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0. 24. 21:49

“ 어떻게 살 것인가? ” (에세이 모음-③)

(글모음) [20061005] ● 어떻게 살 것인가? ... (에세이 모음-③)

 글자크기를 조정하는 방법ː[Ctrl]를 누르고, [마우스 휠] 또는 [╋/━]

● Peaceful Hymns on Violinㆍ잔잔한 찬송가 바이올린 연주 모음┃(53:39)

어떻게 살 것인가? ...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라. (시편 12:6)┃

  ⑦ “ 어떻게 살 것인가? ”

  얼마 전, 고등학생 몇 명과 같이 식사를 했다.
  
“삼무주의(三無主義)라고들 하지만, 지금은 사무주의입니다. 무기력, 무책임, 무관심, 무감동의 사무(四無) 말입니다.”라고 한 학생이 말했다. 나는 물었다.
  
“저런,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을까?”
  “아마도 갈 길이 정해져 있기 때문일 겁니다.”

  다른 학생이 대답했다. 즉 자기가 진학한 고등학교의 정도에 따라 대체로 갈 길이 정해진다. 그리고 장래의 사회적 지위도 알 수가 있다는 취지의 말인 듯하였다.
  나와 이야기를 나누던 학생들 중에는 다행하게도 사무주의에 빠져 있는 학생은 없는 듯하였다. 그러나 만약 이것이 젊은 사람들의 일반적인 관점이라고 한다면 매우 어두운 문제라고 생각한다. 모름지기 내년쯤은, 이것에
‘무궤도’라든가 ‘무도덕’이 보태져서 오무(五無)주의가 되고, 그 다음해에는 육무(六無)주의가 되어 버리지 않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어두운 느낌마저 들었다.
  오늘날 젊은 사람들은 중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교사로부터 부모로부터 어느 고등학교에 진학하라든가 하지 말라든가 하는 참견(지도하는 것으로 여길는지 모르지만)을 받아 혼란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학원이다, 보충 수업이다 해서 시험 공부에 쫓기게 된다. 고교시절도 마찬가지다. 어느 대학에 갈 것인가, 어떤 일에 종사할 것인가 등이 그들의 고민의 씨앗이 된다. 때로는 친구를 적으로 돌려서 경쟁을 한다. 요행히 희망하는 대학에 입학이 되어, 걸어가게 될 자기의 장래가 짐작된다 해도
‘그리 대단한 것은 없다’ 하는 생각이 들면서 허무해진다.
  어떤 젊은이는,
“학생운동은 허무의 표현인데, 어른들은 그것을 모른다”라고 말하고 죽었다. 확실히 그런 소리가 나오는 상황에 오늘의 젊은이들은 놓여 있는 듯하다.
  어쨌든 공허하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거기에는 기쁨도 희망도 없다. 나도 한때 깊은 허무에 빠졌던 일이 있다. 그것은 패전으로 인해, 내가 믿고 있던 것이 바닥으로부터 뒤집혔기 때문이었다. 그 때까지 젊은 정열을 쏟아부어 왔던 일이 전적으로 잘못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그 때에 희망이 없었던 어두운 나날들을 생각하면, 사무주의에 빠져 있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는 아무래도 남의 일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런데 내 생각에는 내가 빠졌던 허무와, 앞날이 결정되었기 때문에 빠진 현대의 허무와는 어딘가가 조금 다른 것 같은 느낌이 있다. 내가 고민한 것은,
 “어떻게 살아야 좋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지, “무엇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무엇이 될 것인가?”는 고민의 차원이 다른다.
  인간은
“무엇이 될 것인가?”를 생각하기 전에, 우선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해야 되지 않을까?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부모도 교사도, 아이들의 학력을 문제삼고 장래성은 문제 삼지만, 어떻게 살도록 가르칠 것인가에 대하여는 별로 문제 삼지 않는 것 같다.
  
“너는 수학을 잘하니까 그 회사가 좋다”, “너는 국어를 잘하니까 그 자리는 안 돼” 등으로 일자리에는 관심을 보이지만, 삶의 방식에 대해서는 지도를 소홀히 하고 있는 것 같다.
  적어도 인간은 의사가 된다, 정치가가 된다 하는 목표보다도, 어떤 의사가 될 것인가에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앞에 말한 바와 같이 부모나 교사들과 대화가 이루어진다면,
“아무리 바둥댄다 해도 과장 정도에서 멈추고 말겠지...”라든가, “미래는 이러나 저러나 잿빛인 걸...” 하는 따위의 절망적인 생활 양태는 빚어지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내 친구는, 얼마 전 교회에서 이런 말을 하였다.
  
