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7. 2. 23:00

“ 태평양시대와 한반도의 사명 ” (글모음)

(글모음) [20090807] ● 태평양시대와 한반도의 사명 [김동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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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eaceful Hymns on Violinㆍ잔잔한 찬송가 바이올린 연주 모음┃(53:39)

● 태평양시대와 한반도의 사명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라. (시편 12:6)┃

  사람은 자신의 식견을 넓히고 생각을 깊게 하기 위하여 가끔 세계지도를 볼 필요가 있다. 커다란 공모양의 ‘지구의’(地球儀)라는 것이 있어 슬슬 굴려가며 세계를 바라볼 수 있으면 더욱 좋다. 지구란 둥근 것이기 때문에 어느 쪽이 동이고 어느 쪽이 서라는 것을 확정할 수는 없다. 시간의 측정도 그렇다. 서양을 중심으로 볼 때 우리가 사는 땅은 지구의 동쪽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베링해 어디엔가 날짜 바뀌는 선이 그어져 있어 극동지역에 해가 먼저 뜨는 것으로 되어 있다.
  중국이나 인도에서도 농경문화가 꽃을 피운 것이 사실이지만 지중해의 동쪽에 치우친 나라들이 문명의 발상지로 여겨지는 까닭은 그들의 문명, 문화가 서양의 문명,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나일강변의 이집트 문화와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변의 메소포타미아 문화가 대표적이라고 여겨진다. 이들 문화권에 가장 빈번하게 접촉한 나라는 희랍이었고 대표적인 도시는 아테네였다. 지중해의 그 지역을 다도해라고 부르는 까닭은 문자 그대로 작고 큰 섬들이 많이 널려 있기 때문인데 점차 ‘바다’(海)가 역사를 지배하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셈이다.
  희랍의 도시국가들은 민족의 동질성을 바탕으로 예컨대 텔로스 동맹같은 것을 맺어 일치단결하여 외적의 침입을 막아냈다. 페르시아 전쟁같은 것이 그 좋은 본보기라 하겠다. 그런데 개인의 역사나 민족의 역사에도 흥망성쇠는 있게 마련이다. 출생(
birth) 다음에는 성장(growth)이 있고 그 성장이 한계점에 도달하면 쇠퇴(decay)가 따르게 마련이다. 쇠퇴가 어느 정도 끌다가 마침내 사멸(death)을 면치 못하게 되므로 “역사는 반복한다”(History repeats itself)는 명언이 생겼을 것이고 우리는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아니할 수 없다.
  페리클레스의
30년 통치 ─ 그 황금시대도 저물어 갈 무렵 아테네는 군국주의로 강대해진 스파르타와 희랍 세계의 주도권 쟁탈을 위해 한판 승부를 겨룰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것을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라고 한다. 이 끈질긴 30년 전쟁에서 군국주의 스파르타는 문화주의 아테네를 점령할 수는 있었으나 희랍세계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일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바뀌어 말하자면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승자도 패자도 없이 민족의 파멸을 초래하였다고 잘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에 일어나는 어느 사건도 무의미하게 끝나지는 않는 법이다. 희랍세계가 기진맥진하게 되자마자 문화세계의 주도권은 지중해의 중심부로 옮겨간다. 지도를 보라. 거기 이탈리아 반도가 당당하게 자리잡고 있지 아니한가. 그 반도의 중심에 자리잡은 로마라는 작은 도시국가 ─ 그 작은 로마가 역사발전의 기운을 이어받아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말할 만큼 강대한 대 로마제국을 건설하게 된다.
  비록 로마인들에게 희랍인이 지녔던 창조적 능력은 다소 결핍되어 있었지만 도로를 만들고, 수로를 파고, 집을 짓고, 목욕탕을 만들고, 법을 제정하는 등 실용성 있는 일들에는 단연 어느 민족도 따를 수 없던 천재성을 지니고 있었다고 믿어진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만들어 진 것이 아니다”라는 격언은 로마가 얼마나 튼튼한 기초 위에 놓여진 대제국이었는가를 우리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그렇지만 그 거대하던 로마제국도 드디어 분열되어 쇠퇴, 사멸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나 보다. 한때 지구를 누비던 공룡들이 그 자체의 몸의 크기와 무게를 견디지 못해 쓰러져 죽어 멸종되고 말았다는데 로마제국의 운명도 이와 비슷한 것이었다 하겠다. 동서로 갈라진 로마는 각기 일 천년의 세월을 사이에 두고 멸망의 길을 걸었다고나 할까. 오늘의 로마가 수도이던 서로마제국은 기원(B.C.) 5세기에 무너지고, 오늘은 터어키의 영토가 되어 이스탄불이라고 불리우던 콘스탄티노플에 수도를 정했던 동로마제국은 15세기에 이르러 사멸의 길을 더듬게 된다. 역사의 중심은 지중해의 중심이던 이탈리아 반도를 떠나 “서쪽”으로의 행진을 멈출 수는 없었던 것이다.
  동로마제국이 무너지던 그 무렵에 가장 강대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과시하기 시작하는 나라가 스페인이었다.
