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1. 9. 23:20

“ 전통적 가치의 상실ː논리 정연한 세속주의의 등장 ” (진리의 지식)

(진리의 지식) [20081110] ● 전통적 가치의 상실ː논리 정연한 세속주의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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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통적 가치의 상실ː
논리 정연한 세속주의의 등장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라. (시편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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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의 경우야 어떠했던지간에, 이제 우리는 관념 형태의 다원론으로 특징 지어지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나치통치 직전의 독일 문화에서 사람들이 종교를 바라보는 관점이 변천하였듯이 오늘날 미국 사회에서도 사상이 변천하고 있다.
  사상의 변천은 천천히 이루어져 왔으나
1900년대 초반에 와서는 그 변천 속도가 빨라졌다. 오늘날에 이르기 전에는 사회가 주로 기독교 윤리로부터 추출되어져 나온 몇 가지 전제조건들 속에서 운영되어졌다. 일반적으로 이와 같은 기독교 윤리에 바탕을 둔 원칙들은 미국 초기의 지도력을 제공하여 주고 미국 창립의 기초들을 확립하였던 사람들에게 길잡이 역할을 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초기의 미국인들이 대부분 기독교인들이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기독교 원리에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이다.

   기독교의 유물

  기독교적 기초가 붕괴됨으로써 오늘날의 미국과 미국의 미래가 받게 되는 영향은 결코 과소평가 되어질 수가 없다. 한때 자유의 기초를 제공하였던 기독교적 바탕의 유물은 이제 퇴색되어 버리고 있으며 중앙집권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정부가 등장하게 되는 경향이 지속되고 있다.
  자유를 확립한 역사적 기초는 바로 도덕적 절대성을 확립하고 인간들에게
“생명의 자유,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 등등의 절대적인 권리를 부여하신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었다. 미국의 독립선언서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이와 같은 권리들을 보장하기 위하여 정부가 사람들 가운데 세워진 것이다.”
  요약하여 말하자면, 첫 번째로 인간의 피조물(인간의 피창조성)은 기독교적 기초에 포함되어 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으며 하나님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믿어 왔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의 품성을 반영하는 형식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인간에게 위대한 가치와 존엄성을 부여해 주었다.
  두 번째로, 인간의 권리는 창조주이신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것으로 간주되어졌으며, 그 결과로서 인간의 권리를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인간의 권리는 정부의 산물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이제 정부는 정부자체가 부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인 인간의 권리를 합법적으로 박탈할 수 없게 되었다.
  세 번째로, 정부의 존재목적은 바로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인간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었다. 독립선언서에서 제창되고 있는 것처럼, 정부가 조직적으로 이상과 같은 인간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파괴하려고 한다면, 그러한 정부를 바꾸거나 폐기시킬 수 있는 권리를 국민은 갖고 있다.
  이것은 곧 미국에서의 정치적 자유의 기초였다. 그렇지만 우리들이 누리고 있는 자유가 기독교적 근거와 바탕으로부터 분리되어질 때에, 왜곡되어지고 곡해되어진 그릇된 자유의 자취들이 ‘진실한 자유’를 파괴하는 강력한 힘을 갖게 되었다.
  이것은 일찍이 프랑스 대혁명에서 잘 예증되었다.
18세기 후반에 프랑스에서 대혁명을 인도하였던 사람들은 그들의 사상의 대부분을, ‘기독교적 바탕이 제거된,’ ‘독립선언서의 정신으로부터 유출된’ 원칙들에 바탕을 두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피가 난무하는 대학살과 독재 ─ 인류의 얼굴을 짓밟은 군화 ─ 로 나타났다.
  우리들은 오늘날 그와 같은 대학살과 독재와 똑같은 일이 재현될 수 있는 가능성을 안고 있다. 현대의 첨단 기술관료들을 지도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기독교적 기초를 공격하고 있다. 오늘날의 첨단적인 뉴스 매체를 이끌어 가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그와 같이 기독교적 바탕을 공격하는 사람들이 많다.
  오늘날의 ‘새로운 세속주의적인 윤리’를 대표하고 있는 사람은 ‘
프란시스 크릭’(Francis  Harry Compton Crick19162004)이다. 프란시스 크릭 박사는 ‘제임스 D. 왓슨’(James D. Watson1928)과 더불어 DNA 규칙을 발견한 사람으로 공인된 사람이다. 프란시스 크릭 박사는 19713월에 세인트 루이스에서 행한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여러분은 우리 나라 정치사상의 대부분이 생물학적으로 볼 때에 거의 정당화될 수 없는 것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할 것입니다. 미국의 독립혁명 시기에는, 즉 국민이 성직자들과 국왕들에 의하여 압박을 받고 있었던 시대에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창조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타당성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은 생물학적인 정당성이 없습니다.
  그러한 주장은 종교적으로는 일종의 신비한 효력을 발휘할지 모르겠으나... 그것은 생물학적으로 볼 때에 진리가 아니며, 또한 바람직한 것도 아닙니다... 우리들은 모두 우리들의 미래가 우리들의 손에 달려 있으며, 어느 정도는 우리가 원하는 바대로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거나, 또는 이제 막 깨닫기 시작했을 것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하버드 대학의 행동주의자인 ‘B. F. 스키너’(Burrhus Frederic Skinner19041990)는 분명히 인간은 기계의 톱니바퀴에 지나지 않는 존재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생명과 자유 그리고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 등은 기본적인 권리이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개인의 권리일 뿐이며, 자유와 존엄성에 관한 문헌기록들이 개인의 영역의 강화에 연관되어질 때에만 열거되는 것들이다. 그러한 권리들은 문화(문명)의 생존과는 큰 관련이 없는 것이다. (1)

  만약 그와 같은 논평이 연재만화에 등장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웃어넘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크릭과 스키너는 그 당대의 저명인사들이며 그들이 연설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그들의 사상과 철학은 대단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게다가 또, 그들은 또 다른 많은 기술 엘리트들의 지도자들을 대변하고 있다.
  그들의 철학은 독립선언서를 작성한 사람들과 미국 헌법의 초고를 작성한 사람들이 믿고 있었던 바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다. 즉, 이 세상에는 창조주(
The Creator)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으며 인간은 오직 상대적인 권리만을 갖고 있다는 것이 그들의 철학이다.
  또, (정부를 지배하고 움직이고 있는) 엘리트들도 통치를 받는 사람들을 위하여 정부를 관리하고 통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이 나라를 교묘하게 조종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마치 크릭이
“우리는 우리 자신이 원하는 바를 행할 수 있다”고 말한 것처럼 ─ 즉, 다시 말하자면, 그들은 ‘신(神)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무자비한 도끼

