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3. 23. 21:10

“ 성경을 불신하는 학자들의 사본 논쟁 ” (바른 성경)

(바른 성경) [199803/No.72] ● 성경을 불신하는 학자들의 사본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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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을 불신하는 학자들의 사본 논쟁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라. (시편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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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들어《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반대 운동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신학교들과 교단들을 중심으로 이러한 운동이 일고 있는데, 얼마 전에는〈교회와 이단〉이라는 잡지에서《한글 킹제임스 성경》과 ‘말씀보존학회’에 대해 이단성을 걸고 넘어지더니, 그 후에는 총신대학 신문(총신원보, 97.9.3)에 한 교수가 “학문적”인 기반을 갖추고《킹제임스 성경》이 사본학적으로 저질의 성경이라는 것을 역설했고, 최근에는 한세대학교(구 순신대)에서 교수들이 집단적으로 들고 일어나(한세대신문, 98.1.31)《킹제임스 성경》과 ‘말씀보존학회’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했다.
  이 외에도
“반-킹제임스 성경 운동”은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지만, 개역성경에 젖어 있는 일반 성도들이《킹제임스 성경》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게, 학문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반대하는 신학교 교수들의 입장은 학생들과 목회자들을 ‘세뇌’시켜 거짓 성경을 붙잡도록 만드는 것이기에 더욱 위험하다.

 두 가지 단계

  하지만 학문적으로 비판한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전혀 학문적이지 못하고, 아무리 많은 비판이 있어도 몇 가지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으로 끝나곤 하는 것이 그들의 비판의 전부이다. 이들의 모든 비판의 내용들을 일일이 반박하기에 앞서 성경에 대한 자세가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어떤 성경이 바른 성경인가를 판단하는 모든 논쟁에 있어서는 두 가지의 커다란 전제가 있다.
 
 ① 학자들의 전제ː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을 완전하게 기록하셨다. 그러나 지금 그 말씀, 즉 최초의 원본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단지 여러 필사본들이 있을 뿐인데, 우리는 그 중에서 최초의 원본에 가장 근접한 것을 찾을 뿐이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가장 원본에 근접한 사본은 ‘시내 사본’(Sinaiticus)과 ‘바티칸 사본’(Vaticanus)이다.
  
②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전제ː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을 완전하게 기록하셨다. 또한 그분은 그 말씀을 ‘영원히’ 보존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시편 126, 73311). 하나님께서 영원이라면 영원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그분의 온전한 말씀을 보존해 주셨다. 우리는 우리 손에 그 성경을 갖고 있다.
  하나는 학자들의 말에 따른
“과학적인 비평 방법”을 취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믿는 믿음을 취하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이 두 전제 중 하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은 학자들은 당연히 번의 전제를 취한다. 첫 번째의 전제를 취하면서 갖는 한결같은 생각은 “킹제임스 성경은 우수한 번역이지만 사본학적으로는 질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킹제임스 성경》이 번역될 때 사용되었던 필사본들은 학자들의 비평을 전혀 거치지 않은 매우 열악하고 저질의 필사본들이라는 것이다. 반대로《킹제임스 성경》이 나온 이후에 더 좋은 필사본들이 발견되었고, 그 필사본들은 학자들의 고증과 비평을 거친 결과 우수한(?) 필사본들로 판명되었기에, 그 필사본들에서 번역된 다른 번역본들이야 말로 훌륭한 성경이라는 것이다.

 학자들의 주장의 허구성

  사실 학자들이 말하는 “더 좋은 필사본”이란 사실 바티칸 사본과 시내 사본을 말한다. 그들은 모든 사본들의 평가 기준을 이 두 사본으로 보는데, 이 두 사본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으면 좋은 사본이고, 다른 내용을 담고 있으면 나쁜 사본이 된다. 이것을 이론화시킨 사람들은 웨스트코트(Brooke Foss Westcott18251903)와 홀트(Fenton John Anthony Hort18281892)인데, 그들은 이러한 결론을 얻기 위해 몇 가지 이론을 제시했다. 첫째, 짧은 본문이 긴 본문에 우선된다. 둘째, 어려운 본문이 쉬운 본문에 우선된다. 셋째, 사본의 양보다는 질이 우선된다. 넷째, 오래된 사본이 우선된다 등이다.
  
① 짧은 본문이 긴 본문에 우선한다ː학자들이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이 두 사본이《킹제임스 성경》의 본문보다 더 짧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성경 변개자 오리겐이 많은 단어들을 삭제했기 때문이다. 개역성경이《킹제임스 성경》보다 2,200단어 이상 없는 것이 바로 그 이유다.
  