1492년 이탈리아 출신의 항해사 크리스토퍼 콜럼부스에게 재정적 후원을 할 수 있었던 왕실은 스페인의 퍼디난드와 이사벨라 국왕이었다. 그래서 콜롬부스가 발견한 아메리카 대륙의 대부분이 스페인 영토가 되었던 것이다. 포르투칼이 차지했던 오늘의 브라질을 제외하고는 오늘의 남미의 모든 나라들이 스페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흘러간 역사의 한 때를 말하여 준다. 스페인의 번영은 16세기 후반에 이르러 그 전성기를 맞이하며 17세기에 이르기까지 계속 유럽의 최강국의 반열에 끼어 있지만 영국을 정복코자 파견했던 스페인의 무적함대(Invincible Armada)가 1588년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의 해군에 의해 침몰되는 것을 기점으로 스페인의 경제력, 군사력은 시들하기 시작한 것이다.
  문화의 중심이 지중해를 벗어난 셈이다. 대서양의 새시대, 이른바 ‘서양의 시대’가 당도한 것이다. 굵직한 정의가 부분적으로는 들어맞지 않는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서양의
17세기, 18세기, 19세기는 ─ 비록 프랑스의 영광을 위해 나폴레옹 같은 불세출의 영웅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 그 300년은 영국의 시대였다 하여도 지나친 말은 아니라고 믿는다. 영국은 민주체제의 바탕이 되는 의회 정치의 선두주자로 등장한 셈이다. 특히 청교도 혁명을 통해 의회정치의 승리를 못박은 뒤로는 대서양의 섬나라 영국이 서양을 이끌고 나왔고, 산업혁명이 영국 주도하에 전개된 사실도 주의 깊게 살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직조계에서 비롯된 눈부신 변화는 유럽인의 생활방식을 바꾸어 놓았다고 할 수도 있다. 나폴레옹의 프랑스도 괴테의 독일도 크롬웰의 분노를 올바르게 소화한 영국을 당할 수는 없었다. 런던은 유럽의 중심이 되었고 유럽의 중심은 곧 세계의 중심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런던의 동남부에 위치한 그리니치(Greenwich)가 전세계 만백성이 지켜야 할 시간의 기준이 되었다는 사실도 결코 우연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해가 지는 일이 없다던 ‘대영제국의 태양’도 일몰의 서러움을 면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1차대전을 전후하여 대서양의 주도권은 동쪽의 런던으로부터 서쪽의 워싱톤으로 옮겨간 셈이다. 나라를 세운지 일백여년 밖에 되지 않던 신생공화국인 미국은 한 때 영국의 식민지였을 뿐만 아니라 그 언어나 습관이나 철학이나 생활양식이 영국과 가장 비슷한 나라가 아니었던가. 지나간 일백년 우리는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를 우리 눈으로 직접 보고 그 위력을 우리 피부로 직접 느끼면서 살아왔다. 그런데 그 위대한 미국도 “빛은 동방으로부터”라는 역사 발전의 원칙을 빗겨갈 수 없어서 이제는 동해안의 뉴욕이나 필라델피아보다 서해안의 LA나 샌프란시스코가 더 비중을 차지하였고 벌써 여러 해 전부터 미국의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뉴욕 주보다 캘리포니아 주를 더 중요시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미국 서해안에는 태평양의 파도가 시시각각으로 밀려와 부딪치고 있지 아니한가. 미국의 서해안은 은근히 태평양시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역사의 흐름이란 참으로 미묘한 것이다.
  서양의 쇠퇴를 예견한 학자들이 적지 않았던 중에도 슈펭글러(
Oswald Spengler)라는 학자는 특이한 존재였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의 먹구름이 밀려 오는 것을 바라보면서 ‘서구의 몰락’을 내다보았고 전쟁중에 이를 집필하여 1차대전이 끝나는 1918년 이 책을 출판하였는데 그 책의 제목이〈서구의 몰락Decline of the West이었다. 그는 인간의 삶에도 출생(birth), 성장(growth), 쇠퇴(decay) 그리고 사멸(death)이 있듯 국가나 문명권도 그런 숙명적인 길을 갈 수밖에 없으므로 유럽은 이제 쇠퇴하는 것이고 사멸의 비운을 피할 길이 없다고 본 것이다. 토인비(Arnold J. Toynbee) 같은 대석학도〈시련에 직면한 문명Civilization on Trial이란 책에서 서구의 문명이 막다른 골목에 왔음을 경고하였다. 영국 옥스포드 대학의 현대사 교수 바라클라우(Jeffrey Baraclough)는 대서양시대는 이미 지나갔고 “태평양의 새 시대가 등장하였다”고 밝힌 바 있다. 역사 발전의 원칙에 따라 태평양을 중심한 인류의 새시대가 열린다 하여도 준비없는 민족은 그 활동의 대열에 끼어 들지 못하여 마침내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다. 태평양의 동쪽에는 가장 가까운 곳에 전통적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나라가 셋이 있다. “중국한국일본” 이 세 나라가 그런 나라들인데 이 세 나라는 새시대를 위해 협력관계에 들어설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아무리 협력관계에 있다 하여도 그중의 어느 한 민족이 주도권을 장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역사 발전의 또 하나의 원칙이다. 아테네에서 로마로 옮겨졌으며 또 다시 극동의 어느 나라어느 민족 수중에 그 주도권이 가야하는 것이라면 그 나라 그 민족이 과연 어느 나라어느 민족이겠느냐 하는 문제에 우리들의 관심이 쏠리지 않을 수 없다. 쉽게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21세기 태평양시대의 주역은 중국인이냐, 한국인이냐, 일본인이냐 하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한국인일 수밖에 없다는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
  
