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 구속주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너를
유익하게 가르치고, 네가 가야 할 길로 너를 인도한 주 너의 하나님이라. 』(이사야 48:17)
오늘날은 책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바로 이 사실이 우리에게 약간의 위험을 안겨 주고 있습니다.
책은 백만 부 이백만 부씩 팔려 나가고 책의 다양성과 매력은 수효만큼이나
큽니다. 책들은 모든 계층과 모든 연령들에 알맞게 다양화되었으며 대부분은
뛰어난 문필가들에 의해서 쓰여진 것입니다. 책을 사기를 원하는 자들은
누구나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고 가난하거나 살 마음이 없는 자들은
도서관에서 자유로이 빌려 볼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오늘날 독서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책은 영원한
친구이기에 밤낮으로 친해질 수가 있습니다. 결국 독서의 위험성 중의
하나는 지나치게 독서에만 탐닉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우리는 서재에 존경의 마음을 품습니다. 이 엄청나게 수집된
책들은 죽은 자들의 진짜 지하 묘지 ─ 보관 장소 ─ 입니다. 죽은 자들은
이 골방에서 우리들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여기에 그들의 사상과 감정들이
미이라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아니 영원히 육체를 가지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재는 인간을 가르치는 학교이며 과거의 사상의 보호자일
뿐 아니라 현대의 사상가를 가르치는 교육자이기도 합니다. 서재는 지나간
세대의 사상들의 기록을 보존할 뿐 아니라 현대의 지성을 교육하기도
합니다. 한 개인에 의해 선택된 장서는 그의 성격을
대충 짐작케 합니다. 왜냐하면 장서는 그 문학적 친구들이 누구이며,
그의 지적이고 도덕적인 사상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책은
현재의 그의 성품을 보여줄 뿐 아니라 미래의 삶을 결정지어 주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책을 통해 독자는 책의 저자와 긴밀한 접촉을 가지기
때문입니다.〈열려라
참깨ㆍOpen Sesame〉라는 책에서 ‘러스킨’(John
Ruskinㆍ1819∼1900)은 책은 모든 독자들을 동일한
수준에까지 끌어올려서 그들에게 “열쇠의 능력”을
줌으로써 책의 저자에게 나아가는 길을 열어 준다고 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유명 인사와 접촉하려고 애쓴다면 수많은 장애물이
가로놓여 있음을 손쉽게 발견하게 됩니다. 누가 우리를 소개해 줄 사람도
없고, 프라이버시를 함부로 침해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때로는 거리가
너무 떨어져서, 때로는 신분상의 심한 격차로, 때로는 시간의 차이로
접촉하기가 심히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쓴 책을 통해서 우리
모두는 그들과 접촉할 수 있으며, 그들의 삶을 깊이 알 수 있고 또한
그들의 사상과 감정과 교제를 나눌 수도 있는 것입니다. 책의 세계에는
귀족 사회란 있을 수 없습니다. 일상적인 삶에는 귀족 사회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책의 세계는 민주적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책을 읽을 수 있는
능력만 있으면, 어떤 자격이나 조건도 요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독서의 통제에 필요한
첫번째 규칙은 무엇일까요? 중요한 문제는 저자의 성품이 어떠하냐는
것입니다. 만일 한 책을 쓴 사람이 친구 관계가 좋지 못하며 악한 영향력을
끼친 사람이라면 그런 책은 읽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책 속속들이
저자의 인격이 숨어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책은
무의식 중에 독자를 저자에게 동화시키기 때문에 저자들의 책임은 막중합니다.
이집트인들은 책을 “영혼의
약”이라고 불렀습니다.
