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4. 3. 00:42

『 중독증에서 자유를 얻는 길』(N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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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노예나라의 특성 】

질병, 낮은 자존감,또는 다른 무엇?

「하나님, 인간이란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이기에, 그의 본능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그의 깊은 곳을 깨우기에, 하나님을 찬양하기까지는 만족이 없나이다.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만드셨기에,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기까지 우리의 마음에는 평안이 없나이다. 」【 어거스틴의 참회록/1961, 21

중독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좋은 의미로라도 “조금만이라도 자기 절제를 해야지” 하는 말에 끝없이 분노를 느낍니다. 그러나 사실 자신도 왜 그 모양이 되었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내가 환자인가? 죄인인가? 미쳤는가? 무엇을 상실했기 때문일까? 타락한 것인가? 이들 중에서 해당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가? 아니면 여기에 모두 해당되는가?”
『알코올 중독자들의 모임』(Alcoholics Anonymous별명으로 Big Book이라고도 함.)이라는 책에서는 “술은 교활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낭패를 당하게 하고, 강력하다”(A.A. World Service, 1976, 58∼59)고 했습니다. 당신이 빠져 있는 그 습관은 당신을 혼란시키고, 어두움의 나라에 당신을 가둡니다. 거기서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그 감옥의 특성을 알아야 합니다. 중독증을 ‘질병’으로 보는 견해가 있고, ‘낮은 자존감’과 관련지어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러나 둘 다 잘못된 시각입니다. 이제 이런 견해들을 차례로 살펴보고, 이어서 중독증이 인생의 “기본적인 문제들” ─ 예를 들어 우리의 존재 이유와 같은 문제들 ─ 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 중독은 질병인가? ━

야구 선수 페테 로스는 충동적으로 도박을 시작했는데, 그로 인해서 비참한 인생을 맞게 되었습니다. 1989년에 그의 사생활이 세상에 공개되었습니다. 신문에서 그가 거액의 도박을 한다고 보도했습니다(그는 단 한 번의 도박 게임을 위해서 2,000$에서 5,000$까지 걸기도 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도박 때문에 그렇게 사랑하던 야구마저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로스는 세금 포탈 혐의로 감옥에 갔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충동적 도박병은 병적이기 때문에, 처벌보다는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
아이에게 충치가 있다고 부모가 매질을 할 수 있느냐”는 논리였습니다! 중독을 질병으로 보는 이 논리를 따르자면, 중독자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아무런 책임이 없는 셈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결론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1930년대 알코올 중독자들의 모임(A.A.)에서는 이보다는 조금 더 균형을 이룬 이론을 받아들였습니다ː“어떤 사람들은 알코올에 대해서 비정상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래서 그들은 얼마나 마셔야 과음을 하는 것인지 그 기준을 판단할 수 없다. 그들은 기분이 우울할 때 술로 기분을 풀고, 또 다시 술 마실 날을 기다린다”(A.A. World Service, 1976, 23∼30). 이렇게 해서 A.A.에서는 중독자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했습니다. 최근에 발행된 어느 책에서는 이와 같은 A.A.의 전통적인 견해에 동조했습니다ː“중독을 ‘질병’으로 취급한다고 해서 중독자의 행동이나 자신을 과소 또는 과대 평가한 결과에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이론은 타당하지 않다”(Wilson and Wilson, 1992, 115).
그러나 중독을 질병으로 보는 이 이론은 여러 가지 잘못된 행위를 변명하는 도구로 왜곡되고 말았습니다.

1980년 필라델피아 교육국의 어느 직원이 매일 직장에 늦게 출근한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했다. 그는 병적으로 늦는 것은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약점으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걸었다. 그 결과 펜실베니아 법정에서는 펜실베니아의 법을 적용하여 그가 옳다는 판결을 내렸다(Sykes, 1992, 130∼31).

당신은 종종 대량 학살이나 고문과 같은 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향해 “저 사람 병들었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악한 행위를 모두 질병으로 간주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갖가지 중독증으로 인해서 세상에는 여러 가지 악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것들을 싫어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악과 중독증이 어떤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실까요?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성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타락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도덕적으로 황폐해지면 하나님의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게 되고, 하나님을 대적하여 더욱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오래 전에 아담이 범죄한 이후, 인간은 모두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연유로 한 사람에 의하여 죄가 세상으로 들어오고 그 죄에 의하여 사망이 왔으니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전달되었느니라. 』(로마서 5:12)