“한국인이여, 각성하라!”고 내가 부르짖는 까닭이 있다. 우리가 만일 21세기의 우리들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우리 민족은 역사의 쓰레기통에 던져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역사의 쓰레기통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한국인은 한 사람도 없는데 왜 이렇게도 그 사명을 깨닫지 못하고 건들건들 하고 있는가. 몇 년 전에 예일대학의 유명한 서양사 교수인 폴 케네디(Paul Kennedy)는 한국에 와서 한국인 청중 앞에 강연하면서 21세기의 주역이 될 민족에게는 다음 세가지가 필수적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첫째는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가 있고, 둘째는 높은 수준의 도덕이 있고, 셋째는 높은 수준의 생산성이 있는 민족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결론에는 상당한 근거가 있다고 나는 믿는다. 민주주의는 다른 어떤 정치이념이나 정치철학보다도 유능한 인재를 가장 효과적으로 동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봉건주의는 더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전체주의나 권위주의가 일시적으로 능률적이고 효과적인 것 같으나 민주주의를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은 역사가 이미 증명한 바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일본의 민주주의가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 듯하다. 의회정치도 매우 뿌리가 깊은 것같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내용은 딴판이다. 일본은 서구식 민주주의의 겉 핥기만 하였을 뿐 막부(幕府)시대로부터의 봉건적 사고방식이나 생활방식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인에게는 아직도 ‘개인’(individual)이라는 개념이 명확하지 않다. 르네상스 연구의 권위자인 야곱 부르크하르트(Jacob Burckhardt)가 중세의 서구인을 두고 한 말 그대로 ‘나’라는 존재를 독립적으로 생각할 줄 모르는 것이 일본 민주주의 결격사항이다. 일본은 시행착오라는 것을 거의 겪어보지 않은 채 민주주의의 틀을 굳혀 버렸기 때문에 일본이 또 다시 군국주의로 치닫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일본에 민주주의가 조금이라도 살아 숨쉬고 있다면 일본 자신의 죄악의 역사를 2차대전이 끝나고도 이미 반세기가 넘은 오늘까지도 그토록 미화하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민주주의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면에서는 중국도 다를 바가 없다. 만리장성을 완성시켰다는 진시황에서 비롯된 절대권은 모택동(마오쩌둥)에게 전달되었고 또 다시 등소평(덩샤오핑)에 의해 계승되었다. 우리는 중국의 천안문사태가 민주주의의 부재뿐 아니라 불가능함을 시사하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12억의 민주주의는 현재로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천안문사태 하나만 놓고 봐도 명백하다. 당국에 의한 언론 통제가 완전무결하다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공산주의 중국의 민주화를 비관적으로 전망하게 한다. 그리고 민주주의 그 자체에 대해 손톱만한 인식도 갖고 있지 못한 중국의 인민대중이 민주주의로 가는 길은 요원하고 험난하다는 느낌이 앞선다.
  