칼리프(Caliph:이슬람국가의 왕) ‘오마르’(Omar)에 의해 70만권의
책이 소장되어 있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파괴된 것은 결코 불행이
아니었습니다. 그 거대한 수만 권의 책들은 고대 사회의 부패상을 반영하고
있었고 하나님께서는 불로써 그것들을 소멸해 버리는 것이 유익하다고
생각하셨습니다. 노아 시대의 홍수가 그러했듯이 하나님께서는 고대인들의
문학 작품이 불길에 휩싸이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이것과 대조해 볼
때『성경』을 없애버리려는 수많은 마귀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성경』을 얼마나 기적적으로 보존하셨습니까! 인쇄기의
발명으로 책은 모든 사람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400년 전만 하더라도 가장 많은 장서를 소유한
베나벤트의 백작들(Counts
of Benavente)의
책은 기껏해야 120권을 넘지 못했다고 전해져 옵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를 유익하게 가르치고,
... 주 너의 하나님이라”(이사야
48:17). 독자는 어떤 책들이 수요가 있을지를 결정하는 일을
도와줌으로써 출판의 순수성을 지켜 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실상
구매자가 발행자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독서를 통제하는
두번째 규칙이 있습니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저자의 성품을 고려해서
책을 선택해야 한다는 원리는 책 자체의 성격을 고려해서 책을 선택해야
한다는 원리를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먼저 독서에 있어 주의해야 할
것은 책은 도덕적으로 순결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문화를 위해서,
문학을 두루 알기 위해서는 폭넓게 가리지 말고 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나 지배적으로 이 세대를 풍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책을 읽은 것이 자랑이 되기는커녕 수치가 되는 그런 책들이 많이
있습니다. 읽은 책들은 모두가 인간의 마음속에 흔적을 남기게 됩니다.
이것은 마치 강이 흐르면 강바닥에 붉은색의 철이나 초록색의 유황이나
노란색의 황금 등의 침전물을 남김으로써 강물의 특성이나 코스를 알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독서의 최대의 유익과 손해란 뒤에 남은
이 침전물이 “선이냐
악이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한번 한 책이 마음속에 침전시킨 추한 개념이나 더러운
생각이나 악한 기억들이 끼친 손해는 다른 방면의 이익으로는 결코 보충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브로엄’(Henry
Peter Broughamㆍ1778∼1868) 경의 모토인 “모든 것을 조금씩은 그리고 몇 가지는 철저하게 알도록
하라”를 너무 지나치게
끌어가서는 안 됩니다. 또한 베이컨의 격언인 “나는 내 직분을 위해서라면 모든 지식을
습득하겠다”를 지나치게
강조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이브처럼 선악과를 먹으면서까지 지식을
얻으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셋째, 독자들에게
지적인 자극을 주는 책을 선택해야 합니다. 지적인 자극을 주는 책이란
독자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가르치고, 영감을 불어넣는 책을 의미합니다.
만일, 책이 이런 기능을 갖지 못한다면 그것은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독서를 잘 통제하게 되면 놀라운 효과를 거두게 됩니다.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ㆍ1561∼1626)은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역사는 인간에게 지혜를 주며,
시(詩)는 인간에게 기지(機智)를 제공하고, 수학은 예민함을, 자연 철학은
깊이를, 도덕 철학은 무게를, 논리학과 수사학은 논쟁하는 능력을 인간에게
부여한다.” 그러므로
현명한 독자는 기분내키는 대로 책을 읽지 않고, 성격을 형성하고 개발시키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워 책을 읽습니다. 지적인 유익을 주지 못하는
책은 무엇이든지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독서를 통해 최대한의
유익을 얻으려면 책의 저자보다는 ‘책의 주제’를 보고 독서해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책을 읽을 때는 펜을 손에 들고 기억할 필요가 있는 것이나
후에 찾아볼 필요가 있는 것은 표시를 해두어야 합니다. 독서한 것을