아담이 절벽 위에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해 봅시다. 절벽 아래로는 붙잡을 만한 것도 없고 미끄러운 진흙으로 덮인 가파른 등성이가 있을 뿐입니다. 그는 이 절벽에서 뛰어내릴 자유가 있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른 것은 절벽을 뛰어내린 것과 같습니다. 이제 그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다시는 절벽 위로 올라갈 수가 없습니다. 위로 올라가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진흙에 미끄러지고 더욱 더러워질 뿐입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가 처한 딜레마입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죽기로 예정된 자들이고, 죄인의 길을 선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죄인으로 태어났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다면 다른 선택은 없습니다. 그저 어떤 죄인으로 살아갈 것이냐 하는 선택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모두 내적으로 타락한 자들입니다. 그 결과 어떤 사람은 막무가내로 죄를 지으면서 살아갈 것이고, 어떤 사람은 일정한 패턴을 따라서 중독에 빠지기도 합니다.
인간의 ‘
내적 타락’이 어떻게 겉으로 드러나는지 예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저는 1980년에 결혼을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심한 두통과 열이 났습니다. 병원에 입원하여 진찰을 받은 결과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바이러스가 뇌막에 염증을 일으켜 뇌막염에 걸린 것입니다. 아내는 전염성이 있는 병이냐고 물었습니다. 의사는 “그럼요. 하지만 이런 바이러스는 어떤 사람에게는 그저 단순히 목만 부어오르게 할 수도 있지요. 부인의 남편의 경우에는 우연히 뇌막에 염증을 일으킨 것일 뿐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죄는 질병이 아닙니다! 그러나 바이러스처럼,
죄는 사람에 따라 다른 증상을 보입니다. 어떤 사람은 구두쇠가 되고, 어떤 사람은 돈을 흥청망청 써 대는 사람이 되고, 어떤 사람은 독실한 신자가 되고, 또 어떤 사람은 무신론자가 되기도 합니다.
이것이 갖가지 중독에 대해 설명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알코올 중독은 그 나름대로 특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원인은 다른 중독증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도박꾼이 되고, 어떤 사람은 상습 폭력배가 되고, 어떤 사람은 거짓말쟁이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모두 내적 문제를 안고 태어났는데, 그 문제가 이처럼 다른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 인자 때문에 술을 마시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 또한 사실이 아닙니다. ‘유전 인자’가 술을 마시도록 강요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통계로도 잘 나타납니다. 술을 많이 마시는 부모의 자녀들 중에 대부분은 술을 즐겨 마시지 않습니다. 만일 술을 좋아하는 성향이 부모로부터 유전되었다고 해도, 자신의 선택과 외부의 다른 요인(동료들의 압력, 가정 환경, 술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여건 등)이 알코올 중독에 영향을 미칩니다.

만일 중독이 유전적인 요인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환경적인 질병이라고 결론 내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린이를 괴롭히는 치한들은 불우한 가정 환경에서 자랐다거나, 도둑질을 하게 된 것은 가난 때문이라고 변명하는 등, 현재의 문제를 환경에서 기인한 질병으로 봅니다. 그래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중독의 원인 제공자로 사회를 지목합니다.
물론 환경은 우리의 습관에 조금은 영향을 미칩니다. 예를 들어,
15세기의 영국 사람들은 담배에 중독될 일이 없었습니다. 담배가 아직 유럽에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도박이 성행하는 도시 사람들은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보다 도박을 할 가능성이 더 많아집니다.
그러나 자신의 실패(또는 성공)를 자신이 아닌 외부의 다른 요인으로 돌린다는 것은 “운명론자”의 철학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것대로라면 자신의 선택은 아무런 의미도 없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성경은 각 개인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가르칩니다.

중독을 질병으로 보고 도덕적 의무를 가르치는 사람들은 중독자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쇼핑 중독증이 있는 사람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까요? 수잔이 최악의 상태에 빠져서 이런 일에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가서 도움을 구했다고 합시다. 그 사람이 올바른 견해를 가졌다면, 수잔에게 책임이 있다고 가르칠 것입니다. 그 결과 그녀는 이런 결론을 내릴 것입니다
ː

이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우리 도시에는 한꺼번에 너무 많은 곳에서 세일을 하고, 나는 기분이 나빠지면 너무 자주 쇼핑을 하게 된다는 것이 문제이지. 이제 나는 내게도 문제가 있으며, 충동 구매를 하지 말아야 할 의무가 내게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성경은 이 정도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성경은 수잔이 “충동 구매”를 계속하다가 마침내 미끼에 걸려들어 중독자가 된 것은 하나님 앞에서 잘못된 것이며, 수잔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수잔은 자신의 욕구를 절제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거기에 의존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배척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 중독은 낮은 자존감 때문에 생기는 것인가? ━