“내가 세무서에 있을 때에 모두가 차례차례 제1조합에서 제2조합으로 자리를 옮겨 갔다. 그래서 끝내는 나 혼자 남게 되었다. 이래서는 도저히 출세는 바랄 수 없었다. 그러나 지조는 굽히고 싶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힘을 준 것은 아내였다. 아내는 나에게 출세하지 못하더라도, 일자리를 잃더라도, 지조를 굽히는 것보다 나을 것이라고 격려해 주었다. 덕택에 지조를 굽히지 않고 끝까지 버틸 수가 있었다.”
  이것이 인간으로서의 참된 삶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무엇이 될 것인가?”는 빵의 문제이다(사명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어떻게 살고 싶은가? 어떤 인간이 되고 싶은가?”는 영혼의 문제이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성의 문제이며,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의 문제이다. 물론 빵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인간이 그것만으로 사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서로가
“무엇이 될 것인가?” 보다 먼저 “어떻게 살고 싶은가? 어떤 인간이 되고 싶은가?”를 문제로 삼는다면, 어떤 어른들도 젊은이들도 함께 더욱더욱 다른 인생을 전개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신앙은 가졌든지 안 가졌든지 간에, 청년은 교회에 나가야 한다”라고 쓴 것을 본 기억이 있다. 그는 틀림없이, 교회라고 하는 인생에 관하여 깊이 그리고 진지하게 대화할 수 있는 장소가, 특히 청년 시절에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⑧ ━ “ 학력은 문제가 안 된다 ”

   ⑴ 인간 각자의 길
  고등학생의 대부분은 당연한 것처럼 진학을 화제로 삼는다. 지금은 그러한 시대인 모양이다. 누구나가 대학에 간다. 그런 가운데서 가정 사정으로 대학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은 어떤 심정으로 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까?
  그리고
3월 봄에 친구는 대학에, 자기는 사회로 첫 발을 내딛는다. 그 때에 어떤 생각이 사회에 진출하는 사람들의 가슴을 메울까?
  만약 대학을 못 나왔다는 것 때문에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고 하면,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아니, 그 사람들뿐만 아니다. 진학한 사람들에게도 묻고 싶다.
  
“무엇 때문에 대학에 가는 것인가?”
  참으로, 대학에 공부하러 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학을 나왔다”고 말하고 싶어서 대학을 다닌 사람이 실은 대다수가 아닌가 생각한다. 학력을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유감스럽게도 대학을 나왔는가 안 나왔는가로 그 후의 인생 행로에 커다란 차이를 결과 짓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자란 시절에는, 남자라도 대학에 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여자로서는 학년에서 단 한 사람도 진학하는 사람이 없었다. 약대(藥大)나 양재(洋裁) 전문학교에 진학한 사람은 둘 셋 있었다. 그러한 시대이기는 했지만, 나도 분명히 진학하고픈 소원을 갖고 있었다. 할 수가 있다면 나는 사범대학에 진학하고 싶었다.
  그 때에 내 친한 친구는 삿포로에 있는 전공과(專攻科)라고 불리는 교원 양성소에 진학했다.
2년간 배우면 정교사 자격을 얻을 수가 있었다.
  그 입학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어느 탄광촌의 국민학교에 교사로서 부임하기로 결정되어 있었다. 나는 그 때 그녀에게 말했다.
  