  우리 사회의 기초적 제도들은, 특히 1930년대 이후부터 단단히 속박하고 있는 지배적인 사상 형태는 바로 ‘휴머니즘’(Humanism인본주의)이었다.(2) 휴머니즘은 ─ 특히 휴머니즘이 유물론적인 비종교적 도덕론을 먹칠하게 될 때에 ─ 인간과 창조주와의 관계를 철저하고 단호하게 절단할 뿐만 아니라 상대론적인 철학적 기초를 확립하기도 하는 것이다.(3)
  상대주의(相對主義)하에서는 진리와 비진리(非眞理)의 개념이 뚜렷하게 구별되지 않게 된다. 결과적으로, 일단 상대주의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결코 무엇이 진리인가를 명확하게 알 수가 없다. 대신에 그들은 다만 어떠한 길로 따라가야 최선의 길인가를 추측할 수 있을 따름이다. 따라서 그와 같은 사회에는 비진리(非眞理)를 진리(眞理)로 납득시켜 받아들이도록 하기가 쉬워진다.
  진리와 비진리 사이의 구분이 불분명해진 현상은 나치통치 직전의 독일 사회에서 가장 잘 드러났다. 그 당시에 베를린과 같은 대도시들은
카바레(cabaret) 문화가 대단히 번창하고 있었다.
  그 당시의 베를린은 ‘게오르그 그로츠’ 등과 같은 만화가들이 그런 만화 속에 묘사되어진 것과 같이, 정상적인 독일 시민정신과 독일 애국심 등에 대한 경멸, 온갖 종류의 외설책자와 그림 등의 범람과 공공연한 판매, 유명인사들의 코카인 중독 및 남용, 성도착 행위 등등으로 잘 알려져 있다. 또
1920년대의 독일에서는 상당한 정도의 자유에 힘입어서 새로운 예술문화의 꽃을 피울 수 있었다.
  그와 같은 문화
예술의 한 예로서, 우리는 1916년에 그들의 목적은 국민대중에게 ‘상상가능한’ 모든 불가지의 것들과 모순과 부조리 등에게 ‘상상가능한’ 모든 형태로서 표현해 줌으로써 ‘무의식의 세계’를 계발하는데 있다고 주장을 한 다다이스트(Dadaist)들을 들 수 있다. HanSaRang 註. ─5하나님께서 사람의 사악함이 세상에 창대해짐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상상이 계속해서 악할 뿐임을 보시고 6 께서 땅 위에 사람을 지으셨음을 후회하셨으니, 그 일이 그의 마음을 비통케 하였더라. 7 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창조한 사람을 지면에서 멸망시키리니, 사람과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들 모두라. 이는 내가 그들을 지었음을 후회함이라.” 하시니라. 8 그러나 노아는 의 눈에서 은혜를 찾았더라.』(창세기 6:58)
  
다다이즘(Dadaism)의 옹호론자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다다이즘은 모든 것에 대항한다. 심지어는 다다이즘 그 자체에까지도.”(4) 따라서 다다이즘은 모든 형태의 문명과 모든 형태의 예술에 대하여 거부하였다. 그리고 다다이즘은 진리와 미(美)의 존재 자체도 부정하였다.
  다다이즘 운동은 현대 서구의 사상과 예술과 도덕과 전통이 무의미하게 되었음을 묘사해 주었다. 다다이즘의 정신은 부조리를 통하여 진실한 실체를 발견하고자 하는, 일종의 ‘
무정부주의’(Anarchism)와 ‘허무주의 정신’이다. 부조리와 우연성만이 그들의 안내자가 된다.
  심지어는 그와 같은 예술운동의 이름도 프랑스어 사전을 뒤지다가 무작위적으로 선택을 한 것이다.〔‘다다’(
Da-da)라는 말은 프랑스어로 ‘흔들의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예술은 XX○○이다”라고 다다이스트들은 말한다. ─ 그것은 콧수염을 기른 모나리자의 그림에 의하여, 어느 누군가의 시궁창 속에 버려져 있는 찌꺼기들을 이어 맞추어서 만든 콜라주에 의하여, 1920년에 독일에서 ‘막스 에른스트’(Max Ernst18911976) 등과 같은 사람들이 출품한 전시회 작품 등에 의하여 잘 설명되고 있는 것이다. ‘레너드 페이크오프’(Leonard Peikoff1933)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사람들은 전시된 다른 많은 작품들 중에서, 관람자들에게 마구 칼부림을 하면서 달려들라는 요청의 문구를 새겨 놓은 한 무더기의 나무더미와 온갖 잡다한 물건들을 핏빛의 액체 속에다 담가 놓은 큰 유리 탱크와 장례의복을 입고서 큰소리로 외설적인 시를 낭송하고 있는 어린 소녀를 보기 위해서, 공중변소를 통하여 전람회장으로 들어갔다. (5)

  물론 이것은 극단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1982년에 대흥행을 기록한「장벽The Wall이라는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손가락 사이로 면도칼을 움켜쥐고 그의 눈썹을 깎아 버리고 그의 가슴에 달린 젖꼭지를 잘라내는 장면이나, 피바다가 된 수영장에 떠 있는 주인공의 모습을 본다면 아마도 그보다 훨씬 더 큰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러한 것들은 오늘날 문화의 바람이 어느 곳으로 불고 있는가를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는 ‘기상관측용 풍향계’이다. 그리고
그 풍향계가 가리키고 있는 방향은 옛 가치들을 백지화시키고 침식하고 있는 방향이다. 어떠한 행동이든 그 행위를 심판할 수 있는 길잡이가 요즈음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들이 길잡이 없이 그저 지나가고 있다.
HanSaRang 註. ─28 네 조상들이 세운 옛 지계표를 옮기지 말라. 16 가 이같이 말하노니 “너희는 길에 서서 보고 옛 길, 그 선한 길이 어디 있는지 물어 그곳으로 걸어가라. 그리하면 너희가 너희 혼들을 위하여 쉼을 얻으리라.” 하였으나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는 그곳으로 걸어가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17 내가 또한 너희 위에 파수꾼들을 세우고 말하기를 “나팔 소리에 귀기울이라.” 하였으나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는 귀기울이지 않겠노라.” 하였느니라. 15 이는 내 백성이 나를 잊었고 그들이 헛된 것에 분향하였고 그들이 그들로 옛 길에서부터 그들의 길에서 넘어지게 하였으며 닦지 아니한 길 그 길로 가게 하였고』(잠언 22:28┃예레미야 6:16, 1718:15).
  
