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4. 5. 23:01

“ 피터 럭크만의〈신약 교회사〉” (추천 도서)

(추천 도서) [20140119] ● 피터 럭크만의〈신약 교회사〉

 

『 신약 교회사 ─ 반카톨릭 교회사 』(피터 S. 럭크만 지음/1995.)

   신약 교회사 ─ 반 카톨릭 교회사 』

(피터 S. 럭크만 지음/편집부 옮

말씀보존학회798쪽/28,800원)

    이 책은...

  이 책은 B.C. 4A.D. 1984년까지의 반 카톨릭(Anti-Catholicism)의 신약 교회사를 기록해 놓은 책으로서, 이보다 “편견” 없는 교회사는 없으며, 성경적인 근거와 기준에 입각하여 역사의 진실을 입증해 주는 교회사는 없다. 이 책의 맨 뒤에 있는 참고문헌을 보면, 얼마나 이 책이 교회사의 진실을 거짓없이 담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A.D. 33년경의 에베소 교회 시대로부터 시작해서 1900년대로 이어지는 라오디케아 교회의 시대에 이르기까지(요한계시록 2, 3장,〈신약 교회사〉, pp.712 참조)의 방대한 역사를 총망라해서 약 700 쪽 가량의 지면을 빌어 다루어 놓았으며, 역사적 진리의 왜곡에 대한 그 근원을 지적하고, 그들의 이름과 날짜, 장소도 낱낱이 밝히고 있으니 가히 피터 S. 럭크만 박사가 아니고서는 이루어 낼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그분을 이러한 선하신 목적에 따라 쓰지 않으셨다면 이 책은 지금 우리의 손에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럭크만 박사를 들어쓰셔서 우리에게 정확하고 유일한 반 카톨릭 교회사를 갖게 하신 것이다. 아마도 이 책이 그분의 다른 150권 이상의 책들중에서도 특히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손에서 가장 많이 읽혀지며 사랑받고 있는 이유는, 교회의 역사를 통하여 자신들의 현재의 믿음을 제대로 점검해 볼 수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피터
S. 럭크만의『신약 교회사』를 통하여 다음과 같은 교훈들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진리가 왜곡되었다는 사실이다. 진리에 대한 사탄의 끊임없는 공격은 부패한 교회와 부패한 성서들을 내세워서 다수의 종교적인 사람들로 하여금 거짓을 진리로 여기게끔 속여왔던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진리를 수호했던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소수였으며,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들을 영원토록 보존하시겠다는 약속을(시편 126, 7) 이들을 통하여 보존해 오셨다. 오늘날 모든 배교한 성경들 가운데서《킹제임스성경》만이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그 최종권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한 말씀(디모데후서 316)에 관한 섭리적인 다루심이 있어왔기 때문이다.
  
둘째, 진리를 수호하는 데에는 희생이 요구되었다는 사실이다. 악한 현 세상에서 사탄의 세력과 대항해서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지켜온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은 세상과 죄와 그리고 카톨릭의 비진리에 관하여 어떠한 형태로든지 타협하지 않았으며, 그 더러움으로부터 성경적인 성별을 해왔고, 이로 인하여 “이단”으로 불림과 더불어 순교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의 믿음을 지켜왔다(제9장,「이단 사냥」편을 보라). “이단”이란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정의와는 달리(고린도전서 1119) A.D. 60년으로부터 지금까지 당대의 “종교세력”에 무릎 꿇지 않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에게 붙여진 다른 이름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처럼 기존 교회의 교단에서 인정하지 않으면 무조건 이단이 되는 것처럼 성경적인 의미에서의 이단에 대해 기준이 없었고 무분별하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교회사에서 이런 방법으로 이단 아닌
“이단”이 되었던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을 제시해 본다면, 노바티안(Novatians), 몬타니스트(Montanists), 도나티스트(Donatists), 폴리시안(Paulicians), 보고마일(Bogomiles), 카타리(Cathari), 왈덴스(Waldenses), 재침례교도(Anabaptists) 등이 있었다. 그런데 한편, 이것도 저것도 아닌 절반만 세상으로부터 분리한 사람들이 이러한 현실을 피해서 숨어 있는 곳이 있었는데, 그곳은 다름아닌 수도원이라는 곳이었다. 이곳은 오늘날로 말하자면, 믿음에 관해 “용기”없는 자들의 피난처로서 안성맞춤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세상으로부터 분리되기는 원하나 카톨릭의 세력에 너무 두려워 떤 나머지 궁여지책으로 “양다리” 걸친 사람들이었다. 이로써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하여서 교회사를 공부해 본다면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 어떻게 세상과 카톨릭으로부터 성별해서 하나님께로 향했는지(로마서 11121, 2)를 또한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이 책을 통해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사실을 한 가지 더 든다면 인간의 타락한 본성 자체에 대해서이다(로마서 7장). 이는 실지로 교회의 역사에서도 입증되는 바이다. 부흥이 있으면, 그 뒤에는 배교가 곧이어 뒤따라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항상 과학과 철학과 인간의 전통들(디모데전서 620┃골로새서 28┃마가복음 79)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럭크만 박사는 이것을 역사를 통해 반복되어 온 “교회사의 악순환”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즉, 교회사의 매 시대마다 입증되는 역사적인 순환은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주신 유일한 사명(마태복음 2819, 20┃디모데전서 24)인 복음 전파(Preaching)와 가르침(Teaching) 뒤에는 문화(Culture)와 배교(Apostasy), 그리고 이교도화(Paganism) 되는 것으로 그 막을 내린다는 점이다. 성경이 인간을 철저히 부정적인 존재로 언급해 놓은 것을 기억한다면 우리가 꼭 주목해 보아야 할 점이 아니겠는가? 심지어 성경에는 천년왕국이 끝남과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께 반역하는 무리들이 있을 만큼 아담의 타락한 본성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고 있다(요한계시록 2079). 그런데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 없이 이 땅에 지상낙원을 꿈꾸는 후천년주의적 사상은 문화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교회적으로나 누룩으로 부풀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은 이와 같은 후천년주의적 사상을 결코 받아들여 본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만이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없애 줄 수 있기에 그분의 다시 오심을(THE SECOND COMING OF THE LORD JESUS CHRIST) 간절히 기다리는 그리스도인들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자들이 이 책을 읽노라면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반드시 다시 오셔야만 하는지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 피터 S. 럭크만 (Peter Sturges Ruckmanㆍ1921∼)

    저자 소개...

  ‘피터 S. 럭크만’(Peter Sturges Ruckman19212016) 박사는 미국 플로리다 주 펜사콜라에 있는 성경침례교회(Bible Baptist Church)의 목사였으며, 펜사콜라 성경 신학원(Pensacola Bible Institute)의 설립자이자 원장으로서 50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럭크만 박사는 밥 존스대학(Bob Jones University)에서 Ph.D.를 받았지만 그 학교의 신학 노선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저자는 존 칼빈 이래로
500여 명 이상의 유명하다는 성경 주석가들이 주석서에 범해 놓은 주요 오류들을 일일이 지적하여 바로잡았으며, 창세기, 출애굽기, 욥기, 시편, 잠언, 소선지서, 마태복음, 사도행전, 히브리서, 요한계시록 등의 주석서를 저술함으로써 올바른 성경 진리를 밝히고 있다.
  또한 럭크만 박사는
킹제임스성경이 왜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인가를 권위 있게 설명하고 증명할 수 있는 독보적인 학자로 일했다. 특히 그의 저서〈필사본 증거Manuscript Evidence〉,〈알렉산드리아의 이단들Alexandrian Cult Series〉,〈신약교회사The History of the New Testament Chruch〉,〈킹제임스성경 유일주의King James Onlyism등에서 그 사실을 분명하게 밝혀 주고 있다. 그는 주석서와 성경 교리에 관한 160여 권이 넘는 책의 저자이며, 세계 전역에 있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존경받는 스승이다.

