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6:11∼24)
11 너희는 마귀의 술책에 대항하여
설 수 있도록 하나님의 전신갑옷(armour of God)을 입으라. 12
이는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에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정사들과 권세들과
이 세상 어두움의 주관자들과 높은 곳들에 있는 영적 악에 대항하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13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전신갑옷(armour of God)을
입으라. 이는 너희가 악한 날에 저항할 수 있으며 또 모든 일을 다 이루기까지
서 있게 하기 위함이니라. 14
그러므로 서서 진리로 너희의 허리띠를 두르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15 화평의 복음을 준비한 것으로
너희 발에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짐으로써
능히 너희가 악한 자의 모든 불붙은 화살을 끌 수 있을 것이라. 17 또한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칼(the
sword of the Spirit),
곧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God)을 가지고 18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모든 성도들을 위해 모든 인내와 간구로 깨어 있으라. 19 그리고 나를 위하여서는 내게 말씀을 주시어 내 입을
열어 담대하게 복음의 신비를 알리게 하도록 기도하라. 20 이를 위하여 내가 사슬에 묶인
대사가 된 것은 나로 하여금 마땅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21 이제 너희는 내가 하고 있는 일과
나에 관한 것을 알게 되리니 사랑하는 형제요, 주
안에서 신실한 일꾼인 투기고가 모든 것을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22 내가 이를 위하여 그를 너희에게
보내노니 너희가 우리에 관한 일을 알게 되고 아울러 그가 너희의 마음을
위로하리라. 23 형제들에게 화평이 있기를
바라며 또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믿음을 겸한 사랑이
있기를 바라노라. 2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성심껏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아멘.
“내버려 두어 하나님이 하시게 하라”라는 말을 살펴봅시다. 이것은
19세기 후반부터 내려온, 그 기원이
분명하지 않은 표어였습니다. 한 대학생이 “하나님이 하시게 하라”(LET GOD)이라는
문장을 여섯개의 종이 카드에 각 알파벳을 적어 방 벽에 붙여 두었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어 ‘D’자가 떨어져 버렸습니다. 이
순간 그 학생은 “LET
GO”라는 문장을
보고, 자신의 삶을 그대로 내버려 둠(내어드림)으로써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을 다스리도록 한다는 자기 나름대로의 성화(聖化:거룩하게 변화됨)의 비결을 깨닫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 말이 도움이 됨을 알았습니다. 그런데도
그 말은, 많은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동의를 받지 못하는 논쟁점이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거룩을 그리스인들이 아무런 기여도 할 수 없는 하나님만의
사역으로 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단순히
자신이 자기의 삶을 통제해 보겠다는 생각을 단념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거룩을 추구하려는 사람의 노력은 무익한 것이 될 것입니다. 사람 속에는,
곧 사람의 육신에는 선한 것이 전혀 없기에 사람이 성화에 기여할 만한
점은 전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고
그 안에서 안식합니다. 자신의 기질을 다스리려고 투쟁하지 않고 다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분노의 감정을 다스려 주시도록 그에게 맡깁니다.
“나는 죽고 그리스도만”(고린도전서 15:31)이라는
바울 사도의 말을, 자신도 말합니다. 그것은 선장이 배의 키를 잡듯이,
지금 자신의 생의 키를 다른 분(예수 그리스도)에게 맡기는 것입니다.
믿음도 붙잡거나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안식하고
느슨하게 하는 것, 곧 자신의 의지를 수동적이 되게 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저는 거룩에 대한 이런 견해를 “수동적 견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이것과 대조적인 견해는 “능동적 견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으로, 분투ㆍ노력ㆍ투쟁ㆍ열렬히 기도하는 것 등을 지지합니다.
능동적 견해를 가르치는 교사들은 “은혜의 수단들”이라는 말을 강조합니다. 내드려 포기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대한 관찰과 기도, 그리고 묵상이
절대로 필요하며 또 다른 성도들과의 교제, 선행을 계속하려는 신중한
노력, 죄로부터의 정화와 적극적인 그리스도인의 의무 이행 등을 절대로
배제하서는 안 됩니다.
