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8. 12. 09:12

“ 삼위일체를 가리는 신학교들 ” (해외 기사)

(해외 기사) [201502/No.275] ● 삼위일체를 가리는 신학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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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위일체를 가리는 신학교들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라. (시편 12:6)┃

┃Bible Believers Bulletin┃

『 14 자녀들이 피와 살에 참여하는 자인 것같이 그 역시 같은 모양으로 동일한 것에 참여하신 것은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가진 자, 곧 마귀를 멸망시키시며 15 또 죽음을 두려워하므로 평생을 노예로 속박되어 있는 자들을 놓아주시려 함이니라. 』(히브리서  2 : 14, 15)

『 이는 하늘에서 증거하시는 이가 세 분이시니,
아버지말씀성령이시요,
이 세 분은 하나이심이라. 』

『 이는 하늘에서 증거하시는 이가 세 분이시니,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이시요, 이 세 분은 하나이심이라. ─ For there are three that bear record in heaven, the Father, the Word, and the Holy Ghost: and these three are one. 』(요한일서 5:7)


For there are three that bear record in heaven,
the Father, the Word, and the Holy Ghost:
and these three are one. 』
(요한일서 5:7

  메츠거, 홀트, 밥 존스 3세, 커스터, 제인 하지스, 커디스 헛슨과 모든 배교한 근본주의자들이킹제임스성경과 그 원문을 비평하며 흔히 들고 나오는 것이 있는데, 바로 ‘요한일서 57’이다. 그들은 ‘요한일서 57’이 성경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에라스무스가 1520년 프란시스코계 수도승이 옥스퍼드에서 기록한” 16세기에 기록된 단 하나의 필사본들을 찾고 나서야(소문자 필사본 61) 이 구절을 그의 헬라어 원문에 첨가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케케묵은 “전설”에 따라 NIV는 ‘요한일서 57’(흔히 “요한의 콤마”라고 부른다)을 삭제했고, ASV, NASV, RSV, NRSV 등도 로마카톨릭의 알렉산드리아 필사본들에 근거한 다른 유사한 역본들과 함께 모두 이 구절을 삭제했다.개역한글판, 개역개정판 등 변개된 한글 성서들에도 삼위일체에 대한 강력한 근거 말씀인 이 구절이 삭제되어 있다. ━ 역자 주.
  그러고 보면
1951년 필자를 가르쳤던 교수도 말하기를 ‘요한일서 57’을 지지하는 필사본은 단 하나도 없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필자가 “소문자필사본 61이 있다.”고 말하자, 그는 말을 고치며 “그렇지, 고작 하나잖아!”라고 했다. 물론 그 교수가 거짓말한 것이다. 알민 패닝이라는 교수는 11세기에 기록된 필사본 또한 이 본문을 담고 있다고 증언했다(New Testament Textual Criticism). 필자가 이 사실 또한 지적하자, 그 교수는 다시 “그래도 그게 전부잖아!”라고 했다. 물론 그 교수가 또 거짓말한 것이다. 그 외에도 라틴 벌게이트가 이 본문을 다시 성경에 삽입하기 위해 사용한 9세기의 필사본이 있다. 그러면 그게 전부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요한일서 57’은 5세기의 구라틴 필사본에도 나타나 있다.
  그 외에도
12세기의 필사본으로(소문자필사본 88) ‘요한일서 57’을 담고 있는 필사본이 있는데, 프리스킬리안(Priscillian)이 쓴 4세기의 저작에 그 본문을 담고 있다. 학자들은 프리스킬리안을 제거한다. ‘요한일서 57’을 반대하는 학자들은 프리스킬리안을 “이단자”라고 부르며 그의 증거를 거부한다. 그러나 로마카톨릭이 그를 “이단자”라고 부른 점은 곱씹어 보아야 할 문제이다.
  히메네스(
Ximenes)가 1502년 그의 폴리그롯(대역성경)을 기록하기 시작했을 때, 그는 처음부터 ‘요한일서 57’을 기록하기로 계획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는 자신이 ‘요한일서 57’을 담고 있는 많은 헬라어 필사본들을 확보했다고 기록했다. 그는 이 중 몇 개는 로마에서 스페인으로 보낸 “매우 오래된 코덱스”라고 묘사했다. 그렇다면 왜 필사본 연구가들은 이 “오래된 코덱스”들 찾아내지 않는 것인가? 분명히 그 필사본들은 이 구절을 포함하고 있을 것이 아닌가! 히메네스는 ‘요한일서 57’을 있는 그대로 인쇄했다.
  좀 더 제대로 조사해 보자! 루이스빌, 덴버, 시카고, 뉴올리언스, 달라스, 밥존스, 성서침례신학교, 펜사콜라기독대학이나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존 질(
John Gill)은 풀겐티우스(Fullgentius)가 이 구절을 6세기 초에 인용했다고 기술했다. (‘요한일서 57’이 16세기에 고안된 것이라면 어떻게 6세기에 풀겐티우스가 이 구절을 인용할 수 있었겠는가!) 제롬 또한 A.D. 450년에 유스토키움으로 보내는 그의 서신에서 이 구절을 인용했으며, 왜 이 구절이 삭제되어야 하는지 물었다. 존 질은 계속해서 A.D. 350년에 아타나시우스(Arthanasius) 또한 이 구절을 인용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아타나시우스는 어디서 이 구절을 인용한 것인가?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는 이때 존재하지도 않았었다.
  여기서 멈출 것이 아니다. 존 질은 시프리안(