    서 문...



  성경적 기준으로 보아 교회사는 주로 신약 시대에 시작된 지역 모임들의 역사를 다루게 된다. 그러나 이제껏 쓰여진 많은 교회사들이[될린져(Dollenger), 워커(Walker), 피셔(Fisher), 네안더(Neander), 모쉐임(Mosheim), 샤프(Shaff), 캐언즈(Cairns), 뉴만(Newman) 등] 주로 다룬 것은 반() 교회사라고 불러야 하는 내용들이었다. 그것은 거의 대부분의 교회역사가들이 교회사를 집필할 때 중요한 참고 자료로 삼아야 할성경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립 샤프(Philip Shaff)8권이나 되는 기독교회사를 쓸 때(이 기독교회사란 성경을 믿는 사람들의 역사일텐데도) 성경의 능력과 권위에 대한 의식이 오헤어(Madalyn Murray O’ Hair)나 웨스트코트와 홀트(Westcott & Hort)보다도 못한 수준이었다.

  우리의 교회사는 두 가지 전제하에 쓰여졌다. 우리의 전제란 대부분의 교회사들이 실제로는 반()교회사라는 사실이다. 즉 대부분의 교회사들은 신약 교회의 최대의 적으로 드러난 정치적, 종교적 기구를 중심으로 교회의 성장과 발전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마지막 시대에(19701994) 이 실체는 국제 공산주의와 연합한 로마카톨릭 지도부임이 분명히 밝혀지고 있다.

  샤프(Philip Shaff), 맥기퍼트(McGiffert), 라투렛(Latourette), 라가르데(LaGarde), 될린져(Dollenger), 헤펠(Hefele) 및 기타 여러 사람들은, 로마카톨릭 교회와 신약 교회가 전혀 닮은 데라고는 없는데도 로마카톨릭 교회를 교회사의 주류인 양 취급해 왔다.

  신약교회와 로마 교회의 역사는 너무나 다르고 양립할 수 없기 때문에 이들을 연결시키려면 온갖 종류의 술수를 동원해야 할 판이다. 즉 속임수, 속다르고 겉다른 말, 외경적 자료들, 외부 증인들, 날조된 문서와 감상적 픽션까지 다 동원해도 모자랄 지경이다. 신약교회와 로마카톨릭 교회와는 조직, 교회 행정, 예배방식, 의식, 지향하는 바, 믿음의 내용, 활동, 목적, 목표 혹은 그 열매에 있어서도 완전히 다르다.

  준(semi)교회사란 신약교회가 역사 속을 움직여갈 때 만나게 되는 인물이나 사건을 다루는 것으로, 로마가 신약 교회의 복음 증거를 방해하는 데 적극적으로 개입한 것과는 달리, 신약교회의 복음 증거를 적극적으로 방해하는 일에는 개입하지 않은 인물, 제도, 사건 및 상황들의 역사라 할 수 있다. 한편 세속사는 역사를 종교적 측면과는 별개로 다루는 것이며 교회의 영향이나 그리스도인들이 문화에 기여한 바 등을 가끔 언급하기도 한다. 그러나 소위 웰스(Wells), 듀란트(Durant), 스펭글러(Spengler), 처칠(Churchill), 깁본(Gibbon) 등과 같은 역사가가 다루는 것들은 우리가 지금부터 고찰하고자 하는 신약교회사와는 전혀 실제적 관련이 없다.

  우리의 전제는킹제임스성경1611년 판이 이제껏 번역 출판된 모든 성경 중 가장 정확한 최고의 성경이며 휴거 이전 이 지구상에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최고의 권위라는 사실이다. 즉 이 성경이야말로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Bible Believers)에게 있어서 믿음과 실행의 모든 문제를 가늠하는 오류없고 완벽한 최종 권위(Final Authority)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증명해 줄 많은 자료를 충분한 시간과 공간을 할애하여 제시했으므로, 독자 스스로 진실을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며,킹제임스성경에서 잘못을 찾아 냈다든가, 이 지구상 그 누구도 본 적이 없는 “원본”만이 “축자적으로 완전히 영감”을 받아 쓰여졌다고 하는 “근본주의자”들의 주장이나 인용문들로 인해 오도되지 않기를 바란다.킹제임스성경으로부터 번역된 성경은 (이미 800여 언어로 번역되었다.) 이 시대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것이며 특히 히브리어로 번역된 신약성경은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을 받을 것이다.

  우리는 헬라어 표준원문이 어떻게 기원되었으며, 이 원문으로부터의 번역성경들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보존되어 왔는가, 이 원문들을 암흑시대에도 사용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이 원문을 없애려고 한 자들은 누구였던가, 또한 어떻게 참된 헬라어 원문들이 독일의 종교개혁과 인쇄술에 의해 살아남게 되었는가를 자세히 설명할 것이다. 우리는 또한 알렉산드리아 이단들이 추천하고 보급해온 알렉산드리아 원문의 기원(40개가 넘는 원천자료를 동원하여)이 무엇이었는가에 대해 충분한 자료도 제시할 것이며, 어떻게 이 추악하고 위조된 “성경”이 암흑시대로 침투해 들어갔는지도 설명할 것이다.

  오리겐, 유세비우스, 콘스탄틴과 제롬 등에 의해 만들어진 이 알렉산드리아 원문은 서구문명에서 가장 형편없는 시기, 즉 “암흑시대” 기간 중 “기독교계”의 공식 “성경”이었다. 카톨릭 수도승, 주교, 사제, 신부, 예수회 회원 및 교회들이 이 성경의 교훈을 가르치고 강론했으나 그 열매란 끊임없는 사기극, 혼돈, 왜곡된 정치, 모함, 투서, 진실왜곡, 대량투옥, 고문, 종교적 이유에 의한 대량 학살뿐이었다. 만약 우리가 어떤 책을 그 열매로 판단하는 것이 옳다면, 우리는 주저없이 알렉산드리아 원문(20세기의 ASV, NIV, New ASV)은 “성경”이라는 이름 하에 추천 보급되어 왔던 가장 타락하고 불경건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를 모독하는 책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암흑시대에 이 알렉산드리아의 위조 성경은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Jerome’s Latn Vulgate)라고 불렸으며, 종교개혁 시대에는〈듀웨이 림즈 역본Duuay Rheims Version, 1582〉이라 불렸고, 금세기에는 여러가지 이름(RV, ASV, NASV, RSV, NRSV, IV, NIV, NEB, TEV 등)으로 번져나가 기독교 대학을 주도하는, 죽었으나 그래도 정통이라고 우겨대는 배교자 그룹만큼이나 많아졌다.

  만약 우리가 이처럼 믿음에 관한 모든 일들에 있어 성경을 그 기준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교회사가 7개의 중요한 시대로 되어 있음을 믿을 것이다. 그 첫 번째 시대는(에베소 시대/요한계시록 21) 사도들의 시기로 명명될 수 있는데, ‘마태복음 10장’에서 부름 받은 최초의 신약 교회로 시작되어 마지막 사도의 죽음과 더불어 A.D. 90년에 막을 내리게 된다.

