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 30. 00:06

“ 두 가지 휴거 ” (성경적 종말론)

(성경적 종말론) [20090130] ● 두 가지 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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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께 영광을ㆍGLORY TO THE LORD 】

● 두 가지 휴거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라. (시편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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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 ○ 보라,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신비를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오히려 우리가 모두 변화될 것이니 52 마지막 나팔 소리에 눈깜짝하는 순간에 그러하리라. 나팔 소리가 나면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하는 몸으로 일으켜지며 우리도 변화되리라. 53 그리하여 이 썩을 몸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몸을 입고 이 죽을 몸이 반드시 죽지 아니할 몸을 입으리라. 54 이 썩을 몸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또 이 죽을 몸이 죽지 아니함을 입게 되면 그때 “사망이 승리 속에 삼킨 바 되었느니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고린도전서 15:51∼54)

(고린도전서 15:5154)

51 ○ 보라,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신비를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오히려 우리가 모두 변화될 것이니 52 마지막 나팔 소리에 눈깜짝하는 순간에 그러하리라. 나팔 소리가 나면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하는 몸으로 일으켜지며 우리도 변화되리라. 53 그리하여 이 썩을 몸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몸을 입고 이 죽을 몸이 반드시 죽지 아니할 몸을 입으리라. 54 이 썩을 몸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또 이 죽을 몸이 죽지 아니함을 입게 되면 그때 “사망이 승리 속에 삼킨 바 되었느니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

  성경대로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알다시피 신약에서 가장 어려운 3가지 책(교리적으로 말하자면)은〈마태복음사도행전히브리서〉입니다. 이 책들은 “전환기적인 책들”로, 이 책들에서 성경의 교리들이 바뀌며 점진적 계시가 일어납니다.〈마태복음〉은 교리적으로 구약(마태복음 126장)에서 신약(마태복음 27장┃히브리서 91517)으로 넘어갑니다.〈사도행전〉은 이스라엘에서 교회시대로 넘어갑니다.〈히브리서〉는 교회 시대에서 다니엘의 칠십째 주로 넘어갑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계시가 점진적으로 발전한 것입니다. ( 필자의〈마태복음 주석서〉,〈사도행전 주석서〉,〈히브리서 주석서〉를 참조하십시오.)
  이
“점진적 계시,” 혹은 “향상된 계시”는 성경이 완성된 이후에도 이루어집니다. 그렇다고 성경이 완성된 이후에 어떤 다른 기록들, 예를 들어 ‘몰몬경,’ ‘탈무드,’ ‘카톨릭 전통’ 등이 성경에 더 추가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향상된 계시는 정경의 완성을 확고히 합니다. 다만 성경이 완성된 이후의 점진적 계시란, 완성된 성경을 통해 성령님께서 주시는 “조명”이 더 새로운 진리들로 성도들을 인도해 준다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은 완성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점점 더 많은 진리의 보고로 인도하십니다. 예를 들어 루터(Martin Luther14831546)가 종교개혁을 해서 카톨릭의 거짓 교리들을 벗어나 새로운 진리의 빛을 조명받았습니다. 하지만, 루터가 교리적으로나 신학적으로 모든 것들을 다 알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는 한 걸음 나아갔을 뿐입니다. 그 이후에 스코필드(C.I. Scofield18431921)가 나와서 더 많은 진리의 빛을 보았지만, 그 역시 모든 것을 안 것은 아니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그 이후의 성도들에게 더 많은 진리의 빛을 비추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점진적 계시,” 또는 “향상된 계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향상된 계시는
“최초의 원본”에 있는 것이 아니며, 최초의 원본 운운하는 “학자들”에게서 발견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항상 헬라어(그리스어)니 히브리어니 문법이 어쩌니 사본이 어쩌니 최초의 원본이 어쩌니 하는 사이에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더욱이 성령님께서 어떠한 향상된 빛으로 계시하시는지에 대해서는 결코 알지 못합니다. “최고의 사본” 운운하며 킹제임스 성경뜯어 고치는 학자들이나 그들의 산물들인 NIV, NASV 등 무수한 변개된 성서들에서도 결코 향상된 계시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주장하는 “최고의 사본”은 로마카톨릭의 외경들, 즉 성경이 아닌 것들을 담고 있는 사본들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향상된 계시는 성경을 존중하고 높이고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자, 이제 우리는 로젠탈, 쳐치, 컬반, 웨버, 지미 화이트, 드와이트 펜타코스트, 어빙 가이트 등이 발견할 수 없었던 전형적인 “향상된 계시”를 살펴볼 것입니다. 이것은킹제임스 성경을 통해서 증명되는 진리들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 중 하나는,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이 찾아낸 것을 제외하고는 성령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에게 그 어떤 것도 보여 줄 수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로빈슨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습니다.

“루터교인들은 루터와 함께 멈추었고,
   칼빈주의자들은 칼빈과 함께 멈추었다.”