“우리의 문화는 무너져 버리고 있다”라고 작가인 ‘H. R. 루크마아커’(H. R. Rookmaaker19221977)는 그의 저서《현대 예술과 문화의 죽음Modern Art and the Death of a Culture에서 말하였다. 그리고 그는 또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만일 여러분이 이 사실을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면,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고, 현대 서적들을 읽고, 현대 화랑에 가서 전시품들을 관람하고, 우리 시대의 음악을 들어 보도록 하십시오. (6)

  요즈음 젊은이들이 즐겨 듣고 좋아하는 음악들만 보더라도 분명히 오늘날의 청소년 세대들이 ‘비이성적인 새로운 이데올로기’ 속에서 재생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 수가 있다.
  루크마아커가 논평하고 있는 바와 같이, 오늘날의 록음악은
“전적으로 비이성적이며, 쿵쿵 두드려대는 리듬과 고함을 지르듯 외쳐대는 큰소리 등으로 가득 차 있으며, 그들의 가사 내용이나 끊어 치는 리듬 등은 모든 서구적 가치들을 모독하는 분노로서 가득 차 있다... 그들의 저항과 반항은 그들의 음악 그 자체와 그들의 언어 속에 가득 차 있다. 따라서 그러한 젊은이들의 음악이 모두 다 저속한 것들뿐이며 더 이상 즐길 만한 것이 못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그들의 음악을 영원히 외면해 버리는 것이다.”(7)
  미국 현대음악의 상당부분, 특히 펑크록(punk-rock)과 새로운 파장의 소리 등은 20세기 초반의 다다이즘과 놀라울 정도로까지 유사한 점이 많다. 한 관찰자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논평하였다.

 런던에서 펑크록 음악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나는 헤이워드 화랑에서 엄청나게 많은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Surrealism) 작품들을 감상하였다. 도심지의 이 쪽과 저 쪽에서 일어나고 있는 두 현상들 사이의 유사성과 공통점은 놀라울 정도로 많았다. 다다이즘과 펑크 예술은 실제적으로 서로 구분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본질적으로 ‘펑크’(punk)는 거리로 뛰쳐나온 다다이즘과 같은 것으로 생각되어진다. 여러 가지 면에서 그러하다. (8)

  펑크록 음악을 하는 어떤 특정계급들은 청중들에게 일종의 나치 형태의 이데올로기를 전달해 주는 일을 그들의 목표로 삼고 있다. 실제적으로, 영국이나 미국에 있어서 몇몇 노동 계급의 십대 청소년들과 생활 수준이 비교적 낮은 하위 중산층 계급의 십대 청소년들은 교묘한 형태의 인종차별주의로서 스와스티카(Swastika나치의 자형 휘장 Hakenkreuz하켄크로이츠 )와 펑크록 음악의 ‘허무주의’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심지어는 맥켄지와 테네시와 같은 작은 소도시 지역 사회들 속에서도 이러한 현상을 발견할 수가 있다.(그리고 맥켄지와 테네시 등에서 발견되고 있는 현상들은 다른 지역에서는 그 지역의 성격을 대표하는 특성으로까지 부각하고 있다.)
  
198211월에 고등학교 학생들이 ‘나치당원 집단’으로 행세하는 현상을 목격할 수 있었다. 비록 그 학생들 중의 한 학생의 할아버지가 그들에게 히틀러의 압제 밑의 나치당원들이 얼마나 잔인하였는가를 설명하여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학생들은 오히려 현대의 나치당은 유대인들보다는 흑인들을 탄압하는 일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것이
“바로 내가 그 집단에 가입하게 된 주요 목적입니다”라고 그 학생들은 말하였는데, 이것은 바로 그들이 나치의 문헌들을 읽으면서 유대인들에 관하여 언급한 부분들을 빠뜨렸다는 사실을 암시해 주고 있다.(9)
  이러한 관점을 갖고서 다음과 같은, 펑크록 밴드인 ‘언내츄럴 액스’(
Unnatural Axe무자비한 도끼)가 부른 “청소년 군단”(Youth Corps)에 나오는 가사들을 깊이 생각하여 보기를 바라는 바이다.

 우리는 아폴리티컬(apolitical)하고, 반역사적인 집단,
    우리는 과거를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들은 확실히 변화하고 있어요.
    아리안의 문화가 지배를 하고
    줄기차게 빛을 뿜어대고 있지요...
    우리의 사상이 포효하고 있으며
    우리의 잠재력을 아무도 무시하지 못하네.
    우리는 마음속으로...
    우리는 사상을 갖고 있어요.
    당신의 사랑하는 사람을 감추는게 좋을 거예요.
    서두르세요, 시간이 없어요.
    우리는 이미 도착해 있어요, 우리는 살아남을 거예요.
    우리는 청소년 군단.
(10)

  이상과 같은 언어는 이제 또 다른 잠재적 평행선 ─ 반유대주의 사상(Anti-semitism) ─ 을 재연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반유대주의 사상과 운동이 폭발적으로 급증하여 왔다. 다음과 같은〈뉴스위크Newsweek지의 보도와 같이 “유럽 전역에 걸쳐서 유대인들을 목표로 겨냥한 사나운 폭행 사건이 급증하고 있다.”(11) 그리고 바로 미국에서도 반유대주의 사상이 부활하고 있다는 징조들이 나타나고 있다.(12)
  현재 미국의 청소년들에게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과 독일의 예술계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들과 최근에 우리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하여 일반 대중들의 전형적인 반응은 격심한 분노로써 표현되고 있다. 히틀러의 경우에 있어서는 그와 같은 대중들의 격심한 분노를 정치적 기회로 만들었다.
  예를 들어서, 히틀러는 제일 먼저 현대 예술을 비판하고 나서, 그 다음으로는 그 현대 미술을 추방하여 버렸다. 히틀러 수하의 민족주의적인 사회주의자들이 반전영화들을 추방하여 버리고 그 공백을 프레드릭 대제에 관한 작품들로 메우면서 새로운 독일 가족과 직업, 조국 등을 국민들에게 요청하였다.
(13)
  우리 나라에서는 예술과 문학에 대하여 검열을 함으로써 다만 그와 같은 도덕적 부패의 징조들에 대하여 공격을 가하는 정도의 노력만을 하고 있다. 그와 같은 정도의 노력만 갖고는 극도로 제한된 효과밖에 거두지 못할 것이다. 문학과 예술이라는 것은 다만 그 사회의 문화를 반영하며, 어느 정도는 그 사회의 미래의 방향을 지적해 주는 역할을 하는 안테나일 뿐이다.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의 ‘안테나’는 우리의 앞에 환란이 다가오고 있다고 예언해 주고 있다. 그 사회의 문화 자체를 개혁하지는 않은 채로 오직 안테나만을 바르게 하는 것으로는 히틀러가 우리에게 보여주었던 바와 같이, 타락하고 쇠퇴해 가는 멸망의 경향을 중단시킬 수가 없다는 것이 명백하게 증명되었다.