21세기에는 일본도 중국도 한국의 민주주의를 본받을 수밖에 없다고 나는 확신한다. 물론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이 전제되는 것이지만, 이 어지러운 현대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피와 땀으로 민주주의를 체험하고 터득한 국민은 한국인 뿐이다. 일본의 저명한 문예 평론가 가또슈이찌는 1995114일 한림대학교 주최로 서울 힐튼에서 열린「동북아시아의 평화와 한일협력체제의 모색」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에서 한국의 21세기를 두고 이런 맥락의 발언을 하여 나를 감동케 하였다. 그의 발언이 끝난 뒤 휴게시간에 나는 그의 손을 잡고 그의 그 소신을 재확인하였다. 민주주의를 두고 통일된 한반도에 빛나는 내일이 약속되어 있는 것뿐이 아니다. ‘도덕’이라는 측면에서도 우리들에게 엄청난 가능성이 있다. ‘가장 높은 수준의 도덕’ ─ 이 지상명령을 두고는 중국도 일본도 한국을 따라올 수 없다. 이러한 나의 주장에 대하여 많은 지식인들은 ‘꿈 같은 이야기’라고 웃어 넘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다려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역사 전체를 통하여 한가지 뚜렷한 사실은 도덕적으로 우수한 민족만이 그 도덕이 우수한 동안만 번영을 누렸고 문화 창조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었던 사실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아테네에도, 로마에도, 런던에도, 워싱톤에도 어김없이 적용되는 대원칙이다. 그 반면에 도덕적인 타락이 그 문명권을 파괴하기 시작하였다. 절도, 사기, 살인, 강도의 범람만이 문제가 아니고 마약의 충동 또는 동성애의 만연 등도 한 사회와 그 사회가 주도하던 “문화의 붕괴”를 촉진하였다. 대영제국이 방대한 식민지를 가지고 약소 민족, 약소 국가들을 착취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대영제국의 깃발이 만민의 존경을 받은 까닭은 ‘백인의 부담’(White Man’s Burden)을 감수하는 도덕적 용기를 지녔기 때문이었다. 미국이 지나간 100년 동안 시대의 주역을 담당할 수 있었던 것도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안전한 세계를 만들기 위하여’(To make the world safe for democracy) 우드로우 윌슨 미국 대통령은 1차대전에 참여하여 100만명의 미국 젊은이들을 유럽 전선에 투입하는 도덕적 용기를 보여 주었고 한국전에서는 자유 진영의 16개국 병사들을 지휘하여 공산독재의 침략을 물리치고 한반도 남반부에 민주주의의 뿌리를 심어놓는 도덕적 역량을 과시한 것이었다.
  오늘 미국은 도덕적으로 타락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없다. 도둑놈도 많아졌고, 폭력배도 들끓는다. 초등학생 때부터 마약을 상습하는 아이들도 많고, 불치의 병인 ‘에이즈’(
AIDS)때문에 30만명이 죽어가는 이 판에 ‘미국의 도덕’이 세계를 이끌고 나갈 수는 없다. 워싱톤의 시장은 마약과 섹스 스캔들로 옥살이를 하고 나온 사람인데 재선의 영예를 차지했으니 미국의 지도층은 이제 도덕을 논할 자격을 상실했는지도 모른다. 대서양 시대의 몰락을 역사학도는 이런 현상에서 감지한다. 역사의 교훈이 바로 이런 것이다. 높은 수준의 도덕은 “참된 종교”를 바탕으로 하지 아니하고는 불가능하다. The Light of the World ─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받았지만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온 것이라.』(요한복음 1:17)『악인은 지옥으로 돌려질 것이요,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민족들도 그러하리라.』(시편 9:17)『너희는 성문들을 열어서 진리를 지키는 의로운 민족이 들어오게 하라.』(이사야 26:2) 일본인에게 무슨 종교가 있는가. 중국인에게 무슨 종교가 있는가. 이런 질문을 던지고 한 번 깊이 생각해보라. 일본 사람은 좋은 일이 있을 때엔 ─ 예컨대 결혼을 한다던가 결혼을 하고 애를 낳는다던가 하는 경우에는 신사참배를 한다. 궂은 일이 있을 때엔 ─ 예컨대 집안 식구 중에 환자가 생겼다던가, 사람이 죽었다던가 하는 경우에는 절을 찾아가 불공을 드리는 것이 관습이다. 크리스마스에는 파티도 한다. ‘당신의 종교가 무엇이요’하고 물으면 ‘없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태반이다. 종교의 뒷받침이 없는 도덕은 교양이나 예의는 될 수 있을 망정 높은 수준의 도덕에는 미치지 못한다. 일본 사람들이 교양있는 국민이라는 사실을 시인하자. 예의가 바르다는 것도 인정하자. 그러나 도덕적 수준이 높은 국민은 결코 아니다. 한국을 비롯하여 중국과 동남아의 여러 나라들을 침략하고 강탈한 과거를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일본의 지도층. 그들의 입으로는 도덕을 논할 자격이 없다.