  게다가 배교의 마지막 시대인 ‘라오디케아 교회 시대’(A.D. 1900∼현재)에 침례교도들은 B.H. 캐롤, 죠지 트루에트, 존 R. 라이스, 리 로버슨과 함께 멈추었고, 전천년 근본주의자들은 C.I. 스코필드, 펨버, 라킨, 린드세이와 함께 멈추었습니다.
  그러나 성령 하나님께서는 진리를 계시하시는 것과 관련해서는 그 어디서도 멈추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휴거 직전까지
킹제임스 성경본문으로 진리들을 계시하실 것이며, 그 다음에는 대환란 기간에 히브리어 성경을 거쳐서 모세와 엘리야(요한계시록 11장)를 통해서 계시하기 시작하실 것입니다.
  자, 우리가
“휴거”(Rapture)라고 부르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이 단어는 라틴어로 “어떤 것을 움켜잡다,” “어떤 것을 낚아채다,” “힘으로” 갑자기 “어떤 것을 옮기다”는 의미입니다. 라틴어 어원에서 나온 이 영어 단어의 의미는 “낚아채다,” “황홀한”(넋을 잃은)입니다. 마찬가지로 “낚아채는”(rapacious, 강탈하는)이란 말도 이 라틴어 어근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삼위일체”“전천년”이라는 말처럼 “휴거”라는 말도 성경에 나타나지는 않지만, 이 단어는 갑작스럽고 격렬하게 “낚아채는” 성경적 사건을 명백하게 묘사해 주는, 분명한 성경적인 용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따르면 이 일은 부활 전에(요한복음
1125) 일어날 것이고, 살아 있는 성도들(요한복음 1126)과 죽은(무덤에서 잠자고 있는) 성도들(요한복음 1125)이 모두 휴거에 참여할 것입니다. 이와 동일한 두 부류(산 자와 죽은 자)는 ‘고린도전서’에 언급되어 있는데, 거기에는 이들에 대해 세 차례(고린도전서 155254) 언급되어 있습니다. 반면 ‘이사야 26장’에서는 한 부류, 즉 죽은 성도들만이 언급되어 있는데(이사야 2619), 욥은 자신을 이 부류로(욥기 1927) 언급합니다. 물론 이사야는 이스라엘을 말하고 있으며, 욥은 부활 후에 땅 위에(욥기 1925) 있는 그의 “중재인”(욥기 933)을 보는 이방인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자, 욥이 “땅 위에” 서 있는 구속주에 대해 말하고 있음을 주목해 봅시다.『이는 나의 구속주가 살아 계시고 훗날 그가 땅에 서실 것임을 내가 앎이라』(욥기 19:25). 영적 왕국을 다스리는, 하늘 보좌에 계신 왕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에베소서 55┃시편 1101┃다니엘 43 등). 반면 ‘요한계시록 201115’에서 그 구속주께서 서 계실 곳은 땅이 아닙니다. 땅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잠언 208, 9┃요한계시록 2011).

  구약성경에는 부활을 말하는 구절이 많이 있습니다. ‘시편 504, 5┃욥기 3715’를 ‘이사야 261921’과 연관해서 주의깊게 읽어 보십시오. 그 중 특히 ‘이사야’를 보십시오.『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리니 그들이 나의 죽은 몸과 함께 일어나리이다. 흙에 거하는 너희는 깨어서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수풀의 이슬 같으니 땅이 죽은 자들을 던져 버릴 것임이니이다』(이사야 26:19). 이것은 분명히 부활을 말하는 구절입니다. 이와 연관해서 ‘욥기 37장’에서는 “음성”“천둥”을 언급하고 있으며, ‘욥기 409’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요한복음 122830’에도 이와 관련된 매우 중요한 진리가 계시되어 있습니다.28 아버지시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옵소서.”라고 하니, 그때 하늘에서 음성이 나기를 “내가 그 이름을 영화롭게 하였고 또다시 영화롭게 하리라.”고 하시더라. 29 그때 곁에 서서 그 음성을 들은 무리가 말하기를 “천둥 소리였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천사가 그에게 말한 것이라.”고도 하더라.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이 음성은 나 때문에 난 것이 아니라 너희를 위하여 난 것이라.』(요한복음 12:2830)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부르시는 소리는 천둥같은 음성입니다. 이 진리는 성경 본문을 구절과 구절을 대조함으로써 깨달을 수 있습니다.
“더 나은 현대 역본”을 본다고 깨닫는 것도 아니요, “원본”을 본다고 깨닫는 것도 아닙니다. 많은 학자들은 “축자적 영감,” “헬라어 원본,” “가장 훌륭한 헬라어 원본들,” “최초의 헬라어 원본” 같은 것에만 연연한 나머지 이러한 진리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수년 전에 어떤 잡지에서, 제
2차 세계대전에 관한 영화에서 나온 장면을 재구성한 사진을 봤습니다. 미국 폭격기의 조종실 내부 사진이었습니다. 조종사는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고 있었으며, 조종실 지붕은 총탄 구멍으로 벌집이 나 있었습니다. 창문을 통해 엔진 하나가 불타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때 부조종사는 조종사에게 이와 같은 말을 합니다.

“이 상황이 너무 힘들다면, 우리가 이 옷걸이에서 벗어날 때까지 기다리자.”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금 옷걸이에 걸쳐져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언젠가 우리는 새로운 육신을 입을 것입니다.
  이 진리를 가리고 있는 어떤 학문과 학자라도 밀어내어 버리십시오! 아무리 훌륭한 헬라어, 히브리어 학자라도 진리에 관한 한 무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오직 거룩한 성경에 의해서입니다.
  자, 성경이 이 부활에 관해서 무엇이라 말씀하시는지 살펴 봅시다.