   논리정연한 세속주의

  전통적 가치로부터 멀어져 가는 움직임과 조화를 이루면서 기술적 사회(Technological Society)로 향하여 가는 움직임이 등장하였다. 우리 사회 내부에서 ‘유물론’(唯物論)이 전면적으로 확장되어짐과 더불어 이러한 움직임은 우리들에게 ‘세속주의적인 문화’를 가져다 주었다.
  미래학자인 ‘
존 나이스비트’(John Naisbitt1929)는 고도로 발달된 기술의 시대가 다가옴에 따라서, 또한 인간들이 그의 용어대로 “하이터치”(High touch감성중심접근)를 추구하게 되는 경향이 자연스럽게 등장하게 된다고 주장하였다.(14) 나이스비트는 다음과 같이 논평하였다. HanSaRang 註. ─ ‘존 나이스비트’는 동양의 기(氣)사상이 미국에서 확산되는 모습을 보고서 ‘High-touch’라는 용어로 표현한 것 같다.9 이미 있었던 것이 앞으로 있을 것이며 이미 된 것이 앞으로도 될 것이니, 해 아래 새 것이 없도다. 10 어떤 것을 가리켜 “보라, 새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느냐? 그것은 우리 앞에 있었던 옛 시대에 이미 있었던 것이라.』(전도서 1:9, 10)

아마도 가장 강력한 기술적 침입은 텔레비전의 침입이었을 것이다. 텔레비전은 라디오나 전화 등과 같은 것보다도 훨씬 더 생생하고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다. 우리들이 최초로 텔레비전이라는 고도의 기술의 산물을 소개한 것과 거의 같은 시기에, 우리들은 집단치료요법 운동을 창조하여 냈으며, 이것은 또 개인적인 성장운동을 도출하여 냈으며, 이번에는 또 그것이 인간의 ‘잠재력 개발운동’을 도출하였다.〔명상수면인 T.M.(초월명상Transcendental Meditation)과 요가와 선(禪) - 등등과 같은 고도의 기술을 확립하였다.〕텔레비전과 인간의 잠재력 개발운동은 거의 동시적으로 병행되어 발달하였다... (15)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인간은 거의 직관적으로 사회의 기술적 이상의 것을 추구하고 있다. 그것은 변함이 없이, 인간 이상의 것, 즉 ‘영적인 것’을 접촉하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인 것이다. HanSaRang 註. ─ 인간들 스스로가 ‘인간은 영적인 존재’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증명해 나가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서도 왜? 성경에 기록된 진리의 말씀은 거부하는가? 우주 먼지로부터 우연히 생명이 생겨나서 인간으로 진화되었다고? 제발, 자신을 속이지 말라! 진화론은 ‘유물론적물질주의적’ 이론일 뿐이다. 인생에게 영적인(spiritual) 교훈과 가르침을 눈곱만큼도 제시해 주지 못하는 쓰레기 상상이론일 뿐이다! 인류의 역사를 공부해보면 진화론은 거짓이론이라는 것이 쉽게 결론 나는데, 왜? 아직까지도 그런 쓰레기를 붙잡고 있는가, 어리석은 인간들이여! 하나님께서 기록하시고 인류에게 남겨주신 그분의 말씀(The WORD of God)으로 돌아가라! 성경에서 벗어난 영적추구는 ‘악한 영어둠의 영들’과의 접촉일 뿐이다. 거기에는 생명이 없고 파멸과 심판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따뜻한 마음, 관심, 배려, 사랑, 용서, 인내, 믿음, 소망, 기쁨, 행복, 은혜, 감사, 환희, 영원한 생명, ‘영ㆍ혼ㆍ몸’, 삼위일체 하나님, 천사, 마귀, 구원, 심판, 낙원, 지옥,,, 진화론에 이러한 가치들과 지식들이 들어있는가? 한 가지도 없다. 인간은 이러한 영적 가치들로 인해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가! 그러면서도 왜 거짓된 상상을 추구하는가! 어리석은 인간들이여! 제발 정신 차리고, 볼 수 없는 눈에 안약을 발라 보게 할지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자기들의 지식 가운데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니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림받은 마음에 내버려 두시어 온당치 아니한 일을 하게 하셨도다.』(로마서 1:28)『내가 너에게 권고하노니 내게서 불로 단련된 금을 사서 부요하게 되고, 흰 옷을 사서 입음으로 너의 벌거벗은 수치를 드러내지 않게 하며, 또 안약을 네 눈에 발라 보게 하라.』(요한계시록 3:18)
  비종교적 도덕론세속주의는, 본질적으로 ‘종교적인 존재로서 창조된 인간’들이 필요로 하는 필연적인 영적 측면을 인간들에게 제공해 줄 수가 없다. 그리하여 수많은 미국인들이 인간의 잠재력 개발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고서 인간 스스로가 ‘신’(神)과 같이 무한한 가능성을 발달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이 운동의 바닥에 깔려 있다. 이것은 바로 1982년을 상징하는 대표적 영화인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의 배후에 깔려 있는 탄원의 함성이기도 하다.
  그와 똑같은 사상이 수많은 형태의 ‘동양적 영성’(靈性)에서 표현되어지고 있다. 동양의 종교 지도자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불교 신도들과 승려들과 참선을 하는 사람들은 신(神)에 의지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은 자신들의 모든 종교적 힘을, 모든 종교의 중심이 되는 위대한 중심적 진리, 즉 신(神)도 인간으로부터 진화되어 나왔다는 중심적 진리에다 모두 경주하고 있는 것이다.”(16)
  좀 이상하게 생각될는지 모르지만, 실제로 이와 같은 철학은 세속주의와 반대되는 경향을 띠고 있는 것들이 아니다. 이에 대하여 ‘브룩스 알렉산더’(
Brooks Alexander)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세속적인 휴머니즘은 그 자체를 모든 종교가 지니고 있는 초자연력론(超自然力論)과 ‘부조리’(irrationality)에 정반대되는 것으로 규정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그것은 동양적 영성(靈性)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가설들을 근거로 하여서 움직이고 있다... 세속적인 휴머니즘은, 집산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으로, 인간성을 삶의 가치와 의미의 근원으로 간주하고 있다. (17)

  따라서 생명은 오직 인간의 견지에서, 또는 인간의 집단적이고 대중적인 인간성의 견지에서만 중요한 의미를 지닐 뿐이다. 이 말은 곧 인간은 그 자신의 입법자 ─ 즉, 그 자신의 신(神) ─ 이라는 뜻이다. ‘베르너 에르하르트’(Werner Erhard1935)는 인간의 잠재력 개발운동의 지도자로서, 그의 동양철학을 요약하면서 다음과 같은 극단적인 원칙을 철저하게 강요하고 있다.