심리학자들이나 텔레비전 토크 쇼에서는 중독증이 ‘낮은 자존감’에서 기인한다고 말합니다. 물론 수잔도 자신을 낮게 평가하며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ː

내가 하는 것은 뭐든지, 부모님이나 내 남편을 기쁘게 하지 못한답니다. 가계 수표를 적당히 사용할 줄도 모르고, 요리도 잘 못하고, 좋은 직장에서 일하는 것도 아니에요. 교회에 다니는 부인들처럼 노래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재능도 없습니다. 앞으로도 절대로 잘하지 못할 것 같아요.

그녀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지만, 충동 구매를 하면서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자신만큼 물건 흥정을 잘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수잔의 경우 낮은 자존감이 그녀로 하여금 쇼핑 중독자가 되게 했습니다. 그러나 자존감을 높인다고 해서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중독이란 단순히 원인과 결과의 법칙으로 설명할 수만은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원인과 결과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글을 쓰려고만 하면 전화벨이 울린다고 합시다. 어느 날 저는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는 듯이, “아하! 컴퓨터만 켜면 전화벨이 울려 방해를 하는구나!”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런 추론은 정말 엉터리입니다. 기계가 아니라 사람의 경우라면 더욱 복잡하여, 원인과 결과는 단순하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수잔은 어느 날 정말 괴로운 일을 당해서 쇼핑을 하게 되었습니다. 쇼핑을 한 후에도 그녀는 비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것이 먼저입니까? 낮은 자존감입니까, 아니면 충동 구매입니까?
성경은 자존감을 높이는 것이 좋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자신만을 사랑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고 교만하며, 하나님을 모독하고 부모에게 불순종하며, 감사하지 아니하고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고, 화해하지 아니하며, 모함하고 절제하지 못하며, 사납고,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 배반하고 분별이 없으며, 자만하고 쾌락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리니, 이런 자들에게서 돌아서라. 』(디모데후서 3:25)

오늘날 자존감의 중요성을 과장해서 가르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ː“교회에서는 나를 무가치한 존재라고 가르치곤 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만드셨고, 그분은 쓰레기를 만드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말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초점이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에게 맞추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기쁨을 위해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이런 하나님 중심의 세상에서 중독은 하나님의 피조물을 파괴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바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ː『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째 계명이니라.』(마가복음 12:30). 그래서 우리는 사랑에 빠져야 합니다. 우리 자신과 사랑에 빠질 것이 아니라,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과 사랑에 빠져야 합니다.

━ 존재 이유의 상실 ∼ 중독증의 뿌리 ━

당신은 왜 존재하는지 그 이유를 아십니까? 돈을 벌기 위해서? 재미있게 살거나,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2장을 시작하면서 인용했던 구절을 다시 한번 살펴보십시오. 4세기에 어거스틴은 자기 자신을 위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몇 년 동안 자기 자신의 욕망만을 추구하며 살던 그는, 자신의 모든 재능은 그를 만드신 하나님을 통해서만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자주 인용하는 웨스트민스터 교리 문답에는 이런 글이 있습니다
ː

사람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람의 주된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영원토록 기뻐하는 것이다.

‘에드먼드 버키’(Edmund Burke)는 “인간은 종교적 동물이다”라고 했습니다. 개를 훈련시켜서 앞발을 모으고 웅얼거리며 기도하는 모습을 흉내내게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오직 사람만이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동물이 아닌 사람만이 자신의 의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펴보았던 중독증에 걸린 세 사람은 이와는 정반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변하여, 로널드는 술을 마시고, 수잔은 쇼핑을 하고, 카를로스는 먹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의 어리석은 선택으로, 그리고 나중에는 그런 선택을 계속해서 할 수밖에 없는 연약함 때문에 그들이
‘존재하는 진정한 이유’는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들 세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창조하신 근본 목적은 던져 버리고, 마치 동물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으니,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그를 창조하셨으며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느니라. 』(창세기 1:27)

