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 19. 23:02

좋은 글모음 - (4)

(좋은 글모음/No.4) [20070911] ●『 톨스토이의 “참회록” 』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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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eaceful Hymns on Violinㆍ잔잔한 찬송가 바이올린 연주 모음┃(53:39)

●『 톨스토이의 “참회록” 』을 읽고 ...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라. (시편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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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모음 - (4):서 평 】

『 톨스토이의 “참회록” 』을 읽고 ...

  ■ 허무의 체험 그리고 간디의 영향

  대학 1, 2학년 때, 나는 삶에 대한 깊은 회의를 경험한 적이 있었다. 이때 우연히 ‘마하트마 간디’의 자서전을 읽게 되었고 그의 진실된 삶의 자세에서 나는 많은 감명을 받았으며 그 책을 몇 번이고 읽은 기억이 난다. 약하면서도 진리에 대하여는 강인한 집념, 가혹할 정도로 자신을 갈고 닦아가는 모습에서 그의 이름 그대로 ‘위대한 혼’을 정말로 보는 듯했다. 소심하고 수줍음이 많은 나약한 젊은 시절의 그를 보며, 나는 많은 위로를 받았다. 또한 나도 똑같은 삶의 자세로 살아가면 그와 같은 혼을 소유한 자가 될 수 있다는 확신으로 그의 자서전을 미래의 내 삶을 보는 것처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읽었다.
  그 후 계속 간디에 관한 몇 권의 책을 구해 읽었으며, 그의 신앙이 바로 ‘진리를 찾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기독교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기독교인은 아니었으며, 기독교적인 삶의 방법을 가장 잘 실제 생활에 적용하는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적응력은, 그가 그의 자서전을 진리를 향한 실험(
The story of my experiment with truth)이라고 부제를 붙인 것처럼, 그의 일평생 자신을 모형으로 삼은 꾸준한 실험의 결과였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믿음이란 자신의 나약함을 철저히 인정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높은 축대 위로 뻗어 올라간 담쟁이 덩굴을 보며, 믿음이란 바로 저런 것이 아닐까 생각하곤 했다. 자신이 강하다고 생각한다면 한 발치도 올라갈 수 없는 담쟁이. 하지만 자신의 나약함을 완전히 인정하고 축대에 꼭 붙어 있을 때 어떠한 강풍이 불어 올지라도 능히 버티어 나갈 수 있는 담쟁이의 모습은 마치 간디의 소심하고 나약한 것 같은 성격에도 불구하고 그 어떠한 외적인 힘도 그의 진리에 대한 강한 확신을 꺾을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간디에 관한 책들을 읽어가며 나는 그가 톨스토이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사실을 발견했다. 그가 남 아프리카에서 사티아그라아 훈련을 시작했을 때
1910년 요하네스버그 근교에 건설한 농장에 ‘톨스토이 농장’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 나의 참회록처럼 읽은「참회록」

  나는 모태신앙으로 자라났으나 대학에 진학하면서 신앙에 대해 회의를 품게 되었다. 이러한 회의를 가지자 삶의 의미를 위해 방황하였다.
  이러한 시기에 읽게 된 톨스토이의
참회록은 마치 나의 참회록처럼 느껴졌다. 그도 내가 가지고 있는 마찬가지의 고민을 먼저 했다는 사실에서 그가 얼마나 친근하게 느껴졌던지! 그의 삶은 고민하는 구도자의 삶이었으며, 또한 이 참회록을 통해서 다시 나의 신앙을 재정비 할 수 있었다.
  