  교회사의 제2시기(스머나 시대/요한계시록 28)는 일반적으로 A.D. 90년에서 A.D. 325년까지에 해당되고 제3시기(퍼가모 시대/요한계시록 212)A.D. 325년부터 A.D. 500년까지에 해당된다. 교회에 관한 역사적 사건들을 다루게 될 때 역사가들은(그들이 구원을 받았든 그렇지 않든, 혹은 어떤 교단에 속해 있던 간에)킹제임스성경‘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나와 있는 체계를 그 기준으로 삼게 된다. 그들은 첫 번째 시대를 사도적 교부 시대(Aopstolic Fathers)로, 두 번째 시대를 니케아 이전 교부 시대(Anti-Nicene Fathers)로 그리고 세 번째 시대는 니케아 이후 교부 시대(Post-Nicene Fathers)로 명명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종종 성경을 거부하는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성경적 문자, 표현, 체계, 분류 방법을 사용하도록 하시며, 거의 모든 사람들이 성경적 시대 구분을 따르도록 하신다. 예를 들면 로마카톨릭 역사가들이 “암흑 시대”(The Dark Ages)를 “중세”(The Middles Ages)로 변경시키고자 했을 때(이 시기 동안 유럽을 다스린 장본인이 로마카톨릭 교회였고, 그 결과가 유럽 역사상 최악의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남긴 역사적 오점을 지워 버리기 위한 시도였음) 그들은 성경의 함정 속에 빠져 버린 것이다. 그들은 A.D. 5001500년 시기를 “중세”라고 명명함으로써 그들과 그들의 뒤를 따르던 개신교 역사가들로 클라렌스 라킨(Clarence Larkin)1918년에 쓴세대적 진리Dispensational Truth라는 책에 나오는 도표에 입각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시기를 정한 셈이다. 이 도표들은킹제임스성경으로부터 도출된 것으로 일곱 체계(Seven-sevens system)를 찾아내어 만든 것이다(일곱 체계는 ‘레위기 23, 25장,’ ‘베드로후서 3:8,’ ‘요한복음 2:1,’ ‘마태복음 17장’ 등에 나와 있음). 이 체계는 교회 역사 첫 500년을 “저녁 경점”(even watch)로, 그 다음 천년을 “밤중 경점”(midnight watch)과 “닭 울 때의 경점”(cock crowing watch)로, 그리고 그 다음 500년을 “아침 경점”(morning watch)으로 분류하고 있다(마가복음 1335). 따라서 A.D. 5001000으로부터 시작되는 시기에 “중간”(middle)이란 명칭을 붙이는 사람은(자이든 타이든 상관없이) A.D. 500년까지를 “시작”으로 그 마지막 500년을 “끝”으로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라투렛(Latourette)은 그의〈기독교 팽창사A History of the Expansion of Christianity〉에서 다른 역사가들과 마찬가지로 이 함정에 자기도 모르게 걸려들고 말았다. 그는 그의 교회사 제2권을 “1000년 간의 불확실한 시대”라고 불렀는데, 그가 정한 시기는 A.D. 5001500년으로 이 시대는 로마카톨릭이 유럽을 장악하고 있던 시기였다. 그 시기에 관심이 없는 것은 물론 재림을 믿지도 않는 자들이 이처럼 A.D. 2000년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시기로 정해 놓은 것은 매우 신기한 사실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현명한 자들로 그들의 꾀에 빠지게 하는 데 명수이신 것이다(고린도전서 319). 최근에 와서는 역사가들이 그들의 “실수”를 깨닫고서는 실제의 암흑 시대는 A.D. 800년까지는 시작된 바 없다고 은밀하게 발뺌을 하면서 르네상스는 암흑 시대의 일부분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교회사의 제4시기(두아티라 시대/요한계시록 218)는 “위대한” 교황 레오 시대로부터 십자군 시대까지에 해당된다(대략 A.D. 5001000년). 제5시기(사데 시대/요한계시록 31)10001500년 사이이며, 제6시기(필라델피아 시대/요한계시록 37)는 종교개혁이 포함되는 시기이다(A.D. 15001900). 종교개혁 시대로 들어오게 되면(혹은 종교개혁이 완성된 시기, 즉 16001700) 우리는 교회사에 있어 필라델피아 교회 시대를 꽃피우는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때쯤이면 독자께서도 신약 지역교회와 로마카톨릭 음녀(요한계시록 17장)와의 차이에 대해서 충분히 인식하셨으리라고 짐작된다. 모든 종교 개혁자들이 교황을 적그리스도로 간주했고, 따라서 카톨릭 교회는 사탄의 신부라고 여겨졌던 것이다. 비록 카톨릭 교회가 “자선 행위”, 수녀들의 봉사, 병원 건립, 고아원 운영, 흑인 향상 협의회의 지원, 라틴 아메리카의 공산주의 지원 등을 통해 그럴싸한 “간증”들을 내세우기도 하지만, 오늘날까지도 그리스도인들을 살해해 온 이 사악한 집단은 때때로 그 가면을 벗어 제낀 채 피 묻은 얼굴을 불쑥 내밀고 있다(요한계시록 1759).

  이 때는 로마 교회가 벌써 14세기 간의 “발전”을 이룩해 놓은 시점이다. 물론 이 경우 “발전”이라는 것은 배도(Apostasy背道背敎믿음을 배반함.)를 뜻한다. “진화”라는 어휘가 때로는 “퇴보”를 뜻한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원래의 사도적 부르심에 충실하고 사도 바울에게 주어진 계시에 충실했던 교회들은 신약 성경을 훨씬 뛰어넘는 따위의 “발전”을 하지 않았다. 물론 여러가지 믿음의 실행과 고백들이 때때로(사도행전15장) 정의 내려진 적은 있으나, 소위 “발전”이라고 하는 것은 동방 정교회와 더불어 로마 교회에 국한되는 것이었고, 우리가 이미 보아온 것처럼 이 발전은 겨자씨가 진화하여 푸른 월계수(시편 3735)가 되어 마귀들이 거처하는 둥지가 되어 버렸음을 뜻한다(마태복음 1332). 이 종교적 마귀들은 신학적으로 보아 거짓말장이요, 이단인 동시에 잔인한 살인자들로서 방화, 고문, 학살, 암살에 있어 그 어떤 기록도 이들 집단들의 기록을 능가하지 못할 것이다(19201960년 사이의 모택동, 레닌, 스탈린의 학살 기록이 어쩌면 유일하게 이들보다 앞설지 모르겠다). 게다가 그 기록은 모택동, 레닌, 스탈린 등과는 달리 카톨릭 교회의 지도자들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교회의 공식적인 승인과 때로는 “축복”과 더불어 자행된 살상 기록이다. 이러한 행위에 대해 교황이나 주교들이 공식 재가와 승인을 했다는 사실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거룩한 어머니 교회”의 이름으로, 혹은 “마리아의 성스러운 이름”으로, 때론 신성모독으로 저질러진 재난들은 유럽의 그 어느 곳에나 지난 1000년 간 너무도 흔한 일들이었던 것이다.

