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0. 14. 07:12

“ 사랑은 영속한다 ” (에세이 모음-①)

(글모음) [20061003] ● 사랑은 영속한다 ... (에세이 모음-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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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eaceful Hymns on Violinㆍ잔잔한 찬송가 바이올린 연주 모음┃(53:39)

사랑은 영속한다 ...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라. (시편 12:6)┃

  ① ━ “ 사랑은 영속한다 ”

  우정이라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깨지기 어려운 것처럼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친구가 뒤에서 하는 말을 듣는다면, 우리들은 이 세상에서 한 사람의 친구도 얻을 수 없다”라고, 파스칼은 쓸쓸한 말을 남기고 있다. 교우 관계에 있어서는, 때로 얼굴을 마주하고 욕지거리를 퍼붓는 경우도 필요하다. 그러나 면전에서와 뒤에서 하는 말이 다르다고 하면 우정이 있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한 마디로, 신뢰에 의해 성립되는 것이 우정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남의 욕을 하는 사람은 우정을 지속할 수가 없다. 또 절대로 남에게 말하지 말라는 부탁을 받은 말은, 입지 찢어지는 한이 있어도 말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을 우리 부부도 마음에 두고서 친구들을 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노사 관계라고 하는 것은 그 규모가
'바늘'에서 '송곳'까지 다양하겠지만, 뭐라 해도 직장에서는 그 재능과 노력을 인정받는 것이 제일 기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직장에서 미남이라든가 미인이라든가 하여 화제의 인물이 되는 것은 뒤의 일이고, 맨 먼저 인정 받고 싶은 것은 직장의 작업 분위기인 것이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동경에서 큰 청과물 도매상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 여주인은 점원들에게 점원 일동의 하는 일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이모저모로 늘 이야기하며 감사하고 있다. 인정받아서 기쁘지 않을 턱이 없다. 아무리 조직이 커져도 서로서로의 노력을 인정해 주는 대화를 나눈다. 다만 그 때에 혀끝으로만이 아니고 마음으로부터 인정을 해야 한다.
  장점이 전혀 없는 인간은 그야말로 절대로 없는 법이다. 노사 관계의 잘못은,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고 공로를 자기에게만 돌리는 데에서 생기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것은 학생과 교사 사이에서도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들은 스승에게 무엇을 구하고 있을까? 그것은 자기의 힘을 끌어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괜시리 추켜 올리는 말이나, 남을 노려보는 듯한 차가운 눈길을 요구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만약 자기의 힘을 끌어낼 수 있는 스승이 있다면, 순진한 학생은 많이 얻어맞는 한이 있더라도 그 스승을 따라갈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을 끌어내는 비결은 역시 그 노력을 인정하고 확신을 심어주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어려운 것은, 시부모와의 사이보다 부모 자식의 관계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부모가 너무나 큰 기대를 자식에게 걸고 있기 때문이다. 자식들도 또한 부모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친부모에게는, 자기 자식은 자기 자신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식에게는, 부모가 자기 자신은 아니다. 여기에 근본적인 모순이 처음부터 존재한다고 말할 수가 있다. 부모가 자식을 아무리 칭찬해도, 그것만으로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원만해진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것이 자식에게는 번거로움이 될 때도 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참으로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모는 내 자식을 자기 한 개인의 자식이라고 생각하는 데에서 떠나,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자식, 사회로부터 맡겨진 자식이라고 하는 관점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작은 새는 손아귀에 힘껏 쥐어져서는 날개를 칠 수가 없다. 자식이 바라는 것은 둥우리를 떠나는 것이다. 부모가 바라는 것이 자식이 둥우리에 계속 머무르는 것이어서는 거기에는 성장도 발전도 없다. 물론 그것은, 자식이 부모를 돌보지 않아도 괜찮다는 뜻은 절대로 아니다.
“자기가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에게 대접을 해 주라”고 하는 황금률은, 생각해 보니까 이것 또한 대단히 실행의 어려움을 느끼게 하는 말씀이다.
 