   ‘솔로몬의 노래’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신부를 향해 일어나 떠나자고 하십니다(솔로몬의 노래 210). 이 배경은 5월(오순절)입니다. 4개월 후에 있는 나팔절이나 장막절이 아닙니다. 또 ‘솔로몬의 노래’에서 “사랑하는 이”(솔로몬의 노래 210)는 이방인 신부이지 유대인 신부(솔로몬의 노래 15)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팔”(데살로니가전서 416┃요한계시록 41, 2)을 천사의 나팔(마태복음 2431┃요한계시록 1115)과 혼동하는 모든 성경 주석가와 예언을 가르치는 교사들은 휴거의 위치를 9월∼10월에 있는 나팔절로 정했습니다. 그것은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천사가 부는 나팔들은 대환란 때 울리지만, 하나님의 나팔”은 대환란 직전에 울립니다. 이것은 또한 “마지막 나팔”이라고도 불립니다.
  
여기서 “마지막 나팔”(고린도전서 1552)이란 여러 개의 나팔 중 마지막에 부는 나팔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나팔로 부는 마지막 “소리”를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음성, 즉 나팔 소리처럼 울리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그래서 이 음성을 하나님의 나팔”이라고 말합니다. 요한은 조심스럽게 하나님의 나팔”은 실제적인 나팔 소리가 아니라, 천둥과 나팔이라는 두 가지 소리를 내는 “음성”이라고 말했습니다(요한복음 1229┃욥기 3715┃요한계시록 412).
  
이 나팔이 울릴 때, 그것은 양들을 집으로 불러 모으는 음성입니다(요한복음 103, 4┃솔로몬의 노래 210). ‘요한계시록 11장’에서는 하나님이 아니라 한 천사가 일곱째 나팔 소리를 부는데, 그후에는 어떠한 음성도 들리지 않습니다.
  일곱째 나팔 후에도 들리는
“음성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들은 어느 누구를 불러 올리는 음성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음성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으로(욥기 1925) 내려 오시는 것, 즉 이 세상 나라들을 차지하기 위해 내려오시는 것을 선포합니다. (다니엘 235, 44, 45을 읽어보십시오.)
  
그러나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기 직전, 한 음성(“큰 음성”/요한계시록 1112)이 있어 누군가를 위로 불러 올릴 것입니다. 그 음성은 “이리 올라오라”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 41’에서도 그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같은 음성이 다니엘의 칠십째 주 끝에 누군가를 위로 불러 올립니다. 직접적으로 그 말의 대상이 된 사람은 모세와 엘리야인데, 이들은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환란 후 휴거” 때에 들림받습니다.

  저는 지금까지킹제임스 성경에서 휴거에 관련한 40 구절 이상을 제시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휴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환란 전 휴거”(pre-tribulation rapture)와 “환란 후 휴거”(post-tribulation rapture)입니다. 여기서 환란 “후”라는 것에 대해서는 ‘마태복음 2429’의 『그 날들의 환란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라는 구절을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신학자들이 마태복음에서 결려 넘어지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들은 ‘마태복음 24장’을 신약 시대의 성도들에게 적용하기 때문에 문제를 풀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424’에서『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큰 표적들과 이적들을 보여 주어, 할 수만 있다면 그 택함받은 자들도 미혹하리라.』고 할 때, “택함받은 자들”을 ‘에베소서 15’“택함받은 자”로 오해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칼빈이 한 실수입니다. 이들은 ‘마태복음 2424’이 말하고 있는 “택함받은 자”의 진정한 의미를 간과해 버리고(이사야 454659, 22┃다니엘 718, 21, 22, 25, 27), 그 “택함받은 자”가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오인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대환란 문맥인 ‘마태복음 24장’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억지로 적용되어야 하고, 그러다 보니 성경이 풀리지 않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성경을 다룰 수가 없습니다. 이들은 ‘디모데후서
215’의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공부하라”는 명령에 순종하지 않으며, “건전한 말씀의 본을 굳게 붙잡으라”는 ‘디모데후서 113’이나, “성경을 상고하라”는 ‘요한복음 539’에도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은 눈 앞에 “대환란”(마태복음 2421)이라는 말이 분명히 제시됨에도 불구하고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마태복음
251’의 “처녀들”에 대해서도 오해를 합니다. (마태복음 24장과 25장은 같은 문맥, 같은 상황임을 유의해야 합니다.) 그들은 한 무리의 “처녀들”이 그리스도와 혼인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분의 신부는 하나의 “순결한 처녀”(고린도후서 112)요, “그 어머니의 외동딸”(솔로몬의 노래 69)이라고 언급합니다. ‘마태복음 25장’을 유의 깊게 보십시오. 본문에서 이 “처녀들”은 그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습니다. 이 처녀들은 누군가와 만나기 위해 불러냄을 받았을 뿐입니다(마태복음 251). 좀 더 보십시오. ‘마태복음 253540’에서는 자신들의 행위에 근거하여 구원받는 누군가가 나옵니다.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25장’ 전체를 “행위 구원”에 맞추어 설교하고 계십니다. 여기에는 은혜의 복음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바울이 전파한 복음은(갈라디아서 1장) “영원한 불 속”(마태복음 2541)에서 죄인을 끄집어내는 데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자, 어리석은 학자들의 견해를 벗어 버리고,
킹제임스 성경을 보십시오. 다음 구절들을 살펴보고, 그 구절들의 문맥을 살펴보도록 하십시오.