  한편 필라델피아 교회시대는 국가로부터 분리된 지역교회를 여전히 믿고 있는 유럽의 그리스도인들이 “조국”을 떠나 새로운 지평선을 찾아나서게 되는 때이다. 이들은 북쪽으로 가자니 시베리아, 스피치베르겐(Spitsbergen), 젬리아(Zemlya), 아이스랜드와 그린랜드에서 얼어 죽을 것이고, 남쪽으로 가자니 카톨릭 교회가 시작된 아프리카로 돌아가는 꼴이 되는 셈이요, 동쪽으로 가자니 터키인과 사라센, 모슬렘들이 그들을 죽이거나 노예로 삼는 일을 큰 특권으로 여기고 있는 터요, 그대로 남아있자니 그들이 아이들에게 물을 뿌리는 세례를 주지 않으면 감옥에 가거나, 로마카톨릭 주교로부터 허가를 받지 않고는 성경을 읽는 것을 포기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게다가 유럽과 영국에 살고 있던 성경대로 믿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및 남부 독일의 국가교회들이 선언한 125가지의 저주하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트렌트 공의회(Council of Trent)15451564)].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하면 이 저주들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는 모든 교황은 선출된 후에 ‘교회’의 공식 공의회에서 선언된 모든 공식 명령들을 준수할 것을 서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트렌트 공의회는 카톨릭 교회 역사상 가장 오래 열렸으며 가장 중요하다고 간주되고 있다.

  카톨릭 교황들이 유럽의 군주들을 선동하여 서로 다투게 함으로써 민족주의의 발흥을 억제하고 모든 국가들 위에 카톨릭 독재를 수립하고자 부지런히 활동하고 있을 즈음, 이 와중에서 탈출하는 유일한 길은 출렁이는 파도를 넘어 서쪽으로 항해 길에 오르는 것뿐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오직 죽음만이 있을 뿐이었다. 이로써 16001900년 사이 수십만의 유럽인들이 재난을 피해서 서쪽행을 택했다. 이들이 북미대륙으로 가져온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프로테스탄트”(개신교)였다(물론 후에 아일랜드, 이탈리아, 쿠바 등지에서 카톨릭 신자들이 몰려오긴 했지만). 미국은틴데일 성경의 개역본인제네바 성경(이것은 1620년 필그림 조상들이 가져온 것이었다)킹제임스성경에 기초하여 세워졌는데, 이킹제임스성경은 미국에서 인쇄된 최초의 성경이었다. 독립 선언문을 작성한 사람들이나 필라델피아 헌법 기념관에 있는 지도자들 중 그 누구도 예수회의〈림스 성경1582─ 즉 오늘날의 ASV, NASV, RSV, NRSV, IV, NIV을 하나님의 말씀이나 혹은 “하나님의 말씀의 신뢰할 만한 번역본”이라고 믿지 않았다. 그런 종교적 정신착란은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나 제임스 국왕도 걸리지 않았던 것이었다. 이들 영국의 통치자들은 오늘날 미국의 리버티 침례대학, 밥 존스 대학, 성서 침례 대학, 휘튼, 하일즈-앤더슨, 혹은 샌프란시스코 신학교들의 교수요원들보다 훨씬 더 영적 분별력이 뛰어났던 것이다.

 킹제임스성경제네바 성경과 마찬가지로틴데일 성경의 개역본이었으므로 미국은 출발부터 제대로 된 국가였다. 이는 미국이야말로 카톨릭이 화형시켰던 반 카톨릭적 그리스도인들이 번역한 성경을 가지고 건국된 최초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역사상 “전무후무한” 사건이었으니 어째서 미국 역사에 있어 18, 19세기 동안 한 명의 카톨릭 신자도 백악관의 주인이 될 수 없었던가를 잘 설명해 준다고 하겠다. 워싱톤, 프랭클린, 제퍼슨, 아담스 그리고 메디슨은 모두 젊었을 때킹제임스성경을 배웠던 것이다. 그들이 알고 있었던지 모르고 있었던지 간에 그들이 “성경”이라고 인정했던킹제임스성경틴데일 성경이나제네바 성경이〈비숍 성경〉과 상반되는 경우에는 (비숍 성경은 당시 오늘날의 ASV에 가장 근접했던 성경이었다)〈비숍 성경〉이 거부되어야 한다는 현명한 원칙하에 쓰여졌던 것이다.

  유럽의 두 운동으로 인해 대서양 횡단을 통한 미주 대륙으로의 대량 이민이 가속화되었으니, 그 첫째는 “경건주의 운동”이며 또 하나는 요한 웨슬리(John Wesley)에 의해 주도된 “감리교 부흥운동”이었다.

  “참된” 교회사에 관한 한 미국과 유럽의 연결 고리는 카톨릭 교회나 그 관련단체와는 전혀 무관하다. 카톨릭 교회는 이미 A.D. 1000년이 되기도 전에 이교도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과 유럽의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교제는 독일의 경건주의자 및 모라비안들[스페너(Spener), 프랑케(Franke), 슈팡켄 베르크(Spangenberg), 진젠도르프(Zinzendorf), 데이빗 크리스쳔(David Christian) 등]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그후 피터 뵐러(Peter Bohler)와 그에 의해 개종한 요한 웨슬리에 의해 확고히 되었다. 미국 기독교를 1933년 “금주령 해제”시까지 특징지워 주었던 불길 같은 복음 전파를 미국으로 가져온 사람은 요한 웨슬리와 조지 휫필드였다. 이 두 사람은 마틴 루터와 경건주의자들[이들은 로마 교황이 추천하는 NASVNIV 대신 루터(Luther)와 엘지버(Elzevir)가 편수한표준 원문을 사용했다]로부터 그들의 영적 유산을 물려받았다.

  제7시기는 A.D. 1900년경(대략 18841901년 무렵)이며, 마지막 시기인 라오디케아 시대가 시작된다(라오디케아 시대/요한계시록 314). 이 시대의 교회는 미지근한 것으로 특징지워져 있다(요한계시록 316). 믿거나 말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 교회(요한계시록 38)가 결국 자신의 재산, 수입 규모를 자랑하는 교회로 “발전”하고 말았다. 그 교회는 이렇게 되고 있는 동안 자신의 그 “촛대”를 빼앗겨 버린 것이다(요한계시록 25┃시편 119105).