레오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Leo Nikolayevich Tolstoy)는 1828년 모스크바 200㎞ 남쪽 야스나야 폴리나야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그가 두 살도 채 되기 전에, 또한 그의 아버지 니콜라이는 톨스토이가 9세 때에 각각 세상을 떠났다. 부모를 잃은 톨스토이는 세 형들과 누이동생과 함께 그의 숙모집에 옮겨, 그녀의 헌신적인 보살핌 속에서 자랐다.
  그가
16세 되었을 때에 그의 형들이 다니고 있던 카잔대학에 입학하여 동양어학을 공부하며 외교관이 되려고 했으나 진급 시험에 낙방하였다. 그는 외교관의 꿈을 잃게 되자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된다.
  톨스토이가 이러한 방탕한 생활을 청산하고 문학에 눈을 돌리게 된 계기는 아마도 일종의 도피로써 코카서스군에 입대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는 군대에서 제대할 때까지 약
4년 반 동안 작품을 쓰게 되었다. 또 그때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제대 후에도 계속 작품 활동을 해 나갔는데 잘 알려진대로 그의 대표작은「전쟁과 평화」「부활」「안나 카레리나」「크로이체르 소나타」「코사크」등 수많은 작품이 있다.
  그의 모든 작품은 대부분 톨스토이 자신이나 그의 주위에 관계있는 사람들로부터 등장인물들을 선정하였다. 따라서 그 인물들은 또한 초상이기도 하다.
  톨스토이의
「참회록」은 그의 장년 시대인 52세 때 집필하기 시작하여 54세 때 발표했다.
  톨스토이의 참회록은 나의 사랑하는 책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나에게 큰 감명을 준 책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사랑하는 책이란 성경이나 금언집처럼 언제고 원할 때 그 책을 펼쳐봄으로 생의 기쁨과 위로와 또한 새로운 도전을 주는 그런 책이어야 할 것 같아서이다. 감명깊게 읽은 책이란 평범한 내용이 들어있을 지라도 그 책을 읽은 당시 독자의 정신 상태에 따라서 그 책에서 느끼는 느낌의 정도가 다를 것이다.

  ■ 노력, 회의, 좌절 그리고 몸부림을 기록한 책

  톨스토이의「참회록」은 일반적인 참회록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처럼 죄에 대한 참회가 아니고 그가 어떻게 종교에 귀의하였으며, 또한 ‘생의 의미’를 발견하기 위한 그의 끊임없는 노력과 회의와 좌절 그리고 몸부림을 기록해 놓은 짧은 책이다. 이 참회록 속에는 그의 40대 초반기, 즉 톨스토이의 위기라고 불리는 시기에 오직 자살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고 생각했던 그의 내적 고뇌가 적나라하게 나타나 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위기는
40대 초반 불쑥 찾아 온 것이 아니라 그의 의식적인 생활이 시작된 순간부터 벌써 나타나는 것을 참회록에서 알 수 있다.
  유년 시대부터 톨스토이에게는 이상에 대한 강한 갈망이 있었다. 또 그의 사상이 서서히 회의적인 경향을 띠게 되었을 때는 삶의 무의미함과 공허함을 추구하게 된다. 또한 그가 청년 시대에 접어들자 이상과 현실 세계 사이에서 수많은 모순에 부딪히게 되고 때로는 자신의 나약한 모습 속에서 심각한 위축의 심연 속으로 빠져들어 가기도 한다. 현실 세계는 그의 마음을 끊임없이 자극하여 인생의 모순을 극복하도록 그를 채찍질하였고, 또 한편으로는 현실 세계에 대한 자신의 욕망을 제거할 수 없었다. 그가 방종의 몇 년을 보낸 것도 결국 그의 이상과 현실 세계에서의 크나큰 갈등을 잊기 위해서였으며 코카서스의 은둔 생활로 들어간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 였다고 본다.
  그의 청년시대의 고독과 좌절을 그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도덕적으로 선량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갈망하고 있는 욕망을 표현해 보려고 노력할 때마다 나는 경멸과 조소의 고배를 마시었고 반대로 천한 동물적인 정열에 맡기게 되면 나는 칭찬과 격려의 대상이 되었다.”

