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2. 12. 16:27

“ 정신 차리세요, 아빠! ─ Wake up, Dad! ” (양육/성장)

(양육/성장) [20050621] ●『 위기에 강한 남자 』(제11장ː정신 차리세요, 아빠! ─ Wake up, D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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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eaceful Hymns on Violinㆍ잔잔한 찬송가 바이올린 연주 모음┃(53:39)

정신 차리세요, 아빠!
Wake up, Dad!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라. (시편 12:6)┃

  브랜든은 텍사스 주 오스틴에서 일요 집회를 하러 가는 나를 따라 왔다. 밝은 얼굴에 황갈색 머리, 보석같이 반짝이는 푸른 눈을 한 아홉 살짜리 손자 녀석은 나와 함께 여행을 떠날 채비를 한 듯 보였다. 그 아이의 아빠가 오래 전에 그랬던 것처럼. 나는 손자들과 가까워지고 싶은데, 가장 좋은 방법은 남자 대 남자로 만나는 것이다.
  토요일 밤 호텔 방에서, 나는 경건의 시간에 브랜든에게 성경을 읽으라고 시켰다. 브랜든이 다 읽었을 때 우리는 침대 옆에 나란히 무릎을 꿇었고, 아홉 살짜리에게 맞게 나는 기도하기 시작했다.
“주님, 브랜든의 아빠 엄마를 축복해 주세요.”라고 시작했다. 기도를 마치고, 브랜든에게도 기도할 기회를 주었다.
  나는 실눈을 뜨고 그 아이의 작은 체구를 지켜보았다. 예배하듯 똑바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마주 잡은 채, 꼭 감은 눈으로 위를 향하고 있는 평화로운 얼굴에는 옅은 주근깨가 흩 뿌려져 있었는데 스탠드 불빛에 반사되었다. 곧 그 아이가 기도하기 시작했다.

“주님, 이 세상은 사악한 자에게 달려 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하시려고 오셨다고 알고 있어요. 내일 집회에 올 남자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늘의 천사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를 지키게 해주시옵소서...”

  아이는 육십 먹은 사람의 기도처럼 영적 싸움을 계속했다. 이런 주객 전도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내 기도는 늘 “이제 잠자리에 들겠습니다” 하는 것이었는데, 아홉 살짜리 손자는 정식으로 기도의 형식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아이의 부모에게 더욱 감사했다.
  이 년 후, 브랜든의 형제인 브라이스도 나와 동행하여 털사(
Tulsa)에 간 적이 있다. 브랜든처럼 그 아이도 기도를 잘했다. 크리스천 남자 이벤트가 열리기에 앞서, 목사님들과 관계자들이 무대 가까이에 있는 방에 모여 기도회를 가졌다. 위풍 당당한 형제들이 중보 기도를 하려고 나를 중심으로 테이블 주변에 모여 앉았고, 브라이스도 내 옆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날「콜 복음 전도팀」을 결성했는데, 브라이스가 할 일은 브랜든이 했던 것처럼 설교하기에 앞서 성경을 읽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기도한 뒤, 나는 브라이스에게 차례가 왔으니 기도하라고 했다.
  브라이스는 침착하고 진지하게 기도하기 시작했다.

“주님, 잠자기 전에 아들에게 어떻게 입맞출지 모르거나, 아들과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모르는 남자들이 오늘 여기 오면 제발 그 사람들을 도와 주세요.”