  이 일곱 교회 시대는 성경 본문(킹제임스성경, 1611)에 에베소, 스머나, 퍼가모, 두아티라, 사데, 필라델피아, 라오디케아 시대로 명명되어 있다(〈피터 럭크만의 주석서 요한계시록〉말씀보존학회, 1994, ‘111, 2, 3장’ 참조). 성경에 의하면 인간 역사는 각 시대마다 배교(Apostasy)로 끝나게 되어 있다. 성경을 진지하게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역사의 모든 시대는 역사의 창시자께서 기록하신 대로 부정적인 상황을 그 결말로 갖게 된다는 사실을 자기 이름 석자를 알고 있는 것만큼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진화론적” 관념을 머리에 담고 교회사를 쓴 모든 기독교 역사가들[어거스틴, 샤프, 모든 교황들, 네안더(Neander), 라투렛(Latourette) 등]은 그들의 생애를 바쳐 만든 “역작”에서 이미 비성경적 태도와 비성경적 편견을 보인 것이다. 이와 같은 편견으로 출발한 사람은 역사적 사실들을 해석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 기간에도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역사적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다. 즉, 복음전파(설교), 그 뒤를 이은 가르침(교육), 그후 문화(과학과 철학), 그리고 급기야는 배교(에큐메니칼 운동과 성경 권위의 거부)와 이교도화(공산주의, 카톨릭, U.N., 국제연맹 등)의 과정이 반복될 것이다. 역사상 그 어떤 영적 운동도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은 적이 없다. 사람, 운동, 기계화, 그리고 기념비가 그것이다. 사람은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요, 운동은 가르치는 것이며, 기계는 문화를 뜻하며, 기념비는 배교를 의미한다. 미국의 모든 교회와 학교 역시 ─ 그들의 신앙고백, 창설자, 학생수, 수입 및 명성과 관계없이 ─ 4단계 가운데 하나의 단계에 속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영적지도자를 따르고 있는 중이거나, 어떤 운동에 관여하고 있거나, 아니면 이미 기계를 돌리고 있는 중이거나, 아니면 이미 관광객들의 눈요깃감이 되어 버렸거나, 그 넷 중의 하나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만약 누군가가 로마카톨릭과 루터 교회 그리고 성공회라고 칭하는 기념비를 관광하고 싶으면 유럽과 영국 전역에 박물관처럼 널려 있으니 가보라. 이미 A.D. 1800년 이전에 그리고 대다수는 이미 A.D. 1200년 이전에 기념비로 전락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성령께서 하시는 성경적 진리의 제시가 가져다 주는 성경적 확신들을 거부한 다음에 쓰여지는 역사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우리는 성경이 제시하는 대로 사탄은 ‘창세기 3장’ 이래 거의 모든 인간 활동에 깊은 관심을 보여 왔으며, 지금도 살아서 활동하고 있고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가장 강력한 능력과 권위를 행사할 미래가 그 앞에 전개될 것임(요한계시록 13장)을 인정한다. 이와 같은 사실들에 관한 온전한 진리의 제시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거의 모든 교회역사가들은 실로 “풋내기”에 불과하다. 우리가 이들을 풋내기로 부르는 것은 그들의 연구나 저술에는 사탄이 교회 역사에 깊이 간여하고 있으며, 많은 사건들이 사탄의 직접적인 역사였다는 사실을 애써 감추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고린도후서 44). 윌 듀란트(Will Durant)는 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탄은 존재하지 않는 고로 인간의 세속사나 종교사에 있어서도 사탄의 역사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사탄이 교회 역사에는 관여하지 않았다든가 사탄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자들은 모두 역사의 교훈들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는 철저히 무능한 것이다. 역사가 인간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칠 수 없다면, 그 무엇이 인간을 가르칠 수 있겠는가? 결국 역사란 인류의 기록된 경험들인 것이다. 전세계를 미혹하는 존재가 있다면(요한계시록 129), 그가 교회역사가를 속이는 것쯤이야 지구상의 그 어떤 죄인을 속이는 것만큼이나 간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세속사든 종교사든 간에). 집요하고 교묘하게 그리고 강력하고 활발하게 진리를 왜곡시키려고 시도하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창세기 3장)을 무시한 역사 기록은 진리를 찾고자 하는 그 누구에게도 진지한 것으로 받아들여져서는 안된다.

  실로 그리스도인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요한복음 146) 그분과 사귐을 갖는 사람이요, 진리임을 주장하는(요한복음 1717) 책을 부여받은 자이다(데살로니가전서 213). 믿는 사람 안에 있는 “진리의 the Spirit of truth(요한복음 1417)이 그를 모든 진리로 이끈다면(요한복음 1613), 범세계적으로 6천 년 간에 걸쳐 기회가 주어지면 그 어느 때든지(디모데후서 226) 진리를 왜곡시키기 위해(데살로니가후서 2410) 온갖 능력과 권위(누가복음 46)를 행사하려는 초자연적인 대적자를 무시한 채 기록된 역사를 그리스도인된 자로서 어찌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이 악한 자가 어디에서 활동하며, 어떻게 활동했으며, 언제 혹은 누구를 통해 역사했던가를 전혀 다루지 않는 입술로만 그리스도인인 체하는 자들이 쓴 교회사들을 어찌 인정할 수 있겠는가? 그가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교회사”를 쓴답시고 사탄에 대한 성경적 사실들을 내던질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사탄에 관한 확실한 사실을 믿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러한 사실들을 작업복을 입고 벗듯이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다루어야 하겠는가?

  사탄의 세상(고린도후서 44)이나 그의 “그리스도들”(고린도후서 11114)을 논할 때 마귀에게 그에 합당한 “비중”을 두지 않는 이유는 마귀와 그의 간계를 모르거나(에베소서 611) ─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고의적인 죄가 될 수 있다(고린도후서 211) ─ 아니면 비겁하게 마귀와 공모하여 역사에서 성경적 이슈가 등장하는 곳에서는 “그 누구 편도 들지 않음으로써” 책을 팔아 먹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성경적 이슈들을 담고 있지 않은 교회사는 상상할 수도 없다. “사실”들을 다루는 데 있어 “객관성”을 냉정하고 중립적으로 지키겠다고 하면, 독자들은 모든 사탄적인 사건들이 그저 인간의 무지나 실수 때문이었다는 인상을 받게 될 것이다(제14장, 각주 121125). 소위 가장 많이 읽히는 역사책들을 읽어 보면 이들 저자들[웰즈(Wells), 리드패스(Ridpath), 듀란트(Durant), 처칠(Churchill), 캐이톤(Caton), 롤린스(Rowlinson), 네안더(Neander), 모쉐임(Mosheim), 하르낙(Harnack), 될린져(Dollinger) 등]은 사탄이 존재한다고 믿지 않거나, 존재하더라도 어쩌면 사탄이 그들의 책의 출판이나 판매를 관장할 것이기 때문에 사탄을 대적하지 않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게 된다. 이들 전형적인 역사가들은(알렉산드리아 이단들처럼, 제5장 참조) 너무도 그럴싸하게 똘똘 뭉쳐 영적 소경 군단을 이루고 있는 바 이는 그들 스스로가 판 무덤인 것이다.

  그 어떤 교회사가나 전기 작가도 그가 다루는 주제에 접근함에 있어 완전히 중립적일 수는 없다. 만약 그렇게 할 수 있는 그 누구가 있다면 그는 하나님일 것이다. 그런데도 많은 현대 과학자들과 성경 교사들은(Edward F. Hills,Believing Bible Study, 1967. 참조) 그들이 마치 하나님처럼 초자연적 “냉정”과 객관성을 획득한 자인 것처럼 굴고 있다. 그러나 그 어떤 죄인이(구원받았든 잃어버린 바 되었든 간에) 완전히 중립적일 수 없는 한 분야가 있다면, 그것은 다름아닌 성경적 진리와 마주치게 될 그 분야인 것이다. 고집센 불신자, 불가지론자, 배교자 그리고 무신론자 그 누구일지라도 완전히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 이성의 시대를 대표하는 무신론자(Will Durant)나 계몽 시대의 무신론적 글들마저도 가장 사악하고 주관적인 편견으로 가득 차 있다. 막스(Marx), 스피노자, 샤르트르, 듀이(Dewey), 산따야나(Santayany), 헤겔, 러셀, 피히테(Fichte), 네슬, 홀트, 헉슬리, 다윈, 바쿠닌(Bakunin), 니체 등의 작품에는 광적인 편견들로 가득 찬 페이지들이 많이 있다.