(요한계시록 14:14)『또 내가 쳐다보니, 보라, 흰 구름이라. 그 구름 위에 인자와 같은 이가 앉았는데 그분의 머리에는 금 면류관을 썼고 손에는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마태복음 24:30)『그후에 하늘에 인자의 표적이 나타나리니, 땅의 모든 지파들이 통곡할 것이며, 또 그들은 인자가 권세와 큰 영광으로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리라.』

  이 구절들과 연관해서 다음 구절들을 살펴보십시오.

(요한계시록 19:11, 15)1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흰 말이 보이더라. 그 위에 앉으신 분은 신실진실이라 불리며 의로 심판하고 싸우시더라. 15 그의 입에서는 예리한 칼이 나와서 그것으로 민족들을 칠 것이요 또 철장으로 그들을 다스릴 것이며,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즙틀을 밟으실 것이라.』
(이사야 63:3, 4)3 나는 홀로 포도즙틀을 밟았고 백성 중에 나와 함께한 자가 아무도 없었도다. 나의 분함으로 그들을 밟고 나의 진노함 속에서 그들을 짓밟으리니 그러면 그들의 피가 내 옷에 튀어서 내가 내 의복을 모두 얼룩지게 할 것이라. 4 이는 복수의 날이 내 마음속에 있고, 내 구속의 해가 오기 때문이라.』
(요엘 2:13)1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고 내 거룩한 산에서 경고의 소리를 내어 그 땅의 모든 거민들로 떨게 하라. 이는 의 날(the day of the LORD)이 오며 그 날이 가까움이라. 2 흑암과 암영의 날, 구름과 짙은 어두움의 날이 산들 위에 펼쳐진 아침 같으니, 많고 강한 사람들이라. 이 같은 일은 전에도 없었고, 또 이후, 곧 많은 세대들의 연수에까지도 다시 없으리라. 3 불이 그들 앞에서 삼키며 그들 뒤에서는 화염이 불타는도다. 그 땅은 그들 앞에서는 에덴의 동산 같으나 그들 뒤에는 황량한 광야 같으니, 정녕, 어떤 것도 그들을 피하지 못하리라.』

  이 외에도 ‘재판관기 5120’와 ‘하박국 3314 등을 보십시오.
  이 두 그룹의 구절들은 모두 재림과 연관되어 있지만, 구체적인 상황은 서로 다릅니다. 뒷 그룹의 구절들은 흰 말 타고 지상에 내려오시는 재림 자체의 상황을 묘사하는 반면, 앞 그룹의 구절들은 지상 재림 전, 즉 환란 중에 나타나시는 모습으로서, 환란 후 휴거와 연관됩니다. (지상 재림 직전일지, 그보다 많이 앞설지는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분명 어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하늘
“군대들”과 함께 아마겟돈에 도착(요한계시록 19장)하시기 전, 환란 끝부분에 그분을 볼 것입니다. ( 이에 대해서는 필자의〈요한계시록 주석서〉10장 부분,〈히브리서 주석서〉928 부분을 참조하십시오.)
  이 환란 후에 특별한
“나타나심”을 보기 위해 “택함받은 자들”에게 요구되는 필수 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마음의 순결함(마태복음 58).
거룩함(히브리서 1214).
깨어 기다림(히브리서 928).

  이것은 또한 학자들에게 신학적 혼동을 일으키기에 충분합니다. 왜냐하면 이 내용들은 “부분 휴거”를 가리키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마태복음 25장’은 부분 휴거를 말하고 있습니다(마태복음 25713). 하지만 이 교리는 은사주의자들에 의해 크게 오용되고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다루어져야 합니다. 그들은 ‘마태복음 24, 25장’을 신약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부분적으로 휴거되고, 부분적으로는 이 땅에 남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의 “구원받은 다섯 처녀”의 경우, 수많은 설교들과 저술들은, 나머지 그리스도의 몸이 지상에 남아서 환란을 통과하는 동안, 그리스도인 중에서 “끌려 올라갈 만한” 가치가 있는 “성결한” 집단에게 이 구절을 적용시킵니다. 그러니까 극단적으로 성별되고, 방언을 말하고, 치유시키며, “사도적인” 거룩한 은사주자들만이 “끌려 올라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많은 신학자들이 ‘그리스도의 몸’을 대환란 한 가운데로 집어 넣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그리스도인들이
의 날”(the day of the LORD)의 큰 심판은 받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의 날”(the day of the LORD)을 재림의 심판에만 한정시키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큰 심판은 받지 않겠지만 그래도 대환란 가운데에는 들어간다고 주장합니다. 환란 중간에 휴거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그런 경우입니다. 로젠탈 같은 사람도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몸을 1년 이상 동안 대환란 속으로 끌어들입니다. 대환란에 들어가면 짐승의 표에 노출되는데도 말입니다(요한계시록 149, 10).
  