  단순하고 현실적인 그의 기도는 우리 모두의 마음을 움직였다. 집회를 시작하려고 그 자리를 떴을 때, 성경을 들고 똑바로 걷고 있는 훤칠한 브라이스를 보고, 나는 하나님의 구원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구원은 처음에는 나의 어머니에게, 다음에는 나에게, 또 그 아이의 부모에게, 그리고 이제 그 아이에게 있다. 예수님께서 ‘가장 사랑하는 제자’ 라고 했던 요한은 이렇게 썼다.『나의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것을 듣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이 없느니라』(요한삼서 4절).
  앨런은 열다섯짜리 아들을 그 집회에 데려와서 하루 동안 같이 지냈다. 그날 프로그램 중에, 하나님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사람들은 앞으로 나오라고 청하는 시간이 있었다. 아버지와 함께 앞으로 나온 앨런
2세의 진지한 모습을 보고 나는 왜 나왔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하나님이 저를 용서해 주시길 원해요. 어머니를 데려가셔서 하나님께 화가 나 있었거든요.”
  그의 어머니는 불과 몇 년 전에 돌아가셨다.
  그의 고백은 너무나 진실하고 의미 심장했다. 그의 남자다움을 확실히 하고 싶어서 우리는 그에게 약간의 돈을 주어, 다음날 식구들에게 저녁을 사고 저녁 먹는 자리에서 하나님이 그의 삶에 하신 일을 말할 수 있도록 했다. 그가 식당을 정했고, 식사 기도를 드린 후 식비는 자기가 부담하겠다고 웨이터에게 말했다.
  그는 저녁을 먹으면서 가족들에게 전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했고 새엄마를 대하던 그의 행동에 대해 용서를 빌었다. 그는 새엄마의 부모님도 식사에 초대했었다. 그분들은 일어서서 식탁을 돌아 그에게로 와서 그 젊은이를 껴안았다. 이때쯤 식탁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엄마를 잃은 충격과 새엄마에 대한 오빠의 반항으로 불행하게 살아왔던 여동생도 울음을 터뜨렸고, 모자간의 틈새를 연결하느라고 무진 애를 써 온 아버지와 자신들의 딸이 두 가정을 화합시키려고 애쓰는 것을 슬픔 속에 지켜보던 새엄마의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울며 용서하고 서로를 껴안고 있을 때, 다른 식탁에서 저녁을 먹고 있던 사람들도 그 얘기를 듣고는 함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어떤 낯선 사람이 그들의 식탁으로 와서,
“네가 참 자랑스럽구나”라고 하며 앨런 2세를 껴안았다.
  놀랍고 멋진 가족의 화해와 연합이 그 주일 저녁 식사 시간에 일어났다. 부모님의 눈물겨운 기도를 통한 한 젊은이의 용서는 즉시 주변의 다른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끼쳤고, 앞으로 다가올 날들 동안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배우고 가르치는 일은 나이가 따로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나이가 문제가 아니고, 관계가 문제다.
  우리는 다니엘이 포로가 되어 바빌론으로 잡혀 왔을 때의 나이가 열다섯 살이었으리라고 추정한다. 그가 자라난 문화에서는 열세 살이면 이미 성년 남자였다. 삶의 변화에 대한 수용과 적응으로 우리는 그의 성숙의 한 면을 알 수 있다. 원상으로 돌아가려는 회복력은 힘이 가진 특성 중 하나다.
  야곱의 아들 요셉도 그런 전례를 세웠는데, 그 내용이 구약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열 일곱 살 때 위대한 꿈을 꾼 뒤, 요셉은 형제들에 의해 강 아래쪽 이집트로 팔려 갔다. 그러나 하나님의 초월적인 영광에 의해 악이 선으로 바뀌었다. 이방 땅 이집트에서 노예로 시작했지만, 요셉은 권위를 지닌 탁월한 위치로 올랐다. 후에 기근으로 굶주린 가족이 이집트에 와서 식량을 달라고 간청할 때 요셉은 바로 거기 있었다. 그리고 요셉 때문에 파라오는 그 가족에게 호의를 베풀었다. 요셉의 인생에서 그렇게 해롭게만 보였던 그 사건은 결국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보시려고 하나님께서 예비해 두신 것이었다(
창세기 37).
 
