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2. 10. 23:28

“ 당신은 부르심을 받았는가? ” (해외 기사)

(해외 기사) [20050804]● 당신은 부르심을 받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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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께 영광을ㆍGLORY TO THE LORD 】

● 당신은 부르심을 받았는가?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라. (시편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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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설교자 또는 사역자로의 “부르심”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많은 오해가 있어 온 것이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하나님께서 개개인을 사역(구령)으로 부르신다고 믿고 부르심에 응하기 시작했던 최초의 사람들은 모라비안들이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을 “설교자”(preacher)라 부른다. 정기적으로 세상에 나가 증거하는 모든 성인 남자는 그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런 이름으로 불린다.
  왜냐하면
“나한테 설교하지 말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든 침례교도들과 그들의 장로교, 감리교, 카톨릭, 루터교, 성공회 “형제들” 모두는 대단히 중요한 진리를 잊고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 여성들도 복음을 증거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설교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널리 흩어진 사람들이 가는 곳마다 말씀을 전하더라』(사도행전 8:4). 여기서 말씀을 전한(preach) 사람들에는 여자들도 포함된다(3절을 보라). 바울과 함께 복음 안에서 애쓴(빌립보서 43) 여자들은 바울을 물질적으로만 공급했던 것이 아니었다(‘누가복음 83┃고린도후서 84’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 여성은 말씀을 전할 수 없다는 잘못된 생각은 두 개의 성경구절에서 왔다.
  첫째는
(디모데전서 2:12)이다.『나는 여자가 가르치는 것이나, 남자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허락치 아니하노니, 다만 조용할지니라.』이것을 여자가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나 단체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금하는 데 적용한 것이다. 그러나 그 구절은 전혀 그런 뜻이 아니다. 그 지침은 아내가 남편을 가르치려 하는 것을 금하는 것이다.
  두 번째 구절은
(고린도전서 14:34)이다.『너희의 여자들은 교회 안에서 조용히 하게 하라. 그들이 말하는 것이 허락되지 아니하였으니, 율법에서도 말한 것과 같이 다만 복종할지니라.』그들은 이 구절을 들어, “그렇게 말하라”고 명령을 받은 께 구속받은 자들”로(시편 1072) 하여금 입을 다물게 하는 것이다. 그들이 여성일 경우에 말이다. 그러나 문맥은 전혀 그런 뜻이 아니다. 그것은 회중 앞에서 여자가 예언하거나(29절) 방언으로 말하는 것(27절)을 금하는 말씀이다.
  또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장사와 부활을 최초로 전파한(
preached) 사람은 여자들(누가복음 24장┃마태복음 28장)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의 탄생 이후에 예루살렘에서 구속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에게 말씀을 전한 것도 여자였다(누가복음 238). “여성해방운동가들”이 그토록 경멸하는 “남성우월주의”의 대명사인 성경이 여성에게 이렇듯 중요한 지위를 주고 있는 것이다.
  한편, 성경에서 설교자로 부르심을 받는 것은 전담 사역자가 되는 것이나(바울
디모데전서 112) 선지자가 되는 것(예레미야예레미야 15)과는 다르다. 이것이 성경에서 어떤 여자도 사도나 집사나 감독 또는 장로로 부르심을 받지 않는 이유이다. 지역 교회의 모든 직분은 안수를 요하는데, 신약 어디에도 안수받은 여자 사역자는 찾아볼 수 없다.
  우리가 보통
“설교자로 부르심을 받았다”거나 “설교할 자격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전담 사역자가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도행전 64을 설명하는 것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기도하는 일과 말씀의 사역에 전념하리라.” 이것은 일생 동안 영적인 능력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전적으로, 완전히 드려진 삶을 말한다. 단지 “전적으로 올바르고 헌신된” 삶을 뜻하는 것만이 아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그렇게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로마서 67장).
  그러나 전담 사역자가 된다는 것은 한 주, 한 달, 일 년 내내 교리와 말씀을 공부하는 것과, 말씀으로 상담하는 것, 설교하고 말씀을 가르치고 기도하는 것, 즉
“전도자”의 일을 하는 것을 말한다(바울은 이러한 지침들을 “목자”에게 주고 있다.디모데후서 45).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전담 사역자로서 설교하도록 부르시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권한에 속한 일이다. 어떤 설교자나 감독이나 학자도 그분의 선택을 바꾸지 못한다. 그분께서 한 사람을 들어 쓰시면 그 사람은 쓰임을 받는 것이고, 그분께서 한 사람을 사역에서 제해 버리시면 그 사람은 사역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누구를 강단에 세우고 누구를 세우지 않을지는 하나님께서 결정하신다.
  양무리를 지배하려 하는 것이나(베드로전서
53), 카이사처럼 그들 위에 군림하는(마태복음 2025) 것은 자신의 영적 생활이나 하나님과의 교제에 아무 유익이 못된다. 그것은 사역(섬김)이 아닌 것이다(골로새서 417).
  그렇다면 청년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설교자로 부르셨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여기 다섯 가지 지침이 있다. 이것이 절대무오한 것은 아니지만, 부르심에 대해 알 수 있는 좋은 지침이 되리라 믿는다. 이 다섯 가지 경우 모두에 해당되지는 않을지라도 그 중 적어도 세 가지에는 해당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성경에 관심을 갖는다. (자기가 얼마나 똑똑한지,

자기가 얼마나 성경을 많이 알고 있는지를 입증하기 위해서가 결코 아니다).