의 날”(the day of the LORD)에 대한 오해는 심각합니다. 구약 예언서들에서 의 날”을 말할 때 재림의 심판을 말하는 구절들이 있기 때문에 여기에만 한정시키는 학자들이 종종 있는데, 사실 의 날”은 상당히 광범위하게 적용됩니다. 예언서에서 때때로 단순하게 “그 날”이라고만 묘사되는   의 날”은 그리스도의 출생(이사야 21242714, 18), 산헤립의 침공(이사야 10520), 페르시아에 의한 바빌론의 패망(예레미야 50, 51장), 천년왕국(베드로후서 28), 백보좌 심판석(베드로후서 3장) 등에 적용됩니다.
  그러나 로젠탈은 마태복음에서 너무나 뒤틀린 나머지, 그리스도의 천년왕국 통치(요한계시록
2016), 사탄의 결박(요한계시록 208), 곡과 마곡의 공격(요한계시록 208), 심판 전에 죽은 자들이 죽은 채로 머물러 있는 시기(요한계시록 205)를 모두 망쳐놓았습니다. 그는 ‘베드로후서 310’을 취해서 천년왕국의 시작에 적용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구절이 의 날”(the day of the Lord)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구절을 천년왕국이 시작하기 바로 전 ‘요한계시록 1619장’의 사건들로 제한해 버리는데, 사실 이 구절은 천년왕국이 끝나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의 날”의 범위를 오해함으로 인해, 그는 결국 천년왕국이 없다는 ‘무천년주의’가 되고 맙니다. 즉 아마겟돈 전쟁이 끝나고 곧바로 ‘백보좌심판’이 펼쳐진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자, 누군가가 끌려 올라갑니다. 여기에 또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은, 끌려 올라간 사람들이 모두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어 어린 양의 혼인식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11장’에서 모세와 엘리야도 끌려 올라 갔습니다(요한계시록 1112). 하지만 그들은 그리스도의 신부 안에 있지 않았습니다. 환란이 시작되기 전에 땅에 있었던 144,000명의 유대인들은(요한계시록 73, 4) ‘요한계시록 1414’에서 셋째 하늘 보좌 주위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들도 끌려 올라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도 신부 안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휴거되었으나 그들 중에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었던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모세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 노래(요한계시록 153)는 ‘신명기 32장’입니다. 이 점을 유의하기 바랍니다. 이는 또 ‘히브리서 1030’에서 인용되기도 했습니다(신명기 3236).
  우리는 지금 휴거를 다루는
80개 이상의 구절들을 훑어 보았습니다. 주목하십시오. ‘요한계시록 1415’의 추수는 ‘요한계시록 141820’의 추수보다 앞섭니다. 야고보서의 추수는 좋은 열매의 추수이지, ‘신명기 32, 33장’에서 모세의 노래의 열매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환란 후에 보좌에 앉은 양으로서 그분의 원수들에게 나타나시는 것은, 흰 말 타고 재림하시는 것과는 다릅니다(요한계시록 191016). 그분의 원수들은 그분이 오시기 전에 실컷 그분을 보고, 그분을 대항해 싸우기 위해 그들이 그분을 본 곳에서 군대들을 모을 것입니다(요한계시록 1919).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환란 후 휴거”가 일어나는 ‘요한계시록 14장’에서 “구름 위에 앉아 계십니다.” 그때 들려 올라가는 사람들은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교회 시대의 “오직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들이 아니며, 그리스도의 몸 안에 속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 즉 신약 성도들은 환란 이전에 이미 휴거되어 올라갑니다. 이 땅에서 환란이 벌어지는 동안 그들은 이미 하늘에서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환란 때 구원받는 사람들(환란 성도들)은 믿음과 행위로 구원을 받게 되며, 그들이 끝까지 견딘 후 휴거될 때 그것이 곧 “환란 후 휴거”인데, 이들은 그리스도의 몸에 속하지 않았기에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서지 않습니다. 어린 양의 혼인식이 펼쳐질 때에도, 그들은 신부로서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혼인식의 “손님들”이며, 이들에 관해서는 ‘마태복음 2210, 11’에 언급됩니다.