 비록 두 사람은 힘든 시기를 살았지만, 요셉이나 다니엘이 자신들에게 일어난 사건 때문에 하나님께 불평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하늘들이 땅보다 높음같이 하나님의 길은 우리의 길보다 높다(이사야 559).
  사막 한 켠에서 간신히 생명을 유지했던 사십 년 세월은 모세를 길들이고 단련시켰다. 감옥과 포티발의 집이 요셉에게 힘을 길러 주고, 왕의 집에서 다니엘이 준비되었듯이 말이다. 현재는 미래에 대한 준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 미래는 결코 오지 않는다. 마침내 미래가 도래한다 해도 곧 현재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과거는 흘러갔고, 미래는 결코 오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에게 남은 것은 단지 현재일 뿐이다.

    결코 빨리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열 일곱에 왕 앞에 섰던 다니엘은 꿈을 해석했을 뿐 아니라, 두려움 없이 기꺼이 하나님의 모든 계획을 선언했다. 어릴 때 받은 교육과 훈련, 그리고 수양들이 이미 십대에 남자다워지도록 그를 준비시켰다. 그의 부모는 청년기 초반까지 다니엘의 삶을 관리하는 청지기 역할을 충실히 감당했음이 틀림없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다니엘은 자신의 믿음과 확신을 갖고 서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을 것이다. 다니엘은 존귀한 부모에게서 생겨났다.[2 ...“주는 나의 시라. 내 선함이 주께는 미치지 못하나 3 땅에 있는 성도들과 뛰어난 자들에게는 미치오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나이다.”...』(시편 162, 3)]
  남자들은 자녀들이 부모의 도움 없이 자신들의 기준에 의해 살아가야 할 날을 위해, 오늘 그들을 준비시켜야 한다.
우리의 자녀들이 우리와 같은 환경에서 자라리라고 가정할 수가 없다. 그 아이들은 최악의 날들을 견딜 수 있도록 훈련받아야 하고, 성품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작가 톰 울프(
Tom Wolfe)는 이렇게 말했다.

“미국 노동자들은 도덕적으로 발가벗은 상태가 되었다. 그들의 부모가 심어 준 도덕성을 내팽개친 노동자 계급들은 부유한 자들이 가진 가장 추악한 면을 모방하려 한다. 그것은 일부일처의 윤리적 한계와 외설물을 금하는 규칙에 따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명명한 ‘미국인의 새로운 타락’이 물질의 풍요 때문에 생겨났다고 결론을 맺었다.
 
미국에서의 이기주의의 발흥The Rise of Selfishness in America의 저자 제임스 링컨 콜리어(James Lincoln Collier)는 이렇게 말한다.

“이기주의는 특별히 자녀에 대한 포기에서 드러난다. 우리는 아이를 가질 권리가 있다고 느끼지만, 갖고 난 다음에는 그 아이들을 탁아소에 집어 넣는다. 부모가 한집에 같이 살며 아이들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 없다. 현재 뉴욕 시에서는, 아이들의 40%가 집에 아빠가 없는 가운데 태어난다. 이것은 무서운 통계다. ...한 해에 외설적인 전화 통화에 20억 달러를 쓰고, 야구 선수에게는 5백만 달러를 지불한다. 우리가 교육에 1700억 달러를 투자할 때, 불법인 마약을 위해서는 한해 1500억 달러를 소비한다. 우리는 마약과의 전쟁을 시작하기 위해 100억 달러를 필사적으로 구하고 있다. 같은 해, 미국민들은 피자를 사 먹는 데 210억 달러를 소비했다.”

  그리스도인이면서 가족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로 유명한 제임스 돕슨(James Dobson)은 다음의 내용을 책에 썼다.

[우리 아이들]이 음악에서 받는 부정적 영향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크다. [다음은] 어떤 앨범 안에 들어 있는 가사이다.

