨를 어떻게 다루든지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자손의 행위에 따라 보응하는 것이었다.
  이 언약은 무조건적이었기 때문에 그 효력을 잃지 않고 미래의 어느 날에 완전히 성취될 것이다. 그러나 이 경륜은 이스라엘이 스스로 은혜를 포기하고 시내산에서 율법을 택함으로 끝난다. 은혜를 체험했음에도 어리석은 인간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멸시하고, 율법의 구속을 선택한 것이다.

 5율법의 경륜ː율법을 주심으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고, 이 기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에까지 이른다. 이스라엘은 그들이 자원해서 받은 율법에 의하여 다루어진다. 민족적인 것에서부터 개인의 삶에까지의 매우 세세한 것들에 대해서도 거룩한 규례들로 통제를 받는다. 희생제물들, 예물들, 절기들, 제사장직, 사회적 행위와 관계들, 위생 관련 문제 등등이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법으로써 지배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선지자, 제사장, 왕의 권위와 지배 아래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이번에도 사람들이 하나님의 기준에 도달할 수 없음을 분명히 보여 주고 있다. 그래서 스테판도 그들이
『천사들을 통해 지시하신 율법을 받고서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사도행전 7:53)라고 이 점에 있어서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의 죄상을 지적했다.

 6은혜의 경륜ː율법의 경륜은 갈보리에서의 인간의 죄악에 대해 이루어진 처절한 심판으로 끝이 났다. 십자가에서 재림에까지 이르는 현 시대는 은혜의 기간이며, 인간을 다루심에 있어 핵심은 “구원의 조건은 더 이상 율법에 대한 순종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느냐 거부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사역을 통해 죄들의 용서와 영생이 인간에게 값없이 제공된다. 이 하나님의 은혜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인간에게 주어졌고, 이 은혜에 대한 인간의 태도로 인간을 다루시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현 상태가 이미 오늘날 인간의 실패를 증거하고 있으며, 이 시대는 머지않아 죄악이 극에 달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7천년 왕국ː인간을 다루시는 마지막 경륜은 아직도 미래의 일이며, 성경과 관련하여『...때가 찬 경륜...』(에베소서 110a), 혹은『...만물이 회복될 때...』(사도행전 321a), “천년왕국”등으로 일컬어진다. 이는 예언에서 등장하는 ‘왕국 시대’를 말한다. 이 시대에는 사탄이 끝없이 깊은 구렁에 던져지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의와 공의로 다스리실 것이다. 이스라엘은 민족들의 머리로 세워질 것이며, 신음하는 창조물은 그 고통에서 해방될 것이다. 압제와 고난이 사라지고 장수가 보편화될 것이다.
  인간은 가장 흡족할 만한 상황 아래서 시험을 받게 될 것이지만, 이번에도 절망적인 실패만을 다시 한번 경험할 것이다. 이 경륜은 사탄이 풀려남과 더불어 마지막 반란을 일으킴으로 끝을 맺게 될 것이다.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는 최종적인 심판으로 인간을 다루시는 시험의 기간은 끝나게 될 것이며, 경륜들이
‘영원시대’가 이루어짐에 따라 사라지게 될 것이다.

  어떤 경륜에서든지, 어떤 방법으로 인간을 시험하시든지 인간은 절망적인 존재요 그 죄성을 바꿀 수 없음이 증명되었다. 인간은 결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기준을 만족시킬 수 없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서는 인간에게 재앙만이 닥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은혜”만이 인간을 죄의 쇠사슬로부터 자유롭게 할 수 있으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립시킬 수 있고, “은혜”만이 인간의 생의 좁은 길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붙들고 도울 수 있는 것이다.

 피터 S. 럭크만/『 일곱 체계SEVEN SEVENS 』...

      SEVEN SEVENS
      by
      Peter S. Ruckman, Ph.D

      Copyright ⓒ 1984 Peter S. Ruckman
      Bible Baptist Bookstore
      Pensacola, Florida
      1996Korean by Word Of God Preservation Society
      Seoul, Korea.

일곱 체계 】

Bible believers

 『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rightly dividing the word of truth)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 』(디모데후서 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