  그 누구도 “편견”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피터 럭크만의 주석서 사도행전〉, 말씀보존학회, 1997, ‘222’ 참조). 자신은 편견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학문이 하도 깊고 넓어서(그들의 학문이 그들의 양심을 마비시켜 드디어는 “그 어떤 것”에도 “관용”을 베풀 수 있게 된 “놀라운” 자들) 모든 것을 객관적으로 말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학자인 체’하는 자들인 것이다. 자신의 수입에만 지장이 없다면 “그 무엇이든” 용납하겠다는 자들은 분명히 밝혀 두지만 거짓말조차도 용납할 것이다. 단 한 가지, 자신의 수입(소득)에 지장이 있다면 그들은 가만있지 않는다. 사탄의 역사는 인류 역사 6000년을 총망라하는 고로(창세기 3장┃에스겔 28장┃이사야 14장┃욥기 1장┃마태복음 2장┃요한계시록 13장 등), 사탄은 ‘마태복음 27장’에서 죽었고, 그 이후에는 역사에 등장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몇몇 역사가들처럼 어리석어야 할 필요가 없다. 만약 하나님께서 한 권의 책을 갖고 계시다면 사탄도 한 권의 책을(고린도후서 114) 갖고 있으며, 하나님께 사역자들이 있다면 사탄에게도 사역자들이 있으며(고린도후서 1115), 하나님께 그리스도(Christ)가 있으면 마귀도 자기의 그리스도(christ)를 갖게 될 것이고(마태복음 245┃누가복음 218), 하나님께서 한 도성(요한계시록 219, 10)인 교회를 신부로 갖고 있다면 사탄도 이에 지지 않고 교회요 도성인(요한계시록 1718) 자신의 신부를(요한계시록 1715) 갖게 될 것이다.

  지금부터 여러분이 읽게 될 교회사에서는 모든 진리에 관한 기준과 시금석으로 오직킹제임스성경만을 취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을 위한 성경 주석 시리즈(피터 럭크만의 주석서 시리즈)에서 취한 우리의 입장을(19491980) 전혀 바꿀 생각이 없다. 우리는 역사에 대한 진리의 왜곡과 변개가 있을 때는 그것을 지적할 것이며, 그 근원을 추적할 것이다. 진리를 반대하거나 진리를 전파하는 자들을 박해하는 자들은 그 이름을 열거할 것이며, 그 날짜와 장소도 지적할 것이다. 성경대로 믿는 사람은 플라토, 어거스틴,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헤겔 등과 같은 “지식인” 혹은 “책벌레”들의 주위를 방황하면서 “진리가 무엇이냐?” “최고의 선은 무엇인가?” 하는 따위의 어리석은 질문을 하지는 않는다. 이런 질문들은 어린아이들이나 하는 것이다(빌라도, 하이데거, 틸리히, 바르트, 러셀, 듀이, 막스, 프로이트, 볼테르, 루소 등).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요한복음 1717)과 성육신하신 진리(요한복음 113)를 갖고 있으며 이를 믿기 때문에 불교 신자, 도교 신자, 유교 신자, 카톨릭 신자, 회교 신자, 근본주의자 혹은 자유주의자들에게 에큐메니칼(교회 일치) 운동의 신호를 보내거나 이들의 입장에 맞도록 태도를 조정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오류를 관용적 태도로 용납하거나 거짓을 친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경건한” 그리스도인의 표식인 것처럼 생각하는 자유주의자들과는 전혀 타협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신실한 증인”(Faithful Witness)이어야 하지(고린도전서 41, 2) 직업 정치인이어서는 안된다(디모데전서 57, 17, 21). 이 세상 제도에 일치하는 것이야말로(디모데후서 410) 설교자나 성경 교사에게 있어(로마서 1213) 치명적 결점으로,역사로부터 인간이 배우는 것이라고는 인간은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사실이다라는 것을 알고 있는 교회사가에게는 아무런 지침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성경에 나타난 모든 세대는 부정적인 상황으로 끝난다(에덴, 아담, 노아, 아브라함, 모세, 다윗 등과 맺는 모든 언약). 따라서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교회사 각 시대에 있어 하나님의 말씀이 조금이라도 변개되거나 잘못 적용되는 경우 이에 극히 유념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배교란 “땅 속에서 솟아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욥기 56, 7). 거짓말은 다리를 갖고 있고, 기초와 건축가와 촉진자와 광고가와 그것을 사들이는 자를 갖고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모든 타락의 씨앗들은 매시대마다 철저히 파헤쳐 찾아내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을 궁극적으로 음부로 내려 보내는 것은(〈피터 럭크만의 주석서 욥기〉, 말씀보존학회, 1997, ‘171316’ 참조) 인간 안에 있는 썩어 버릴 씨앗(베드로전서 123)이기 때문이다. 교회사 일곱 시대마다 배교의 씨앗을 뿌리는 자들이 있어 왔고, 이들은 그들을 뒤따르는 자들을 곧장 내리막길로 이끌어 가는 지름길이 되곤 했다(제 4, 5장 참조).

  “선한 인간”들에 대한 칭찬과 찬사가 교회사에 어찌나 많이 나오는지 “교회사”를 읽다 보면 과연 그 역사가가 성경 기자들은 인간의 미술, 음악, 사상, 지식을 자랑하는데 열을 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성경 기자들은 “동료 인간을 대하는 한 인간의 태도”에 있어서 조차도 자랑하는 법이 없다. 성경 기자가 솔로몬의 책들을 열거할 때도(열왕기상 42934) 겨우 반 페이지를 할애할 정도이다. 성경에서 모세를 칭찬할 때도(신명기 3410┃이사야 6311), 그 누구도 장광설을 늘어 놓는 법이 없다. 성경에 등장하는 최고의 인물들에 대한 “평가들”(열왕기상 1112, 34, 38)을 볼 것 같으면 아주 간략하고 신중하다. 한 개인의 하나님과의 관계를 논하거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그가 어떻게 행했는가를 기록하는 경우가 아니면 결코 장황한 적이 없다(열왕기상 434). 바울 역시 그의 자서전에서(고린도후서 11장) “나팔”을 불어 대지 않는다. 곧이어 12장에서 그는 마귀가 그에게 역사하였음을 언급하고 있다. 바울은 마귀가 역사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자신의 삶에 있어서도 마귀가 간섭하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다.