●  ‘F’ 란 말 226
●  생식기를 뚜렷이 묘사한 용어
117
●  오럴 섹스에 대한 묘사
87
●  암캐에 대한 단어
163
●  ‘창녀’란 말
15
●  ‘
S’ 란 말 81회 (‘F’ 와 ‘S’ 는 모두 욕설로 쓰이는 속어의 첫 글자)

  오늘 우리에게는 주의 교훈과 훈계로 자녀를 양육하는 진정한 남자가 필요하다(에베소서 64). 그는 하루하루 우리를 맹공격하는 세상 부패에 대항해서 싸울 “영적 체력”을 가져야 할 것이다. 특별히 의붓 아버지들은, 자녀들이 자신이 처한 위치의 혼란과 거부, 그리고 정체성의 위기로 고통을 겪을 때 잘 다독거려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셨듯이, 우리도 그분이 우리에게 돌보라고 맡겨 주신 아이들에게 부모 노릇을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특정 나무의 실과를 따 먹지 말라고 한 것은, 그에게서 즐거움을 빼앗으려는 것이 아니라 파멸에서 그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의 뜻은 아담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유익에 있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행복을 억제하려고 우리에게 세상에 저항하며 쾌락을 버리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죽지 않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죄 안에는 쾌락이 있지만, 그것은 잠시 유지될 뿐이다(히브리서
1125). 쾌락은 끝나지만 그 결과는 평생, 아니 심지어 영원까지 따라다닌다. 믿음의 부모는 자녀의 쾌락에 대한 욕구는 키워 주지 않는다. 그것은 자녀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그 아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책에서
“멋진 아빠와 맥빠진 아빠”에 대해 썼다. 그러나 이혼으로 야기된 새로운 현상은 참패한 아빠들이다. 흔히 이런 남자들은 단지 도덕적 벙어리일 뿐 아니라, 비겁한 사람이거나 책임감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거들먹대며 ‘싸나이’' 흉내를 내는 아비일 뿐이다. 그들 때문에 ‘사내들은 모두 타고 나기를 미덥지 못한 사람들’이라는 말을 듣는다. 물론 그렇게 말하는 것은 분명 불공평하다. 그러나 자녀들을 품위 있고 윤리적으로 부양하기를 거부하고, 모든 짐을 여자들이 지게 하는 무책임한 남자들이 이 세상에 대한 저주인 것만은 확실하다.
  니콜라스 데이비드슨(
Nicholas Davidson)은 그의 책페미니즘의 실패The Failure of Feminism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오늘날 천오백만 명의 미국 어린이들이 아빠 없이 자라나고 있다. 18세 미만의 인구 중 사분의 일에 해당된다. 이런 사회적 불행은 걷잡을 수 없는 범죄와 마약의 뿌리다. 그것은 교육적인 성취가 쇠퇴하는 경향에도 깊숙이 결부되어 있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정부 차원의 관대한 보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확산되는 빈곤에도 그 책임이 있다.”

  아버지 없이 자라는 아이들은 수입과는 상관 없이 교육적 성취에서 부정적 영향을 받는다. 한 중요한 연구에서... 연구원들의 결론에 의하면 ‘편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부모를 가진 학급 친구보다 낮은 학업 성취도를 보인다.’ 이것은 지난 세대 동안 쇠퇴의 일로에 있는 미국인의 교육 성취도가 학교의 질(quality)보다 가정의 질에 더 많은 연관이 있음을 제시한다. HanSaRang 註 ─ 현재, 한국의 실정도 마찬가지이다.
  아버지의 역할을 하지 않는 아버지들은 자신의 저급한 삶 때문에 사회로 하여금 비싼 대가를 치르게 했다.
  앞날을 꿈꾸고, 일하며, 연구하고, 좋은 남편과 아버지가 되기를 원하는 남자들도 일과 가정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자녀 양육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압력을 받고 있지만, 경제 사정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일에 쏟게 한다. 남자들은 지난 몇 년보다 더 힘들게 일하면서도 돈은 더 적게 벌고 있다.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을 낼 수 없기 때문에 남자들은 죄책감을 느끼고, 가족 구성원 사이에 긴장도 늘어나고 있다.

내 어린 딸아이를 탁아소에 맡겨서 그 애가 첫 걸음마를 거기서 내딛는다면 기분이 몹시 상할 거예요.”