Cyprian) 또한 A.D. 250년에 이 구절을 인용했다고 말하고 있다. 시내 사본이나 바티칸 사본이 기록되기 100년 전인 것이다. 게다가 이보다 50년 전인 A.D. 200년에 터툴리안(Tertullian)도 이 구절을 인용했다. 터툴리안은 ‘요한일서 57’을 바티칸 사본과 시내 사본이 이 구절을 삭제하기 100년도 훨씬 전에 인용한 것이다. 요컨대, A.D. 200년부터 줄곧 성경에 있는 구절로서 인용되고 있었으며, 이는 ‘요한일서 57’을 반대하는 그 어떤 필사본의 증거들보다 앞선 것이다.
  그런데 왜 밥존스대학의 교수는 필자에게 이런 정보를 말하지 않은 것일까? 테네시템플과 리버티대학, 또 근본주의와 보수주의 신학교들의 교수진들도 이런 역사적 사실을 전혀 몰라서 학생들에게 말하지 않은 것일가? 이렇게 역사적인 증거도 제대로 수집하지 않은 게으른 교수들이 신학교의 교단을 꿰차고 앉아서 학생들에게 ‘요한일서
57’은 원래 성경에 없어야 되는 구절이라고 말하면서 성경을 고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자들이 당신이킹제임스성경을 믿는다고 하면 오히려 당신을 광신자라고 여기는 것이다. 교수들은 이런 식으로 세대를 거듭하여 학생들을 세뇌시키고 그들이 다시 교수들이 되어 학생들을 물들이고, 그래서 ‘요한일서 57’에 대한 거짓말이 하나의 “민담”이 되어 신학교 강의실에서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위원회가 모였을 때 그들은 단지 에라스무스의 헬라어 원문과 그의 소문자필사본 61만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이탈리아어〈디오다티 성경〉, 독일어〈루터성경〉, 프랑스어〈올리베탄성경〉4, 5 세기의 여섯 개의 왈덴시안의 성경들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헬라어 필사본들을 차치하고라도, ‘요한일서 57’은 A.D. 200년, A.D. 250, A.D. 325년에 계속 나타나며 로마카톨릭의 변개된 라틴 벌게이트와 다른 구라틴 성경에 근거한 반카톨릭 원문들에도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도 ‘요한일서 57’이 16세기에 고안된 것이라고 하면서 그것은 원래 성경에는 없는 본문이라고 말하겠는가?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올바른 정보도, 올바른 판단력도 주지 않는 것이다. 필자가 독자들에게 아주 기본적인 성경적 원리를 하나 상기시켜 줘도 되겠는가? 영국의 종교 개혁 성경인
킹제임스성경과 독일의 종교 개혁 성경인루터성경은 모두 ‘요한일서 57’을 간직하고 있다. 이 성경들이 맺은 열매들을 보라.『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게 되리라.』(마태복음 7:20)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게다가 학자들은 ‘소문자필사본
61’이 1519년과 1522년 사이에 기록되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생기게 마련이다. “필사본 61은 어떤 필사본을 보고 필사한 것인가?” 히메네스의 헬라어 원문은 아니다. 히메네스의 폴리그롯은 아직 출간되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에라스무스도 아니다. 이 필사본은 에라스무스의 헬라어 원문과 여러 군데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필사본 61은 그 문자적 일치성에 있어서 시리아 역본에 가깝고(사도행전 1126) 시리아 역본은 1552년 이전에는 유럽에 소개되지도 않았다(모세스 마르딘). 구라틴 역본과 구시리아 역본은 그 연대가 각각 A.D. 130년과 A.D. 150년이다. A.D. 180년이나 그 이전에 기록된 타티안의 디아테사론(시리아어)은 ‘누가복음 233’, ‘마태복음 125613’에서킹제임스성경의 본문을 담고 있으며, 이는 바티칸 사본과 시내 사본보다 앞선 증거이자, 이 변개된 필사본들과 대조를 이룬다.
  마지막으로 유제니우스(
Eugenius)가 ‘요한일서 57’을 카르타고 공회에서 인용했으며, 그는 그 공회의 신앙고백을 작성했는데 이 문서도 ‘요한일서 57’을 담고 있다. ‘요한일서 57’이 성경에 포함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A.D. 415년에 350여 명의 대표들이 모여서 그 구절로 정통주의 신앙고백을 만들었겠는가? 원래 이 구절이 성경에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 합리적으로 내릴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이다. 아버지말씀성령이 라틴어로도 그대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Pater, VERBUM, et Spiritus Sanctus, 요한일서 57).
  교수들이 신학교들에서 ‘요한일서
57’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달라스, 덴버, 퍼시픽코스트 등에 있는 신학교들이 이런 일을 행하고 있으며, 린치버그, 리버티 대학과 성서침례신학교들도 마찬가지이다.한국에 있는 신학교들도 마찬가지이다.‘요한일서 57’은 있는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누군가가 “헬라어 원문”을 들먹이며 이 말씀이 성경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이제 독자들은 그가 거짓말쟁이임을 단박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삼위일체를 증명하는 가장 강력한 구절을 부인하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르친다고 하는 신학교들과 학자들은 모두 무자격자들이다.『나는 자비를 원하고 희생제를 원치 아니하니니,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번제보다 낫도다. ─ For I desired mercy, and not sacrifice; and the knowledge of God more than burnt offerings(호세아 6:6).  BB