  앞서 말한 역사학자 폴 케네디는 몇 년 전에 일본에서 강연하면서 일본은
21세기의 주역을 담당할 자격이 없다고 잘라서 말한 적이 있다. 케네디에 따르면 그 까닭은 분명하다. 일본인은 “세계를 이끌고 나갈만한 도덕”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중국은 본디 종교와는 거리가 먼 ‘현실주의’로 일관해온 민족이다. 노자도, 장자도, 공자도, 맹자도 내세(來世)를 이야기하지 않았고 다만 행복론에 치우쳤을 뿐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가 고작이었으니 “순교정신”이라는 것은 그들이 상상조차 못할 높은 도덕의 세계였다. 어느 해 구정에 대만에 갔더니 당시의 총통 장경국의 신년 메세지가 ‘국민 여러분 돈 많이 버세요’라는 한 마디였으니 그 민족에게서 과연 “세계를 이끌고 나갈만한 도덕”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한국의 종교들은 오늘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세속화의 물결 속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는 말에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이차돈이 흘린 순교의 피 위에 한국의 불교가 자리잡고 있다면 그 장래를 기대해 볼만도 하다. 이승훈, 김대건 등이 뿌린 피는 더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103명이 동시에 성인의 반열에 모셔지는 식전을 요한 바오로 2세 자신이 이 땅을 찾아와 집례하였으니 그런 나라가 이 지구상에 또 어디에 있겠는가. 그들이 흘린 뜨거운 피 위에 한국의 천주교가 당당히 서 있는 것이다. 일제의 탄압 속에서 공산당의 잔악한 박해 속에서 신앙 때문에 목숨을 버린 300명을 헤아리는 순교자들의 흘린 피밭에서 이 땅에 개신교가 성장한 것이라면 그 내일을 기대해 볼 만도 하지 않겠는가.
  나는 확신한다. 우리나라의 이 위대한 종교들이 한국인을 전세계에서 가장 정직한 국민으로 반드시 만들고야 말 것임을 나는 확신한다. 순교자들의 피로 물든 이 땅의 이 종교들이 이 국민으로 하여금 자비와 사랑이 가장 풍성한 국민으로 반드시 만들고야 말 것이다.
종교계의 지도자들이여! 방황하지 말고 하늘이 내려주신 이 사명만을 다하라! 이 겨레가 사는 길이 이 길 밖에 없다! 사명이 있는 개인이나 집단이나 민족은 결코 망하지 아니한다! 내 말을 믿으라. 태평양시대는 반드시 오는 것이고 이미 왔다고 하여도 결코 지나친 말은 아니다. 최고 수준의 민주주의를 실천, 몸소 행하는 나라 ─ 한국, 가장 높은 수준의 도덕의 나라 ─ 한국, 세계에서 가장 정직하고 가장 사랑이 차고 넘치는 한국인이 철저한 민주적 질서 속에서 최선을 다하여 땀흘려 일한다면 한국이 새시대에 가장 생산성이 높은 나라가 되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 아니한가. 그런 꿈만이 태평양 시대에 한국을 살리고 세계를 살린다.
  오늘은 사태가 매우 어지럽다. 민주주의는 후퇴하는 것 같고 도덕은 땅에 떨어졌으며 생산성도 여지없이 침체된 느낌이다. 그러나 뜻이 있는 한국인이여 낙심하지 말라! 앞서 강조한 바 있지만
사명이 있는 개인이나 민족이 망하는 일이 과거에도 없었고 오늘도 없으며 내일도 있을 수 없다! 그 숭고한 사명감을 한국인의 가슴속에 특히 이 땅의 젊은이들 가슴속에 심어주는 일이 우리들의 책임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그 사명을 막연하고 복잡한 말로 꾸미지 말고 몇 마디로 요약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믿는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정치에서, 민주주의는 과연 최고에의 수준을 향해 전진하고 있는가. 아버지와, 교사와, 대통령의 횡포는 없는가. 그 횡포를 억제하고 민주적 가치를 구현하는 길은 없는가. ‘나 아니면 안된다’하는 식의 사고방식을 뜯어 고치기 위해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이 땅의 “창조적 소수”(creative minority)여 분발해야 하지 않겠는가. 전 세계에서 가장 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해 가장 자비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 그대는 오늘 무슨 노력을 하였다고 자부하는가. 한국 국민이 전 세계에서 가장 정직하고 가장 자비로운 국민이 되는 길은 “나”(I am∼) 하나가 먼저 가장 정직하고 가장 자비로운 개인이 되는 그 길 뿐이다.
  열심히 일하자! 많이 거두어 전 세계에 굶는 사람, 헐벗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게 되는 그 날까지 한국인이여 열심히 일하자! 유명한 시인 롱펠로우의 한 마디로 끝을 맺는다.