성경은 하나님께서 아담과 이브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사람에게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분과 교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하며 축제를 벌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런 모양으로 살게 되었을까요?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말일까요? 신학자들은 이 사건을
“타락”이라고 표현합니다.
슬픈 일이지만, 오늘날 많은 사람이 ‘창세기
3장’에 나오는 타락의 이야기를 전설, 신화, 비유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왜 혼란과 궁지에 빠져 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아담과 이브는 그들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사랑하며,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금지하신 한 가지 일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그들 앞에 미끼를 두었습니다. 그 열매는 지식을 줄 것이고, 피조물의 굴레에서 벗어나 하나님처럼 만들어 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조상은 자신들이 운명의 주인이 되기 위해 도박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얻은 것은 해방이 아니라 속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예배하고자 하는 속성을 버리진 않았습니다. 결코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공상 과학 소설을 보면 로봇이 등장합니다. 로봇을 만든 사람이 세상을 떠난 후에라도 로봇은 여전히 남아서 입력된 프로그램대로 기능을 수행합니다. 수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이 로봇은 아무런 목적도 없이, 의식도 없이, 그저 입력된대로 움직일 뿐입니다.
우리는 로봇이 아닙니다! 그러나 아담과 이브가 타락한 이후,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향해 경배하고, 또 경배하며 살아왔습니다.
‘자신보다 더 능력이 있는 존재’를 찾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돌이나 철재, 그리고 나무로 우상을 만듭니다. 때로는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깊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약물을 복용하거나 주입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본능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들이 만들어 내는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 ‘종교’입니다. 이것은 밥 딜런의 노래, “당신은 누군가를 섬겨야 한다”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중독자들은 그들의행동이나 상태를 여러 가지로 설명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바라는 바를 그렇게 해서는 결코 달성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시원하게 긁을 수 없는 가려움”이며, “채울 수 없는 공허함”입니다. 어느 작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ː

그러므로 모든 중독과 중독의 과정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스스로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들은 아무런 목표도 없이 어떤 행동이나 물건과의 관계를 통해 평안과 행복과 온전함을 추구한다(Nakken, 1988, 4).

어거스틴은 하나님 중심의 관점으로 인간의 문제를 진단했습니다. 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에 불안이 있으며, 오직 하나님만이 인간에게 평안을 줄 수 있습니다.a HanSaRang 註. ─ “왜 , 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불안이 있는 것일까?”‘죽음 이후의 세계’를 확실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일까? 만일 죽음 이후의세계를 확실하게 알게 된다면, 이 ‘불안’은 없어지는 것일까? ∼_∼‘ 그러나 중독은 자신의 방법으로 평안을 추구하기에 하나님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중독자들은 “하나님, 당신에게는 나중에 나아가겠어요”라고 말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들은 마치 자신이 하나님이나 되는 것처럼 살아가려고 합니다. 약물을 통해서 일시적이지만 자유로움과 유능함과 충만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인해 그들은 더욱 고집스러워지고, 독선적으로 살게 됩니다. 그래서 헤로인 중독자는 시끄럽고 귀찮다며 아이들을 때립니다. 다음 날 아침에 정신이 들면 죄의식을 느끼지만, 다시 헤로인을 더 많이 섭취하면서 잊게 됩니다. 그는 이런 약물을 금하는 국가의 법이 “어리석다”고 생각합니다. 직장 상사가 자신을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본다는 생각 때문에 일도 잘 못합니다. 또 종교는 약해 빠진 사람들이나 믿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그래서 중독에 걸린 사람, 예를 들어 알코올 중독자에 대해서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ː“그는 스스로 신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자이다. 그는 전지 전능하고, 절대 주권을 가진 존재가 되고 싶어한다. 자신이 단순한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그것을 이기고자 술을 마신다.”
그러나 중독자에게도 희망은 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는 알코올 중독자, 폭력배, 그리고 여러 가지 중독증에 걸린 무너져 가는 인간들을 회복시키기 위해 개입하십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당신을 구속해 주셨다면, 이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ː19 또한,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바 너희 안에 계신 성령의 전인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니라. 20 너희는 값을 치르고 산 것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너희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린도전서 6:19, 20).3장에서는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있는 구원에 대해 살펴볼 것입니다.

━ 과 제━

종이에 세로로 줄을 그어 세 부분으로 나누어, 왼쪽부터 각 난 위에 “하나님”, “자신의 이름”, 그리고 “죄”라고 기록하십시오. 먼저 중앙에 있는 “자신의 이름” 아래의 난에는 당신의 삶의 여러 분야를 생각나는 대로 기록하십시오. 감정, 창조성, 야망, 성생활, 운동 등을 기록해 보십시오. 이제 “하나님” 아래의 난에는 조금 전에 기록한 항목들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 기록해 보십시오. 이제 “죄” 아래의 난에는 이것들이 어떻게 죄를 짓는 데 사용될 수 있는지 기록해 보십시오. 죄가 어떻게 당신 ‘인생의 원래 목적’ ─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분을 기뻐하는 것 ─ 을 이루지 못하게 막는지 살펴보십시오.