 월간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No.275/2015-02) ...

 『 삼위일체를 가리는 신학교들 』
    by
   해외 기사피터 S.럭크만 지음김 진석 옮김

    Copyright ⓒ 2015 Korean by Word of God Preservation Society.
  
  Printed in Korea.

● Peter Sturges Ruckmanㆍ(1921∼2016)

    피터 S. 럭크만

             (Peter Sturges Ruckman

             ㆍ19212016)

  故 피터 럭크만(Peter Sturges Ruckman19212016) 박사는 미국 플로리다 주 펜사콜라에 있는 성경침례교회(Bible Baptist Church)의 목사이며, 펜사콜라 성경 신학원(Pensacola Bible Institute)의 설립자이자 원장으로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학생들을 가르쳤다. 럭크만 박사는 밥 존스 대학교(Bob Jones University)에서 Ph.D를 받았지만, 그 학교의 신학 노선과는 일치하지 않았다.
  저자는 존 칼빈 이래로
500여 명 이상의 유명하다는 성경 주석가들이 그들의 주석서에 범해 놓은 주요 오류들을 일일이 지적하여 바로잡았으며창세기출애굽기에스라느헤미야에스더욥 기시 편잠 언전도서에스겔다니엘소선지서마태복음요한복음사도행전로마서고린도전/후서갈라디아서에베소서빌립보서골로새서데살로니가전/후서빌레몬서목회서신히브리서야고보서베드로전/후서요한일이삼서유다서요한계시록등의 주석서를 저술함으로써 올바른 성경 진리를 밝히고 있다.
  또한 럭크만 박사는
킹제임스성경이 왜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인가를 권위있게 설명하고 증명할 수 있는 독보적인 신학자였다. 특히 그의 저서〈필사본 증거Manuscript Evidence〉,〈알렉산드리아의 이단들Alexandrian Cult Series〉,〈신약교회사The History of the New Testament Chruch〉,〈킹제임스성경 유일주의King James Onlyism등에서 그 사실을 분명하게 밝혀 주고 있다. 그는 주석서와 성경 교리에 관한 150여 권이 넘는 책의 저자이며, 세계 전역에 있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존경받는 스승이었다.

 Bible Baptist Bookstore
 Biblebelievers.com

◐ 생각하기.... Thinking... ◑

【  생각하기.... Thinking...