사람을 움직인다라고 하는 책이 있다. 그 책에 “개를 본받아라” 하는 말이 있었다. 개가 끊어져라 꼬리를 흔들어 대며 반길 때에, 사람들은 누구나 그 머리를 쓰다듬어 주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문제는 이처럼
“사람을 기쁘게 한다”고 하는 자세일 것이다. 남편이든 아내이든, 시부모이든 며느리이든, 이웃 사람, 부하, 상사, 학생, 교사, 친구할 것 없이 누구든 만나는 순간에 그 만난 기쁨이 즉각 얼굴에 나타나는 그런 기쁨을 늘 가질 수 있다면, 인간 관계라고 하는 것은 영속할 터인데... 아무래도 우리들은 좀더 개한테 배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② ━ “ 연애는 전인격적인 것 ”

  책이나 예쁜 색종이에 사인해 달라고 요청을 받을 경우에, 나는 곧잘 성경의 말씀을 인용한다. 그 중에서도,『주는 것이 받는 것 보다 복이 있다.』(사도행전 2035)라는 말씀을 써 주곤 한다.
  그런데 나에게는 매일 독자로부터 편지가 온다. 많은 날에는
30통까지도 온다. 대부분이 진지한 상담이다.
  그 하나하나를 읽어 가면서 나는 왜 인간 세상에 이다지도 고민이 많은가 하고 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술미치광이인 아버지, 형의 가출, 남편의 바람기, 병으로 인한 장기 요양 등, 종류를 들자면 한이 없다. 그 어느 편지도 모두 깊은 동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들뿐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도, 내가 입술을 깨물고 싶도록 불쌍한 생각이 드는 것이 있다. 그것은 고등학교 학생이나 갓 졸업한 여성으로부터 오는 연애에 관한 번민이다. 아니, 정확히는 연애라고 하기보다 차라리 성(性)에 대한 잘못된 생각에서 생긴 번민인 것이다.
  
“남자가 좋아졌다. 나는 그 사람에게 몸을 허락했다”라고 쓴 편지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연애란 좋아하는 사람에게 육체를 바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위로 쓴 것을 볼 때면, 곁에 있다면 볼기짝이라도 때려 주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난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런 풍조가 만연하게 되었단 말인가.
  물론, 열이면 열 모두가 이런 어리석은 시늉을 하고 있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그리도 젊은 여성은 남성을 모르고 있는지 모르겠다.
  남자란 것은,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손을 잡을 수 있는가 하면, 여성의 육체를 점령할 수 있는 존재다. 그러나 전인격적인 연애를 하고 있는 남성이라면, 절대로 가볍게 여성에게 손을 댈 수가 없을 것이다. 나는 곧잘 젊은 여성들에게 말한다.
“그가 당신의 손을 잡은 것은, 그것이 당신의 손이기 때문에 잡은 것은 아닙니다. 그저 거기에 우연히 당신의 손이 있었기 때문에 잡았을 뿐입니다. A양이라도, B양이라도, C양이라도, D양이라도, 남자에게 있어서는 똑같다는 식의 말이 있습니다.”
  극단인 듯하지만 사실이다. 남자는 정욕에 의해 여자를 안는 경우가 많다.
A양이든 B양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남자에게, 왜 여성이 호락호락 그 몸을 바쳐 버리는가 말이다.
  
“내가 그를 좋아하니까, 그것으로 좋지 않은가?”라고, 혹 반항하는 태도로 당신은 말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좋아한다는 감정만으로는, 그 결과를 참으로 어처구니없고 허황된 것으로 만들기 쉬운 것이다. 확실히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 새인지 모르게 이렇게 미워하고 있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좋아한다'고 하는 감정만을 결코 연애라고는 인정하지 않는 인간이다.
  
연애란 전인격적인 것이어야 한다. 즉 의지, 이성, 감정이 아름답고 깊게 통일된 모습이어야 한다. 나는 상대의 남성에게도 그것을 요구한다. 적어도 강한 의지와 번쩍이는 지성을 갖추지 못하고 단순히 “좋다 좋다” 하는 식의 감정만을 앞세우는 인간이라면 사양한다. 그리고 전인격적인 연애를 하는 남성은 그렇게 간단하게 육체를 요구하지 않는 것도 나는 알고 있다.
  젊은 당신에게 나는 말한다. 당신은 절대로 젊은 짐승의 먹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라고 나는 쓰고 있지만, 이것은 결코 육체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따뜻한 마음을, 슬퍼하는 사람에게는 진실한 눈물을, 곤고한 사람에게는 위로의 말을 주십사 하는 간절한 바람에서, 나는 이것을 쓰고 있는 것이다.
  정욕을 사랑으로 둔갑시켜서 근접해 오는 남자에게, 실수로라도 쉽게 몸을 주어 버리는 여성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나는 절실하게 생각한다.

  ③ ━ “ 딸들에게 ”

  뭐라 말할 도리가 없는 편지가 종종 젊은이들, 특히 여성들로부터 날아온다. 그것은, 연애는 곧 육체관계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로부터의 편지인 것이다. 생각뿐이라고만 한다면 아직 문제는 없다. 그러나 그것을 실행에 옮겨 버렸기 때문에 상처받고 고민하면서,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호소해 오니까 문제가 된다.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호소해 와도, 도대체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안타깝게도 나 자신도 알 수가 없을 뿐이다.
  
