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8. 17. 22:39

“ 살렘 왕 멜키세덱 ” (성경 주석)

성경 주석 ● 살렘 왕 멜키세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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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 14:1720

17 ○ 아브람이 크돌라오멜과 그와 함께한 왕들을 쳐부수고 돌아온 후, 소돔 왕이 왕의 골짜기인 사웨 골짜기에서 그를 맞이하러 나왔으며,
18 살렘 왕 멜키세덱이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19 그가 아브람을 축복하며 말하기를 “하늘과 땅의 소유주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브람을 복 주시옵소서.
20 너의 원수들을 네 손에 넘겨주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송축하라.” 하니, 아브람이 모든 것의 십일조를 그에게 드리더라.

────── [THE BOOK OF GENESIS]───────────

@『멜키세덱』(창세기 1418)은 오늘날까지도 신비에 둘러싸여 있는 인물이기 때문에 많은 이단들이 멜키세덱을 자기들의 종교 창시자나 지도자로 들고 나온다. 몰몬교도에게 멜키세덱은 “멜키세덱의 계열”을 따르는 일단의 “장로들” 중 선구자의 반열에 올려놓는 데 이용된다. 비밀결사인 프리메이슨들에게 멜키세덱은 ‘위대한 자,’ ‘전지전능자,’ ‘최고의 주권자,’ ‘폐하,’ ‘스승’ 등으로 불린다. 마태복음, 사도행전 및 히브리서에 그들의 믿음의 근거를 두고 있는 여러 이단들에게도 멜키세덱은 특별한 인물이다.
성경에서 멜키세덱과 관련된 내용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멜키세덱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로서(히브리서 73), “의의 이며, “화평의 으로서(히브리서 72) 이중적인 칭호를 갖는다. 그에게는 육신의 어머니나 아버지가 없고 계보도 없고(히브리서 73), 더구나 그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자손이 아니다(히브리서 74). 그는 셈족인 레위의 아들들처럼 말하고 행동했다(히브리서 71, 27512). 그는 주의 만찬을 예시하였고(창세기 1418), 또 그는 “축복”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창세기 1419).
멜키세덱은 아브라함보다 더 위대한 사람이었다(히브리서
74, 6, 7).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축복을 이미 받은 사람이었지만(창세기 1213), 선지자와 제사장이었을 뿐(창세기 128207), 왕은 아니었다. 멜키세덱은 예수 그리스도나 다윗처럼 선지자, 제사장 그리고 왕이었다.1 이 멜키세덱은 살렘 왕이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여러 왕들을 무찌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서 그를 축복해 주었던 이라. 2 아브라함도 전체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드렸으니, 그의 이름을 해석하면, 첫째로 의의 이요, 그 다음은 살렘 , 곧 화평의 이라』(히브리서 7:1, 2).