  신학자라는 사람들이 진리를 탐구하려는 생각은 안하고, 왜 저런 거짓된 행위들을 하는 것일까? 왜, 무엇때문에?... 성경에 기록된 말씀의 권위보다 자기들이 그 위에 앉고 싶어서? 그렇게 위장을 하고 속인다고 창조주 하나님께서 모르고 계실까? 영원히 하늘에 세워진 그분의 진리가 숨겨지고 가려질 수 있을까? 올바른 지식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미국과 한국의 모든 신학교들은 전부 쓰레기일 뿐이며, 사탄의 일꾼들일 뿐이다. 대한민국에 교회는 이렇게나 많은데 교계의 모습은 어제나 오늘이나 왜 이 모양일까? 거짓된 지식을 전파하고, 거짓된 지식에 미혹당하고 같이 휩쓸려 떠내려가고,,, 결국에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다 같이 멸망하는 것이다. 지금은 왜 라오디케아 교회시대인가? 지금은 왜 마지막 때인가? (성경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으며, 어디쯤 가고 있는가?) 당연히 해야 할 기본적인 의무와 책임을 완수하지 않으므로 그 후대가 그 책임을 그대로 떠 안게 되는 것이다. 겉으로는 문명과 기술의 발전발명으로 살기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왜 실제 삶에서는 더 팍팍해지고 힘들고 어려워지는 것일까? 어렸을 때부터(기초부터) 당연히 배우고 익혀야 할 것들(내면의 됨됨이)을 습득하지 않음으로 시간이 지나 더 어려워지는 것이다. 무신론사상(≒진화론)에 무슨 희망이 있는가? 이미 만들어진 존재에 불과한 ‘인간’이 모든 만물의 주인인가? 타락하고 부정한 인간이 모든 우주와 창조세계를 다스릴 수 있는가? 인간은 어디에서 지혜와 지식을 얻을 수 있는가? 아무 것도 아닌 존재인 인간은 과연 무엇인가? 나(我), 가정, 사회, 국가,,,, 여러 국가들, 통치자들,,, 작은 나라, 큰 나라,,,, 적은 민족, 많은 민족,,,, 다양한 민족들, 각 민족들의 문화와 습성들,,, 셈과 함과 야펫 족속들,,, 이 지구에서의 인생살이,,, 현재 나의 존재는 무엇인가? 하루하루 먹고 살기 위한 고된 노동들... 그냥 이것뿐인가? 인간의 삶이 이것뿐인가? 오늘은 개미의 삶, 내일은 베짱이의 삶... 그냥 이것뿐인가? 한 인간의 삶이 이것뿐인가? 전쟁하고 학살하고 파괴하고 폐허로 만들고,,, 다시 건설하고, 다시 무너뜨리고,,, 다시 반복하고,,,, 이것이 인간의 삶인가? 이것이 전부인가?
  진실로 진실로, 인간에게는 희망이 필요하다. 성경의 주제는
「왕과 왕국The King and The Kingdom이다. 인간에게는 길(The Way)과 진리(The Truth)와 생명(The Life)이 필요하다. 한정된 생명을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인간에게 있어서 희망이 무엇인가?『성경The Holy BibleThe Scripture of Truth이라는 책이 인간에게 주어진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종이라면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실행하고 성경대로 가르쳐야 한다. 그렇게 해야 자신도 살고 상대방도 살리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성도들(saints)은 이 점을 한 순간도 잊어버리면 안된다. 한국의 성도들은 정신을 더욱 바짝 차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도 죽고 상대방도 죽게 되는 것이다. 둘째사망의 해를 받게 되면 영원히 돌이킬 수 없으며 영원히 태워진다(the lake of fire)는 사실을 잊어버리면 안된다.

2015년,,,
대한민국에, 각 지역 사회에, 각 지역 공동체에, 각 지역 교회에,
모든 가정에, 각 개인들의 삶에 창조주 하나님의 큰 축복이 임하기를....
각자에게 주어진 임무를 책임을 다해 완수하기를...

2015. 2. 19. ....
HanSaRang...