  그의 청년 시대 삶은 이러한 양극, 즉 골드문트(Goldmond)와 나르찌스(Narziss) 사이에서의 방황이었으며 [※ HanSaRang 註. ─ 헤르만 헤세의 "지와 사랑"이라는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들이다. (관련자료)] 그의 혼에 대한 갈구와는 반대로 육체적인 쾌락에 몸을 던지게 된다. 그가 심지어 저작을 하게 된 동기도 “허영심과 사욕을 채우고 또한 명예를 얻기 위하여, 붓을 들게 되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자신의 내적 갈등에 대한 혼란을 그의 일기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나는 사랑의 선의(善意)를 사랑한다. 그리고 나는 선의에서 벗어나면 나는 자신이 싫어지고 기꺼이 그것에 매달리려 한다. 그러나 선인(善人)이 되려는 것 이상으로 내가 사랑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명성이다. 나는 아주 공명심이 많다. 그러나 나의 이 감정은 거의 충족되는 일이 없다. 만일 내가 명예와 미덕 중에 하나를 선택하여야 한다면 나는 전자를 택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러한 고백은 톨스토이 자신이 얼마나 외적인 혼란과 모순에서 고민했으며 그것과 싸우지 않으면 안되었던가를 보여 준다. 도덕적인 자기와 성(性)에 대한 욕구와 그것과 싸우려는 그의 고투는 확실히 일찍부터 그의 내부에서 싹트고 있었다.

  ■ 죽음 앞에서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인식

  톨스토이의「참회록」은 대부분 내적 욕망과 진리에 대한 욕구, 또 인생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그의 갈망을 서술하고 있으며 자신을 죽음 앞에서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유한한 존재로 깊이 느끼고 있었다. 그는 참회록에서 인간이란 존재를, 맹수를 피하여 물이 마른 깊은 우물 속에 뛰어든 나그네로 표현하고 있다.
  그 우물 속의 바닥에는 한 마리의 큰 용이 그를 한 입에 삼켜버릴 듯이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하지만 이 불행한 나그네는 성난 맹수에게 목숨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으나 밖으로 기어 나갈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우물 밑으로 내려갈 수도 없는 처지에 있었다. 그런데 정말 다행히도 중도의 틈바구니에 자란 야생관목 가지를 붙잡고 그것에 겨우 자기의 생명을 의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점점 손에 힘이 빠져감에 따라 우물 아래와 위에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멸망에 머지 않아 자기 몸을 맡기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도 그는 그 관목을 놓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친다.
  그런데 더욱 불행한 것은 흰색과 검은색의 두 마리 쥐가 쪼르르 나타나 그가 매달려 있는 관목 주위를 돌면서 그 관목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이제 당장 끊어져 그는 용의 아가리 속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깨닫는다. 나그네는 거기 매달려 있는 얼마 안되는 그 순간에도 자기 주위를 둘러보고 관목의 잎사귀 주위에 꿀이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하자 순간 그 꿀을 빨아 먹으며 앞으로 전개될 모든 것을 송두리째 잊고 만다.
  바로 나그네의 처한 상황과, 앞으로 닥쳐올 것들에 대한 모든 것을 잊고 꿀을 핥고 있는 행동이 바로 톨스토이 자신의 모습임을 고백하고 있다. 그는 자신을 이제까지 위로해 준 꿀을 핥으려고 무한히 애쓰고 있으나 이러한 것이 죽음 앞에서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된다.
  이리하여 구도자의 길에 철저히 들어서게 된다. 그는 꿀물 같은 허위의 사회를, 특히 문화인이라고 자처하는 지식인과 귀족들의 사회로부터 혐오감을 느끼게 된다. 그는 그러한 사회를 떠나 농촌으로 되돌아와
「야스나야 폴리야나」라는 농민들을 위한 교육잡지를 발간하였다.
  하지만 그를 둘러싸고 있던 그러한 생활도 그의 생의 근본적인 고뇌를 해결해 주지 못했으며, 결국 자신이 가르친다는 위선적인 모습에서 다시 고통을 느낀다. 그는 인생의 무의미함을 더욱 깊이 깨닫고 자기 앞에 결국 멸망 밖에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게 된다.
  톨스토이는 이러한 멸망 앞에 선 사람들을 네 가지 모습으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로 무지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인생이 무의미하며 악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용의 모습도, 또 생명의 나무를 갉아먹고 있는 생쥐들도 보지 못한 채, 그저 꿀을 핥아 먹으며 그 달콤함을 즐기고 있는 자들이다.
  두 번째의 길을 걷는 사람들은 쾌락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인생의 비참을 알고 오히려 이것을 잊기 위해서 지상의 쾌락을 좇는, 즉 꿀을 실컷 핥아 먹으며 살아가는 자들이다.
  세 번째는 인생의 무의미를 깨닫는 순간, 그들의 의지에 의하여 그들 스스로 생명을 끊는 그러한 자들이다. 이들은 영혼의 눈이 밝아 이성을 흐리게 하는 여러가지 습관이 아직 몸에 배어있지 않은 자들이라고 보았다.
  마지막은 허무 속에 살아가는 나약한 자들이다. 염세주의자로, 이들은 삶이 무의미하며 또한 자기 자신에게 연출되는 광대놀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여전히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라고 규정을 한다. 톨스토이는 자기 자신을 이 네 번째 부류의 사람들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그는 다시 그가 내린 이러한 규정 외에, 즉 이성 이외에 다른 어떠한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 말해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없었던 것은 그가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무언가 다른 힘의 존재에 의하였음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 신앙만이 유한한 존재에 무한한 의미 부여