「 생명의 법칙 」

─ 베르너 에르하르트 ─

① 생명에는 법칙이 없다.
② 오직 하나의 법과 하나의 절대성만이 존재한다.
     생명에는 법칙이 없다. 다만 개인이 결정한 법칙은 예외로 할 뿐이다.

  ‘조셉 스탈린’(Joseph Stalin18791953)도, 그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많은 희생을 치르지 않아도 되며, 오직 약간의 희생만을 치르고서도 그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그의 의견을 발표하면서 이와 같은 철학을 주장하였다. 그의 이 말은 곧 사람들을 죽이고 불구자로 만들며 강제수용소에 강제로 집단수용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세속주의의 옹호론자들은, 인간의 ‘영적’(靈的
spiritual)인 측면을 인식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최근 수년간 인간의 종교적 차원을 긍정하지 않기 위하여서 인간의 종교적 본질을 부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보편적인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서 종교에 손을 대기 시작하였다.
  세속주의자들은(초월적이고 선험적인 명상과 점성술 등과 같은)동양적인 종교 요소들에 손을 댐으로써 그와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세속주의는 이제 한편으로는 그 자체의 존재를 위협하지 아니하는 몇 가지 종교적 형태들을 받아들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의 종교를 부정하고 있는, 광대무변한 존재로 되었다.
HanSaRang 註. ─ SF 영화 ‘스타워즈’에는 동양사상에서 추구하는 우주의 신비적인 힘(氣Force)이 표현되어 있다. 성경적으로 보면 이것은 더럽고 불결한 ‘악한 영들’과 관계된 것임을 쉽게 분별할 수 있다. 요즘에는 교회뿐만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영성’(靈性)을 들먹거리지만 그것들은 성경(The WORD of God)을 바탕으로, 즉 진리에서 나온 것이 아닌 ‘거짓되고 사악한 영들’에게서 나온 것들이다. 이단적이고 신비주의적이고 사탄적인 “뉴-에이지New-age” 사상이 기독교계에 침투하여서 영적인 많은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세상에 속한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없기 때문에 분별하지 못하고 미혹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가지고도 거짓된 것들을 분별하지 못한다는 것은 얼마나 애통한 일인가! Jessie Penn-LewisWar on The Saintsː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갖고 있어야 할 책이다. 악한 영들의 속이는 역사들을(마귀 들림, 영적 체험,,,) 철저하게 분석한 책이다. 국내에서도 여러 출판사를 통하여 출간되었다.
  그러한 것의 한 예로서 우리는《과학요람Science Digest에 실린, “후천적인 창조적 재능호흡조절로 여러분의 두뇌에 신선한 자극을”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들 수가 있다. 이 글의 저자는 그 기사를 통하여서 힌두교의 요가 호흡기술이 정신적 기능을 향상시키는 좋은 방법이라고 극구 칭찬하였다. HanSaRang 註. ─ 올바른 영적지식과 분별력이 없는 선생들이 초등학교에 이런 거짓되고 악한 것들을 도입하여서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악한 영(마귀)과 교제하도록 만들고 있다. ‘뇌호흡,’ ‘명상,’ ‘요가,’ ‘단전호흡’ 등으로 불리는 것들이다. 도대체 이런 가증한 쓰레기들을 도입하는 선생들은 누구인가? 모두가 뉴-에이지 신비주의 사상에 심취한 자들이 아닌가! 선생이라는 자들이 더럽고 불결한 악한 영들과 관계된 것을 왜 아이들에게 가르치려 하는가! ‘공산주의’라는 무기는 너무나 낡아서 이제는 ‘새로운 무기’로 우리의 아이들을 파멸로 몰아가려는가!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참과 거짓, 빛과 어둠, 선과 악을 바르게 분별할 수 있는 분별력을 달라고 더욱 간구하고, 우리의 아이들을 올바른 진리의 길로 이끌어 주어야 할 것이다. ─ “구원이 없는 교육은 쓰레기이다!”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참교육’을 들먹거리는 자들은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정신세계가 ‘공산주의사회주의’ 바이러스에 오염되고, 어둠의 영들에 미혹된 자격없는 교사들! 제발 정신을 차릴지어다!
  고대 중국과 이집트와 힌두교의 문헌들을 그 증거로 내세우면서 그 기사의 저자는 다음과 같은 관찰기록을 제시하였다.
“호흡조절이야말로 요가 수도자들이 실시하고 있는, 손발의 가수면 상태에서 전신의 가수면 상태, 즉 산송장과 같이 되는 상태에 이르기까지의, 놀라운 묘술들에 입문하는 핵심일 것이다.”(18)
  이제 세속주의는 인간에게 참된 진리 구조를 제공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인간들이 그러한 사실을 믿든지 믿지 않든지,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그리고 인간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그의 천부적인 영성(靈性)과 종교성(宗敎性)에 적합한 구조를 갈구하게 될 것이다.
  이상의 사실들은 곧 오늘날 다양한 이교도적 예배의식들이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로서 설명될 수 있다. 그러한 예배의식들은 인간들이 몹시 필요로 하는 구조를 제공해 주고 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현재 인간들에게 제공되고 있는 그러한 예배의식은 강압적이고 위압적인 것이다.
  그와 같은 이교도의 예배의식들은 강제적인 노동과 가혹한 매질, 그들 자체의 패각추방(
貝殼追放Ostracism)과 자체내의 투옥 등을 통하여 엄청난 규율과 훈련을 요구하며 창조해 낸다. 정신의학자이며 뉴저지 의과대학의 교수인 ‘수크데오’(H. A. S. Sukhdeo)는 존스타운에서의 대참살 사건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과 인터뷰를 하고 ‘인민사원’의 신도들의 기록을 읽고 난 뒤에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우리 사회는 너무나도 자유롭고 관대하며, 국민들은 너무나도 많은 선택의 기회를 갖고 있다. 그래서 이제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의 결정을 효율적으로 내릴 수 없게 되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결정을 내려 주고 그들은 다만 그 결정에 따르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19)