“ 우리 다 분발하여 열심히 일하자. 머리 위엔 하나님을, 가슴속엔 사랑을.”

김동길 교수의 ‘Freedom Watch’ (1990년대 칼럼모음) ...

 『 태평양시대와 한반도의 사명 』

    by
   ┃김동길 교수 Freedom Watch(칼럼 모음)(김동길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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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편 112:7)
『 그가 나쁜 소식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를 신뢰함으로 그의 마음이 확정되었도다. 』

(시 편 125:15  ─ 올라가는 노래. ─

『 1를 신뢰하는 자들은 시온 산과 같아서 요동치 아니하며 영원히 거하는도다. 2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같이 께서는 그의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토록 두르시리로다. 3 악인의 막대기가 의인의 구역에 머물지 못하리니 이는 의인으로 죄악에 손을 대지 않게 하려 함이라. 4 ○ 오 여, 선한 자들에게와 마음이 정직한 자들에게 선을 행하소서. 5 자기들의 비뚤어진 길로 치우치는 자들을 께서 죄악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가게 하시리라. 그러나 이스라엘 위에는 화평이 있으리로다. 』

『 6 그분께서는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 주시리니 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으로 하시고 8 다투고 진리에 복종하지 아니하며 불의에 복종하는 자들에게는 분개와 진노로 하시리라. 9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혼에게 환란과 곤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이방인에게며 10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이방인에게라. 11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으시기 때문이라. 』(로마서 2:6∼11)

6 그분께서는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 주시리니 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으로 하시고 8 다투고 진리에 복종하지 아니하며 불의에 복종하는 자들에게는 분개와 진노로 하시리라. 9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혼에게 환란과 곤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이방인에게며 10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이방인에게라. 11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으시기 때문이라. 』(로마서 2:611)