언제 어디에서 벌어지는 어떤 형태의 종교 논쟁에서도 절대로 입을 다물 수

없다.

사람들을 지옥에 가지 않게 하기 위해 구원받게 하려는 진정한 부담이

있다. 지옥의 실체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믿기 때문이다. 

사역이 아닌 다른 여러 직업에도 종사하고 성공적으로 일할 능력이 있다. 
지속적으로 말씀을 전할 기회가 열린다. 감옥이든 거리든 가정이든 어디든

간에 그에게 “열린 문”이 주어진다(고린도전서 169).

  만일 이 다섯 가지 모두가 자기에게 해당되는 것이 분명하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부르신다는 증거를 대단히 많이 가진 셈이다. 물론 어떤 청년들은 불러도 들리지 않을 만큼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있지만...
  
“부르심”(calling)은 “능력 주심”(enabling)이 아니다. 이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예레미야는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부르심을 받았지만 25살이 돼서야 비로소 능력을 받았다. 사무엘은 십대가 되기도 전에 부르심을 받았다. 그러나 엘리가 죽은 다음에야 비로소 이스라엘을 위해 예언하기 시작했다(사무엘상 7장). 어떤 성인 남자들은 부르심을 받은 뒤 겨우 몇 주나 몇 달 안에 능력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이미 많은 인생 경험으로 대단한 “저력”을 갖고 있는 경우일 때가 많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제한이 없다. 그들의 배경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다. ‘아모스’는 뽕나무 열매 모으는 사람이었고 가족이나 친척 중에 단 한 명의 선지자도 없었다. ‘빌리 선데이’는 야구 선수였다. ‘마태’는 세리였다. ‘에드문드 디넌트’는 깡패였다. ‘멜 트로터’는 술주정뱅이였다. ‘M.R. 디한’은 내과 의사였고, ‘샘 존스’는 술주정뱅이 변호사였으며, ‘할데인’의 형제들 중에는 해적도 있었다.
  내가 아는 성경대로 믿는 설교자들 중에는 구원받기 전에 설교자로 부르심 받은 사람도 둘이나 있다. ‘시클론 박스터 멕클렌든’과 ‘레이 시’이다, ‘
B.C. 캐롤’은 구원받기 전에 무신론자였다. ‘밥 존스’는 땅콩 농장에서 일하는 농부였다. ‘럭크만’은 개심할 당시 디스크 쟈키에 드럼 연주자였고, 가족 중에 설교자라고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원하는 사람을 부르시고, 원하는 사람을 사용하시며, 원하는 사람에게 능력을 주신다. 그 누구의 견해나 어느 목사의 견해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시기를 “그의 용모나 그의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그를 버렸노라. 가 보는 것은 사람이 보는 것과 같지 아니하나니, 사람은 외모를 보나 는 마음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But the LORD said unto Samuel, Look not on his countenance, or on the height of his stature; because I have refused him: for the LORD seeth not as man seeth; for man looketh on the outward appearance, but the LORD looketh on the heart.

(사무엘상 16:7)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부르실 때 부르심을 받는 사람은 사역 외의 다른 일에 종사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베드로야고보요한’은 물고기를 잡고 있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고 있었다. ‘마태’는 세금을 걷고 있었다. ‘기드온’은 밀을 타작하고 있었다. ‘디한’ 박사는 환자들을 보고 있었다. ‘루터’는 사제가 되려고 했었다. 하나님께서는 게으른 사람에게는 별관심을 갖지 않으시는 것 같다.

  당신은 설교자로 부르심을 받았는가?
  하나님께서는 모든 젊은 남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물으신다.

『 누가 나를 위하여 행악자들을 대적하여 일어나며
누가 나를 위하여 죄악을 행하는 자들을 대적하여 일어날까? 』
(시편 9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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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No.71/1998-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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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은 부르심을 받았는가? 』
    by
   해외 기사피터 S.럭크만 지음

    Copyright ⓒ 1998 Korean by Word of God Preservation Society.
   Printed in Korea.

피터 S. 럭크만
(Peter S. Ruckman1921∼현재)

  피터 럭크만 박사는 현재 미국 플로리다 주 펜사콜라에 있는 성경침례교회(Bible Baptist Church)의 목사이며, 펜사콜라 성경 신학원(Pensacola Bible Institute)의 설립자이자 원장으로서 40년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럭크만 박사는 밥 존스 대학교(Bob Jones University)에서 Ph.D.를 받았지만, 그 학교의 신학 노선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저자는 존 칼빈 이래로
500여 명 이상의 유명하다는 성경 주석가들이 주석서에 범해 놓은 주요 오류들을 일일이 지적하여 바로잡았으며, 창세기, 출애굽기, 욥기, 시편, 잠언, 소선지서, 마태복음, 사도행전, 히브리서, 요한계시록 등의 주석서를 저술함으로써 올바른 성경 진리를 밝히고 있다.
  또한 럭크만 박사는
킹제임스 성경이 왜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인가를 권위있게 설명하고 증명할 수 있는 독보적인 학자이다. 특히 그의 저서〈필사본 증거Manuscript Evidence〉,〈알렉산드리아의 이단들Alexandrian Cult Series〉,〈신약교회사The History of the New Testament Chruch〉,〈킹제임스성경 유일주의King James Onlyism등에서 그 사실을 분명하게 밝혀 주고 있다. 그는 주석서와 성경 교리에 관한 150여 권이 넘는 책의 저자이며, 세계 전역에 있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존경받는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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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believ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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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Divide)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 』(디모데후서 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