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촌 교회 이동원 목사는 그의 책「이렇게 기도하라」(나침반출판사)에서 주장하기를 모든 시대의 용서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써만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책 105페이지에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구약시대에 양을 죽이며 염소를 죽여 하나님의 제단 앞에 바침으로 용서를 구한 것은 장차 이 땅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의 죄를 감당하시고 피흘려 주심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죄를 용서받을 것을 기대하고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용서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써만 이루어져 왔던 것입니다.”
이 목사의 위의 관점을 흔히 ‘계약신학’이라고 하는데, 그들은 하나님께서 시대마다 그 시대를 운영하시는 경륜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주제를 단지 ‘구속’에다만 짜 맞춘 뒤 모든 초점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에다만 집중시키는 그릇된 습성이 있다. 그들의 그러한 주장은 ‘구속’이라는 주제로 강박관념에 시달리다 보니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왕국’의 개념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져오실 지상의 천년왕국을 기다리지 않는 후천년주의자들로서, 결국 스스로 세상을 변화시켜보고자 하는 비성경적인 사회구원을 주장하기에까지 이르렀다. 그들처럼 성경에서 ‘왕국’을 깨닫지 못하면 이 세상의 신인 마귀가 관장하는(고린도후서 4:4) 세상 왕국들(누가복음 4:6)을 위해 일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모든 시대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죄 용서를 받았다는 이목사의 주장에 대해 성경의 한 구절을 예로 들어보기로 하자. (에스겔 18:24)을 보면,『그러나 의인이 돌이켜 자기 의에서 떠나 죄악을 범하여 악인이 행한 모든 가증함대로 행하면 그가 살겠느냐? 그가 행한 그의 모든 의는 언급되지 아니할 것이며 그가 범한 그의 허물과 그가 지은 그의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고 되어 있다. 이 구절은 (에스겔 3:20)과 짝을 이루어 계약신학을 반박하고 있다.『또한 의인이 자기 의로부터 돌이켜 죄악을 범하면 내가 그 앞에 방해물을 놓으리니 그가 죽으리라. 이는 네가 그에게 경고를 주지 않았기에 그가 그의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며 그가 행한 그의 의는 기억되지 아니할 것이라. 그러나 나는 네 손에서 그의 피를 요구하리라.』 위의 에스겔 구절들을 보면, 율법 아래에 있던 의로운 성도들은 만일 그가 자기 의에서 떠나 죄악을 범하면 “이전의 모든 의가 필요 없게 되고” 자신의 죄와 허물 가운데 죽게 되었다. 그들은 그들을 구원할 “의”가 없어졌기 때문에 지옥에 떨어진 것이다. “구약 시대의 사람들은 신약 시대 사람과 동일한 방법으로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착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구약시대에는 신약과 달리 거듭남도 없었고, 구원의 영원한 보장도 없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들어가 그 몸의 지체들이 될 수 없었기에(에베소서 5:30∼32) 의로부터 돌이켜 죄를 지으면 지옥에 떨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율법 아래 있던 성도들은 죄악과 허물과 죄가 용서는 되었을지라도 그 자신이 결코 “깨끗게” 되지는 않았으며(출애굽기 34:7), 그들이 바쳤던 황소들과 염소들의 피로 그들의 죄들이 “제거되지”도 않았다(히 10:4). 그들이 만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죄 용서를 받았다면 정반대의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이는 그가 한 번의 제사로써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기 때문이라』(히브리서 10:14). 그러나 구약시대에는 율법대로 옳게 살다가도 그 길에서 돌이키면 “자신의 죄 가운데서” 죽어야 했다. 그들이 율법의 행위로 얻은 “의”는 얼마든지 상실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받은 율법의 속죄 행위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에 대한 예표는 되었을지언정, 그 효력에 있어서는 주님의 십자가 대속과 비교될 수 없었다. 한마디로, 구약시대에 율법에 순종한 일들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받는 구원(에베소서 2:8)과 동일시하는 것은 비성경적인 일인 것이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선생”이라는 자가 “거듭남”에 대해서도 모르는 것을 책망하신 적이 있다(요한복음 3:10). 십자가 이전의 유대인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에 대한 지식이 없었던 것이다. 구약시대에 양과 염소를 죽여 하나님의 제단 앞에 바침으로써 용서를 구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을 멀리서 바라본 것이 아니라 단지 율법에 순종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구약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기대하고 믿었다는 것은 아무런 성경적 근거도 없으며, 단지 성경을 억지로 해석한 것에 불과하다. 구약시대에 타임머신이라도 있었다면 모를까, 그들이 어떻게 갈보리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기대하고 믿었단 말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받는 것은 신약의 교회시대에만 한정되는 교리이다.
────────────────────────── 인터넷 신문 '바이블 파워' (2007-10-18) ──────────────────────────
『 구약시대에 타임머신이 있었다면 모를까.. 』 by ■「바이블 파워」/2007.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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