(잠 언 8:136

1 지혜가 부르짖지 아니하느냐? 명철이 그 음성을 높이지 아니하느냐? 2 그녀가 높은 곳 꼭대기에, 길 네거리에 서서 3 성문들과 성읍 입구와 문들로 들어오는 자리에서 부르느니라. 4 오 사람들아, 내가 너희를 부르노니, 내 목소리는 사람의 아들들을 향한 것이라. 5 오 너희 우매한 자들아, 지혜를 깨달으라. 너희 어리석은 자들아, 마음이 명철한 자가 되라. 6 들으라, 내가 뛰어난 것들을 말하며 내 입술을 열어 옳은 것들을 말하리라. 7 내 입이 진리를 말하리니, 악은 내 입술에 가증한 것이라. 8 내 입의 모든 말들이 의에 있나니, 그 말에는 비뚤어진 것이나 왜곡된 것이 전혀 없느니라. 9 그것들은 깨닫는 자에게는 모두 알기 쉬운 것이요, 지식을 얻는 자들에게는 옳은 것이니라. 10 나의 훈계를 받아들이고 은을 받지 말며, 순금보다는 오히려 지식을 받아들이라. 11 지혜가 루비보다 나으니 원하는 모든 것들이 그것에 비교될 수 없느니라. 12 나 지혜는 신중함과 함께 거하며 ‘창의적 지식’(knowledge of witty inventions)을 찾아내느니라. 13 를 두려워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오만, 악한 행실, 완고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14 조언은 내 것이요, 건전한 지혜도 내 것이라. 나는 명철이며 내게는 능력이 있나니 15 나를 통하여 왕들이 치리하며 통치자들이 정의를 세우고 16 나를 통하여 통치자들과 귀족들, 곧 세상의 모든 재판관들이 다스리느니라. 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을 내가 사랑하나니, 일찍 나를 찾는 자들은 나를 만나리라. 18 부귀와 명예가 나와 함께 있으니, 정녕, 지속되는 부와 의도 그러하니라. 19 나의 열매는 금보다 더 좋으니, 정녕, 정금보다 더 나으며, 나의 소산은 순은보다 더 나으니라. 20 나는 의의 길과 공의의 길 한가운데로 인도하나니, 21 이는 나를 사랑하는 자들도 재산을 상속받게 하여 내가 그들의 창고를 가득 채워 주려는 것이라. 22 께서 태초에 일하실 때에, 옛적에 그의 일을 시작하시기 전에 나를 소유하셨느니라. 23 영원부터, 태초부터, 땅이 있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받았느니라. 24 깊은 곳들이 없었을 때 내가 났으니, 물이 솟는 샘들이 없었을 때라. 25 산들이 세워지기 전에, 작은 산들이 있기 전에 내가 났으니 26 그가 아직 땅도, 들도, 세상의 가장 높은 곳의 흙도 짓지 아니하셨을 때라. 27 그가 하늘들을 마련하실 때 내가 거기 있었으며, 그가 깊은 곳의 표면 위에 범위를 정하실 때에도 내가 거기 있었느니라. 28 그가 위로 구름들을 세우시고 깊음의 샘들을 힘있게 하셨을 때, 29 바다에게 그의 법령을 내려 물들로 그의 명령을 어기지 못하게 하시며 또 그가 땅의 기초들을 정하셨을 때, 30 그때 내가 그와 함께 양육된 자로서 그분 곁에 있어 날마다 그분의 기쁨이 되었으며, 그분 앞에서 항상 즐거워하였고, 31 그의 땅의 거처할 만한 곳에서 즐거워하였으며, 나의 기쁨이 사람들의 아들들과 더불어 있었느니라. 32 그러므로 오 너희 자녀들아, 이제 내게 경청하라. 내 길들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느니라. 33 훈계를 듣고 현명하게 되며, 그것을 거절하지 말라. 34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나의 문들에서 지켜보고 나의 문설주들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 35 이는 나를 만나는 자마다 생명을 얻고 의 은총을 받을 것임이니라. 36 그러나 나를 거슬러 죄를 짓는 자는 자기 혼을 해치는 자니, 나를 미워하는 모든 자들은 죽음을 사랑하는 자들이라. 』

〔사도행전 16:31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안이 구원을 받으리라.”

(요한복음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전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한 말들은 영이요, 생명이라.
It is the spirit that quickeneth; the flesh profiteth nothing:
the words that I speak unto you, they are spirit, and they are life.

『 세상도, 세상의 정욕도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요한일서 2:17)

『 14:24 만군의 가 맹세하여 말하기를 “내가 생각했던 대로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며, 내가 계획했던 대로 그것이 확고히 되리라. 4:12 그러므로 오 이스라엘아, 내가 너에게 이같이 행하리라. 내가 너에게 이것을 행하리니 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하라. 2:17 세상도, 세상의 정욕도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14:24 The LORD of hosts hath sworn, saying, Surely as I have thought, so shall it come to pass; and as I have purposed, so shall it stand: 4:12 Therefore thus will I do unto thee, O Israel: and because I will do this unto thee, prepare to meet thy God, O Israel. 2:17 And the world passeth away, and the lust thereof: but he that doeth the will of God abideth for ever.