(도표) 두 가지 휴거

  사실 우리가 “환란 후”라고 말할 때 그 용어는 100%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 “환란이 끝날 때 쯤 어디에선가” 이 휴거가 일어난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2429’에서는 “그 날들의 환란 후에 즉시”라고 언급되지만, “그 날들”은 단축될 수 있습니다(마태복음 2422).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바울의 회심은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사도행전
915)의 한 모형으로, 그가 “달을 채우지 못하고 태어났다”는 것을 설명해 줍니다(고린도전서 158). 이 나타나심은 ‘이사야 6013’, ‘요엘 316’, ‘시편 502’ 같은 곳에서 암시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해보다 더 밝게 비추십니다(시편 671┃마태복음 172┃사도행전 22:6).
  바울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에게 설교하도록 보냄을 받았습니다. 다니엘과 에스겔도 이 점에서 바울과 일치합니다. 그들은 모두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보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다니엘
25, 7, 9장 등..┃에스겔 2630, 38, 39장┃로마서 15, 16장). 이들이 바로 환란 성도들을 예표하는데, 환란 기간에 144,000명의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에게 설교할 것입니다. ‘요나’(Jonah) 또한 이와 유사한 인물입니다.
  사람들을 파멸시키는 짐승의 표(
the mark of the beast)가 시작되기 전에, 즉 대환란이 시작되기 이전에 그리스도의 몸, 즉 “순결한 처녀”(고린도후서 112)가 끌려 올라갑니다. 그녀는 나팔 소리(데살로니가전서 416)로 들리는 음성에 의해 끌려 올라갑니다. 물론 이 음성은 구원받지 않은 자들에게는 천둥 소리(요한복음 122830┃욥기 3715)와 같을 것입니다. 그녀가 끌려 올라갈 때는 봄입니다(솔로몬의 노래 21013). 그 신부 안에 있는 각 성도는 각기 그 이름대로(요한복음 1017) 부름받을 것입니다. 이들은 먼저 이 세상에서 벗어나고(“출애굽Exodus), 그 후 즉 환란이 끝난 후에 그들의 목자(요한복음 104)의 뒤를 따라 지상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한편 여기에 한 몸과는 다른(갈라디아서
328┃에베소서 318), 두 개의 분리된 집단에 속하는(요한계시록 74, 9) 수많은 “처녀들”이 나옵니다(솔로몬의 노래 68). 이 집단은 전세계적으로 짐승의 표를 받아야만 하는 상황 이후에 끌려 올라갑니다(요한계시록 13장). 이들 무리는 나팔절 즈음에 끌려 올라가는데 이때 한 천사가 일곱째 나팔을 붑니다. ‘마태복음 2431’에서는 이 나팔을 “큰 나팔 소리”라 말합니다. 이 “처녀들”은 그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으며, 그들이 “이리로 올라오라.”는 부름을 받을 때는 그리스도의 심판석이 이미 지나갔기 때문에, 그들이 심판석에 서야 한다면 한참 후(천년왕국이 지난 이후)에 있을 백보좌 심판석 앞에나 서야만 할 것입니다(요한계시록 1118201114).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할 뿐만 아니라 계명을 지켜야만 합니다(요한계시록 12171412). 즉 믿음과 행위가 요구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마태복음 25장 참조). 백보좌 심판석에서는 행위가 등장합니다(요한계시록 20장).
  구원받은 유대인들과 구원받은 이방인들이 두 개의 분리된 몸을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요한계시록
7장),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구성원은 결코 이 땅에 살지 않게 됩니다. 표나 숫자나 이름(요한계시록 13118149, 10)을 받음으로써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는 상황에서(요한계시록 13118149, 10), 그리스도의 몸의 구성원이 왜 살겠습니까? 천사가 바울이 전하는 않은 “또 다른 복음”을 전할 때, 그리스도의 몸의 구성원은 거기에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의 구성원은 “하나님의 계명들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지키며(요한계시록 12171412) “끝까지 견뎌야 한다”(마태복음 2413)는 말도 듣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날 근본주의자들을 포함해서 수많은 학자들이 이러한 사실들에 무지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진지하게 공부하지 않아서입니다. 그들은 말씀의
“젖”에만 집착한 나머지 “단단한 음식”에 대해서는 거절해 버립니다(히브리서 51214). 그 결과 이 라오디케아 교회 시대는 배교로 흘러 버렸습니다. 말씀을 거절해 버리는 것은 전 세계적인 운동이 되어 버렸고, 그로 인해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것을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미국뿐만 아니라 러시아, 독일, 캐나다, 멕시코, 필리핀, 한국의 선교 현장과 인도, 중국, 하와이, 영국과 호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여러 차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것을 고대하라고 말씀하십니다(사도행전
111┃요한일서 313┃디도서 213┃빌립보서 320).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부흥주의자들”이 미국을 “재기독교화”(로마 카톨릭화)하는 것이라든지, “그리스도인의 권리”라는 정치적 활동으로 획득되는 “위대한 부흥”(기독교계 “우익”) 같은 것만을 기다립니다.
  성경의 예언을 공부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조금 나은 것 같은데, 그들은 다니엘의 칠십째 주(
week)가 나타나는 것, 성전 재건축(환란 성전), 멸망의 아들 등장, 러시아의 이스라엘 침공 같은 것을 기다립니다. 하지만 결국은 그리스도인들은 ‘요한계시록 615장’으로, 즉 대환란 가운데 집어 넣고야 맙니다.
  결국 오늘날 주님의
“양떼들”은 잘못된 길로 인도되었고, 고대하라고 ‘성경이 말씀하시는 분’을 제외한 모든 것을 기다리도록 속임을 당했습니다(마태복음 2442, 44┃누가복음 123537┃빌립보서 320). 이것이 오늘날 “자칭 성경 학자들”“목자들”의 사역입니다. 결코 성령님의 사역이 아닙니다. 이들 눈먼 안내자들이, 필자가 방금 당신에게 공부하라고 권고한 80구절 이상을 거절한 이유는 주의 나타나심의 불확실성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혹은 “목자들”이 게으르고 속임당하고 어리석어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책자들, 전도지, 팜플렛, 비디오 테이프로 맺힌 열매들은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기를 기대하지 않는 구원받은 죄인들입니다.
  필자는 이 글을 끝마치기 전에 주께서 오시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해서 필자의 용기가 꺾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필자는 지난 세월 동안 주님이 곧 오신다는 소망을 갖고 살았지만, 그 일이 곧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낙담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주께서는 그분이 다시 오시는 것을 고대하라고 말씀하셨고, 그때까지 신실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우리는 유대인들의 재결집, 성전 재건축,
10개의 연합 왕국의 부상(요한계시록 13, 17장), 적그리스도와 관련해서 신구약에서 발견되는 예언들에 대해서 무지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그것들을 기다려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기다려야 할 것은 그러한 대환란의 사건들이 아니라,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입니다(시편 255, 21377, 9, 34397599625┃이사야 8173018). 이것은 제가 받은 교훈이며, 당신이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다면 이것은 또한 당신이 받을 교훈이기도 합니다(갈라디아서 55┃데살로니가전서 110).
  자,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일곱 가지의 휴거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장」에서 “예수 그리스도”
「창세기 5장」에서 “에녹”
「열왕기하 2장」에서 “엘리야”
「데살로니가전서 4장」에서 “그리스도의 몸”(신약 성도)
「요한계시록 11장」에서 “모세와 엘리야”
 144,000명의 “유대인 전도자들”
「요한계시록 79에서 ‘큰 환란에서 나온’ 수많은 
                                                              “순교당한 이방인들”