좀더 체계적이고 영구적으로 보존하려면 읽으면서 자세하게 글로 써놓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독서의 순서에 대하여
간단히 언급하는 것도 괜찮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와 역사의 일종인
자서전이 독서를 통한 지식 획득의 기초임은 당연합니다. 그 다음에
간단한 시(詩)를 읽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ㆍB.C
106∼43)의
것과 같은 웅변을 읽고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ㆍ1564∼1616) 같은 작가의 대표적인 희곡을
읽는 것이 좋습니다. 특별히 역사적인 사실을 기초로 한 픽션(fiction:허구)은 주의깊게 고른다면 소설과 같은 매력적인 배경이
있기에 역사적 사실을 확고히 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과학 서적이나
철학 서적은 자연히 제일 나중에 읽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지적인 성숙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라이만
비처’(Lyman Beecherㆍ1775∼1863) 박사는 항상 이같이 말하곤 했습니다. “내 일생을 다시 살 기회가 한
번 더 주어진다면 역사를 넓게 깊게 철저히 연구해 보고 싶소. 역사는
수많은 예화나 사실 논증의 자료를 제공해 주므로 대중 앞에서 말을
많이 하는 자들은 역사를 연구할 필요가 있소. 왜냐하면 예화나 사실
논증은 이 세상에서는 가장 설득력 있는 논증이기 때문이오.” 독서와 연구는
치밀한 계획하에서 시행되기만 한다면 인간의 인격 개발에 놀랄 만한
효과가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놀드(Arnold)
박사는 언젠가 자기 어린 아들에게 라틴어를 가르치는 한 아버지를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이 아버지는 아들이 라틴어를 잘 습득하지 못한다고
말하면서 꽤 초조해 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아놀드 박사는 “당신 아들에게 라틴어를 계속
가르치는 것이 좋겠소. 당신 아들이 차츰 라틴어를 잘하지 않더라도
라틴어가 당신 아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오”라고 했습니다. 꼼꼼한 독서가
때로는 단어를 사용하고 문장 형태를 익히는 데 있어서 큰 효과를 드러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타소’(Torquato
Tassoㆍ1544~1595ː이탈리아의 서사시인)의 시는 너무나 치밀하게
짜여져 있기 때문에 전체 시에서 한 절을 빼내거나, 한 절에서 한 행을
빼내거나, 한 행에서 한 단어를 빼내거나 해도 시 전체의 의미가 통하지
않습니다. ‘버나드’(Thomas
Dehany Bernardㆍ1815∼1904)의〈신약에서의 교리의 진전ㆍProgress
of Doctrine in the New Testament〉이라는
책도 더 좋은 말로 보충될 수 있는 단어나, 불필요해서 빼내버려도 상관없는
형용사가 거의 없을 정도로 완벽합니다. 이 책은 순수한 영어의 거의
완전한 모델로 간주됩니다.
독서 통제의 네번째
규칙은 책을 너무 많이 읽지 말라는 것입니다. ‘더튼’(Dutton) 여사는 그의 책(〈Heart
of Midlothian〉)에서 거의 모든 독자의 어리석은
바람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읽고 쓰기를 배우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면 무슨
일이 닥치든지 언제나 멋진 말을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책을 피상적으로 그냥 읽는
것보다도 소수의 책을 읽고 그 내용을 파악하는 것이 더욱 좋습니다.
‘디즈레일리’(Benjamin
Disraeliㆍ1804∼1881)는, 키케로의 작품이 윌리엄
존스(Sir
William Jonesㆍ1746∼1794)경을 만들고 투키디데스(ThucydidesㆍB.C 460∼395)의 역사책이 데모스테네스(DemosthenesㆍB.C 384∼322)를 만든 것처럼 몇몇 경우에는 한 책이 위대한
인간을 만들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한 책의 인간”(The
Man of one Book)이라는
제목으로 한 장(章)을 할애해서 썼습니다. ‘페넬론’(Francois
Fenelonㆍ1651∼1715)은 항상 호머(HomerㆍB.C 8th
century)의 작품을
읽었고 ‘부르달루’(Louis
Bourdaloueㆍ1632∼1704)는 매년 바울과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ㆍ347∼407) 그리고 키케로의 작품을 읽었습니다.
‘다니엘 웹스터’(Daniel
Websterㆍ1782∼1852)는 여섯 권만을 특별히 사랑하여
늘 애독하곤 했습니다. 여섯 권의 책이란, ‘셰익스피어ㆍ베이컨ㆍ밀턴ㆍ존슨(Samuel
Johnsonㆍ1709∼1784)ㆍ버크(Edmund
Burkeㆍ1729∼1797)의 책과 성경’입니다. 인도
본토인인 한 증인이 법정에서 그 자리에 참석한 어떤 법관도 당해낼
수 없을 정도로 날카로운 증거 심리로 법정을 놀라게 한 적이 있었습니다.