“너는 상급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해라, 나는 네가 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에, 일선에서 교사직을 공부할 테니까...”
  지금 회상해도 그 때의 상쾌했던 기분은, 나 스스로도 멋있게 여겨진다.
나는 사람들 각자에게 각각 주어진 길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세상에는, 대학에 가는 사람도 가지 않는 사람도 있어서 좋다. 갈 실력이 있으면서 가정 형편 때문에 가지 못한다면, 그것도 좋다. 단순하게 그렇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는 대학만이 배우는 곳이라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내 인생이, 곧 내 학교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어떤 청년은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말씀하시지만요,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출세를 할 수가 없는 데는 어떡합니까?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말입니다...”
  출세라는 것이 도대체 뭘까? 과장이 되고, 부장이 되고, 중역이 되는 것이 그토록 우리 인생에 중요한 것일까? 대학을 나왔다고 하더라도, 모두가 부장이 되고 사장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맘모스 대학이 몇 군데 생겨서, 해마다 몇만의 사람들이 대학을 졸업하는데, 그 사람들이 모두 부장이 되고 사장이 될 수는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대학을 나와도, 소위 출세 코스에서 떨어져 나오게 되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다.
  그보다도 유쾌하게 일할 수 있는 직업을 찾는 편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양재가 좋은 사람은 직업 훈련소에서 기술을 배우면 되는 것이고, 미용이 좋은 사람은 직장에 다니면서 틈틈이 배워 그 자격을 취득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여학교밖에 안 나왔다. 여학교라고 하는 것은, 초등학교
6년을 졸업한 뒤에 4년만 더 배우는 곳이니까, 나는 지금의 중학교 3년을 졸업한 사람들보다 1년 더 배운 데에 불과하다. 그러나 나는 독학으로 교사의 자격을 얻었으며, 사법학교를 나온 교사보다 그리 뒤지지 않는 교사가 되었던 것이다. 오만한 말 같지만, 가르친 아이들의 실력이 그것을 말해 주었다.
  내가 여학교를 졸업할 때에 후지쿠니오라고 하는 역사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학교를 졸업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독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 말씀을 잊을 수가 없다. 확실히 명언이다. 고등학교를 나오면, 충분히 독학할 수가 있는 것이다.

   ⑵ 또 하나의 이력서
  내 남편 미우라는, 초등학교 부설 고등과
2년을 나왔을 뿐이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와도 헤어져서 친척집에 맡겨져 자랐는데, 그것도 홋카이도의 산골이었기 때문에 진학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인내와 의지를 필요로 하는 부기(簿記) 1급에 합격하였고, 거기에다 40대가 되어서 영어를 독학하기 시작했다. ABC에서부터 시작하여 1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매일 공부를 쉬는 일 없이 계속하고 있다. 독학은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단지 문제는 할 마음이 있는가 없는가에 달려 있다.
  대학을 나왔다 해도, 마작을 하던가, 누워 뒹굴며 텔레비젼이나 보면서 하루하루를 보낸다면 굳이 대학을 나올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 교사 노릇을 계속하고
13년간 요양했다. 요양중에 하쿠운쇼라고 하는 홋카이도의 도립요양원에 입원하게 되었는데, 우리들 환자는 그곳을 ‘하쿠운쇼 대학’이라 부르고 있었다. 결핵이라고 하는 오래 끄는 병은, 돈과 시간을 쓰고도 낫는 비율이 극히 낮았던 당시에는, 그야말로 절망적인 병이었다. 그것은 지금의 ‘암’과 같은 것이었는 데도 불구하고, ‘대학’이라 불렀던 그 요양소의 젊고 싱싱한 분위기를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공부하는 도상에 있는 대학생과 고등학생 그리고 중학생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모두 서로서로 배우고 있었던 것 같다.
  생활 모두를 걸로 배우고 있었던 듯하다.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죄란 무엇인가?”
“행복이란 무엇인가?”
“사랑이란 무엇인가?”

  우리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러한 요양중에 사람들은 연애도 했다(당시에는 플라토닉한 사랑이 많았다). 나을지 죽을지 모르는 병을 안고 있으면서, 남을 사랑한다는 것은 커다란 슬픔을 안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그 연애는 늘 서로의 생사에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나 자신도 연애를 했지만, 그 무렵 나는 이렇게 단언하고 있었다.
  