두 견해는「믿음이
가장 핵심이다」라는
점에 동의합니다. 두 견해는 인간만의 노력은 무익하며 거룩한 생활을
위한 능력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 틀림없다는 데 동의합니다. 두
견해는 성화의 근거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부활 그리고
승천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개입이라는 데 동의하며 또 그 도우심은 “성도들을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되게
하시는 성령에 의해 전달된다”는
것에도 동의합니다. 그러나 이 두 견해는 서로 반대되고 모순되는 점들을
갖고 있습니다.
혼란과 어려움이
틀림없이 있다는 데 대하여 우리는 놀랄 필요가 없습니다. 먼저 신약성경
그 자체는 두 가지 견해를 모두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두려움과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온전히 이루라”(빌립보서
2:12)고 바울 사도는 빌립보 성도들에게
기록하고 있으며, 분명히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능동적” 견해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이는 너희 안에서 역사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니 그분은 너희로
그분의 선한 기쁘심에 따라 뜻을 두고 행하게 하시느니라.』(빌립보서 2:13)라고 계속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이
말씀의 한 부분만을 취한다면, 그리스도인이 그의 안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모든 것을 맡기기만 하면 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오직 자신이 원하시는 것만 “행하도록” 만들지는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 속에서 결정을 하십시다. 즉 인간으로 하여금 의지를 발동하도록
만드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에게는 이 첫번째 문장과 두번째 문장
사이에 아무런 모순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계시기 때문에 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은 어떤
모순이나 충돌 없이, 일관되게 거룩에 대해 ‘수동적인 접근’과 ‘능동적인
접근’ 둘 다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살펴보기 전에 알아야 할 것은,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의지와
인간의 의지 사이의 상호 작용이라는 신비를 취급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당신을 죄에서 구원하시는 영광스러운
사역과 당신 삶 속에 놀라운 것을 이루는 일은, 당신과 하나님이 각자
할 역할을 갖고 있는 그런 일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이 어디에서 끝나고,
당신의 일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를 엄격히 구별하기는 어렵습니다.
잘 알려진 헌신에
대한 한 곡의 찬송은 성화의 과정에 대한 시인의 경험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첫 소절에서는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나의 역할이 전부였고 당신의 역할은 전혀
없었습니다” 마지막
절까지 다음과 같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어떤 부분은 나의 역할이었고 어떤 부분은 주님의
역할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역할이
더 적고 주님의 역할이 더 많습니다” 마침내 그는 “제
할 일은 아무것도 없고 모든 것은 다 주님이 하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이 찬송가 가사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만일 그 시인이 “나”라는 말로 그의 반역적인 자의지(自意志)와
또 오직 하나님께서만 하실 수 있는 일을 그 자신의 힘으로 하려 했던
무익한 노력이나, 혹은 하나님께서 왕이 되시지 않은 그의 생활의 어떤
영역을, 그 자신을 위하여 따로 남겨 놓으려 했던 것을 표현했다면,
그 찬송은 우리 모두가 불러야 할 찬송입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하나님의
사역과 저의 일이 어떤 경쟁적인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나도 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내 안에서 투쟁하시므로 나도 투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안에서 나를 통하여 능력 있게 역사하고 계시므로,
나도 내 혼의 원수와 싸웁니다. 하나님의 싸움이며 또한 동시에 나의
싸움입니다. 하나님의 싸움일수록 그것은 더욱 나의 싸움이 됩니다.
“성화”에 대한 수동적 가르침의 핵심이 되는 표현은 “내어드림”(LET
GO)입니다. 신약성경
중에 단 한 곳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드리도록 권고받고 있습니다. ‘로마서 6:13∼19’에서
그 표현이 여러 차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학자들은 여기에서도
그 말이, 하나님의 손 안에 수동적으로 머무는 것을 뜻하기보다는 자신을
하나님의 일에 바치는 것을 뜻한다고 확신시켜 줍니다.