  이 모든 휴거들, 특히 신약 성도의 휴거(환란 전 휴거)와 환란 성도의 휴거(환란 후 휴거)를 하나로 묶어버린 결과는 그리스도의 몸을 대환란 가운데에 집어 넣는 것이었습니다. 근본주의자들이 ‘마태복음 2431’을 오용함으로 더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 구절은 환란 성도들이 환란 후 휴거를 받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휴거는 모두 하나라고 생각하고 이 구절이 신약 성도의 휴거라고 생각해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에서 이 휴거는 환란 후에 이루어집니다. 결국 교회(신약 성도)가 환란을 통과한다는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 두 휴거가 구분되지 않고 신약 성도와 환란 성도가 구분되지 않으면, 사실상 교회 시대와 환란 시대도 구분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 구원받는 방법과 동일한 방법(
“오직 믿음, 오직 은혜”)으로 환란 시대에도 구원받는다고 가르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당신을 환란 시대로 안내합니다. 일단 ‘요한계시록 1217’을 엉망으로 만들고, ‘요한계시록 1412’과 ‘히브리서 314’을 교회 시대의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사도행전 2024) 속으로 뒤섞게 되면 모든 것은 혼란의 도가니로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두 가지 휴거」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성경에서 휴거가 제시되는 문맥이 ‘환란 후’라면, 그것은 신약 성도의 휴거가 아닙니다. 그것은 환란 성도의 휴거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에 들어가지도 않고,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지도 않으며, 믿음과 행위로 구원받는 환란 성도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절대로 대환란 가운데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우리는 대환란 이전에 휴거됩니다!
  물론 명확하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환란 전이나 환란 후, 두 번의 휴거가 일어나는 정확한 시간에 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 때로 필자는
“그 날들의 환란 후에 즉시”(마태복음 249)가 지상 재림보다 약 1년 정도 앞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그것을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아마도 9월(나팔절)에 환란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분을 바라지 않는 자들”(히브리서 928)은 남아서(마태복음 251012) 그 다음 해의 7월이나 8월 경에 있을 두 번째 나타나심을 볼지도 모릅니다(요한계시록 17616). 이 문제들에 대해서는 확실치 않기 때문에 절대로 “교리”로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필자가 한 가지 확신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시편
5016」,「이사야 2620, 21」,「요한계시록 141416」,「히브리서 928」,「사무엘하 221720」,「시편 18619」,「마태복음 244042」에 묘사된 휴거들은 현재 땅 위에 있는 신약 성도, 즉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관련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쓸모없는 헛된 세상 학문이나 잘못된 신학 교리를 배우느라고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 순수한 믿음을 갖고, “절대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할 때 바른 진리를 발견할 수 있고, 향상된 성경적 계시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필자는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 이런 일들을 증거하신 분이 말씀하시기를 “반드시 내가 속히 오리라.”
하시니라. “아멘. 그러하옵니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
(요한계시록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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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터 S.럭크만 /『 휴거 이후에 있을 일들ː제5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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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휴거 이후에 있을 일들 』
     by
     Peter S. Ruckman, Ph.D.

     Copyright ⓒ 2005 Korean by Word of God Preservation Society.
     Seoul, Korea.

5장ː두 가지 휴거 】



● 피터 S. 럭크만 (Peter Sturges Ruckmanㆍ1921∼)

  ‘피터 S. 럭크만’(Peter Sturges Ruckman1921∼현재) 박사는 현재 미국 플로리다 주 펜사콜라에 있는 성경침례교회(Bible Baptist Church)의 목사이며, 펜사콜라성경신학원(Pensacola Bible Institute)의 설립자이자 원장으로서 40년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럭크만 박사는 밥존스대학(Bob Jones University)에서 Ph.D.를 받았지만 그 학교의 신학 노선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저자는 존 칼빈 이래로
500여 명 이상의 유명하다는 성경 주석가들이 그들의 주석서에 범해 놓은 주요 오류들을 일일이 지적하여 바로잡았으며 창세기, 출애굽기,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에스겔, 다니엘, 소선지서, 마태복음, 요한복음, 사도행전,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빌레몬서, 목회서신,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 요한일이삼서, 유다서, 요한계시록 등의 주석서를 저술하여 미국은 물론 세계 전역으로 보급해 오고 있다.
  또한 럭크만 박사는 왜
킹제임스성경이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인가를 권위있게 설명하고 증명할 수 있는 독보적인 신학자이다.
  그는
90년간의 생애 동안 적어도 24,000권의 책을 읽었으며,킹제임스성경150회 이상 정독하였고, 주석서와 성경 교리에 관한 책들을 150여 권이나 저술하였다. 또한 27세에 거듭난 이래로 8,000명 이상의 혼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했다. 그는 화가요, 연주자이며, 아이스하키의 골리(goaliegoalkeeper)로 많은 경기를 치른 선수이기도 하다. 그는 사도 바울 이래 유일한 성경학자요 설교자이다. 영문판 자서전ː「 The Full Cup (1998.)