후에 알려진 일이지만 그가 가진 유일한 책은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ㆍB.C 384∼322)의 논리학,「오르가논ㆍOrganon」의 복사판이었습니다.[ 오르가논(Organon)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저작 전체를 가르키는 명칭임.] 이 책이 그의 유일한 장서이었기에 그는 이
책을 마스터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고 합니다. 저는
제가 지적(知的)으로 최고의 성장을 기록했던 해는 일류급에 속한 6권의 책을 읽는 데 전념했던 때였음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사무엘
스마일스’(Samuel
Smilesㆍ1812∼1904)는 말했습니다. “지나친 독서는 지적인 면에서
볼 때 흥분은 되나 영양이 없는 한 잔의 술과도 같습니다... 프란시스
호너(Francis
Hornerㆍ1778∼1817)는 소수의 책만을 정독하려고
했으며 쓸데없이 이것저것을 읽는 독서 습관을 철저하게 거부했습니다.” 다른 모든 형태의 교육과
마찬가지로 진정한 독서의 목적은 효과적인 행동 능력 즉 관찰력, 귀납적
추리능력, 건전한 상상력, 성실하고 균형잡힌 판단력 등을 갖추는 것입니다. 지나치게 소설을
많이 읽는 것은 특히 위험합니다. 대부분의 픽션은 사건의 줄거리 즉
사건의 인위적 배열을 제외하면 어떤 매력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소설가는 독자들을 사건의 와중 속으로 끌어들여 마지막 순간까지 꼼짝달싹
못하게 만듭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등장 인물들은 고상한 인물들이
못 됩니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소설의 매력이란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데 기인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심지어는 이상적인 소설이라 하는
것도 때로는 저질이기 일쑤이며 모방할 수는 더더욱 없는 것들입니다.
공립 도서관에 있는 역사서나 전기, 그리고 다른 책들에 비해서 소설이
7배나 된다는 사실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소설을 읽는 것은 비록 그것이 놀라울 정도로
급속히 평범한 일상사가 된다 하더라도, 전체적인 지적 습관에 큰 해를
끼치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소설을 많이 읽게
되면 집중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비록 집중을 한다 하더라도 단지 이야기
줄거리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고, 때로는 이야기 줄거리를 좇다 보면
책의 껍데기만 듬성듬성 읽는 때가 많은 것입니다. 독자들은 사건이
어떻게 결말지어지는가를 보기 위해 마지막 페이지로 건너 뛰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소설류의 독서가 많아지면 기억력뿐 아니라 분별력과
분석력도 떨어집니다. 이러한 독서를 하다보면 지적인 훈련도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도덕적인 교육도 받지 못하는 결과를 빚게 됩니다. 저는 소설을
읽는 것에 대한 저의 경고가 아무런 효력을 내지 못할 것 같아 심히
두렵습니다. 왜냐하면 소설을 읽는 습관이 형성되면 소설을 읽고 싶은
충동이라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중독성이 있어 끊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경고를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심정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일은 하나님께 맡기고자 합니다. 우리는
특별히 젊은이들에게 잡지, 평론, 신문 같은 일시적인 간행물들을 주의하라고
경고하고 싶습니다. 이런 간행물들은 엉뚱하게도 우리 의견의 대변자가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간행물들은 비종교적이며 심지어는 무신론적
경향을 띠고 있습니다. 어떤 잡지와 신문을 가정에서 구독할 것인지를
신중하게 결정하는 일이란 적지 않은 지혜와 양심을 요구합니다. ‘바이런’(George
Gordon Byronㆍ1788∼1824)은 “한 방울의 작은 잉크가 마치 이슬방울처럼
생각 위에 떨어지면 그것은 수천 가지 아니 수만 가지의 생각을 떠오르게
한다”라고 아름답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수만 가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옳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프란시스 베이컨’이 “만일
제게 각 가정의 서재를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저는 교회와 국가의
행복을 보장할 수가 있습니다”라고
말한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우리는 ‘요하네스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ㆍ1398∼1468)가 성 아볼스코트 수도원(St.