P. S. 】
  ‘
기독교’를 쓸모없는 것들 중의 한 가지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많은데(무신론자들, 공산주의자들, 진화론자들, 유물론자들, 과학맹신자들, 쾌락주의자들...) 그렇다면 쓸모있는 것(→value)은 무엇인가?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가치있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의 궁극적인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무신론과 진화론에는 절대로 답이 없으므로 이 두 가지를 추종하면 허무주의와 자살로 생을 마감할 뿐이다.
(모든 물질적인 것들은 엔트로피 법칙에 의해 결국 먼지로 돌아간다.)
  이 지구에서의 삶에 있어서 자기의 온 존재를 쏟아붓고도 아깝지 않은 일(事work)은 무엇인가? 진화론자들과 무신론자들은 이 물음에 답을 해 보아야 한다. 인간의 몸은 일(work)을 하기 위한 적합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아야 한다. (무중력상태에서는 절대로 평생을 살아갈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 인체 구조는 무너지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 20:15
누구든지 생명의 책에 기록되지 않은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And whosoever was not found written in the book of life was cast into the lake of fire.

(전도서 9:318
3 해 아래서 행해지는 모든 것들 가운데 이것이 한 가지 악이니, 곧 모든 사람에게 한 가지 일이 있다는 것이며, 또 정녕, 사람들의 아들들의 마음이 악으로 가득 찼으며 그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 미친 마음을 품다가 후에는 죽은 자에게로 간다는 것이라. 4 ○ 살아 있는 모든 자에게 참여하는 자에게는 소망이 있나니, 이는 살아 있는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나음이라. 5 살아 있는 자들은 그들이 죽을 것을 알지만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르며 그들은 더 이상 상도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들에 대한 기억이 잊혀짐이라. 6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사랑과 그들의 증오와, 그들의 시기도 이제 사라지고 해 아래서 행해지는 어떤 것에서 더 이상의 몫을 영원히 얻지 못하느니라. 7 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빵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시라. 이는 하나님께서 지금 너의 일을 받으심이라. 8 네 의복을 항상 희게 하고 네 머리에 향유가 부족하지 않게 하라. 9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그분이 해 아래서 네게 주신 헛된 모든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즐겁게 살지어다. 이는 이 생애에서 네가 수고로 해 아래서 얻은 네 몫이니라. 10 네 손이 찾은 할 일은 무엇이든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이는 네가 가는 음부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라. 11 ○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보니 경주가 빠른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전쟁이 힘센 자에게 오는 것도 아니며, 먹을 것이 현명한 자에게 오는 것도 아니고, 재물이 명철한 자에게 오는 것도 아니며, 은총이 재주 있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도 아니니, 때와 기회가 그들 모두에게 일어나는도다. 12 사람도 자기의 때를 모르나니, 마치 물고기들이 재앙의 그물에 걸리고 새들이 덫에 잡힘과 같이 사람들의 아들들도 재앙이 갑자기 그들에게 닥치면 재앙의 때에 덫에 걸리는도다. 13 ○ 내가 또한 해 아래서 이 지혜를 보았노니 내게는 대단한 것처럼 보였도다. 14 작은 성읍이 있어 그 안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한 큰 왕이 그 성읍을 향해 와서 포위하고 그것을 향해 큰 보루를 쌓았도다. 15 그런데 그 성읍에는 한 가난한 현명한 사람이 있어 그가 그의 지혜로 그 성읍을 구하였으나, 아무도 그 가난한 사람을 기억하는 자가 없었도다. 16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지혜가 힘보다 낫지만 가난한 자의 지혜는 멸시를 받고 그의 말들은 경청되지 않는도다.” 하였노라. 17 조용한 가운데 들리는 현명한 사람들의 말이 어리석은 자들 가운데서 다스리는 사람의 외침보다 나으니라. 18 지혜가 전쟁의 무기들보다 나으나 한 명의 죄인이 많은 선을 파괴시키느니라.

(요한복음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전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한 말들은 영이요, 생명이라.
It is the spirit that quickeneth; the flesh profiteth nothing:
the words that I speak unto you, they are spirit, and they are life.

『 세상도, 세상의 정욕도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요한일서 2:17)

『 14:24 만군의 가 맹세하여 말하기를 “내가 생각했던 대로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며, 내가 계획했던 대로 그것이 확고히 되리라. 4:12 그러므로 오 이스라엘아, 내가 너에게 이같이 행하리라. 내가 너에게 이것을 행하리니 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하라.
14:24 The LORD of hosts hath sworn, saying, Surely as I have thought, so shall it come to pass; and as I have purposed, so shall it stand: 4:12 Therefore thus will I do unto thee, O Israel: and because I will do this unto thee, prepare to meet thy God, O Israel.

(이사야 14:24아모스 4:12

Bible believers

『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Divide)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 』(디모데후서 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