  현대 알렉산드리아 이단(제5장)의 용어를 빌리자면 “선하고, 경건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공격하고(‘마태복음 1622’의 베드로) 최종권위를 무너뜨리려고(열왕기상 13장) 애쓰고 있는 것을 우리는 늘 볼 수 있다. 상당히 많은 수의 “선하고” 준비되고, 뜻이 있는 사람들이 사탄에게 여러 가지 목적으로 쓰임받아 왔다. 사탄이 어떤 거짓말이라도 퍼뜨리려고 마음만 먹으면 이들은 최고의 “운반자”들인 셈이다. 이그나티우스(제4장, 각주 41참조)나 폴리캅(제4장, 각주 42, 43 참조)에 의해 전달된 거짓말은 말시온(Marcion)이나 셀수스(Celsus) 같은 이단들이 퍼뜨린 거짓말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게 마련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시키거나 왜곡시키는 선하고 “경건한” 사람들은 대단한 광고 효과를 발휘하기 마련이어서 더 많은 구매자들이 몰리기 마련이다. 주정뱅이나 비도덕적인 불가지론자(혹은 자유주의자나 신정통주의 신학자들) 같은 사람들은 효과적으로 거짓말을 퍼뜨릴 수 없다. 적어도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는 그들이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성경 변개를 가장 잘 퍼뜨리는 자들은 늘 “진영 안”에 있기 마련이다(여호수아 9115). 선함과 경건함(노아와 다윗)은 결코 사탄의 공격에 대한 절대 보장이 될 수 없다(‘창세기 11’부터 ‘요한계시록 209’의 마지막 전쟁이 있기까지). 적어도 사탄이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에 도전하려 하는 공격에 있어서는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성 프란시스코, 토마스 아켐피스 그리고 성 도미니크 등의 전기를 쓴 카톨릭 작가들은 성경을 거부하는 고집쟁이들을 칭찬하는 데 있어 웨스트코트, 홀트, 로버트슨, 메이첸, 그레고리, 네슬, 그린, 타이어 및 존 R. 라이스의 전기작가들 만큼이나 장황하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의 “선함”과 “경건함”이 신성한 권위를 지닌, 하나님께서 숨을 불어넣으신 말씀보다 더 권위 있는 기준이 된다고 생각하는(제3장 참조) 그런 사람이야 말로 성경대로 믿는 사람이 아니라 감상적인 “휴머니스트”에 불과할 뿐이라는 사실을 입증할 따름이다. 현대의 많은 근본주의자들 역시 최종권위에 관한 한 자유주의적 휴머니스트일 뿐이다. 그들은 그들의 친구들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대적할 때 그들 편을 들 것이다.

  만약 교회역사가 몇몇 형제들이 고백하는 것처럼 그렇게 “객관적”이 되고자 한다면, 그는 “선하고” “경건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위를 무너뜨리기 위해 사탄을 대신하여 말하고 행동한다면 이들을 비판하는 데 주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사탄의 걸작품 NASV〉, 1972. 참조).

  교회사에서 그런 사람들이 저지른 부정적인 행동들을 객관적 입장에서 접근하여 다룬다면 아마 엄청난 분량이 될 것이다(〈확실한 예언의 말씀The Sure Word of Prophecy, 1970. 참조).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그러한 교회사가 세상과 타협하는 자들과 세상을 기쁘게 하려는 자들에게는 결코 “반가운 일”이 될 수 없음을 알고, 또 그러한 기대도 하지 않는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자유주의자이건 배교한 근본주의자이건 간에(요한복음 1716) 이런 종류의 교회사를 좋아할 리 만무하다. 우리는 다른 교회사들이 반()교회사(로마카톨릭 교회사)나 준교회사(교회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 사회, 경제사)를 주로 다루는 것과는 달리 진정한 의미의 교회사(신약 지역교회사)를 다룰 것이다. 성령님께서 독자 여러분을 모든 진리로 이끄시기를(요한복음 1613) 바라는 것은 여러분들로인간이 역사로부터 배우는 유일한 것은 인간이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사실이다라는 역사의 교훈 이상의 것을 꼭 이 교회사를 통해 배우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당부하건대, 되풀이되는 역사의 어리석음을 다시는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교회사는 이제껏 알려진 조직체 중에서 종교의 자유를 가장 철저히 거부하는 집단인 “로마카톨릭 교회”를 대항할 수 있기 위해 모든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에게 주는 사전 경고요 대비책인 것이다.

─ 피터 S. 럭크만 ─

 

    책 속으로...



  ....

  샤프에 따르면 영지주의(Gnosticism)는 역사상 알려진 것들 중에서 가장 위대하고 포괄적인 “종교적, 사상적, 혼합주의”라고 한다. 영지주의는 동양의 신비주의와 희랍의 철학과 알렉산드리아와 필로의 유대주의와 기독교가 혼합된 것이다. 따라서 이 영지주의가 택할 수 있는 교과서는 신비주의(마태복음 126), 학문(로마서 1:18,21,25), 간통(누가복음 233), 현대주의(누가복음 2342), 행위 구원(갈라디아서 54), 은혜로 받는 구원(에베소서 28), 정통 기독교(요한복음 316), 카톨릭(골로새서 114), 금욕주의(골로새서 223)를 모두 다 혼합해서 담고 있는 NASV가 되어야만 할 것이다(열거한 모든 참조 구절을 1980년 현재 기독교 대학들이 추천하고 있는 NASV, ASV, NIV를 읽어 보면 얼마만큼 변개시켰는가를 알 수 있다).

  오리겐(A.D.184254)은 그의 공식적인 성경 해석 방법을 필로에게서 취했다. 필로가 구약적 의미에서 볼 때 구원받은 사람(다윗, 히스키야, 예레미야처럼)이라는 증거는 하나도 없다. 마찬가지로 그는 신약적 의미로 볼 때 역시 구원받은 자가 아니다(요한, 베드로, 바울 등). 오리겐의 스승이요 지도교수였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A.D.150215)는 플라토의 책들이 “진리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인정했다. 플라토의 <공화국>을 읽어 본 사람은 그 책을잠언이사야서와 비교해 보면 이 엉터리 철학자가 얼마나 “영감”을 받으셨는지를 짐작하고 남을 것이다. 이 두 책은 플라토가 태어나기 300여년 전에 쓰여진 것들이다.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올스타 팀을 연대순으로 나열하자면 다음과 같다. 플라토(PlatoB.C.427347), 필로(PhiloB.C.20A.D.50), 판테누스(PantaenusA.D.145200), 클레멘트(ClementA.D.150215) 그리고 오리겐(OrigenA.D.184254)이다. 이들이 바로 알렉산드리아 이단의 창설자들인 것이다. 이들 모두는 교육자였고 교수님들이었다.

  존 낙스 (John Knox15131572)

  스코틀랜드의 존 낙스는 성경을 믿는 프로테스탄트였던 조지 위샤트(George Wishart)에 의해 영적으로 양육되었다. 조지 위샤트는 1546년 화형당했다. 그 후 존 낙스는 체포되어 19개월 동안 갤리선 노예로 일했다. 영국으로 돌아온 그는 5년 간 독일 종교개혁자들이 가르친 교리를 설교하였다. 피의 메리가 왕좌에 오르자 그는 도망하여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갔고, 그 후 제네바로 가서 칼빈과 대화하기도 했다. 그는 주로 프랑스나 독일에서 설교했다. 낙스는 1559년 스코틀랜드로 돌아와 카톨릭 여왕(로레인의 메리) 앞에서 카톨릭 미사는 난잡한 짓이고 로마카톨릭 교회는 음녀라고 담대하게 선언했다. 위기일발에 기적적으로 몸을 피한 그는 메리 스튜어트(1560)가 왕위에 오를 때까지 살아 남았으나 이 여왕은 낙스를 반역죄로 체포했다(즉 낙스가 일요일 아침 드리는 죽은 자를 위한 식인종 제사 - 성체 - 를 믿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에). 그러나 의회는 낙스를 무죄 방면하였고 이에 그는 1572년 죽을 때까지 성경을 강론했다. 스코틀랜드의 기독교가 강한 프로테스탄트적인 성향을 갖게 된 것은, 특히 북아일랜드 지방에서 그리 된 것은 존 낙스의 사역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하겠다.