  그의 딸과 그의 전 부인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짐 존스를 따라서 가이아나의 존스타운에서 함께 죽었던 ‘쉬린 해리스’는 그 딜레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요약하여 말하였다. “이것은 곧 오늘날의 일부 미국인들이 우리의 생활에다 특정한 구조조직을 이입시키기 위하여 어떠한 특정대상에다 그들 스스로를 복종시키고 있다는 훌륭한 증거입니다.”(20)
  끝으로,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속주의가 아무런 비전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바로 어른들이 극장에 앉아서이.티.E.T.」,「불의 전차Chariots of Fire」,「간디Gandhi등과 같은 종교적 성향의 영화를 보고 정서적으로 깊은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비록 청중들이 불유쾌한 인물로 묘사된 주인공들의 가치체계가 결코 달갑지 않은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일지라도 역시 마찬가지인 것이다.
  예를 들면,
「불의 전차Chariots of Fire에 등장하는 기독교인인 ‘에릭 리델’의 종교적인 신앙관과 행동 등은 우리 시대의 물질주의적인 사고와 행동과는 전적으로 대립되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만일 실제 생활을 해나가는 가운데서 리델과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그를 추방해 버렸을 많은 사람들이, 영화 속에 나오는 그의 생활과 자신들의 생활을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비록 이러한 것은 모순되는 현상이기는 하나, 한편으로는 하나님에 대한 개인적인 신앙을 갖고 있지 않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오직 창조주이신 하나님만이 주실 수가 있는 영성(靈性)을 갈구하고 있는 현대인들의 딜레마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사람들은 또, 비록 그것이 ‘
조지 루카스’(George Lucas) 감독의별들의 전쟁Star Wars에 나오는 신비적 형태의 “힘”(Force)으로 나타나는 것일지라도, 영적인 것에 손을 뻗치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힘”(Force)은 세속주의의 “무”(無nothingness)보다는 나은 것이다. 불행하게도 영적인 차원에 대한 인간들의 갈구가 종종 그릇된 예배의식이나 신비적 영적체험 등에 의하여 채워지는 경우가 많다.

   신비한 정부

 〈SCP 저널SCP Journal지에 실린 한 기사를 통해서 편집자인 ‘브룩스 알렉산더’(Brooks Alexander)는 “세속주의와 동양적 종교의 융합 현상이 지속되어지고 있음에 따라서, 논리정연한 세속주의가 앞으로도 점점 더 그 자체의 이데올로기를 엮어서 서구의 사상적 조직으로 형성해 갈 것이며, 또 이러한 것들이 점점 더 사물을 바라보는 보편적 방식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라고 논평하였다.(21)
  그리하여 논리정연한 세속주의는 더욱더 기만적인 것이 되었다. 그렇지만, 이미 우리들이 관찰하여 온 바와 같이, 이러한 것은 최근의 예술이 형성되고 있는 곳에서, 실제적으로 현재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나타내 주는 안테나로서의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이다.
  논리정연한 세속주의가 등장함으로써 발생하게 되는 진짜 위험은 그 자체의 기만성으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부기관들에 의하여 그러한 세속주의가 받아들여지고 있다는데 더 큰 위험이 있다.
  하버드 대학의 교수인 ‘하비 콕스’(
Harvey Cox)가 말한 것처럼, 세속주의는 그의 이데올로기를 영속화시키기 위해서 정부기관들을 이용하게 될 거이다. 콕스 교수가 논평하고 있는 바와같이, 그것은 “밀착된 체제”이며 앞으로 활발하게 다른 종교체제들을 억압하게 될 것이다.(22)
  우리들은 공공장소로부터(공공학교 등과 같은) 기독교의 어떤 특정 국면들이 심한 공격을 받으면서 제거되고 있는 현상들과 언론매체들이 기독교인들과 기독교 신앙을 거의 조직적으로 비방, 경멸하고 있는 현상들을 통하여 이와 같은 일들을 보아 왔다.
  그런데 이보다도 더 위험스러운 것은, 바로 ‘신비주의’(
오컬티즘Occultism)가 실제적으로는 그 논리적 결론을 취함에 있어서 ‘논리정연한 세속주의’와 동일하다는 점이다.(23) 세속 정부인 나치 독일은 결과적으로 신비주의에 빠져 들었다. ‘더스티 스카일라’(Dusty Skylar)는 그의 저서《신과 짐승들나치와 신비주의God and Beasts Nazis and the Occult를 통해서 히틀러의 몰락으로부터 나치 통치시대의 지도자들의 신비주의적인 행동들을 증언하고 있다.(24)
  적어도 약
30여년 이상, 또 다른 형태의 군사적인 세속적 정부인, ‘소비에트 공화국’(USSR)은 신비스런 현상에 대한 연구를 하는 주요한 연구사업에 대해 많은 재정적 지원을 해주었다. 그러면 어떠한 종류의 연구들이 현재 재정 지원을 받고 있는가?

물질을 움직이는 정신력(염동작용念動作用telekinesis), 텔레파시, 초감각적(超感覺的)인 지각능력(知覺能力)... 천리안적인 통찰력 등에 관한 연구들이다. 그리고 최면상태를 도입한 영혼환생, 예지(豫知), 아우라(aura최면술사의 손끝에서 나오는 영적기운), 예언, 점성술 등에 관한 연구들이 재정지원을 받고 있다. (26)

  그러면 이러한 일들이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바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미국 사회와 미국 정부가 나아갈지도 모르는 방향에 대하여 미리 시사해 주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의 실패