2차대전 전에 표현의 자유가 없는 무서운 시대를 알고 있는 나에게는, 지금 이 시대는 참으로 고마운 시대라고 생각한다. 당시는 천황제도에 관한 것 따위를 섣불리 말했다가는 당장에 투옥되곤 했다. 성(性)의 표현도 엄히 제한되었었다.
  전후(戰後)에 그러한 제한에서 해방되었다. 사상의 자유에는 아직도 뿌리 깊은 부당한 제한이 남아 있지만, 성의 표현은 전적으로 자유로워졌다. 그러나 그
'성(性)의 표현의 자유가 우리들에게 행복을 안겨 주는 것인가' 하는 문제에 들어가게 되면, 이것 또한 마음 놓고 기뻐할 수 없는 상황에 있는 것을 알게 된다.
  극단적인 상업주의와 결탁한 방향 감각을 잃은 성적 자극의 추구, 무책임한 어른들의 발언, 그런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하면 젊은이들이 참된 것을 발견하여,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인생을 진실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나는 때때로 현대는
'기아(棄兒)'시대가 아닌가 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교육이 융성해진 것처럼 보이지만 무엇인가 부족하다. 성 교육도 바로 그 하나이다. 조금만 더 어른들이 진실하게 자기 자식들과 대화한다면, '육체 관계는 곧 연애' 따위의 생각을 하여 섣불리 일을 저질러 놓고 어리석게 고민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니,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해 보았자 때늦은 일이 될지 모른다. 저명한 스승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몸을 허락한 것 정도를 가지고 고민하는 녀석은, 아무래도 인생을 살아갈 힘조차 없는 놈이야. 그런 녀석은 차라리 죽어 버려.”라고 말하고, “상처받지 않도록 요령 좋게 노는 거예요. 거기에 두 번 다시 오지 않는 청춘의 기쁨이 있는 것이니까.”라고 가르친다. 현실에 고민하는 젊은이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것이다. 참으로 하늘이 무서워하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과연 그것으로 좋을 것인가. 요령 좋게 놀면, 과연 그것만으로 청춘의 기쁨을 얻을 수 있을까? 하지만 인간은 결코 육체만의 존재는 아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각각이긴 하겠지만, 인간의 참된 기쁨은 보다 높고 건전한 곳에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젊은 사람들이 맑게 살아가 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생명을 이어받을 가정을 이루어 보다 높은 기쁨을 얻을 수 있게 해 달라고 전능자에게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다.

 미우라 아야꼬/『 고독에도 손길이 』...

 『 사랑은 영속한다 ... 』(에세이 모음 - )

    by
 
   ■「 고독에도 손길이 」/미우라 아야꼬 지음.

(잠 언 8:323616:622:4고린도후서 3:17

 33 ○ 그러므로 오 너희 자녀들아, 이제 내게 경청하라. 내 길들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느니라. 33 훈계를 듣고 현명하게 되며, 그것을 거절하지 말라. 34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나의 문들에서 지켜보고 나의 문설주들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 35 이는 나를 만나는 자마다 생명을 얻고 의 은총을 받을 것임이니라. 36 그러나 나를 거슬러 죄를 짓는 자는 자기 혼을 해치는 자니, 나를 미워하는 모든 자들은 죽음을 사랑하는 자들이라. 16:6 ○ 죄악은 자비와 진리로 정결케 되나니, 사람들이 를 두려워함으로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22:4 ○ 겸손함과 를 두려워함으로 말미암아 부와 명예와 생명이 있느니라. 3:17 이제 는 그 영이시니 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3:17 Now the Lord is that Spirit: and where the Spirit of the Lord is, there is liberty.

(요한복음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전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한 말들은 영이요, 생명이라.
It is the spirit that quickeneth; the flesh profiteth nothing:
the words that I speak unto you, they are spirit, and they are life.

『 세상도, 세상의 정욕도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요한일서 2:17)

『 14:24 만군의 가 맹세하여 말하기를 “내가 생각했던 대로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며, 내가 계획했던 대로 그것이 확고히 되리라. 4:12 그러므로 오 이스라엘아, 내가 너에게 이같이 행하리라. 내가 너에게 이것을 행하리니 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하라.
14:24 The LORD of hosts hath sworn, saying, Surely as I have thought, so shall it come to pass; and as I have purposed, so shall it stand: 4:12 Therefore thus will I do unto thee, O Israel: and because I will do this unto thee, prepare to meet thy God, O Israel.

(이사야 14:24아모스 4:12

Bible believers

 『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Divide)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 』(디모데후서 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