  최근 어떤 아버지가 나에게 한 말이다. 그는 내무부가 제시한 신세대 아빠 유형 중에 속한다. 거기에 따르면 그들은 더 자주 학교로 자녀를 찾아가며, 아이들을 학교에서 데려오고, 여기저기로 실어다 주며, 숙제도 더 잘 도와 주는 경향을 보인다. 가정의 붕괴 조짐이 실제 가정의 모습과 통계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 반면, 가정에 대한 관심이 다시 살아나고 가정을 든든히 하려는 노력이 모아지고 있다. 아버지들은 화재와 같은 위급한 상황에서 언제나 기꺼이 자신보다 자녀들의 생명을 우선해 왔다. 그런 자녀 사랑을 매일의 우선 순위로 실천하자는 요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남자들 사이에서 늘어나고 있다.

    사랑의 증거

  성경에서 피로 나눈 우정의 언약은 상대방에게 기꺼이 생명이나 가장 귀한 소유물을 내어 주는 것을 의미했다. 나와 너의 소유가 따로 없었다. 예를 들어, 동양에서(성경에 등장하는 나라 포함) 아버지들은 자신의 생명보다 아들의 생명을 더 중히 여겼다. 아들을 남기지 않고 죽는 아버지는 실패한 인생이었다. 만약 아버지가 자신과 아들의 목숨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그는 차라리 자신의 목숨을 포기하고 말 것이다.
  이 원칙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을 통해 가장 잘 드러난다. 아브라함의 희망은 그의 자녀이며 상속자요 약속의 아들인 이삭에게로 집중되어 있었다. 아들을 바치는 것보다 하나님 앞에 자신의 생명을 드리는 것이 아브라함에게는 더 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제단에 바치라고 요구하셨다. 그러나 최후의 순간, 하나님께서는 이삭 대신 제물로 바칠 희생물을 주셨고 이삭을 풀어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요구하심으로 아브라함이 그분의 친구임을 증거하셨다. 아브라함도 이삭을 드림으로 하나님이 그의 친구임을 증거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아들 이삭을 희생 제물로 바침으로 최고의 믿음을 보여 주었다(히브리서
1117).
 
『사람이 친구들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내어 놓는 것보다 더 위대한 사랑은 없나니』이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이다(요한복음 15:13).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보다 더했다. 기꺼이 아들의 생명을 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함으로 그는 그분의 독생자를 갈보리 언덕에서 내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예시해 주었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이고 희생적이며 우리를 구속하신 사랑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있는 사람들도 그런 특징들을 보인다. 남자들도 가족을 그렇게 사랑해야 한다.
  가족을 위한 사랑은 남편과 아내 사이에서 시작되고 자녀가 태어나면 아이들도 거기에 포함된다.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남자는 가족을 사랑해야 한다. 그렇게 사랑할 때 사랑의 증거가 나타나고 가족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게 된다.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는 이타심, 사랑하는 사람의 유익을 위한 마음, 그리고 연합하려는 마음이다.
  
첫째, 이타심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외아들을 주셨다. 그리스도는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 성령은 그 자신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높인다. 이타심은 하나님의 본성의 진수이다.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를 주셨으니, ...』(요한복음 316).
  
둘째, 사랑하는 사람의 유익을 위한 마음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잃어버린 자들을 찾고 구하기 위해 세상에 오셨다. 성령은 우리의 유익을 위해 모든 일을 하신다. 즉, 우리가 점점 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기 위해.
  
마지막으로, 연합을 위한 마음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속하신 목적은 우리를 그분의 가족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다. 예수님도 아버지와 함께 우리 모두가 하나 되길 기도하셨다. 성령은 우리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게 하신다.

에드윈 루이스 콜 /『 위기에 강한 남자(제11장) 』...

    STRONG MEN IN TOUGH TIMES
    By
    Edwin Louis Co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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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Korean edition is published by arrangement w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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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장ː정신 차리세요, 아빠! ─ Wake up, Dad! ]

romans8_19

(로마서 8:19
피조물이 간절한 기대를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날 것을 기다리고 있으니

●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 나 같은 죄인 살리신 ∼ 천부여 의지 없어서 ∼♪∼♬
[1121]

Bible believers

 『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Divide)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 』(디모데후서 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