(이사야 14:24아모스 4:12요한일서 2:17

Bible believers

 『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Divide)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 』(디모데후서 2:15)

            ● Peaceful Hymns on Violinㆍ잔잔한 찬송가 바이올린 연주 모음┃(53:39)

『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라... 』(시 편 12:6a)

King James Bible 1611

┃I could not do without Theeㆍ주 없이 살 수 없네 (3:16)┃

[0302]

[0316]

 주 없이 살 수 없네∼♪∼♬

1. 주 없이 살 수 없네 죄인의 구주여
0. 그 귀한 보배 피로 날 구속하셨네
0. 구주의 사랑으로 흘리신 보혈이
0. 내 소망 나의 위로 내 영광됩니다∼♪

2. 주 없이 살 수 없네 나 혼자 못 서리
0. 힘 없고 부족하며 지혜도 없으니
0. 내 주는 나의 생명 또 나의 힘이라
0. 주님을 의지하여 지혜를 얻으리

3. 주 없이 살 수 없네 내 주는 아신다
0. 내 영의 깊은 간구 마음의 소원을
0. 주 밖에 나의 맘을 뉘 알아주리요
0. 내 맘을 위로하사 평온케 하시네∼♩

4. 주 없이 살 수 없네 세월이 흐르고
0. 이 깊은 고독 속에 내 생명 끝나도
0. 사나운 풍랑일 때 날 지켜주시고
0. 내 곁에 계신 주님 늘 힘이 되시네♩∼♪♬

COULD NOT DO WITHOUT THEE

1.  I could not do without Thee
      O Savior of the lost,
      Whose precious blood redeemed me
      At such tremendous cost.
      Thy righteousness, thy pardon
      Thy precious blood, must be
      My only hope and comfort,
      My glory and my plea.

2.  I could not do without Thee,
      I cannot stand alone,
      I have no strength or goodness,
      No wisdom of my own;
      But Thou, beloved Savior,
      Art all in all to me,
      And weakness will be power
      If leaning hard on Thee.

3.  I could not do without Thee,
      For, oh, the way is long,
      And I am often weary,
      And sigh replaces song:
      How could I do without Thee?
      I do not know the way;
      Thou knowest, and Thou leadest,
      And wilt not let me stray.

4.  I could not do without Thee,
      O Jesus, Savior dear;
      E’en when my eyes are holden,
      I know that Thou art near.
      How dreary and how lonely
      This changeful life would be,
      Without the sweet communion,
      The secret rest with Thee!

┃[Vol.81]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Piano and Trumpet (피아노와 트럼펫 연주/06:47)┃

『 주님... 나의 모든 근원이 당신께 있나이다! 나의 주 하나님, 저의 믿음과 모든 은헤의 근원이, 저의 생명과 희락의 근원이, 저의 활동과 선행의 근원이, 저의 소망과 천국에의 모든 기대의 근원이 다 하나님께 있나이다. 당신의 성령이 없다면, 저는 메마른 샘이요, 물 없는 저수지요, 제 자신과 타인을 위한 축복의 능력이 전혀 없는 자가 될 것입니다. 오 주님, 저는 없이 살 수 없으므로 제가 당신께 새 생명을 얻은 자 가운데 있음을 확신하나이다. 그러므로 저는 주님을 기뻐하는 백성들과 함께 당신을 찬양하나이다. 』

─ 찰스 H. 스펄젼. ─

 만일 우리가 성령 안에서 산다면 또한
    
성령 안에서 행하자. (갈라디아서 5:25)

 사랑은 자기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로마서 13:10)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
    곧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28)

(시 편 10743로마서 152고린도전서 10241622
데살로니가전서 43a디모데전서 45마태복음 63377
역대기상 1611)

『 43 누구든지 지혜로운 자들과 이 일들을 살펴볼 자들, 그들은 의 자애하심을 깨달으리로다. 2 우리 가운데 각 사람은 선을 위하여 자기 이웃을 기쁘게 세워주자. 24 누구나 자기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각자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라. 22 누구든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그는 우리 께서 오실 때 저주를 받을지어다. 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곧 너희의 거룩함이니라. 5 이는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써 거룩하게 됨이라. 33 오히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해 주시리라. 7 ○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너희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라. 11와 그의 능력을 찾고 그의 얼굴을 항상 찾으라. 』

For the kingdom is the LORD'S
and he is the governor among the nations.

이는 왕국이 의 것이요,
주께서 민족들 가운데 통치자시기 때문이니이다.

Psalms 22:28시편 22:28

『 14:24 만군의 주가 맹세하여 말하기를 “내가 생각했던 대로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며, 내가 계획했던 대로 그것이 확고히 되리라. 4:12 그러므로 오 이스라엘아, 내가 너에게 이같이 행하리라. 내가 너에게 이것을 행하리니 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하라. 』(이사야 14:24┃아모스 4:12)

『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Divide)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 』(디모데후서 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