“결핵도 연애도, 이력서에 기록해야겠다.”
  즉 나에게는, 앓는 것이나 연애를 하는 것조차도, 하나의 학교를 나온 것 이상 더욱 충실한, 그리고 무게있고 엄숙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인생에는 배워야 하는 교재가 여기저기에 마구 널려 있다. 학교를 나오지 못했다는 것도 또 하나의 교재이다. 가난한 것도, 몸이 약한 것도, 실패도, 연애도, 남들과의 불화도, 그리고 또 좋은 환경도, 절망적 환경도 배우려고 하면 모두가 교재인 것이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우리들은, 인생의 교과서가 또 한 장 넘겨졌다고 생각하면 된다.
  학력의 유무가 문제되는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엄밀히 말하자면, 자기 자신의 삶의 방법이 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되지 않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든가, ‘사람들에게 경멸당하지나 않을까’ 하여 어깨가 움츠러든다든가, ‘사회가 받아들여 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하는 것은, 곧 자기의 삶에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대학을 몇 군데나 나왔어도, “사람이 어떻게 살 것인가?”, “사는 목적이 무엇인가?” 등을 알지 못한다면, 그 지식은 하등 쓸모가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회에 해악까지 끼치게 된다.
  대학을 나왔거나 못 나왔거나 우리 다같이 가슴을 펴자. 그리고
“저는 이렇게 살아왔습니다. 나의 삶을 봐 주십시오.”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의 태도를 오늘부터 취하도록 하자. 솔직히 나는 18세가 지난 인간이, 부모의 등에 기대서 공부하는 모습을 좋아하지 않는다. 대학에 진학하는 사람도, 일단은 자기가 번 돈으로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경제적으로도 자립하여 자기 발로 걷기 시작한 ‘취업자’여, 자부심을 가지고 확신 있는 삶을 가꾸어 가기 바란다.

  ⑨ ━ “ ‘아름답다’는 말을 생각한다 ”

  미츠바시 선생의 강연이 있는데 들으러 가지 않겠느냐고 초청해 준 사람이 누구였는지 그것은 잊었다.
  그 강연회는 아사히가와의 신탁은행 빌딩에서 열렸다. 청중은 젊은 학생들이 많았다. 어디를 가도 미우라와 둘이서였던 내가, 그 날은 혼자 강연을 들으러 갔다. 미우라가 피로해 있었기 때문이다.
  사회자의 인사가 끝나고, 드디어 강연이 시작될 참이었다. 그 때 한 여성이 앞쪽 의자에 앉아 있는 미츠바시 선생에게 조용히 다가갔다.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그 여성은 선생 앞까지 가자, 선생에게 등을 돌리고 허리를 굽혔다. 선생은 두 손을 그 여성의 어깨에 걸치고 업혔다. 그녀는 조용히 일어나서 한 발 한 발 침착하게 걸음을 옮겨서, 단상으로 올라가 의자에 다가갔다. 그리고 선생을 그 의자에 옮겨 앉혔다. 그 조심성 있는, 그러면서 정성스런 표정이 나의 가슴을 울려서, 나는 그 두 사람의 모습에 감동했다.
  이것이 미츠바시 가즈도시 선생 부부를 본 첫번째 일이었다.
  의자에 앉은 선생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크고 명쾌한 음성, 밝은 얼굴과 그 모습은 부인에게 업히지 않고서는 단상에 오를 수도 없는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몸에 아무런 장애가 없는 사람일지라도, 그렇게 투명한 밞음을 보일 수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은 자기가 어떻게 해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 구원받게 되었는가를 참으로 힘있게 청중들에게 말했다. 나는 깊은 감명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이튿날이었던가, 나는 선생 내외분의 내방을 받았다. 다리가 불편한 선생을 태우고, 부인께서 차를 운전해서 오셨다. 그리고 옆 자리에 앉았던 선생을 업고, 어제 보았던 바대로 겸손하게 그리고 정성스런 표정으로 부인께서는 우리 집에 들어오셨다.
  우리들은 점심을 같이 하면서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가 선생과 결혼한 것은
19세 때였다고 했다. 당시에 두 사람은 같은 교회의 신도였다. 그녀는 소아마비로 다리가 부자유한 선생을 여름에는 손수레에 태워서, 겨울에는 썰매에 태워서 교회에 데리고 다녔다. 그러는 동안에 둘 사이에 사랑이 싹텄던 것이다. 그녀는 간호학교의 학생이었다. 그러나 선생에게는 살아갈 만한 경제적 기반은 아무것도 없었다. 당연히 두 사람의 결혼을 어른들은 반대했다. 사람의 마음은 변하기 쉽고, 현실은 냉혹하다는 사실을 어른들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신앙에 의해 맺어진 사랑의 강도를 어른들은 몰랐다. 물론 여러 가지 곤란은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훌륭하게 참아냈다. 지금 선생은 삿포로에
1백명 가까운 교인이 등록된 교회의 전도자이다. 아이들도 태어나서 부부의 사이는 매우 원만하다. 아니, 원만하다기보다는 아름답다고 하는 편이 걸맞을지 모르겠다. 이분들의 결혼 경위를 묶은 ‘고난과 신앙생활’은 전도 영화에서도 본 적이 있다. 그 영화도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나는 어쩌다가
‘아름답다’는 글자를 보게 되면, 문득 이 부부를 떠올릴 때가 있다. 왜 이 부부는 아름다운가? 그것은 남편의 다리가 부자유한 것을 부인이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선생도 또 자신의 다리가 부자유한 것을 조금도 비하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두 분은 전적으로 대등한 입장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계시다. 몸에 부자유가 없는 부인이 우위에 서는 것도 아니고, 부자유한 선생이 우위에 서는 것도 아니다. 극히 당연하다는 자세로 서로가 서로를 존중해 가면서 한 몸이 되어 살고 계시다.
  이런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은, 그 밑바닥에 확실한 인간관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폐결핵을 앓은 데다
‘척추 카리에스’까지 발병되어, 오랜 세월 동안 꼬박 누워 있어야 하는 생활을 계속했다. 그러한 때에 나를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해 준 옛 친구가 이런 말을 나에게 했다.