왜 당신에게 중독증에 대한 책임이 있는지 기록해 보십시오. 그 약물을 택한 사람이 바로 당신입니까? 친구들이나 부모의 충고를 따르지 않았습니까? 당신이 옳다고 생각한 것을 무시해 버렸습니까?

음주에 대한 아래의 구절을 공부해 보십시오. 음주로 인해 나타나는 증상이나 행동의 목록을 만들고, 당신에게는 이런 문제가 없는지 살펴보십시오.
《잠언
20121172319213147
《이사야
2818
《하박국
21516
〔 ▲ 구약 성경에 있는 책들입니다. 〕

(잠언 20:1)...
술(
wine)은 거만하게 하는 것이요, 독주(strong drink)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이에 속는 자마다 지혜롭지 못하니라.

(21:17)...
속이고 취한 음식이 사람에게 달콤하나, 후에 그 입은 자갈로 가득 차리라.

(
23:1921)...
19 내 아들아, 너는 듣고 현명하게 되어 네 마음을 그 길로 인도하라. 20 술을 많이 마시는 자와 고기를 탐식하는 자와 함께하지 말라. 21 술 취하는 자와 탐식하는 자는 가난하여질 것이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는 낡은 옷을 입을 것임이라.

(31:47)...
4 오 르무엘아, 그것은 왕이 해야 할 것이 아니니라. 술을 마시는 것은 왕이 해야 할 것이 아니며, 독주를 마시는 것은 통치자들이 해야 할 것이 아니니, 5 이는 그들이 술을 마시고 법을 잊어버려 고난받는 어떤 사람들의 심판을 왜곡할까 함이니라. 6 독주는 죽게 된 자에게 주고, 술은 마음에 근심하는 자들에게 줄지어다. 7 그가 마시고 자기의 빈곤함을 잊으며 자기의 가련함을 더 이상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28:18)...
1 교만의 면류관, 에프라임의 술 취한 자들에게 화로다. 그의 영광스러운 아름다움은 시들어지는 꽃이요, 그 면류관은 포도주(wine)로 만취된 자들의 기름진 골짜기의 머리 위에 있도다! 2 보라, 주는 능하고 강한 자를 가지셨나니 그는 우박이 쏟아지는 폭풍우와 멸망시키는 폭풍같이, 거센 물들이 넘쳐 흐르는 홍수같이 그 손으로 땅에다 던지시리라. 3 교만의 면류관, 에프라임의 술 취한 자들은 발 밑에 밟힐 것이며 4 기름진 골짜기의 머리 위에 있는 영광스러운 아름다움은 여름이 되기 전의 성급한 과일같이 시들어지는 꽃이 되리니 그것을 쳐다보는 자가 볼 때 아직 그의 손에 있는 동안에 먹어 버리리로다. 5 ○ 그 날에 만군의 주께서 그의 백성의 남은 자들에게 영광의 면류관과 아름다움의 화관이 되실 것이요, 6 재판 가운데 앉은 자에게는 심판의 영이 되시며, 싸움을 성문으로 돌이킨 자들에게는 힘이 되시리로다. 7 ○ 그러나 그들 역시 포도주(wine)로 인하여 길을 잘못 들어섰으며 독주(strong drink)로 인하여 길을 벗어났도다. 제사장과 선지자는 독주(strong drink)로 인하여 길을 잘못 들어섰으며 그들이 포도주(wine)를 마셔 버렸고 그들이 독주(strong drink)로 인하여 길을 벗어났도다. 그들은 환상을 잘못 보고 심판에 있어 과오를 범하는도다. 8 모든 식탁에는 토한 것과 더러운 것이 가득하며 깨끗한 곳이 없도다.

(하박국 2:15, 16)...
15 ○ 자기 이웃에게 술을 주고 네 술병을 그에게 놓아 그도 또한 취하게 하여 너로 그들의 벌거벗음을 보게 하는 자에게 화가 있도다! 16 너는 영광 대신에 수치로 가득하도다. 너도 마시고 네 포피가 드러나게 하라. 주의 오른손의 잔이 네게로 돌아가며 수치스러운 토해냄이 네 영광 위에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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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중독증에서 자유를 얻는 길 』
/게리 스티븐 쇼그렌& 에드워드 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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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nning in Circles
by
Gary Steven Shogren & Edward T. Welch

Copyright ⓒ 1995 by Gary Steven Shogren & Edward T. Welch
Published by Baker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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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nd Rapids, Michigan, 49516,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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