  살아 있는 모든 인간에게 그때까지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되었던 이성적인 인식 외에도 삶을 가능하게 하는 어떤 비이성적인 인식, 즉 신앙이 있다는 것을 깊이 알게 되었다. 결국 인간은 제아무리 깊은 추리와 추론을 해본다고 할지라도 삶의 의미에 대한 해답을 결코 얻을 수 없으며 신앙만이 인생의 유한한 존재에 무한한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이러한 마음 가짐에서 어떠한 신앙도 받아들일 마음의 자세를 가지게 되었으며 각 경전들을 연구함과 동시에 특히 이러한 종교적 신앙인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의 신앙을 결코 받아 들일 수가 없었다. 그를 반발하게 한 것은 이러한 사람들의 생활이 자신들이 주장하고 말하는 신앙과 조금도 합치되지 않고 있는 점이었다. 특히 그 당시 러시아정교 교인들의 생활과 신앙의 모순에서 큰 혐오를 느끼며 그들의 신앙이란 인생의 쾌락주의적인 위로의 하나에 불과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 당시의 지식인과 귀족계급, 소위 문화인들의 신앙 생활을 둘러볼 때 그들은 재산을 더욱 증가시키기 위하여 애쓰고 있는 것이었다. 궁핍과 고통, 그리고 죽음에 대하여는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들 보다 오히려 두려워하며, 또한 그들과 똑같이 온갖 비천한 욕망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모습에서 환멸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가난하고 순박하며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그들의 신앙 생활이 미신과 기독교의 진리가 혼합되어 있음이 발견되지만 생활에 있어서는 그 전부가 신앙의 지식에 의하여 부여된 인생의 의의와 일치하고 있는 것에서 크게 친밀감을 느낀다.

  ■ 인생의 목적은 혼을 구하는 일로

  오랜 고뇌와 번민 끝에 톨스토이는 신이 존재함을 인식했으며, 그가 그것을 인식하는 순간 그의 내부에서 생명의 약동함을 체험한다. 그리고 그는 신과 자신과의 관계를 바로 알고자 노력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삶에서 유일하고 절대적인 목적은 선한 인간이 되는 것과 또한 창조주의 의지와 좀더 일치하게 사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그는 그때의 심경을 조각배를 타고 반대편 해안을 향해 노를 저어 가는 뱃사공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다. 조각배에 실려 익숙치 못한 손으로 그가 알지도 못하는 해안을 떠나, 있는 힘을 다해 노를 저어 간다. 중간쯤 노를 저어 감에 따라 물살이 점점 급해져 결국 그가 목표로 하고 있는 해안과는 엉뚱한 방향으로 떠밀려가게 된다. 엉뚱한 방향으로 감에 따라 노젓기를 포기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하지만 하류에 내려왔을 때 저 아래 쪽에 더 빠른 격류와 또 커다란 바위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나버린 많은 배들과 또한 파멸을 향하여 끊임없이 내려가는 배들을 보며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초조해 하고 있었다.
  그때 그는 뒷쪽을 돌아보는데, 거기서 집요하게 끊임없이 격류를 거슬러 올라가는 수많은 배들을 발견한다. 그도 그가 건너야 하는 해안과 또한 노가 있음을 알게 되어 다시 격류를 거슬러 즉 하나님이신 건너편 해안을 향해 그에게 주어진
‘자유의지’라는 노를 저으며 그의 하나님을 향한 삶을 시작한다.
 