“멜키세덱”이라는 단어의 히브리어를 분석하면 “왕”이라는 의미를 지닌 “멜키”“의”라는 의미의 “체덱”으로 나뉘는데, 그래서 그 이름의 뜻은 “의의 이며, 여기에다 그가 왕으로 있었던 성읍의 이름이 “평화”를 의미하는 “살렘”이었으니, 그에게는 또한 “화평의 이라는 칭호가 붙는다. 다윗은 ‘사무엘하 569’에서 전쟁을 통해 이곳을 차지하였다. 파라오 느코는 B.C. 607년에 이곳을 치러 올라왔으며, B.C. 586년에는 느부캇넷살이 이곳을 멸망시켰다. 코레스가 B.C. 536년에 이곳을 재건했지만 마카비의 반란 때에 이곳은 다시 파괴되었고(B.C. 70), 헤롯에 의해 재건되었지만(B.C. 30) 다시 A.D. 70년에 로마의 티투스에 의해 멸망했다. 이 도시는 다시 A.D. 100년에 하드리안에 의해 재건되지만 A.D. 637년에 오마에 의해 다시 무너지고, 1099년에는 십자군들이 회복하지만 그것은 1187년에 살라딘이 무너뜨릴 때까지만 지속되었다. 그리고 1918년에 영국 외상 발포어 선언 이후로 이 도시는 아랍 국가들과 이집트와 PLO 등으로 인해 계속 전쟁을 겪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도시가 왜 “평화”라는 이름과 연관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또한 살렘에는 그의 성막이 있고 그의 처소는 시온에 있도다. 거기서 그가 화살들과 방패와 칼과 싸움을 부수셨도다. 셀라』(시편 76:2, 3).『이곳에 내가 화평을 주리라. 만군의 가 말하노라』(학개 2:9). 예수 그리스도께서 평화의 왕으로 오실 때까지 그곳에는 전쟁이 그치지 않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여호수아처럼(하박국 311), 또 기드온처럼(이사야 94) 예루살렘을 위해 싸우실 때까지는(스카랴 1413) 예루살렘뿐 아니라 이 땅 어디에도 영원한 평화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평화의 도시”라는 예루살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오실 때까지 계속 전쟁을 겪을 것이고, “의의 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쟁으로 그 땅을 차지하셔서 “화평의 으로 다스리실 때에야 비로소 그 도시는 “평화의 도시”라는 이름에 합당한 완전한 평화를 누릴 것이다. 결국 예루살렘에서 인류의 모든 전쟁(요한계시록 6장/1911212079)이 끝나야만 이 땅 위에 진정한 평화가 도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멜키세덱은 “화평”(샬롬)의 왕이기 이전에 “의”(체덱)의 왕이다. 의가 먼저 나오고 화평이 뒤에 나오는 것이 바른 성경〈킹제임스 성경〉의 순서이다. 멜키세덱의 히브리어 이름은 멜렉(왕), 체덱(의), 살렘(화평)이다. 의가 없이는 화평이 없으며(스카랴 816┃로마서 1417), 진리가 먼저이고 화평이 나중 순서이다. 그리고 의가 먼저이고 화평이 나중 순서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진리가 평화보다 앞선다(스카랴 816). 순수함이 평화보다 앞선다(야고보서 317). 의가 평화보다 앞선다(데살로니가전서 516).
멜키세덱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분명한 모형(창세기 1418)으로서, 그의 두 가지 이름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 때의 사역과 재림 때의 사역의 성격과도 같다. 첫 번째는 “의”이고, 다음으로는 “화평”인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초림 때 “의”를 이루시려고 오셨고(마태복음 520633┃로마서 1015), 재림 때는 “화평”을 이루시려고 오실 것이다. 이 화평을 이루기 위해 UN을 비롯한 모든 철학자와 종교가들과 인본주의자들이 노력했지만, 그들의 노력은 오히려 전쟁만을 가중시켰을 뿐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야 비로소 온전한 화평이 있게 될 것이다. 구약 시대의 유대인들은 초림을 거부함으로써 주님의 오심을 혼돈시켰고, 신약 시대의 이방인들은 재림을 거부함으로써 주님의 오심을 혼돈시켰다. 유대인은 그리스도의 초림 없이 의를 얻으려고 애쓰고, 이방인들은 재림 없이(로마서 112533) 이 땅에 평화를 가져오려고 애를 쓴다.
누가복음 2장에서 천사들은 “땅 위에는 화평”을 외쳤으며, 마태복음 5장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화평케 하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라고말씀하셨다. 이때는 아직 초림과 재림이 나누어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구약 어느 곳에서도 초림과 재림 사이에 “교회의 골짜기”라 불리는 2000년의 공백이 있을 것이라는 것은 예언되어 있지 않다.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완전히 배척할 때까지도 이 공백 기간은 감추어져 있었다.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들의 왕으로 받아들이느냐의 여부에 따라서 초림과 재림은 하나가 될 수도 있었고, 그 둘 사이에 2000년의 간격이 생길 수도 있었다. 누가복음 2장이나 마태복음 5장은 아직 배척받으시기 전의 상황으로 초림과 재림에 관한 내용들이 겹쳐 있었던 부분이다. 특히 마태복음 5장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인의 왕으로 등장하시는 모습으로서 재림 때의 왕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신약성경 전체로 볼 때 초림 때에 강조되는 것은 화평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의”이다.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사역은 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을 받기 위해서 그분의 의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전하는 것인데, 많은 사람들, 특히 교회일치 운동을 하는 후천년, 무천년주의자들은 이러한
