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 28. 23:40

“ 조용기 목사가 보는 ‘사랑’과 교회의 ‘귀족화’ ” (바른 분별)



    바른 분별조용기 목사가 보는 “사랑”과 교회의 “귀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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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복음주의협의회(회장 김명혁 목사, 강변교회)가 지난 11일 아침 7시 강변교회에서 “주여 우리를 살려주시옵소서!”라는 제목으로 신년하례회 조찬기도 및 발표회를 가졌다. 이날 월례발표회는 조용기 목사, 옥한흠 목사, 방지일 목사, 박종화 목사, 최희범 목사가 맡아 각자 준비한 것을 발표했다.

    발표자들 가운데 조용기 목사는 귀족화되어 세상과 담을 쌓은 한국 교회가 선한 사마리아인과 같이 이웃과 나누는 사랑을 베풀어야 한국에 새로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조목사는 불쌍한 사람을 동정하지 말고 사랑하라는 테레사 수녀의 말을 인용하면서 테레사 수녀가 사랑의 삶을 살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테레사 수녀는, 사후에 발견된 그녀의 편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죽을 때까지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며 지옥에 갈까봐 두려워했던 이교도 수녀이다.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전한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종교들을 포용하고 각 종교마다 구원의 길이 있음을 강조하면서 구제 사업에 평생을 바친 거듭나지 못한 죄인에 불과했는데, 조목사는 성경을 안다 하는 목사이면서도 이런 테레사를 사랑을 베푼 모범으로 제시한 것이다. 테레사는 선행으로 구원을 이뤄보려는 참으로 무모한 반성경적인 삶을 산 이교도로서, 하나님과 전혀 무관한 사람이었다.
    조목사는 자신이 심장병원 관련으로 북한에 갔을 때 조선그리스도교연맹 사무실에 불려 간 적이 있는데, 반공주의자가 무슨 배짱으로 북한에 왔냐는 조선
    “그리스도교”연맹 관련자의 냉소에 찬 질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러” 왔다고 하니 분위기가 확 달라지며 자신을 환영하더라면서 “사랑”으로만이 정치와 체제로 갈라진 남북이 하나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고 하였다.
    조목사가 가장 오해하고 있는 것은 누군가를 도와주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야기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그는 세계 최대 기독교 박해 국가인 북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환영한 것으로 착각하고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해 마음을 열 것으로 기대하지만, 그들이 바라는 것은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들어오는 물질적 지원이다. 조목사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격하시켜서 북한에 조용기심장전문병원을 세우고 있는 것인데, 이렇듯 쌍방 간에 암묵적으로 합의되고 정의된, 십자가와 무관한 “사랑”이 있기에 그런 사업을 북한에서 벌일 수 있는 것이다.
    그들 상호간에 오가는
    “사랑”은 성경이 말씀하는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아니다.『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그의 사랑을 나타내셨느니라』(로마서 5:8).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죄인들을 대신해 죽으심을 통해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이것은 인류의 죄 문제를 해결하는 사랑이고, 물질과 무관한 영적이고 실질적인 사랑이며, 죄인의 혼을 지옥의 형벌에서 구원하는 전 우주적인 사랑이다. 북한이 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십자가에서 피흘리신 죽음의 사랑이 아니라 물질적 지원이며, 조목사 역시 불쌍한 이웃을 돕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예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정의하려 했기 때문에 양측이 “통하는” 바가 있어 환영을 받게 된 것이다. 북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인류의 죄를 대속하신 십자가의 사랑으로 이해하고 환영했다면, 그토록 많은 지하교인들을 죽이지 않았을 것이다.

    조목사는 자신의 심장병원 건립 사업에 성경적 근거를 부여하기 위해 여러 매스컴을 통해 누가복음 10장의 선한 사마리안인의 예를 제시한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예는 얼마든지 영적으로 적용이 가능하겠지만, 십자가 이전인 사복음서는 신약 교회의 믿음과 실행을 위한 성경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현 교회시대에 적용하게 되면 교회가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게 되는 큰 오류를 낳게 된다. 신약 교회의 교리적 바탕이 되는 것은 바울 서신이다. 바울 서신은 그리스도인의 이웃이 누구인지를 정의한다.
    『그러므로 거짓을 버리고 각자 자기의 이웃과 더불어 진리를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이기 때문이라』(에베소서 4:25). 그리스도인의 이웃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 든 다른 그리스도인 지체들이며, 그들의 교제는 “진리” 안에서 이루어진다. 진리를 따르지 않는 불신자를 도와주면서 그들을 그리스도인의 이웃으로 정의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은 비성경적인 일이다. 북한을 이웃으로 간주하고 심장병원을 지어주면, 지원한 쌀을 단 한 톨도 굶주린 인민들에게 주지 않고 군량미로 돌리는 북한의 행태를 볼 때에, 병원이 다른 목적으로 이용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공산주의는 거짓과 위선 집합체이며, 그 가운데 진실은 조금도 없다. 스스로 반공주의 목사라 하면서 마귀의 이념인 공산주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듯하다. 심장병에 시달리는 이북 어린이들을 생각하는 마음이야 이해는 되지만, 매년 수많은 백성들을 아사시키는 이북 정권이 심장병 어린이들을 관심을 가지고 돌볼 만한 정권이라고 생각한다면 대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조목사는 한국 교회가 세상과 담을 쌓고서
    “예배도 우리끼리 하고, 집회도 우리끼리 하고, 교제도 우리끼리 하고, 세상은 던져 버렸다”고 질타했다. 하나님께서는 마귀를 아비로 둔 거듭나지 못한 죄인들이 진리를 모르는 채 드리는 예배는 받아주시지 않는다(요한복음 4:23/8:44/14:16), 그들이 섞인 집회도 인정하지 않으시며(고린도후서 6:16, 17), 그리스도인이 죄인들과 교제하는 것도 금하고 계신다(고린도후서 6:14). 조목사는 교회와 세상을 분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죄인들이 불쌍하면 먼저 그들에게 십자가의 복음을 전해서 구원받게 해야 된다. 그러면 그들의 죽었던 영이 살아나고(에베소서 2:1) 진리를 깨닫게 되어 교제가 가능하게 되며, 그리스도의 몸 안의 지체가 된 그들을 얼마든지 도와줄 수 있게 된다. 죄인들의 가장 기본적인 영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데 그들과의 교제를 주장하는 것은 교회로 하여금 진리를 버리고 세상으로 가라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이미 세속화되어 세상과 혼합되어 있기 때문에 조목사의 그와 같은 주장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겠다.

    조목사가 제시한 한국 교회의 귀족화에 대한 대안,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모두 비성경적이다.
    문제의식은 누구나 가질 수 있고 깨달은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성경에서 출발해 성경으로 결론에 이르지 못한다면, 그 일은 아니함만 못한 것이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승인될 때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생각이라는 것을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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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신문 '바이블 파워' (2008-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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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기 목사가 보는 “사랑”과 교회의 “귀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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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블 파워」/ 2008.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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