로마서 말미 부분의 다음 교리 중에 어떤 수동적인 것이
나타나 있습니까?
『 9 사랑에 거짓이 없게 하라. 악을 증오하고 선과 연합하라.
10 형제애로 서로 다정하게 사랑하며
서로 존경하기를 먼저 하라. 11
일에는 게으르지 말고 영 안에서 열심을 내며 주를
섬기라(serving
the Lord). 12 소망 가운데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꾸준히 기도에 진력하며 13 성도들의 필요에 서로 나눠 주고 대접하기에 힘쓰라.
』(로마서 12:9∼13)
물론 우리들 중의
그 누구도 성령님의 도움 없이는 이 교리를 순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님께 내어드리는
것은 성령님의 지시에 믿음으로, 그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복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거룩이라는 성품을 가질 수 있을까요? 인내로?
우리의 행위로? 베드로후서 첫 부분에 나타나는 흥미 있는 역설을 주의
깊게 살펴보십시오. 그는『이로써
우리에게 지극히 크고 귀한 약속들을 주심은 너희로 하여금 이 약속들을
통해서 정욕으로 인해 세상에 있게 된 타락을 피하여 하나님의 본성(the divine nature)에 동참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베드로후서
1:4)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의 전부를 주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합니까? 우리는 약속만 믿고 가만히
쉬고 앉아 있으며 또한 모든 것을 “하나님의 본성”(the divine nature)에
다 맡기고 있습니까? 실제로 베드로 사도가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 5 이뿐만 아니라 너희가 더욱 전심전력하여 너희의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베드로후서
1:5∼7).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이 잘 활용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과 힘을 다 기울입시다!
오해가 없도록 합시다.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의 성령의
도움이 없이는 우리의 노력은 무익합니다. 우리의 타락하고 죄악스러운
마음으로부터는 아무것도 선한 것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구속받았으며 또한 성화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을 위하여
성별(性別)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일에 있어서 우리는 하나님과 일치합니다.
만일 우리를 내어드리는 것이 왕이신 그분께 엎드려 경외하는 것이라면,
날마다 시간마다 우리의 전체를 다 드려 그분에게 충성합시다. 이기적
욕심과 야망을 이루려고 내 존재의 어느 일부분을 결코 따로 떼어 두지
맙시다. 그리고 우리 자신을 모두 하나님께 드리며, 하나님의 전신갑옷을
입고, 우리의 안팎에 있는 모든 악들을 기적적인 힘으로 대항하도록
합시다!
그의 무한한 능력을 힘입고
그의 모든 힘을 받으며,
하나님의 갑옷을 입고
하나님의 무기로 무장하여,
힘있게 싸움터에 나가자. ─ Charles Wesley,「Soldiers of Christ, Arise.」
“ 강건하고 담대하라. 무서워 말고
낙심치 말라. ” (여호수아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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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화이트/『 믿음의 싸움ː(제9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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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희는 예루살렘의 거리를
여기저기 달려서 이제 보고 알며, 거기 넓은 곳에서 찾으라. 만일 너희가
한 사람이라도 찾을 수 있다면, 공의를 행하고 진리를 구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내가 그 성읍을 용서하리라. 』
(예레미야 5:1)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주여,
그러하옵니다. 주께서는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아시나이다.”
“내 어린양들을
먹이라.”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여,
그러하옵니다. 주께서는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아시나이다.”
“내 양들을 치라.”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여,
주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며,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아시나이다.”
“내 양들을 먹이라.”
“나를 따르라. Follow me.”
(로마서 8:19)
피조물이 간절한
기대를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날 것을 기다리고
있으니
THE FIGHT
by
John White
Originally published
as THE FIGHT by John White
Copyright ⓒ 1976 by Inter Varsity
Christian
Fellowship, Downers
Grove, I1. U.S.A.
All rights reserved.
Korean Edition
Published by Word of Life Press, Seoul, 1982, 1995.
Translated and
published by permission.
Printed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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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1]
Bible
believ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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