Aborsgot
Monastery)의 작은
골방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꾼 꿈을 기억합니다. 그는 그의 발명품이
죄와 악의 씨앗을 넓게 퍼뜨리는 악의 거대한 엔진의 역할을 함으로써
인간들이 인쇄기의 발명자를 저주하게 될는지도 모른다는 경고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만일 그가, 인쇄기가 악의 도구로 이용될 수도 있으나 그럼에도
하나님께는 의와 진리의 궁극적인 승리를 위해서 인쇄기를 사용하실
것이라는 또 다른 목소리가 그를 확신있게 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망치를
들고 그의 인쇄기를 박살내 버렸을 것입니다. “좋은 책은 가장 진실한 친구이기에
아첨하거나 가장할 줄 모른다”라고
베이컨은 말했습니다. 이에 ‘밀턴’(John
Miltonㆍ1608∼1674)은 덧붙입니다. “인간을 죽이려면 좋은 책을
없애도록 하십시오. 인간을 죽이는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이성적인 피조물을 죽이는 자입니다. 그러나 좋은 책을 없애는 사람은
이성 그 자체, 말하자면 눈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죽이는 자입니다.” 최고의 교훈적인
역사와 전기, 빼어난 시, 최대의 극적인 효과, 탁월한 웅변, 순결한
철학 등의 최고의 모든 문학의 매력이 한 곳에 모인 한 책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순결하다.”『성경』이라는 동산 안에서는 독이라고는 전혀 없는 하늘나라의
향기를 맡을 수가 있습니다. 문학적인 책으로서도『성경』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고의 걸작입니다.『성경』을 마스터하는 것은 어떤 대학에서도 가르쳐 줄 수 없는
최고 수준의 문화에 도달하는 길입니다.『성경』을 읽고 연구함으로써 인간은 위대해집니다.『성경』외에 책들 중에 읽을 만한 책들은 대부분이『성경』에서 주로 영감을 받아 쓴 책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믿음의 상실ㆍThe
Eclipse of Faith〉이라는 책의 저자인 ‘헨리 로저스’(Henry Rogersㆍ1806∼1877)는 자신이 스스로 “백지 성경”(The
Blank Bible)이란
제목을 붙인 한 꿈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가 꾼 꿈의 내용은 성경의
모든 문장이 하나도 남김 없이 인간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성경이 사라져 버렸을 뿐 아니라 모든 인간의 문학 작품에 단 한
줄의 성경 구절도 남아 있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매우 학식이 있는 인물인
‘다림풀’(Dalrymple)은 성경이 문학 작품들에 끼친
영향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보기 이해 문학 작품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몇 세기 어간의 작품들은 거의 모든 문장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영감을 얻어 그것을 구체화한 것들이었음을 그는 발견했습니다. 여기에
불멸의 책인 『성경』은 문학 작품이 불멸성의 요소를 가지도록 하게 한 근원이었음을
보여주는 놀라운 본보기가 있습니다. 현재 기독교를 믿는 나라에 현존하는
책들의 7/10
가량이 직접 혹은 간접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어떤 연관을 맺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성경을 좋아하든지 싫어하든지간에『성경』은 인간의 마음과 지성과 작품 속에 영원히 지을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모든
독자들이여,『하나님의
말씀ㆍThe
Word of God』을 항상 깊고 철저하게 연구하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그 내용과 정신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적대적인
책은 결코 읽지 않도록 하십시오. 이것이 우리가 줄 수 있는 최선의
충고입니다. 특별히『성경』을 공격하는 책들은 절대로 가까이 하지 마십시오. 그런
책들은 우리의 마음에 의심과 의혹을 불러일으키는데, 이런 의혹과 의심은
한번 품으면 떨쳐버리기가 여간 어렵지 않은 것입니다. ‘에이브러함
링컨’(Abraham
Lincolnㆍ1809∼1865)은 주로 어린 시절에 그가 손에
넣을 수 있었던 몇몇 책들을 통해 지적이고 도덕적인 교육을 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책들은〈이솝 우화ㆍAesop’s
Fables〉, ‘번연’(John
Bunyanㆍ1628∼1688)의〈천로역정ㆍPilgrim’s
Progress〉,〈워싱턴의 삶ㆍLife
of Washington〉그리고〈성경〉이었습니다. ‘이솝’(AesopㆍB.C. 620∼560)은 일화(逸話)와 예화를 사용하는 능력을
링컨에게 부여해 주었고, ‘워싱턴의 삶’은 그의 애국심을 불러일으켰으며,
‘천로역정’은 픽션의 순수한 형태로서의 그의 상상력을 키워 주었고,
‘성경’은 그의 도덕적 영웅주의의 기초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만일
그 젊은 개혁자가 더럽고 추잡한 생각들을 품게 하는 수많은 현대 문학을
접했더라면 그의 삶이 성공적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장을 끝내면서 수많은 책을 접할 수 있는 특권의 이면에는 큰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읽을 책을 주의깊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골라야 한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책이란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마치 결혼처럼 “건전한 생각과 분별력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깊이 숙고한 후에”
읽기 시작해야 합니다. 순결한 문학은 지성과 감성을 키우는 하나님의
최고의 학부이나, 더러운 책들은 인간의 지성과 감성을 파괴하고 더럽힙니다.