“인간은 손이 없어도 발이 없어도, 인간이라는 데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오체(五體)가 만족스럽게 갖추어져 있어도,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잃고 남의 아픔을 아프게 여기는 마음을 잃는다면, 그것은 인간이 아니다.”

  그는 설 수도 앉을 수도 없는 나를 향해, 위로하기 위해 그렇게 말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말은, 그 후 여러 가지 형태로 내 소설에 나타났다. 그는 그런 부자유한 몸을 지닌 나와 결혼하려고 생각하다가 그만 일찍 죽었다. 그가 죽은 지
1년 지난 뒤에 미우라가 나타나서, 5년 만에 결혼했다.
  그건 어쨌든
‘아름답다’는 글자를 보면, 나는 반드시 미츠바시 선생 부부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 부부를 닮은 몇 쌍인가의 아름다운 부부를 생각한다. 이것은 나에게서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보배인 것이다.

 미우라 아야꼬/『 고독에도 손길이 』...

 『 어떻게 살 것인가? ... 』(에세이 모음 - )

    by
 
   ■「 고독에도 손길이 」/미우라 아야꼬 지음.

(잠 언 8:323616:622:4고린도후서 3:17

 33 ○ 그러므로 오 너희 자녀들아, 이제 내게 경청하라. 내 길들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느니라. 33 훈계를 듣고 현명하게 되며, 그것을 거절하지 말라. 34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나의 문들에서 지켜보고 나의 문설주들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 35 이는 나를 만나는 자마다 생명을 얻고 의 은총을 받을 것임이니라. 36 그러나 나를 거슬러 죄를 짓는 자는 자기 혼을 해치는 자니, 나를 미워하는 모든 자들은 죽음을 사랑하는 자들이라. 16:6 ○ 죄악은 자비와 진리로 정결케 되나니, 사람들이 를 두려워함으로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22:4 ○ 겸손함과 를 두려워함으로 말미암아 부와 명예와 생명이 있느니라. 3:17 이제 는 그 영이시니 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3:17 Now the Lord is that Spirit: and where the Spirit of the Lord is, there is liberty.

(요한복음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전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한 말들은 영이요, 생명이라.
It is the spirit that quickeneth; the flesh profiteth nothing:
the words that I speak unto you, they are spirit, and they are life.

『 세상도, 세상의 정욕도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요한일서 2:17)

『 14:24 만군의 가 맹세하여 말하기를 “내가 생각했던 대로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며, 내가 계획했던 대로 그것이 확고히 되리라. 4:12 그러므로 오 이스라엘아, 내가 너에게 이같이 행하리라. 내가 너에게 이것을 행하리니 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하라.
14:24 The LORD of hosts hath sworn, saying, Surely as I have thought, so shall it come to pass; and as I have purposed, so shall it stand: 4:12 Therefore thus will I do unto thee, O Israel: and because I will do this unto thee, prepare to meet thy God, O Israel.

(이사야 14:24아모스 4:12

Bible believers

 『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Divide)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 』(디모데후서 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