② 어려운 본문이 쉬운 본문에 우선한다ː이러한 주장은 하나님의 뜻과도 맞지 않다. 이 역시 이 두 사본이 어려운 헬라어, 즉 ‘고전 헬라어’(Classical Greek)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인데, 하나님께서 쉬운 헬라어, 즉 ‘코이네 헬라어’(Koine Greek)로 성경을 기록하셨다는 사실은 원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고전 헬라어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철학자들이 사용했던 언어이다. 역시 학자들의 언어이기 때문에, 학자들은 이 어려운 본문으로 된 두 사본을 선호하는 것이다.
  ③ 사본의 양보다는 질이 우선한다ː이것은 학자들이 지지하는 필사본들이 숫적으로 매우 열악하기 때문에 나온 이론이다. 왜냐하면《킹제임스 성경》을 지지하는 필사본들은 5,300개 이상이 되는 총 필사본들의 약 8090%를 차지하는 “다수필사본”인 반면, 이 두 사본이 포함되어 있는 필사본들의 계열은 숫적으로 미약한 “소수필사본”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필사본들 아홉 개가《킹제임스 성경》을 지지한다면 한 개가 변개된 성경을 지지하는 것이다. 이에 학자들은 “하나가 아홉 개보다 더 크다.”라는 이상한 이론을 제시한다. 여기서 학자들은 필사본들의 계열을 알렉산드리아 계열, 시리아 계열, 카이사랴 계열, 서방 계열 등으로 세분화한다(사실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에게는 “보존된 계열”“변개된 계열”이라는 두 계열의 분류로 충분하다). 이 중 시리아 계열의 필사본이 월등히 많지만 학자들은 필사본들을 숫자로 취급하지 않고 계열로 취급해, 계열당 하나 씩의 점수를 준다. 이렇게 되면 다수 필사본이든 소수 필사본이든 11이 된다. 이쯤 되면 학자들은 싸울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다수필사본의 양이 많다는 말은 단순히 양적으로만 우수하다는 말이 아니다. 요즘 같은 인쇄술이 발달한 시대에는 변개된 성경을 수만 권 찍어 낼 수가 있지만(개역성경의 경우가 그렇다.) 당시 손으로 필사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에는 사정이 좀 달랐다. 하나의 사본에서 다른 여러 사본으로, 또 그 사본들에서 다시 여러 개의 사본들로, 이렇게 피라밋 식으로 증가되는 필사본들이 서로 일치한다는 말은 그 필사한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틀리게 필사하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만약 누군가가 틀리게 필사했다면 그 필사본을 보고 필사된 필사본들은 모두 틀리게 된다. 틀린 것이 생겼을 때 그 필사본은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에 의해 사용되지 않고 방치되었다. 90%의 다수 필사본은 이런 과정을 거쳐 틀리지 않게 보존되어 온 것이다. 따라서 필사본에서 “다수”라는 개념은 양적인 개념만이 아니라 질적인 개념도 된다.
  ④ 오래된 사본이 우선한다ː여기서 “오래된 사본”이라는 것은 시내 사본과 바티칸 사본을 두고 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다수필사본의 대부분이 5세기 이후의 사본인 반면 이 두 사본은 A.D. 4세기의 사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 4세기의 필사본들이 그렇게 좋은 상태로 보존되어 있을 수가 있었을까? 대답은 단 하나다. 이 두 사본들은 어느 누구도 사용하지 않고 하나는 바티칸 도서관에, 하나는 시내산 수도원에 잘 모셔져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사람들이 이 사본을 계속 읽었다면 이 두 사본은 남아 있지 않거나, 남아 있어도 다 낡아서 몇몇 조각만 남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본들은 거의 손상이 없이 매우 잘 보존되어 있었다.
  왜 사람들은 그 사본들을 보지 않았는가? 그것은 그 사본들이 가치 없다고 판정되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렇게 잘 보존되어 있었다면, 그 안의 모든 구절들이 완벽하게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사본들에는 많은 구절들이 없다. 낡아서 사라진 것이 아니다. 원래부터 없었다. 즉 그 사본은 원래부터 삭제되어 있는 변개된 사본들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본들을 후대의 학자들이 발견하여, 단지 오래되었다는 이유로
《킹제임스 성경》의 권위를 무너뜨리려 하는 데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학자들은《킹제임스 성경》의 원문이 열악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킹제임스 성경》이 번역된 이후에 더 좋은 필사본들이 발견되었다고 말한다. 즉 위에 말한 두 사본들이 미리 발견되었다면《킹제임스 성경》은 더 좋게 번역되었을 것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바티칸 사본의 발견 연도는 1481년이다.《킹제임스 성경》의 번역 연도는 1611년이다. 다시 말해서《킹제임스 성경》의 번역자들의 책상 위에는 바티칸 사본이 놓여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번역자들은 바티칸 사본의 변개됨을 알고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후대의 더 좋은 필사본”을 운운하는 학자들의 말은 거짓말임이 드러날 뿐이다.

  학자들의 사본 논쟁은 여기에서 끝난다. 어떠한 많은 말과 글로 그들의 이론을 피력해도 이러한 몇 가지 비판 이외에 더 새로운 것은 나오지 않는다. 결국 그들의 주장은 시내 사본과 바티칸 사본에 대한 맹신일 뿐이며,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을 보존해 주신다는 그 사실에 대한 불신을 표명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덧붙이는 말은 “《킹제임스 성경》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극단주의자들이다”, “말씀보존학회는《한글 킹제임스 성경》이외의 모든 한글 성경들은 사탄의 작품이라고 한다”, “그들은《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지 않으면 구원도 못받는다고 한다”, “개역성경을 사용한 한국 교회의 성장과 유산이 잘못되었다는 말인가?”라는 등으로 말을 돌린다. 물론 우리는 변개된 성경으로는 구원받을 수도 없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변개된 성경을 사용한 한국교회의 성장과 유산에 대해서는 절대로 동의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한국 교회는 바른 말씀이 없었기 때문에 숫적으로는 성장한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전혀 성장하지 않았다. 한국 교회가 갖고 있는 유산이란 무엇인가? 200여 개 이상의 교파와 수백 개의 기도원과 수십 개의 이단 사이비 단체와 세상 속에 묻혀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1200만 명의 기독교인들뿐이다.
  이제는 바른 말씀으로 돌아가라. 더 이상 말도 되지 않는
“학문적 비평”의 이름을 들먹거리면서 바른 성경을 거부하지 말고, 곧은 목과 완고한 마음을 던져 버리고 바른 말씀으로 돌아가라. 이 땅의 신학교들은 언제까지 배교의 길을 걸을 것인가?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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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No.72/199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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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을 불신하는 학자들의 사본 논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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