  올리버 크롬웰 (Oliver Cromwell15991658)

  크롬웰은 군인이요 정치가로 잉글랜드 공화국,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의 호국경이었다. 교회사에 있어 헨리 8세, 마틴 루터, 아브로 맨하탄 그리고 어쩌면 폴 블랑샤드를 제외하고는 크롬웰보다 카톨릭 지도자들에게 더 미움을 받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플라토(Plato)는 구원받지 못한 그리스 철학자로(골로새서 28) 지혜가 지고의 선(고린도전서 13)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성과 지성을 비대화시켰고 “사회적 지성”(social mind) 이야말로 이상적인 지성이라고 주장했다. 플라토는 그 어떤 형태의 민주주의도 미워했기 때문에 진화가 성장의 보장이 되는 그러한 파시스트 유토피아를 구상해 냈다. 그는 국가가 어린이들을 부모로부터 격리시켜(이 짓은 소련사회에서 지난 50년간 행해졌다.) 그들을 20년 간 “재교육”시켜서(이 짓도 월남과 캄보디아에서 행해졌다.) 국가에 쓸모 있는 재목으로 키워야 한다고 했다. 이것은 “가치규명프로그램”(values clarification program) 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국가만이 쓸모(가치)있고 가치 있는 것을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다(지난 50년 간 소련이 이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선별적 종족번식(아돌프 히틀러가 시행했음)과 아이들 교육을 위한 “보호시설”들이 세워졌다(미국의 IRSHEW같은 기관들이 이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결국 인간의 악과 도시 문화의 부정적인 요소들은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거나, 하나님을 신뢰하거나 혹은 하나님 자신을 믿음으로써(카인은 하나님이 계신 것은 믿었으나 하나님 자신을 믿지는 못하였다.)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통치자를 세움으로써(예를 들면 철학자들/고린도전서 13장)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결국 모든 사람은 “제사장”들이 주도하는 교회국가의 성전에 참석하여 강제로 “예배”에 참석해야만 될 것이다(로마 제국 당시 황제들이 정확하게 이 제도를 시행하였음을 잊지 말라). 가정에서 “비밀 집회”를 갖는 사람들은 사형에 처해지게 될 것이다(러시아에서는 이런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플라토는 하늘도, 지옥도, 심판도, 부활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육상동물은 인간으로부터 진화했다고 믿었고 하나님(神)은 남성도 여성도 아닌 중성적 “힘”이라고 믿었다. 이와 같이 부패하고, 사이비 과학적이고, 사회주의적인 교리에 대하여 “위대한” 이신론자인 에머슨(18031882)이 “도서관을 태워버리라. 그 속에 담긴 모든 가치는 이 한 권의 책에 있다”라고 말했을 때 그가 말한 책은 성경이 아니라 플라토의 “공화국”이었던 것이다. 아마 이보다 더 열광적이고 광신적인 선언은 아마도 나치의 제3제국(19331945) 기간 동안 히틀러나 괴벨이 행한 연설이나 배포한 선전물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p.119).

  ...

 

    목 차...

이 책을 내면서... ─ 3
서 문... ─
5
들어가는 말... ─
18
01장...  교회사의 성격 ─ 33
02장...  교회를 교회사 안으로 되돌려 놓자 ─ 47
03장...  교회들을 위한 헌법 ─ 63
04장...  불타는 용광로 ─ 79
05장...  아프리카의 희한한 대학교 ─ 108
06장...  물, 물 어디든지 물 ─ 131
07장...  부활절 토끼와 크리스마스 트리 ─ 154
08장...  제1차 세계 근본주의 대회 ─ 171
09장...  이단 사냥 ─ 185
10장...  불빛이 꺼져간다 ─ 212
11장...  황혼을 비추는 작은 불빛들 ─ 238
12장...  왕국이 임하옵시며 뜻이 이루어지이다 ─ 258
13장...  그러는 동안 양 무리는 어찌 되었나 ─ 295
14장...  지옥 같은 성모 교회 ─ 332
15장...  반교회사 ─ 385
16장... 《킹제임스성경》으로 NASV를 대체하다 ─ 413
17장...  사탄의 신부 ─ 454
18장...  시대의 표적들 ─ 470
19장...  1600년 교회사를 되짚어 보며 ─ 496
20장...  독일의 용사들 ─ 516
21장...  서쪽을 향하여! 서쪽으로! 서쪽으로! ─ 528
22장...  성경과 더불어 시작된 나라 - 미국 ─ 547
23장...  필라델피아 시대의 용사들 ─ 568
24장...  카톨릭의 음모와 반격 ─ 590
25장...  본격적인 공격 (1) ─ 611
26장...  본격적인 공격 (2) ─ 633
27장...  대배교의 배경 ─ 642
28장...  대배교 ─ 661
주(註)... ─
673
참고문헌... ─
785

● 마음에 평안을 주는 첼로 찬양 1시간 ∼♪∼♬  (1:05:49)
[10549]

(446) 주의 얼굴 대하리 (choir)

『 오 여, 주께서 지으신 모든 민족들이 와서 주 앞에 경배하고
주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리이다. 』
〔 시편 86:9

14:24 만군의 가 맹세하여 말하기를 “내가 생각했던 대로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며, 내가 계획했던 대로 그것이 확고히 되리라. 4:12 그러므로 오 이스라엘아, 내가 너에게 이같이 행하리라. 내가 너에게 이것을 행하리니 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하라. 』

(이사야 14:24아모스 4:12)

시 편 10743로마서 152고린도전서 10241622
데살로니가전서 43a디모데전서 45마태복음 63377
역대기상 1611

『 43 누구든지 지혜로운 자들과 이 일들을 살펴볼 자들, 그들은 의 자애하심을 깨달으리로다. 2 우리 가운데 각 사람은 선을 위하여 자기 이웃을 기쁘게 세워주자. 24 누구나 자기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각자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라. 22 누구든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그는 우리 께서 오실 때 저주를 받을지어다. 3a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곧 너희의 거룩함이니라. 5 이는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써 거룩하게 됨이라. 33 오히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해 주시리라. 7 ○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너희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라. 11와 그의 능력을 찾고 그의 얼굴을 항상 찾으라. 』

시 편 3311451772511990

135131451314610

『 33:11 의 계획은 영원히 서고 그의 마음의 생각들은 모든 세대까지 서리로다. 45:17 내가 왕의 이름을 모든 세대에 기억되게 하리니 그러므로 백성이 왕을 영원무궁토록 찬양하리이다. 72:5 해와 달이 있는 한 그들이 모든 세대에 걸쳐 주를 두려워하리이다. 119:90 주의 신실하심은 모든 세대에 이르며 주께서 땅을 세우셨으니 땅이 지속하나이다. 135:13여, 주의 이름이 영원히 지속되며 오 여, 주를 기념함이 모든 세대에 이르나이다. 145:13 주의 왕국은 영원한 왕국이니 주의 통치가 모든 세대에 지속되나이다. 146:10 오 시온아, 곧 너의 하나님께서 영원히 모든 세대들에 걸쳐 치리하시리로다. 너희는 를 찬양할지어다.

For the kingdom is the LORD’S:
and he is the governor among the nations.

이는 왕국이 의 것이요,
주께서 민족들 가운데 통치자시기 때문이니이다.

Psalms 22:28시편 22:28

●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 나 같은 죄인 살리신 ∼ 천부여 의지 없어서 ∼♪∼♬
[1121]

『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Divide)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 』(디모데후서 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