  세속주의는 종국적으로 생명이 없는 이상이다. 세속주의는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나 또는 가치와 존엄성을 지닌 인간에 대한 믿음을 전혀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체스터튼’(G. K. Chesterton18741936)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인간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갖지 못할 때에, 인간은 아무것도 믿지 않고 있다는 것이 아니다. 그는 모든 것을 믿는 것이다.” HanSaRang 註. ─『우매한 자는 온갖 말을 믿으나, 총명한 사람은 자기의 걸음을 살피느니라.(잠언 14:15)
  바로 이와 같이 되도록 현대 기독교는 우리 사회를 내버려 두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현대 기독교는 현대 교회들로 하여금 현대 정부 앞에서 무기력하게 굴복하도록 내버려 둔 것이다.
  이제 다시 우리는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어내는 중요한 일을 하여야 한다. 콘웨이(
J. S. Conway)교수는 나치 정부에 대하여 연구를 하면서 교회가 히틀러의 통치에 대하여 충분한 저항을 하지 못하게 된 것에는 다음의 네 가지의 요소들에 가장 중요한 책임이 있다고 했다.
  그 첫 번째는 깊이 뿌리박힌 경건주의의 전통이다. ─ 즉 뿌리깊은 종교적 신앙과 외부세계와의 단절이 첫 번째 원인이다.
(27) 그리고 이러한 것은 또 부분적으로 나치 통치 직전의 독일 사회에 만연하고 있었던 ‘자유주의적 신학사상’ 과 ‘고도의 성경 비평’에도 책임이 있다. 이러한 신학과 비평은 성경의 권위에 도전하고 그를 훼손시키고 성경에 대한 믿음을 파괴시키는 성향을 지녔으며, 그에 따라서 성경과 외부세계와의 연결, 외부 세계에 대한 성경의 적용 등을 더욱더 어렵게 만들었다.
  자신들의 종교적 충성을 개인의 구원이라는 소극적 목표에만 제한하여 집중시키는 많은 기독교인들의 경향은 물론 신실하고 헌신적인 생활을 낳게 하였다. 그렇지만, 그들이 자신들의 기독교 원칙들을 정치적
사회적 생활에 적용시키지 못함으로써, 그들은 그들의 “신앙”에 의하여 생활에 구속을 전혀 받지 않는, 세속주의와 휴머니즘의 옹호자들로 하여금 정부를 통치하고 지배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시대의 정치적, 도덕적 문제들에 대하여 기독교인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추세로 되었다.(28)
  두 번째로, 독일인은 그 당시에 존재하던 정치적 질서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며 정부에 대하여 맹목적으로 충성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29) 콘웨이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교회 성직자들은 나치 통치자들에 대하여 일종의 환상을 갖고 있었으며 그러한 환상은 무서운 결말을 가져온 뒤에까지도 계속되었다... 그리고 이웃 국가들에 대한 침공도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고귀한 권력”이라는 전통적 개념으로서 설명되어질 수 있었다 ─ 또는 교묘히 변명되어졌다.
  독일 교회는 독일의 정치적 지배자들의 행동에 대하여 그 어떠한 비판적 공격을 가할 수 있는 신학적 무장이 되어 있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이유로 인해서, 심지어는 나치통치 시대의 종말에 이르러서도 다만... “마지 못해 흉내만 내는 정도의 소극적 저항”만을 하였을 뿐이다. 
(30)

  세 번째로, 일부 독일 교회의 성직자들은 나치 정부가 민족의 재생과 민족의 정신적 생명의 부활을 요구하였을 때에 자진하여서 나치와 운명을 같이 하기로 결정하였다. 개신 교회들과는 달리, 카톨릭 교회는 나치당에 공식적으로 반대를 하는 정책을 택하고 그에 따랐다. HanSaRang 註. ─ 히틀러는 로마카톨릭 교도가 아니었던가. 뒤에서는 나치 정부와 결탁을 했던 일은 역사적 사실이 아닌가. 그렇지만 카톨릭 학생연맹은 다음과 같은 선언문을 1933715일에 발행하였다.

우리 카톨릭 학생연맹은 민족적 사회주의 혁명을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획기적인 정신적 진전으로 간주하며 환영하며 맞아들이는 바이다. 제3공화국의 이상을 스스로 체현하여 실현하고 널리 보급시키는 일이야말로 바로 우리 카톨릭 학생연맹의 운명이며 의지이다... 그러므로 이에 우리 카톨릭 학생연맹은 자발적으로 민족적 사회주의 정신의 지도를 받을 것이다... 오직, 혁명을 완수함으로써 등장한, 강력한 민족적 사회주의 정부만이 우리 문화를 다시 기독교화시켜 줄 수 있는 유일한 정부이다.
  카톨릭 학생연맹 만세! 위대한 독일공화국 만세! 우리의 총통 아돌프 히틀러 만세! 
(32)

  이와 같은 종류의 웅변적 문장은 바로 정부에게 교회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하여 달라고 요구하는 간청의 소리가 된다 ─ 즉 교회가 하지 못한 정신적 부활을 정부에 요청한 것이다.
  정신적, 영적 부흥과 부활에 대한 희망을 교회로부터 정부에 넘겨주게 됨으로써 기독교인들은 정부와 독일 민족주의와 그 자신을 밀접하게 동일시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바로 이로 말미암아서 히틀러는 이제 독일 교회를 좀 더 쉽게 다룰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네 번째로 콘웨이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근본적으로 보수적인 독일 교회의 시각으로 말미암아서... 그들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아니하고 나치 사상이야말로 공산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라고 받아들였다.”(33)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나치 사상이 보수적인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독일 교회는 나치 사상으로 기울어졌던 것이다. 그렇지만 보수적인 것으로 통칭되어지는 철학이라고 하여서 반드시 다 기독교적인 것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바로 그와 같은 근본적 이유들로 인해서 독일 교회는 일반적으로 나치 사상의 도도한 흐름을 저지하지 못한 것이다. 독일 교회는 거의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으면서 마치 죽은 자의 무덤과도 같이 침묵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정부에 대한 반항도 참견도 간섭도 아무것도 아니었다.
  진리를 억압하는 사람들은 교회가 결코 그들의 행위에 대하여 간섭하지 아니하기를 바란다. 독일의 나치당원인 ‘
조셉 괴벨스’(Joseph Goebbels18971945)는 이렇게 말하였다. “정치에 손을 대고 있는 교회 성직자들은 이제 그들의 유일한 사명은 곧 세계의 장래를 예비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명실할 필요가 있다.”(34)
  너무나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비록 그의 충고를 알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괴벨스의 충고를 받아들여 왔다. ‘윌리엄 바클레이’(
William Barclay19071978)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침묵을 지키고 있는 교회를 세상이 좋아할 리가 없다.”(35)

   정부 숭배

  인간은 불가항력적으로 그가 숭배하는 ‘신’(神) 을 닮게 된다. 현대인들이 실제적으로 세속적인 정부를 숭배하기에 이르자 오늘날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무수한 비인간적인 잔학행위들이 판을 치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자크 엘룰’(Jacques Ellul19121994)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오늘날 교회가 상실한 것들을 정치정당, 또는 적어도 그와 같은 이름으로 불릴 자격이 있는 존재들이 발견해 내고 있다. 획득 가능한 목적에 대한 믿음 ─ 정치적인 방법에 의하여 ─ 이룰 수 있는 사회질서의 개선, 정당하고 평화적인 체제의 확립 등에 대한 믿음이 지극히 심원한 것이며 우리 사회를 특징 지우는 새로운 특성임을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리고 이와 같은 믿음은 다만 기독교인들의 질투를 유발시킬 수 있을 뿐인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가치들을 구체화시킨다.
  그들이 그 얼마나 헌신적인가를 살펴보시오. 그들이 그 얼마나 희생적으로 충만한가를 살펴보시오. 이러한 것들이 정치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을 열광시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형식으로 이제 국가는 국가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수백만의 국민들의 덕분으로 하나의 숭배대상이 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국가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겠다고 한 것은 사실이다.(실제로 그들이 목숨을 버렸는지는 의문이지만)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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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W. 화이트헤드/『 미국을 훔치는 자들ː제4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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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목록