 결국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이 세상에 태어났으며 인생에 있어서 인간의 목적은 혼을 구하는 것이며, 따라서 혼을 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삶이어야 하며 그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는 그분의 말씀에 근거한 삶이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리며「참회록」을 끝맺는다.

  ■ 그의 고백이 나 자신의 거울이 되고

  그가 이「참회록」을 쓴 4년 뒤「인생론」을 집필하게 되는데「인생론」「참회록」의 후편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참회록과 같이 고백적인 내용은 아니다.
  그가
82세의 나이로 작은 아스타포보라는 시골 역사에서 객사하기까지 철저한 신앙 생활을 하기 위하여 고민하며 그와 신앙과 실제 생활과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하여 많은 내적 갈등과 고통을 겪는다. 결국 그는 그의 모든 소유를 버리고 방랑자로서 여행길에 올랐으나 폐렴이 발병하여 철저한 구도자로서의 삶을 끝맺게 된다.
 
「참회록」은 톨스토이의 감정적인 욕구와 또한 선을 지향해 가려는 욕구가 서로 격동하여 싸우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또한 그러한 싸움에서 번번히 실패의 고배를 마시지만 그는 선을 지향하려는 의지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그의 신앙은 고뇌와 회의와 그리고 좌절을 통해서 갖게 된 아주 고귀한 것이다. 나는 그의 구도자로서의, 모순을 조금이라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그의 삶의 자세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또한 그의 고백을 통해서 나 자신의 삶의 자세를 거울로 들여다 보는 것같아 부끄러울 뿐이다.
  신앙과 현실 사이에서의 모순 속에서 쉽게 타협하고 자신을 합리화하여 버리는 나약한 신앙인으로서의 자세라든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조금도 식지 않는 진리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통해서 나 자신의 삶의 자세와 비교해 보게 된다. 그가 그토록 비판하고 혐오했던 소위 문화인이라고 자부하는 자들 중의 기독교인들의 잘못된 신앙 자세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모습에서는 과연 어떠한가?
  신학적으로 질서 정연한 교리를 설파하면서 나의 실제 생활을 그러한 이론들과 얼마나 일치시키고 있는가 생각해 보게 된다. 톨스토이의 참회록은 특히 오늘날 쉽게 아무 결단 없이 신앙 생활을 해 가려는 우리에게 도전을 주며, 아울러 삶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귀한 고백서이다. 또한 나에게 있어서는 정신적으로 방황했던 시기에 나의 신앙을 바른길로 인도했으며, 나의 삶의 자세를 재정비할 수 있도록 격려를 준 그러한 책이기도 하다.

『 톨스토이의 “참회록” 』을 읽고 ... /
                         신현길 (건국대학교 축산가공학과 교수)

     A CONFESSION
     by
     Leo Tolstoy

     Copyright (C) London: Oxford University Press, 1932
     tr. by Aylmer Maude
     1987Korean by Christian Digest
     Seoul, Korea.

(요한복음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전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한 말들은 영이요, 생명이라.
It is the spirit that quickeneth; the flesh profiteth nothing:
the words that I speak unto you, they are spirit, and they are life.

『 세상도, 세상의 정욕도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요한일서 2:17)

14:24 만군의 가 맹세하여 말하기를 “내가 생각했던 대로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며, 내가 계획했던 대로 그것이 확고히 되리라. 4:12 그러므로 오 이스라엘아, 내가 너에게 이같이 행하리라. 내가 너에게 이것을 행하리니 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하라.

(이사야 14:24아모스 4:12

14:24 The LORD of hosts hath sworn, saying, Surely as I have thought, so shall it come to pass; and as I have purposed, so shall it stand: 4:12 Therefore thus will I do unto thee, O Israel: and because I will do this unto thee, prepare to meet thy God, O Israel.

Isaiah 14:24Amos 4:12

Bible believ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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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Divide)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 』(디모데후서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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