『 내가 네게 명령하지 아니하였느냐? 강건하고 담대하라.
무서워 말고 낙심치 말라. 이는
하나님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와 함께함이라.” 하시니라. 』
(여호수아 1:9)

Bible believ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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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께 영광을ㆍGLORY TO THE LORD 】

【  설교 듣기 】

   2013. 5. 26〔오전

믿음의 영 〔 이 송오 목사

〈보기〉130526am.mp4

 

〈듣기〉130526am.mp35042

(고린도후서 4:815
8 ○ 우리가 사면에서 고난을 당하여도 괴로워하지 아니하며 당혹스런 일을 당하여도 절망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아니하며 내던져져도 멸망하지 아니하며 10 항상 주 예수의 죽으심을 몸에 지니고 다님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살아 있는 우리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지는 것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의 죽을 육신에 나타나게 하려는 것이라. 12 그러므로 죽음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나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13 똑같은 믿음의 영을 가졌기에 기록된 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노라.” 한 것과 같이 우리도 역시 믿으므로 말하노라. 14 주 예수를 살리신 그분께서 예수를 통하여 우리도 살리시며 또 우리를 너희와 함께 나타내시리라는 것을 아노니 15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은 많은 사람의 감사를 통해 풍성한 은혜가 하나님의 영광에 넘치게 하려는 것이라.

   2013. 5. 26〔오후

주가 말하노라 〔 이 송오 목사

〈보기〉130526pm.mp4

 

〈듣기〉130526pm.mp35148

(예레미야 23:2332
23 가 말하노라. 내가 가까이에서만 하나님이요, 멀리서는 하나님이 아니냐? 24 가 말하노라. 누가 은밀한 곳에 자신을 숨겨 나로 그를 보지 못하게 할 수 있느냐? 가 말하노라. 내가 하늘과 땅을 충만케 하지 아니하냐? 25 내가 그 선지자들이 말하는 바를 들었는데 내 이름으로 거짓들을 예언하여 말하기를 “내가 꿈을 꾸었도다, 내가 꿈을 꾸었도다.” 하는도다. 26 거짓들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마음속에 이것이 얼마나 오래 있으랴? 정녕, 그들은 자기 자신의 마음을 속이는 선지자들이로다. 27 그들의 조상들이 바알을 인하여 내 이름을 잊어버렸던 것처럼 그들 모두가 자기 이웃들에게 그들의 꿈들을 말하여 내 백성으로 내 이름을 잊게 하려 하는도다. 28 꿈을 가진 선지자는 꿈을 말하며 내 말을 가진 자는 내 말을 신실하게 고할지니라. 쭉정이가 밀에게 무엇이겠느냐? 가 말하노라. 29 가 말하노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부수어 조각내는 큰 망치 같지 아니하냐? 30 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보라, 각기 자기 이웃으로부터 내 말들을 도둑질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대적하노라. 31 가 말하노라. 그들의 혀를 놀려 “그가 말씀하신다.” 하는 그 선지자들을 내가 대적하노라. 32 가 말하노라. 보라, 거짓 꿈들을 예언하고 그들에게 말하여 그들의 거짓말들과 헛된 자만으로 내 백성을 그릇되게 하는 자들을 내가 대적하노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도, 그들에게 명령하지도 아니하였으니 그들이 이 백성에게 전혀 유익이 없으리라. 가 말하노라.

(446) 주의 얼굴 대하리 (choir)

우리 하나님을 높이고 그의 거룩한 산에서 경배하라.
이는
우리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시기 때문이라.
〔 시편 99:9

『 14:24 만군의 가 맹세하여 말하기를 “내가 생각했던 대로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며, 내가 계획했던 대로 그것이 확고히 되리라. 4:12 그러므로 오 이스라엘아, 내가 너에게 이같이 행하리라. 내가 너에게 이것을 행하리니 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하라.(이사야 14:24아모스 4:12

시편 10743┃로마서 152┃고린도전서 10241622
데살로니가전서 43a┃디모데전서 45┃마태복음 63377
역대기상 1611

『 43 누구든지 지혜로운 자들과 이 일들을 살펴볼 자들, 그들은 의 자애하심을 깨달으리로다. 2 우리 가운데 각 사람은 선을 위하여 자기 이웃을 기쁘게 세워주자. 24 누구나 자기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각자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라. 22 누구든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그는 우리 께서 오실 때 저주를 받을지어다. 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곧 너희의 거룩함이니라. 5 이는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써 거룩하게 됨이라. 33 오히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해 주시리라. 7 ○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너희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라. 11와 그의 능력을 찾고 그의 얼굴을 항상 찾으라. 』

시편 3311451772511990

135131451314610

『 33:11 의 계획은 영원히 서고 그의 마음의 생각들은 모든 세대까지 서리로다. 45:17 내가 왕의 이름을 모든 세대에 기억되게 하리니 그러므로 백성이 왕을 영원무궁토록 찬양하리이다. 72:5 해와 달이 있는 한 그들이 모든 세대에 걸쳐 주를 두려워하리이다. 119:90 주의 신실하심은 모든 세대에 이르며 주께서 땅을 세우셨으니 땅이 지속하나이다. 135:13여, 주의 이름이 영원히 지속되며 오 여, 주를 기념함이 모든 세대에 이르나이다. 145:13 주의 왕국은 영원한 왕국이니 주의 통치가 모든 세대에 지속되나이다. 146:10 오 시온아, 곧 너의 하나님께서 영원히 모든 세대들에 걸쳐 치리하시리로다. 너희는 를 찬양할지어다.

For the kingdom is the LORD'S
and he is the governor among the nations.

이는 왕국이 의 것이요,
주께서 민족들 가운데 통치자시기 때문이니이다.

Psalms 22:28시편 22:28

(305) 주 예수여 은혜를 (choi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