┃ A. T. 피어선/『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ː 제9장... ┃
GODLY SELF
CONTROL
by Dr. A. T. Pierson
Copyright
ⓒ 1984 by Word of Life
Press, Seoul, Korea. All rights reserved.
Printed
in Korea.
【 제9장ː독서의 통제 】
|
(요한복음 5:29/6:29) 5:29 선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을 행한 자는 저주의
부활로 나오리라.
6:29 예수께서 대답하여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것이 하나님의 일이니,
즉 그분이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라.”고 하시니라.
(데살로니가후서 1:8, 9)
『 8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을 불길 가운데서 벌하시리니
9 이런 자들은 주의 임재와 그의 능력의 영광으로부터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게 될 것이라. 』
(시 편 97:1∼12)
『 1 주께서 통치하시나니 땅은 기뻐하며
무수한 섬들은 즐거워할지어다. 2 구름들과 흑암이 그를 두르고 있으며 의와 공의는
그의 보좌의 처소로다. 3
불이 그의 앞에서 나가 둘러싼 그의 원수들을 사르는도다. 4 그의 번개가 세상을 비추었으니
땅이 보고서 떨었도다. 5
산들이 주의 면전, 곧 온 땅의 주의 면전에서 밀초같이 녹았도다. 6 하늘들이 그의 의를 선포하니 모든 백성이 그의 영광을
보는도다. 7 조각한 형상들을 섬기는 자들은
모두 낭패를 당하리니 이는 그들이 우상들을 자랑함이라. 너희 모든
신들아, 그분을 경배하라. 8
오 주여, 주의 심판으로 인하여 시온이
듣고 기뻐하였으며 유다의 딸들이 즐거워하였나니 9 이는 주여, 주께서는 온 땅 위에 높으시며
주께서는 모든 신들 위에 훨씬 높으심이니이다. 10 주를 사랑하는 너희들아, 악을
미워하라. 그가 그의 성도들의 혼들을 보호하시며 그가 그들을 악인의
손에서 구해 내시느니라. 11 빛은 의인을 위하여 뿌려졌고 기쁨은 마음이 정직한
자를 위하여 뿌려졌느니라. 12 너희 의로운 자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고 그의 거룩하심을 기억하여 감사를
드리라. 』
〔사도행전 16:31〕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안이 구원을
받으리라.”
(요한복음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전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한 말들은 영이요, 생명이라. It is the spirit that quickeneth; the flesh profiteth nothing: the words that I speak unto you, they are spirit,
and they are life.
『 14:24 만군의 주가 맹세하여 말하기를 “내가 생각했던
대로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며, 내가 계획했던 대로 그것이 확고히 되리라.
4:12 그러므로 오 이스라엘아, 내가
너에게 이같이 행하리라. 내가 너에게 이것을 행하리니 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하라. 2:17 세상도, 세상의 정욕도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
(이사야 14:24┃아모스
4:12┃요한일서 2:17)
Bible
believers
|