  【  온라인 번역기

(1)B. F. Skinner,Beyond Freedom Dignity(New York Knopf, 1971), p.180.
(2)「 Humanism as used in this book does not refer to humanitarianism or the study of the humanities. The term, used here in its “wider, more prevalent way means Man beginning from himself, with no knowledge except what he himself can discover and no standards outside of himself. In this view Man is the measure of all things, as the Enlightenment expressed it.” 」
Francis A. Schaeffer,A Christian Manifesto(Westchester, ILCrossway Books, 1981), p.24.
(3)「 Secularism is the belief that morality is based solely in regard to the temporal well-being of mankind to the exclusion of any belief in God, a supreme being, or a future eternity. It is the view that consideration to the present well-being of mankind should predominate over supernatural or religious considerations in political affairs. 」James Hitchcock,What Is Secular Humanism?(Ann Arbor, MISerbant Books, 1982)
(4) Leonard Peikoff,The Ominous ParallelsThe End of Freedom in America(Briarcliff Manor, NYStein and Day, 1982), p.182.
(5)Ibid.
(6)H. R. Rookmaaker,Modern Art and the Death of a Culture(Downers Grove, ILInterVarsity Press, 1970), p.220.
(7)Ibid., p.188190.
(8)Glen O’ Brien, “Notes on the Neon Nihilists”High Times(November 1980), p.56.
(9)Laura Coleman and David Waters, “Controversy Over Nazis Raises Fears,”The Commercial Appeal(November 17, 1982), p.A-1.
「 One should not be shocked at the influx of Nazi ideas in this country in light of recent research which indicates that many Nazis, some of whom were known murderers, were brought into this country during and after World War II by the United States government. 」
John Loftus, The Belarus Secret(New York:Knopf, 1982)
(10)Spencer Vibbert, “Punk, Boston Style,”Boston Globe Magazine(March 2, 1980), p.8.
(11)“Europe’s Anti-Semitism,”Newsweek(August 23, 1982), p.35.
(12)Alison Muscatine, “Cross-Burnings, Anti-Semitic Acts Increasing Here,”Washington Post(November 22, 1982), p.A-1.
(13)Kevin P. Phillips,Post-Conservative America People, Politics, and Ideology in a Time of Crisis(New YorkRandom House, 1981), p.159.
(14)John Naisbitt,Megatrends메가트랜드Ten New Directions Transforming Our Lives(New YorkWarner Books, 1982), p.40.
(15)Ibid.
(16)Swami Vivekananda,Inspired Talks(New YorkRamakrishna Vivekananda Center, 1958), p.218.
(17)Brooks Alexander, “The Rise of Cosmic Humanism What Is Religion?,”SCP Journal(Winter 198182), p.2.
(18)Dina Ingber, “Brain Breathing,”Science Digest(June 1981), p.111. 》《 Mary Long, “Visions of a New Faith,”Science Digest(November 1981), p.36.
(19)Alvin Toffler,The Third Wave(New YorkMorrow, 1980), p.391.
(20)Ibid., p.392.
(21)Op. cit., Alexander, p.4.
(22)Harvey Cox,The Secular City(New YorkMacmillan, 1965), p.18.
(23)Op. cit., Alexander, p.2. 》 
(24)Dusty Skylar,God and Beasts Nazis and the Occult(New YorkCrowell, 1977)
(25)Gary North,None Dare Call It Witchcraft(New Rochelle, NYArlington House, 1976), pp.4349. 》《 Sheila Ostrander and Lynn Schroeder,Psychic Discoveries Behind the Iron Curtain(New YorkBantam Books, 1970)
(26)Op. cit., North, p.44.
(27)J. S. Conway,The Nazi Persecution of the Church, 193345(New YorkBasic Books, 1968), p.334. 》 
(28)John W. Whitehead, “The Boston Tea Party 1982?”Christianity Today(November 12, 1982), pp.2830.
(29)Op. cit., Conway, p.335.
(30)Ibid.
(31)Francis A. Schaeffer,A Christian Manifesto(Westchester, ILCrossway Books, 1981) 》《 John W. Whitehead,The Second American Revolution(Elgin, ILDavid C. Cook, 1982) 》《 Franky Schaeffer,A Time for Anger(Westchester, ILCrossway Books, 1982)
(32)Peter Matheson,The Third Reich and the Christian Churches(Grand Rapids, MIEerdmans, 1981), pp.26, 27.
(33)Op. cit., Conway, p.336.
(34)
William Barclay,The Ten Commandments for Today(Grand Rapids, MIEerdmans, 1973), p.94.
(35)Ibid.
(36)Jacques Ellul,The Political Illusion (1967)(New YorkVintage Books, 1972), p.21.

   The Stealing Of America
         (원제ː미국을 훔치는 자들)
     by
     John W. Whitehead

     Copyright ⓒ 1983 by John W. Whitehead
     Published by Crossway Books
     All rights reserved.
     
1985VOICE Publishing Company.
     Seoul, Korea.

4장ː전통적 가치의 상실
                  ─ 논리 정연한 세속주의의 등장 】

Bible believ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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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Divide)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 』(디모데후서 2:15)

【  그림 묵상

『 그러므로 주께서 기다리시리니 이는 그가 너희에게 은혜로우심이요, 그러므로 그가 높임을 받으시리니 이는 그가 너희에게 자비를 베푸시려 함이라. 주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니 그를 기다리는 자들은 모두가 복이 있도다. 』(이사야 30:18)

(이사야 30:18
그러므로
께서 기다리시리니 이는 그가 너희에게 은혜로우심이요, 그러므로 그가 높임을 받으시리니 이는 그가 너희에게 자비를 베푸시려 함이라. 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니 그를 기다리는 자들은 모두가 복이 있도다.

(Isaiah 30:18)
And therefore will the LORD wait, that he may be gracious unto you, and therefore will he be exalted, that he may have mercy upon you: for the LORD is a God of judgment: blessed are all they that wait for him.

『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Divide)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 』(디모데후서 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