“의의 전파”보다 오히려 “하나됨,” “형제애,” “세계 평화,” “교파 간의 화합,” “교회일치” 등을 주장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먼저 제시하기보다 세상과 하나되는 “평화 운동”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화평의 왕이 되시기 이전에 먼저 의의 왕이 되셔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화평이 강조되는 “천국”을 구하기 이전에 하나님의 의가 강조되는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하라고 말씀하셨다(마태복음 633).
이 멜키세덱은 이방인 제사장이다(히브리서
7장). 다니엘서에서 느부캇넷살 왕의 때에(B.C. 606) 시작된 “이방인의 때”(다니엘 92┃예레미야 259)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멜키세덱의 계열을 따른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은 유대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이방인들도 위한 제사장 직분이다. 여기서 이방인 제사장 멜키세덱을 이방인의 때와 연관시키는 것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 용어는 다니엘서에서 여러 번 사용되었듯이 이방인들이 유대인의 하나님을 이방 민족들의 모든 신들보다 뛰어난, 모든 신들의 머리와 같은 신으로 인식할 때 사용한 용어이다(다니엘 326417518725┃신명기 328┃사도행전 1617).
그러므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은 이방인들이 부르는 이름과 관계되며, 이 이름은 모든 피조물의 창조주로서 민족들을 다루시는 하나님과 관계된 전 우주적인 이름이다. 멜키세덱은 이러한 점에서 이방인 제사장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모형인 것이다. 멜키세덱은 참으로 특별한 존재이다. 그는 부모가 없다. 계보도 없으며 시작한 날도 생의 끝도 없다.『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으며, 계보도 없고 시작한 날과 생의 끝도 없으니 하나님아들과 같이 되어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히브리서 7:3). 멜키세덱은 주의 만찬을 예표한 인물이었고(빵과 포도주를 주었다), 아브라함에게 축복할 권한을 갖고 있었다. 멜키세덱은 매우 특별한 인물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인간 아버지는 없었지만 어머니는 있었으며, 계보도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는 매우 중요하다. 그의 계보는 왕의 계보이며(마태복음
1장), 그것은 그분의 왕의 정통성을 인정하는 계보이다. 또한 멜키세덱은 하나님의 아들과 “같다”고 되어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그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또한 그는 항상 제사장으로 계신다고 했는데(히브리서 816101214),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승천하시기 전까지 결코 제사장의 사역을 행하지 않으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시라는 것은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의 사역을 다 포함하는 말이지만, 초림 때 그분은 선지자로 사역하셨지 제사장으로 사역하지는 않으셨다. 멜키세덱이 누구이든지 간에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한 모형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예수 그리스도는 제사장이시고, 또 앞으로는 “왕”으로 오실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분은 단지 왕으로만이 아니라 “제사장”으로서도 사역하실 것이다. 즉 그분은 왕이자 제사장으로서 다스리실 것이다. 멜키세덱도 왕이면서 동시에 제사장이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사장 직분을 취하실 때 그분은 레위의 계열을 따르지 않고 멜키세덱의 계열을 따르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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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신문 ‘바이블 파워’ (2008-8-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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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렘 왕 멜키세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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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 파워」/2008. 8. 16성경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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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ː 2004. 3. 28오전
▶ 제목ː주만이 홀로 하나님이시니이다 이 송오 목사
성경구절ː〔 시 편 86813
시간ː4718
주소ːmms://211.200.28.142/bbc/040328_am.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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